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가깝다. 밀쳐 내기만 하던 온기가 이젠 정겹다. 몸이 가라앉아서일수도 있겠으나 가을 속 햇살은 까슬까슬한 맛이 난다. 하지만 치대고 부비다보면 금세 보들보들한 양모나 순면으로 짠 스웨터가 주는 밀도감과 촉감이 이내 차오른다. 몸이 으슬어슬할 때나 약간 피부의 숨결이 긴장을 머금을 때, 스웨터는 다정하게 부풀어 오른다. 나는 피부에 와 닿는 감촉, 질감을 사랑한다. 그것은 비단 스웨터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작위를 탈피한 자연적인 사물이나 대상에 관심이 크다.
온종일 도시의 역겨움에 들쑤시고 헝클어진 채 돌아 온 저녁 무렵, 에너지를 고갈시킨 마음을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욕조에 라벤다향이 풍부한 입욕제로 풀고 담궈 흘려 버린 후, 밟는 마루의 감촉을 또한 사랑한다. 발 끝으로 퍼지는 맨들맨들한 감각의 전률은 때론 살아있음에 대한 존재감마저 일깨운다. 또한 무료하게 나른함이 창 사이로 부유하듯 퍼지는 휴일 오후,건조한 공기의 접촉이 좋다.
사소한 감촉, 때론 어떤 쾌락보다 더 자극적이고 행복함에 들뜬다. 지금처럼 기가 흐트러진 상태에는 어김없이 피부로 전이되는 자극의 향연에 더 예민해진다. 가르릉거리는 고양이의 턱밑을 하릴없이 쓰다듬어 줄 때의 감각의 상호작용처럼 보다 긴밀하고 살갑게 바뀐다. 그래서 나는 잠시의 여운이나마 경계에서 퍼져 나가는 동심원을 향한 소멸의 애잔함을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 마음이 된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마음은 물 위를 걷는다. 잔잔하게 닦은 수면 위를 걷는 유쾌한 상상은 감각의 파라다이스로 이끈다. 그렇게 마음을 놓이고 나면 맑은 에너지가 솟아 나는 기분이 든다. 직감처럼 감각의 모든 말초신경을 정화하고 닦은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내게 사소한 감촉은 행복을 잇는 연결고리다. 스멀스멀 기어 오르는 불쾌한 감촉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유리막과 같다.
행복이 거창하다면 좋으련만 현재 나는 지금의 감촉으로부터의 행복이 좋다. 감촉은 사색을 낳고 자판을 톡톡 튀어 다니며 뻗어 나가는 생각의 우듬지를 거머쥐는 해갈의 기쁨 또한 상쾌하다. 이럴 때 쓰는 글은 대개 긍정적인 생각을 유추한다. 매개된 대상이 행복을 연결시키는 단초가 되었기에 인과율상 당연한지 모른다. 별 뜻 없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자 편린의 조각이지만 사소함은 위대함을 품는 모태가 된다.
청아한 가을 날, 무얼 먹을까 잠시 고민하고 재탕에 삼탕을 더 해 이미 진득해 진 식용유로 튀겨 낸 돈까스를 먹고 인위적 포만감을 느낀 후 살갗에 닿는 따사로운 햇살과 몸집을 불린 바람의 감촉에 나는 아득한 사색에 잠시 스며든다. 여유는 언제나 예정하고 오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나는 늘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맥없이 붙잡고 허탈해 하고 기진한다. 그래도 나는 사소함으로부터의 시간이 살갑다. 삶이 답답하고 무거울 때는 가볍게 붙든 사소함의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 더 말랑말랑해지고 경쾌하게 바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