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 이것은 음악평론이 아니다
배순탁 지음 / 김영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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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던 시절을 가끔 추억하는 말이 있다. 이맘때면 여전히 종종 들리는 말인데, 거리에 가득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롤이 사라진 뒤로 전보다 연말 분위기가 덜 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분 같은 것보다야 지켜야 할 권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 음악, 거리의 상점마다 멋대로 흘러나오던 그 음악이 사라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느끼게 된 그 공통적인 상실감을 떠올리면, '음악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문장은 전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한 곡 당 주어진 시간이 보통 3분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일까, 마찬가지로 한 곡에 주어진 셋에서 다섯 정도의 페이지가 아쉽게 느껴지는 흐름이었다. 가장 적당한 분량일수도 있겠지만 은근슬쩍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벌써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고 싶게 짧다고 느껴진다. 음악을 듣고 그저 좋다, 그리 취향에 맞지 않는다 정도의 감상만을 남기는 사람에게 음악을 두고 이렇게 수많은 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자극적이다. 잘 세공한 보석에 빛이 들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반짝임을 붙잡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 더듬어 내려가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어떤 곡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 들어보고, 어떤 곡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또 어떤 곡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찾아보는데 정말 아쉽게도 저자가 '유일하게 히트시킨 음악'이라는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Days Are Numbers>(59)를 들었을 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 읽으며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모르는 곡들이나 아주 유명한 곡들에 대해 안경을 척 올려 쓰고 적어낸 글들이 많겠지 싶었는데, 몰랐다기 보다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곡들이나 듣기만 했던 곡들을 보고 내 안경이나 고쳐써가며 읽었다. 

모든 부분을 다 배우듯이, 낯선 곳의 지도를 살펴보듯이 읽어나갔는데 한가지 걸리는 부분은 아이돌 앨범에 대한 언급(84)이었다. (아이)돌 잡이를 sm으로 한 탓에 그쪽 아이돌 앨범 특유의 발라드에 아직도 심장이 반응하는 사람은 아이돌 앨범에 꼭 끼워넣는 발라드는 코스의 디저트와 같다고 본다. 없으면 섭섭하다는 말이다. 솔직히 컨셉으로 각이 잡힌 곡들을 들을 때보다 마음이 더 편하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반응한 곡은 라이즈의 <모든 하루의 끝>입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구나 싶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는 '진짜 죽인다(169)'는 감상을 고등학교 시절에 끝냈던 것 같지만, 여전히 헐 대박을 고쳐내지 못한 사람이 보기에 하루종일 음악과 관련된 생각과 얘기를 하며 보내야 이런 글들을 쓸 것만 같이 여겨졌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 책을 두른 띠지를 보며 '첫' 음악 산문집이라는 말에 '다음'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만'하는 제목은 100이 아니면 전부는 아닌게 맞으니까 99는 전부가 아니라는 뻔뻔한 밑장 빼기 같았다. 그러니 책을 덮는 마지막 곡으로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almost is never enough'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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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위로, 아이슬란드
권호영 지음, 제이 사진 / 푸른향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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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 중에 북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있었다. 전부터 살면서 한번쯤은 두 눈으로 오로라를 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생각만 했고 그 사람은 직접 오로라를 보러 다녀왔던 것이 항상 부러웠다. 가려면 갈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떠날수는 없어서 부러운 마음을 속에 꼭꼭 접어두었던 탓에 '낯선 위로, 아이슬란드'를 찾았다. 가보진 못해도 북유럽이 어떤 곳인지 조금이라도 더 살펴보고 싶은 마음과 이 부러움을 달래주려는 듯 '위로'라는 단어가 제목에 붙어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러움으로 시작된 관심은 더 큰 흥미와 망설임을 가져왔다. 전에는 어릴 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는 말을 공감하면서도 절감하지는 못했는데, 삶에 고정적인 일과가 생기고 해외로 여행을 가는 일은 대부분 짧게 가까운 곳들 위주로 가야하는 제약이 생기면서 장기간의 준비와 일정이 필요한 여행이 정말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어려운 때가 되니 가고 싶은 마음보다 떠나기 어렵다는 망설임이 더 커졌다. 작가에게 '몽상은 마치 사치 같아서, 몽상 대신 그저 떠나는 일을 택(120)'했다고 하는데 반대로 나는 떠나는 일 대신 몽상을 택하곤 한다. 

