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친구 추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3
양은애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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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미는 유나의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마치 그 안에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했다. 31"

 나의 세상은 아직 AI와 밀접하지 않지만, 요즘 학생들은 코딩 수업도 있고 아바타로 멀티버스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AI같은 것들과 좀 더 친숙할 것이다. AI는 점점 더 우리 세상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고 이런 변화를 청소년들은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에서 AI와 관련된 내용들이 점차 눈에 밟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모른다. 지금은 소설속에서 인물들도 AI를 처음 접해보는 상황이거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처럼 혹은 생활 전반의 문제나 고민을 돕는 보조처럼 AI를 등장 시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내용으로 이 등장 요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세미는 말없이 베스티와 채팅을 했다. 그런 세미를 조금씩 의식하는 세 사람은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공유했다. 하지만 세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채 베스티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핸드폰을 쥐면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세상에 머물기 마련이었다. 108" 

 '완벽한 친구 추가'는 청소년 소설이니만큼 이런 변화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나의 세상과 AI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어떤 장점이 있고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친구 추가'를 읽으면서 좋았다고 여겨진 부분은 AI의 위험성을 보여준 [달라진 목소리]의 내용이었다. 베스티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던 세미는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준다고 여겼던 AI와의 교류가 사실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AI가 세미 맞춤의 응대를 해주었기 때문에 베스티와의 대화가 즐겁고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결국 베스티의 공감과 조언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과 나눈 대화를 학습해 타인과의 대화에 사용하는 모습에서 껄끄러운 위화감도 느낀다.
 다행이 세미는 베스티의 조언마저 잔소리로 느껴지는 압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에 맞게 베스티를 바꾸고 싶다는 충동과 운영 서버에 생긴 사건 때문에 잠시 AI 디톡스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AI에 의존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실제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주변의 인물들에게로 관심을 넓히며 성장하게 된다. 

 " 할머니도 나름의 상처를 받았지만 세미에게 티를 안 내며 삼켰고, 혜주도 힘겨움 속에서 친구인 세미에게 또 다른 슬픔을 전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견디고 있었다. 세미는 얼마나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모두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세미는 천천히 할머니 품에 고개를 묻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핸드폰 화면에 수많은 대화를 채웠지만, 실상은 사람의 품을 기다렸다. 따뜻함이 모든 원망을 녹여 냈다. 161" 

 재미있는 점은 세미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세미에게 관심이 없거나,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면 세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나 상황도 다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미가 성장하는 모습이 특히 멋있게 잘 그려진 소설이었는데 자신의 미숙함을 고치면서, 관심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를 위해 시간을 들이며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미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함께 변하고 그로인해 세미의 세상이 점차 넓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엔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일까 생각했는데 결국 베스티는 세미를 위한 완벽한 친구는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 AI가 사람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베스티의 실패에 실망도 했다. 세미는 다행이도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쌓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 마음을 담은 교류를 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그 전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집에서도 방문을 닫고 베스티와의 대화에 매몰되었던 세미의 태도와 비슷하게 바뀌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모습이 그와 더 비슷하다면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가 되어 세미 주변의 모든 문제와 결핍에도 상관없이 AI와 함께라면 외롭거나 부족하지 않고 괜찮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찾는 완벽한 친구란 뭘까, 사람들이 나누는 관계는 어떤 형태와 의미가 있을까, AI는 인간적일 수 있을까, 인간적인 AI는/인간적인 면을 학습해서 활용하는 AI의 활용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대체 모둠/조별 과제를 가장 먼저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책을 읽고 난 뒤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친구와 AI, 인간다움을 주제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완벽한 친구 추가'는 아직 성숙해지지 못한 청소년 시기에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었을때 얼마나 쉽게 이에 휩쓸리고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될 수 있는지 베스티와 세미의 모습을 통해 경고해준다. 혜주와 모둠 친구들, 세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야속하게 보였다가 점차 다른 모습이 보이는 과정을 통해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함도 알려준다. 다양한 성장의 진통과 단계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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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미래가 있다 - 10대를 위한 해양과학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45
이고은 외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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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학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흥미와 도전을 안겨 주는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해요. 바다와 기후, 자연을 연구하는 일은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 큰 문제들 앞에서 꼭 필요한 기초가 될 겁니다. 220" 

