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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리아킴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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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킴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미 그녀를 알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익숙한 사람이었다. 정말 '들으면 알만한', '내노라하는', '유명한' 수식어를 달아도 어색하지 않은 유명한 가수들의 춤선생님이자, 노래의 안무를 담당한 댄서다. 소녀시대, 선미, 트와이스, 24시간이 모자라, TT 등. 책을 두른 띠지에는 '춤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가 사랑한 것이 춤이었으니 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니 전부다. 삶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이런 주제들도 결국은 다 같은 방향을 향해 있으니 이건 리아킴의 이야기이자 춤에 대한 이야기다.

 

 춤같은 일에는 담을 쌓고 사는터라 건너다보듯 읽었다. 어렴풋이 갖고 있는 선입견, 춤추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돈을 잘 못 번다던데 관절쓰는 춤을 많이 추면 나중에 고생한다던데 하는 고루한 말들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실제로 책에서 만난 그녀는 성공했고,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여유있을만큼, 매일 아침 사과와 생강, 시금치를 간 주스를 마시며 자기관리를 한다. 내가 아무렇게나 떠올렸던 생각들처럼 누군가도 내 삶을 잘못 해석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졌다. 리아킴에 대해 읽으며 다시 머리속으로 말을 건넨다. '반갑습니다, 제가 오해했네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책의 흐름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갑자기 이런 내용이 왜 들어가있지, 싶은 부분도 있고 좀 더 확실한 주제로 잡아 묶였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도 있었다. 특히 가수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안무를 짰던 일들이 들어간 4장이 그랬다. 아이돌들에 대한 얘기와 자신에 대한 얘기가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여자아이돌와 남자아이돌을 가르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굳이 넣었어야 하는 내용인가 싶었다. 춤추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본인도 비슷한 틀을 갖고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게 참 많이 아쉬웠다.

 

 계속 이유를 찾으며 읽었다. 이 책이 나온 이유가 뭘까, 하고. 쉽게 이유가 어딨어, 꼭 이유가 있어야만 나오나.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싶었다. 이만큼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을때에는 꼭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역사적 사명이라도 가진 그런 거창한 이유가 나오진 않았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어느 한 순간이 떠올랐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찾아 헤맨 이유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리아킴이 이루어낸 성취들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오히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더 가깝다.

 

 " 연습실 한쪽 다용도실. 간이침대에 몸을 뉘인 나는 왼쪽벽을 보고 누워 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 어둠속에서도 싱크대, 작은 냉장고, 선풍기,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수도세, 전기세, 연습실 관리비가 떠오른다. 이번 달 연습실 월세는? 생활비는? 지난달보다 수강생이 줄었으니 레슨비도 줄 것이고. 대회에서 탄 상금은 밀린 공과금과 카드값 메우는 데 써야 하고.... 복잡하다. 모르겠다. 나는 억지로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던 그때를. (p.102) "

 

 리아킴이 세계 대회에 나가 챔피언이 된 3일 뒤의 이야기다. 우리는 때로 삶에서 바라던 성취를 이루고 난 뒤를 생각하지 못한다. 목표와 그것을 향해가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거기에 집중해 그 뒤에도 인생이 계속되고 있음을 잊게 된다. 그런 시기를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까만 단발머리'에서 만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고 매우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대회 성적 부진, 서툰 인간관계같이 그녀가 삶에서 겪었던 어려움으로 꼽은 일들보다 빛나던 순간은 짧고 현실은 계속된다는 사실. 삶이 눅눅하고 팍팍해질 때 가끔 그때 그 빛을 떠올리며 위로를 삼는다는 저 마음이 공감됐다.  

