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스터 타이거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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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파라면 세상도 파래?" 
"나는 그대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어요." 
...
설날 널을 뛸 때, 단옷날 그네를 탈 때, 제 시선 아래 훤하게 트이던 세상을 계손향은 사랑했다. 그리하여 노월 또한 제가 사랑한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길 바랐다. 그대와 나는 같은 세상을 본다 하였으니. 88" 

책을 읽으면서 올해 초에 봤던 [광장]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광장]은 북한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 서기관으로 파견 온 보리와 교통보안원인 복주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냈다. 차가운 겨울의 평양 거리를 배경으로 둘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거리를 두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으로 산책을 대신하고, 같은 식당 안에서 다른 테이블에 각자 마주 앉아서 식사를 대신하고, 늦은 시간 혹은 다리 밑의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만 대화를 나눈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1883년 미국에서 온 사절단 노월과 조선 한양의 기생인 계손향 사이의 연애담이다. 파란 눈과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서양인이 낯선 시대, 노월과 계손향도 다른 외모를 가진 노월을 신기해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며 함께 거리를 걷는다. 친구인 영월마저 계손향이 노월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폄하하고 비난하는 시선을 보낼 것이 염려되어 항상 주의를 준다. 이런 편견과 평가의 시선이 아직도 일부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영월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세간의 이목을 피해 서로의 마음을 나눠야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닮은 모습을 그린다. [광장]의 두 사람은 결국 감시자들에게 관계가 발각되어 보리의 체류 기간 종료를 고지한다. 처음부터 정해진 이별을 안고 있었지만,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현실 앞에서 보리는 복주에게 함께 떠날 것을 청한다. 마찬가지로 [안녕, 미스터 타이거]의 노월 역시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이 고향에 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노월과 보내야하는 것을 아는 계손향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 월이의 목소리가 닿은 귓바퀴가 아직 간질간질한데, 월이의 손길이 닿은 손등이 아직 훈훈한데, 세상은 불 꺼진 듯 온통 적막하다. 사람이 난 자리가 이렇게 크다. 고작 한 사람 자리가 너무 크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온 세상이다. 229" 

시대과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은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이국의 남성과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조선/북한의 여성이 주인공인 것, 외모부터 사고방식, 서로의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배경과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는 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차가운 현실 앞에서 겪게되는 좌절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차별과 통제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곳이 되도록 왜 노력하고 꿈꾸어야 하는지 함께 느끼게 된다. 

노월과 계손향이 15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보리와 복주같지 않았을까. 앞으로 시간이 더 많이 지나고 난 뒤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세상에서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는 차별도 금지도 통제와 편견도 없는 세상에서 마음 편히 사랑만 할 수 있을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 문장과 영상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표현을 만끽하며 조심스럽게 키워나가는 투명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니 꼭 함께 즐기고 비교도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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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 - 2026 뉴베리 아너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오브리 하트먼 지음, 마르친 미노르 그림, 황세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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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지 못한 영혼은 어디로 갈까?" 225"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의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말일까 다시 읽었다. 항상 같은 계절에 머무르는 숲, 생명이 살지 않은 숲에 죽었으나 영혼이 완전한 안식을 찾지 않은 여우가 살고 있다. 여우는 한쪽 눈을 잃고 귀도 상했으며 털도 고르게 남아있지 않아 사고가 났던 때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있는, 보기에 따라 무서운 혹은 혐오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여우의 이름은 클레어. 클레어는 죽은나무숲에 머무르며 길 잃은 영혼들이 가야할 곳을 안내해주는 길잡이다. 영혼들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나 있는 문들 중 자신에게 맞는 하나의 문을 찾아가야 한다. 금빛으로 빛나는 동쪽은 쾌락계, 즐거움을 추구하던 이들이 간다. 서쪽은 초록빛의 발전계로 노동과 봉사와 노력을 사랑한 이들이 간다. 북쪽, 평화계는 연푸른빛이다. 안식에서 기쁨을 찾는 이들이 간다. 그리고 진홍빛의 남쪽은, 고통계다.
클레어가 머무는 오두막에 길 잃은 영혼이 찾아오면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맞이해 영혼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살펴 더이상 길을 헤메지 않고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길을 잃은 영혼들은 지친 영혼을 달래줄 무언가를 갈구하며 특유의 갈증(22)으로 괴로워하는데, 길잡이인 클레어의 도움으로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문으로 가게 되면 다시 길을 잃고 헤매다 갈증에 시달리며 클레어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클레어는 이 일에 매우 전문가이다. 

