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로베르트 발저) 수록작 '헬블링 이야기'로부터 옮긴다.

사진: UnsplashNadiia Ganzhyi


오디오북이 있다.






겨울에 그녀는 내게 말한다. "봄이 돼서 함께 공원 오솔길을 산책하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리고 봄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랑 있으면 지루해." 그녀는 결혼해서 대도시에서 살고 싶어 한다. 아직도 삶에서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극장과 가면무도회, 예쁜 옷, 와인, 웃음과 여흥, 즐겁고 활기찬 사람들, 그녀는 그런 것들을 사랑하고 그런 것들을 동경한다. 나도 동경하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얻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마도 다음 겨울에는 일자리를 잃을 것 같아!" 그러자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왜?" 하고 물었다. 그녀에게 무슨 대답을 해줬어야 하나? 나는 그녀에게 내 성격적 특징에 관해서조차 한 번에 다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녀는 나를 경멸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내가 어느 정도는 능력 있는 남자라고 믿고 있다. 좀 이상하고 좀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갖고 있는 남자라고 말이다.

만약 그런 그녀에게 "네가 착각하는 거야. 내 자리는 불안하게 흔들려"라고 한다면 그녀가 나와의 관계에서 품었던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릴 것이며, 따라서 더는 내 주변에 머물고 싶어 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는 그냥 내버려둔다. 나는 어떤 일이 썰매처럼 미끄러지게 하는 데는 선수다. - 헬블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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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00820&cid=41978&categoryId=41982


'러셀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를 다시 펼친다. 오늘은 3월3일, 3월 하고도 사흘째 되는 날이다.

1829 etching by G.W. Appleton (위키미디어커먼즈)






벤담의 이상은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자유가 아니라 안전이었다. "전쟁과 폭풍은 충분히 관찰하고 해석해야 하지만, 평화와 고요함을 견디기는 훨씬 수월하다."

벤담이 점차 급진주의로 기운 원천은 두 가지다. 하나는 쾌락과 고통의 계산에서 연역적으로 추론되는 평등의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그가 이해한 이성의 중재에 맡기려는 불굴의 결심이다. 평등을 찬미하는 벤담은 일찍이 재산을 자손에게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유언의 자유에 따른 재산 분할에 반대했다. 나중에 군주제와 세습귀족정치에 반대하고, 여성의 투표권까지 인정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이성적 근거가 없다면 믿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신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 종교 자체를 거부했다. 또 유서 깊은 역사적 기원을 가진 법의 부조리한 조항과 변칙 조항을 찾아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무엇이든 전통에 따른다는 근거로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영국이 미국에서 영토를 확장하든 다른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든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 식민지 건설을 바보짓으로 여겼다.

벤담의 체계에는 명백한 결함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언제나 제각기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면, 입법자가 모든 인간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벤담은 본능적 자비심(자신의 심리 이론으로 인해 이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때문에 이 문제를 드러내지 못했다.

벤담은 적절한 감시와 결합한 민주정치를 통해, 입법자들이 일반 대중에게 유용한 사익만 증진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민주 제도의 운영과 효력을 판단할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벤담의 낙관론을 못 본 척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착각에서 벗어난 우리 시대에서 보면 다소 소박해 보인다. - 26. 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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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보다 먼저 봄을 맞는 설강화 https://v.daum.net/v/20260222192108945


'산책자'(로베르트 발저)를 계속 읽는다. 어제부터 3월이다. 기다리면 따뜻해지겠지.

사진: UnsplashRoman Datsiuk


'눈풀꽃'은 '설강화'의 딴 이름이다.






설강화여, 너희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아직도 겨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봄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당돌하고 쾌활한 새로움을 품고 있다. 그들은 추위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곧 따스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눈(雪)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초록과 파릇하게 돋는 새싹을 말한다. 그들은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그들은 말한다. 아직도 그늘과 높은 산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지만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눈이 녹고 있다고. 황량함이 다 지나가려면 한참 더 남았다. 사월은 아직 너무 멀다. 그러나 소망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따스한 온기가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 것이다. - 설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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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사적인 미술관'(김내리)은 일년열두달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2월의 마지막 글이 출처로서 '매화초옥도'가 제재이다. 

매화초옥도, 전기, 조선 19세기 중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네이버 지식백과] 매화초옥도 - 은둔처사의 상징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국립중앙박물관, 박해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2001&cid=58840&categoryId=58851





봄이 소리 없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제 마음속에서도 꽃망울이 톡톡 터지는 듯합니다.

눈발이 날리기 직전의 어둑어둑한 하늘과 소복이 눈 쌓인 산, 무거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매화꽃은 팝콘처럼 피었습니다. 한적한 산중 초가집 안에서 문을 활짝 열고 피리를 불고 있는 선비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리 위를 걷고 있는 친구는 은은한 피리 소리에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친구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주황색 옷으로 표현했나 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초가지붕도 엷은 주홍입니다.

눈이 곧 내릴 것 같은 고즈넉한 밤, 저도 이 그림 안으로 들어갑니다.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친구를 찾아갑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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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사적인 미술관'(김내리)의 2월 편으로부터 옮긴다. 이 달 2월도 끝나간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알렉산드르 푸시킨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시시킨의 고독한 나무는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푸시킨의 시처럼 삶이 나를 속여도 묵묵히 고난과 역경을 참고 견디는 모습 같습니다. 나무에 쌓인 눈이 너무 무거워 곧 나무가 쓰러질 것 같지만, 무겁게 쌓인 눈은 언젠가 반드시 녹고야 말 것입니다.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는 시 구절에 희망을 가지고 고독한 나무처럼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견뎌봅니다. 쌓인 눈이 모두 녹아내릴 때까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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