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지도 -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
이인식 지음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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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테스트를 좋아하는가?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일 것이다. 근본도 알 수 없는 간단한 심리테스트들이 인터넷에도 상당히 많고, 심리테스트가 아니더라도 혈액형, 별자리, 띠, MBTI 테스트 같은 것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타인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나열되어 있는 것들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살면서 한 번 이상은 지나치기 어려운 판단/증명 도구로 쓰였을 것이다. 사람의 성향을 단 4개의 혈액형으로 구분할 수 있냐는 불신론자의 입장도 이해가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무엇이라도 붙잡아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가 된다. '마음의 지도'에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수많은 노력들이 담겨있다.

 

 성향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마음의 지도' 안에는 다양한 행동 양식에 대한 심리적 요인을 분석한 내용이 들어있다. "마음"의 문제이지만 곳곳에서 뇌 연구 실험을 만날 수 있는데 문득 뇌와 마음은 같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전두엽과 편도체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특히 많이 나오는데, 이기적 본능을 억제하는데 전두엽 자극이 도움을 준다(139)던가, 위협이나 공포 상황을 판단하는데 역할을 하는 편도체(35, 103) 등의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해서 판단했다고 여기는 행동이나, 본능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했다고 느끼는 행동도 사실은 뇌를 거쳐서 나온다면 그 둘은 같은 것 아닐까. 그렇다면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이 시킨다'는 유행가 가사들은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시킨줄 알았던 사랑도 머리가 시킨 것일테니.

 

