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탐구 생활
이다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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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탐구해야 한다고? 나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는데 내가 그걸 몰라? 나 정도면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인데, 그걸 꼭 연구씩이나 해야 아나? 싶었다. 순간 반발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른인 내가 이미 겪어봤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완전함에서 누가 몇 조각을 뺏어가 불완전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영포티스러움을 넘어 어린이성/어린이다움/어린이스러움 까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잠깐 과열된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찬물을/아아를 주입한다. 정신차려, 어른이랍시고 주제넘다. 알고 있다는 착각 대신 주제넘게 굴지말라는 채찍을 휘두르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었다.  

유행했던 말들 중에 '*린이'라는 표현이 거북했다. 유행하는 말들이 으레 그렇듯 또 그때는 그 표현이 가장 찰떡같이 붙어 대체할만한 다른 말이 마땅히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도 초보/신입이라는 말을 굳이굳이 붙여서 피해다닐 정신은 남아있었다. 그 말이 왜 거북했냐면 카페나 음식점 같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마저도 성인이용자의 편의와 쾌적함을 위해 노키즈존을 해도되네 마네 하는 말들로 피곤했던 상황과 겹쳐, 생활 공간에서 아이/어린이를 몰아내고 싶어하면서 자신의 미숙함이나 부족함을 이해받고 싶은 욕망에는 어린이를 끌어다붙이는 어른의 이기심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제 초보로 시작했으면 한거고, 지가 못하면 지 실력이 부족한거지 뭘 거기다 어린이를 가져다붙인담. 

그리하여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 것은 가졌기 때문에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에 대해 깨부수는 깨달음의 과정이자, 내 마음과 추억의 방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리는건 재밌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잊힌 부분도 많고, 과거에 대한 미화와 추억 보정으로 인해 공정치 못한 기억들만 남았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이불을 걷어차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만큼 수치스러운 기억만 갑자기 생각나던데, 일부러 추억을 떠올리면 꼭 나만한 어린이/청소년도 없었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SNS에 '라떼' 얘기를 할 때면 꼭 묻지도 않은 제 자랑을 늘어놓나보다. 

주인공인 '이다'의 이야기를 읽다가 벼락같이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가 어른에게 혼이 나서 난데없이 억울했던 어떤 날, 같이 있던 친구가 너는 무슨 다리를 그렇게 벌리고 앉아있냐며 이상한 듯 거북한 표정으로 한마디했던 묘한 순간의 기억(55)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치마도 아니고 바지를 입고 있는데 왜 그러지? 뭐 어때?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던 것 까지 묻어두었던 언젠가가 불러오기 한 것처럼 기억 속에서 튀어올라왔다. 옆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넓게 벌린 것도 아닌데 여자가 다리를 모으지 않고 앉았다는 이유로 받았던 시선과 불편한 기분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영향을 준다는 것이 찜찜했다. 

읽으면서 과감하고 파격적인 내용이라 놀라웠던 '이상하고 아름다웠던 꿈(72)'은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9세가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니, 정말 성은 본능의 영역이란 말인가? 궁금하면서 내심 당황스럽기도 했다. 더불어 이렇게까지 솔직한 내용을 담아두다니 당시 부반장이었던 친구가 만약 어린이 이다와 동창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책을 읽다 놀라는 것은 아닐까 혼자 대리 수치를 고민했다. 나만 놀라고 민망하고 부산한 와중에 저자는 이것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내가 반장'이었음을 밝힌다. 그래서 결국 피식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덮으며 10계명(102)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어린이를 위한 어떤 존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함부로 신체를 만지지 않을 것, 외모에 대한 언급, 칭찬도 하지 않을 것, 반말을 하지 않을 것,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작가가 꼽은 다섯개의 조항(66)들도 다 괜찮았는데 그 중 몇 살이냐는 질문은 예상 외였다. 특히 어린 나이 대 중에는 습관적으로 저는 몇살이고요, 저는 몇학년이에요. 하는 소개가 나오는 어린이들도 많아 예민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는데 앞으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대화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린이었던 지난 날에 대한 추억을 펼쳐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 종종 책을 읽다 멈출만큼 좋았는데, 어린이의 눈으로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다면 어떨까?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을까? 예전의 어린이와 지금의 어린이들은 생각도 행동도 생활도 너무나 달라보인다. 요즘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하는 이 노력도 '어르신들은 옛날에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선조들의 뗀석기 간석기 진화를 존중하듯 멀리 떨어진 거리감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처음엔 어린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린이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뭘 좋아하고, 어떨 때 싫고, 어떤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싶은지 이해가 부족했다. 

