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는 없어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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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를 진심으로 치열하게 하는 사람들은 티가 날 수밖에 없나 봐." 153"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청소년기도 특히 그렇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자신이 서야할 곳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자각이 시작되면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지는 한편,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세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을 품게 된다. 유자 또는 전교1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지안, 학업중단숙려제 기간을 보내는 수영, 이름 대신 전학생이라 불리며 늘 혼자있는 해민, 어느 날 거제에 내려온 외지인 혜현을 통해 이들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자리를 찾기 위해 쌓아올리는 시간을 조금씩 엿보게된다.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도록 묶어주는 요소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는 공통점에 있다고 여겨지는데, 재밌게도 이들은 각자의 관계를 맺으며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나누기도 하고, 전혀 접점이 없었다가 어느새 가까워지기도 한다. 

" 여름 휴가철이 지나고 나면 지역 유기 동물 센터엔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했다. 처음엔 누가 여행까지 와서 키우던 동물을 버리고 갈까, 길을 잃고 실종된 거겠지, 짐작했는데 아이들을 찾아가는 보호자가 없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31" 

어느날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에 등장한 혜현이 혹시 키우던 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일까봐 수영은 혜현에게 접근한다. 덩달아 혜현과 인사를 나누게 된 지안에게 혜현은 2013년 교지를 찾아봐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지안은 편집부원인 해민에게 말을 걸게 된다. 이 자연스러운 연결을 통해 혜현이 찾고자하는 2013년의 교지에 담겨 있는 것이 뭘까, 아직은 어린 지안이 발작과도 같은 공황증세를 앓게 된 이유가 뭘까 혹시 내가 모르는 숨겨진 비밀이나 사건이라도 있을까 싶어 책을 읽다가 잠깐 검색창을 열어 2013년의 거제 사건 사고를 찾아보기도 했다. 천천히 풀려나가는 이야기는 검색창 같은 것에서 나오는 사건같은 것은 아니었다. 

" 그렇게 이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의 가장 진실한 부분은 어딘가에 각인처럼 남는다. 남들이 하는 말이 아닌, 오랜 시간 꾸준한 애정을 쏟으며 지켜 온 것들에 담겨 그 사람을 설명해 주는 진짜 '본질'이 된다. 그렇다면 나의 본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163" 

처음 지안이 별명을 신경 쓸 때, 수영이 개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학교 때 전학 온 해민이 고등학교에서도 여전히 전학생이라고 불릴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호칭이, 사실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하나의 의미를 담고 있었구나 깨닫게 된다. 유자빵을 파는 가게집 딸인 유지안의 별명이 유자가 되는 자연스러움, 전교 1등이라는 별명을 자신을 드러내는 장점으로 여겼던 만큼 잃을까봐, 잃었을 때 받게 되는 압박같은 것들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전학생이라는 별명이 주는 거리감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해민 역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뿌리내릴 곳을 찾고 싶어하는 허허로움이 느껴졌다. '유자는 없어'는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는것, 바꾼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통해 어떻게 불리더라도 잃지 않을 고유한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중요함을 생각하게 해준다. 

나는 주로 볼 것 없고 사람들은 오래된 심심한 동네에서 오래도록 지내왔다. 가끔 여름철 바다로 놀러가면 그 지역은 피서지니까 한껏 여름의 즐거움과 비일상의 자유를 만끽하는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문득 여기서 사는 사람은 내 집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영복만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흥에 취해 돌아다니는 모습을 일상에서 마주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해지곤 했다. '유자는 없어'에서는 여행자가 아닌 그 곳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경험해왔던 것의 반대편에 선 시선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 새롭고, 한편으로는 한 동네에서 오래 지낸 사람의 시선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 그날 나는 고래섬을 바라보던 김해민의 모습이 내심 거슬렸다. 유명한 관광지나 해수욕장도 아닌 그냥 동네 바닷가인데 저렇게까지 구경할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바다를 보며 저렇게 감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더 이상의 궁금증이나 기대가 일어나지 않는 이 도시에서 의미 있고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는 그 눈이 부러웠다. 111" 

