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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영화를 보러 나갔다. 예매해두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한두번 찾아보고는 잊었다. 영화표가 하나 생겨서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 누구와 함께 보기 어려울 것 같은 영화를 일부러 골랐다. 신도림으로 예매했는데 상영관은 단 하나고 겨우 23석의 자리는 금방 사라져갔다. 수많은 상영관들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영화들은, 나도 본 것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일률적이었다. 그게 보통이고 평범한 것일테다.

 

 집 밖으로 나설 때마다 항상 오랜만에 나왔단 생각을 한다. 어제 나갔어도 오늘 나갈 때가 되면 집 밖 공기의 냄새가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을 오르면서 길가 건물 앞 계단, 빛이 들어선 자리에 작은 구르마를 세워두고 가만히 앉아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햇빛이 들어선 자리래도 겨울의 그것이 얼마나 따뜻하려냐마는 구르마 위에 야트막히 모아놓은 폐지를 흘긋 보고는 혼자 막막했다.

 

 버스에 앉아 오래도록 "할머니의 먼 집" 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먼 집"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을 끝내려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내가 죽는 것도 누가 죽는 것도 너무나 무서운 나는, 언제 죽으려나 아침에 일어나 또 살아있음을 지긋해하는 노년의 삶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알고나는 보이는 것들은 더 무서웠다. 고통스러운 삶이 계속된다는 게 어떤 것일까.

 

 예매한 영화는 "가버나움"이었다. '자인', 출생기록 조차 없는 어쩌면 열두 살인 소년. 소년은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경멸한다. 자신을 낳고 형제들을 낳은 부모를 원망하여 고소하기에 이른다. 자인은 학교도 가지 못한 채 마른 몸을 휘청이며 가족의 생계를 돕는 도구처럼 쓰여진다. 그럼에도 자인은 살아내려 발버둥친다. 날선 눈에 불을 담고 삶이 주는 고통에서 달아나려는 소년의 몸짓이 애처롭다.

 

 자인은 누구를 상대로도 거릴 것 없이 욕하고 달려든다. 소소한 좀도둑질 정도는 태연히 해내고, 결국엔 사람을 찔러 잡혀들어간다. 자인의 거친 행동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난간에 앉아 가래침을 뱉고 질펀히 욕을 하던 꼬마, 불완전하고 준비되지 않은 보호자 밑에서 천진히 방치되던 플로리다의 '무니'를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다시 만난다.

 

 하지만 여행길 골목에서 마주쳤다면 가방 주머니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재우치게 만들 이 각다귀같은 소년도 결국은 아이다. 디즈니랜드로 도망치면 아동보호국 직원을 따돌릴 수 있을거라 믿은 무니처럼, 자인도 커피를 많이 마시면 까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스웨덴에만 가면 내 방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저절로 주어질 거라 믿는다. 살아내는데 이골이 난 아이도 그 거리에선 더 교활한 어른의 희생물일 뿐이다. 

 

 제대로 된 방도, 음식도, 옷도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자인의 부모는 지독히 가난하다. 남은 식구들을 위해 초경이 시작된 자인의 여동생을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낸다. 그 거리의 많은 소녀들이 그렇게 팔려가 비슷한 삶을 살거나 목숨을 잃는다. 고작 한두살 터울의 오빠만큼도 가족을 챙기려하지 않는 부모는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주시는' 뜻에 따라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한다.

 

 '나를 왜 낳았나, 또 태어날 동생의 삶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자인의 물음이 법정에 퍼질때, 그 아버지는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한탄하고 그 어머니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내 입장에 서보지 않은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다. 나를 비난 할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며 눈물 흘린다. 이쯤되면 빈익빈부익부의 구조를 착실히 따르는 세상과 믿지 않는 신의 존재 마저 끌어들여 한숨을 내쉰다.

 

 아이없는 삶을 살려는 이유가 예전엔 아이보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였다면, 요즘은 아이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면 아이를 위해서 낳지 않겠다는 선택이 많다. 아이를 좋아하고 가족의 근간을 부부와 그 2세로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가지 않을 이유겠지만 '가버나움'을 보며 절감했다. 자인의 아빠는 세상에 자신이 태어났다는 증거 -출생신고서류-를 찾는 자인을 때리며 세상에 아무 기록도 없는 유령/기생충과 같은 삶이라 소리지른다.

