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류 -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
은모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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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라니 아, 드디어 이 비서울인이 서울의 맛을 제대로 보겠구나 싶어 기대됐다. 어디 서울사람들만 알고 즐기는 서울의 멋을 좀 훔쳐내볼까 싶었다. 서울사람은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오가는 입장에서도 모든 계절에 서울이 있었다. 봄의 한강, 여름의 남산, 가을의 광화문, 겨울의 명동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서울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늘 가던 익숙한 곳만 알고 있는 것 같아 놓치고 있는 서울이 있는 것은 아닌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풍류를 아는 소설가의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동대문의 조지아 식당, 홍대의 콜롬비아 식당은 나중에 나도 꼭 찾아가봐야지 따로 적어두었다. 맛에서는 사실 '서울'이라는 특수성을 잘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부 멋과 3부 흥에서도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솔직히 가장 설레이는 마음으로 침을 흘리며 읽었던 것은 1부 맛의 내용이긴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멋과 흥에서 좀 더 서울을 느낄 수 있었달까.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어서일까, 그 안에서 걷고 움직이는 동안에야 비로소 서울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 면이 있었다. 

 1부 맛의 내용 중 재밌는 점 하나는 "매운맛에 대한 애호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얼마나 깊숙이 배어 있는 것일까? 60"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이어지는 '굴(70)' 에피소드와 함께 한국인에게는 매운맛 뿐 아니라 나물과 제철음식이 발현되는 때가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패스트푸드나 치킨, 피자, 마라 같은 외국계 음식을 좋아하고 자주 먹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한식을 찾게 되는 때가 온다. 속이 편하고, 든든하고. 전에는 그 맛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왜 찾게 되는지 알게 되는 그런 때가, 시기만 조금 다를 뿐 결국은 발현되고 마는 것이다. 

 " 나무와 돌과 바다와 산과 새, 그리고 달. 인간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몇 가지의 응답이 거기에 있었다. 질곡의 현대사를 거쳐오며 더없이 열렬한 응답을 건네준 그들 또한 내게 질문을 건네는 듯했다. 무엇을 바라보고 벗하며 빚어내고 있느냐고. 119"

 서교동에서 열리는 농부시장(121)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꽃망울이 진 매화 가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서울은 항상 어딜가나 사람이 많지만 이렇게 꽃을 즐길 수 있는 계절에 한강이나 꽃이 피는 명소로 알려진 곳들은 특히나 더 붐비는 장소가 된다. 꽃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경하러 온건지 불평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렇게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도 모두가 어쩐지 들떠있는 그 분위기가 좋을때도 있다. 보통의 서울 안에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징글징글하게 여길 때가 더 많은데, 봄과 꽃이 사람들의 얼굴을 웃게 만드는 그 부드러운 분위기가 있다. 그 느낌을 맛보기 위해 다시 봄이 오면 또 돗자리를 하나 둘러메고 한강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잡으며, 다소 비싼 꼬치구이 같은 것을 기꺼이 한입 베어물고.

 "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점점 더 촘촘해지는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이 내려본 적 있는 역이 고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내려보지 않은 역에 내리는 일은 마치 커다란 모험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222"

 서울 토박이(262)가 아니어서일까? 천천히 헤아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역들을 알고 있었다. 책에서 '대모험'을 하는 동안 16킬로미터를 걷게 되었다고 하는데, 동대문에서 광화문과 명동 일대만 잠깐 돌아다녀도 열개의 역 정도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청계천을 따라 '조금' 걷기만해도 만보는 우습게 채우게 된다. 이렇게 서울은 넓고도 좁아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느라 시작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 닿아 가게 된 곳들도 많고, 여기서 일하고 저기서 놀며 곳곳을 누비며 시간을 보내왔다는 증거마냥 꽤나 촘촘히 역들을 다녔다. 그 안에서 충분히 모든 공간을 즐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어보니 제법 서울 방문자다운 행보를 갖췄구나 싶다. 하지만 포트럭파티를 겸한 신년회(260)를 할 수 있는 차 모임을 가진 사람의 풍류에는 여지없이 부러움이 인다.

