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지식 -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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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책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열면 안되는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 출입을 금하는 팻말이 세워진 잔디밭에 발을 들이밀어보고 싶은 마음, 읽어서도 소장해도 안되는 책을 구하고 싶은 마음, 미성년이기 때문에 금지된 것들을 일탈해보고 싶은 마음. 다산북스의 신간 '금지된 지식'은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지식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해야만 했던 십여년의 세월을 보내오면서 강요된 적은 있어도 금지된 적은 없던 것이 지식인데 무슨 까닭으로 금지된 것일까 궁금해진다. 사회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안내를 따라 '금지된 지식'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적 지식이 별로 없는 탓에 초반 성에 대한 원죄와 함께 성서의 내용이 나오는 부분은 유명한 아담과 이브의 등장으로도 낯설었다. 종교가 문화 지식 역사의 모든 분야에 뿌리깊게 내려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 바탕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부분이었다. 읽으면서 여성에 대한 2등 계급(36) 취급이 교리가 다른 동양권에서도 비슷하게 이루어져 왔음이 의식되어 그 지점이 궁금해졌다. 금지된 지식을 다루는 이 책이 처음에는 다소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3장 비밀을 다루는 법(113)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재미를 더해갔다. 말 그대로 비밀리에 가려지고 숨겨진 지식과 정보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비밀정보기관들과 그 역사(128)'에서 비밀 정보를 캐내는 스파이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해서 재미있었다.


 책의 매력은 4장으로 들어서면 더욱 커지는데, 과학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 상황에 윤리와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부작용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물리학자들과 죄(166)'의 등장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생활의 영역으로 끌어들여놓은 핵조차도 제대로 책임지고 관리할 수 없다. 이어지는 5장의 내용이 다루고 있는 생명과학, 유전공학의 내용 역시 금기된 지식이 어떤 것들인지 직시하게 한다. 더불어 인터넷과 개인, 국가 그리고 정보의 보호에 대해 다룬 7장의 내용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어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전체적인 내용이 좀 무겁고 깊게 느껴지겠지만 중간중간 숨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부분들이 있다. 각 장에는 짧게 덧붙여진 '토막 이야기'라는 단락이 있는데 사실 서프라이즈 급의 깨알 상식 코너처럼 느껴지는 이 구성에서 가장 높은 만족도를 얻었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흥미롭고 또 너무 깊지 않은 내용들이 소개된다. 거기에 이어지는 특이한 결론들도 독특한 마무리가 되어준다.  


 처음의 느낌보다 읽을수록 완급조절을 잘 한 책이라 생각되는 책이다. 지식, 배움에 대한 욕구 또 그것을 전파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는 대단하다. 우리는 흔히 자신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실제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들을 전달하는데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뭔가를 배우는 것을 어려워하고 지루해한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새로운 정보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알고보면 쓸모없고 신기한 잡학'들이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처럼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를 갈구하고 또 습득한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든 퍼뜨리려 한다. 그러니 이 '금지된 지식'에 대해서도 분명 관심이 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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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단호한 행복 -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간결한 철학 연습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방진이 옮김 / 다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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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둘리기 쉬운 사람을 위한 생존 철학'이라니. 솔직히 2장의 첫 내용부터 이를 마음으로부터 섬기고 행할 수 있는 자는 곧 부처이니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철학이 이성과 금욕을 중시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단계가 높았다. 요즘 서점을 장악한 말랑한 책들의 위로 속에서 한껏 보살핌 받은 탓일까 모든 일은 네 마음에 달려있다는 단호한 어조에 부담과 반발심이 울컥 일어났다. 사람답게 욕망하고 소비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지, 수행자의 삶을 살겠다는게 아니라구요! 어디를 향해있는지 알 수 없는 화를 삭히며 책을 덮어두고는 쿨타임을 가졌다. 왜 화가 나지? 솔직히 틀린 말은 없었는데 왜 전부 반박하고 싶지? 아니라고 하고싶지만 그 안에 내가 휘둘리던 것들이 있었다. 사는게 다 이렇지 하고 포장해서 넘기고 싶었는데 굳이 그 포장을 들춰내려고 하니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을 좀 내려놓고 읽기로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반성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집착을 조금 내려놓아야지 생각도 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자기 자신과 주변의 관계 같은 것을 곱씹다보면 우울이 오기 쉽다고 했다. " 욕구와 관심의 방향을 돌리면 행복과 평안을 얻을 수 있(54) "다는 말을 앞에 두고 내 앞에 놓았던 욕구와 관심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해보았다. 그중 가장 나를 괴롭히던 것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로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노력이나 강요도 소용없으며, 무엇보다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잘못이나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왜 내 뜻대로 안되지하고 욕심부리는 것, 그때 내가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하고 후회하는 것에서만 벗어나도 정신건강에 한결 도움이 되겠다. 물론 실천이 어렵겠지만.

