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의 '내가 읽은 박완서'에, 박경리 타계 즈음 박경리와 박완서의 문학을 '토지'와 '오래된 농담'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능소화를 매개로 비교한 글이 있는데 신문칼럼이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291995.html [박경리와 박완서의 ‘닮은 문학’ 김윤식의 문학산책/2008-06-06]

능소화 By Dalgial - 자작, CC BY-SA 3.0


김윤식 교수는 '박경리와 토지'란 책도 썼다.


능소화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1XXXXX00007 (박상진)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빈소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작가 박완서씨가 "항상 손이 따뜻하고 부드러우신 (……) 큰형님이자 어머니이고 선배였던 분"(한겨레, 2008. 5. 6)이라 했다는 보도를 보았소.

능소화. 글자 그대로 하늘을 능가하는 꽃. 온통 붉은색의 이 넝쿨식물이야말로 최참판댁의 상징 그것이었던 것. 이 숨막히는 능소화의 화려함과 천박함이 바로 최참판댁의 운명의 색깔이었던 것. 이 사실을 서울 한복판 중산층의 수준에서 정확히 복창한 것이 바로 장례위원장 박완서씨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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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가 회상하는 박경리의 모습을 '박완서 - 문학의 뿌리를 말하다'로부터 옮긴다. 박완서는 박경리 타계 시 장례위원장을 지냈다.


생애 마지막 집에..박경리 뮤지엄 https://v.daum.net/v/20211026193057962







박경리 선생님은 폐암이란 진단을 받고 참 단시일 내에 돌아가셨지요. 폐암으로 진단받은 것을 우린 따님을 통해 금세 알았지만 외부에 알려지는 걸 극구 말리셨다고 해서, 뵈러 가서도 문병 온 것처럼 하지 않고 그냥 놀러온 것처럼 했는데, 그냥 담배를 피우시더라고요. 담배 좀 끊으시라고 그랬는데도 더 유유히. 폐암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전에 가 뵙던 거보다 더 자주 가 뵈었어요. 자주 뵐 때도 여전히 피우시고 그래서, 참, 저렇게 끊지 않고 그냥 있는 것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청중 웃음) 또 어디 가서 잡수는 것도 똑같이 잡숫고. 또 그걸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뇌졸중이 와서 입원하시고 즉시 정신을 잃고.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로 그분의 사는 방법뿐 아니라 죽음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남이 흉내 못 낼 대범함, 대단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때 임종도 지켰어요. 그러면서 속으로 기도했어요, 나도 이렇게 죽게 해달라고. (웃음) 그냥 평소의 살던 생활 태도를 조금도 안 바꾸고 입원했을 때는 벌써 정신을 잃으셔서 몰랐었지, 그러니 고통도 안 받고 그냥 돌아가신 거예요. 저게 무슨 복인가, 그 복을 나눠달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사는 게 가장 옳은가, 이건 뭐 그분이 항상 개탄하시던 게, 항상 농업처럼 우리에게 이자를 많이 붙여서 돌려주는 건 없다고 하셨어요. 무역이고 뭐고 다 소용없다고. 그런 것이 저도 많이 입력이 되어서 그런지 모든 번영, 특히 요즘의 급속한 번영을 볼 적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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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나 비치 Pixabay로부터 입수된 bianca-stock-photos님의 이미지 입니다. 게시일: 2020년 4월 24일 


[네이버 지식백과] 라구나 비치 [Laguna Beach]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59018&cid=40942&categoryId=34126


박완서 단편집 '그리움을 위하여'와 '친절한 복희씨'에 실린 '후남아, 밥먹어라'로부터 옮긴다. 후남은 미국으로 이민간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을 떠난 여성이다. 라구나 비치에서의 부분은 후남의 남편이 화자이고, 언니와 통화하는 부분은 후남이 화자이다. 





식당을 쉬는 날 아내를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라구나 비치로 피크닉을 간 적이 있다. 이민 초기 이 큰 나라에서 툭하면 왜 그렇게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던지, 가슴이 옥죄어 미칠 것 같을 때 그 바닷가에 가면 속에 맺혔던 게 탁 터지면서 갈매기처럼 미소하고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곤 했다. 그는 아내에게도 그 아름다운 비치가 위안이 되길 바랐다. 어머머, 지구가 정말로 둥그네. 그게 아내의 첫 탄성이었다. 뭘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건지 처음에 그는 아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가 수평선을 가리켰다. 섬도, 곶도, 시야를 방해하는 아무것도 없이 열린 수평선은 아닌 게 아니라 완만한 호로 보였다.