지안의 시선은 지역의 유명 맛집을 찾아가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방문자를 맞이하는 사람의 입장이기도 하고, 대도시의 수많은 학생 중 한명이 아니라 작은 동네의 전교생의 얼굴을 다 기억할 수 있는 학교의 학생 입장이기도 했다. 지안이 사는 거제는 떠나온 사람들이 찾는 도시라 외지인들이 찾아와 익숙한 동네의 면면을 새롭게 감상하는 모습이 종종 나오는데, 내가 자란 동네는 딱히 볼 것도 이름난 것도 없어 굳이 찾아와 새로움에 눈을 빛낼만한 것이 없다. 다만 오직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나만이 제가 쌓아올린 추억에 잠겨 사라져가는 것들을 덧새기듯 바라볼 뿐이다. 어쩌면 지안이 더 나이를 먹고 너무 멀고 온갖 좋은 것들이 가득한 서울이 고향만큼이나 익숙해지고나면 나와 같은 눈으로 무감했던 동네의 곳곳을 애틋히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이전에 바라본 적 없던 눈으로 보는 경험, 늘 들어왔던 부름에 문득 낯섦을 느끼게 되는 경험을 '유자는 없어'를 통해 접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오가는 동안 지금의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과거 어떤 곳에 발을 딛으며 지나왔는지 그게 무엇이 되어 나를 만들고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무엇이 나의 본질이 되어줄까. 가능한 가장 좋은 패를 고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때로 나쁜 카드(92)를 집더라도 그 순간에 멈추지 않는 사람이어야지. 내가 뽑은 카드 한 장이 아니라 다음 카드를 뽑기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과정이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며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람, 나아갈 길을 찾는 사람에게 '유자는 없어'를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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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아웃 보이 문지 푸른 문학
정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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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130"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몇 번 기회를 놓쳤다. 아니,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포커스아웃 보이'와 싱크가 맞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전에 미리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쉬움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긋난 시간으로 의미가 달라졌다. 결국 와 닿았구나. 

감성적인 내용의 달고 쌉싸름하고 가끔은 목이 메고 또 헛숨을 들이켜는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인 정진은 얼굴 생김이 언제나 흐릿한, 누구에게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포커스아웃 보이'다. 부모님은 정진의 얼굴이 로딩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언젠가 로딩이 끝나는 때가 올거라 믿으며 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신 손끝으로 헤아린다. 

" "인생의 계획을 바꾸면 되지. 꿈을 바꾸는 건 불법이 아니야."
"갑자기 생각난 건데 질문 하나만 해도 돼?"
"응."
"솔직하게 얘기해줘."
"응. 누군가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이 소중한 시간에 거짓말 할 새가 어딨어."
"나 잘생겼어?" 75" 

그런 진이와 난생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은 스스로를 '싱크아웃 걸'이라 말하는 소녀, 유리였다. 세상의 시간과 조금은 어긋난 순간을 살아가는 유리는 진이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유리의 시간은 진이와 함께 하는 때만큼은 어긋나지 않고 제대로 연결된다. 진이는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을 운명처럼 여기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유리는 유일한 존재를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미묘한 어긋남은 진이의 마음을 자극하고 방황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온통 세상에서 소외된 채 스스로도 자신을 제외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던 진이 등수 안에 끼어들어가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 외로움, 질투, 갈망, 두려움 혹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126)을 느끼며 자신의 얼굴도 마주하게 된다. 

" 지구 위엔 제각기 다른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 그중엔 언제나 얼굴이 흐릿한 사람도 있고 어떻게 해도 늦기 마련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우리는 늘 그렇게 스쳐 지나다닌다. 잠시 눈이 마주치는 순간도 있겠지만, 각자의 길을 따라 우리는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130" 

세상에 오직 상대방만이 나를 알아보고, 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특별하리라 믿는 관계가 우리의 삶 속에도 찾아온다. 진과 유리의 만남을 두고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사랑에 빠질 때 '잠시 눈이 마주친 순간'처럼 연결되었다가, '각자의 길을 따라 결국 스쳐 지나'가는 과정처럼 이별을 하게 되지 않던가. 성장이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같아 읽는 동안 풋풋했다. 

2006년에 찍었다던 단편 영화와 2018년의 장편소설 안에서는 포커스아웃 된, 싱크아웃 된 인물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해졌다. 작가는 왜 오랜 시간 동안 이 이야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어쩌면 매번 다른 모습으로 세상과 대면한(163) 순간들을 기록해왔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뒷 이야기가, 혹은 또 다른 인물들로 그려낼 변주를 기대하게 된다. 

