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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
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 이덕임 옮김 / 이가서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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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우리는 루저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은 믿음은 인간의 오랜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것은 불확실한 현실에 대한 그림자와 같다. 누구나 신념으로부터 오는 용기의 순간을 겪는다. 그 과정을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방향은 바뀐다. 비열할 것인가 아니면 용감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이러한 믿음은 관념이 되었고 부동의 가치로 작용한다.



비겁함의 그 수치스러움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쉽게 와 닿지 않는 거리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생경한 주장을 하는 프린츠 M. 부케티츠의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호기심의 촉수를 자극한다. 그는 빈 대학교의 생물과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진화ㆍ인지생물과학의 전문가다. 그가 펴낸 이 책의 골자가 제목에서 드러나듯 소위 겁쟁이예찬론 정도 되지 않을까. 겁쟁이에 대한 새로운 시선, 그 패러다임을 풀어 나가는 이 책은 의구로 시작해 동감으로 변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진화의 웅장한 프레임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자연계의 험난한 투쟁의 과정을 뚫고 반복과 학습의 쳇바퀴를 진화라는 물결을 흐르고 또 흐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살아 남은 진화의 법칙,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환경에 친밀하고 빠르게 적응하고 뒤쳐진 종은 자연도태된다는 H. 스펜서의 이론이다. 때로는 돌연변이라고 하지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경제적 효용성의 결과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더 정확하게 따져 보면 판을 보는 관점의 차이다. 적자適者로 비유되는 종은 강하고 빠르다는 현상에만 치우쳤지 평균적인 수명이 긴것과는 대체로 무관하다.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혁신적인 관념의 시작이다. 살아남은 동물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재능을 획득했다는 논거다. 실제 동물의 세계에 거짓말과 속임수, 기만과 조작이 만연한다는 사실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는 윤리적 잣대나 감정의 기준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로 국한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인간은 윤리적이고 감정의 지배를 받는 호모 사피엔스다. 윤리는 도덕적 관념을 낳고 기만과 거짓을 배척한다. 이러한 잣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과 진화의 상관관계는 더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인간의 유전자에 기록된 그 틀은 고정된 부동의 역사인지 모른다.



문제는 윤리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에 있다. 저자가 밝혔듯 회의적인 시각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또한 비겁함의 옹호를 차치하고라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스스로 고립된 섬처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오늘날의 사회진화의 영향도 물론있겠거니와 감정의 기준점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비겁한 겁쟁이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개인적 이기주의자는 정치적 조직 또는 이기적인 단체의 이합 형태와 자기 사이에 놓인 분명한 선을 구분짓고 다양한 자유주의를 사랑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논거의 핵심이다.(P-228)



분명한 것은 자아우선주의와 배타적 감정의 충돌에서 오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자아우선이 사회문화적 동력이 될 것이고 혁신을 구동하는 매개가 된다는 의미겠다. 그러나 이기적 행태와의 구분은 중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병리현상은 심각하다. 대중매체와 매개된 광고의 힘은 자기중심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자텔베르거의 이념처럼 '신봉건주의의 범람' 또는 '신병리학적 자본주의 현상'의 욕망의 뒤틀린 깨달음 현상을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도덕적 개인주의자에 대한 패러다임을 달리 쓰고자 한다. 그들이 개인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반면 다른 사람도 그 자신의 이익을 따른다는 상호연관성을 수용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만의 개인적 삶의 방식을 선호하며 '자아발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회에 통용되는 법을 따른다. 그 속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통념의 가치를 이끄는 행동규범으로서의 선이 존재한다. 그들에게서 삶은 목적에 충실한 작은 물결에 미동하지 않는 의연함을 작은 모욕을 물리치는 안정된 삶을 견지한다.