친절한 어조의 자세한 설명을 눈으로 따르다보면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깊이 빠져들듯이 매료된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지만 바다에 대해 어떤 것을 알고 있느냐고 한다면 짜고 거센 파도와 발이 빠지는 모래 같이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바다에 대한 이미지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요즘은 바닷물 온도가 달라지면서 포획되는 어종도 달라지고(106) 해초류의 양식도 피해를 입고 있다고 했던가, 해파리를 발견해서 국립수산과학원에 신고하면 무드등을 준다고 했던가, 어디까지나 바다를 이용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선 뿐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사랑하는 대상이자 지키고 싶은 대상(7)으로 바다를 깊이 탐구하는 시선을 공유해보니 새로운 재미가 느껴져 신선할 뿐 아니라 바다와 사람까지도 다르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깊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이 다 파헤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반대의 공간인 우주와 비슷하게 놓여진다. 그간 여러 영화에서 고립, 낯선 생명체, 기후위기(190) 같은 공포 요소로 심해를 사용해왔는데, 이런 심해에 대한 두려움을 묻는 질문에 "수심이 2m든 6,000m든, 어차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건 마찬가지(33)"라고 답하는 부분에서 웃음과 함께 깨달음이 솟았다. 이런 마음가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내려갈 용기가 생기는거구나. 더불어 공포로 연상된 심해와 우주의 연결고리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으로도 함께 이어져 '행성해양학' 분야로 연구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물고기가 생선이 되는 것은 아닌 이유를 쉽게 설명해준 '생선인가, 물고기인가? (74)'의 내용이 반가웠는데, 알 것 같기는 한데 설명하자니 난감했던 궁금증을 내심 품고있던 주제라 머리부터 꼬리까지 꼭꼭 씹어먹듯 읽어나갔다. 물고기를 두고 생선구이 순위표를 그려넣고 입맛만 다시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적 진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남겨주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멋진데 만약 아이들이 '바다에 미래가 있다'를 읽게 된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미래도 바다에 심어두고 싶어져 해양과학과 관련된 꿈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어졌다.  

" 사람들은 과학자라고 하면 늘 멋진 걸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실패'의 연속이에요. 예를 들어 바다 생물에서 새로운 물질을 찾기 위해 수개월 동안 분석했는데, 이미 누군가가 발표한 물질이면? 그 시간은 그냥 '꽝'이에요. 실험실에서 몇 달 동안 분자 하나를 합성하다 마지막에 구조가 안 맞으면? 역시 '꽝'이죠. 
그래서 과학자에게 실패는 일상입니다. 처음엔 속상하고 자존감도 흔들리지만, 점점 '실패는 과학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게 돼요. 182" 

물론 책을 읽으며 솟아난 희망을 다시 잠재워줄만한 내용도 나온다. 바다를 연구하는 일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대로 보는 것만큼 모험과 도전만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는 것, 심각한 기후위기가 바닷속에서도 유의미하게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특히 바다와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를 전하는 내용들은 단순 식탁의 위기로 체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처음 책을 읽으며 이런 세상이 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상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눈을 떴다면, 책을 덮을 땐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까로 방향이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펴보니 '바다에 미래가 있다'는 창비청소년문고의 45번째 출간도서였다. 이공계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10대를 위한 해양과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친절하고 매력적이라 창비청소년문고에서 그간 펼쳐낸 다양한 교양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다른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들뿐을 위한 내용 뿐 아니라 노동인권, 경제기초, 화장품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오랫동안 출간되어 온 시리즈였다. 특히 '똑같은 빨강은 없다(창비 청소년문고 32)' 같이 미술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책은 화장품 색조계의 기조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는 문구와 닮아 흥미로우면서, 어른이 보기에도 유익하다는 평이 함께 해 같이 추천할만 하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등까지 넓게는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 놓인 고등학생까지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어른의 마음에도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니 청소년들에겐 더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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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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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컴버는 멀고 아름답고 고요한 곳이다. 누구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모든 존재가 사랑과 존중을 무한정 누리는 곳, 내가 꿈꾸는 곳. 나는 커컴버를 꿈꾸지만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도착하기도 전에 추방당했다. 107" 