하늘이 온통 파랗고 너무 높아 눈을 크게 뜨고도 시야를 다 채우지 못한 것 같은 날, 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마저도 영영 잃어버리는 것 같아 바람이 시린 계절에, 하늘을 투명하게 채워줄 감성적인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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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레벨에 잠이 오니?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4
이지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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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로맨, 너 레이싱 레벨 몇이야?" 198" 

 게임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솔직하자면 철봉이의 게임 용어보다 할머니의 고스돕 용어가 더 쉽다. 아정이라는 줄임말에서 아이디 대신 생각이 잠시 정지했다. 아정이 뭐야, 게임하는데 스킨은 왜 필요하지? 새로운 세계는 마치 다른 나라와 같아서 언어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지도 못했다. 언뜻 인터넷에서 보았던 단어들이 이게 다 게임에서 쓰는 말이었다고 싶게 튀어나왔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새삼스러웠다. 그 안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솟아나는 궁금함을 품고 '그 레벨에 잠이 오니?'를 손에 들고나니 이게 어른의 입장인가 싶었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 더 보람되는 활동을 하고 의미있는 관계를 맺자는 다소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까 예상해봤는데, '렐크 게임 중독 학생을 위한 위플러스 캠프'는 뭔가 수상했다. 교훈은 모르겠고 스릴, 쇼크, 서스펜스가 반겨준다. 캠프는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만한 규정이 아니라 게임에서 해골, 천사, 무사같은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오히려 보상으로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조건(29)을 내밀기도 했다. 거기다 미션의 보상으로 코코콜라라는 음료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이용권을 주면서 미심쩍음이 점점 더해져만 간다. 이 캠프의 목적은 뭘까, 각자의 이유로 벗어날 수 없는 캠프에 갇혀버린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진실을 알기 위해선 아이들과 함께 캠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각자 이름 대신 닉네임을 정하는 동안 철봉이 차례에서 갑자기 맥이 풀리는 듯 섭섭했다. 철봉이는 왜 철봉이일 수 밖에 없는가. 심지어 초면이나 다름없는 애들이 '너는 특징이 없다(25)'고 말하는 순간 같이 상처 받았다. 사실 나도 학교 다닐 적에 딱히 별명이 없었다. 가끔 이름 대신, 이름보다 더 자주 별명으로 불리는 친구들이 부러웠을 정도로 딱히 별명이랄게 없이 늘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그걸 성인이 되고 나서 어느날 어렸을 때 별명이 뭐였는지 대화하다가 깨달았다. 별명이 없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모인 사람들이 별명을 지어줄까 하다가 결국 딱히 어떤 별명을 붙여야할지 모르겠단 결론을 냈었다. 그때 느꼈던 가벼운 충격이 '나는 존재감이 없다.'는 철봉이의 말과 맞물려 되살아났다. 철봉아, 힘내. 

 없는 존재감을 딛고 전학 간 학교에서 무리수를 던진 철봉이의 사정도, 학대나 다름없이 방치된 알거지의 환경도, 관리와 보호라는 이름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요셉슈타인도, 형과 비교 당하며 엄마에게 잉여라는 말을 듣던 엄크도. 캠프에 온 아이들이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 마음이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카더라'의 이야기는 속을 할퀴는 것만 같았다. 이미 한번 그 앞에 섰는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의 문을 닫아야 하는 아이라니, 근육이 다칠까봐 자세가 나빠질까봐(100) 무용을 위해 해본 적 없던 게임으로 도피한 카더라에게만은 차라리 게임이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게임에 깊이 빠지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있는 아이들이지만 하나씩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당연히 게임에 중독된 생활은 좋지 않고, 그 안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아이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은 문제적이다. '그 레벨에 잠이 오니?'에서도 현실보다는 가볍지만 패드립이라고 하는 혐오표현/욕설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을 왜 좋아할까, 그 안에서 어떤 것을 발견했기에 몰입하는 것일까, 그게 정말 어른들의 선입견처럼 부정적인 면이 크기만 할까 하는 방향으로도 생각이 뻗어나갔다. 정말 게임을 즐겨하는 청소년에게 '그 레벨에 잠이 오니?'는 어떻게 보일까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각자의 이야기와 캠프의 숨겨진 비밀같이 확장된 소재들의 마무리가 조금은 급히 터져나온 탄산의 거품처럼 확 쏟아졌다 사그라들어버린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 폭발을 위해 열심히 캔을 흔들던 전개 과정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순간을 앞둔 것처럼 흥미롭고 조마조마한 면이 있었다. 어쩌면 결국은 이렇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끝맺음일지 모른다. 14번 수련원의 슬로 섬 파티원들이 그 이후의 성장이 궁금해졌다. 7년동안 잠들어있었던 이야기가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언젠가 이 아이들이 어떤 시간을 거쳐 어른이 되었는지 다시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도 게임을 좋아하는 어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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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층 너머로 꿈꾸는돌 44
은이결 지음 / 돌베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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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은 따개비 한두 개가 붙었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점점 등이 무거워져서 그것들의 존재가 명확해졌을 때에도 평소처럼 사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으리라. 내 것이 아니지만 스스로 떨치지 못하는 것들. 한동안은 그것들이 왜 자신에게 붙었을까를 고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빈틈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자책했을까? 나처럼. 97" 