이와 같이 저자의 겁쟁이예찬은 오랜 통찰과 고민의 흔적이 빗은 결과물이다. 그가 이론이 생경하고 낯선 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그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방식이나 견해를 학계에 보고한다는 것은 오히려 보수의 고착화된 사고를 허무는 계기가 된다. 그의 도덕적 근본바탕에 버무려진 진화의 패러다임, 곱씹어 볼 주제다.



비겁자란 여러 상황 속에서 숨거나 도망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며 용기를 증명하려 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으려 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자신이 방해받거나 위협받지 않는 한 타인에게 적대감을 품는 일이 없으며 국가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보복조차 묵묵히 감수하며 그 결과 세속에서 물러난 삶을 사는 사람이다.(p-239)



물론 도덕적 이념이 바탕이 되지 못하다면 한낱 겁쟁이를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을 지배하던 이념의 허구 앞에서 애써 외면한 숨겨진 가치를 발견한 것과 같다. 쉽게 동요하지 않고 생물학적 생존경쟁의 불가피성을 떠올린다면 도덕적 개인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의 이상은 진화의 경계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미덕이란 지속적인 실천이 모여 구축된 삶의 태도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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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07: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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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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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단어마법篇 1 (본권 + 워크북 + 카드) - 몰아쳐라, 돌개바람! 돌풍(突風) 마법천자문 단어마법篇 1
김현수 지음, 호야 그림, 파프리카 채색, 김창환 감수 / 아울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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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글을 읽고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신비롭다는 생각이 앞선다. 언어에 대한 배움은 요식 화된 절차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냥 신기하다. 불과 몇 마디에 불과하던 단어를 하나둘 내 뱉더니 어느새 문장이 되고 글이 된다. 가만 생각해 보면 학습은 반복에 의한 산물임을 몸으로 기억하는지 모른다. 미국의 유명한 자기 계발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을 발견했다. 성공의 키워드는 반복된 연습이라는 이치다. 그러니 개념을 익히고 뜻을 터득하기 전에 아이는 이미 반복된 노출과 학습에 의해 몸으로 깨우쳤다는 소리겠다.




최근 몇 해 들어 학습과 일러스트를 결합한 학습만화가 범람한다. 만화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보다 자칫 나무만을 보다 산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까 싶어 일부러 밀쳐 두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아주 우연찮은 기회에 서점 나들이에 아이가 집어 든 한자만화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는 한자의 음과 훈을 카드를 통해 연상하고 기억하더니 일러스트의 화려한 그래픽과 이미지에 결부되어 오래도록 빠져 들었다. 1차적인 학습의 고무적인 현상인 몰입의 효과는 극대화한 셈이다.




뒤이어 한 권 두 권 시리즈물이 발간될 때마다 손에 거머쥐고 틈날 때마다 들춰 보더니 급기야는 카드놀이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카드에 적힌 한자의 음을 말하고 훈을 알게 되고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주도적으로 장악했다. 이 책이 잘 알려진 아울북의 <마법천자문>시리즈다. 마법처럼 깨우친다는 것은 반복을 전제로 하지만 아이의 반짝이는 눈과 오물거리는 입에서 튀어 나오는 한자의 향연은 천자문을 깨우친 그 옛날 아이의 감흥과 일치하지 싶다.