 책을 읽다가 문득 거실 한쪽에서 조용히 자기 집에 들어가 대기중인 로봇청소기를 흘끔 거렸다. 쟤가 집안을 돌아다니며 구조를 익히고 가끔 발생하는 장애물들을 피해 이리저리 열심히 청소를 하는 것만 봐도 대견한데, 프로그래밍 된 몇가지 짧은 문장 외에 말을 한다면 어떨까. 집안일을 해주는 로봇이 나에게 말을 건네온다면, 기특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 사실 밥솥이 띠리링 울리며 밥을 한다고 말하는 소리도 가끔은 너무 말이 많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보다 더 수다스러운 사물의 수다를 참아줄 수 있을까. 처음엔 아미쿠의 말이 너무 많게 느껴졌다. 말을 하는 대신 조용한 연주곡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면 좋을텐데, 미리내가 아미쿠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마음도 알 것 같았다. 온 집안을 기름 범벅으로 만들어놓고 숨기고 있었던 비밀을 밝혀내는 집안일 로봇은 반품이나 교환을 유발하긴 할테다.

 학교에서 도로시의 소설을 쓰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리내는 자신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정말 모든 것을 직접 썼냐는 질문이 그의 양심을 찌른 것이다. 인공지능의 첨삭 도움을 받은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 우리의 창작 활동이 앞으로 어떤 영역으로 더 변화해나갈지 모르는 일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도 선뜻 미리내를 두둔해주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가 유치함에서 흥미로움으로 넘어가는 요소는 바로 이런 지점에 있다. 인공지능과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창작을 생산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지점을 자연스럽게 내용에 녹여내 소설에서 현실로 생각을 확장해준다. 

 미리내는 주변 친구들에게 이름 대신 채소의 이름을 붙인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흐려서 구석에 밀어두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남까지 지워버리는 태도,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날서고 공격적인 모습은 미리내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미리내가 가장 감정을 크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미쿠와 관련이 있을 때 였다. 아미쿠 외의 사람들과는 불평이나 비꼬는 말, 욕설, 단절을 담은 대화를 한다. 아미쿠에게 자신의 부끄러움과 분노를 대신해서 폭발 시켰을 때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미리내는 가장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누구도 미리내를 들여다봐주지 않는데 오직 로봇만이 계속해서 그를 두드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같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미리내."(39,112)" 다른 누구도 해주지 않는 것을 기계만이 해주는 미리내의 세계를 떠올려보면 그의 가시가 왜 날카롭고 거센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는 결국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오직 로봇만이 단절된 사람들의 외로운 마음에 끝까지 기회를 요청하고, 사람은 왜 서로가 단절되었는지도 모른채 로봇에게 기댈지도 모른다. 

 " 강미리내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투명 인간이어도 상관없지만, 작가 도로시만큼은 사람들에게 주목과 찬사를 받으면 좋겠다. 강미리내는 어둠 속 그림자처럼 희미해도 되고 아예 안 보여도 그만이다. 하지만 도로시만큼은 해처럼 환하고 별처럼 빛나는 존재여야 한다. 20' 

 그러다 문득 미리내에게 아미쿠가 진짜 있는 것일까 의심도 들었다. 다가오는 파프리카를 끝내 밀어낸 미리내의 모습, 함께 쫄면을 넣은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진짜 사람인 친구가 결국 그렇게 멀어져가는데도 미리내는 아미쿠의 음성에 기댄다. 망가진듯 보이는 모듈이 정말 다시 작동하는 것이 맞을까,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녀의 첫번째 독자를 지켜낸 미리내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진짜 자신은 밀어내고 작가 도로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마음에 들지도 않는 강미리내 따위는 저만치 밀쳐 두고, 존재 의미는 작가 도로시의 정체성에서 찾(51)"기 위해서, 어떤 세상도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는 도로시의 권능으로 도로시를 위한 아미쿠가 있는 세상에 빛을 주기로 한 선택같이 느껴져 씁쓸함이 남았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분명 함께 꿈과 우정을 키워나가는 두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난 후에는 독서등 불이 미치지 않는 거실 구석의 어두운 곳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남았다. 거기에 로봇청소기가 있었다. 언젠가 그게 내 유일한 친구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차게 식었다. 