'낯선 위로, 아이슬란드'는 몽상가가 계획하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좀 더 현실적인 배경으로 채워주는 책이다. 책에서 만나는 멋진 사진과 소소한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가끔 큐알코드를 따라 들어간 블로그에서 접하게 되는 자세한 정보들도 유용했다. 예약 방법, 가는 길, 소요되는 비용, 주차비 같은 세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이 궁금한 곳을 골라 시원하게 해결해주어서 좋았고, 지면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장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들이 담겨 있어서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국적이고 낯선 풍경들, 커다란 규모의 광활한 자연이 주는 압도감 같은 것들도 시선을 빼앗고 북극여우, 물개, 퍼핀, 심지어 고양이까지 귀여운 동물들도 아이슬란드에서 만났다고 하면 신기했다. 그런데 재밌게도 날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먹어보면 좋을 음식(254)을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하르드피스쿠르'라는 간식을 봤을 때였다. 대구를 말려 우리나라 북어나 황태 비슷하게 만들어서 버터와 같이 먹는 음식이라는 소개를 보고 그 유사성에 놀랐다. 궁금해서 이리저리 더 검색해봤지만 건조중인 사진만 보고 실제 차려진 것은 찾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걸로 국을 끓이면 비슷한 맛과 해장에 좋은 효과를 낼까 궁금했다. 

책은 다시 책장에 자리를 잡겠지만 언젠가 위로나 몽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아이슬란드를 가기 위해 꺼내볼 날이 온다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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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 - 숨겨진 매력을 찾아 떠난 17번의 대만 여행, 그리고 사람 이야기
이수지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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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가깝고, 음식이 맛있고, 여행지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서 동선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사람들이 친절하다. 그래서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를 봤을 때 정말 대만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대만에서 만들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자라고, 최근까지도 풋풋한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몇편 만날 수 있어서 일까, 대만하면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에 다정함과 친근함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동안 17번 대만을 여행했다고 하는데 책에는 여행과 함께 '사람 이야기'를 담아내 더 궁금하고 마음이 끌렸다.  

주로 대만하면 떠올릴 수 있는 예스진지를 방문하거나, 101타워, 중정기념관, 야시장 같은 곳을 구경하며 타이페이 안에서만 머물렀는데, 가장 최근의 여행에서 근처 온천 마을인 우라이에 다녀온 것을 빼면 단조로운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에필로그에도 짧게 언급된 우라이(250)는 가는 길이 구불구불해 험난하지만 그 풍경만큼은 감탄을 자아내는 온천 마을로 일정이 된다면 꼭 찾아가볼만한 곳이다. 내가 이렇게 재미없는 여행자였던가 싶어지도록 그동안 전형적인 여행지만을 다녔던 것에 아쉬움이 생겨날 정도로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장소들을 보며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대만이라는 나라에 새로운 호기심이 생겼다. 대만은 많이 가보았으니 한동안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보리라 생각했던 마음이 달라졌다. 특히 타이중이나 르웨탄의 풍경(127/133)의 여유로움이나 타이난의 월세계지경공원(215)의 독특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 아름다운 사진 속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지금껏 대만으로 다섯번 이상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데, 갈 때마다 친절한 대만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어느 여행지보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다가와 먼저 도움을 주려고 해서 고마웠던 좋은 인상이 남아있다. 핸드폰을 들고 길을 찾을 때도 선뜻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와주고 목적지까지 같이 걸어주기도 하고, 코인로커 앞에서 사용법을 찾을 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와 도움을 주기도 했다. 먼저 다가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용기있는 선의인지, 우리나라에 여행 온 외국인들을 지하철과 거리 곳곳에서 마주할 때마다 새삼 느끼기 때문에 대만 사람들의 이런 면모는 경험할 때마다 고맙고 배우고 싶은 점이라 여겨졌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친절하면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이 몇 배는 더 좋게 남는 법인데, 그래서 자꾸 대만을 다시 찾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대전에 갔을 때도 그랬는데, 큰 대자를 붙인 지역 사람들은 마음도 넓어서 그런가, 하는 한가로운 생각도 문득 들었다. 

