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 '체호프 희곡선'(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저/박현섭 역)의 '갈매기'로부터


Old Elm, 1979 - Sergey Ryabchenko - WikiArt.org






니나 이건 무슨 나무죠?

트레플레프 느릅나무.

니나 왜 저렇게 시커멓지?

트레플레프 벌써 저녁이니까, 사물들이 전부 검게 보이는 거예요. 일찍 가지 말아요, 제발 부탁이에요.

니나 안 돼요.

트레플레프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갈까요, 니나? 밤새도록 댁의 정원에 서서 당신 창문을 바라보겠어요. - 1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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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서울, 1964년 겨울 [─一九六四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8722&cid=40942&categoryId=33385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오. 아직까진……."

그가 말했다.

"김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예."

라고 나는 대답했다.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안에 잡아본 것이 있으세요?"

"가만 계셔 보세요."

그는 안경 속에서 나를 멀거니 바라보며 잠시 동안 표정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없어요. 나도 파리밖에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오."

나는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안 형은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한 얘기는 정말이었습니다."

"난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서울, 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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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로부터 입수된 Geetanjali Lachke님의 이미지 


사혜련의 설부 https://www.etoday.co.kr/news/view/1440667


그런 낮의 풍경이 스며들다 밤이 되면 기오성과 나는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제법 큰 물푸레나무 머릿장이 있고, 이 집안 누군가가 쓴 사혜련의 「설부雪賦」 족자가 걸려 있는 그곳이 우리의 간격이었다. -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지금 나는 일상에서나 글에서나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고, 심지어 그것은 내게 있었던 어떤 일이나, 감정을 떠올릴 때에도 그렇다. 그것을 내가 아니라 ‘우리의‘라고 고쳐부를 때야 비로소 피어오르는 당신들에 관한 무수한 기억들.

그렇게 내 것만이 아니라고 할 때야 손에 닿던 ‘진실‘이라는 흔한 말. 이 소설은 그런 내 부족함을 통과해 완성되었다. 집을 찾을 수 없어 우는 마음을 떠올렸던 과거의 장면들은 그렇게 내가 눈을 다 감고 나서야 소설에 알맞은 자리로 안착했다. - 작가노트 | 나 좋은 사람 아닌데요 (김금희)

낮시간 노동의 공간인 "사랑채"와 밤시간의 휴식과 내면적 성찰의 공간인 "안채"의 대립적 공간 구조도 주목할 만하지만 같은 "안채"에서 "생활"하는 두 젊은이의 내면에 자신도 모르게 일어날 수 있는 친화력을 제어하는 동시에 그만큼 더 촉발 자극할 수 있는 "간격"으로 기능하며 가로놓인 "대청마루"에 고풍스러운 "물푸레나무 머릿장"을 배치하고 "이 집안 누군가가 쓴 사혜련의 「설부雪賦」 족자"를 걸어놓은 발생학적 인테리어 설계는 특히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 리뷰 | 사랑의 발생학(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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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수록작 '실버들 천만사'는 권여선식 모녀 이야기(창작과 비평 2020년 여름호 발표). 아래 옮긴 글은 2020 김승옥 문학상 작품집이 출처.


Mother and Daughter - Theodule Ribot - WikiArt.org



아마 예전의 나라면 이런 식으로 밋밋하게 흘러가는 소설을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꼬아야 하는데, 감추고, 에두르고, 덧칠해야 하는데, 하면서 꼬고 감추고 에두르고 덧칠해서 내놓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흘러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민틋하면 민틋할수록 나는 어떤 불쾌의 선이 끊임없이 자극되는 것을 느꼈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신경의 소소한 폭발들을 경험했다. 이 소설은 그 기록이다.

이상하지만 이번 한 번은 이렇게 하겠다.

또 이럴지 몰라도, 이번 한 번은 이렇게.

나도 한 번은 이렇게 무엇을 덜 하는 힘겨움을, 그 자체로 드러내고 싶었나보다. 작가노트조차 이렇게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한 번에 쓰게 될 줄 몰랐다. - 작가노트 | 이번 한 번 (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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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4-05-2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타자를 상정한 애씀에서 놓여나고 싶은 어떤 궁극의 해방에
자신을 한동안 방기해 두려는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서곡 2024-05-29 21:54   좋아요 0 | URL
권여선 작가, 지금껏 많이 썼고 다양한 돌파구를 시도해봄직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여성작가로서 모녀서사를 쓴다는 일은 꽤 의미심장하니까요...
 


전도연 배우 주연의 연극 '벚꽃동산' 공연이 6월에 있다.


WOMAN SHOOTING CHERRY BLOSSOMS, 2019 - Yinka Shonibare - WikiArt.org


Cherry blossoms, 1953 - Pyotr Konchalovsky - WikiArt.org



「벚나무 동산」에서는 마치 그동안 체호프의 다른 희곡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하고 있는 듯하다. 가령, 라네프스카야 부인과 트로피모프의 관계는 「갈매기」의 여배우 아르카디나와 그녀의 아들 트레플레프를 닮지 않았는가? 「바냐 삼촌」의 노처녀 소냐와 「세 자매」의 올가는 「벚나무 동산」에서 바랴의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네프스카야의 한심한 오빠 가예프는 앞서의 작품들에서 좋았던 옛 시절을 되뇌며 빈둥거렸던 모든 러시아 귀족들의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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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5-28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곡은 꼭 오디오북으로 들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훨씬 재밌거든요. 소설은 종이책이 더 좋습니다. 오디오북은 밑줄을 칠 수 없거든요. 제 오디오북에 체홉의 작품이 많아요. 요즘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을 듣고 있는데 굉장합니다. ˝제가 죽었다고요?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요?˝ 그러자 스크린을 켜서 수술 장면을 보여 줍니다. 이러저러해서 수술 받다가 죽었다, 라고 설명해요. 그러니까 사후 세계에 가 있는 거죠. 가짜 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실제 있는 일 같아요. 무엇을 더 보여 줄지 기대됩니다. 종이책을 살까 하고 고민 중입니다.ㅋㅋ^^

서곡 2024-05-28 11:40   좋아요 1 | URL
네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읽는 오디오북 말고 여러 사람이 역할을 나누어 읽는 오디오북도 있더라고요 희곡을 그렇게 읽으면 듣는 연극이 되겠네요 저도 종종 오디오북을 듣습니다 더 다양한 오디오북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