이렇게 한자를 통해 단어를 유추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즈음 <마법천자문 단어편>이 출시되었다. 예상한 대로 전편에 등장하던 내용을 연계해서 손오공과 해왕 족과의 한자승부를 겨룬다는 스토리다. 실제 <마법천자문>시리즈가 계속해서 인기를 이어가는 비결 중의 하나가 탄탄한 스토리텔링이다. 분명한 권선징악의 대립적 구조, 모험심을 심어주는 판타지 요소 등이 적절하게 가미되어 아이가 생각주머니를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별첨으로 소개된 워크북을 단계에 맞게 활용하면 학습효과가 배가되기는 하겠으나 괜한 구속으로 이어질까 사용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책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탄탄하고 알찬 책이라도 아직 개념이 무른 아이에게는 부모의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일일이 암기하고 외우기를 강요하기 보다는 재미를 붙이게 해서 자연스럽게 개념의 틀을 익힐 수 있는 토양을 배양시켜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흥미는 곧 재미를 몰고 오며 재미는 배움으로 돌아온다. 주도적인 학습과 창의적인 사고에 직접적인 학습만화가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나 흥미와 재미를 키우는 데 만화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아이의 독서습관은 부모가 만든다는 말은 명심한다면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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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과학원정대 1 : 개미 - 손오공과 개미핥기의 한판승부! 마법천자문 과학원정대 시리즈 1
스튜디오 시리얼 원작. 디지털터치 만화. 손영운 기획 및 글. 김재근 감수 / 아울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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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천자문을 처음 서점에서 접했을 때 학습과 만화와의 상관관계를 두고 나는 저울질하기에 급했다. 아이가 아직 미취학 아동이라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만화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칫 창의력이 감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려 반 기대 반으로 구입해서 아이의 독서과정을 지켜 보다 보니 그것은 기우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만화의 직접적인 설명과 잘 짜인 스토리텔링에 의한 연상기법은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왕성하게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단순암기가 아닌 연상기억에 의한 지식습득이 단어의 해석이나 풀이까지 스스로 발전하는 단계까지 진화하는 것을 보고는 내심 기특하기도 하고 부모로써의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 이후 출시될 때마다 모든 책을 즉시 구입해서 마법천자문 전권을 이제 7살이 된 아이는 홀로 익히고 즐겁게 반응했다. 내처 금번에 출시된 이 책 <마법천자문 과학 원정대>는 앞서와 같은 맥락을 충실하게 이어 간다. 마법천자문의 성공은 한자급수의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안배와 일러스트의 시각적 자극으로 만화의 부정적 이미지를 단박에 허물어버리는 유익한 학습서로 자리매김한 것이 유력한 이유겠다. 인간의 기억능력은 단기에 지속되는 과정을 통해 21일을 기점으로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뉜다. 따라서 단기기억을 장기기억화하는 방법은 반복에 의한 연상기억이 탁월한 성과를 보인다는 것이 정설이다.

 

        책의 내용은 손오공이 개미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미종족과의 싸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존의 익숙한 손오공과 그의 친구들이 나와 개미귀신을 상대로 모험을 펼치고 평화를 찾아간다는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분명한 내용이다. 아이들에게는 확고한 인과관계의 표현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나아가 학습에 재미를 더 하는 흥밋거리를 유발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놀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책을 쉽게 접하는 첩경은 바로 재미다. 책 읽는 재미를 알아간다는 것은 지식의 습득과 앎의 깊이는 절로 커지고 단단해 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과학원정대에 담긴 페르몬이야기, 진딧물과의 공생관계, 개미의 천적인 개미핥기를 자연스럽게 알고 인지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친숙한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나간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으로의 확장이 가능하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개미를 탐구하고 나아가 자연관찰도감을 살피게 되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펼쳐 보게 된다는 것은 확장된 연관학습이다. 물론 이 책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부모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아이가 즐겁게 살피고 반응하는 동안 부모는 아이의 말랑말랑하고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러한 상호연관작용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며 책에 담긴 내용을 빨대처럼 빨아 들여 아이의 기초지식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독서의 습관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나 산만한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이가 책에 대한 거부감보다 지적 호기심에 대한 욕망이 무럭무럭 자랄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책과 함께 관련 있는 책을 함께 구비해서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줄 필요가 있지 싶다. 나 또한 아이가 책을 통해 접한 한자나 지식의 알갱이를 단단하게 여물 수 있도록 주위를 환기시키는 작업을 계속 했다. 한자카드를 활용하고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함께 책을 뒤적이고 그 이해와 논리개념을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아직 서툴고 꾸준한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걸음마 단계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흥미를 유발시켜 주는 상태를 지속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사족 하나. 위 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이므로 맹신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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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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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깊음을 흠모하고 그 알 수 없는 존재감에 빠져 들지 않은 이가 있을까? 점점이달리 듯 박힌 억겁의 별들 사이로 상상을 쫓던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인간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든 어디로 흘러가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의 힘은 인간을 우러르게 한다. 그런 광활한 우주를 이제야 보았다. 카오스의 격렬한 몸부림으로부터 촉발된 코스모스의 거대한 힘을 나는 이제야 보았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존재이며 나 또한 코스모스로 돌아 갈 가이아, 어머니의 품처럼 말이다. 

