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냉소적인 척 정치인들 다 똑같다, 좋은 정치인을 뽑는게 아니라 덜 나쁜놈을 뽑는 것이 선거라고 말했지만 요 몇년간을 보내면서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구나 체감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부작용인가 싶게 선택의 형벌은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왔다. 누군가는 엉망이 된 지난 몇년간을 형벌로써 깨닫지도 못하겠지만 겨울이 길었던만큼 세상이 차고, 앞으로 놓여질 청산의 과제가 여름의 뙤약볕만큼이나 고될 것이다. 뉴스에 곧잘 나오는 국회의 모습, 공약만 번드르하고 버스값조차 모르는 꼴을 보며 정치한다고 나서는 건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겨먹는 노릇이라 생각했는데 국정 노트를 읽으면서 이게 바로 정치를 한다는 것이구나 비교하며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넷플릭스 순위나, 음악 차트 같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컨텐츠들이 세계 순위권에 올라있다. 부끄러운 한국밈 중 하나인 '두유노김치'나 우리가 보기에도 식욕이 떨어지는데 외국인은 오죽할까 싶은 대형비빔밥 만들기 행사 같이 그토록 열심히 했던 헛발질이 어느새 땅에 닿아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문화를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두유노'하지 않아도 우리를 알아준다. 그 바탕에는 " '노동력보다 사고와 지식의 힘이 시장을 지배하는 뉴 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다'는 앨빈 토플러의 언급을 인용했다. 이어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음반, 출판 등 분야별로 한국과 세계 시장 규모를 비교하면서, 우리 문화 산업을 확장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p48" 문화의 힘을 강조한 정책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좋은 컨텐츠만 만들어내면 일본에서 항상 한국은 국가에서 보조해주니까,하며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하던데 아마 이 시기를 말하는 듯 하다.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요즘 여러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우려했던 만화, 음악 같은 것들엔 오히려 영향이 덜하지만 술, 여행, 알 수 없는 일본풍 식당이나 술집 같은 것들의 수요가 늘어났다. " 김 대통령이 "최 교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이미 많이 돌려보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께서도 금서 읽어 보셨죠? 저도 많이 읽었습니다. 금서의 정의는 '금지된 책'이 아니라 '인기 있는 책'입니다. 금서를 없애려면 단속할 게 아니라 그냥 풀어 줘야 합니다. 금서는 풀리는 그 순간부터 인기가 없어져서 사람들이 읽지 않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도 똑같다고 봅니다." p53" 금서에 관한 생각은 확실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보다 더욱 욕망하게 된다는 시각이 맞지만, 청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는 와중에 일본문화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되는 세대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책에 어쩔 수 없이 탄핵 당한 전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노트 내용을 보다가 윤석열이 제1야당 대표와 회담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내용(p123)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진다. 공교롭게도 또 12.3인 비상계엄과 국제 사회의 위태로운 행보로 박살이 난 경제는 10조원 규모의 추경 필요성을 화두로 올려놓았다. 요즘 쓰레기 파파라치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 언론사 세무 조사를 강행(p193)했던 것처럼 장기고액체납자들부터 과거 친일파 부당이득, 재산 환수 등 세수 확보를 위한 현명한 방안을 21대 당선자는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언론사 세무 조사에 있어 추징만 좀 많이 당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3개 언론사 사주 구속(p210)까지 굴러간 스노우볼이었단 소회에 웃음이 나왔다.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특히 다음 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이야기(p215)가 최근 탄핵된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어 읽혔다. 국민들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청와대를 돌려주겠다며 아까운 청와대 자리만 날리느라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도 없는 행태에, 공부하고 시험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자리에 서는 것보다 격부터 갖추고 인성을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현재의 교육방식도 뿌리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꽤 유명하게 퍼져있는 대통령의 '문패p100' 일화는 이희호 여사와의 로맨스도 일부 함께 알려져 있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감탄이 나올만큼 진보된 사고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보육을 강조한 모성 보호법과 여성의 경제활동 필요성 역설p106'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뒤로 페미니즘의 움이 트려는 시도 끝에 이에 반발하는 역풍이 불어 갈등이 깊어지고 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어 있으니 앞으로의 인식 개선 또한 멀다. 