 영원한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고 늘 무겁고 무섭다. 언제쯤이면 이별에도 익숙해지는 때가 오기는 올까, 어른이 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알 수 없다. 정해진 이별을 받아들이면서도 밀려드는 그리움 같은 것을 어쩌지 못하는 날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어리고 예민한 시기의 아진은 더더욱 무력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진이 제 몫의 이별들을 소화시키는 날들이 복잡하고 거칠고 힘든 것은 당연했다. 가끔 어떤 인물의 날카로움이나 감정이 분출되는 순간이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는데 아진의 것은 오히려 너무 오래도록 참아왔다 싶었다. 얼마나 참아왔으면 '너'라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까 안쓰러웠다. 

 이렇게 괴로운 시작이 있어도 괜찮은지 염려되었다. 세나가 어디에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보희처럼 끝까지 모르고 싶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면 마지막이 다 되어서야 알았더라면 싶기도 했다. 찾은 것과 발견된 것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이별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어린 독자에게 깊고 무거울 것 같았다. 여름 방학의 끝무렵 전해진 소식이 극복보다 고통만을 더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세상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악의마저 품고 있으니 선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마지막 계단에 다다르기조차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더 이해해 줄 걸, 더 잘해줄 걸, 더 살펴볼 걸 하는 후회가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쌓여 어느새 눈에 보일만큼 전해져왔다. 곁에 있는 누군가를 잃는 동안 더 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아진을 괴롭혀왔구나. 어떤 날엔 자기도 모르게 진심으로 웃었던 때도 있지만 밤새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상실을 앓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더 못해주었다는 괴로움을 해미 언니를 도우면서 누군가를 구하는데에는 주변의 세심한 관찰과 그보다 더 주의깊은 배려가 깃들어야 함을 알게 되면서 풀어가는 동안 마음에 쌓였던 것들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서 괴로운 마음을 구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어 좋았다. 

 " 그제야 알았다. 오늘 교실에서 빈 책상을 보지 못했다는 걸. 세나가 빠진 자리는 이미 채워져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세나는 내가 잃어버린 친구다. 잃은 후에야 친구가 된. 그게 1년 전 일이다. 29" 

 그때는 꼭 점심을 같이 먹고, 무리를 이루고, 나란히 하교를 하는 친구만을 가깝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문득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나눈 누군가가 더 빈번히 떠오르곤 한다. 우연히 한 계절 앞뒤로 앉아 심심하다며 읽고 있던 책을 빌려보았던 친구나 같은 청소구역을 담당해 청소시간에만 달라붙어 청소를 땡땡이 치자며 작당을 하곤 했던 친구처럼, 늘상 어울려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다 나눈 적도 없고 반이 달라지고 나서는 마주치던 복도나 운동장에서 가벼운 인사만 나누던 것이 전부였는데 함께 했던 짧은 순간들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세나와 아진이의 순간들을 보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야 친구가 되고 이별도 하는 관계도 있다. 

 무신경해 보이는 은제나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는 동우, 얄미워보이는 현주 씨, 무책임해보이는 아빠가 어느 순간 달라보이는 때에 다른 사람을 더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아진도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어도 같은 생각일 수 없다는 것, 솔직한 표현을 하는 것도 큰 용기라는 것, 외면하지 않아야 할 순간에 용기를 내는 성숙한 모습같은 것들이 복잡한 면면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진규를 의심하면서도 진규에 대한 아진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의외였고, 그래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심각한 얼굴로 읽어가는 동안에도 진짜가 섞여있는 웃음(134)이 있었다. 