 

칼 세이건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문과학자다. 그가 이 책 <코스모스>를 통해 보여 준 업적은 베일에 싸인 우주의 비밀과 인간의 존재의미를 전 세계로 전파시켰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열기가 식을 기미조차 없다. 마치 수소의 핵융합반응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통해 남은 재에서부터 인류가 기원되었다는 진실처럼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칼 세이건이라는 석학의 손을 통해 인류는 우주를 향한 발걸음을 진일보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코스모스>는 지난 1976년 텔레비젼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어 전 세계 60개국, 6억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우주개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부흥했던 것도 이유겠지만 우주의 발생에서부터 인류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의 학문적 제 영역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방대함에 열광했던 것이 주효했다. 실제 당시의 미국과 구소련의 우주프로젝트는 정치적, 경제적 함수를 포함한 외부적 압력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군비경쟁을 위한 구실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우주개발계획은 일정부분 정치적 압력아래 있었다. 이러한 외부변수에 의한 변질된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된 큰 길라잡이가 바로 <코스모스>다. 인간을 이해하고 우주를 경영할 책을 꼽는다면 단연 이 책이다.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반대어다. 질서와 혼동은 양날의 검처럼 공세와 수세를 함께 도모한다. 명멸할 듯 꺼지는 별의 최후는 초신성으로 분해 신명의 빛을 토해 낸다. 유는 무로 바뀌고 무는 다시 유로 변환한다. 힌두교의 진언처럼 영원한 억겁의 순리처럼 순환되고 반복되는 체계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곧 코스모스다. 이처럼 지극히 완벽한 상태를 추구하려는 코스모스를 칼 세이건은 힌두교의 사상에서 해답을 구했다. 아무것도 없던 암흑의 저 편에 대한 추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다.

 

때문에 인간은 하늘을 경외하고 신의 영역으로 격상하려는 노력을 현재도 진행 중이다. 칼 세이건은 종교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으나 우리가 모르는 차원의 존재의미를 열어 두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유물론의 기저 또한 미답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윤활유 역할을 해 주며 우리를 끝없는 우주의 바다로 인도한다. 이에 더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유려한 글쓰기에 있다. 영혼에 호소하고 인간이 밝힌 모든 것들에 겸손함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글쓰기는 천부적 능력에 다름 아니다.

 

책은 전체 13부로 나뉘어 TV시리즈물과 궤를 같이 하였다. 우주의 시원(始原)을 통해 천체의 모습, 행성과 별의 식별, 태양계의 생성, 생명의 출현, 우주의 진행, 별의 생애 등을 상세하고 유기적으로 풀어 차근차근 나열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은 과학하기의 존재의미를 부각시키고 인간을 향한 계몽의식을 제고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며 호소한다. 케플러의 법칙을 통해 견고하기만 하던 우주의 빗장이 스스로 풀려 버린 것처럼 칼 세이건은 인간이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알려진 유일한 존재에 감사하고 겸허함을 도모하기를 바란다.

 

인간이 진화의 대변혁을 거쳐 완성된 유일무이한 종임에는 틀림없다. 그 근본이 어디에 가 닿든 현재의 인간이 미래의 또 다른 진화의 시계에 어느 종보다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우주력에 비한다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겠으나 그동안 인간이 폭발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현재를 이룩한 성과는 주목할 만한 결과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인간이 앞으로 밝혀 내야할 영역 또한 무한하다는 것도 미래를 불가해한 영역으로 내모는 미지의 영역과 같다. 이러한 심연과도 같은 인간의 미래를 칼 세이건은 이제 시작된 인간의 무한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우리는 더욱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접근과 방법으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 나갈 것이며 그 중심에 인간의 뇌가 촉수처럼 가동되는 우주선의 사령탑이 될 것이다.