 이 외에도, 재미있는 사회실험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두사람이 100만원을 나눠갖는 최종제안게임이나 철도에 묶인 사람들의 목숨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대한 트롤리문제 같은 것들은 가볍게 접해본 적 있는 흥미로운 문제들일 것이다. 더 말초적 관심을 끄는 문제로는 키스할때 고개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리는 이유, 섹스 후에 여자가 남자와 끌어안고 있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나온다. 우리가 흔히 보는 키스신에서 배우들이 고개를 돌릴때 혹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봐서 어느 쪽으로 꺾어? 왔는지 떠올려보며 읽으면 흥미로울 것이다. 다만 섹스 후의 반응에 대해서는 옥시토신의 문제보다는 루이스ck의 스탠딩 코미디에서 본 내용이 더 공감가는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본 부분은 가난한 여자일수록 더 일찍 아이를 낳는다(214)는 내용이 담긴 부분이었는데, 기대수명이 더 적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같은 때에는 자신의 삶이 여유롭지 못할수록 출산 뿐 아니라 결혼, 연애까지 삶의 선택에서 제외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소득이 높고 생활에 여유가 있을수록 특히 출산과 육아에 관대하게 가족계획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전에 본 영화 '가버나움'에서처럼 가난한 집에서 피임없이, 아이를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많이 낳는 일이 분명 있지만, 우리사회에서만큼은 반드시 일치하는 결과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밖에 종교인의 도덕성(333)에 관한 내용도 최근에 방영한 '그것이 알고싶다'의 프랑스 교회에 대한 보도와 함께 관심있게 읽었다. 비종교인으로서 십일조에 대한 의미와 종교인 비과세에 관한 문제, 왜 종교인은 직접 노동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함께 떠올렸다. 십일조를 세전 급여에서 계산해야 하거나, 군인들의 월급도 대상이 되는 것 등을 명시해놓은 가이드라인을 가끔 마주하면 물질에 특히 엄격한 집착을 하는 것 아닌가 싶은 판단이 드는 것이다. 더불어 신자들은 종교를 믿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업에도 충실한데 종교인들은 왜 병행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단순한 의문도 들었다. 선교를 떠나는 등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종교에 헌신한다면 자신의 생활비를 직접 해결할 고난의 각오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마음의 지도는 여러면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 일상에서 마주친 적 있는 사회실험들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고, 평소에 지나쳤던 일도 뜻밖의 근거를 달고 나타난다. 거기에 이런 일들도 연구하고 실험을 했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주제도 다양하다. 대부분 전문적인 내용도 약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읽을때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큰 줄기를 따라 5부, 그 안에서 17장으로 분류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평균 6-7개 정도의 소주제로 나뉜다. 전문적인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주제에 대해 흥미를 느낄만큼만 익숙한 예시들로 짧게 정리되어 있어서 내용이 어렵지는 않다.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전체적인 정리같았다. 이런 책을 마주하면 진입장벽에 대해 늘 생각해보는데,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파악하면 안된다는 교훈처럼 다소 딱딱해보이는 외관을 극복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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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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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도 그렇지만, 내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마음 같아서는 책은 30, 나 자신이 70. '에로틱 세계사'라는 제목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있는데 없다. 한 문장에 한번씩 섹스, 페니스, 음경 같은 말이 꼭 들어갈 정도로 오픈되어 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지루하다. 어린시절 처음으로 코스모폴리탄을 샀던 이후로, 미용실 잡지에 손가락을 끼워 페이지 표시를 해놓고 읽은 코너가 있었던 이후로, 성에 대한 내용으로 점철된 텍스트를 맞이하여 지루함을 느낄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바로 그걸 해낸다. 에로틱은 죄가 없는데 세계사 라는 부분이 문제였을까.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 많이 알아서 지루함을 느낀걸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니 내가 알면 얼마나 뭘 안다고 싶기도 하고, 솔직히 tmi인 정보가 쉴새없이 주어지는 내용이라 그게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그 판에 박힌 학교 성교육 수업도 수업 안하고 놀며 때울 수 있다는 기쁨에 설레이고 즐거웠는데, '에로틱 세계사'는 정년 퇴임을 십년전쯤 한 노교수가 연 특별 강의를 수강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피임법(p.35)이 실제로 효과가 좀 있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피임법이라 하면 콜라나 커피를 마셨더니 피부가 까만 아이를 낳았다거나 하는 90년대식 유머같은 허무맹랑한 방법일거라 생각했는데. 인류 문명의 기원이 외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문득 떠오르며 고대인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고 갑니다. 또, 여성의 성욕/성감이 남성보다 아홉배 강하다(p.55)는 부분에서 테이레시아스가 여성의 육체를 버리고 남성을 선택한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생리, 임신, 출산의 문제로 봤다. 여성의 신체가 아홉배 더 섹스를 즐길 수 있다더라도 테이레시아스가 여성의 몸으로 산 7년 동안 아이도 몇 낳고 매춘부로 살았다고 하니, 공백이 없고 오르가슴에 도달하기에 간편?한 남성의 육체로 돌아가길 꾀하는 편이 좀 더 경제적이지 않았을까. 최근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여성의 생리에 대해 과거와 현재 삶의 양식을 비교하여 설명한 글을 봐서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다. 이견 받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와핑'이라는 행위가 관음과 자극을 위한 역겨운 의도가 아닌 근친에 의한 유전적 방어를 위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누이트들의 스와핑(p.131)은 전통적인 '램프 불끄기 놀이'를 끝낸 뒤 태어나는 아이에게 아내를 빌려준 남편의 성을 이름으로 붙여준다는 것이다. 상대 남자의 성을 공공연히 이름으로 쓰는 자식을 키우다니. 이누이트들의 저런 문화가 가능했다면 종족보존은 개인이 아닌 종의 보존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더 크다. 그렇다면 현대의 스와핑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현대의 스와핑에서도 상대방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그들 부부는 상대남성의 성을 따 아이 이름을 짓고 자식으로 잘 키울까. 유전질환을 막기 위한 필요의 이유가 아니라면 스와핑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이유는 뭘까. 문득 스와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간음하지 말라(신 5:18)는 기독교적 결혼관과 불교의 '10선도' 등의 계율을 따르며 생긴 학습된 견해는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는 뒤의 모수오족(p.138)의 섹스 파트너 공동체, 카사노바의 수녀 여자친구(p.193), 미공군의 스윙어 클럽 (p.269) 부분에서도 비슷하게 나온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서는 상상의 간통으로도 교수형(p.173)을 당할 정도로 시선이 달라진다. 성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것이다.


