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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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은 끝에서부터 시작된 책이었다. 영화를 만들고 난 뒤 '영화에서 다 말하지 못한 그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9)'를 담아냈다고 한다. 영화 [양양]이 외면했던 상처를 찾아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것이었다면, 책 '양양'은 붕대를 풀어낸 자리에 딱지를 떼어내고 그 상흔을 되새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극적으로 풀어낸 서사를 예상했는데, 풀이는 건조했고 삶은 언제나 그렇듯 극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내 사주는 어땠냐는 질문에 아빠는 기억이 안 난다고 짧게 답했다. 서운했다. 겉으로는 덤덤한 척 그날의 인터뷰를 마쳤지만, 속으로는 터져 나오는 여러 감정으로 혼란스러웠다. 77" 

 결코 진심으로 혼자이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외동이 아니어서 어떤 순간들은 맺혀있다. 크레파스가 12개인지 24개(104)인지 같은 사소한 이유들이었다. 온전히 내게로 주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내 욕심이 사나운 탓에 감당할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어떤 것들은 부러웠다. 어떤 것들은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는 가끔씩 꺼내보게 된다. 잊고 있다가도 접어둔 책장을 한번 펼쳐 눈짓으로 훑어보는 것처럼. 내가 접어두고서도 접힌 곳이 생기게 만들었다는 탓을 하는 걸, 또 우연히 마주친다. 두 명의 양씨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를 생각했다. 

 누구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사진 몇 장으로 남은 사람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괴로웠다. 이제는 없는 사람, 남은 이들의 기억에서 점점 추억도 흐릿해지는 사람을 꺼내고 덧칠해 선명하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내가 잊어가고 있는 사람도 같이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라, 가족 안에서의 여성 서사는 세대의 흐름 안에서 비슷한 면면을 보이는 탓에, '고모라는 렌즈(107)'를 통해 양양의 시선을 함께 따르며, 그저 멀리서 거리를 두고 고모의 지워짐만을 집중해 관찰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생각이 자꾸만 나에 대해 옮아가는 것이 불편했다. 

 "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156" 

 무슨 이유에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고모의 존재가 지워져야 했을까 짧아진 인내심에 답부터 찾고 싶어지는 조급함을 누르며 책을 읽어야 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던 고모(100), 숨겨진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137), 평등하지 않았던 남자친구와의 관계. 고모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질 수 없었다. 여성의 선택이 꺾여나가는 데에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무게가 실리는 일이 그때도 지금도 여전함을 목격한다. 처음 책 안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들이 잦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19)'는 말이 전해지는 의미가 갈수록 달라졌다. 같은 핏줄을 타고 닮은 모습을 찾았다가, 잊히고 숨겨진 쓸쓸함을, 짧아서 서글픈 생애를 가늠하다가, 억울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살라는 경고같다가, 어느 순간 분노하고 싸우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첫번째 기록인 영화를 직접 봤다면 이 울림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 같아 [양양]이 너무나 짧게 스크린에 올랐다 내린 일이 새삼 아쉬웠다. 존재했으나 더는 없고, 지워졌으나 간직되어온 사람,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여성으로 대표되는 서사를 가진 사람을 한 마디의 회한으로 시작해 세상으로 되찾아오는 낯선 발견이었다. 독특한 뿌리찾기를 책과 영화로 만나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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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의 마이 옵티멀 다이어트 - 살찌지 않는 몸을 위한 최적의 식사 전략
박용우 지음 / 김영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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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으로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온 시간의 절반은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도 아직 다이어트를 계속하고 있다면, '마이옵티멀 다이어트'를 보고 당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정말로 하루 식사량이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에는 많이 먹으려면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먹는 것도 잘 안되는데, 전보다 적게 먹으면서 체중 조절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노화 탓을 하고 싶지만 결국 나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의 결과가 몸으로 나타난 것이 맞는 것 같아 탓할 것은 자신 밖에 없을때 '살찌지 않는 몸을 위한 최적의 식사 전략'과 "많이 먹어서 찐 게 아니다, 잘못 먹어서 찐 것이다"라는 문구가 눈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국내 비만 치료 1인자라는 수식에 빛나는 박용우 박사가 제시하는 솔루션이라니. 읽어볼만 했다. 