 

 " 우주는 우리의 편도, 적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주는 그저 무심한 채로 흘러갑니다.(78) " 처음에는 책에서 자꾸 '우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언제는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빼앗긴 돈도, 잃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우주의 연결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과관계(106) "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야 우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온 세상이지만 우주야말로 한없이 광활한 공간 안에 작고 창백한 푸른점,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아닌가. 읽다보니 우주라는 말의 쓰임이 운명이나 팔자라는 말에 더 가깝다고 생각됐다. 요즘 불교 경전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그런지 읽을수록 불교 교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느껴졌다.

 

 " 우리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중략... 사람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55) " 끝까지 이 부분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간관계의 거리가, 그리고 유한함이 정말 어렵고 힘들다. 특히 이 주제는 반복해서 나오는데, 컵이 언젠가는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언젠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95)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오래 입어 낡아버린 아끼던 옷도 버리려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하물며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이라니. 이를 " 우주에게서 빌린 사람이었고 우주가 다시 데리고 간 것(69)" 으로 여기기는 어렵다. 앞으로 더 마음을 비우고 성숙해지면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른 내용들보다는 조금 가볍지만 그래도 유용한 조언을 하나 소개한다. "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처신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남들을 의식하기보다 혼자 조용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중략... 결심했나요?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려고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140) " SNS 줄이라는 말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 같다. 요즘은 방금 먹은 저녁밥이 뭐였는지도 실시간으로 수시로 공유하고 알리는 사회고, 자기 표현이 미덕인 세상이라 교육받고 자랐지만 과잉된 전시에 피로를 느끼고 오히려 삶의 중심을 잃게 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알리지 않고 행동하라,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따라 살라는 조언은 언제 강조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철학 이론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은 가볍게 훑어 읽었고 2부, 3부 특히 2부의 내용을 여러번 읽었다. 읽어 넘기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끝까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근간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해가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딱딱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비움과 채움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자신에게 너그러운 치유계 에세이들을 읽었다면, 가끔 이런 단호함으로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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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22-03-12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렇게 긴글을 그리고 이렇게 남들이 보는 곳에 적으신 걸 보면 남의 시선을 신경쓰시는 분 같네요.

오라오라 2022-03-12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오면 봄이 오고 꽃이 피면 꽃이 집니다. 그런 자연의 순리가 글에서 말씀하신 부분인 거 같네요. 불교에선 제행무상, 공즉시색이라고 합니다. 받아들이기 쉽건 어렵건 이건 세상의 순리라 어쩔 수 없는 부분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벚꽃이 예쁜거겠죠.
 
도둑맞은 감정들 - 무엇이 우리를 감정의 희생자로 만드는가 자기탐구 인문학 4
조우관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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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맞은 감정'이라니 알쏭달쏭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이 감정이 사실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까? 감정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혹은 반사적으로 표현되는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누가 돌을 던져도, 노를 저어와도 평온한 호수같은 마음을 이루기 위해 화분을 들여 식물도 길러보려고 하는 참에 나는 궁금해졌다. 아무 상황에서나 솔직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 성숙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억눌린 '감정의 희생'이었던걸까. 도둑맞은 줄도 몰랐던 내 감정이 혹시 나몰래 쓰리(...)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뭐야, 돌려줘요 내 감정...

