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다. 나는 계절이 바뀌면 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어김없이 고뿔이 엄습한다. 추석 전 연휴부터 지금껏 폭풍처럼 바쁘게 몰아 치기도 하였거니와 달콤한 휴가 이후 적응이 더디 되었던 것이 컸던 모양이다. 게다가 회사 내 관련 자격증 취득시험이 함께 겹쳐 리뷰도 지지부진했고 포스팅도 겨우 얼핏설핏 게을렀다.
아마 지난 한 주가 하반기 들어서 가장 바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토요일 시험 준비를 위해 잠을 설치고 설상가상 옆지기의 고모님이 지병으로 인해 금요일 별세하셨고 아직 노총각으로 지내던 큰 처남이 이번 달 네째주에 결혼식이 있어 주말 또한 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기가 떨어지고 흐름이 악화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지 싶다.
그런데 우연한 이어짐인지는 몰라도 나는 감기를 큰 아이가 걸리면 꼭 따라 한다. 다른 식구들 모두 무탈하게 지내건만 나에게는 거르는 법이 없다. 큰 아이도 자주 아픈 편은 아니지만 아빠를 닮아 민감보이인 셈이다. 옆지기는 그게 너무 재밌기도 하고 우스웠던지 연신 입방아를 찧어 댄다. 저질체력이라나 뭐라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모든 것에 해당된다. 내가 큰 아이의 감기를 고스란히 물려 받고 며칠을 고생을 해도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나는 감기에 걸릴때마다 감(減)기(氣)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글자 그대로 하면 기가 모자라서 몸의 운행의 흐름이 흐트려져 생기는 일종의 몸살로 해석된다. 몸에 살을 맞는다는 순 우리말마따나 감기에 걸리면 온몸이 욱신 욱신거리고 뼈마디에 바람이 든 것처럼 쑤쎠대는 것이 딱 맞아 떨어지는 상태를 붙잡는다.
감기와 몸살의 음절에 새긴 뜻은 심오하다. 모든 글자가 그렇게 쓰이기로 하는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건만 떠올릴 때마다 새록새록하니 미쁘다는 사실이다. 생각을 조금 비틀어서 해 보면 오히려 단어가 가진 외투를 벗고 속내에 감춘 진기한 과거의 시간이 해맑게 열리니 말이다. 그 옛날 누군가에 의해 감기를 정의하고 몸이 이렇게 변했으니, 마치 살을 맞아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운 상태로 풀이하고 단어를 만들어 쓰기로 은연중에 합의한, 그 시간이 스르륵 열린다. 언젠가 유명한 한 역사학자가-누군지는 기억이 없다- 이르기를 지명에도 사연과 교감이 담겼다는 말처럼 말도 그리 생성되고 명을 이어 왔을테다.
나는 감기에 담긴 생각의 그릇을 투영하지만 실은 벗어나지는 못하는 우매함을 반복하는지 모른다. 감기의 예고에 늘 만용을 부리고 생활의 리듬을 소월히 하게 된 댓가다. 며칠 아프고 나면 절로 낫는 것이 감기라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감기로 인해 한 템포 쉬어가는 강제감압장치처럼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를 더욱 견고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속담 중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비 온 뒤 땅은 굳어지고 감기는 밥상머리 위에 내려앉는다는 말처럼 감기로 인해 운행의 호흡을 가다듬고 심신을 보존하라는 자연의 섭리의 속삭임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에게 이제 감기는 아들에게 기생하다 싱싱한 어린 것의 단맛을 모두 쏙 골라 먹은 비실비실한 감기바이러스에도 맥을 부리지 못하는 즈질체력이라는 멀쓱함이다. 오늘도 필시 집에 돌아가 골골할 나를 옆지기는 모처럼 만난 안주거리 삼아 씹어 댈 게 뻔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옆지기의 행동이 얄미워서 그런 건 아니다. 단지 나의 즈질체력이 한심해서 그런 것이니....자업자득이다...
p.s) 과연 몸짱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잘 아는 분, 미리 감사의 말씀과 아낌없는 조언 부탁한다. 내게 조언해 주는 분은 아마 엄청 잘 생기고 이쁜 사람이 틀림없을 테다. 거기다 성격까지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