 

 책을 한 권 다 읽었는데, 여전히 리아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몇 페이지에 걸쳐 실린 그녀의 사진들처럼 단편적이고 짧은 순간의 모습만 조금 엿본 것 같다. 다만 앞으로 몇몇 노래들을 우연히 들으면 아마 유행했던 그 춤동작들과 함께 까만 단발머리의 깡마른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좀 아쉽지만, 그녀의 남은 삶이 앞으로 아쉬운 부분들을 더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난 뒤에 어쩌면 또 다른 에세이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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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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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다 졸리면 그냥 주무세요. " 라니, 그 말은 믿은 자신의 순진함을 반성했다. 아! 아직 나에게도 이렇게 순진한 면이 많이 남아있었구나 재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졸리면 자라니, 아저씨 너무 시끄럽다구요! 모리미 도미히코의 스타일을 몰랐던 내 탓일까 세상에 이렇게 뭐든지 할 말이 많고 수다스러운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 많다. 글에서도 수다스러운게 느껴질 정도면 어떤 느낌인지 알려나. 다만 읽다 졸리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너무 말이 많은 사람 옆에서 그 수다스러움을 참아내고 있자면 자기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지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말이 많다.

 

 어쩌면 이렇게 하고픈 말이 많고, 떠오르는 생각이 많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글들이 담겨있다. 에세이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 이 사람의 이 수다스러움은 감탄할 정도다. 남성작가라는 걸 의식하며 읽는데도 때때로 여성작가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어린시절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줬다는 얘기는 순간 장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헷갈렸다. 책을 읽어주는 오빠라니, 형사님 저는 그런 오빠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증언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진짜일까 자기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문학적 허용같은 거짓말이 아닐까. 작가가 될 떡잎의 오빠는 그럴 수도 있는건가 의심스럽다.

 

 아주 일본스러운 문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흥미로웠던 건 일본에도 '청춘18티켓 (p.148)'이란 상품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곧 대학생들의 여름방학 기간동안 '내일로'라는 열차 상품을 팔텐데, 일본에도 이런 상품이 있다니! 일본의 철도문화도 잘 발달해있으니 당연하겠지만 몰랐던 사실을 알게돼서, 새삼 '내일로'를 이용했었던 과거의 기억이 함께 떠올라서 반가웠다. 내일로 말고도 성인을 위한 짧은 열차 상품을 팔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입석 여행을 즐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려서 내일로와 같은 상품은 과거 혈기왕성하던 때가 있었다는 추억으로 묻혀버렸다. 대학생분들 나이와 시간, 체력이 되는 한 여행을 떠나세요. 특히 나이와 체력.

 

 읽으면서 2-3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글이라도 이렇게 많은 글을 써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대단하게 여겨졌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법 중 하나가 매일 같은 때에 정해진 시간만큼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를 읽으면서 이 많은 글을 쓰려면 아무래도 자신만의 글쓰기 규칙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엉뚱맹랑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엄격함이 존재하는걸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새벽까지 밤새는 일을 밥먹듯이 하고 내키는대로 살면서 자유롭게 이리저리 글을 쓰는 러프한 타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일을 시작하는 법에 대하여 (p.342)'를 보면 글쓰는데에 있어서는 확실히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나 손을 뻗어 읽어도 부담없을만큼의 무게를 가진 책이다. 실제 책의 두께나 무게는 그렇지 않지만서도. 다소 내용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비유하자면 소금간이 절묘하게 짭짤한 비스켓같은 느낌이다. 언제 먹어도 무난하지만 가끔 느껴지는 짠맛이 포인트가 되고 자꾸만 당기는 느낌! 이미 유명한 작가이지만, 작가 특유의 색이 더욱 진하게 드러나는 이 에세이집은 아마 팬들의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을만한 신간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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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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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나오기 전에 어떤 제목과 표지로 나왔으면 좋겠을지 설문을 본 적이 있다. 표지야 어피치스러운 분홍분홍한 분위기가 다 비슷했는데, 제목이 후보 중에 하나였던 '너무 많이 사랑하는 습관이 있어' 였으면 했다. 아무래도 심정적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서정적인 느낌이길래. 결과적으로는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로 나왔지만 소제목으로 책을 읽다 다시 마주한 문구를 보고 문득 아쉬웠다. 내가 픽한 제목으로 나왔어야 했는데. 나와 같은 마음으로 투표한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들이 함께 아쉬워하고 있으리라. 어쩌면 편집부의 픽이 엉덩이 쪽이어서 편집픽 버프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을 떠올려본다.