 

 이는 비단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무도 모른다"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늘진 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반지하 쪽방촌에서 수급과 반찬 봉사로 삶을 연명하는 독거 노년의 삶도 그러하다. 당장 네이버 포털만 들어가도 노인, 아동, 해외, 동물 카테고리별로 정리된 빈곤 포르노가 개인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기에 충분히 전시되어 있다.

 

 자인의 삶이 특별히 더 고단할 것도 없는 베이루트 거리를 내밀하게 파고들때도 부감하여 조망할때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차마 울 수 조차 없었다. 영화관 안의 어둠이 사라지고 나면 지금 나를 채운 이 괴로움도 함께 사라질 것을 안다. 당장 내 마음이 아파 눈물이나 조금 흘리고 마는 것이 악어의 눈물과 다를 것 없었다.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짧은 통로를 걸어나오니 백화점, 호텔과 연결된 나의 세계였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눈물 흘리지 않기를 차라리 잘했다. 이 쾌적하고 풍요로운 배경 안에서 울고 난 얼굴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으니. 그럼에도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영화를 추천한다. 적어도 밖으로 흘러보내지 못한 수분이 한 사람분의 얼룩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더 많은 얼룩이 남으면 언젠가 얼룩을 못 보거나, 그저 가리려하지 않고, 지워야만 될 때가 올테다.   

 

 

 

  할머니의 먼 집 / 아무도 모른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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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내가 페이퍼를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진은영 시인의 '우리는 매일매일'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일을 시집의 리뷰로 쓰기엔 너무나 사적이고 소소하여 그냥 페이퍼로 옮긴다. "러브 어페어" 라는 시를 읽다 문득

"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다.

아메리카 국경을 넘다

사막에 쓰러진 흰 셔츠 멕시코 청년

너와

결혼하고 싶다 "

-는 문장을 발견하고 기억은 멀고 먼 과거로 옮겨간다. 내가 지금보다는 더 젊었을 적. 사막에 쓰러질 필요는 없는 국경을 두고 만난 그는 흰 셔츠의 멕시코 청년이었다. 나는 젊었던만큼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성이 많았다.

 

 한 미국식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처음 만났을때부터 그는 나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나는 말이 통하지 않음과 미숙했던 사교술을 이유로 그저 웃음으로 그의 관심을 넘겨버리기 급급했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 더 그를 만나게 될 일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꽤 친절했고, 우리의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때 중간에서 바이링구얼인 어린 소녀가 그 나이 만큼의 장난스러움으로 우리 사이의 묘한 분위기를 읽어 무려 통역해주길 자처하여 나섰다.

 

 그애가 나에게 통역해 준 말들은 "네가 너무 좋고, 입 맞추고 싶고, 데이트를 하고 싶고, 같이 자고 싶다" 는 내용이었다. 그애는 장난스레 웃으며 요상한 야유같은 추임새를 넣어 해맑게 전했지만, 어린 소녀의 입으로 전해 듣기에 무례하고 민망한 내용이었다. 나는 다만 표정을 굳히고 "진심이냐" 고 물어달라하고 "그렇다"는 답을 듣고는 냉랭히 돌아서 그를 다시 마주하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오늘 바로 지금 시인의 그 싯구절을 읽으며 그 멕시코 청년을 떠올려 '나라면 그런 남자와 사귀지 않을텐데'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그를 무뢰한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결국 깨달았다. 그 아이의 통역이 반쯤은 거짓이었음을. 그리고 그 말을 믿은 나와, 제 스스로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그를 경멸했던 내가 더 어리석었음을. 정말 그런 의미의 말을 어린 소녀에게 했을리가 없는데도. 맙소사, 누군가에게 잘못한다는 것은 이렇게 깊고도 긴 골을 스스로에게도 내버린다. 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갑자기 내가 잘못했음을 깨닫는 밤이 오다니. 지구 반대편의 이제는 젊지 않은 어떤 청년에게로.  

  

 진실로 '우리는 매일매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깨닫고, 욕망하길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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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을 천천히 읽고 있는 와중이다.

 

출간에 맞춰서 한달에 한 권 정도의 호흡으로 약 넉달을 읽었었는데, 잠시간 2차분 출간을 앞두고 쉬는 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제 9월이 되어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차분 출간의 낭보를 전달받아 다시 읽기를 시작한 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겠지. 이 고풍스럽고 우아한 전집의 순차적 탄생을.