 

 처음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분위기에 대해 꼬집는 글인가 싶었는데, 웃는 얼굴(19)에 대한 내용을 보면 웃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계발서들에서는 일부러라도 웃는 얼굴을 하면 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것이라 조언하는 것을 종종 봐왔는데 이 책은 자꾸 웃다가는 우스운 사람이 되니 가짜 웃음을 짓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동안 내가 써왔던 사회적 가면을 생각해본다. 웃는 가면을 썼을 때 분명 상대방이 무례하게 행동했던 적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보다 더 위압적이거나 무례한 가면을 쓴 사람에게 자신의 가면을 바꿔쓰지만 굳이 내가 그런 사람을 피하기 위해 무례한 가면을 쓰고다니고 싶진 않다. 대부분의 경우 웃는 가면은 다른 가면을 썼을 때에 비해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더불어 상대방도 웃는 가면을 썼다면 더욱더. 진짜 웃고 싶을 때만 웃고 가짜 웃음을 짓지 말라는 말은 너무 삭막하다. 마치 좋은 아침일때만 '좋은 아침이에요'하고 인사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웃음에는 인색해지지 말자. 웃는 것도 연습이고 습관이고 전염이다. 웃음이 강요된 사회라고 하지만 그나마도 한국사람들 기본 표정은 꽤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 불편하거나 심각한 일을 얼버무리려는 상황 등을 빼고는 웃자. 진짜 웃고싶을때만 웃으면 인생 생각보다 웃을 일 없다.

 

 " 누군가는 매일 긍정 확언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100번씩 노트에 적으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우주가 내 성공에 무슨 관심이 있어 주문과도 같은 혼잣말을 들어준단 말인가. 이는 긍정이 아니라 자기 환상이며 맹신에 불과하다.(45) "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책의 내용에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고 위 문장에 무릎을 탁 치고 바로 옮겨 적어놔야지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하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연금술사'였나 싶은데 불평꾼은 이 말이 항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바라는 게 있으면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 노력을 해야지 100번씩 노트에 적는 것은 노트도 펜도 시간도 아까운 일 같다. 한동안 이런 류의 말과 책이 유행할때 예쁜 글귀로 전해지거나, 좋아요 누르고 소원 적는 행동이 잘 공감되지 않았다. 우주가 나한테 관심 있었음 벌써 나는 출생부터 남달랐겠지.

 

 표지에서 강조한 부정적 감정의 표출에 대한 내용이 2장에서 등장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린시절부터 싫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학습된 탓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인가.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각자 다르겠지만 스스로 평하기로는 거절 잘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 떠올려보면 왜 거절했던 기억만 나는걸까. 대부분의 상황은 부탁없이 눈치껏 호응했던 것 같고, 직접적인 부탁이 들어오는 일은 거절할 공산이 크니까 부탁하기 때문에 거절로 이어지는 일들이 많았던 것 아닐까. 내 생각에 초등학교 때 지우개 잘 빌려줬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의 것들은 왜 거절부터 했던 것 같지. 문득 나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내가 그리는 이미지의 나와 실제 나는 정말 다를까.

 

 어쨌든 집에서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사회에서 거절을 표할 수 있겠는가,하는 물음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가정에서 학습된 것들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이를 두고 만물 가정설처럼 말하기에는 조금 뭔가 아쉽다. 벌써 유치원, 초등학교만 다녀도 가정과 분리된 사회적 자아를 가지게 되는데다가, 부모님이 '싫어요'라고 못하게 했다는 것치고는 다들 그렇게까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자라온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보다 더 본능적이고 계산적인 뭔가가 거절 못하는 사람의 내면에 있을 것이다. 비록 '모두가 노라고 할 때 혼자 예스라고 말하는' 태도를 오직 음식 메뉴 정할때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지만, 암튼 그렇다.   