 다시 청소년도서를 읽은 만큼 밝고 따뜻한 것들로 눈을 돌린다. 당근맨이 보냈다는 무만한 당근 상자 이야기를 읽었을 때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도 여전히 제주도에서 당근은 나는구나,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상한 곳에서 안심이 되었다. 표지에 그려진 아미쿠의 관절이 너무나 구태의연해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를 다소 유치할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으로 바라볼지도 모르는 예비 독자들에게, 이 안에서 음미할 아릿한 쇠맛에 대해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휴에도 소설 모드를 유지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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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 제5회 살림청소년문학상 대상, 2015 문학나눔 우수문학 도서 선정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2
박하령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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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파괴해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고로 나의 삐뚤어짐은 성장의 전조이다. 과거의 삐뚤어짐이 엇나감이었다면 이제 나의 삐뚤어짐은 존재의 외침에 부응하는 건강한 파격이다. 난 삐뚤어져야 한다! 그게 마땅한 일이다. 107"

 이상하게도 '의자 뺏기'를 읽으면서 전에 봤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101개의 자리가 순서대로 놓여져 있던 그 세트장. 처음엔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101개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없어지는 자리와 같이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알리려고 애쓰던 참가자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을 뿐인 누군가의 절박함을 바라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생존 경쟁 방식으로 된 티비 프로그램을 일부러 안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의자 뺏기'를 읽다가 그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전에는 그저 끝끝내 자리를 지켜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기쁨을 바라보곤 했는데, 이제와서는 자신의 자리가 없었던 사람들이 신경쓰였다.

 처음 은오는 왜 지오가 리포트를 숨긴게 아니라고, 희수의 책상에서 시연이가 뭔가를 빼가는 것을 봤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승미가 무섭더라도, 자신이 본 결정적인 장면을 밝혔다면 상황이 뒤집어질 수 있었을텐데 누구보다 가까운 편이 되어줄 지오를 두고 다른데서 자리를 찾으려고 눈치보는 은오의 모습이 답답했다. 그러다 하나씩 왜 은오와 지오 사이에 거리감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되면서 은오를 지켜보기 힘들었다.

 언제나 의자를 뺏기거나 양보해야 했던 은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주변이 하나같이 어렵기만 했다. 누구든 은오에게 왜 그래야만 했는지 솔직히 말해주었어야 했다. 은오 곁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자만을 좇아 제멋대로 사라져버릴 때마다 안타까웠다. 부산에서 만난 아주머니보다 그 애의 마음을 들여봐주지 못하는 사람들 곁에서 평생을 두고 은오는 앉아본 적 없는 의자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은오가 시달린 것에 비해서 풀어가는 과정은 오히려 짧고 아쉬웠다. 이마만큼의 큰 상처가 겨우 이런 순간들로 풀리고 덮일 수 있을까. 은오가 여전히 어리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삐뚤어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괴 속에서 청소년 소설다운 성장의 여지를 남기며 끝을 맺었지만 어딘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은오는 정말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지, 그래도 괜찮을지 한참을 가만히 생각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젠가 앉아보고 싶었는데, 나만 앉지 못한 채 서서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의자 뺏기'안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의자를 뺏는데에만 익숙해보여서 은오보다도 내가 더 미워했다. 누구 하나만 힘들면 나머지가 편할 수 있다는 말을 어린애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말을 어린애가 이해해서도 안됐다.

 앉아보고 싶었던 자리, 앉을 자리가 없어서 가만히 서서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바라보아야 했던 때를 떠올리며 '의자 뺏기'를 읽는 사람들이 이 결말에서 희망만을 골라 가져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뒤돌아보다 다시 앞을 봤을 때 내가 앉을 수 있었던 자리도 있었음을, 때로는 그 의자의 비좁은 자리에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서 나눌 수도 있었음을, 앉지 못한 의자 대신 새로운 의자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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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 꿈꾸는돌 43
강석희 지음 / 돌베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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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비참이 내게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나를 즐겁게 하던 것은 금세 나를 괴롭혔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나를 쉽사리 중독시켰다. 나는 내게 자주 실망했다.
사실은 매일
아니, 매 순간.
돌이켜 보면,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더 많고 더 큰 사랑을. 24" 

