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직은, 여름과 봄 사이. 곧 더 더워지리라. 작년 6월 3일의 포스트로부터.


장미가 빨리 시드는 것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를 보았네,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처럼 붉게 피어 있었네.
그때 지나가며 전율을 느끼며 말했네.
생의 한가운데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임을.-헵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최정원이 읽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파리의 오렐리아 100인의 배우, 세계 문학을 읽다 95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유효숙 옮김, 최정원 낭독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낭독자 최정원 배우의 사진이 잘못 실려 있다. (피씨에서는 보이고 모바일로는 사진이 안 보임.) 동명이인. 담당자께서 보시게 되면 수정을 요청드립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4-06-03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정원‘을 클릭해보니 이 책의 낭독자인 뮤지컬 배우 최정원 항목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동명이인과 통합되어 있는 것 같다.
 


'뒤라스의 글쓰기'(알랭 비르콩들레 지음 / 이은숙 옮김)로부터


뒤라스의 묘 (몽파르나스 묘지) By Spreevogel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https://blog.naver.com/minumworld/222500306087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 편집자 후기인데 이 글에 뒤라스 묘소 방문기가 들어 있다.


Plaque Marguerite Duras, 5 rue Saint-Benoît, Paris 6e By Celette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뒤라스의 배우자였던 로베르 앙텔므가 쓴 책이 우리 나라에 '인류'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었다(현재 절판).





1972년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껏해야 오후 4시였다. 날씨는 잔뜩 찌푸렸었다. 생브누아* 거리에 있는 뒤라스의 서재는 회색빛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 생브누아 거리 5번지에 뒤라스의 집이 있다. 뒤라스는 이 집에서 학업, 결혼, 집필, 레지스탕스 운동 등 많은 것을 겪었다. 특히 이 집은 독일 다하우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남편을 헌신적인 간호로 살려낸 장소다. 뒤라스는 이 시기의 체험을 일기 형식의 『고통』(1985)에서 비장한 문체로 그려낸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다. 그 후 갑자기 모든 것이 내게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지성에 눈을 떴다." 이때부터 뒤라스는 결코 아우슈비츠를 잊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남편인 로베르 앙텔므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고독에 마주 서서 "그녀는 쓴다". 마치 오렐리아 슈타이너처럼 "그녀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녀라는 이 "화석" 같은 존재에게는 오직 그것만이 남아 있다. 방랑자의 유일한 짐처럼 그녀에게는 깨지지 않는 그녀의 가족, 아우슈비츠, 그 시대의 모든 절망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을 1997년 프랑스에서 막 돌아온 선배가 건네준 귀국 선물로 받았다(그 선배는 지금 그 사실을 기억조차 못 한다). 이 책의 첫 문단을 읽는 순간 푹 빠져들었다. 마치 저자가 뒤라스를 만나면서 뒤라스라는 작품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틈틈이 번역하던 중 저자에게 뒤라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다며 편지를 썼다. 마침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 연구 지원을 받은 터라 바로 파리로 떠났다. 저자는 당시 파리가톨릭대학ICP에서 뒤라스의 ‘『고통』에 나타난 시적 앙가주망’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뒤라스의 자전적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고통』의 앙가주망 문학의 특성을 계속 연구하려던 참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또 저자의 소개로 만난 낭시대학의 도미니크 드네스 교수는 뒤라스와 함께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미테랑 대통령과의 친분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뒤라스는 미테랑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옷차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녀 주변에는 늘 젊은 군단들이 따라다녔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 옮긴이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달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나의 인생'을 완독했다. 오래 전부터 관심 있었던 책이다. 토마스 만, 브레히트, 카네티 등 독일어권 작가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는데 뭐니뭐니 해도 이 사람의 인생여정 자체가 대단하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소개한 이자크 디네센(카렌 블릭센)의 글이 떠오른다.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참을 수 있다." (제5장 행위) 그리고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제2차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축소하려고 시도하는 어떤 독일인들의 존재와 행동이 끔찍하다. 




그의 또 다른 책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도 재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 봄 박완서의 단편 '창밖은 봄'을 읽어야겠다고 계획했었는데 5월이 다 가도록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래도 어떻게 기억이 나 찾아 읽었다. '엄마의 말뚝' 수록작. 다가올 겨울에 읽어도 좋았을 듯하다.


Girl Seated on a Pier - Philip Wilson Steer - WikiArt.org


'박완서의 말'에 나오기를 고 피천득 작가가 박완서 작가의 글이 좋다며 이 소설 '창밖은 봄' 여주인공 길례를 언급한다.

요컨대 그들은 서로 깊이 좋아하고 있었고, 좋아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약점으로 상대방을 욕 주거나 폐 끼치게 할 수 없다는 순정에 철저했다.

상대방의 약점으로 자기의 약점을 비기게 할 수 있을 만큼만 약았더라도 그들의 결합은 훨씬 수월했을 것을.

그러나 그런 어리석은 순정 때문에 누가 보아도 만만하고 구질구질한 그들이었지만, 저희들끼리의 눈엔 서로 상대가 귀한 보석처럼 소중하고 빛나 보였던 것이다.

바람이 났으면 국으로 바람난 행세를 할 것이지, 같잖은 것 같으니라구, 같잖은 것 같으니라고…….

자고 깨면 춥고, 자고 깨면 여전히 춥건만 설마 내일은 풀리겠지, 설마 겨울 다음엔 봄 안 올까, 하는 끈질긴 낙천성만이 그들의 것이었다.

밖에선 여전히 혹한이 계속됐다. 천심도 삼한사온이란 자비로운 질서를 망각하고 한 달이 넘게 영하 15도의 강추위를 고집하고 있었다. 거지 빨래한다고 예로부터 일컬어지는 눈 오는 날조차 없었다.

강추위는 한 달을 넘고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신문의 만화란에선 삼한사온을, 석 달 춥고 넉 달 따뜻하기로 새롭게 풀이했다. 이런 방정맞은 말장난은 뜨뜻한 구들목에서 자고 난 사람들이나 읽고 좋아할 것이지 신문을 보지 않는 정 씨나 길례하곤 상관 없는 일이었다.

신문에는 또 시내 곳곳에서 수도관이 동파되어 물난리를 겪고 있단 보도와 함께 수도국에선 쇄도하는 고장 신고의 반의 반도 나와봐 주지 못할 뿐더러, 기껏 나와봤댔자, 한다는 소리가 봄을 기다리는 하느님 같은 소리가 고작이라는 비꼬는 기사도 났다.

추위가 석 달째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겨울 다음엔 봄이라는 걸 믿으려 들지 않았다.

수도관은 사방에서 매일매일 얼어 터지고, 수도국만이 봄에의 믿음으로 겨우겨우 그 체면을 유지하려 들었다. - 창밖은 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