각 장의 내용마다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던 국정 노트의 복사본이 그대로 실려있는데 보고 놀랐다.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어 곁들인 조사나 어미, 간단한 한자와 간간히 적힌 영어 단어 말고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같은 사람은 이 중요한 노트를 대통령이 직접 미리 보여주었대도 아무 소용없었겠구나 싶어졌다. 다행이도 책에는 저자가 독자를 위해 직접 한자 내용을 하고 싶다. 솔직히 책 제목이나 표지를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이를 어떻게 타개해나가려 했는지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왜 여기에 이 돌을 두었는지, 몇 수 앞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는지 시류를 읽어나가는 힘이 마치 바둑 풀이를 보는 느낌이다. 6월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어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읽은 책을 모아서 분류한다. 다른 사람에게 줄 것과 간직할 것. 대부분은 욕심껏 간직하는데 읽으면서 누군가가 떠오르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주거나 혹은 새로 한 권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요즘은 책장 빈자리가 위태로워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말을 왜 하냐면, '화가들의 꽃'은 책장이 무너져도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처음 책을 펼쳐보고 책인지 꽃다발인지 모를 화사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매혹적이고 다채롭고 관능적이고 강렬하고 감각적이며 암튼 좋은 수식어가 와르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그림도 좋은데 그것도 명화들 중에 더욱이 꽃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었다니! 좋은것에 좋은것을 더하면 더더욱 좋기밖에 더하나? 게다가 이 색감을 고스란히 살려내려 작정한 듯한 재질이라니. 푸른숲 정말 무서운 곳이다. 

 요즘 책을 읽을 때 뜻대로 진도가 안나가면 어디든지 들고 다니면서 한줄 읽고 다시 다른 일을 하고 늘 같이 다니려고 해보는데, '화가들의 꽃'은 그냥 좋아서 안고다녔다. 어딜 펼쳐봐도 빤히 들여다보게 되고, 예뻐서 홀리듯이 보고 또 보게 된다. 이런 제가 이상해보이겠지만 정말 책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게다가 더 마음에 드는 점은 입은 닫고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실행하듯 설명은 간결하고 작품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페이지 전체가 작품으로 가득한 곳을 펼쳐놓고 있자면 시각부터 시작된 강렬함이 마음까지 스트로크로 전달된다. 책멍도 가능하다. 레이철 레비 '장미(p96/97)'들을 보고 있자면 향이 진해지다 못해 살짝 단내가 섞인 장미의 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꽃은 그 자체로 균형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섬세히 그려낸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지만 스탠리 비엘렌의 '라눙쿨루스(p84/85)'들이나 이본 히친스의 '짙은 색 양귀비(p80/81)'같은 작품을 보면 단순함이 주는 매력도 느껴진다. 

 얼마 전 다녀온 불교박람회에서는 주로 연꽃이나 모란이 그림 속에 등장했는데 마찬가지로 책에서 만나는 연꽃, 모란, 국화등 익숙한 꽃들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서양 쪽에서는 수선화나 팬지, 백일홍 등의 낯익은 꽃들도 등장하지만 특히 장미와 양귀비가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화가들의 꽃 동양편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개나 자수로 표현된 꽃들도 함께 볼 수 있다면 정말 화려하고 예쁠텐데. 

 영화 '콘클라베'를 보며 사람은 오래된 것, 거대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 압도당함을 느꼈는데, '화가들의 꽃'은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어느 새 만개한 봄꽃들을 보며 봄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지만, 어느 계절인들 또 안 어울릴까 싶다. 봄을 맞아 책장에 시들지 않는 꽃을 간직하고 싶다면 '화가들의 꽃'을 선택해봐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 스터츠의 내면강화 - 흔들리면서도 나아갈 당신을 위한 30가지 마음 훈련
필 스터츠 지음, 박다솜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한 조각의 케이크나 한 잔의 술을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이 선택을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보다 더 큰 맥락과 연결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살이 찌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강렬한 쾌감이 눈앞에서 유혹할 때 날씬해지고 싶다는 동기는 상대적으로 약해져요. 이때 효과적으로 즉각적 보상을 포기할 유일한 방법은 포기라는 행위가 그 자체로 자기 내면에 고차원적 힘을 쌓아준다고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이는 영혼의 돼지저금통에 동전 한 닢을 넣는 것과 비슷해요. p62"

 오랜 시간동안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해온 입장에서 정말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이다. 이 자체가 바로 나의 문제점 그대로였다. 속수무책으로 살이 찐 것처럼, 나약한 의지는 다른 부분에서도 드러나는데 책을 읽겠다고 자리에 앉아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이런저런 어플들을 뒤적이며 한참동안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즐겁지만 글자가 즐거움으로 소화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주어지는 자극은 편리하고 즉각적이다. 그동안 디지털디톡스라는 것을 좀 냉소적으로 바라봤는데, '포기'가 그 자체로 의미로 쌓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도해볼만 하겠다. 
 