 

 읽다보니 책이 여러모로 흥미로웠는데 얼마 전 한참 인기있었던 '자존감'에 대한 내용도 새로웠다. 자존감은 이미 어린시절에 그것도 미취학정도 무렵에 이미 형성되니 그 이후의 노력들은 딱히 효과가 없다는 내용이다. 자존감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자존심은 부정적인 느낌으로 여겨지고 진짜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고 그걸 길러야 된다는 요지의 글을 많이 봤는데, 이미 그 글을 읽고 있을 때는 늦어버린 것이라니. 자존감을 기르기 위해 사소한 충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 자존감 부작용 사례들이 그래서 그랬던 거였나 짐작된다. 오히려 자존감은 됐으니 자존심을 챙기라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두개나 챙기기 복잡했는데 잘됐다.

 

 또 하나는 용서에 대한 내용. 용서라는 말이 나오면 '밀양'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 영화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진정한 용서가 존재할까. 남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내 마음안에는 없을 것 같다. 사소한 일들은 뭐 크게 문제 삼을 것도 없지만 용서가 어려울만한 큰 문제라면 겉으로는 용서한 척해도 진짜로 용서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용서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게 피해자가 선량한 피해자의 위치에 있으려면 싫어도 용서를 해야 한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구조이기도 하다. 가해자가 사과를 하는데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피해자가 그 힘을 쥐고 흔드는 갑이 되어버리니 더이상 선량한 피해자로 봐주지 않는 것이다. 피해자의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가해자가 내민 사과에 용서를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책에서는 " 용서의 범주에 '처벌받지 않음'이 포함되지 않음(104) "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법에서는 왜 합의를 통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리 많을까.

 

 " 뇌신경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뇌 구조가 '승자의 뇌'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고생을 이미 지나온 사람은 지금 고생을 겪고 있는 사람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고생 끝에는 어떤 낙이 있을까. 본인은 이루어낸 것을 아직도 겪고 있는 이를 보며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 그들의 낙이라면 그들이 진정 아픈 만큼 성숙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낙'이란 애초에 남들을 짓밟는 승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었을까?(60) "

 

 이 부분을 보며 정치인들의 타락을 떠올렸는데, 엘리트 길을 걸어온 판사들의 피해자 공감 능력 결여를 떠올려보면 고생을 지나왔건 지나오지 않았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결여되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생기는 것 같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자신의 신념을 불태웠던 사람들이 나이먹고 뱃지달고 동일인인가 싶을만큼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추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근원적인 괴로움에 빠지지 말고 뇌구조가 변했다고 생각하면 좀 나으려나 싶다. 성공했으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겸손하도록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자연히 고생을 겪고 있는 과정에 속하기 때문에 뇌구조가 아직 멀쩡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유재석같은 사람을 보면 호감을 가지는가보다.

 

 의외로 3장에 들어서서 사랑, 질투, 상처, 외로움 같은 부분들은 평이했다. 주제가 주제니만큼 기대하며 읽었는데 뭔가 꽂히는 부분이 없이 넘어갔다. 수치심과 관련된 부분은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상처가 아직 극복되지 않은 듯하다. 다만 감정에 있어서 가장 많이 공감하고 있는 것은  " 과도하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화를 냈다면, 나의 초감정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임을, 내 역사의 한 부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음을.(163) " 이 내용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싶어질때 종종 생각하는 내용이다. 내 안에서 내가 원치않는, 싫어하는, 부정하고 싶은 나의 조각을 타인에게서 볼 때 타인을 비난하고 싶어진다는 것. 비슷한 내용인 것 같아 옮겨적어봤다.

