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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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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다." 박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가 많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박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럼 이곳에 오는 다른 사람들은 준비가 됐고요?" 나는 박이 말한 준비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맞이할 준비란? 준비를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박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대략은 알고 있었다. 새 가족을 맞이한다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니까. (p.91) "

 

 언제나 궁금한 문제인 것 같다. 부모가 될 입장에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보면 부모도 어떤 자식을 기를 것인지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요즘의 과학기술로는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 안의 영혼, 내면까지도 바란대로의 아이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자식 역시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 것인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그나마 덜 불공평할 수도 있겠다. 다만 페인트의 '국가의 아이들'은 두번째 선택이 가능하다. NC센터의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 것인지 스스로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소설 속 세계관에 대해 말한다면 당신은 부러워할까 혹은 거부감을 느낄까.

 

 진지하게 혹은 장난스럽게 나는 불운하게 친부모가 바뀐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고 어딘가에 아주 부자인 내 친부모가 있을거라는 생각이나 농담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 워낙 흔하게 나오는 소재고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드라마 '가을동화' 이후로 오빠라고 알고 자랐던 사람이 크고보니 송승헌이고 오빠 친구는 원빈이라는 로맨스까지 겯들여져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엄빠에게 '쟤는 누굴 닮아서 저래' 하고 혼날 때 '아휴 모피코트에 다이아반지 낀 내 부자 친엄마가 날 엄청 찾을텐데, 건물주 친아빠가 나만 찾으면 상속해주려고 발을 동동 구를텐데 진짜 아쉽다' 하고는 맞받아치기도 했다. 그럼 '당장 찾아나가라'고 더 혼나지만.

 

 이보다 더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확실히 이 소재의 영화가 있었다. 제목이 기억 안나서 한참 생각했는데 '마미마켓'이란 영화였다. 혁신적인 내용으로 예전에 아주 재밌고 강렬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참 잔인하게도 엄마가 마음에 안든다고 없애버리고? 새 엄마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마법을 쓴다는 내용이다. 더 잔인하게도 다양한 스타일의 새엄마들이 선택을 바라며 자신의 장점을 홍보하는 모습이 그때는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괴한 느낌이다. 옛날 영화지만 신선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재밌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질만한 내용이니 구해서 볼 수 있다면 한번쯤 봐볼만 하다. 어쨌든 이 영화가 떠올라 간만에 추억에 잠기며 책을 읽었다. 결말도 말랑말랑하니 파격적 시작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마미마켓' 출신이라 그런지 '페인트'도 재밌었다. 한시간 좀 넘겨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제노같은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고, 노아처럼 돌아오는 아이는 더 많을 것 같다. 아키같은 아이는 정말 드물지 않을까,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이상. 읽을수록 꼭 센터의 아이들에게 부모가 필요할까 싶었다. 규율 안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보다 더 규칙적으로 자신을 관리하며 살 수 있는 아이들인데 보조금과 사후 관리가 들어가는 가정 안에서의 삶이 뭐 얼마나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어진다. 친자식도 사춘기를 지나보낼땐 너무 힘들어서 정떨어진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딱 그 시기쯤의 아이와 그 많은 낯섦과 불편을 이겨낼만한 이유가 서로에게 있을까.

 

 문득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어쩌면 임신에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고 센터의 아이들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존재같다고 느껴졌다. 엄격한 면접 절차가, 특히나 아이들의 의사 결정이 최우선으로 단계가 진행되고 그 전달은 가드들을 통해서 부모 면접자에게 전달된다는 점이 그랬다. 아이를 원해서 갖기를 시도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기관이 존재하고 오로지 생명의 의지로 아이가 그들에게 찾아간다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많은 노력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서 하는 노력처럼 연상되고,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이겠지만, 문득 떠올랐다. 

