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감정들 - 무엇이 우리를 감정의 희생자로 만드는가 자기탐구 인문학 4
조우관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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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맞은 감정'이라니 알쏭달쏭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이 감정이 사실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까? 감정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혹은 반사적으로 표현되는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누가 돌을 던져도, 노를 저어와도 평온한 호수같은 마음을 이루기 위해 화분을 들여 식물도 길러보려고 하는 참에 나는 궁금해졌다. 아무 상황에서나 솔직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 성숙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억눌린 '감정의 희생'이었던걸까. 도둑맞은 줄도 몰랐던 내 감정이 혹시 나몰래 쓰리(...)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뭐야, 돌려줘요 내 감정...

 

 처음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분위기에 대해 꼬집는 글인가 싶었는데, 웃는 얼굴(19)에 대한 내용을 보면 웃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계발서들에서는 일부러라도 웃는 얼굴을 하면 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것이라 조언하는 것을 종종 봐왔는데 이 책은 자꾸 웃다가는 우스운 사람이 되니 가짜 웃음을 짓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동안 내가 써왔던 사회적 가면을 생각해본다. 웃는 가면을 썼을 때 분명 상대방이 무례하게 행동했던 적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보다 더 위압적이거나 무례한 가면을 쓴 사람에게 자신의 가면을 바꿔쓰지만 굳이 내가 그런 사람을 피하기 위해 무례한 가면을 쓰고다니고 싶진 않다. 대부분의 경우 웃는 가면은 다른 가면을 썼을 때에 비해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더불어 상대방도 웃는 가면을 썼다면 더욱더. 진짜 웃고 싶을 때만 웃고 가짜 웃음을 짓지 말라는 말은 너무 삭막하다. 마치 좋은 아침일때만 '좋은 아침이에요'하고 인사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웃음에는 인색해지지 말자. 웃는 것도 연습이고 습관이고 전염이다. 웃음이 강요된 사회라고 하지만 그나마도 한국사람들 기본 표정은 꽤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 불편하거나 심각한 일을 얼버무리려는 상황 등을 빼고는 웃자. 진짜 웃고싶을때만 웃으면 인생 생각보다 웃을 일 없다.

 

 " 누군가는 매일 긍정 확언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100번씩 노트에 적으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우주가 내 성공에 무슨 관심이 있어 주문과도 같은 혼잣말을 들어준단 말인가. 이는 긍정이 아니라 자기 환상이며 맹신에 불과하다.(45) "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책의 내용에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고 위 문장에 무릎을 탁 치고 바로 옮겨 적어놔야지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하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연금술사'였나 싶은데 불평꾼은 이 말이 항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바라는 게 있으면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 노력을 해야지 100번씩 노트에 적는 것은 노트도 펜도 시간도 아까운 일 같다. 한동안 이런 류의 말과 책이 유행할때 예쁜 글귀로 전해지거나, 좋아요 누르고 소원 적는 행동이 잘 공감되지 않았다. 우주가 나한테 관심 있었음 벌써 나는 출생부터 남달랐겠지.

 

 표지에서 강조한 부정적 감정의 표출에 대한 내용이 2장에서 등장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린시절부터 싫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학습된 탓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인가.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각자 다르겠지만 스스로 평하기로는 거절 잘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 떠올려보면 왜 거절했던 기억만 나는걸까. 대부분의 상황은 부탁없이 눈치껏 호응했던 것 같고, 직접적인 부탁이 들어오는 일은 거절할 공산이 크니까 부탁하기 때문에 거절로 이어지는 일들이 많았던 것 아닐까. 내 생각에 초등학교 때 지우개 잘 빌려줬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의 것들은 왜 거절부터 했던 것 같지. 문득 나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내가 그리는 이미지의 나와 실제 나는 정말 다를까.

 

 어쨌든 집에서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사회에서 거절을 표할 수 있겠는가,하는 물음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가정에서 학습된 것들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이를 두고 만물 가정설처럼 말하기에는 조금 뭔가 아쉽다. 벌써 유치원, 초등학교만 다녀도 가정과 분리된 사회적 자아를 가지게 되는데다가, 부모님이 '싫어요'라고 못하게 했다는 것치고는 다들 그렇게까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자라온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보다 더 본능적이고 계산적인 뭔가가 거절 못하는 사람의 내면에 있을 것이다. 비록 '모두가 노라고 할 때 혼자 예스라고 말하는' 태도를 오직 음식 메뉴 정할때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지만, 암튼 그렇다.   

