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planders in snowstorm, 1905 - John Bauer - WikiArt.org


Laplandian castle, 1918 - Nicholas Roerich - WikiArt.org


Spitsbergen (2005년 1월 2일 촬영) By Stian Danenbarger - CC BY 2.0






라플란드는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곳이야. 얼마나 아름다운 땅인지! 눈에 덮인 드넓고 눈부신 벌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지. 눈의 여왕은 그곳에 여름 별장을 두고 머물러. 하지만 여왕의 성은 그보다 더 북쪽, 북극에 가까운 스피츠베르겐이란 이름의 섬에 있어. - 눈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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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딩 라틴아메리카 - 20개의 코드' 중 'Part 2. 라틴아메리카 깊게 읽기'로부터 옮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Loren Biser님의 이미지


'디코딩 라틴아메리카'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을 썼고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을 엮은 임(림)수진 박사는 현재 멕시코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cf. '커피밭 사람들'(2011)의 후속작 '커피밭 사람들, 그 후 20년 - 커피의 쓴맛이 시작되는 곳의 삶에 대하여'가 작년 가을 출간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커피 생산은 분명 오랜 시간 부의 상징이었다. 해당 국가들의 근대사 면면에 커피가 있어 가능했던 부의 흔적들이 오늘날에도 역력하다. 국운의 성쇠가 커피 가격에 의해 좌우된다 할 만큼 커피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도 높았다. 물론 오늘날에도 커피는 세계 도처에서 엄청난 부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부가 만들어지는 곳이 생산현장이 아닌 소비 현장이라는 점이 과거 19세기 라틴아메리카가 향유했던 ‘커피의 세기’와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Code 13. 커피라는 작물이 미친 영향-커피와 커피밭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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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 저널리스트가 쓴 '맛의 천재'가 아래 글의 출처.


Kapuziner (베를린) Von Alex1011 - Eigenes Werk, CC BY-SA 3.0


파라과이의 카푸친 수사들 By Hnoaldocap - 자작, CC BY-SA 4.0


cf. 카푸친작은형제회 https://capuchin.kr/kr/?page_id=28


'맛의 천재' 저자는 베네치아 태생으로서 '책공장 베네치아'란 책도 썼다.






빈의 카푸치네르는 에스프레소 기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음료다. 커피에 약간의 생크림을 얹어 마시며, 따라서 먼저 발명된 것은 카푸치네르일 가능성이 높다.

카푸치노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편이다. 고동색 커피와 흰색 생크림은 다름 아닌 카푸치니 수도회 수도사들이 입는 튜닉과 흰색 허리끈을 연상시킨다.

이 수도회의 이름이 아마 처음엔 생크림이 들어가는 오스트리아의 카푸치네르를 가리키다가, 이어서 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우유 거품이 들어가는 이탈리아식 카푸치노도 가리키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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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제2장 '커피 왕국, 브라질'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1888년 브라질에서 노예 제도를 폐지한 '황금법' By Senado Imperial - Arquivo Nacional






해외 이주민 시스템이 노예제보다 더 값싼 비용의 커피 생산 제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자, 브라질의 커피 농장주들은 노예제 폐지에 발 벗고 나섰다. 어느덧 동 페드루 2세가 노인이 되어 브라질을 떠난 때였다. 마침내 1888년 5월 13일, 페드루 2세의 딸, 섭정 공주 이자베우Isabel가 ‘황금법Golden Law’에 서명하면서 남아 있던 1백만 명의 노예 가운데 4분의 3이 해방되었다. 1년 후, 농장주들은 공화국을 지지하며 페드루의 축출에 일조했는데, 이렇게 수립된 공화국은 수년에 걸쳐 상파울루와 그 인근 지역인 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의 커피 농장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북서쪽에 있는 주 - 브라질 커피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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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의 포스트로부터 옮긴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라질의 독립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34078&cid=40942&categoryId=33489 1822년에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브라질은 1889년에 공화정으로 이행한다.

Trees Laden with Parasites and Epiphytes in a Brazilian Garden, 1873 - Marianne North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 노바에스 [Guiomar Novaës] (인명사전, 2002. 1. 10., 인명사전편찬위원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8831&cid=43671&categoryId=43671 브라질 여성 피아니스트.



브라질의 독립을 원하는 주된 세력이 군주제를 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첫째, 당시 왕권은 거의 모든 국민들에게 최상의 정부형태로 간주되고 있었다. 둘째, 질서의 유지가 관건이었는데 이미 공화정으로 독립한 스페인령 아메리카 국가들은 엄청난 무질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셋째, 정치 지도자와 군부 지도자들 간의 대립관계로 브라질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는 군주제가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다, 넷째, 대토지 소유자들은 군주제 하에서만이 그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제2장 브라질의 정치적 독립 (II. 브라질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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