 읽다보니 과거와 현재 동안 수많은 성행위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부분은 있지만, 한번 존재했던 행위가 금기시됐다고 해서 사라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명의 행위들도 그러할까. 과거에는 자행되어 왔으나 현재에는 아예 사라진 문화나 행위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스킨쉽에 후진은 없다는 명언이 인류사의 큰 흐름에도 적용되어 아로새겨져 내려오고 있다니. 모든 연인들은 그 점을 잘 기억하고 단계를 소중히 하도록. 내용 자체는 괜찮기 때문에 아마 성/섹스에 대한 내용이니깐 흥미진진하고 재밌겠다는 고정관념 섞인 기대를 버리고 읽는다면 좀 더 나을 것이다. 과연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섹스는 어떻게 그 모습을 달리하며 이어져왔는가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알고 싶은 학구적인 눈으로 책을 읽기를. 왕년에 잡지 좀 읽었던 우리들은 다음월 호 잡지를 읽는 편이 더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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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미래 인문학 - 새로운 세대를 위한 지적 탐험
윤석만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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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양인을 위한 미래 인문학'은 재밌다. 읽기 편하고, 다양한 주제의 내용을 접근성 좋게 다룬다. 최근에 읽은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철학은...'이 실용의 측면에서 철학을 삶의 무기화했다면 '... 미래 인문학'은 멸종 위기의 교양인을 양성하기 위해 이 정도는 알고 사유해볼 준비가 되있으셔야 하지 않으시겠냐는 제안서 같았다. 물론 읽기보다 보기에 더 익숙한 현대인들의 독해력과 참을성을 잘 고려한 양식으로 읽기에 부담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지대넓얇' 류의 책에 익숙하거나 관심이 있다면 커피체인점 한구석에서 백색소음을 배경으로 무난히 읽을만하다.

 

 이전에 읽었던 '철학은...'이 재밌는 책이긴 했는데, 과연 여타의 소설이나 '~해도 괜찮아' 류의 접근성 좋은책들에 비해 얼마만큼의 반향을 얻을 수 있을까 싶었는다. 그런데 생각보다 인터넷에서 영업?내지는 반응이 보이는게 아닌가. 그 성공의 밑받침에는 '철학은...'의 미끼상품과도 같았던 '르상티망'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그동안 쉽게 '신포도'라고 표현해왔던 개념의 고급스런 대체어를 소개하면서 지적 허영심을 소소하게 채울 수 있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런데 이 '...미래 인문학'은 그 이상의 재미와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몽골, 중국 등의 문화와 역사를 망라하며 미래에 대한 탐구를 곁들이고 있기 때문에 책으로 읽는 '알쓸신잡' 같다.

 

 재밌었던 몇가지 부분을 소개하자면 첫째로 기계, 인공장기와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는 미래 인간을 두고 어디까지 기계와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인공장기를 단 사람을 기계로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에 한 사람의 신체와 기억을 본떠 옮겨와 인공으로 만든 휴머노이드가 있다면 그 사람의 지인은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휴머노이드를 자신의 친구로 인정해줄까? 이런 전면적인 개조가 아니더라도 뇌를 바꾸는 '더 게임'이라는 영화처럼 외형은 바뀌었으나 기억정보를 담고 있는 뇌를 인증을 통해 바뀐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줄까? 이런 가벼운 의문들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는 저출산에 대한 살벌하게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이 문제를 (p.110 7 바보가 돼 버린 사람들)의 내용과 이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역플린효과 혹 덤앤더머로 비유되는 인류의 지능저하 문제에 관련한 카툰을 전에 본 적이 있는데, 교육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아이를 적게 낳고 반대의 경우에서 아이를 더 많이 낳기 때문에 인류 지능의 평균이 낮아지게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재밌는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생활에 여유가 있을수록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기반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못한 경우 둘 다 포기하는 세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 인문학의 바보가 돼 버린 사람들'에서는 단지 부모세대의 교육 소득수준 뿐 아니라 기술발전을 통한 알고리즘 수집을 바탕으로한 선택적 정보제공, 이미지와 동영상 중심의 뇌의 피동화를 함께 언급했다. 다만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는 한편 인류가 가진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인구과잉과 자원 고갈이 꼽힌다는 점이다. 이는 다운그레이드를 추구하는 책 초반의 타노스의 주장(p.69 1 타노스의 변명/ p.198 8 여섯 번째 대멸종, 지구 파멸을 앞당기는 인류)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인구의 문제는 독일과 영국에서 출산률 비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 이주민들로 넘어가고, 난민 문제로 번진다. 거기에 인도나 중국 같은 나라의 보호/관리되지 않는 출생자들과 인권문제도 따라온다.