 

 아이가 자라는데 있어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부모의 애정같은 것. 분명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가정에서는 필수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페인트'의 센터처럼 국가가 아이를 양육하고 관리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저출생 문제가 좀 더 천천한 속도로 심화될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출산이라는 문제가 여성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있지만, 양육의 문제에서 벗어난다면 선택에 있어서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테니. 게다가 가정 환경의 문제에서도 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보편을 맞출 수 있겠다. 균등과 보편이 무조건 더 낫다는 것은 아니지만, 메울 수 없는 격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표지가 좀 애매하긴 한데, 고민없이 선택해서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독특한 설정도 앞으로 절대 없을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고, 소설 안의 낯선 시스템을 잘 구축해놓았을 뿐더러 어렵지 않게 잘 담아내서 읽기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요즘 읽은 청소년 소설이 연달아 좋은 인상을 남긴 덕에 웬만한 소설보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게 더 괜찮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외면말고 어른이라도 읽으세요. 읽으면서 아이의 고민, 부모가 되려는 어른의 고민이 모두 드러난 내용이라 생각된 부분을 아래에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지. 친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문제가 없을까? 나는 내 부모가 누군지 알아. 할아버지 할머니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누구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느 거야. 내가 만약 우리 부모님 아래서 자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내 기억은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시작하는데, 또렷하지는 않아. 그럼 기억이 형성되기 전의 나는 어떻게 키워졌을까? 그때 NC센터가 생각났어. 내가 청소년 시절에 너만 할 때 우리 부모님을 만났다면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사실 나는 엄마한테서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 물론 나도 온갖 짜증과 심술로 엄마를 힘들게 했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아기를 키우는 것 또한 보통일이 아닐 테고. 어쨌든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어."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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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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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 찾아갔다. 좀 멀고 위치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가보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고, 위치도 한적하니 좋았다. 낡고 오래된 동네를 지나서 긴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니 작은 축구장 옆으로 아직 새것 티를 벗지 않은 도서관이 나왔다. 출입문 옆으로 보이는 통창에 여유롭게 대충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책 한 권 읽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날 읽은 것이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였다.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는 얼마 전에 서점 사이트에서 신간도서 소개로 몇번이나 제목을 본 적 있었다. 도서관 서가 신간 추천도서 코너에 새책으로 꼽혀있는 걸 보고 바로 집어들었다. 읽으려고 든 것은 아니고 전부터 궁금했던 '체리새우'가 대체 뭘까, 그것만 확인해보려고 들었는데 맙소사 그냥 다 읽어버렸다. 제목도 그렇고 주인공 인물 설정이 좀 유치하고 전형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술술 읽히고 읽다보니 점점 재밌어서 다른책을 더 고르지 않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다른애들이랑 생각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나. 나름의 가치관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나. 다른 친구의 잘못된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 와 같은 위치에 있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청소년 물에서 좀 흔한 설정이다. 이런 인물들이 주로 주인공이 된다는 건 대부분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일반적 성향이기 때문이라는건데 꼭 특별함으로 묘사된단 점이 의문이다. 진짜 책 읽으면 별종으로 보는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묘사되는 주인공은 책 읽는 타입의 일반적 성향인가.

 

 시작부터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닌데, 인물간의 관계변화를 천천히 바라보는 과정이 매력적이어서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다현이보다 은유라는 인물이 조금씩 보여주는 성숙되고 열린 자세가 호감이었다. 친구 무리에 휩쓸리면서 자잘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무려 심부름까지 해주는 다현이의 모습이 처음엔 별로였지만 한편으로는 다현이를 통해 십대 생활이라는 고단함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거의 잊었지만 십대때에는 친구 무리라는게 세상의 전부였었지.

 