" 클레어는 브릭베인의 쉰 목소리를 떠올렸다. 절대 죽은나무숲 밖으로 나서면 안 된다. 너한테는 여기가 제일 안전해. 94" 

상처입은 외모 때문에 다른 동물과 아이들에게 거부당하며 괴물이라 불리는 클레어는 늘 외롭다. 너무 괴로웠던 때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가족도 곁에 있어주지 않은 채 혼자였다는 것이 클레어를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상처받았다. 클레어는 버섯밭에서 키우는 각색의 버섯들과 특별한 '선장'에게 의지하며 길잡이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클레어가 너무나 싫어하는 오소리의 영혼이 오두막을 찾았다. 그리고 멈춰있던 클레어의 시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읽히지 않는 영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오소리의 영혼은 어느 방향으로 보내도 다시 돌아온다. 오소리의 영혼이 갈 곳 없이 헤매는 동안 클레어는 오소리의 이름이 생강촉새라는 것을, 그에게 항상 쓸모없다고 질책하는 아빠와 독특한 이름을 가진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레어는 교활하고 못된 오소리를 싫어했지만 생강촉새는 달랐다.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챙겨주었다. 생강촉새가 오소리답게 오지랖 넓게 군 질문과 행동들은 클레어의 마음을 두드렸다. 클레어의 멈춰진 세상은 생강촉새와의 만남으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쓸쓸하면서 따뜻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 우리가 눈 앞의 작은 것들에 매여 머물러있는 동안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괴로워하는 클레어를 보면서 제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는지,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기 전에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해보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상처가 남긴 흉터만 기억하다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하고 위로해주려고 했던 존재들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강촉새는 클레어를 두드린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얽매어있는 클레어에게 질문하고, 클레어가 아끼는 것들을 사랑하는 방식을 일깨워주고, 싫어했던 오소리와도 진짜 친구가 되도록 다가온다. 그리고 클레어가 미뤄왔던 길을 가도록 해준다.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를 읽고 아이들이 클레어에게 어울리는 문은 어떤 것인지, 어디에 도착했을지 생각해보고 나는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문으로 가고 싶은지 골라보는 독후활동을 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더불어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통로, 유도 울타리, 버드 세이버 활용 예시를 함께 찾아보고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내용이 적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성인까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하고 환상적인 동화였다. 마지막까지 감동과 놀라움을 놓치지 않고 독자를 사로잡는 죽은나무숲의 오두막에 기꺼이 방문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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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펄로 키드 미래그림책 200
라스칼 지음, 루이 조스 그림, 밀루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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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앞만 보며 달려갔고, 지나간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누구도 무엇도, 그 힘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지요. " 

'버펄로 키드'를 앞에두고 이미 세상에 없는 새 카우아이오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토착새인 카우아이오오는 오오과 종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작은 새로 1987년 마지막으로 발견된 수컷 오오의 짝을 찾는 울음소리 녹음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2000년 카우아이오오는 공식적으로 멸종 선포 된다. 이 마지막 오오가 남긴 울음소리 녹음은 '다시는 오지 않을 암컷을 부르는 소리' 코멘트와 함께 인간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를 참담한 마음으로 되새기게 한다. 한때 박제사였던, 그리고 '버펄로 키드'로 남은 잭 본햄의 이야기는 남획되어 멸종 위기에 처했던 북아메리카의 커다란 들소 버펄로를 두고 몸길이 약 20센치 남짓의 카우아이오오와의 닮은 점을 찾게 만들었다. 

버펄로가 멸종되기 전에 잡아 박제를 만들어 보관하려고 길을 떠나온 박제사가 버펄로와 함께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목격한 수많은 뼈의 무덤과 가죽이 벗겨진 채 버려진 버펄로의 몸을 통해 박제사는 새로운 박제 대상에 대한 흥분과 기대의 마음 대신 생명에 대한 의미와 소명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늙고 커다란 야생 버펄로와 마주하게 된 순간 그 눈에서 확신을 얻게 된다. 동물의 그 눈,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떠올리다보니 아프리카에 갔을 때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을 맞이하던 얼룩말을 본 기억이 났다.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던 몸을 가르는 독특한 털 무늬보다 더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건, 파리가 날고 축축한 눈물이 고여 핏발이 선 얼룩말의 눈이었다. 한 생명과 강렬한 조우를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자연이 그 앞에 선 인간을 어떻게 압도하는지 경험하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지나보내지 않고 그 안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던지고서야 박제사는 버펄로 키드가 되었으리라. 