 먹는 것을 그래도 좀 가린다고 생각했는데, 음료를 마실 때 단맛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설탕 중독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갈비찜, 양념치킨, 떡볶이 같은 자극적인 맛의 음식들을 좋아하는 입맛에는 이미 설탕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식탁 위에는 항상 간식이 놓여져 있는데, 식사를 조금 하고 나서 심심하다는 이유로 빼먹지 않고 간식을 챙기는 습관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새벽에 잠에서 깨는 일이 잦아졌는데 카페인 때문이 아니라 식습관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늘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것이 낫다며 식탁을 넉넉히 채웠는데, 하물며 비타민, 유산균, 밀크시슬, 루테인 같은 것들도 몸안에 꼭꼭 채워넣었는데 과잉도 염증을 유발한다니 이래저래 찔리는 것들이 많았다. 

 단백질, 식이섬유, 필수지방산. 이 구분 안에 드는 식단표를 유심히 보며 그동안 뭘 지나치게 먹고 뭘 간과했는지 헤아려보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들 대부분은 탈락하게 되는 결과가 아쉽지만 대신 내 몸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사실이 명확했다. 단백질이니까 괜찮다며 먹었던 소고기, 돼지고기들은 영양소 밀도가 간당간당하면서 에너지 밀도가 너무 높았다.(102) 장바구니에서 냉동만두와 과자, 잼을 빼면서 두부, 버섯, 새우를 대신 담는데 몸보다 마음이 먼저 허하게 빠져나가는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수가 없었다. 입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초콜렛을 한두알씩 먹곤 했는데 이조차도 중독(180) 증상이라고 하니 이것들을 사서 먹고싶다는 식욕(163)과 구매욕이 생리적인 것인지, 감정적이거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인 것인지 따져보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과자를 정말 오래도록 너무 좋아하는데 초가공식품에 감자칩(222)이 있는 것을 보고 말로만 다이어트를 하고, 식사량을 조절한다고 해놓고 간식을 배로 먹었던 무절제한 습관이 제대로 찔렸다. 바로 운동과 병행하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공복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가며 탄수화물, 당, 술, 밀가루 음식을 피하는 옵티멀 다이어트 4주 리셋 프로그램은 따라해볼만하게 생각됐다. 특히 밥을 매끼니 챙겨먹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은 인상적이었다. 연말 모임을 앞두고 한층 건강해진 대사로 관리를 이어나가고 싶다면 11월이 지나기 전에 옵티멀 다이어트 법을 참고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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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쓴 가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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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가을아. 너 말할 줄 아는 거 다 알아." (33)" 

'안경을 쓴 가을'은 묘하다. 그 안에서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빵을 굽고, 티타임을 가지며, 마치 사람처럼 거리를 산책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는 형을 대신해 안경을 쓰고 형인 척하는 강아지 '가을'이가 있다. 귀여운 상상의 세계가 재밌으면서도 대체 어떻게 된 세상일까 어리둥절해진다. 

동물들은 거리에서 소리 지르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할아버지가 드물게 찾아오는 가족들에게만은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안다. 거리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나눠주는 연인이 때로 다툰다는 것을 안다. 가족들은 안경을 쓰고 옷을 입은 강아지 가을이가 형인 척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생일 축하를 하고 함께 시장을 가지만, 학교 친구들도 아무도 가을이와 형이 바뀐 것을 모르지만, 오직 동물들만이 가을이 강아지임을 알아본다. 

사람들에게 있는 여러 모습을, 오히려 사람들은 몰라주지만 동물들은 지켜보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르는 사실을 지나치는 동물들과 우연히 만나게 된 타인들은 눈치챈다. 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형인 척하는 가을이를 알아본 고양이, 겨울이가 누나를 따라 집으로 들어온다. 가을이는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겨울이가 불편하고 겨울이는 사람 행세를 하는 가을이가 수상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감하고, 가을이와 겨울이의 관계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보인다. 

