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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경제학 - 진화하는 경제의 흐름을 읽는 눈
마이클 셔머 지음, 박종성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성적이고 합리적 계산, 정확한 예측모델에 의한 최대의 효용성 산출은 경제학이 추구하는 목표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함수관계에 의해 일정한 형태와 패턴을 찾고 미래의 일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통 경제학의 구조와 얼개다. 이러한 틀에 의해 현실의 실물경제가 가동되고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이토록 중요한 경제의 지배적 위치는 현대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한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데 과연 전통 경제학이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들을 적확하게 잡아내고 분석할 능력이 있다고 보아야 할까? 이미 그 답은 시장으로부터 나왔다. 인간이 수렵채집사회에서 동력화된 산업혁명시대를 거쳐 현재의 정보통신사회로 이전하는 동안 겪은 시행착오를 보더라도 이제 기존의 이념과 잣대로 현재의 틀에 끼워 맞추기에는 버겁기 짝이 없다. 예컨대, 경제학의 이념을 추동하고 조종하는 구심점이 바로 인간이라는 데 있다.
행동경제학, 행태경제학, 심리경제학 등 다양한 형태로 분파된 새로운 개념의 경제학적 접근은 이 책에서 소개된 내용의 포커스와 일치한다. 인간이라는 더 자세히 말해 감정이라는 말랑하고 요상한 제3의 관점에 의해 경제학이 예측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저자 마이클 셔머가 통찰하는 이 책은 대단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시각적 공유의 장을 마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진화경제학의 학제적 연구는 이제 4반세기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주류 전통경제학이 바라보는 이론의 토대위에 새로운 요인을 찾고 첨가한 것이 바로 인간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태동한 학문이 바로 진화경제학이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고 먼 분야인 것은 사실이나 그 영향력과 현실경제를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수행력은 상당한 성과를 도출해 낸 것이 사실이다. 학제 간 접목에 의한 심리학, 사회생물학, 우생학으로부터의 접근이라는 요소도 그렇고 진화경제학을 주류적 가치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된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할만하다.
책은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의 행위가 이어지기 위해 인간이 어떻게 의식하고 어디서 제어와 통제를 하는지를 설명하고 사회 내에서 관계로부터 무엇을 이끌어 내는지를 상세하게 살폈다. 이러한 모든 중심에 진화라는 관점이 녹아있음은 물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밝혀진 바와 같이 영장류인 인류가 진화를 거듭한 과정에서 선택한 자연 진화론에 의해 감정 또한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진화의 위대함을 이루어 내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돌연변이로부터라는 발상처럼 인간의 감정 또한 이성적인 통제 속에 고스란히 흡수할 수는 없다.
인간은 비현실적이고 충동적이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감정의 유기체다. 인간이 얼마나 이성적이지 못한지는 수없이 많은 심리학의 연구와 결과에 의해 소개되었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도의 유명한 감옥역할실험인 <루시퍼 이펙트>의 충격적인 분석이나 최후통첩에 의한 분배의 원칙은 전통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상을 무차별적으로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의 불가해적인 요인에 의해 인간이 일정한 경향이나 패턴으로 움직이기 쉽다는 것에 착안하였으리라. 그 속에서 인간의 이중성에 의해 경도되는 감정의 유전자가 어떻게 기록되고 각인되었는지를 통렬하게 밝히고자 하였다.
사악함은 환경과 시스템,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다. -필립 짐바도-
인간의 감정이 모여 문화로까지 발전한다는 밈(Meme)이론의 주창자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결합된 유기체인 것은 사실이나 이것도 상대적이다. “내 등을 긁어주면 네 등도 긁어주겠다.”는 상호적 이타주의의 기저를 보더라도 인간은 환경과 시스템에 영향을 받는다. 전통경제학이 간과하고 지나쳐 버린 중요한 키워드도 여기에 숨어있다. 저자는 인간(감정), 환경, 시스템에 의해 경제가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찾아내고, 가공하고, 저장하고, 재사용하는지에 관한 효과적인 시스템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 진화라고 말하는 신경 경제학자 리드 몬태규의 주장처럼 인간을 추동하는 근원적 본성은 도덕적 목적에 있다. 도덕적 가치는 우리를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인간을 공리적으로 바꾸는 밑거름이 된다는 이야기다. 제러미 밴덤이 주장한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의 기본 가치도 바로 신뢰관계가 핵심이지 않았겠는가.
이렇듯 진화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선택과 결정을 환경의 척박함과 메커니즘의 견고함에서 찾는다. 계획경제와 사회주의경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자유주의도 적극적인 보호경제를 펼쳐야 한다는 신고전학파이자 온정주의자인 존 케인스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요소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글로벌경제는 이전의 사상으로 덮지 못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거대담론 또한 어느 학파의 사상적 우위나 지지를 하기 위한 부가적 접근은 아니다. 월스트리트를 푸른 암흑으로 몰고 간 금융공학자들이 저지른 신자유주의의 착오를 거듭하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감정의 유전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윤리라는 거름망을 통해 걸러내자는 의미겠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에 의한 사고관이다. 기존의 경제학의 이론을 재통합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를 추동하는 구심점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집결시킨다는 성과다. 자유의지를 근간으로 한 행복의 추구는 인간이 범접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다. 내재된 본성을 선한 행동으로 유도하고 갈등과 긴장을 해소 시켜 준다면 환경은 자생력을 갖추며 인간은 협업의 위대함을 유지, 진화시킨다는 사고다. 아울러 시스템을 행위를 받쳐 주는 지지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를 통한 국가의 최소 보호를 모토로 삼는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에 의해 보호되는 약자의 보호는 필요불가결한 사항이기에 끌어안는 것을 잊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진보적인 시각이나 보수적인 시각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진화경제학이 바라본 시각은 틀짜기가 아닌 인간의 마음을 보듬는 마음의 치유이기에 어느 이론보다 유용한 가치가 흘러 넘쳐난다.
시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에 서 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한지 선한지는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진화를 불러 모으는 과정에서 형성된 행복을 찾는 자유의지에서 비롯된다. 이성적으로 평범한 인간이 상황에 따라 악을 택하고 선을 택하는 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면 사회경제는 예측 가능한 범주로 바라 볼 수 있으리라.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지적 포만감을 차치하더라도 인식하고 소통하는 사회적 출구로서의 역할을 다 한다. 따라서 마음의 오류가 범하기 쉬운 착각과 인간의 마음에 구축된 닻 내림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면 협력과 번영이 제 발로 찾아드는 새로운 휴먼경제가 출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