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카사노바 호텔'(정혜용 역)에 실린 사회학자 부르디외를 추모하는 글 '슬픔'을 읽었다.
부르디외 묘소(2006) By 01.camille
피에르 부르디외 별세(2002) https://v.daum.net/v/20020125124055743?f=o
70년대에 『상속자』 『재생산』, 그뒤에 『구별짓기』를 읽는다는 건,—늘 그렇지만—격렬한 존재론적 충격을 느끼는 일이었다. 지금 의도적으로 존재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신의 출신이 조금이라도 피지배 계층과 관련있는 경우, 부르디외의 철저한 분석에 대한 지적 동의에 덧붙여 체험된 자명성을, 이를테면 경험이 보장하는 이론의 진실성을 느끼게 된다.
십오 년 전, 부르디외를 처음 읽었을 때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처음 읽었을 때, 두 저서가 미친 효력을 비교해봤었다. 이쪽에서는 여성의 조건에 대한 각성이라면, 저쪽에서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결정적이며 돌발적인 각성.
나아가 부르디외의 글들은 내가 글쓰기를 시도할 때, 무엇보다도 그가 명명한 대로 사회적으로 억압된 것을 지속적으로 말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격려였다. -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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