나 어릴 적엔 어땠더라 추억도 떠올려보고 요즘 애들은 어떻지 가벼운 관심으로 시작했는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앞에 두고 생각할수혹 어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보편의 규정과 편의를 당연시하지 않아야겠다는 반성이 되었다. 미성숙이 받는 배려와 편의는 챙기고 싶고 미숙함과 차이점은 배척하고 싶어하는 못난 어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책이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특히 어른에게 자극과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도움으로 연결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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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기에 있어 창비청소년문학 146
전성현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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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언제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삶이라는 건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감당해 내는 일의 연속인 모양이었다. 52 아직 여기에 있어" 

소설집 '아직 여기에 있어'는 독특하다. 이 다섯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종이로 이루어진 책으로 나와있다는 사실이 마치 오파츠*를 발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단편 '스페이스 크랙'처럼 다른 세상과의 틈에서 끌어온 듯한 묘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손을 댈 수 없는 홀로그램이나 오래된 신기루를 통해서 들여다봤어야 맞지 않나 싶어진다. 현실 감각을 잊게 만드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불안정한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른다. 비현실적인 상황은 환상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이어진 현실과의 연결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질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언젠가 식물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자라나 그 줄기가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마음이 울렁였던 것은 '나무의 시간'을 읽는 동안이었는데, 울창한 식물과 그 왕성한 생명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것일까. 사람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인간의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듯이 굴지만 한편으로는 그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경외 역시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식물들도 화학신호와 뿌리, 미생물 등으로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영감을 받은 듯 했다. 나무들이 갑자기 말라버리거나 모여드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서 하늘을 보면 서로의 가지와 잎이 옆 나무의 공간으로 넘어가지 않고 빛과 바람을 나눠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거리를 둔다던 '수관기피'현상도 떠올랐다.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 수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물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 담긴 감정 키트 한 귀퉁이에 사랑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엘은 한 달 전부터 사랑 감정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슬픔과 절망을 장기 구독해 국가 보건국의 관리 대상이었다. 123 감정 구독자"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단편은 '감정 구독자'였다. 들어가보고 싶다,기 보다는 감정을 구독한다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나라면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가장 많이 신청된 감정은 뭘까, 한가지 감정만을 골라 오래도록 구독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구도 구독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뭘까, 구독하는 감정마다 값을 달리한다면 원하는 감정이 비쌀 때 사람들은 그 대체로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모두가 감정을 구독해야 알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이에게 가장 먼저 무슨 감정을 접하게 해줄까, 어떤 감정도 구독하지 않는다면 그럴 땐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 깊게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아직은 덮어두고 싶었던 단편도 있었다. '이별 박물관'이 그랬는데, 실제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어 읽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아직 여기에 있어'를 읽는 동안 오래도록 마음 속에 품어온 미래를 조심스럽게 펼쳐내보인 듯한 섬세함이 엿보였다. 이 상상력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동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살짝 비틀어 바라보고 싶다면 '아직 여기에 있어'를 추천한다.