 

 4장에서 감정흡혈귀라는 말이 나오는데, 흡혈귀라고 하니 어쩐지 매력적이다. 실제로도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기 위해 영화 속 흡혈귀처럼 '적극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기도(232)'한다는데, 그럼 더 좋아보이는게 아닌가. 내 감정을 제물삼아 접근하는 적극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대라니 책에서 감정 조종자, 감정 포식자같은 표현도 나오던데 이런 표현이 더 괜찮아보인다. 감정 좀비는 좀 이상하고 흡혈귀는 매력적이야. 아마 요즘에는 비슷한 말로 가스라이팅한다고 하기도 하려나. 의존과 연결되어 있는 내용이고 요즘 빈번히 보게 되는 가정, 연인 사이 또는 위계관계에서의 문제라 관심있게 읽었다. 내가 감히 누군가의 감정을 조종해본적은 없지만, 나는 혹시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았던 적이 있던가 한번쯤은 생각해보았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감정에 눈치를 보게 되는 적은 있지만 이를 두고 그들을 감정 조종자라고 하기엔 조금 껄끄럽다.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심각한 정도의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자신의 감정에 대해 둔감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읽을 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감정일기를 써보는 건 어떠려나 싶어졌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뒷표지 날개를 보고 알았는데, 이 책이 가나 출판사에서 자기탐구 인문학 시리즈로 나온 네번째 책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어서 그 전에 나왔던 책들도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기억에 남는 부분들도 많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이어지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하루 정도는 책을 붙잡고 자신과 자신의 감정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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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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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한두권 접하면서 조금씩 신뢰가 쌓이고 있다. 늘 꼽는 장점으로는 읽기 편하다는 것. 이전에 읽었던 시리즈들보다 공리주의를 읽는 것이 조금은 더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묘하게 읽기 좋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을 실생활에서 쓸 때는 다수결로 뭔가를 정할 때 밖에 없었다. 예를들면 점심 메뉴나 모임 날짜 정하는 사소하지만 이상하게 열올리게 되는 문제들. 개인의 만족과 모임 전체의 행복을 연결짓는다는 점은 비슷한데 이 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가는 의문이다. 이런 이유로, 공리주의가 무엇이냐 하면 입이 턱 막히길래 한번 읽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염려보다 책이 얇아서 다행이었다.

 

 " 반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그가 찾고 있는 행복은,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꼴로 보아, 절대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없고 불완전한 행복이 되고 말 거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그는 그 불완전함이 참을 만한 것이라면 그것을 참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재능의 사람은 그런 불완전함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해서 욕망에 충실한 저급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저급한 사람은 그런 불완전함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의식하는 데서 나오는 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약 그 바보 혹은 돼지가 이런 주장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면, 그들이 문제를 자기들의 입장이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반면 비교의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은 문제의 양쪽을 본다.(27) "

 

 인간의 쾌락과 행복 기여도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책에서는 그런 경계를 파하기 위한 반박이 이어진다. 돼지와 바보, 인간과 소크라테스로 이분화 된다면 소수의 인간과 소크라테스가 다수의 돼지와 바보들을 이끄는 모양새가 아닐까.* 이런 구조에서 공리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사상일까 의문스러웠다. 실제로 '인간'이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는 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기준으로 지금껏 거쳐온 지구의 모습을 보면 반드시 '지성인이 그가 보기에 낮은 등급의 존재로 추락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26)'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때 생각했던 파레토 법칙과 비슷한 우려가 5장의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113)'의 내용에 나온다. 실제적으로 우리 생활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금문제같은 예를 들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읽으면서 가장 기대됐던 부분은 3장의 '도덕적 의무감은 선천적인 것인가?(66)'의 내용이었다. 도덕적 의무감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으로 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초등학교 토론 시간에도 주제로 나올만큼 익숙하고 의견이 많이 나뉘는 주제라 여기서는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었다. 책에서는 후천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이라고 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고, 공리주의는 동일한 효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놓았다.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주제도 공리주의 도덕을 위한 하나의 길로 묶여있는 점이 아쉬웠다.