 서울을 더 알고싶다는 외부의 시선에서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내가 이만큼이나 가깝게 있었나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몰랐던 곳, 특별한 곳을 찾으면 꼭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서울 풍류'를 통해 새로움을 발굴하는 것보다 아는 것을 더 잘 즐기는 방향을 잡게 된 것이 의외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앞으로 다가올 계절 안의 서울을 더 기다려지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일상적인 생활인의 익숙함으로 서울을 보는 것 같아 즐기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었다. "지금 내가 있는 시간과 장소를,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이다 작가님의 평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좋구나, 다시 이 도시를 잘 감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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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노래 -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
진재운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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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저 길을 다시는 걷지 못하겠구나."
매일 오가던 길이었다. 시간이 없다고 서둘렀고, 신호가 바뀌기 전에 건너려고 뛰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 주변을 제대로 바라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다시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평범했던 길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삶이 겨우 이것이었구나 싶었어요. 무엇을 하겠다고 그렇게 허둥대며 살았을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주 조용해졌어요."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세상의 소음이 멎었다. 극장도, 건물도, 연구도,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멀어졌다. 자신이 이루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죽음 앞에서 한꺼번에 힘을 잃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뜻밖의 걱정 하나가 남았다. 35" 

"인간이 나무를 구하는가, 나무가 인간을 구하는가 251" 

여기에 마치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의 마음으로 보면 다 담아내기 어려운 이 사람의 이야기는, 잠시 자신의 존재를 내려놓고 그보다 더 넓은 곳으로- 나와 바깥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나가야 조금씩 들리는 듯 하다. 어쩌면 당신은 이 이야기를 끝까지 허풍과 거짓이 섞인 환상쯤으로 치부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꿈결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책 속에 담긴 니카라과 숲의 넓고 푸른 풍경만은 진실로 전해질 것이다. 바로 그 숲의 풍경 앞에서 시작해보면 좋겠다. 그게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면 좋겠다. 조금 이상하고,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부분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국 감동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 그녀는 숲을 소유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그곳에 잠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처럼 자신을 설명했다. ...중략... 새와 곤충, 바람과 시간이 함께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녀가 떠나면 다른 사람이 그 땅을 돌보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은 나무를 더 심을 수도 있고, 길을 바꿀 수도 있다. 그녀가 그린 그림 위에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204"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지만, 그에 대한 소개가 굉장히 독특해서 관심이 간 것도 있었다. 황실의 후손이라는 혈통, 그를 두고 '공주님'이라 부르는 것이 사실 마땅한 호칭이라는 점도 재밌고, 에이즈의 원인을 규명한 생물학자였다는 점도 놀라웠다. 그런데 그의 삶 6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시작한 나무 심기가 가장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시작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상의 첫 시작이 되었다고 하니 여러 생각이 오간다. 거기에 온전히 자신이 일구어낸 숲에 대해서도, 성공과 배경마저도 자신의 것은 없다(200, 204)며 잘라낸다. 그저 자신의 할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 오늘의 묘목을 심어나갈 것(237)을 말한다. 벗어나고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 사람들은 남은 시간을 대개 해로 계산한다. 그녀는 달로 셌다. 한 해라는 말에는 아직 많은 날이 남은 듯하지만, 보름달은 한 달에 한 번뿐이다. 한 번 놓치면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한다. 104" 

사실 몇년 전부터 가끔 평범하게 보내는 날이 문득 너무나 좋을때면 나에게 남은 이 보통의 하루가 몇 번이나 될까 헤아려보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다가, 길에 쌓인 낙엽을 밟다가, 부드럽게 뭉그러지는 햇빛을 쬐다가도 갑자기 찾아오는 그 순간을, 어릴 때는 세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언제부턴가 계절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느껴질 때면 이 계절을 이렇게 온전히 보낼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남았을까 싶어졌다. 더우면 덥다고 불평하며, 황사나, 추위, 혹은 나뭇잎의 푸르름과 단풍, 떨어지는 꽃잎과 눈 사이를 걷고, 햇빛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계절의 냄새를 맡는 일이 당연한 듯 하면서도 하나하나가 아쉬워졌다. 그래서 시간을 달로 셈하는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보고 느끼고 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마치 다시 없을 것처럼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 그러고 보니 나는 실제로 닥치지도 않은 너무 많은 일을 미리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죽음이 두렵다는 것과 잃을 것을 미리 두려워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죽음은 한 번 오지만,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살아 있는 동안 여러 번 찾아온다. 재산과 이름, 사랑하는 사람, 건강과 젊음, 아직 보지 못한 미래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오늘 누릴 수 있는 자유까지 미리 내어 주기도 한다. 110" 