*오파츠 'Out-Of-Place Artifact s'를 약칭하여 '시대를 벗어난 유물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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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홈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6
진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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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아냐. 누가 알았겠어. 하필 그때 그게 폭발할 줄. 세상에 종말이 올 줄! 54" 

'빅 홈'의 소개글을 보고 세상의 모든 인프피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하는 운명을 느꼈다. 전에 '만약에 오늘 아침 전쟁이 나면 네 집 앞에 제일 먼저 뛰어 가서 나는 너랑 같이 도망갈래'* 하는 가사의 노래를 들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운석이 떨어지면, 빙하가 녹아버리면, 삶이 얼마 안남았다면 하는 만약을 노래가는 가사를 들으며 만약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곤 했는데, 원전 폭발 이후 보호소 안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니! 게다가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야하는 주인공, 비밀스러운 탈출까지 어떻게 '빅 홈'에 안 빠져들 수가 있을까. 

요즘 여기저기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탓에 '빅 홈'을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어느 누군가의 변덕으로 세상에 갑자기 핵폭발이 연쇄적으로 번져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지나친 비약같지만 사실 지구촌을 표방하는 평화의 시대에 성장한 세대로써 지금의 배타적이고 삭막한 국제정세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같은 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모두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살아가길 바라고 노력하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세상이 갑자기 달라진 것만 같은 요즘이다. 

" 이해하려 애쓸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자고 일어나 보니 지도 없이 낯선 땅에 던져진 느낌이랄까. 다만, 몇 가지는 분명했다. 당연한 듯 반복되던 일상이 잘못 떨어뜨린 유리잔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는 것. 부서진 조각을 아무리 이어 붙인들 원래 모양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것도. 17" 

전쟁이 끝나고 나면 금방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그것은 전쟁과 한발자국 떨어진 사람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쟁이 훑고 지나간 흔적이 남은, 그리고 그 안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일상으로의 회복'이란 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상실이다. 어느 도시의 초등학교에 폭격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고 전쟁은 결국 그 이해관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했다. 

부서진 조각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빅 홈'의 아이들은 제 모양을 조금씩 잃었을지 언정 강하고 선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의 인물들은 어떻게 해서든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위협하는 비뚤어진 인물인 필광이 마저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 가득차 있음이 보였다. 아끼는 것을 꽁꽁 붙들고 다니고,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타까운 만큼 애틋해서 읽는 내내 그래도 조금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길 응원하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볼 때 흔히 하는 말로 cj감성 같은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장면에서 울어! 하고 판을 깔아놓는 것 같은 신파 요소가 들어가고 하는 그런 것들. '빅 홈'에서 기대한 것도 신파같이 눈물 빼는 내용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과 숨겨진 음모, 이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용기와 모험 같은 아포칼립스 모험 동화였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낼 줄은 몰랐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아닌데 어느 순간 그렇구나, 싶어지니 읽는 내내 보이는 모든게 안타깝고 슬펐다. 그런데 막상 헤이보다 나의 슬픔이 더 오래가다니. 신파는 싫지만 슬픔은 또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되어서 그 먹먹함도 좋았다. 

핸드폰에 좋은 기능들이 많이 생긴 뒤로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는데, '빅홈'을 읽고 문득 돈이나 카드 대신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을 넣은 지갑을 꼭 가지고 다녀야 되겠단 생각을 했다. 지갑에 있던 유일한 가족사진을 바라보는 헤이를 보고, 어쩌면 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수많은 기능이, 그보다 더 많은 사진이 담긴 핸드폰보다 확실한 것을 언제고 가지고 있어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싹텄다. 그리고 항상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쉽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당연하고 분명하지만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일상의 진리도 다시금 되새겼다. 