 

세이건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신념을 믿고 환경의 소중함을 부르짖던 철저한 환경주의자였다. 인간이 코스모스로부터 발견하고 발명한 기계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치유하는 길이 급선무임을 설파하였다. 또한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극단을 치닫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누구보다 우려하였다. 그러한 우려를 반증하듯 2001. 9. 11. 테러사건은 인류의 삶을 벼랑으로 몰고 그 상황을 악용하는 정치적 시도는 지금껏 쌓아 온 성과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불을 다스리고 빛을 넘어서며 중력을 극복하는 과학의 혜택도 인간을 향하는 무자비한 살육도구와 뿌리가 같음을 칼 세이건은 염려하였다.

 

어찌 보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제도와 규범 속에서 지리멸렬한 투쟁을 계속 이어 나가는지 모른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통해 드려다 본 진실의 정체도 인간의 이중성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이 수천 년을 이어 온 압력과 탐욕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이기에 가능했다. 우주 혼돈의 순간에 심연을 떠돌던 티끌이 모여 터지고 식기를 반복하면서 탄생된 지구도 그 숙명의 과업을 시나브로 이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인류가 지워져 버린 무지의 천년을 극복하고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기치를 이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수천억 개가 넘는 별을 거느린 우주에서의 정체성을 찾을 날이 오지 않겠는가. 이 모든 순간을 칼 세이건은 바랐고 이 책이 앞으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원동력이다. 

 

이 책을 과학도서로 묶어 두기에는 그 가치나 위용이 너무도 찬란하다. 우주를 이해하기를 원하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기 위해서는 이 책에게 묻는 것이 선답(先答)이겠다. 그리하여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 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해서 인류의 대승적 통합과 융합을 통한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21세기를 살아 가는, 방향이자 지향점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 책에 해답이 있음은 중언부언임은 두말할 나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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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글쓰기 굉장히 정제되어 있어서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 토론도서로 활용해도 될까요? 주부들 상대로 부담스러울까요?

穀雨(곡우) 2010-01-21 23:03   좋아요 0 | URL
정제되어 있다는 말씀이 왜 이렇게 낯선지요. 어느 늙은 작가가 그러더군요. 쓰고 뭉개기를
골백번을 더해도 미덥지 않은 것이 자기의 거친 글이라고 말이지요. 전 여태껏 제 글에 잔뜩
묻은 무거움을 빼려 노력하지만 너무 힘이들더군요.

그리고 이 책이 어느 단체, 누가 선정한 우수도서라서이기보다 접근대상의 호응도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 보이는데요. 주부이기 이전에 인간을 탐구하고 배운다면 전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속에 먼 별나라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흥미를 반감시킬겁니다. 그러나 이 책은 물리학, 기하학, 생물학, 유전자학,
인류학, 천체학, 화학 등 두루두루 그 깊이를 넘나드는 옹골짐이 좋습니다.

아울러 세이건의 탐나는 글쓰기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에 읽는 재미도 더욱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전 천천히 아주 꼭꼭 씹어서 읽었습니다. 제겐 좋았습니다.

