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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마지막 공부 - 운명을 넘어선다는 것
김승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주역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허무맹랑한 것, 불확실한 것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려고 한다. 그 이유가 너무 좌우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격이 그런 것인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뭉뚱그려 '점'이라 할만한 것을 본 일은 한손에 꼽는다. 그런 말들은 대부분 지나고보면 아니면 말고 싶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졌을만한 보편을 슬며시 찔러넣는 말 같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작년이었나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다는 말을 꺼낸 일은 마음에 크게 남았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만큼 동양철학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였다. 주역에 대한 책을 평소라면 관심갖지 않았겠지만, 나도 한 번 알아보고 싶어져서 읽어보았다. 아무래도 본 취향과는 거리감있는 주제였기 때문에 64괘의 개념을 한번 읽고 정리하기란 어려웠다.
전통적인 개념, 어찌되었든 보편의 이해가 깔려있는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처음 괘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부터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음과 양을 설명하면서 '가정은 아버지로 시작하고, 연애는 남자의 구애로부터 시작하는 것(17)'이란 말이 한번, '여자의 수동적인 태도는 여기서 나오는 것(19)'이란 말이 또 한번 눈을 멈추게 한다. 사람의 마음이 아닌 '여자의 마음(25)'으로 집어 말하는 부분처럼 사사로운 말꼬리에 전부 발을 걸 생각은 없지만 굳이 이런 표현을? 싶은 부분이기는 했다. 철학과 통계로서의 주역에 접근해본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무사히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염려도 됐다.
주역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문왕의 이야기, 복희씨와 여와 전설 등의 이야기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애초에 흙방울로 사람을 만들 일이었으면 잡기같은 것은 안해도 됐을텐데 싶기도 하고. 주역의 대단함과 공자의 위대함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내용을 읽고있다 보면 긴가민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혈액형, 12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별자리,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MBTI 같은 것들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물이 64괘 안에 담길 수 있다고? 우주 문명의 개입이 있었다고? 이런 내용들은 주역을 앞세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1장은 새로움과 혼란을 안겨주었다.
이후로 이어지는 64괘에 대한 설명은 하나하나 새로웠다. '육효를 뽑다(김동리/화랑의 후예)'는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다만 우직하게 풀이만 담겨 있는 책이다보니 전혀 모르는 부분에 대한 해석을 읽다보면 이런거구나 싶다가도, 이게 다 뭘까 싶어졌다. 이 책의 선후가 애매했는데, 아무래도 주역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 읽으면 더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의미파악부터 시작하기에 좋은 책인가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풀이를 반복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좀 난감했기 때문에 뭘 좀 아는 사람이 읽는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