 

2차분의 출간 리스트는 '우미인초' '갱부' '산시로' 그 후'의 순이 되겠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우미인초

1907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로 섬세한 문장과 등장인물간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망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과거에서 벗어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시인의 성장소설로도 삶과 죽음에 대한 번민으로 가득찬 철학자 고노의 고독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도 갈래를 뻗을 수 있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갱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도 되지 못한 소설'로 가장 소세키답지 않은 작품으로 꼽힌다고 한다. 1908년 아사히 신문 연재작으로 어느날 찾아온 한 젊은이가 소세키에게 그가 갱부가 되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던 것을 계기로 쓰게 된 소설이다. 난폭한 표현을 수식으로 달고 있는 작품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 기대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산시로

배짱 있음과 없음, 촌과 도회, 과거와 현재라는 이분 속에서 소세키 문체 특유의 위트를 느낀다. 세계의 경계에서 이분의 틀 어디에 속하거나, 혹은 그 자체를 무너뜨리며 성장하게 되는 산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결국은 자신을 가늠하게 되는 작품이 아닐까 기대한다. 특히나 표지의 청량한 색채가 눈에 띄는데, 아직도 남아있다는 산시로 연못의 느낌을 표현하려한 표지이겠지 싶다. 실제로 보면 어디까지 색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그 후

전의 산시로에서 조금 더 성장한, 혹은 나이를 먹은 화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대학을 졸업한 서른 살 백수인 다이스케가 '왜 일을 하지 않는 건가'하는 주위의 핍박에도 꿋꿋이 그만의 완벽하고 안전한 세계를 유지해나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문학작품이 고전이 되었음에도 새롭게 재미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 더 재미있는 점은 '산시로'의 산시로에서 '그 후'의 다이스케로 또 그 다음 작품으로까지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다. 다음 작품들이 점점 더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2차분 전집들이 다 모이면 이런 그럼이 될 것이다.

 

아래는 지난 1차분의 전집을 받고 난 뒤에 썼던 글 중 일부인데,

[지금까지 내게 온 소세키의 전집 시리즈를 모아놓은 사진.

소세키 군단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1권부터 4권까지 가지런히 온 모습을 보니 심히 뿌듯하고, 부자가 된 느낌도 좀 든다.]

라고 했으니 앞으로는 더욱 부유한 기분 속에 책장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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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옥 작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다. 그녀의 전작들은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 수준이고, 그녀의 신작은, 예쁜 표지에 이끌려서 읽어보게 되었다. 원체 그런 감각적인 것들이 사람이 뭔가를 행하도록 만드는 가장 1차적인 끌림을 갖고 있는 법이 아닌가!

 

 그녀의 신간을 읽은 후에 이런저런 만남의 자리가 있었던 듯 한데, 사실 한번 정도는 보란듯이 떨어졌던 기억도 있는 것 같다. 그녀가 말하길, 이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으로 갖을 마지막 만남의 장이라고 하니 막차를 얻어 탄 셈이다.

 

 만남이 있던 날은  8월 30일 (목) 오후 7시 30분, 자음과모음 북카페 2호점에서 였다. 태풍은 어찌어찌 보내고 난 뒤지만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많이,라기 보다는 추적추적 집요하게 오던 날이었다. 비오는 날은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대떡이나 부쳐먹고 싶은 것이 게으른 사람의 마음아닌가. 나와 같은 이가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참여율이 저조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문학과 백영옥 작가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꽤 많이 있었다. 온통 "여자!!!!!!!"들이. 

 

 

자음과 모음의 북카페 1호점 가는 길을 간신히 알 것 같은 때에 청천벽력으로, 2호점으로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거긴 또 어찌 찾아가나! 결국 약 1분 거리 앞에서 길을 헤매다 약간 늦게 찾아갔다. 콘서트 자리 준비는 이미 되어있었던 상황이었다. 작가분과 함께 진행을 할 분들이 앉을 자리는 조금 높은 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서로의 시선이 불편하게 닿는 역할을 했던 듯.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되는 미모의 백영옥 작가 대놓고 직접 찍은 사진들. 은근한 렌즈와의 아이컨텍을 느낄 수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방금 시작된 사진들은 여기서 끝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잘 나온 사진인데, 사실, 백영옥 작가의 등장과 함께 그 놀라운 자태에 다들 탄성을 내질렀다. 검은색 옷차림에, 핫핑크 손톱, 은근한 포인트가 되는 장신구, 살짝 높은 단 위에 앉은 자리에서 다리를 꼬게 되..... 한마디로 섹시하셨음. 풍기는 분위기와, 목소리가.