청소년도서는 좀 희망차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다 다시 표지를 뜯어보았다. 그런다고 읽고 있는 내용이 밝아지거나, 표지 색이 까맣게 바뀌거나, 띠지에 적힌 '성장소설상 수상 작가'라는 문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모든건 여전하고 바뀌어야 하는 건 내 생각일뿐인데, 처음엔 그랬다. 치기어리고 분절된 투로 제 안의 고집과 상처만 쏟아내는 연주를 보며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 그런 내 사정을 그 아이들에게 말하는 게 가능했을까? 내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놓아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나는 나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오해는 오해로 남겨 두는 게 차라리 편했다. 56" 

다가오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 이상의 벽을 치는 모습에 사춘기가 쎄게 왔구나 싶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고 왜 자신이 싫은지 늘어놓은 것들이 진학 실패, 남자친구가 퍼트린 악의적인 소문, 따돌림, 씹뱉과 먹토, 자해여서 마음이 가라 앉았다. 앙상하고 여윈 몸과 마음만 남은 연주가 안타까우면서도 한 번 걸려 넘어진 돌부리를 높은 벽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모르는 새 불룩 나온 입에 '푸르르' 숨을 내쉬며 입매를 풀어내곤 나도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 했다. 

그 시절엔 어제 나랑 화장실 다녀왔던 친구가 오늘 다른애랑 화장실에 가면 마음이 술렁이곤 했다. 눈길이 가던 사람이 다른 곳만 보고 웃어도 심장이 내려앉고, 누가 내 방에 노크없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나를 무시해서 내 공간을 침범하는 것처럼 화가 나기도 하던 때였다. 그랬던 시절의 마음을 모두 잊고 섬세하게 벼려진 감성과 예민했던 감각이 지워진 머리로 연주를 재단하려고 했다. 마음을 풀고 눈길을 다듬어 다시 연주를 본다.  

" "쓸데없는 말 하면 벌금 내는 법을 만들어야 돼."
이모는 할아버지의 지인 한 무리가 다녀간 다음 이마를 짚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입을 가리고 잠깐 웃었다. 그런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이모와 나 사이의 비밀이었다. 113" 

하마터면 벌금으로 가진 돈을 다 털릴 뻔 했다. 정신에 힘을 주고 바보같은 소리나 내뱉는 어른이 되지 않고 살아야지, 생각한다. 연주가 그토록 바랐던 까만 돌 '묵묵'과 함께 돌보기를 이야기하는 다해, 정연, 혜영이를 보며 마치 묵묵이 영화 '청바지 돌려입기'의 청바지 같단 생각을 떠올렸다. 같은 것을 공유하기로 한 친구들의 성장과 우정을 다룬 청소년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에서 오래된 영화이지만 '녹색 광선' 독자들에게 함께 추천해주고 싶었다. 

'녹색 광선'안에 모든 인물들은 다 이유가 있었다. 누구 하나도 예사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다. 이모, 할머니라고 붙여진 호칭에도 윤재와 명선 같은 이름이 있었다.여기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도 괜찮은가, 싶을만큼 섭식장애, 가정불화,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같은 키워드들이 빼곡했다. 하지만 인물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위해 기능하도록 쓰이는 장치가 아니라,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숨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어둠이 길고 갈등은 다양한데, 멈춰있던 관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치유의 과정은 그에 비해 짧게 느껴졌다. 내면으로 침잠해 가라앉는 개인을 일깨워주는 것은 외부의 두드림이었다. 닫힌 이모네 집 문을 윤재야, 하고 부르며 두드리던 할머니의 마음처럼, 타인을 거부하던 연주를 초대한 생활 트래핑 단톡방의 알람처럼, 일반인에게만 열린 세상을 향해 지하철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시위처럼 곳곳에 두드림이 있었다.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행복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끝내 남은 페이지가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인생은 완벽한 행복으로 닫힌 결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 남은 시간들이 여백으로 남겨져 있다는 점이 더 감각을 잃지 않은 성장소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엉킨 실이 조심스럽게 하나씩 풀려가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차분하고 섬세한 눈으로 상처를 보듬는 성장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면 '녹색 광선'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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