대만에 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맛있는 음식을 꼽는데, 갈 때마다 반드시 딤섬과 곱창국수를 먹었다. 이 두 음식은 대체 할 수 없는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대만에 간다해도 반드시 다시 먹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꼭 추천해줄 대표적인 음식이다. 지난 번에는 여행 시기가 맞아서 석가를 먹어볼 수 있었는데 달콤함이 인상적이라 굳이 마트에 들러서 사먹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책에서도 석가 씨를 거르며 귀찮아도 사먹게 되는 매력(231)에 대해 토로하고 있어 공감하며 웃었다. 

물론 대만 여행에도 단점은 있다. 더운 시기에는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찜통에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오래되어 아름다운 골목과 거리 풍경엔 그만큼의 불편함도 있다. 게다가 날씨 탓에 모기도, 특히 바퀴벌레도 많다. 저녁과 오전에 길을 걷다보면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여행객들의 것임이 분명한 비명도 가끔 들려온다. 하지만 대만은 정말 매력이 넘치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기분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를 따뜻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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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면 종말 - 안보윤 산문
안보윤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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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각각의 우주를 돌고 있는 외로운 행성처럼 멀리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는듯이,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누군가의 중력을 느끼곤 한다. 혼자 부유하던 마음을 땅에 내려붙여 쉬어가게 만드는 힘은, 이 넓은 세상에서 여전히 누군가가 제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무게감이다. 저마다 빛나는 우리 삶이 혼자이되 세상은 고독하지 않다는 이 신호는 언젠가 내 삶의 힘으로 누군가를 끌어당겨 주고 싶다는 의지가 되어 묵묵히 나만의 궤적을 돌게끔 만든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하루와, 아끼는 것들을 모아놓은 작은 주머니, 지금은 연락이 끊긴 인연들, 언젠가 비오는 날 낯선 사람에게 건네주었던 우산, 어제 꾸었던 꿈,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 같은 것들을 가만히 헤아렸다. 짧고 잔잔한 글을 읽는 시간들 사이사이 쌓아두기만 하고 돌보지 않았던 일상이 되살아났다. 여름의 치열함이, 한해의 뜨거움도 물러나 조금은 맥이 풀린 시기에 어쩐지 위로가 되어주는 소소함이 '외로우면 종말'에 있었다.  

 '외로우면 종말'이라니, 세상 종말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는 것일까 책의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이 종말은 예상 밖의 외로움에서 비롯되었고, 이 산문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언제 어느 책장을 펼쳐도 36.5도 즈음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부드러움과 다정함 속에서 작가는 '"내 밤을 왜 니가 가져?"(174)'라는 당당한 목소리와 주체성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지만, '외로우면 종말'을 읽던 9월의 어느 밤은 작가가 가져갔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니 밤을 왜 나를 줘?'하고 답해오려나. 