 

 이런 류의 책들-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보노보노나 곰돌이 푸의 캐릭터들이 한참 유행으로 나왔던 이 책들의 장르? 구분이 뭘까- 중에서도 어피치는 좀 늦게 나온 편이라 독자들이 서가에서 느낄 피로감에 엉덩이 제목의 더해지면 안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책의 표지 사진과 함께 부정적인 댓글이 써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찜찜했다. 아, 힐링에세이.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런 힐링에세이 류의 책은 보노보노 뒤로는 딱히 다른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지독했던 싸이월드 시기를 지나며 감성글과는 좀 거리를 두고 있는데,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를 반은 염려되는 마음 반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어피치가 쓴 것은 아니지만 왜 어피치를 달고 나왔는지 알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서귤 작가가 인간 어피치로 빙의라도 한 모양인지 어피치스러운 글이었다. 적당히 감성적이고, 또 적당히 유쾌하다. 일상적인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진부하게 흐르는 것 같아도 경쾌한 감칠맛을 묻혀낸다. 유기농으로 차려낸 건강해지는 맛은 아닌데 msg 들어간 분식이나 불량식품을 먹는 느낌으로 은근히 손이 가는 책이다. 어피치의 귀여운 캐릭터들을 곳곳에서 발견하며 한장한장 가볍게 읽다보면 금방 한 권을 다 읽게 된다. 한 꼭지당 분량도 많지 않아서 짬짬이 시간내어 읽기 편했다.

 

 " 내가 너무 많이 사랑하는 건, 말랑말랑 고양이 뱃살, ...중략... 그리고 너의 전부. (p.52)" 

 " 지금 데이트 신청하는 건데, 계속 모른 척하기야? (p.61)"

 이 책의 가장 감성적인 부분이 이런 느낌이라면 알려나. 옮겨 적으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볼과 턱의 이음부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학생시절 러브장 만들때라면 아마 한 페이지에 어피를 가득 그려넣고 따라 썼을만한 귀한 자료가 되어줬으리라. 요즘 애들은 러브장 같은 거 안 만들겠지. 러브장 아는 사람들 있으려나, 있으면 할매. 이 정도 감성만 잘 넘기면 다른 부분은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거다.

 

 '재회'나 '커피의 마약화에 대한 연구'는 깔끔하게 재밌다. '호그와트 예비 번호 받을 사람들'같은 어색한 느낌이 덜하다. 초반보다 뒤로 갈수록 내용이 더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어피치의 세계에 내가 더 익숙해져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맨 뒤에 나와있는 카카오 프렌즈들의 소개를 읽으면서 제이지도 책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들어온 라이언이 왕위계승자 배경까지 달고 센터하는 것도 억울한데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책도 내고, 원년멤버 제이지가 비인기멤이라고 천대받는 사회는 이제 화가 난다 이거에요. 두더지라 무시당하는 건가 싶고. 

 

 누군가에게 러브장 만들어주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엉덩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기 때문에 내 마음을 위해서는 사양하겠지만 그래도 귀여운 맛은 있다. 칼퇴하고 집에 와서 샤워한 다음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를 하나 깠을 때 볼만한 것 없는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보다 '엉덩이'를 집어들어도 좋겠다. 몰입하거나 심각해질 필요없이 몇개씩 조금씩 읽고싶은 만큼만 가볍게 기분 플듯이 읽고 다음날 또 읽을 부분을 남겨두듯이 읽고 싶은 책이다. 책 안의 내용처럼 귀엽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 힐링에세이는 그저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어피치가 귀여웠으니까, 라이언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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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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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언 반스와 요리라니.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가 몇 없는데 그 중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미드가 있다. 거기에 로시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중년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FBI 행동분석 팀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른 어떤 요소보다 로시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인물임이 느껴지는 부분은 그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즐긴다는 점이었다. 대단치는 않아도 자기 자신과 대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보일 요리를 할 줄 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고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줄리언 반스를 보면서 좀 더 늙은 고든 램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를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리를 할 줄 안다'는 키워드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요리가 대체 무엇이관대!

