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쓴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중 마지막 장인 9장 '내 영혼에 드리운 그윽한 그림자들'의 마지막 글 '나를 기다리는 두 여인'으로부터 옮긴다.

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남쪽전경 (촬영년도 2015년) By 문화재청, KOGL Type 1 * 한승원 작가는 장흥에서 태어났고 현재 살고 있다.
cf. 한승원의 '목선'은 1968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서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에 선정되었다.



아내는 십 남매 가운데 둘째아들인 나에게 시집와서 맏며느리 노릇을 했다. 큰 시동생들 둘에게는 논 사주고, 장가보내고, 살림 밑천 대주고, 동서가 입덧하면 입원시키고, 아기 낳으면 받아주고, 지하방에 끌어들여 돌보고, 어린 시동생 셋을 자기 자식인 양 키우고 가르치고 시집 장가보냈다. 지하방에 사는 시동생의 아들 넷이 뛰고 악쓰고 싸우고 울어대면 달래고, 동화책 읽어주고, 한글 가르치고, 받아쓰기 훈련을 시켜주었다. 내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형편이 좀 풀렸을 때, 셋방살이하는 시숙님과 막내 시누이의 집을 사주자는 말에 선선히 동의를 했다.
아버지의 시간은 지금 시속 팔십 킬로미터로 달려가고 있어요, 하던 소설가인 딸의 말을 떠올린다. 내 속에 물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단히 울고 싶어진다. 철없는 나의 몸은 봄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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