'버펄로 키드'는 마지막 버펄로가 울음소리를 남기기 전에 그 심각함과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담아낸 아름답고 강렬한 생명력을 품은 그림책이다.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 할지 아이는 물론 어른 독자에게도 짧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버펄로 키드'를 읽는 동안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그림책이 생각났는데 함께 읽어보고 사라진,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의 숭고함과 가치를 깨닫고 자연과 생명의 끈질긴 회복력이 주는 놀라움과 감동을 더불어 느껴본다면 좋겠다. 

" 마지막 나무가 쓰러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히면 
사람들은 그제야 알게 될 거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 시팅 불"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글 / 프레데릭 백 그림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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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탐구 생활
이다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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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탐구해야 한다고? 나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는데 내가 그걸 몰라? 나 정도면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인데, 그걸 꼭 연구씩이나 해야 아나? 싶었다. 순간 반발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른인 내가 이미 겪어봤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완전함에서 누가 몇 조각을 뺏어가 불완전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영포티스러움을 넘어 어린이성/어린이다움/어린이스러움 까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잠깐 과열된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찬물을/아아를 주입한다. 정신차려, 어른이랍시고 주제넘다. 알고 있다는 착각 대신 주제넘게 굴지말라는 채찍을 휘두르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었다.  

유행했던 말들 중에 '*린이'라는 표현이 거북했다. 유행하는 말들이 으레 그렇듯 또 그때는 그 표현이 가장 찰떡같이 붙어 대체할만한 다른 말이 마땅히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도 초보/신입이라는 말을 굳이굳이 붙여서 피해다닐 정신은 남아있었다. 그 말이 왜 거북했냐면 카페나 음식점 같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마저도 성인이용자의 편의와 쾌적함을 위해 노키즈존을 해도되네 마네 하는 말들로 피곤했던 상황과 겹쳐, 생활 공간에서 아이/어린이를 몰아내고 싶어하면서 자신의 미숙함이나 부족함을 이해받고 싶은 욕망에는 어린이를 끌어다붙이는 어른의 이기심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제 초보로 시작했으면 한거고, 지가 못하면 지 실력이 부족한거지 뭘 거기다 어린이를 가져다붙인담. 

그리하여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 것은 가졌기 때문에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에 대해 깨부수는 깨달음의 과정이자, 내 마음과 추억의 방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리는건 재밌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잊힌 부분도 많고, 과거에 대한 미화와 추억 보정으로 인해 공정치 못한 기억들만 남았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이불을 걷어차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만큼 수치스러운 기억만 갑자기 생각나던데, 일부러 추억을 떠올리면 꼭 나만한 어린이/청소년도 없었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SNS에 '라떼' 얘기를 할 때면 꼭 묻지도 않은 제 자랑을 늘어놓나보다. 

주인공인 '이다'의 이야기를 읽다가 벼락같이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가 어른에게 혼이 나서 난데없이 억울했던 어떤 날, 같이 있던 친구가 너는 무슨 다리를 그렇게 벌리고 앉아있냐며 이상한 듯 거북한 표정으로 한마디했던 묘한 순간의 기억(55)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치마도 아니고 바지를 입고 있는데 왜 그러지? 뭐 어때?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던 것 까지 묻어두었던 언젠가가 불러오기 한 것처럼 기억 속에서 튀어올라왔다. 옆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넓게 벌린 것도 아닌데 여자가 다리를 모으지 않고 앉았다는 이유로 받았던 시선과 불편한 기분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영향을 준다는 것이 찜찜했다. 