 이 작고 잦은 실패의 문제는 4장에서 '의지의 문제'로 다시 등장하는데, 외적인 자극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삶을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고차원적 자아를 활성화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동에 개인적 의미를 불어넣는 데 고차원적 동기 체계의 비밀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다는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에너지를 얻는 원천이지요.(205)' 이는 '단지 자신에게 옳다고 느껴지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함으로써 얻어진다. 이는 타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규칙적인 하루를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요즘 가장 많이 강조하게 되는 말이자, 아주 중요한 조언 중 하나로 실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줄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아마 지금이 사회초년생에게 원하든 원치않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인듯하다. 책에서도 바로 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옮겨왔다. " 우리는 우리가 내린 결정이 '옳기를' 바라고, 다시는 불확실성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도록 세상이 그만 변화하고 그대로 고정되기를 바라지요. 마음속으로 그런 바람을 품고 있기에 우리는 작은 결정을 내릴 때조차 죽고 사는 문제를 앞둔 것처럼 압박에 짓눌립니다. 우리는 잘 결정하면 구원받을 테고, 잘못 결정하면 인생이 대번에 망할 거라 느낍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좋든 나쁘든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p75"

 초년생들에게는 다 아는 척 말을 얹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소한 결정을 내릴 때 생사가 걸린 것처럼 심각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초년생에게는 인생이 계속되기 때문에 힘을 좀 풀어도 괜찮다는 이유가, 이쯤되면 시간은 흐르고 결코 되돌리거나 잡아둘 수 없기 때문에 그 한번의 선택과 기회가 오히려 소중한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오늘 먹는 저녁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다. 맛있는 저녁을 먹을 완벽한 메뉴를 선택하지 못하면 인생이 망하진 않아도 오늘 몫의 행복엔 타격이 온다. 영혼은 모르겠지만 한끼한끼가 소중한 돼지저금통(62)의 배에는 맛있는 것을 넣어야 고차원적인 만족이 온다.

 더불어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선택과, 결정이 실수나 실패로 이어지지 않을까 압박과 불안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는 것에 맹목적이게 자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 지혜는 평범한 인간의 사고력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에 저항합니다. 우리의 에고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보다 더 현명한 것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를 꺼립니다. p223" 이는 부끄럽게도 아는 것이 충분치 않을 때 아는 것이 많아질 때보다 많이 나타난다. 삶을 충분히 더 깨닫지 못한 지금, 초년생에게 조금 더 경험해봤다는 이유로 조언을 하는 꼰대가 되는 것처럼. 입을 다물고 지갑은 열고 자리는 피해주는 어른이 되자. 

 " 새롭게 감사할 거리를 가능한한 많이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영 운수가 나쁘다 싶은 날에도 긍정적인 일이 한없이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p88" SNS를 이용하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우울한 날을 보냈는지 얘기하는 이용자를 볼 수 있다. 가끔 그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점, 오히려 좋은, 럭키비키한 면을 꺼내 위로를 건네면 대부분의 낙심한 사람들은 금새 조금 기운을 차린다. 감사할 거리를 건네고 누군가 관심을 보낸다는 작은 신호만으로도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특히 작년 유행한 럭키비키적 사고방식이 참 마음에 드는데, "보통 살아가면서 뜻밖의 불쾌하거나 불행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바꾸거나 피할 수는 없어요.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뿐입니다. p95" 내면강화에서도 바로 그런 생각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나 현명한 방법이고, 긍정적인 현상이었는지! 

대부분 공감하며 읽었는데, 3장 '돈'에 관한 내용에서는 주춤했다. 개인적으로 '피츠제럴드가 단단히 착각했다(134)'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 부분에서 삶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정말 부자들이 감정적이거나 영적인 차원에서 '모든 사람과 똑같은 세상에 살고 있'을까? 종종 혼자서 살기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최소한의 공간 크기에 대한 질문을 본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 우리의 정서에는 필요하고 현대사회에서 그 조건은 물질로 채워져야 한다. 우리가 성공의 기준을 돈으로 삼기 때문이 아니라, '온 세상의 돈을 다 가지(140)'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최소충분조건에 도달하기 위한 치열함이 매몰됨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153", " 아이는 우리가 하는 말이 논리적이라고 듣지 않아요. 오직 우리의 권위를 긍정적으로 느낄 때만 우리의 말을 듣습니다. 아이가 자신보다 우리가 강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아이에게 우리는 부모로서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자녀를 현실에 잘 대처하도록 준비시키지 못했다면 제대로 양육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154" 이 부분도 이견이 있을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부모가 아이를 교육시키는데 있어 지나친 관용을 보인다는 점에선 동의하지만, 이해를 통한 교육도 분명 가능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권위만으로는 복종밖에 이끌어낼 것이 없지 않을까. 양육에 관해서는 '6장의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289)'로 이어지는데 영성(294)을 강조하는 일부 내용 등에서도 공감이 다소 어려운 면이 있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아쉬움이겠다. 