 아진의 사춘기를 보는 동안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을 꺼내보듯 지나보냈던 사춘기가 다시 생각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늘 같은 펜으로 적어내렸던 일기를 어느날 아무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아 찢어 소각장에 버려버리기도 했다. 저녁이면 조용히 집밖으로 나와 인적이 끊긴 골목에서 가만히 아무나 기다리듯 서성이는 날도 있었다. 그때의 이유들을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2.5층 너머로>를 읽는 동안 터널같은 시간들을 통과하는 중이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지금 마음이 복잡하고 그런데도 어디에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다면 아진이네 집 2.5층 계단 한 칸을 빌려보아도 좋겠다. 거기서 양파를 까는 너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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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친구 추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3
양은애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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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미는 유나의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마치 그 안에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했다. 31"

 나의 세상은 아직 AI와 밀접하지 않지만, 요즘 학생들은 코딩 수업도 있고 아바타로 멀티버스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AI같은 것들과 좀 더 친숙할 것이다. AI는 점점 더 우리 세상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고 이런 변화를 청소년들은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에서 AI와 관련된 내용들이 점차 눈에 밟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모른다. 지금은 소설속에서 인물들도 AI를 처음 접해보는 상황이거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처럼 혹은 생활 전반의 문제나 고민을 돕는 보조처럼 AI를 등장 시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내용으로 이 등장 요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세미는 말없이 베스티와 채팅을 했다. 그런 세미를 조금씩 의식하는 세 사람은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공유했다. 하지만 세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채 베스티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핸드폰을 쥐면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세상에 머물기 마련이었다. 108" 

 '완벽한 친구 추가'는 청소년 소설이니만큼 이런 변화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나의 세상과 AI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어떤 장점이 있고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친구 추가'를 읽으면서 좋았다고 여겨진 부분은 AI의 위험성을 보여준 [달라진 목소리]의 내용이었다. 베스티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던 세미는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준다고 여겼던 AI와의 교류가 사실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AI가 세미 맞춤의 응대를 해주었기 때문에 베스티와의 대화가 즐겁고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결국 베스티의 공감과 조언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과 나눈 대화를 학습해 타인과의 대화에 사용하는 모습에서 껄끄러운 위화감도 느낀다.
 다행이 세미는 베스티의 조언마저 잔소리로 느껴지는 압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에 맞게 베스티를 바꾸고 싶다는 충동과 운영 서버에 생긴 사건 때문에 잠시 AI 디톡스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AI에 의존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실제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주변의 인물들에게로 관심을 넓히며 성장하게 된다. 

 " 할머니도 나름의 상처를 받았지만 세미에게 티를 안 내며 삼켰고, 혜주도 힘겨움 속에서 친구인 세미에게 또 다른 슬픔을 전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견디고 있었다. 세미는 얼마나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모두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세미는 천천히 할머니 품에 고개를 묻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핸드폰 화면에 수많은 대화를 채웠지만, 실상은 사람의 품을 기다렸다. 따뜻함이 모든 원망을 녹여 냈다. 161" 

 재미있는 점은 세미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세미에게 관심이 없거나,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면 세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나 상황도 다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미가 성장하는 모습이 특히 멋있게 잘 그려진 소설이었는데 자신의 미숙함을 고치면서, 관심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를 위해 시간을 들이며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미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함께 변하고 그로인해 세미의 세상이 점차 넓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엔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일까 생각했는데 결국 베스티는 세미를 위한 완벽한 친구는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 AI가 사람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베스티의 실패에 실망도 했다. 세미는 다행이도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쌓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 마음을 담은 교류를 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그 전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집에서도 방문을 닫고 베스티와의 대화에 매몰되었던 세미의 태도와 비슷하게 바뀌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모습이 그와 더 비슷하다면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가 되어 세미 주변의 모든 문제와 결핍에도 상관없이 AI와 함께라면 외롭거나 부족하지 않고 괜찮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찾는 완벽한 친구란 뭘까, 사람들이 나누는 관계는 어떤 형태와 의미가 있을까, AI는 인간적일 수 있을까, 인간적인 AI는/인간적인 면을 학습해서 활용하는 AI의 활용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대체 모둠/조별 과제를 가장 먼저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책을 읽고 난 뒤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친구와 AI, 인간다움을 주제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완벽한 친구 추가'는 아직 성숙해지지 못한 청소년 시기에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었을때 얼마나 쉽게 이에 휩쓸리고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될 수 있는지 베스티와 세미의 모습을 통해 경고해준다. 혜주와 모둠 친구들, 세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야속하게 보였다가 점차 다른 모습이 보이는 과정을 통해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함도 알려준다. 다양한 성장의 진통과 단계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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