넷플릭스 대신으로 성인들에게 '혼모노'가 추천되었다면, 청소년들에게는 '빅 홈'이 권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둘 다 읽어보았는데 어른 입장에서도 '빅 홈'을 더 짜르르하게 읽어냈다. 이런 재난물에서는 극한 상황이나 죽음이 빈번한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봤었는데 '빅 홈' 안의 너무 많은 상실은 어쩐지 조금씩 안타깝고 투명한 우울을 담고 있어 마음을 건드린다. 매번 만약을 상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난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넷플릭스 만큼이나 재밌는 책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 사진을 지갑이나 다이어리에 넣어둔 사람이라면, 마음 속에 우울과 희망이 뒤섞인 초록을 남길 '빅 홈'을 읽어보자. 



* 전쟁이 나면 - 장범준 (2024 싱글/EP)
** 2026년 2월 28일 이란 미나브 여자 초등학교 폭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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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붙게 해 주세요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5
이로아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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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20년 전 죽은 전교 1등이 나타났다"는 문장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공부 잘하고 싶어서, 전교 1등 하고 싶은 학생의 욕망이 금단의 비술까지 손대게 만들었다는 내용이겠구나 예상했다. 더 나아가 20년 전 전교 1등이면 지금이랑은 교과과정이 다를텐데, 20년 전이면 출제 경향도 다르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기억이 안날텐데! 하고 슬퍼졌다. 요즘은 요오드 아니고 아이오딘이라며 나트륨이 소듐이고, 아밀라아제는 아밀레이스, 부탄은 뷰테인이라며 그럼 부탄가스는 뷰테인가스야? 스티로폼도 스타이로폼이고 연필은 한 다스 아니고 한 타라며... 그래도 전교 1등 괜찮겠니? 이런 슬픈 생각을 품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귀신 붙게 해 주세요'를 앞에 두고 어리둥절해졌다. 이런 내용이었다니. 그래, 전교 1등이 필요하긴 한데 공부는 잘 모르겠고 전교 1등이랑 사랑 얘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을 읽는 나도, 전교 1등 귀신이라도 강령해 낸 윤나도. '기순고'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학교를 앞에두고 정말 요즘 이런 학교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배경은 아닌 것 같아 의심이 들었다.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용모 검사 같은 것들은 아무리 교칙이라고 해도 요즘 세상에 학생 인권 같은 문제가 얼마나 예민할 건데 대놓고 앞에서 창피를 주면서 강제할 수 있단 말이지? 20년 전의 학교와 요즘 학교의 모습을 섞어놓은 게 아닐까. 아이들 마음을 읽어주느라 훈육은 커녕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기사들만 접했던터라 더욱 그랬다.

이 아리송함은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단어인 '이반'을 보았을 때 더욱 커졌다. 기순고의 20년 전에도 그랬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그런 단어를 본 적 있다. 한번 소문이 돈 대상을 향해 드러내놓고 배척하고 비웃기도 하던 분위기가 있으면서 동시에 별스럽지 않게 어울리고 신경쓰지 않던 분위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그런 단어는 본지 오래되고 그냥 성소수자나 게이, 레즈비언 같은 단어들만 남은 줄 알았다.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요즘도 이런 말을 쓰나요, 요즘도 학교에서 단속을 하나요, 물어볼 수 없어 조금 찜찜하던 차에 현실감있는 단어의 폭력적인 등장으로 할말을 잃었다. "기순고꼴페미박제계정 75" 이런 단어가 존재하고 사용된다는 것이 현실인데 다른 것들에서 위화감을 느낀다는 게 말이 되나. 

전교 1등 귀신과 교칙, 이반 이런 단어들이 왜 연결되는가는 '윤나'를 중심으로 퍼져간다. 윤나는 친구가 가장 좋고, 미용을 배우고 싶은 꿈이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다만 윤나의 가장 친한 친구 재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현서라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어 서로 멀어져버리고, 교풍이 자유로웠던 학교가 갑자기 '정상화(14)'를 선언하면서 학생들의 외양과 사상을 통제하려 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강제적으로 시행되는 야간 자율 학습에서 빠지려면 모의고사 1등급을 맞아야 한다는 조건이 생겨 미용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윤나는 일주일을 투자해 공부 대신 강령술을 마스터 하기로 마음먹는다. 윤쪽아, 윤쪽아. 차라리 그 의지와 실행력으로 공부를 하지 그랬니, 싶지만 윤나는 성공한다. 예체능이라 그런가 재능있어, 너. 