 

 '미래 인문학'은 친절하게도 책의 한 권에 걸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접근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도록 권한다. 이를테면 철기 사용에 따른 문명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p.211 1 2500년 전 철기 혁명으로 활짝 핀 인문의 꽃) 자연스럽게 관포지교 같은 고사성어를 끌어와 소개한다. 거기에 다른 참고서적이나 이론보다 더 효과적으로 다양한 영화의 내용을 예로 들어준다. 덕분에 대부분의 내용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우민화의 대표적 장치인 3S 중 영화(Screen)가 교양서적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최근 접한 교양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딱딱한 책의 인상에 굴하지 않고 (...) 넓은 관심을 받게 된다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중고등학교의 논술이나 토론 그룹 활동을 하면 괜찮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관심이 높을만한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 쉽고 재밌다. 여러 상황에 참고할 수 있도록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잘은 아니어도 기본은 알고 싶은 초심자에게 반가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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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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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흥미로웠다. 이 책의 장점은 실전을 외치는 극진공수도처럼, 시중 다른 철학서들과의 차별화로 '현실 쓸모에 집중'했단다. 이는 1장 03 혁신과 성과 부분에서 최근 내가 겪은 실전과 맞닿는다. 지인의 회사에서 들려오는 썰을 듣다보면 그 회사는 원론적인 인사관리의 틀을 그대로 반영해 체계를 잡았단다. 직급호칭파괴, 연차/반차 사용시 상급자 결제가 아닌 스케줄 공유, 차등 성과급 지급 폐지 등등 들을 때마다 전형적인 블랙기업에 몸담은 전력 뿐인 나의 이해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미씽 링크들을 품고 있었는데, 비슷한 내용을 이 책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하나인 근로자의 노동/발전 동기를 보상(보상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성장의 동력으로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연구결과, 아마도 임금과 생산성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이 아닌 개인의 성장, 그를 위한 추진으로 보는 시각이다. 근로자의 입장에선 성장이 아니라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건데요? 하는 의문이 든다. 매주 월요일 지난 주에 샀던 로또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커피 한 잔을 성수처럼 받들며 출근해야만 하는 직장인들에게 현실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다 늙어서 성장같은건 됐으니까 그냥 일을 한만큼 보상을 돈으로 달라구요! ...

 

 ... 이렇게 힘차게 외치는 일개미 노동자에게 저자는 칼뱅의 예정설까지 끌어와 "천박한 합리주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베버의 주장이 궤변으로 들릴지도 모른다.(p.79)" 고 재차 강조한다. 하지만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아직도 '노동-보상의 공식'이 사회의 정설로 쓰이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근로자의 성장'이란 주제가 논의의 탁자에 오를 번호표라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사회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개인의 의식은 변화될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 원론적 구조만 끌어와봤자 기업조차 '천박한 합리주의의 피해자들'에게 인류애가 상실될만한 배신만 당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름 재밌게 읽었는데, 이 외에도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일수록 인맥이 넓지 않다'는 제목을 달아놓은 부분은 인간관계 파탄난 사람의 입장에서 읽기도 물리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를 희망차게 바라볼 여지를 준다는데서 좋았다. 하지만 나의 바스라진 인간관계는 자아실현과는 관계없었다. 현실에선 자아실현 잘 된 사람이 인맥도 잘 관리하는 걸로... "악마의 대변인(p.135)"에 대한 내용에선 기본 속성이 회의적인 탓에 회의시간에 참지 못하고 딴지걸어 쓸데없이 일이나 떠안고 정이나 맞던 모난돌이었던 자신을 반성했다. 시키지도 않은 역할을 본능이 주워담았다니 앞으로는 지양해야 할 태도다.

 

 재밌기는 해도 대부분의 내용을 반신반의 했다. 다만 "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이 사회를 이루고 영위하는데 크고 작은 부분 역할(p.4)" 중에서도 가장 작고 작은 부분에 기여하고 있는 나의 철학서 일독이야 별 쓸모 없겠지만, 저자가 역설하는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은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 한마디로 '위험한 존재'가 된(p.6)" 교양없이 천박한 정치가 사업가들이 열심히 돈과 권력을 좇아준 덕분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훌륭히 망가졌는가는 확실히 입증된 탓에 책의 신뢰도는 조금 올라갔다.