 

 본인은 어떤 타입이냐면 익숙해진 몇가지의 음식 말고는 대부분의 요리는 다 레시피를 보고 한다. 전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도 붙일 수 없이 그저 좀 할 줄 아는 정도의 수준이다. 때로는 내가 한 음식은 그 자체로 특히 먹기 싫을 때도 많은 편이고.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그저 웃을 수 없는 부분이 좀 있었다. 38쪽의 잼을 만들기로 한 이웃에 대한 이야기도 1파운드 용량의 빈병으로 과일과 설탕의 분량을 잰 것이 왜 실패의 원인인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저 방법을 합리적 계산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깜깜한 사람이란 말은 아니다. 음식과 먹는 것에는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것에는 약할 지라도 음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자존심을 좀 세우고 싶다.

 

 '요리를 할 줄 안다'는 매력을 떠나서도 기본적 생존을 위해 추천사에서 나오듯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 중에 한 분야로 마땅히 요리가 들어가야 되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 편의점, 배달 음식이 발달했어도 어떠한 경우에서도 할 줄 아는데 편의를 위해 선택하는 것과 다른 방법이 없이 이용하는 경우는 다를 것이다. 자기 먹을 것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은 배워서 어른이 되는 일이 남녀의 일에 구분이 없고 1인 가구가 더 늘어난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기본이 되야할 것이다. 더욱이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중/노년층의 남성들 중 상당수는 기본적인 끼니를 위한 요리를 강습하는 지원 클래스가 있기도 하고, 반찬 지원이 들어가도 밥 챙겨먹는 일에 익숙치 않아 받은 반찬 그대로 상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된단다. 적어도 이런 일은 없어야 할테니.

 

 첵을 읽다가 요리책이 몇 권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문득 멈춰섰다. 몇 권이나 있더라. 정확하게 떠오르는 건 한 권, 책장으로 달려가 살펴봐도 두 권 정도? 애초에 요즘같은 시대에 요리책이라는 것이 뭐 그리 필요하단 말인가. 인터넷으로 검색만하면 황금레시피나 백종원 표 같은 수식을 단 요리법들이 쏟아져나온다. 그것 뿐인가 줄글과 사진이 첨부된 요리법도 이제는 구식이다. 유투브같은 플랫폼에는 요리방법을 담은 영상이 나온다. 한꼬집이나 한소끔 같은 애매한 표현들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영상으로 보면서 배우거나 따라하면 되니까. 요즘은 중장년층도 유투브를 많이 본다던데 책에 대한 연연이라니 줄리언 반스의 연식이 느껴지는 부분이구만, 하고 생각했다. 다만 요리하는 남자가 요리책을 갖고 있는 편이 조금 더 섹시하긴 할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어조가 시종일관 까칠하고 적나라해서 좀 웃으면서 읽었다. 가령 스테이크를 구울때 15초에 한번씩 뒤집으라는 내용이 나오면 (p.143) 굽는 시간이 8분이라면 한덩이 32번씩 4인분에 128번 뒤집으란 말이냐, 그동안 사이드는 누구더러 만들라는 거냐고 성을 낸다. 잡다한 주방기구를 넣어두는 서랍을 정리할 때면 뭔지 모를 기구들과 죽은 벌레, 말라서 발견되는 잡곡까지도 솔직히 밝힌다.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를 읽는 시간은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가가 내 안에서 지나치게 평범한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전보다 더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먹고 사는 일이 버거울 때, 마음먹고 차려낸 요리가 내가 먹어도 맛없을 정도로 망했을 때, 번거로운 요리과정과 냉장고에서 마르고 썩어가는 재료가 지긋지긋할 때, 사먹는 음식이 지겹게 느껴질 때, 혹은 그냥 줄리언 반스의 글이 땡길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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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5-2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테일님 리뷰보다 스테이크 부분에서 깔깔 웃었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테일 2019-05-30 01:46   좋아요 0 | URL
저 까칠한 부분이 좋아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
 