같은 학교 여자아이가 귀엽다고 했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되어보고 싶었던 형은 집을 떠나 놀이공원, 박물관, 뮤직바, 바닷가를 헤맨다. 길에 버려진 강아지가 새로운 가족을 찾고, 길 위의 고양이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환상적인 세상답게 형의 여정도 무사히 흘러간다. 중학교 2학년인 형의 짧은 외출은 '집 떠나면 고생이라(186)'는 교훈과 함께 마침표를 찍는다. 형이 왜 집을 떠났을까 하는데에는 중학교 2학년이라는 시기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가까이, 내부에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떨어져, 외부로 떠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다는 거리감과 바라보기, 바로보기를 느낄 수 있다. 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형이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겨울이가 산책을 통해 보는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의 다양한 모습처럼, 산책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낙엽 가득한 가을을 배경으로 다가올 겨울까지 계절을 한껏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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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오딧세이 - 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
김태윤.장민영.황종욱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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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은 최현석 셰프가 한 "주방에서 셰프보다 더 높은 것이 재료다"라는 말이다. 제철의 좋은 재료가 음식의 완성도를 높여주기도 하고, 그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마저 셰프의 능력이기도 하다. 요리에 있어 그만큼 재료가 중요한데, '로컬 오딧세이'는 재료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 계절과 지역을 뛰어넘는 접근성과 새로운 농법,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배양육, 고기를 대체하는 채식 재료,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환경이 우리의 식탁 앞에 다가오는 지금 그럼에도 근본이 되는 제철, 특산의 식재료가 우리 식탁과 사회, 삶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맛볼 수 있는 책이라 기대되었다.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식재료를 소개하면서 이 식재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소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희망만 품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반세기가 지나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식재료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솎아내 버려지던 재료를 새롭게 활용하고, 소비함으로써 생태계 유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짚어주는 노력이 엿보여 특별했다. 그 중 하나로 '다 자란 생선 먹기(371)'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금어기를 정하거나 알을 밴 개체, 미성숙한 개체를 잡지 않도록 하여 자원을 보호하려는 노력에도 굳이 불법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홍게(93)를 소개하면서 어획금지 기간을 명시하고 있지만, '빵게'라는 표현을 처음 듣게 된 것도 불법 소비 문제 제기를 하는 기사 덕분이었다. 알을 밴 암컷 게를 뜻하는 빵게는 어족자원보호를 위해 엄격히 소비, 유통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를 별미로 여겨 알음으로 몰래 거래를 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특별한 맛을 찾는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것은 단순 수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홍게와 함께 칠게(168)를 소개했는데, 최근 들리는 말로는 동남아에서 많이 잡히는 블루크랩(청색꽃게)이 수온 변화로 제주도에서도 심심치 않게 잡힌다고 한다. 땅 위에서도 사과, 배 등 오랜 시간 지역명과 함께 붙어오는 익숙했던 특산물 지도가 변화하고 있는 요즘, 책에서도 제주 바다의 변화(220)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처럼 바다 생태계의 변화도 성큼 다가오고 있음이 체감된다.  
 게에 대한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일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가장 재밌게 들었던 메뉴 소개 중에 남발게가 있다. 오늘은 특별히 게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게를 준비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게요리를 내어주었는데, 처음 들어보길래 뭐냐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남이 발라준 게 아니겠냐며 답해와 웃었던 기억이 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게는 역시 남발게가 최고라고 농담같은 진심으로 동의했다. 그 뒤로 게만은 제철이나 로컬보다 남이 발라준 것을 일등으로 치게 되었다. 

인상깊은 다른 재료 중 하나는 제주에서 발굴한 식재료로 나온 메밀(222)이었다. 메밀과 제주, 사실 메밀이라 하면 강원도를 먼저 떠올리게 되어서 의아했는데,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메밀 최대 생산지역이 제주도로 되어 있었다. 강원도의 메밀 생산량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제주도에서 생산한 메밀을 강원도에서 가공하기도 한단다. 한번 지역 특산품으로 깊게 인식이 된 탓에 제주도에 가서 넓은 메밀밭을 여러번 구경하기도 했음에도 고정관념이 되어 생각지 못했던 사실인데, 여기엔 [메밀꽃 필 무렵]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고급으로 여겨지는 귀하고 좋은 재료가 많지만 괜히 파인다이닝 같은 식당에서 계절별로 메뉴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마카세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계절별로 초밥의 재료가 다르게 나온다. 이는 메뉴 구성에 변화를 주어 방문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를 때에 따라 구해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굳이 비싼 값을 내야하는 식당들이 아니더라도, 제철의 음식을 챙겨먹는다고 하면 여름의 빙수, 겨울의 붕어빵 같은 간식거리들도 때에 맞춰 먹었을 때 가장 맛이 좋지 않은가. 미식은 이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 

