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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삶은 보이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비롯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확실, 그것은 규명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경계는 비현상계의 미지의 존재로 각인된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닿은 적 없는 곳, 그곳은 존재에 대한 현상을 묻고 따질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상상한다. 시간 너머의 세계, 또 다른 차원의 세계에 대해서. 평행한 시공간의 틈 어디에서, 보이는 현상계와 흡사하게 닮은, 다차원의 세계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은 의외로 강고하다. 그곳을 연결해 줄 커넥터로 기능할 무엇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 인간의 마음 속 한 구석을 견고하게 채우고 있는 믿음인 "외계의 생명체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당위처럼 같은 맥락의 차원이다. 어쩌면 확증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 단단한 이유 또한 인간이 가진 의식 중 직관에서 동인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직관의 힘을 광대한 에너지라 믿는다. 직관은 때론 둥글둥글한 호기심으로 때론 예리하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문제를 푸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또한 직관에 대한 의식은 모든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의 원천이라고 본다. 직관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이 열리고 진실에 보다 밀접해진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세상을 직관이 만든 패러럴 월드의 구현이라 정의하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모든 의식의 흐름을 정제하고 통제하여 걸러 낸 정수가 바로 이 책에 담겼다 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창조해 낸 세상은 인간의 의식의 기저 어딘가에 가 닿아 상호작용하고 공감하게 하는 방편이 되는 재료가 되는 것을 보면 우연을 넘은 정확성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가 빚은 생각의 총체가 탄생하기까지는 다채로운 직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을 테고 행운의 바퀴처럼 우연성을 가장해서 나온 것은 결코 아닐 테다. 기실 하루키에 대한 직관이 빚은 영향력은 의식이 퇴적되고 쌓이고 다져진 조각들의 조합의 과정이다. 그 속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성을 드라마틱하게 구축한다.
실제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채로운 영향의 흔적을 책 전편에 흩뿌려 놓는다. 그것은 외따로이 혹은 뭉쳐져 가상된 세계를 교묘하게 위장하고 은폐하며 정교하게 짜인 세계를 창조하는 자양분이 된다. 따지고 보면 하루키는 대단한 관찰력과 창의력의 소유자라는 놀라움에 이른다. 전편을 장악하는 신포니에타의 협주곡을 위시하여 체호프, 프루스트의 편린들이 적절하게 배합되고 두개의 달과 공기번데기, 고양이마을, 리틀피플이 어우러져 혼합되는 변주를 매혹적이게 경청하게 된다. 여기에 하루키는 그의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체로 감정의 속도를 빠르게 변속하며 몰입의 속도를 높인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은 붙드는 순간 세계는 멈추고 그 속에 침투하는 몰입의 늪에 중독된다. 아울러 그는 방대한 분량의 서사 구조에서 오는 위압감을 경쾌한 흐름과 드라이브로 쾌속질주를 유도하는 힘은 가히 압권이다. 이러한 그의 문장력과 기교가 더해지고 합체되면 막강한 화력으로 엄청난 감정의 폭발력을 불러일으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통해 통찰하고 부여잡은 의식의 흐름과 세계에 대해 구현한다. 의식의 흐름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연결고리를 통해 설정인물들의 심리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통해 타자의 심리적 변화요소에 어떤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섬세한 필치로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심리의 이면에 숨은 감각의 고리를 정교한 메스로 해부하듯 드려다 보고 절개해 생생한 이미지를 숨 막힐 듯 잡아내는 것과 같다. 이처럼 하루키에게 시간을 설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며 설계된 세계가 구동하는 장면은 한편의 자연이 빚어낸 황홀한 완경을 감상하듯 바라보게 되는 영겁의 순간으로 상승하게 만든다. 이것은 대가의 혼이 담긴 필력의 완성이라 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1Q84의 세계는 카오스다. 질서를 무력화시키는 혼돈의 세상이다. 질서와 혼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아오마메가 고속도로출구를 통해 1Q84의 세계로 진입하였듯 질서는 정연하게 각자의 역할대로 움직이며 수평의 세계를 지향한다. 무방비 상태의 의표를 찌르는 일격, 카오스는 혼돈 속의 질서다. 덴고와 아오마메가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에서 직관에 이끌려 결합하게 되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결국 예정된 질서는 마방진의 수처럼 적확한 수치다. 이렇듯 균열한 틈바구니를 밀고 나오는 미세한 시간의 흐름은 하루키가 지향한 1Q84의 세상에서 재창조된다. 몽환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1Q84의 10월에서 12월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외침과도 같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제거하고 공기번데기를 통해 반대편 세상의 후카에리의 몸을 빌려 덴고의 아이를 품는 과정은 결합의 산물인 생명의 잉태와 또 다른 세상의 출현을 맺어주는 의미로 부각된다.
또한 하루키는 아오마메와 덴고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로 우시카와를 전면에 배치한다. 우시카와는 선구의 아웃사이더 해결사로 타락한 변호사이며 동물적인 감각과 기괴한 모습이 야누스의 형상처럼 대조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1Q84의 세상이 1Q85의 또 다른 통로가 열려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며 하루키의 다음 행보를 내비친다. 리틀피플이 날뛰고 경계가 허물어지며 또 다른 문이 열리는 혼돈의 과정을 하루키는 우시카와를 통해 암시하고 보여준다. 여기서 하루키는 대칭적 구조에 대한 강한 조화를 맞추며 이중적 나선구조를 이어주는 끈을 조화롭게 설정한다. 선구의 핵심일원인 포니테일과 스킨헤드, 타이거오일의 왼쪽과 오른쪽, 리틀피플과 빅브라더, 껍데기와 알맹이처럼 흑과 백의 부조화 속의 대칭구조를 통해 현상계와 비현상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정교함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하루키는 의식의 흐름을 지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1Q84의 세계에서 살아 숨 쉬게 하였다. 덴고의 아버지가 현상계의 껍데기를 벗어 나 NHK수금원으로 아오마메와 덴고, 우시카와를 차례로 방문하여 수금독촉을 하는 난해한 장면은 데자뷰에서 오는 기시감처럼 생경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아마도 하루키는 의식의 중추가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 어디에선가 재생되고 스며들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동시대를 사는 세상 저 편의 낯선 공간에 나와 같은 인간이 살아 움직인다는 상상, 섬뜩함이 몰고 오는 서늘한 상상이다. 풀리지 않는 미제와 같은 하루키가 던진 난제는 이야기가 계속 뻗어 나갈 것이라는 가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인지한다.
이렇듯 무라카미 하루키, 그에 대한 열광은 이제 전설이다. 세상을 온통 1Q84의 세계에 홀리게 만든 그의 이야기에 마비되었다. 플롯 곳곳에 깃든 완벽한 장치들을 통해 실제 두 개의 달이 뜨고 공기번데기가 생산되는 세상에 서 있는 착각이 든다. 그가 설정한 모든 장치들을 풀어 나열하면 일정한 알고리즘의 틀 속에 모이는 이유 또한 하루키의 아우라가 유발한 엄청난 에너지다. 아오마메의 푸름에서 이끼 긴 푸른 달이 연결되고 존재감을 상실한 달에서 덴고의 강인함을 유추케 하는 음양의 완벽한 대칭적 조화. 하루키의 이 소설은 완전한 세상의 경계에 머무는 불완전한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그 속에서 나는 구부러진 시간을 마주한다. 1Q84의 생소한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