 책을 읽는 동안 몇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둔 부모님의 건강검진 사전질문지를 확인하고, 내시경 준비를 위한 약을 체크하고, 새벽같이 출발해 검진실로 들여보내 드리고 난 참이다. 그 날의 나와 언젠가의 작가가 같은 벽 앞에 서서 어른이 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겹쳐보일 때도 있었다. 가끔 사소한 것을 모르고 지내왔거나, 중요한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벽 앞에 서봤던 마음으로 그들에게 '얘'하고 말을 붙여 한걸음 등을 밀어주는 그런 사람이 나도 되어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안보윤의 첫 산문집을 읽는 동안 하릴없이 어수선하던 마음이 잠시 머무르며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칼럼을 제안 받던 식사 자리에서 스스로를 내려누르려다 타인에게마저 무례해졌던 지난 날을 내보이던 작가가, 처음으로 차려내준 '솥밥' 속 짧은 이야기들 틈마다 표고버섯향이 나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함수는 모를지라도 오히려 계산적이지 못한 대신 선의를 나누고 받을 줄 알아 다행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또 어떤 세상과 사람을 풀어내 줄 것인지 기대해본다. 그가 쓰고 우리가 읽는 동안 세상이 종말로부터 조금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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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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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읽은 책에서 폴 오스터의 [겨울 일기]에 대한 글을 보고 몇번이나 곱씹었다. [겨울 일기]에서 폴 오스터는 과거의 자신을 '당신'이라 칭하며 거리를 둔다. 반면 집이라는 공간은 세세하게 담아내며 전에 살던 곳의 주소까지 기록했는데, 그 차이는 공간이 과거나 미래의 자신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기억과 경험을 되살려주기 때문이었을까 싶었다. '관내 여행자 - 되기'도 사건과 사유를 공통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통로로 공간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어 읽어보고 싶었다. 

 연초에 친구와 짧게 하루를 보내며 그때는 제법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앞으로 우리가 서로 만나 시간을 보내는 날이 일년에도 몇번 되지 않을테니 만나고 나면 그날의 기록을 해두어야 겠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실천은 다짐보다 늦어 그날의 기록조차 아직이고 그 뒤로 날이 더우면 덥고, 비가 오면 와서 만남마저 늦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관내 여행자 - 되기'에는 바로 그런 기록이 담겨 있어 의미와 자극이 남달랐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의정부'편이었는데, 의정부 고산동이라는 지명과 뺏벌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충격이 있었다. 언젠가 가보리라 마음 먹고 찾아보니 25년까지 도시새뜰마을사업으로 생활 여건을 개조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라 하니 책에서 본 것과는 다른 느낌의 마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레방 이전 같은 '역사 지우기' 움직임이 동두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니지모리 스튜디오 같은 곳을 운영하고 일본의 유곽마저 재현하는 시에서 옛 성병 관리소 같은 역사는 지우려는 것이 안타깝다.  

 다른 부분을 꼽자면 일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퇴근길의 택시나, 회사 화장실, 점심시간의 산책 같은 소소하고 현실적인 공간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점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다 공감되는 내용이라는 점이 또 안타깝기도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사회성을 발휘해야 했던 시간, 화장실 칸마다 문을 열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내쉬어야 했던 한숨, 도시를 가로지르던 천을 따라 끼니 대신 걷던 걸음 같은 것들이 선명했다. 

' 관내 여행자 - 되기'는 나와 짧은 여행길을 함께 떠났다. 간만에 떠나는 여행은 빈 곳이 많았고, 캐리어의 남는 공간에 책을 한 권 넣으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여행을 떠나서도 책을 읽을까, 여행에 여행자 되기를 끼워넣으면 너무 보란듯한 선택이 아닌가. 여행지의 뜬 시간 속마다 책을 펼치며 책 안의 가볍지 않은 걸음을 따라 가다보니 어쩌면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여행에 어울리지만 여행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무게가 있었다. 

 두 작가가 서로 주고받는 공간과 경험을 바라보며 연초에 했던 다짐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둘이서' 불현듯 함께 길을 떠날 수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이 특별함을 경험해보고 나니 이번에야 말로 우리가 걷고 보낸 시간들을 기록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명상으로 빼벌마을
**[두레방도 성병관리소도…여성 착취 현장 ‘역사 지우기’ 시도] 한겨례 이준희 기자 20240828
https://v.daum.net/v/20240828164509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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