" "최신 문제도 풀 수 있어요? 20년 동안 출제 경향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네가 간절하다고 불러 놓고 나 테스트하겠다는 거니?" 
"아니, 확인할 건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니까." 
"기가 찬다 진짜. 요즘 애들은 하여튼. 문제 수준이 어떤데?" 59" 

윤나가 불러낸 20년 전 전교 1등 귀신 순지의 성능은 확실했다. 하지만 귀신은 귀신인 법, 순지이용권에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작용이 존재했는데 순지가 윤나의 친구를 빼앗아간 현서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쯤되면 현서의 매력은 마성이라 해도 좋을만해진다. 친구 재이 때문에 현서를 미워했던 윤나는 순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현서와 가까워지는데, 마성의 여고생답게 현서를 알면 알수록 미워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윤나는 현서와 친구가 되어간다. 그리고 점점 광기로 치달아가는 학교 '정상화'의 물결 속에서 윤나, 재이, 현서, 순지는 흐름을 거스르는 반기를 들며 20년 전 학교에서 벌어진 전교 1등 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기대보다 흡입력 있는 전개에 단숨에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는데 촘촘한 관계의 얽힘에 집중하다가, 순지의 과거와 관련된 부분에서 주경이 등장하며 그동안 자꾸만 뒷장으로 인도하던 긴장과 재미의 균형이 살짝 힘을 잃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을 싫어하는 주경이 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지, 과거 전달자가 아닌 주경 그 자신으로서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듣고 싶었다. 게다가 이렇게 쉽게 순지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준다니,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장난치지 말라거나 화를 낼 법도 한데 빨리 전개를 하기 위해서 신뢰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생략된 느낌이 들었다. 또 쌓아놓은 위기에 비해 결말이 너무나 설키게 봉합되어 끝나버린 듯해 전체적으로 뒷심이 약하다는 감상이 남아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충분히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요즘 청소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마치 저자가 스스로의 과거에 남겨두었던 상처를 꺼내 지금 다시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여전히 세상은 다름을 오염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마음은 소독하면 정상화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같은 고민이 남아있을까. 그런 투명한 시선앞에서 전교 1등이나 귀신 같은 키워드들은 어느새 소멸되어 버리고, 단단한 알맹이만 남아 고민이 많은 누군가의 마음에 소중히 심어 휩쓸려 쓰러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라나도록 지지해주고 싶다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듯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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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
김효원.김현웅 지음 / 심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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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평가와 경쟁, 훈육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위축시킬까봐 교육 과정에서 배제해나가는 추세라고 한다. 너무나 달라진 교육 현장에 대해 가끔 뉴스를 볼 때면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옛 세대들이 있을 것이다. 사고 등의 문제가 생길까봐 이제는 학교에서 소풍도 가지 않는다는 변화가 며칠 전에도 뉴스에 나왔다. 그런데 어른의 의도는 분명 좋았는데 그 의도가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 아니어서 경쟁과 성취의 즐거움을, 배움과 반성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한 아이들은 도전과 좌절 앞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고 한다. 처음 경험한 벽 앞에서 극복의 경험 없이 지나치게 낙심하고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한 아이라는 세계를, 우주를 키워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해야할까? 요즘은 이렇다, 요즘 아이들은 이렇다고 하기 전에 어른과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떤 생각과 자세를 준비해야할지 '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을 통해 파악해보고 싶었다. 