 " 이렇게 승리에 집착하는 풍토는 스포츠를 왜곡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점을 진지하게 문제 삼지 않아요. 프로 팀은 승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리라는 판단이 서면 선수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눈감고 기용합니다. P188"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마땅한 제약도 없이 업무에 복귀하는 것을 지나치게 많이 보아왔다. 이런 방만함을 거르고자 하면 세상에 두 눈 뜨고 지켜볼만한 것도, 두 발로 찾아갈만한 곳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뿐만 아니라 정치, 연예, 의료 등 많은 부분에서 이익을 위해 문제있는 사람을 기용한다. 이들의 도덕적 흠결 같은 것을 걸러낼 거름망은 필요성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에 환멸이 느껴진다. 책에서도 이 "승리 우선주의(189)"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 하나의 모토가 되었음을 꼬집는데, 깊이 공감했다.   

 요즘 시류 덕분에 '모든 것이 부서지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275)'의 내용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지난 겨울 우리가 예기치 못하게 목도한 악의는 지나치게 긴 시간을 끌어왔다. 사회만이 아니라 환경마저도 큰 화재로 파괴되고, 국제 사회 또한 나날이 경색된 흐름을 보인다. 악은 너무나 크게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데 이에 맞서는 개인은 무력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악에 대한 태도를 '우리의 목표를 무의미하게 하는 힘에서 우리가 목표를 이루도록 등을 떠미는 존재로 변모(278)'하도록 바꾸라는 조언을 처음 봤을 때는 다소 순진하지 않나 싶었는데 찬찬히 되짚어보니 느껴지는 게 있었다. 휴일을 반납하고 겨울 거리로 나선 사람들, 따뜻한 음료를 나누던 손길, 재난 현장으로 이어지던 도움과 염려는 우리의 등을 떠민 악에게 보인 긍정의 태도였다.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고, 요즘 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만한 점도 많아 상당 부분을 따로 적어두며 공부하듯 읽었다. 다소 낯선 표현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 생각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읽어보면도움이 되겠다. 잠깐 시야가 좁아져 보이지 않던 것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근이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핸드폰에도 당근 어플이 깔려있다. 당근을 그럭저럭 잘 사용하고 있는데 워낙 이름난 악명에, '그것 조금 아끼자고 중고로 산다고?' 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을 가끔 만나기 때문에 당근 어플을 종종 이용한다는 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쓴다. '당근이세요?'의 제목을 보고 내용이 정말 궁금했다. 소설집이니까 당근거래를 매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 기대했는데, 그럼 틀림없이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깊은 '문제'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이어졌다.  

딸꾹질은 묘했다. 아홉살의 지완은 아무리 '엄마 뱃속에서의 태교부터 시작해 몬테소리, 프뢰벨을 거치며 샛별유치원과 지금의 성실초등학교 입학까지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10)'을 거쳐왔다 해도 너무 성숙해보였다. 이것도 아이가 아이다워야 한다는 편견일까. 하지만 자꾸만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지완이 충동적으로 캔을 따는 상황도 묘했다. 축구도 지완에게도 이변이 일어나는 순간이어서 그랬나? 사실 트럭을 탄 지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가 더 궁금했는데 갑자기 끊겨 아쉬웠다. 이 이변은 지완이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까, 아이처럼 보이게할까. 

" 보라가 먼저 노래책을 집어 들고 선곡을 한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다. "전국노래자랑 분위기로 가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뜬 나영이의 반문에 보라가 대꾸한다. "우리 엄마 십팔번이야." p77" 갑자기 튀어나온 제목에 놀랐는데 이어서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제목이 이어진다. 부모님의 십팔번을 부른단다. 아, 슬프다. 이거 다 아는 곡들이구만. 보라의 아픈 마음처럼 내 마음도 아프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누구보다 자식 교육에 관심이 큰 보라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스물다섯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는 것, 알콜중독이던 아빠는 결국 간암으로 시집온지 10년도 안돼 죽고 혼자 보라를 키워왔다는 것이 한동안 마음에 걸려 남는다. 