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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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과 인간의 믿음으로 쌓아올린 고딕 대성당의 아치의 정점에는 어김없이 키스톤이 박혀 있다. 키스톤이 박혀 있지 않다면 하늘을 찌르는 대성당의 무게는 지탱할 수 없다. 우리 삶의 정점에도 어김없이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절대 사랑의 키스톤이 박혀 있음을 돌의 신전은 엄숙하게 말했다. 대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에너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던 절대 사랑이었다. 인간이 대성당을 지었지만 대성당이 인간을 성장시켜주었음을 산티아고 순레길의 건축이 사랑의 온기로 증명해주었다. (p.333) "

 

 산티아고 순례길. 십여년 전 쯤 어디선가 선물로 받은 책에서 만난 이름이었다.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세상에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알고 났더니 언젠가 꼭 한번 떠나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걷고 걷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그 길 위에서 걷는 일이 언젠가 삶의 한 순간에서 꼭 있어야만 할 것처럼 바라게 되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때로는 잊은듯이 지내다가 때로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무심결에 마주치기도 하며 지내왔다. 그곳에 가고싶다는,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잘 간직하고 있는 소망탓에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를 보자마자 끌린듯이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가 순례길 위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순례길을 걷는 천천한 이동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흔히 곁들여지는 개인적인 사색이나 감성은 없다. 건축물에서 건축물로 옮겨지는 시선을 통해 우리가 그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전달해준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서는 물집잡힌 발 때문에 고생하는 일, 걷다가 만난 사람들, 자신 내면의 고민과 생각들이 길 위에 펼쳐져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오로지 건축물 뿐이다. 어떤 양식으로 지어졌는지, 무슨 장식을 눈여겨보면 좋을지, 건축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른다면 지나치기 쉬운 성당, 수도원, 궁, 알베르게 등의 아름다움을 잘 설명해놓았다. 

 

 책에는 얼마 전 화재로 피해를 입은 노트르담 대성당(31)에 대한 내용도 나와있다. 문득 생생한 성당의 외관을 담아낸 사진과 스케치를 마주하게 되니 새삼스러운 충격이 전해졌다.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운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현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눈앞에 들이밀어진 느낌이었다. 거기다 문득 반가운 건물의 외관을 만나게 되는데, '스페인 하숙' 프로그램의 촬영지인 스페인 레온 주의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가 나온다. 책에서는 몇장의 사진 뿐이지만 몇번이나 텔레비전으로 본 탓에 방송에서 보여준 산골마을의 전경이 그려지며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반가움과 친밀함이 솟아난다. 다른 독자들도 그러하리라. 

 

 건축물들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설명도 좋지만, 또다른 매력은 정성들여 찍은 사진(김희곤, 카리타, 윤기병, 손진)과 거칠면서 섬세한 스케치에 있다. 어찌나 멋지고 아름답게 찍어낸 사진을 골라 담았는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천천히 사진과 스케치만을 다시 넘겨보았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건축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낯선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현장감이 든다. 무엇인가 자신이 깊게 매료되고 연구한 분야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충실한가. 같은 공간 안에서도 더 많은 의미를 찾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저자가 대단하고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면 이 책을 분철하여 가지고 가야지 생각했다.

 

 다만 왜 표지와 함께 둘러진 띠지의 앞부분에 저자보다 방송국 작가의 이름이 더 크게 붙여져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방송의 인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언뜻 비슷한 제목으로 다른 사람이 낸 책이라고 잘못 생각했다. 방영하고 있는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작가가 시기를 맞추어 낸 책이라고 생각했다가 표지를 한 번 더 뜯어보고 아니구나 했다. 오히려 띠지의 앞과 뒤의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전쟁과 종교의 역사라고 생각했던 길을 '절대 사랑'으로 쌓아올려진 '사랑의 건축'으로 바라보았다는 애정가득한 저자의 시선으로 잘 마무리 된 점이 좋았다. 다소 건조하게 느껴졌던 시선이 상쇄되었다. 진짜로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에 대한 소망을 품고 한번쯤 읽어둔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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