 '체리새우'를 다 읽고는 청소년 특히 소녀들의 우정에 큰 매력을 느껴서 내친김에 그동안 보려고 생각만하고 미뤄뒀던 '우리들'이란 영화도 봐버렸다. 확실히 두 작품 사이에서 비슷한 느낌, 알 수 없는 미묘한 공감대와 애틋함을 느꼈다. '체리새우'도 괜찮지만 그보다 '우리들'이 좀 더 거칠고 투명한 세계와 감정을 보여주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하기 때문에 아주 몰입하며 봤다. 책 '체리새우'도 추천, 영화 '우리들'도 강력추천한다. 궁금했던 두 작품을 한번에 보게 된 계기가 되어 도서관 방문이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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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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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충격이다. 2003년 생이 지금 몇 살일까 짐작해보았다. 열댓살 되었으려나. 게다가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은 열 네살 때의 데뷔작이란다. 진짜 진심으로 너무나 어리다. 솔직한 마음으로 책을 두르고 있는 작가에 대한 찬사는 믿지 않았다. 뭐라고 쓰여 있냐면 "3년 연속 문학상 대상! 최연소 천재 작가의 경이로운 데뷔작 출간 즉시 10만 부 돌파 일본 아마존 베스트 셀러" 같은 말이다. 홍보하는 입장에서 달아놓은 문구이니 다 믿지 않았다. 어린 작가가 쓴 글이라니 순수한 맛이 있거나 좀 치기어린 성숙함이 보일려나 생각했었다. 타인을 인정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분한 마음과 함께 의심이 들었다. 이런 재능이 일본에서 나왔다는 것이 아쉽고, 스타작가를 만들기 위한 모종의 비밀이 숨겨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읽으면서도 감탄했지만 넘치거나 모자른 것 없이 정말 잘 썼다. 책장을 덮은 순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와 감동이 있다. 동화적인 순수함도 어두운 현실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잘 배합해 놓았는지, 이 어린 작가는 그저 타고났다는 수식어말고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이 괴물같은 상금 사냥꾼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다름아닌 돈 때문이라니, 돈이 필요하면 연기가 잘 된다던 윤여정 배우의 명언이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하긴 동물원의 곰도 건빵 받아먹으려고 두발로 서고 손도 흔들고 뭣도 하고 다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나같은 사람은 돈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각광받을만한 뭔가를 해낸 적도 없으니 오히려 돈에 대한 말은 겸손이나 다름 없다. 재능과 능력있는 사람들이 유머까지 챙기려는 말인 것이지. 제목이 좀 뻔한 것이 아쉽지 안의 내용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부러워서 어쩔줄을 모르면서도 몇번이나 읽었을 거다. 지금은 부럽다는 마음을 갖지도 못하고 그저 여기저기 책 읽힐 곳을 찾아다닐 뿐이고.

 

 마치코와 하나미의 인물이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좋은 사람이라는 점만 빼면 대부분의 인물이 현실적이다. 읽으면서 동화같기도 하고 르포같기도 하다 생각했는데, 마치코와 하나미가 이 책 안에서 동화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모녀가정, 가난하지만 밝고 단란하며 건실하다. 상처도 있지만 긍정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들이 삶의 여러 순간을 마주하는 방식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더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들보다 바르고 매력적이다. 특히 뭐든지 대충인 것 같은 엄마가 뱉어버리듯 말하는 인생의 명언들은 마음속에 새겨둘만하다. "남한테 받은 음식은 바로 먹으렴. 돌려달라는 소리를 하기 전에(p.44)" 같은 말은 인생의 실전이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뭔가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p.158)" 나 떨어진 음식을 주울 때 "그 유치원 앞에 떨어져 있다는 건 애를 데리러 온 학부모의 가방에서 떨어졌을 확률이 매우 높아. 그러니까 괜찮아.(p76)" 같은 말도 유용하다.

 

 같은면서도 다른 문화가 중간중간 눈에 띄는 점도 흥미로웠다. 눈부처라는 예전에 들은 적 있는 표현인 '마부타(p.64)'라는 말이 나오거나, '너무 싸서 오히려 무섭다(p.94)'는 표현은 나도 실제로 쓰기 때문에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은행을 자기 나이 이상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소리(p.186)'가 나왔던 편이다. 어릴 적에는 이 말이 참 아쉬웠는데, 지금은 마음껏 은행을 먹어도 괜찮을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잠시 기뻤다가 다시금 슬퍼졌다. 대체 은행을 얼마나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인지. 차이를 느꼈던 부분은 떨어진 자판기 잔돈을 줍는 하나미에게 '거스름돈을 훔치다니(p.178)'하고 놀리는 아이들의 말이었다. 일본은 회사에서 핸드폰을 충전해도 전기를 도둑질하는 것으로 여긴다더니, 땅에 떨어진 동전 줍는 것도 훔치는 일로 보는구나 새삼스러웠다. 거기에 '후쿠시마에서 과일을 재배하는 친척(p.88)'이 나오는 부분은 원전 사고가 떠올라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먹어서 응원하자는 캠페인이 의식에 반영된 부분일까. 게키야스당의 물건들이 하나같이 싼 이유가 뭘까. 일본인 작가의 글이긴 하지만 유감스럽다.