 '로컬 오딧세이'는 이 가까움을 생생한 현장감으로 바꾸어 전달하고 있는데 재료와 지역, 생산자에 대한 풍부한 소개가 매력적이다. 기장의 말미잘(44)에 대해 소개할 때는 익숙하지만 낯선 재료에 대한 당황과 구도의 자세가 재밌었고, 의외성으로 이것도 먹나 싶었던 것은 말미잘보다 오히려 송순(128)이었다. 솔잎이나 송홧가루는 알려져있지만 송순은 처음 들어보았다. 아말피 레몬(194)에 대한 소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다양성과 변화를 통해 탄소발자국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의 식탁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를 마주해보면, 사실 여전히 회의적이긴 하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그보다 더 넓고 다양한 범위에서 우리의 예상보다 가파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고, 식탁의 변화는 그보다 더디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버티게하는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로컬 오딧세이'를 소개하고 싶어진다. 적어도 한 식탁에 앉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음식만이 아니라, 재료와 시대에  대한 인식과 연대가 함께 공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불어 '먹고 사는 일', 이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예사로이 넘겼던 사소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세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실천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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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작은 기록 습관이 바꿔놓는 삶에 대하여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노경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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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나의 일상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작은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숨어있던 나의 빛나는 가치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이 단호하고 분명한 문체를 어디서 본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읽은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의 저자였다. 저자의 글쓰기에 대해 인정을 하고야 마는 것이, 전부터 제목 하나로 독자를 사로잡는 능력이 대단하다. 일단 이 제목들에 두번이나 홀려 책 앞에 앉게 된 독자가 여기 있다. 

 책은 '자기 역사'라는 키워드로 시작하는데,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기록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자기 역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면 더 잘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자신이 관심있고 재능을 살린 콘텐츠를 이용하면 됐지 그게 꼭 글일 필요는 없는데, SNS를 하거나 브이로그를 찍는 것도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일테다. 다만 글이라는 틀을 가져왔을때 더 좋은점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글로 지은 마음의 집(23)'에서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 주제로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나왔는데 90%가 돈과 집을 꼽았다는 것을 보자, 요즘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대부분 연예인이나 유튜버, 운동선수를 꼽는다는 통계가 생각났다. 가장 흔히 접하고 많은 인기와 수입으로 화려한 생활을 할 것 같은 분야의 사람들을 롤모델로 꼽은 것이다. 전처럼 대통령, 의사, 과학자 일색인 답변이 더 낫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생활과 사유가 필요해보였다. 그게 쓰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자세도 고쳐보기로 했다. 

 소개되는 글들마다 작가의 다양한 개성이 드러나는데 짧기까지 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책을 읽다 '써야 한다'는 압박이 느껴지는 빈 공간을 보고 당황했었는데, 어느새 압박조차 잊고 술술 다음 장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것을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치게 길게 쓰지 말라는 말을 강조-읽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17), 간결함의 미학(125), 하물며 자기 이야기를(178)-하는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저자의 연배를 고려했을때 고루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시선이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어 균형이 맞았다. " 부고는 적은 분량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을 축약해 보여준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되지만 그래서 재미있다.(188)" 어떤 부분은 날카롭다 못해 차갑다. 오직 글에만 빠져있는 저자의 외골수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듯 하다. 쓰는 사람의 이런 시선을 책에서 소개된 요시카와 에이지의 글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는데 그의 다섯살, 열한살 시절을 서술한 내용(180)들은 놀랍도록 성숙하고 자극적으로 전개된다. 

 쓰기를 위한 읽기에 대한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어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잘 쓰기 위해 읽는다는 것은 쓸 것을 생각하며 읽는다는 뜻이다. 보통은 그렇게 읽지 않는다. 61" 그동안 최대한 열심히 꾸준히 읽어나가려고 나름 노력해야왔는데 잠깐 멈춰서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할지, 독서에도 방향이 있어 독자 스스로 그 키를 잡아 방향을 찾아야 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처음엔 책에 있는 주제와 빈 칸이 압박이 되어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책을 읽고 기록을 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것을 직접 쓰는 행위에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천천히 책을 읽는 동안 만나게 된 짧은 '자기 역사'들을 보면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되고, 처음 책의 빈 공간을 볼 때 느꼈던 부담이 점차 나도 해보고 싶다는 자극으로 달라졌다. 쓰기에 관심이 있고, 자신의 글을 쓰는 훈련하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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