차례를 눈으로 살펴보았을때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 4장 진짜 똑똑함과 가짜 똑똑함 중에 '엄마가 만들어준 똑똑함 130' 이었다. 어린시절에 비추어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거나, 반장이 되거나 하는 뛰어남은 본인의 능력보다 어떤 뒷받침을 받느냐로 티가 나는 경우가 많았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그 효과가 초6 선우의 예시 뿐 아니라, 고2 학생의 예로 나오고 있었다. 타인이 만들어준 지도대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와 부합하는가,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가는 다른 문제의 이야기다. 남들이 다하는 것, 하라고 하는 것을 어영부영 따라가는 것도 벅찼는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항상 깜깜한 문제였던 것이 생각났다. 모범적이거나 우등생으로 꼽히지 않더라도 하고싶은 것이 있었던 친구들이 얼마나 빛나보였던지, 그것이 남들과 다른 길이더라도 개의치않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즐거워보였던지 모른다. 그게 중심/목표를 가진다는 것이었구나 싶다. 

요즘은 지식을 쌓는 교육 뿐 아니라 인격과 품성을 위한 윤리와 도덕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느끼는데, 특히 호주의 16세 미만 SNS 금지법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있다. 책에서도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공감 능력과 도덕성 발달에 미치는 영향(168)' 같은 단락에서 이 점을 짚어주고 있어 관심있게 읽었다. 우리도 호주처럼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마주하는 혐오와 도덕적 해이가 그저 재미라는 말로 뭉그러진 채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현실을 제대로 짚고, 다소 극단적일지라도 분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 점은 '개인의 윤리성은 사회 전체의 윤리성을 넘어설 수 없다(170)'는 말처럼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좀 더 강력한 처벌과 규제, 인식 개선이 필요함을 느끼게 했다. 결국 사회와 어른의 모습을 거울 삼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니, 요즘 애들은 하고 탓하기 전에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자꾸만 생각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으로 옮겨갔다. 우리 삶에서 '관계'속에 생겨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상대방을 통제하고픈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식 연애 방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통제성이 강하다는 비판을 본 적이 있다. 하루에 연락을 몇번이나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 시작이었는데 한국만큼 연락을 자주, 많이 하고 또 그 빈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잘 잤는지, 밥은 먹었는지, 지금은 뭘 하는지 물어보고 답을 듣는 평범한 일이, 아무리 바빠도 잠시 짬을 내서 상대방에게 연락은 한 번 해줄 수 있지 않냐는 말이 과한 집착과 통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이것이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그런데 이 '통제'는 연인 뿐 아니라 가족간에서도 동일하게 보였다. 

'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을 읽을 때도 먼저 등장하는 것이 "과잉보호와 과잉통제(25)"에 대한 언급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만들고 싶다는 부모의 보호와 통제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혼란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그래도 미성년 시기에는 어느 정도 통금이 필요한 것은 맞지 않나 통제에 동의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 어른의 시선으로 본다는 한계 때문일까. 같은 통제는 반대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부모를 향해 그 영향을 끼친다. 부모님이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받고, 운동도 하시고, 자잘한 것을 아끼거나 하는 오래된 습관같은 것을 바꾸시길 바라며 잔소리를 한다. 키오스크 같은 것의 사용법도 배웠으면 하고, 제사나 명절 음식 같은 것도 그만하고, 요즘은 책 잡히기 쉬운 옛세대 특유의 오지랖도 웬만하면 참으시라 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대로 하면 더 편하고 좋을테니 바꿨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도 사실은 상대방에 대한 통제가 아니었나. 

교육서를 앞에 두고 너무 멀리 다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이렇게 통제 받았던 청소년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 통제가 이렇게 우리 삶과 관계 속의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특성이자 문제라면, 이러한 경향을 해소해줄 수 있는 방법은 책에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교육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관계맺기에 있어 통제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생각된다면 함께 고민해보며 읽어도 좋겠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생태계를 가지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는 기준을 세워야하고, 그 기준을 강요나 압박이 아닌 방식으로 제시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이 고민을 하는 어른에게 든든한 받침이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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