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assowary Colorizations - Ernest Hemingway with Soviet and German intellectuals Ilya Ehrenburg and Gustav Regler, possibly working on the propaganda film The Spanish Earth, Spain, 1937.



헤밍웨이의 스페인 https://v.daum.net/v/20080215172408017





우리가 싸워서 얻고자 했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난 당신을 사랑해. 자유와 숭고함과, 모든 인간이 가진 일하고 배곯지 않을 권리만큼이나 당신을 사랑해. 우리가 지켰던 마드리드를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하고, 죽은 내 전우들을 사랑하듯이 당신을 사랑해. 아, 많은 전우들이 죽어 갔지. 너무나 많이. 너무나. 얼마나 많은지 당신은 모를 거야. 하지만 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해.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사랑해. 난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야. 지금 말하고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해. - 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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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부터 옮긴다. 마드리드로 돌아가면 다시 책 속에 파묻혀 지내고 싶다는 말이 맘 아프다. "운동"이란 스페인 내전 당시 반파시스트 운동을 뜻한다.

사진: UnsplashJuan Gomez


아래 옮긴 글에 나온 공원이다. [레티로 공원 Retiro Park , Parque del Retiro 마드리드 시민들의 휴식처]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39500424

사진: UnsplashJuan Gomez






거기엔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나무가 다 있는데, 나무마다 원산지와 이름을 알리는 표지판이 달려 있지.

그 나무들은 말이야, 박물관에 있는 것들하고는 달라. 자연 속에서 자라고 있는 거지. 공원 안에는 산처럼 생긴 곳도 있는데 정글을 방불케 할 정도야. 그 아래 길가에는 책 시장이 있는데 수백 개나 되는 조그만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서 헌책을 팔고 있어. 운동이 시작되고 난 다음부터는 폭격당한 집이나 파시스트들의 집에서 훔쳐 낸 책까지 보태져서 책이 아주 많아졌지. 운동 전에 그곳에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 종일 책 속에 파묻혀 지낸 적이 있었어. 이제라도 마드리드에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책 속에 파묻혀 있고 싶어. - 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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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로부터 옮긴다.

스페인 내전 당시 폭격 중인 마드리드 1937


에스파냐 내전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65800104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본 특파원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거리를 조금 걸어 내려가면 보이는 가정집에 포탄이 한 발 떨어졌다. 길가에서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민병대원이 아이를 안아 달랜다. 이쪽 거리에서 죽은 사람은 없다. 급히 뛰던 사람들이 속도를 늦추고 긴장한 듯 헛웃음을 짓는다. 포탄 소리에 놀라 뛰지 않았던 사람들은 짐짓 우월한 태도로 그들을 쳐다본다. 이곳이 여러분이 말로만 듣던 마드리드다. - 마드리드, 전쟁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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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제3권 근현대 철학' 중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의 '2.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편이 아래 글의 출처로서 "이러한 태도"란  "과학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An Astrologer - Luca Giordano - WikiArt.org


점성술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0900a





이러한 태도의 결핍으로 이탈리아인은 미미한 수준에서만 미신에서 해방되어, 특히 점성술이 발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들은 대부분 중세 철학자들의 권위를 여전히 흠모하면서 교회의 권위를 고대인의 권위로 대체했을 따름이다. 물론 이것은 해방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였다. 고대인은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개인의 판단은 어떤 고대인을 따를지 결정하라고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15세기의 이탈리아인 가운데, 어떤 권위도 교회의 가르침이나 고대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견해를 감히 피력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2.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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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에서 가지 잡고 만세하는 흰옷 입은 왼편 여성이 한 손을 대고 검은옷을 입은 여성보다 젊어 보인다. '내 손 안의 미술관, 에드바르 뭉크'(김정일)의 설명에 따르면 뭉크가 어릴 때 별세한 어머니와 누나라고 한다. 여전히 가족이란 나무를 떠나지 않고 곁에 붙어있는 광경인가. 뭉클하고 오싹하다.

Two Women under the Tree in the Garden (1919) By Edvard Munch https://useum.org/artwork/Two-Women-under-the-Tree-in-the-Garden-Edvard-Munch-1919



[예술은 언어화 될 수 없는 심리적 갈등과 억압된 트라우마와 같은 ‘알지만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열어 접근할 수 있게 한다. Freud는 예술이 지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의사소통에 두었는데 의사소통이란 예술가가 자신의 심리 내부에 자리한 환상을 표현함으로써, 감상자들의 무의식을 건드려 상호주관적인 연결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출처: 애착외상의 관점에서 본 뭉크(Munch) 작품의 이해와 심리적 치유(2022), 김이준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3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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