백 그루의 나무를 심어도 스무 그루밖에 남지 않(63)더라도 꾸준히 나무를 심는 일을 계속해나간 그 굳은 심지에는 존경이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필요치 않았다. 열에 두번 밖에 완성되지 않더라도, 때로 그동안 해온 것들이 모두 망가지고 사라진대도, 다른 누가 방해를 해도 그는 자신이 이루고자 한 바를 계속해나가는 묵묵함, 한결같은 의지가 결국 목표를 향한 길을 낸다. 나무가 숲이 되고, 숲은 자연이 되어 그 안에서 다시 생명이 살아가게 되는 변화가 찾아온다. 가끔 우리는 목표로 삼은 일을 향해 나아가다 포기하게 된다. 매일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하루 빼먹어서, 실력이 곧잘 늘지 않아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고 여기고 이어가길 멈춘다. '나무의 노래'를 통해 멈추지 않고 계속해나갈 이유를 본다. 매번 첫 발을 떼는 것 같아도 똑바로 걷지 못했더라도 잠시 멈췄더라도, 다음 발을 다시 떼기만 한다면 결국 뭔가를 이루는구나, 그게 멈추고 포기할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 한 그루의 나무가 살아나면 그 주변에 또 다른 삶의 자리가 생겼다. 다른 나무가 함께 자라고, 새와 곤충이 깃들며, 그늘 아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225" 

이상한 일이다. 나무와 대화를 한다는 말, 곰에게 쓴 편지, 환상같은 사건들은 여전히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기인같기도, 괴짜같기도 한데 그가 해온 일들, 땅을 사서 그 땅에 그저 나무를 심어 두었다는 말은 어쩐지 눈물이 난다. 그가 샀다는 니카라과의 땅(48-49)을 그저 사진으로 보기만 했는데도 마치 그 곳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이자 쉼터로 느껴졌다.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나누는 이의 숭고함,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과 회복력에 대한 경탄이 어우러져 감동을 받았는데 이와 비슷한 감동을 전에도 느낀 적이 생각해보니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수수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그림과 함께 되살아나는 자연의 힘이 담긴 내용에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나무의 노래'를 인상적으로 읽은 독자라면 <나무를 심는 사람>도 함께 접해보면 좋을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를 환상처럼 하는 것을 보며 열심히 찍어놓은 사진을 보지 않고서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거대한 나무 앞에서 자신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72)고 했는데, 다 이해하지도 따하지도 못할 상대 앞에서 솟구치는 의심과 의문을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동안 비슷한 느낌을 곱씹어야 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라는 명언을 실천하는 삶이라니. 생의 가치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삶에 대한 긍정, 자연을 향한 새로운 감각과 영감을 전해주는 책이다. 머리 속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짧은 글이 손글씨로 담겨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 글과 삽화를 함께 담아놓은 부록(267)을 실어놓은 것이 이 책의 백미였다. 이 점도 놓치지 않기를!


*<나무를 심는 사람> 동명의 소설(장 지오노 1953)과 애니메이션 작품(프레데리크 백 1987)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 감독 프레데리크 백 역시 일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은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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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쓸모없다 - 사노 요코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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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도 있었어. 이제 저마다의 인생이 시작된 거니까. 그 친구도 나도 그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104" 

어른이 되고 난 뒤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참 힘들구나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렸을 때는 함께 놀 상대가 매일 주변에 있었고, 좀 더 자라서는 학교에 가면 항상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잘 몰랐다. 요즘은 학급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친구 사귀는 일이 조금 더 압박감이 있겠지만, 예전에는 많은 인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운 무리가 생기고 어느정도 여유롭게 무리를 오가며 지내는 일이 보통이었다. 그때는 번화가만 나가도 길을 걷다 금방 인사를 나눌 친구를 마주치기도 하고, 막 성인이 되어선 어울릴 사람도 챙길 친구도 많아 바쁘기도 했었는데, 정신없이 눈 앞을 살아가다보니 곁에서 같이 걷고 있었던 것만 같던 친구들이 각자의 길로 걸어나가버린 뒤였다. 어느새 누군가와 함께 노는 것보다 혼자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에 더 익숙해졌구나, 문득 스스로가 어른이 되긴 했구나 새삼스러웠다. 

이런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친구는 쓸모없다' 제목을 보고, "좋아하고 미워하면서도 자꾸 연락하게 되는 사람들"이란 부제를 보고, 어른이 되어 찾아오는 '친구 기근'과 연관된 내용이겠거니 어림 짐작하며 봤는데, 의외로 시작은 최초의 놀이 친구에 대한 기억부터였다. 어린시절 열심히도 손윗동기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났다. 하필이면 자랐던 동네에 손윗동기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댓명이 넘게 있었는데 나와 나이가 같은 아이는 없었다. 혹은 그보다 한두살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라 나는 혼자 놀거나 이들이 노는 자리에 금붕어 똥처럼 졸졸 따라붙어 깍두기 노릇을 했다. 