2010-01-22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2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넥션 -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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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발명은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때로는 불편해서 때로는 탐욕으로 인해 이도저도 아니면 우연을 가장해 인간은 발견과 진화를 거듭해 왔다. 불을 다스리고 도구를 사용하였다는 지극히 원시적인 출발은 현재의 모든 발전의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과언이 아니겠다. 씨를 뿌리고 쟁기를 사용하고 관개수로를 개설하는 일련의 연속행위들은 불편함이라는 정신적 출발점의 모토를 공유하지 않았겠는가. 기실 우리를 둘러 싼 문명의 실리적 혜택의 풍요로움도 어느 누군가의 불편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명제라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커넥션>은 드러난 생각의 연결고리가 그물처럼 촘촘히 얽혀 있어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모 통신사의 광고 문구처럼 ‘~때문에’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진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일까? 인간이 발명한 모든 것들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표하게 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저자가 훝고 통찰한 발명의 시금석은 인류사적으로 중대한 역사적 사실이자 기록임은 불변의 진리다.




수레로부터 출발하여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이동수단의 발전은 인간을 물리적인 공간의 경계를 허물게 된 원인이다. 하나의 생각이 파생되어 여타 밀접한 관련분야의 발전과 혁신으로 이어졌다. 전혀 별개의 영역에까지 영향력을 끼치게 된 원인도 결국은 인간이 낳은 생각에서부터 일테다. 당시로서는 광기어린 미치광이로 보았거나 하릴없는 행위로 치부되었을지라도 변화는 무섭게 전이되었다. 이러한 혁신의 공통점은 인간의 태도와 수용의지로부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이다. 각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이유를 밝히다보면 거기에는 사고, 기후 변화, 천재, 손재주, 주의 깊은 관찰, 야심, 탐욕, 전쟁, 종교적 신념, 속임수, 그 밖에 수많은 요인들이 뒤섞여 있다.(P-37)




책은,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과 매개한다. 그 범위 또한 필요하다면 헬레니즘문명부터 현재의 문명까지 광범위하게 아우르며 세세하게 나누고 쪼개어 연결고리를 찾았다. 도시가 생기고 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 담긴 관계를 규정하고 구획하는 규범들을 통해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배경도 혁신을 위한 주춧돌이었다.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더 빨리 더 넓게 더 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구의 필요는 현실적 욕망이 기폭제가 되었음은 당연한 이치다.




이처럼 인간이 가진 단순하게만 보였던 생각의 우듬지가 공간, 시간의 물리적 거리를 단축시키고 때로는 확장하는 중요한 변수였다. 물론 인간을 유익하게만 하는 것으로 발명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우라늄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발견된 핵분열로부터 원자폭탄이 뒤따른 것도 인간의 탐욕과 야심이 주된 이유다. 어느 시점과 장소에서 어떤 의도로 생각의 설계도가 그려졌는지에 따라 인간의 행태를 뒤바꿀 무시무시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인과율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저자 제임스 버크는 다양한 시각으로 변화를 투시하였다. 필요나 불필요가 아닌 경계해야 할 진실은 다름 아닌 인간의 광기쯤이 아니겠는가.




반면 이 책 전반을 지배하는 무궁무진한 진화를 통한 사회과학을 둘러 싼 이야기의 실체는 흥미롭다. 항해술이 발달하고 종이를 사용하고 불을 대체하여 전기를 사용한 것은 신기원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항해로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선박조제, 놋쇠를 이용한 제철가공, 도제술 등 무한진화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양피지에 기록된 파피루스로 출발한 종이의 사용은 인간을 위대한 종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일대사건이었다. 이것은 신조차 시샘할 정도로 놀라운 역량을 보이는 변화의 촉발이자 시작이었다. 누군가가 남긴 생각이나 이론, 지식의 한 줄기가 후대로 이어지고 교육되고 발전된다는 것은 인류가 태동한 이후로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렇듯 이 책을 넘나드는 사건의 진실은 인간의 생각이 모티브다. 창의적인 생각 한 톨도 사소한 행위로부터 비롯되어 무수히 많은 잔가지를 낳아 현재에 이른 것이기에 우리가 눈여겨 볼 함의도 여기에 있겠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진귀한 과학이야기와 아울러 소박한 편견들에 대한 생각도 현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재료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이 책에 펼쳐진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발견적 탐색이 주는 열매의 진실에 조금 더 밀접하게 접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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