 

 하지만 회의에서 본인의 "발언으로 마치 구름 걷히듯 사안을 해결할 실마리를(p.7)" 낼 때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며 놀라고 기쁜 표정으로 물어온다고 묻지도 않은 자기자랑을 드러낸 부분에서는 조금 없던 정도 떨어졌다. 나도 종종 저런 말을 듣곤 하는데 그 경우에 보통 내가 내놓은 생각이 좀 병맛이거나 남 앞에 꺼내놓기 비열한 수를 담고 있을 때 였다. 그 외에는 별다를 것 없는 말을 사회적 립서비스로 추켜세워줄 때다. 저자 본인의 경우도 자의식 빼고 잘 생각해보시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저자가 철학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과거 자행돼 온 잔인한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함을 들었는데, 문득 이 사람 일본인 아니었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쪽 나라 초계기 그만 날리고 말합시다. "아무리 이치에 맞는 말이라 해도 그 말을 하는 화자가 도덕성을 의심받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없(p.71)"음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꼽았다고 했으니. 애국심으로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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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테일님 설연휴 잘 보내시고 늘 건강하소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테일 2019-02-02 20:3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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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기록 앞에서 당연하게도 위축됐다. 먼 옛날 국사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아마 난 안될거야, 틀렸어.'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한게 그때 못했으면서 왠지 지금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그저 막막했다지만, 이제는 머리 속으로 이래저래하면 이렇게 될 거라는 예상 지도가 훤하게 그려져서 실천도 쉬울 것이라 착각하나 보다. 나 자신은 그대로인데. 그래서 예전에는 국사가 어려웠어도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록을 읽기만 하는 거니 괜찮겠지 하고 책을 잡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 참 그대로구나. 반갑다, 나 자신아. 아무리 공부하는게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쉽지 않다. 초심자와 호기심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말 것.

 

 1권을 읽었는데, 전 10권에 달하는 내용 중 당연하게도 이 첫권의 내용이 가장 친숙하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이 알려진 세종을 제외하고, '국사 공부를 시작해볼까'라고 마음 먹었을 때 조선을 건국한 태조 부분만 공부하고 그 뒤로 흐지부지 된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10권까지 다 읽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태조만 보고 그 뒤는 역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겨둔 사례가 또 한 번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이 꽤나 강렬하다. 눈에 띄었던 점은 태조가 차지하는 분량이다. 태조가 1권의 모든 분량을 혼자 소화하는 반면 다른 왕들은 둘, 평균적으로 셋씩 뭉쳐 한 권을 이룬다. 앞으로 나올 세종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다는 게 의외였다. 태조에 대해 실록에 남아있는 부분이 그만큼 많았던 것인지 조선 건국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혁명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분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개인적 경험으로 어린시절 정몽주에 관한 위인전은 읽고 태조에 관한 위인전은 읽지 못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씩 외웠다는 만인의 시조 단심가도 마음에 걸리고, 태조와 이방원, 정도전에 관한 인상이 그리 좋지 못하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심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변방의 무장 이성계가 창업군주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이 있다. 일곱 살 어린 정도전을 스승으로 삼았고, 혁명에 반대한 이색도 끝까지 우대했다."는 소개에서도 정몽주 위인전을 읽고 자란 키드가 가지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린시절 읽었던 책에서는 정몽주가 충절과 이성의 상징이었고 이방원은 잔인한 무뢰한처럼 그러졌기 때문이다. 그 책만 그런건가. 하지만 이성계 측에 선 시선으로 자세히 적힌 글을 오랜 시간 읽다보니 과거에 느꼈던 반감이 좀 사라짐을 느꼈다. 이래서 양쪽말을 다 들어보고 판단해야 된다고 하나보다. 위인전에서 정몽주를 다뤘으면 이성계도 같이 썼어야 했다. 특히 어린 시절에 읽는 것이니 더욱 양쪽 입장을 알 수 있게.

 

 생각보다 읽기 쉬웠다. 여름밤은 덥고, 잠이 쉽게 오지 않아 마실 것 하나를 만들어 한참을 아무 생각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할일이 없다면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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