"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서 온종일 오빠를 쫓아다녔어.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25" 

우리는 사이가 좋았던터라 집에서 둘이 같이 놀 때도 어지간히 잘 맞고 재밌기는 했지만, 손윗동기 입장에선 제 또래랑 놀러 다닐 나이가 되었을때 늘 봐줘야하는 혹을 하나 달고 다니는 일이 제법 성가셨을 것이다. 한번은 그날만은 나를 떼어놓고 싶었는지 몰래 나가려다 들켜서 따라가겠다며 떼를 쓰는 나를 이불에 돌돌 말아서 방에 넣어두고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 뒤로 몇 해 지나지않아 각자의 친구와 놀게 되면서 그 시절은 끝나버렸지만, 어른이 된 이제는 함께 쌓아온 추억, 취향이 맞는 서로 의지하는 친구같은 사이가 되었다. -고 하고 싶지만, 아직도 나만 더 같이 놀고 싶어한다. 동생들은 공감할텐데, 아직도 지루해지지가 않는다. 

" 우정이라는 건 중학생쯤 되어 자아가 생기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려 할 때가 되어서야, 절실히 원하게 되는 것 같아. 부모가 아니라 타인이 필요해지는 시기인 거지. 그렇게 친구를 원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은 어른이 되는 거야. 53" 

얼레벌레 주변의 놀이친구와 어울리게 되는 어린시절이 지나고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에 대한 갈망이 생기고 슬슬 처음 기대했던 재밌는 내용, 인간관계라 할 만한 것이 시작된다. 이렇게 상세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당시 어떤 생각을 했고, 또 누구와 어울렸는지 적혀있어서 저자에게 친구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되는 것이, 나 역시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끊는데 신경을 쓰게 된 시기가 중학생 무렵부터 였던 듯 하다. 같이 어울릴 무리와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 시기의 증명서같은 것이라 이를 원만히 만들어놓지 않으면, 다른 무리와도 쉽게 어우러지지 않고 혼자 튀어나온 것처럼 겉돌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걸 알게 됐었다. 

좀 다르게 느껴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에 대한 인상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성숙한 상태로 상대를 알아갈 수 있으나 사귐에 있어 계산이 적고, 감수성이 민감한 시절이라 이 무렵 마음을 터놓고 사귀게 되는 친구는 평생 가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은 그런 인식이 없는 것인지 개인의 경험이 달랐던 것인지 궁금했다. 

"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해 쓰기로 한 책인데, 왜 어른이 되고 난 뒤의 친구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하는지 알아? 우정은 지속된다고 믿기 때문이야. 163" 

회고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에세이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이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담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형식의 글은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묘한 리듬감과 친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편안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이 둘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친구가 된 관계로, 일로 만나게 되었다가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알고 지내면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194) 한다. 읽으면서 부럽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들도 자신들과 같은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것으로 봐서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친구를 새로 사귀는 일은 모두 쉽지 않게 여기는구나 싶었다.  

일본 특유의 정서가 짙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종종 있었는데 "전학생은 당연히 괴롭힘을 당혔어. (61)"라던 어린시절이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대로 된 회사에 들어가기는 어렵겠구나."(119) 같은 이야기가 나왔던 것, "나는 평생 한 번도 치한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애가 부럽더라."(130) '부럽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 어떤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지 상황에 맞는 표현이 아닌 것 같아 때로 어색했다. 더불어 전쟁에 관한 이야기(48)가 나올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예민한 눈으로 몇번이나 살펴서 읽게 되기도 했다. 

제목은 다소 파격적이지만, 알고보면 친구를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라 '쓸모를 염두에 두고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책이라고 하지만 성인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면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기와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 조금 지나서 벗어나고 난 뒤에 보면 더 자세히 보이는 것이 있는 것처럼, '친구 관계'에 대해서도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시기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알 것 같아서다. 책을 읽고 난 뒤인 지금도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은 여전히 어렵겠다고 생각하지만,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홋카이도의 라일락과 우리 집에 핀 민들레가 이어져 있(201)'는 것처럼, 언제든 가볍게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래도 별로인 면이 있다는 걸 서로 알고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는 편이 서로에게 더 안심되지 않아?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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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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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맞추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때로는 속눈썹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상대에게 애정을 품는 일. 나에게 잘 듣는 일이란 구체적으로는 그런 것이다.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아는 일이다. 116" 