"가끔 네 생각은 나시나봐. 우리 딸막내 어디 가서 밥이나 안 굶나, 하시면서 먼 산을 바라보신단다." "딸막내가 뭐야?" "네가 딸로는 막내 아니냐?"

딸막내,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막내딸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진작 좀 그렇게 불러주지. 원망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격정이 복받쳐 더는 통화를 잇지 못했다. - 후남아, 밥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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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밀란 쿤데라의 작품목록을 살펴보다가,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오마주 또는 변주한 쿤데라의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에 호기심이 생겨 미리보기로 앞을 조금 읽어보니 원래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백치'를 각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쿤데라가 쓴 이 희곡의 체코어 제목은 'Jakub a jeho pan'으로, 제이쿱 - 프랑스어권의 자크는 성서의 야고보 - 야곱이다.






['야곱과 그의 주인' 은 쿤데라가 러시아 탱크가 쿤데라의 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를 점령한 프라하 봄 사건 당시에 쓴 작품이다. 


쿤데라의 희곡에서는 화자의 목소리가 치명적으로 결여됨으로써 현재의 행위를 단조롭게 하며 뒷면 무대에서 더 큰 깊이를 가져오고 과거의 사건에 대한 덧없음을 일깨운다. 인간 정신의 중요성과 경험을 개념화하는 능력을 극화하면서 쿤데라는 이런 방법을 구조주의로부터 빌려왔다. 그는 이 구조주의야말로 근대문화 그리고 베케트와 디드로의 가장 위대한 충동의 하나라고 한다.


베케트의 세계처럼 이 희곡에서 쿤데라 주인공들의 정신은 희극적이고 활기찰지라도 별로 할 일이 없다. 쿤데라는 이 세계를 인간의 안락을 위한 가능성도 없고 생기도 없는 불빛으로 묘사한다. 그는 이러한 테마에 늘 사로잡혀 있다.] 출처: 김규진, 밀란 쿤데라의 문학과 체코문학의 국제성- 희곡 '야곱과 그의 주인'을 중심으로(200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072303 이 논문은 단행본 '한 권으로 읽는 밀란 쿤데라'에 실려 있다.





러시아의 무거운 비합리성이 내 나라를 짓눌렀을 때 나는 서양 근대의 정신을 강하게 들이마시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정신은 지성과 유머의 향연인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 아닌 다른 어디에도 그만큼 진하게 농축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 변주 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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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주요 내용이 나옵니다. 


[셉티머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전쟁으로 인한 광기도 아니고, 어떤 비평가들이 말하듯 더블로서 클라리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서발턴들의 주체를 상실하게 하고 폐제시키는 지배계층의 인식론적 폭력 때문이다. 셉티머스의 폐제는 그가 작품에서 퇴장하는 자살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잣대에 광인으로 분류된 그를 세상에서 격리하려는 지배계층의 압력에 밀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출처: 최상이, 서발턴 개념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다시 읽기(201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70587


1916년(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우리가 막 나오려고 하는데 전화가 오지 않습니까. 아주 불쌍한 사건이에요. 청년이 하나(주인이 지금 댈러웨이 씨에게 하는 얘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살했답니다. 군대에 갔다 왔다던데요."

(오늘 아침에도 느낀 일이지만) 공포, 압도해오는 무력감이라는 것이 있어. 부모는 우리 손에 생명이라는 것을 쥐어주지. 끝까지 살고 이것을 들고 조용히 걸어가라고. 그러나 깊은 마음속에는 이것을 다할 수 없는 무서운 공포가 숨어 있는 거야. 요즘도 리처드가 곁에서 《타임스》지를 읽고 있는 동안 새처럼 겁이 나 몸을 움츠렸다가도, 나는 차차 생기를 돌려서 끝없는 기쁨의 불꽃을 일으키려고 나뭇가지를 여기저기서 모아다가 맞비비곤 해. 그러지 않으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느껴져. 나는 이 공포를 면할 수가 있지만 그 청년은 자살을 해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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