 

 읽다보니 책이 여러모로 흥미로웠는데 얼마 전 한참 인기있었던 '자존감'에 대한 내용도 새로웠다. 자존감은 이미 어린시절에 그것도 미취학정도 무렵에 이미 형성되니 그 이후의 노력들은 딱히 효과가 없다는 내용이다. 자존감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자존심은 부정적인 느낌으로 여겨지고 진짜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고 그걸 길러야 된다는 요지의 글을 많이 봤는데, 이미 그 글을 읽고 있을 때는 늦어버린 것이라니. 자존감을 기르기 위해 사소한 충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 자존감 부작용 사례들이 그래서 그랬던 거였나 짐작된다. 오히려 자존감은 됐으니 자존심을 챙기라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두개나 챙기기 복잡했는데 잘됐다.

 

 또 하나는 용서에 대한 내용. 용서라는 말이 나오면 '밀양'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 영화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진정한 용서가 존재할까. 남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내 마음안에는 없을 것 같다. 사소한 일들은 뭐 크게 문제 삼을 것도 없지만 용서가 어려울만한 큰 문제라면 겉으로는 용서한 척해도 진짜로 용서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용서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게 피해자가 선량한 피해자의 위치에 있으려면 싫어도 용서를 해야 한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구조이기도 하다. 가해자가 사과를 하는데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피해자가 그 힘을 쥐고 흔드는 갑이 되어버리니 더이상 선량한 피해자로 봐주지 않는 것이다. 피해자의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가해자가 내민 사과에 용서를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책에서는 " 용서의 범주에 '처벌받지 않음'이 포함되지 않음(104) "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법에서는 왜 합의를 통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리 많을까.

 

 " 뇌신경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뇌 구조가 '승자의 뇌'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고생을 이미 지나온 사람은 지금 고생을 겪고 있는 사람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고생 끝에는 어떤 낙이 있을까. 본인은 이루어낸 것을 아직도 겪고 있는 이를 보며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 그들의 낙이라면 그들이 진정 아픈 만큼 성숙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낙'이란 애초에 남들을 짓밟는 승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었을까?(60) "

 

 이 부분을 보며 정치인들의 타락을 떠올렸는데, 엘리트 길을 걸어온 판사들의 피해자 공감 능력 결여를 떠올려보면 고생을 지나왔건 지나오지 않았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결여되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생기는 것 같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자신의 신념을 불태웠던 사람들이 나이먹고 뱃지달고 동일인인가 싶을만큼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추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근원적인 괴로움에 빠지지 말고 뇌구조가 변했다고 생각하면 좀 나으려나 싶다. 성공했으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겸손하도록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자연히 고생을 겪고 있는 과정에 속하기 때문에 뇌구조가 아직 멀쩡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유재석같은 사람을 보면 호감을 가지는가보다.

 

 의외로 3장에 들어서서 사랑, 질투, 상처, 외로움 같은 부분들은 평이했다. 주제가 주제니만큼 기대하며 읽었는데 뭔가 꽂히는 부분이 없이 넘어갔다. 수치심과 관련된 부분은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상처가 아직 극복되지 않은 듯하다. 다만 감정에 있어서 가장 많이 공감하고 있는 것은  " 과도하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화를 냈다면, 나의 초감정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임을, 내 역사의 한 부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음을.(163) " 이 내용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싶어질때 종종 생각하는 내용이다. 내 안에서 내가 원치않는, 싫어하는, 부정하고 싶은 나의 조각을 타인에게서 볼 때 타인을 비난하고 싶어진다는 것. 비슷한 내용인 것 같아 옮겨적어봤다.

 

 4장에서 감정흡혈귀라는 말이 나오는데, 흡혈귀라고 하니 어쩐지 매력적이다. 실제로도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기 위해 영화 속 흡혈귀처럼 '적극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기도(232)'한다는데, 그럼 더 좋아보이는게 아닌가. 내 감정을 제물삼아 접근하는 적극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대라니 책에서 감정 조종자, 감정 포식자같은 표현도 나오던데 이런 표현이 더 괜찮아보인다. 감정 좀비는 좀 이상하고 흡혈귀는 매력적이야. 아마 요즘에는 비슷한 말로 가스라이팅한다고 하기도 하려나. 의존과 연결되어 있는 내용이고 요즘 빈번히 보게 되는 가정, 연인 사이 또는 위계관계에서의 문제라 관심있게 읽었다. 내가 감히 누군가의 감정을 조종해본적은 없지만, 나는 혹시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았던 적이 있던가 한번쯤은 생각해보았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감정에 눈치를 보게 되는 적은 있지만 이를 두고 그들을 감정 조종자라고 하기엔 조금 껄끄럽다.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심각한 정도의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자신의 감정에 대해 둔감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읽을 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감정일기를 써보는 건 어떠려나 싶어졌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뒷표지 날개를 보고 알았는데, 이 책이 가나 출판사에서 자기탐구 인문학 시리즈로 나온 네번째 책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어서 그 전에 나왔던 책들도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기억에 남는 부분들도 많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이어지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하루 정도는 책을 붙잡고 자신과 자신의 감정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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