읽으면서 과감하고 파격적인 내용이라 놀라웠던 '이상하고 아름다웠던 꿈(72)'은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9세가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니, 정말 성은 본능의 영역이란 말인가? 궁금하면서 내심 당황스럽기도 했다. 더불어 이렇게까지 솔직한 내용을 담아두다니 당시 부반장이었던 친구가 만약 어린이 이다와 동창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책을 읽다 놀라는 것은 아닐까 혼자 대리 수치를 고민했다. 나만 놀라고 민망하고 부산한 와중에 저자는 이것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내가 반장'이었음을 밝힌다. 그래서 결국 피식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덮으며 10계명(102)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어린이를 위한 어떤 존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함부로 신체를 만지지 않을 것, 외모에 대한 언급, 칭찬도 하지 않을 것, 반말을 하지 않을 것,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작가가 꼽은 다섯개의 조항(66)들도 다 괜찮았는데 그 중 몇 살이냐는 질문은 예상 외였다. 특히 어린 나이 대 중에는 습관적으로 저는 몇살이고요, 저는 몇학년이에요. 하는 소개가 나오는 어린이들도 많아 예민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는데 앞으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대화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린이었던 지난 날에 대한 추억을 펼쳐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 종종 책을 읽다 멈출만큼 좋았는데, 어린이의 눈으로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다면 어떨까?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을까? 예전의 어린이와 지금의 어린이들은 생각도 행동도 생활도 너무나 달라보인다. 요즘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하는 이 노력도 '어르신들은 옛날에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선조들의 뗀석기 간석기 진화를 존중하듯 멀리 떨어진 거리감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처음엔 어린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린이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뭘 좋아하고, 어떨 때 싫고, 어떤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싶은지 이해가 부족했다. 

나 어릴 적엔 어땠더라 추억도 떠올려보고 요즘 애들은 어떻지 가벼운 관심으로 시작했는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앞에 두고 생각할수혹 어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보편의 규정과 편의를 당연시하지 않아야겠다는 반성이 되었다. 미성숙이 받는 배려와 편의는 챙기고 싶고 미숙함과 차이점은 배척하고 싶어하는 못난 어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책이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특히 어른에게 자극과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도움으로 연결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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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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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언제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삶이라는 건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감당해 내는 일의 연속인 모양이었다. 52 아직 여기에 있어" 

소설집 '아직 여기에 있어'는 독특하다. 이 다섯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종이로 이루어진 책으로 나와있다는 사실이 마치 오파츠*를 발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단편 '스페이스 크랙'처럼 다른 세상과의 틈에서 끌어온 듯한 묘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손을 댈 수 없는 홀로그램이나 오래된 신기루를 통해서 들여다봤어야 맞지 않나 싶어진다. 현실 감각을 잊게 만드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불안정한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른다. 비현실적인 상황은 환상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이어진 현실과의 연결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질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언젠가 식물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자라나 그 줄기가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마음이 울렁였던 것은 '나무의 시간'을 읽는 동안이었는데, 울창한 식물과 그 왕성한 생명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것일까. 사람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인간의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듯이 굴지만 한편으로는 그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경외 역시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식물들도 화학신호와 뿌리, 미생물 등으로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영감을 받은 듯 했다. 나무들이 갑자기 말라버리거나 모여드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서 하늘을 보면 서로의 가지와 잎이 옆 나무의 공간으로 넘어가지 않고 빛과 바람을 나눠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거리를 둔다던 '수관기피'현상도 떠올랐다.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 수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물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 담긴 감정 키트 한 귀퉁이에 사랑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엘은 한 달 전부터 사랑 감정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슬픔과 절망을 장기 구독해 국가 보건국의 관리 대상이었다. 123 감정 구독자"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단편은 '감정 구독자'였다. 들어가보고 싶다,기 보다는 감정을 구독한다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나라면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가장 많이 신청된 감정은 뭘까, 한가지 감정만을 골라 오래도록 구독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구도 구독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뭘까, 구독하는 감정마다 값을 달리한다면 원하는 감정이 비쌀 때 사람들은 그 대체로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모두가 감정을 구독해야 알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이에게 가장 먼저 무슨 감정을 접하게 해줄까, 어떤 감정도 구독하지 않는다면 그럴 땐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 깊게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아직은 덮어두고 싶었던 단편도 있었다. '이별 박물관'이 그랬는데, 실제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어 읽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아직 여기에 있어'를 읽는 동안 오래도록 마음 속에 품어온 미래를 조심스럽게 펼쳐내보인 듯한 섬세함이 엿보였다. 이 상상력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동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살짝 비틀어 바라보고 싶다면 '아직 여기에 있어'를 추천한다.


*오파츠 'Out-Of-Place Artifact s'를 약칭하여 '시대를 벗어난 유물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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