'심장 듣기'를 앞에 두고 열심히 들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저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독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또 이웃에서, 세상에서 들어온 이야기는 내밀하고, 익숙하고, 낯설고,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함께 듣는 동안 내게도 뭔가 채워지는 것들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임보 중이었던 밤이를 입양해 온 이야기는 언뜻 흔하디 흔한 이야기면서 매번 특별하게 여겨지는 구원 서사다. 12키로 까지 클 것으로 예상된다던 6킬로그램의 밤이가 21키로의 중형, 아마도 진도비빔일 강아지로 성장하게 되면서 보호자인 그가 겪는 산책길 시비 경험담은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중대형견 보호자들은, 특히 진도의 핏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거기다 여성이라면 더욱더 수많은 시비와 싸움에 휘말린다. 
" 날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는 아무도 괜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 반면 아침저녁마다 하는 산책을 그런 마음으로 할 수는 없었다. 169"
내 개는 안물지만 나는 뭅니다 싶은 전투력과 산책 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해놓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입마개와 중대형견 분류 조항 등을 눈만 마주쳐도 쏟아낼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한 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강아지의 행복한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서는 보호자들이 많다. 산책 뿐이랴 애견동반시설 등에서도 중대형견 특히 진도의 핏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용이 불가하다는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이 남일같지 않은 분투에 웃기도 하고 공연히 혼자 더 화도 내다가, 입양한지 몇 년이 지났어도 강아지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고 언젠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까봐 두렵다(40)고 고백하는 두려움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버리는 것은 그들을 집으로 들였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니 부디 이해할 수 없는 그 간극마저도 오래도록 사랑하는 반려인이 되길. 

" 나는 2021년의 미얀마를, 2022년의 우크라이나를, 2023년의 팔레스타인을 떠올렸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건 대체 누가 결정하는 거야? 76" 

123의 밤을 듣는 일은 새삼스러웠다. 불행하게도 텔레비전을 보던 어느 평범한 밤에 갑자기 쏟아져나온 속보를 무방비하게 목격할 수 밖에 없던 충격과 무력함이 다시 찾아왔다. 미처 준비도 각오도 없이 현장으로 가야만 했던 저자의 생생한 그날밤을 들으며 이것 역시 상처로 남았구나 깨달았다. 그 밤을 지나왔으면서 어떻게 아직도 그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왜 시간과 이익은 모든 잘못을 덮어버리는데 충실히 쓰일까. 비단 그 밤 뿐 아니라 아주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81번째 광복절을 앞두고 터져나왔다. '세월이 자신들의 편'이었다던 매국 집안이 쌓아올린 부와 명성을 자랑하던 부조리 앞에 다시금 터져나온 분노가 길게 이어지는 요즘이다. 둘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 옹호하고 덮어두자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이익을 바라고 있다. 
온갖 정당화와 거센 몰이 앞에서 때로는 무력하고 이대로 저들이 원하는대로 세상이 굳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주워야 할 말은 주워서 '기억'하기 위해(103)" 애쓰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저 잠시 귀를 기울이고, 몸을 기울이고, 그곳에 나의 몸을 존재하게(97)"함으로써 힘을 보탤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나와 타인과 사회를 연결하기 위한 사랑을 느꼈다고. 

" 대체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 심지어 자신에게 그다지 호의적이도 않았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라고. 79"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저자와 겹쳐졌다가 다시 나로 떨어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열심히 듣다보면 내가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소리들이 있었다. 저자 역시 말하거나 듣는 일을 오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심장을 듣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었는데, 의미를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우리 사이에 공감하고 나눈 것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 당신이 확장되어 나와 연결되는 특별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인 듣기였다. 


* 152 백화점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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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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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떠날 수 없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숨 쉬는 것뿐이다. 숨을 내뱉는다. 지금 내가 뱉어내야 하는 것은 숨만이 아니다. 그 숨을 꼭 쥐고 있으려 하는 '나'라는 자아, 그것을 함께 비워야 한다. 내 안에서 내가 천천히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텅 빈 나는 폐허가 아니다. 모든 것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한 방'이다. 51" 

이상한 책이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따져보니 진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해왔던 생각들은 지금 이렇게 가벼운 것들, 그날 밥은 무엇을 먹을지,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것은 없는지,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누가 보고 싶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은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조금 먼 미래에는 이런 점을 고치고 더 먼 미래에는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깊지는 않다. 그런데 '나를 균열내기' 속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평소에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달랐다. 그동안 내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것들은 대부분 잡생각이고,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고의 흐름에 붙여야 했구나 싶었다. 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마치 내일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은 생각은 좀처럼 해본 적도 없을 것처럼 멋있게. 