 

 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상당히 암시하는 것이 많은, 다량의 복선을 포함하고 있는 교묘한 ? 소설이라는 점, 이 책을 직접! 읽어서 녹음하게 된 사연-주인공인 사강이 가진 목소리가 아마 작가 본인의 목소리와 거의 흡사할 것이란 얘기- 두 남녀 주인공이 맺어진 이야기는 왜 없느냐는 주변의 의견, 향초는 역시 비온 뒤 이끼가 좋다던가, '슬픔이여 안녕'에 대한 엄청난 오독, 호텔에서 지내는 법과 관련된 누군가의 추억 등등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북 콘서트 답게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도 있었다. 가수 나비씨. 이 날은 목소리의 향연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좋은 목소리들과 함께 했는데, 백영옥 작가의 낭독도 그렇고 나비씨의 목소리도 그렇고, 목소리에 깊이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카페 창문 밖으로는 어두운 저녁 가로등불이 비추고, 비는 계속 내리고, 조용하게 집중된 와중에 퍼지는 울림있는 목소리가 빛나는 시간이었다.

 

 노래와 낭독이 두번씩 오가는 시간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질문을 통한 선물타임도 깨알같이 있었다. EBS에서 라디오를 진행하신다고 하셨나, 했던 분이 전체적인 진행을 맡으셨는데, 흐름이 늘어지거나 쳐지는 일 없이 잘 이어진 것 같아서 부족하거나 더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은 대망의 사인회. 선물타임에 미처 덜 풀린 선물이 여기서 선착순으로 내손에 와있었다!

비를 뚫고 가도 후회없을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 곧 새로운 신간이 하나 더 나온다고 하시며 절찬 홍보도 하셨다. 기대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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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일 목요일 저녁, 편혜영 작가의 신작 '서쪽 숲에 갔다'의 낭독의 밤이 있었습니다.

편혜영 작가의 책은 아오이 가든'과 사육장 쪽으로'를 학부 시절에 읽은 적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처참하고 잔혹하게 느껴지는 작품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편혜영 작가의 글들은 눅눅하고 어두컴컴한 불쾌한 늪지에 발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쓴 작가의 사진을 보니, 예상 외의 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낭독의 밤에 꼭 한 번 가고자 신청을 했지요. 그리고 낭독의 밤에 함께하는 분으로는 시인 신용목 씨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시인의 시집을 읽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

 

낭독의 밤은, 사진은 없지만 숲을 찍은 영상과 음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영상이 알아서 자동으로 끊기며 플레이되는 바람에 어두운 실내, 조용한 음악과 더불어 공포스러운 서쪽 숲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작이었습니다.

 

 

마치 아침마당 오프닝 장면 같은 신용목 시인과 편혜영 작가의 투 샷입니다.

좌측의 이지적 외모를 가진 남자분이 컨셉으로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신용목 시인이고, 우측의 패셔너블한 여자분이 소설에서 사람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고 말씀해주신 편혜영 작가입니다...

 

 

어찌보면 인디밴드의 소극장 공연 같은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이렇게 웃음 가득한 분위기였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지만, 낭독의 밤의 백미인 낭독...

 

 

먼저 편혜영 작가의 1부 끝 부분 낭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약간 낮게 깔린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이 하나 죽어나가고 있는 소설의 장면을 담담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서늘함을 더해주는 편혜영 작가의 해골 바지가 인상적이지요.

 

 

 

 

뒤이어 신용목 시인의 낭독이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좋으시더군요. 곧 새로운 시집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셨으니 그때도 직접 시를 낭독하실 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두 분 외에도 참석한 사람들 중 여대생 한 명이 마지막 낭독을 맡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사진은 생략했습니다.

 

 

이번 낭독의 밤 또다른 주인공, '서쪽 숲에 갔다' 입니다. 소설의 분위기에 비하면 표지가 귀엽습니다. 사인 받았는데 글씨가 귀여웠던 것이 함정이었습니다.

 

 

 

요즘 간간히 읽고 있는 문학과 지성 시인선 290번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신용목 시인의 시집입니다. 그림과 위의 사진을 비교해보는 것이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두 책 모두 사인을 받았습니다. 신용목 시인께 낭독회 마치고 쉬고 계신데 사인 부탁 드려 염치없었지만, 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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