잠시 은행업무로 나 섰다 흠뻑 젖었다. 훅훅 턱밑까지 차오르는 열기에 이런 날은 지중해 인근 나라의 시에스타(낮잠)가 부럽다. 시원한 그늘 밑에서 머리 끝까지 짜릿하게 식혀주는 개울가에 발 담금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런 폭염 속에서도 아스팔트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먼 발치에서도 사우나의 아찔한 열기처럼 연신 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겪어 보지 않아도 숨이 막힌다.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사람은 달라진다. 그네들이 굵은 땀방울로 더위와 맞서 싸우는 동안 난 겨우 성가신 벌레에 물린 마냥 역겨워 했으니 민망스럽다. 타인의 수고스러움을 더 나아가 고통을 무덤덤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 문제다. 편안한 것에만 길들여져 나부터 살자는 식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네들의 지금 심정은 오죽할까? 오아시스라도 떠 올려야 헤치고 나갈 힘이 될려나... 이놈에 오지랖은...^^

 

어쨋든 휴가가 절정이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모처럼 해운대 나들이를 했다. 부산 토박이들에게는 해운대가 단순한 지명이나 바다가 펼쳐진 모래사장정도의 감흥이랄까? 오메가메 들르는 곳이다 보니 휴가철 마다 넘쳐나는 인파에 오히려 던적스럽다. 하지만 사람 보는 재미도 그렇고 파도에 몸을 내맡기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흥겨움도 그렇고 해서 늦으막에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넘쳐난다. 급하게 나오느라 카메라를 챙겨 놓지 못 해 이미지를 올릴수는 없지만 물반 사람반이다. 딱 미아되기 십상이겠더라.

 

예전에는 해운대가 이렇게까지 붐비지는 않았다. 개발이 정체되었던 시절에는 고만고만한 낮은 호텔과 해송(海松) 우듬지가 쭉 이어진 배경이 나름 잘 보존되던 곳이었으나, 몇 해전부터 버섯 웃자라듯 쑥쑥 올라 선 고층 빌딩에 가려 정겨움은 실종되고 현기증만 인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해안의 경계를 높이고 제방을 쌓아 올리더니 데크로 된 방부목을 덧대어 인위적인 색깔과 모습으로 덧칠해 놓았다. 나는 자연에 보태진 그 길을 볼 때마다 썩지 않는 부패된 냄새가 떠도는 착각을 한다.  

 

4대강도 파뒤집고 입맛에 맞게 맞추는 판에 해수욕장 하나 손질하는게 뭐 대수겠는가. 그래도 아쉬운 건 여전하다. 어디든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해운대는 나름의 포스트가 있다. 그 자리 그대로 다독거려 주며 사랑도 원망도 모두 함께 해 주었으니 말이다. 줄어 드는 모래사장만큼 정서적 진폭도 주는 모양이다. 조만간 다 사라져 버리면 난 어디다 속풀이를 하지?

 

그래서 이날은 해운대는 과감히 포기하고 달맞이 고개를 지나 청사포를 넘어 송정해수욕장에 안착 신나게 놀다 왔다는 짧은 휴가의 되돌림이다. 여기서 팁은 송정은 해수욕장이 곱고 물이 차지 않으며 한참을 나아가도 어른 무릎께 밖에 물이 오지 않아 아이가 있는 집은 놀기에 딱이다. 아쉬운 것은 해수욕 후 샤워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온수가 제공되지 않아 샤워 도중 울부짖음에 시달린다는 사실. 뭐 그래도 해가 뉘엿뉘엇 폐장 직전이 아니라면 참을만 하다. 샤워장에 공급되는 물이 민박집 주인장 왈, 천연 자연 암반수를 뚫고 올라온 지하수입니데이. 조금 찹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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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0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 사는 분들은 해운대보단 다들 송정이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조금 찹습니더~~~ ㅋㅋㅋ

穀雨(곡우) 2010-08-06 19:40   좋아요 0 | URL
붐비는 것 보담 훨씬 낫거든요. 정감있고...^^

비로그인 2010-08-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부산에 계신가요?
글쿠나아~~~

穀雨(곡우) 2010-08-06 22:11   좋아요 0 | URL
넵, 나고 자라고 먹고 사는 곳도 부산입니다. ^^

라로 2010-08-0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는 이번에도 휴가를 해운대로 가려고 해요. 저희 가족은 다 파도 타기를 좋아하거든요,,,저 같은면 막내아이 데리고 송정으로 가고 싶네요~.^^;;
그런데 이번 휴가엔 아직 숙박할 곳을 못구했어요,ㅠㅠ
저희가 가고 싶은 날짜엔 다 찼더라구요,,ㅠㅠ
아무래도 16일이 지나서 가야할지,,ㅠㅠ
제 남편은 한국에서 가장 살 고 싶은 곳이 부산이라는데,,,정말 좋은곳에 사시는군요!!^^

穀雨(곡우) 2010-08-08 2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파도타기 너므 재미나죠....^^ 제가 여태껏 살면서 해운대를 숙박의 장소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미쳐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제 집이 스테이할 수 있는 곳이 된다면 기꺼이 모시고프나
사정이 여의치를 못 하네요...쩝
조금 더 지나면 비수기에 접어드니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이 부산이라는 남편님의 생각은 맞습니다...^^

미지 2010-08-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부산에 사시는군요? 제가 부산이 고향이라.. 글 반갑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해운대에는 저도 이따금 갈 때마다 상실감을 느낍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끝나면 주로 해운대로 귀가하여^^ 밤이 되도록 파도소리 듣고 했는데.. 그땐 몰랐는데 해운대가 망가지니 그 때의 해운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하는 회환이 듭니다. 수영만 매립하며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작년에 한번 갔었는데, 좀 놀란 건 해수욕 인파의 한 30퍼센트 정도가 외국인이었다는... 아마 한류? 때문인지, 해운대 관광 패키지 상품이 잘팔리나보더군요.. 이래저래 낯설어 그 이후 못 내려갔네요.
이제 사대강까지 망가뜨리고 나면 얼마나 모진 마음 먹으며 살아가야 하나.. 울적해지네요. 어쨌거나 해운대 이야기 재미있게읽었습니다.^^

穀雨(곡우) 2010-08-10 11:26   좋아요 0 | URL
은근 부산분들이 많으시네요. 수영만은 이제 괴물이 되었습니다. 콘크리트 덩어리로 둘러싸인 괴물. 한 번씩 괴물근처로 갈일이 있어 들르지만 도회적인 이미지는 강하고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어색함이 지배적이지요. 그런데도 좋아하는 분들은 또 좋아하더군요, 그 땅을 자연을 닮은 공원으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쉽습니다.

세실 2010-08-1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해운대가서 달맞이고개 산책길 따라 걸으며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 했는데,
님도 그중 한분이시네요. 부럽습니다^*^
청주는 바다 보려면 2시간은 가야 해요. 아이들은 댐이 바다인줄 알며 컸다는. ㅎㅎ

穀雨(곡우) 2010-08-11 15:29   좋아요 0 | URL
댐이 바다라...^^ 천혜의 자연환경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으나 가까이 있으니
소원해지는 것은 사실이더군요. 그래도 달맞이 고개는 좋은 곳은 분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