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단호한 행복 -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간결한 철학 연습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방진이 옮김 / 다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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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둘리기 쉬운 사람을 위한 생존 철학'이라니. 솔직히 2장의 첫 내용부터 이를 마음으로부터 섬기고 행할 수 있는 자는 곧 부처이니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철학이 이성과 금욕을 중시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단계가 높았다. 요즘 서점을 장악한 말랑한 책들의 위로 속에서 한껏 보살핌 받은 탓일까 모든 일은 네 마음에 달려있다는 단호한 어조에 부담과 반발심이 울컥 일어났다. 사람답게 욕망하고 소비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지, 수행자의 삶을 살겠다는게 아니라구요! 어디를 향해있는지 알 수 없는 화를 삭히며 책을 덮어두고는 쿨타임을 가졌다. 왜 화가 나지? 솔직히 틀린 말은 없었는데 왜 전부 반박하고 싶지? 아니라고 하고싶지만 그 안에 내가 휘둘리던 것들이 있었다. 사는게 다 이렇지 하고 포장해서 넘기고 싶었는데 굳이 그 포장을 들춰내려고 하니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을 좀 내려놓고 읽기로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반성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집착을 조금 내려놓아야지 생각도 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자기 자신과 주변의 관계 같은 것을 곱씹다보면 우울이 오기 쉽다고 했다. " 욕구와 관심의 방향을 돌리면 행복과 평안을 얻을 수 있(54) "다는 말을 앞에 두고 내 앞에 놓았던 욕구와 관심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해보았다. 그중 가장 나를 괴롭히던 것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로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노력이나 강요도 소용없으며, 무엇보다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잘못이나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왜 내 뜻대로 안되지하고 욕심부리는 것, 그때 내가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하고 후회하는 것에서만 벗어나도 정신건강에 한결 도움이 되겠다. 물론 실천이 어렵겠지만.

 

 " 우주는 우리의 편도, 적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주는 그저 무심한 채로 흘러갑니다.(78) " 처음에는 책에서 자꾸 '우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언제는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빼앗긴 돈도, 잃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우주의 연결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과관계(106) "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야 우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온 세상이지만 우주야말로 한없이 광활한 공간 안에 작고 창백한 푸른점,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아닌가. 읽다보니 우주라는 말의 쓰임이 운명이나 팔자라는 말에 더 가깝다고 생각됐다. 요즘 불교 경전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그런지 읽을수록 불교 교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느껴졌다.

 

 " 우리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중략... 사람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55) " 끝까지 이 부분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간관계의 거리가, 그리고 유한함이 정말 어렵고 힘들다. 특히 이 주제는 반복해서 나오는데, 컵이 언젠가는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언젠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95)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오래 입어 낡아버린 아끼던 옷도 버리려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하물며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이라니. 이를 " 우주에게서 빌린 사람이었고 우주가 다시 데리고 간 것(69)" 으로 여기기는 어렵다. 앞으로 더 마음을 비우고 성숙해지면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른 내용들보다는 조금 가볍지만 그래도 유용한 조언을 하나 소개한다. "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처신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남들을 의식하기보다 혼자 조용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중략... 결심했나요?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려고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140) " SNS 줄이라는 말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 같다. 요즘은 방금 먹은 저녁밥이 뭐였는지도 실시간으로 수시로 공유하고 알리는 사회고, 자기 표현이 미덕인 세상이라 교육받고 자랐지만 과잉된 전시에 피로를 느끼고 오히려 삶의 중심을 잃게 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알리지 않고 행동하라,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따라 살라는 조언은 언제 강조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철학 이론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은 가볍게 훑어 읽었고 2부, 3부 특히 2부의 내용을 여러번 읽었다. 읽어 넘기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끝까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근간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해가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딱딱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비움과 채움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자신에게 너그러운 치유계 에세이들을 읽었다면, 가끔 이런 단호함으로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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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22-03-12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렇게 긴글을 그리고 이렇게 남들이 보는 곳에 적으신 걸 보면 남의 시선을 신경쓰시는 분 같네요.

오라오라 2022-03-12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오면 봄이 오고 꽃이 피면 꽃이 집니다. 그런 자연의 순리가 글에서 말씀하신 부분인 거 같네요. 불교에선 제행무상, 공즉시색이라고 합니다. 받아들이기 쉽건 어렵건 이건 세상의 순리라 어쩔 수 없는 부분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벚꽃이 예쁜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