 

 분량은 짧아도 내용이 만만하지는 않았는데 작품해설이 아주 재밌었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하듯이 구성되어 있고 이 상황극을 통해 독자가 품었을만한 생각과 질문을 대변해주면서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준다. 공리주의가 행복과 쾌락을 말하는만큼 그 안의 선과 도덕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돈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과연 돈이 '질'로 구분되는 행복에 속해 있을 수 있을까, 이미 기준을 상회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했다. 얕게 일독해서 생각을 다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공리주의에 대해서 기본을 잡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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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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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혔다. 문장이 어떠냐에 따라서 더 어렵게도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이정도의 흐름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번역을 잘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유토피아' 말고도 '공리주의' 도 읽을 예정이라 12월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공리주의'도 이렇게만 읽힌다면 괜찮을 것 같다. 유토피아라고 하면 이제는 아마 디스토피아가 더 인기있겠지만, 우리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세상을 뜻하는 말이면서 '어디에도 없는 나라(248)'를 의미하기도 한다. 500년 전에 제시된 이상국가의 틀을 지금 읽으면 어떨까 유토피아는 아직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품고 읽었다.

 

 " 이 나라는 이러한 해롭기 짝이 없는 폐단들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시골의 농장과 마을을 파괴한 자들에게는 그곳을 재건하게 하거나, 그렇게 재건하려는 자들에게 넘기라고 국가가 명령해야 합니다. 부자들이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다 사들인 후에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규제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 수를 줄여야 합니다. 농업을 재건하고 모직업을 회복시켜 정직하게 돈을 버는 직종으로 육성하여, 일이 없어 노는 많은 사람이 그런 일에 종사하게 해야 합니다.(49) "

 

 이 문장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다른 결일수도 있으나 얼마 전 제주도를 갈 일이 있어 숙소를 알아보는데 가장 먼저 많이 노출되는 신화월드가 중국자본 소유라는 것을 알고 피해갔었다. 제주도 땅의 상당 부분을 중국인이 사간 것이나, 부동산 규제 속에서 중국자본의 부동산 매입이 제약없이 이루어진 내국인 역차별 상황 같은 것을 보면 시장의 독점이자 농장과 마을의 파괴나 다름 없다. 외국 자본의 과점에 대해서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같은 경우 요즘 무엇보다 독과점과 난개발을 경계해야 하는 분야여서 특히 예민하게 봤었다.

 

 " 반면에 유토피아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집은 이미 국가가 철저한 계획 아래 지어 공급했기 때문에, 새 부지에 새 집을 짓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119) "

 

 아무래도 관심사가 집중되어 있는 부분의 글이 눈에 띄는 법이다. 요즘 주식도 그렇고 부동산 이슈가 워낙 들끓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해도 솔직히 초탈할 수는 없어서 종종 찾아보고는 하는데, 유토피아식 거주법을 보면서 감탄했다. 세상에 이렇기만 하다면야 이렇게 안팍으로 시끄러울 일이 없을텐데.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면서 결국은 돈을 좇는 일이 천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피할 도리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씁쓸했다.  

 

 " 유토피아에는 극소수의 법만 존재합니다. ...중략... 그들은 너무 많아서 다 읽을 수도 없고 그 뜻이 모호해서 이해할 수도 없는 법을 제정해서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일반 사람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렵고 모호한 법들이 산더미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법을 제정해 공표하는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행할 의무들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복잡한 해석을 거쳐야만 알 수 있는 법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 법을 지키는 사람도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법이 좀 더 단순하고 알기 쉽다면 모든 사람이 법을 알고 지킵니다.(176) "

 

 또 하나 불평등한 삶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 법과 관련된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이 법이란 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결과값이 나오기 때문에, 또 그동안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 문제들을 두고 개인적으로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주의깊게 읽은 부분이다. 법이 오히려 사각지대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토피아에서는 법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들로 관점을 달리해 보고 있었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볼수도 있는 문제구나 싶은 부분이었다.

 

 오래걸릴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한 호흡으로 쭉 읽어나갈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찾았다. 용어 정리나 토머스 모어에 대한 설명 등 추가적인 도움말들이 있다는 점도 좋았다. 이런 구성이라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유토피아의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을 옮겨서 끝 마무리를 대신한다.

 

 " 그럼에도 유토피아 공화국에서 시행되는 것 중에서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바람이 하나의 희망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다.(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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