 

 이런 살아있는 에피소드와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또 그들을 다시 작품안에서 살아있도록 만드는 일이 어린 작가에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궁금하다. 이것도 편견이겠지만 특히나 감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긴 하다. 재혼가정에서 크고 있는 딸이 몇년만에 찾아온 아빠를 만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어린아이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으고 싶어 자판기 잔돈을 매일같이 뒤져보는 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폐인처럼 자기 안에 틀어박힌 청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여지는 삶에 집착하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는지 이 애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어리다고 세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또 이렇게 깊은 눈으로 글 안에 풀어낼 수 있는 통찰이 있기는 어렵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각자 자기만이 소중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문득 떠올린다. 남의 재능은 알겠는데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이 나의 재능일 뿐.

 

 마지막이 신야의 이야기로 정리되는 점도 좋았다. 한없이 안타까운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나름의 희망도 보이는 마무리였다. 갑자기 신야의 시선이 끼어들면서 좀 만화같은 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재밌는 만화들은 중간이나 끝에 외전으로 이런 전환을 주기도 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점에서 다시 보면 또 디테일이 달라지는 맛이 있으니까. 이런 구성까지 다 생각하고 글을 쓴 작가라면 게키야스당의 사장처럼 "내 생각 이상으로 이 사람은 장사꾼이다.(p.143)".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지점을 잡을 줄 아는 장사꾼의 면모까지 갖춘 준비된 인재인 것이다. 제목만 보고 신파 내용일까 싶을 때도 있었는데, 혹시 다음 권은 안나올까 기대하게 되어 버렸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처럼 그 뒤의 이야기가 이어진대도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동화/만화적 감성을 좋아하는 어른까지 모두 읽어볼만하다. 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의 평이 몇쪽이나 줄줄이 실려있는데 그게 전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다 읽고나니 이해된다.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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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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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읽은 게 언제였지. 나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청소년 도서는 가끔 챙겨보려고 하는 편인데, 동화책을 읽은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도 동화책을 읽을까. 너무 좁은 표본이지만, 주변에서 동화책 읽으며 재미있어 하는 아이를 본 적이 너무나 오래다. 한 십년 전 쯤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끔 재밌어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투브 영상을 보는 것을 더 많이 봤다. 나이든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있는 어린이의 성숙함을 넘어선지 오래인 초등학생들 뿐 아니라, 유모차에 타고 있는 어린 아기들도 핸드폰에서 나오는 영상에 귀신같이 반응한다.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쉽다.

 

 그런데 새삼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이라는 파격적 제목을 단 동화의 출간 소식에 동화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어른이지만 너무 오래 동화를 안 읽었다는 이유로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섬세한 선과 바랜듯한 색감으로 표현된 삽화도 마음에 들고, 출간되기까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쏘아진 신호를 잡아 천천히 풀어놓은듯한 시간차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출간되지만, 요즘의 감성이 아닌 동화가 나오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제목의 동화는 그런 기대를 잘 충족시켜 주었다. 묘하게 시니컬한 부분들이 끼어들곤 하지만 그 뿌리에는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잘 쓰여진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지만,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도 어린아이 뿐 아니라 어른까지 전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년과 왕자, 그리고 그의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내용이라 가볍게 모험을 떠난 소년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왕자를 구하고 부귀를 얻어 행복하게 지내게 된다는 흐름을 떠올렸다. 그런데 소년의 유일한 친구인 닭의 이름이 '전염병과 기근'일 때부터 비버섬의 이름이 왜 비버섬인지에 대한 사소한 논쟁이 끼어들 때부터 이 알 수 없는 동화가 독자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요상한 내용을 베드타임 스토리로 딸에게 들려준다고?' 칼데곳 수상자인 필립과 에린의 손에서 재탄생한 이 동화는 확실히 만만치 않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며 웃음을 주다 어떤 부분에서는 동화적 허용을 가볍게 이용해버리곤 한다.

 

