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매혹적인 걷기의 말들'(원제 The Joy of Walking)의 '1장 걷기는 마음이 시키는 일'에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이 쓴 글이 실려 있다. (버지니아 스티븐은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여 성이 울프로 바뀐다.)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등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레슬리 스티븐은 등산가로도 유명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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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중인 레너드와 줄리아, 버지니아의 부모. 사진을 찍은 바네사는 버지니아의 언니로서 결혼 후 바네사 벨이 된다. Julia and Leslie Stephen reading, Virginia in background, in the library at Talland House By Vanessa Bell - Smith College Libraries
[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레슬리 스티븐(1832~1904) |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610190029651761
'마운틴 오디세이'(심산) '02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산에 올라야 한다 - 레슬리 스티븐(1832~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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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잘 보낸’ 순간을 떠올려보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중요하게 기억돼 있곤 한다.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머릿속 앨범을 열어보니 예전에 걸었던 경험들이 가장 뚜렷하게 떠오른다.
뭐라고 끄적대며 힘들게 책을 써내던 기억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도 없고 어떤 경험이었는지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즐거웠던 산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부수적으로 글을 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산책 덕분에 고생을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결국 이리저리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얻은 부산물이다. 나의 하루하루는 타고난 경건함으로(아니, 타고난 경건함만으로) 얽혀 있기보다 걷기에 대한 열망으로 얽혀 있다. (중략) 걷기에 대한 기억은 특정 시공간대와 연관해 장소 및 시간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무의식적으로 달력 모양으로 떠오르면서 연관된 다른 기억들도 줄줄이 떠오르게 된다. 돌이켜보면, 일련의 모습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걷기 속에 담겨 있는 나의 ‘지상 순례(earthly pilgrimage)’의 매 단계를 보여준다. 각각의 모습은 한때 익숙했던 장소를 떠오르게 하고 장소와 연관된 생각들은 다시금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사람들은 기계적 교육을 받고 움직이는 자동인형으로 크는 것이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그런 투박한 방식을 따라 자신을 돌아보는 개별적 존재로 점차 성장하게 된다.
이런 신비의 세계로 처음 진입한 그날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배낭을 메고 하이델베르크에서 오덴발트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 나는 도보 여행에서 만끽할 수 있는 혼자 떨어져 있다는 상쾌한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기차 시간표나 거추장스러운 장비 등에서 해방된 채, 발에 의지해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생각이 이끄는 대로 샛길로 빠지기도 하면서, 하룻밤 묵는 숙소마다 마주친 이런저런 독특하고 다양한 삶에 빠져들었다. - 레슬리 스티븐 <걷기 예찬>
아주 열성적인 등산가였던 그는 세계 최초의 산악회인 알파인 클럽의 회장직을 몇 년 동안 맡기도 했다. 걷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기 실린 <걷기 예찬>(1898)에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걷기가 몸과 마음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며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걷기의 경험 하나하나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장을 구분 짓는 일종의 지표 역할을 해준다고 말했다. 이 지표를 통해 특정 시간 특수한 장소에서 걷기를 행한 사람의 정서적·지적 상태를 담아낸다는 것인데, 이는 걷기의 기억이 인생이라는 긴 여행, 즉 "지상 순례"에서 군데군데 쉬었다 가는 정거장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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