'나를 균열내기' 안에서 어떤 사람과는 부엌에서 마주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누군가와는 옷장을 뒤져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 프랑수와즈 사강, 함께 외국어를 배우기도 아고타 크리스토프, 집도 나가고 아니 에르노와 에두아르 루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도 되고 다니엘 페나크, 지금도 좀 더 책의 매력을 잘 살리는 '전략'적 글쓰기를 염두에 두게 되기도 밀란 쿤데라, 연극을 관람하고 장 뤽 라가르스, 사강과 함께 어질렀던 집 안을 둘러보며 정리하기도 하고 조르주 페렉, 내가 왜 그녀 대신 그라고 쓰기를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기도 하고 엘렌 식수, 얼마 전 읽었던 바바라 몰리나르의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를 다시 찾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늘어놓냐면, 이 중에 당신의 마음을 흔들 주제나 이름이 분명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왜 사강을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번은 모어를 두번은 적어(외국어 64)를, 말을 가르치는 곳에서 일을 했던 경험 탓인지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통해 들여다 본 언어가 인상적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모어는 미성년을 대상으로 했고, 적어 분야는 성인이 대상이었다. 재밌게도 미성년들은 모르는 모어의 단어를 적어를 이용해 물어보는 일이 잦았는데, 물론 모어를 통해 문학적 감각을 배우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네들에게 있어 내가 규정하는 모어와 적어의 경계나 구분이 매우 흐릿해져 있었다. 프랑스어를 배운지 20년이 넘은 저자가 그럼에도 적어가 자연스럽지 않고, 그 기간만큼 모어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고백할 때(65)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모어와 적어를 그들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동시에 쌓아가던 잘 교육받은 아이들은 어느 한 곳에 속한다는 감각을 느낄까? 그 안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처없이 확신된 존재의 증거가 될까? 

잘 돌보아지는/교육받은/만들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다보니 '돌봄'과 내 안의 불씨에 대해 화두를 던졌던 레일라 슬리마니(123)의 질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 안의 불씨를 확인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132]의 질문들을 들여다보면 생각에도 말문이 막히는 순간들이 온다. 내가 외면한 것들, 미적지근한 삶의 온도는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이만하면 됐다'는 태업을 미필적 고의로 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개를 돌렸던 자리에는 양심이 죄책감과 뒤엉켜 부채를 쌓아두고 있었다. 더불어 언제나 어려운 이해보다 쉬운 비난이 가깝도록, 사건의 한 면만을 보는 일에 익숙해진 시선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만큼 매혹적으로 느껴져 <달콤한 노래>에 대한 궁금함이 커졌다. 

<달콤한 노래> 안의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일원이 아니라 언제든 같아 끼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125)"이다. 마치 무대 위에 오른 배우가 "마지막 대사를 내뱉고 나면,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한 인물이, 그의 세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136)"어지는 것처럼, 루이즈도 자신이 이 가정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교체/삭제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단적으로 방어한다. 이은경의 <어른이 되는 법>에 "어른다운 관계 형성은 상대방이 너무 멀어지면 버림받을까 봐 두렵고 상대방이 너무 가까워지면 빠져들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관계에 헌신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두려움이 상대방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사실 이런 두려움은 망상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우리를 자극한다." 는 내용이 있다.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 중에는 극복되지 못한 상처도 섞여있었으리라. 

" 막을 쓰고, 나를 접어두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물론 그런 것들도 두렵지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얼마큼 울퉁불퉁하고 모난 사람인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모르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6" 

저자에게 있어 생각은 스스로를 균열내는 자극의 과정이었다. 이 균열은 낡은 의식을 벗어내 새 의식의 몸으로 다시 성장하는 탈피와 같다. 타인의 내면에서 퍼올린 조각들이 단단히 다져진 것을 보고 자신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성숙된 사고를 위해 내면을 닦기는 커녕 몸의 살을 찌우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았던 셈이라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에서 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 길을 좇다보니 거기엔 먼저 자신이 있었다. 나를 알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익숙하지 못해 어색한 시작에 따라해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저자는 그동안 스스로와 어떤 식으로 마주했을까 궁금해졌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만나는 과정이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것과 다르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깊게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따라해보고 싶은 나를 균열내는, 균열내보자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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