 조니가 주주꽃을 먹은 뒤로 겪는 일들은 환상적이라 기대했던 감성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속으로 잠시 씨앗이 큰 넝쿨이 되어 자라는 것은 아닐까, 꽃을 먹다니 조니는 채소도 잘 먹는 소년이네, 이런 생각을 해보긴 했다. 어린시절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길 좋아했는데, 아주 오랫만에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을 읽고 나서 주주꽃을 먹는 일을 상상해봤다. '클로디아의 비밀'을 읽은 뒤로 한참동안 어느 박물관의 어디에 숨어야 들키지 않을까 고심하거나, 사람들이 동전을 던진 분수대를 골똘히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만약 주주꽃을 먹는다면, 어떨까. 다들 책을 읽고 나서 주주꽃을 먹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뭘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책에서 조니가 보여준 마음은 꽤 순수하고 따뜻한 것이어서 동화를 읽는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때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지치고, 관계가 주는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당신을 알게 돼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봐야 겠단 생각을 했다. 새삼 돌이켜보니 상대를 판단하고, 낙인찍고, 용서가 적었던 시간을 보냈다. 아마 왕과 올레오마가린 왕자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가장 싫은 캐릭터의 모습이 가장 나와 닮아있다니. 금방 잊혀지는 부질없는 다짐이지만 남에게 더 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이제 막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아이들이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인간관계, 인연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그 꼬맹이들이 다 이해할까 싶지만 만나서/놀아서/친해져서 좋았던 친구를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의미있겠다. 주변의 꼬맹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지만 몇 번 책을 선물로 주었는데, 원치 않는 선물을 가져다 안긴 탓에 아이들이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엄마의 눈치를 보며 고역으로 해내는 것을 보고는 이 눈치 없는 선물을 그만 하기로 했었다. 아이들은 왜 동화를, 책을 안 좋아하는 걸까. 아쉽다. 때로 동화의 가치를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크게 보는 것 같다. 아마 이미 뭔가를 잃고 난 뒤라 그렇겠지. 간만에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을 즐겼다. 모두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과 함께 환상적인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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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그릿 - 청소년을 위한 꿈과 자신감의 비결
매슈 사이드 지음, 토비 트라이엄프 그림, 장혜진 옮김 / 다산에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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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시작하는 잭의 이야기가 꽤 멋지다는 것은 인정한다.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은 평범한 소년이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는 성공을 이뤄내기까지의 이 이야기는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했다. 얼핏 희망을 주는 이야기지만 머리속 한편으로는 보통의 경우라면 승부욕 강하고 재능이 많았던 형이 성공했을 것이란 생각이 떠돌았다. 진짜 평범이라고 하는 건 그런거니까. 이런 찌들은 생각을 하다가 이래서 이 책이 필요한 거구나 느꼈다. 아직 10대인 독자들이 이렇게 찌들기 전에 '그릿'을 알고 믿고 도전하게 된다면 더욱 긍정적일 것이다.

 

 평범한 주말 오후, 이 책을 들고 근처 카페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에는 수학과외를 받는 학생이 있었다. 2의 7승과 8승을 연달아 묻는 질문에 간단한 계산도 틀리는 학생의 답이 귀에 들어왔다. 문득 그만했던 시절에 수학과외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학이 발목을 잡을 때면 학원을 다니거나 이리저리 수소문 해 과외를 받곤 했었는데 결과는 항상 실패였다. 한번도 수학을 중간 이상의 결과로 끌어올린 적이 없었다. 옆자리 학생이 끝내 2의 10승까지 답을 얻어낸 것을 들으며 한번 답을 틀리면 그 단계에서 수학을 포기했던 과거의 내가 안타까웠다.

 

 노력하라는 내용을 담은 계발서 등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을 위한 내용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도 어른만큼이나 현실적이고 성숙한 요즘이지만 그 애들이 가져서 마땅한 희망과 의지를 전달해주는 책이 있다면 좋은 것이고, 누군가는 솔직하고 직선적으로 책의 내용을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소화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칭찬의 효과나 이름붙이기에 대한 부분은 꽤 공감했다. 잘한다, 재능있다고 믿는 분야에 대해 그만큼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되는 면이 있으니까.

 

 139쪽과 맨 뒷부분에는 훈련 계획표도 첨부해 놓았는데, 이 표로 주간 혹은 월간의 세부 실천 일지를 작성할 수는 있어도 한눈에 키워드를 잡아 보기엔 좀 아쉬운 듯했다. 이 계획표로는 세부사항을 정리하고 큰 틀은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만다라트 계획표'로 잡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번 결심했다고 바로 계획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계획표처럼 눈에 보이는 표를 만들어놓는다면 적어도 눈에 띌 때마다 의식하게 되는 계기를 준다는 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생각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안그래도 사는 일이 팍팍할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냥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그저 꾸준히 혹은 아무 생각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결과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되곤 하니까. 초등학교 4-6학년 정도의 십대, 넓게는 중학생까지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권하고 싶다. 다들 특별한 잭처럼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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