"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아주버님 생일날 면회 다녀오시고 며칠 뒤에 있었던 일이었나 봐요. 광주에 투입된 게......' 엄마도 한 번씩 나름의 짐작으로 옛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가족들 사이에 오가는 큰아빠 군 생활 관련 얘기는 짐작과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당사자인 큰아빠가 그 일에 관해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 아니 이제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이건만 정작 큰아빠는 지금껏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p102" 지완이의 이야기에 등장한 근대사의 각종 날짜들을 보며 어느 정도 짐작했는데, '오월의 생일 케이크'에서는 더 깊은 상흔을 드러낸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큰아빠가 등장한다. 지완은 심부름으로 할머니댁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데, 그런 지완의 혼란스러움과 큰아빠의 이야기가 세대를 잇는 이해를 그려낸다. 

네 이야기 모두가 하나씩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개를 보내다'는 읽으면서 특히 피로감을 느꼈다. 가장 일반적이고, 문제의식조차 희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이다. 진서의 생일날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강아지 진주는 유기견 출신이다. 가족의 동의 없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진서의 생일 선물이 된 진주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답답하다. 다른 이야기들은 중간에 갑자기 끊긴듯한 마무리로 궁금함을 자아냈는데 진서의 이야기만은 마지막까지 마무리 지어진 채로 끝나 그 점만은 개운했다. 그 안에서 진서가 많이 성장했음도 느껴졌다. 기대와는 다른 색의 내용을 만나게 됐지만, 아이들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분들은 더 핍진성있게 설정되었다면 좋았으리란 아쉬움도 주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어지는 독후 활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 주제를 던진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고 싶은 공부 - 최재천과 함께하는 어린이 성장 동화
함주해 그림, 박현숙 글, 최재천.안희경 원작 / 김영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휴, 저 나쁜 놈."p4" 서문의 시작부터 엄청 웃었다. '열심히 키워놨더니 저 혼자 알아서 큰 줄 안다'고 종종 말하는 엄마가 떠올랐다. 아마 때때로 이제 좀 컸다고 잔소리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사사건건 논리 싸움을" 걸어대는 나에게도 부모님은 욱하셨겠지 짐작한다. 얼핏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아이들에게 부모님 말씀에 복종하지 말고 힘을 내서 부모님을 설득하라고 북돋는다. 하고 싶은 공부에는 무조건적인 반항이 아니라 스스로의 심지를 굳히고 나아가라는 나침반이 들어가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성장 동화여서 깨끗하고 순수한 인물들이 등장해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정우와 건이, 소리가 세트처럼 붙어다니게 된 계기와 미묘한 친구사이를 드러내는 부분에선 저절로 잇몸이 드러난다. "'소리는 나와 건이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할까?' 요즘 나는 그게 제일 궁금하다. p16" 소리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아줌마는 이런거 좋아해... 이 삼각관계는 두 친구의 경쟁심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며 서로가 성장하도록 돕는다. 그 안에서 세 친구 사이의 균형을 위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비밀로 놓아두는 소리의 성숙함도 좋았다. 

동화나 청소년 도서를 읽을 때면 항상 느끼지만 매번 배울점이 있고 감명을 받는 점도 있다. 대상이 어린아이여서 쉽게 말할 뿐 그 안에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어보고 비로소 깨달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해의 순간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것들이 모이고 쌓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실패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칠 것 같은 걱정에서 가장 나쁜 것은 실수나 실패보다 걱정하느라 괴로워하는 마음인 것, 도전하면 성공하거나 실패해도 모두 경험이라는 바탕이 되니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도전할 것. 아이들이 봤을때는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넓어지고 편안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 아, 저번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이건 아주 중요한 말이거든.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 너, 조금 비만이지? 나는 소장님 말에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며 아랫배를 집어넣었다. 공부를 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해.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지? 그래야 오늘처럼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닐 수 있으니까.p107" 읽다가 깜짝 놀랐다. 건강, 자기관리 역시 중요한 문제이지. 어른도 하고 싶은 공부, 가고 싶은 장소, 살고 싶은 삶을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심지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조언이 등장하며 이렇게 또 배운다. 

읽던 책을 끝내고 다른 책들을 읽기 전에 비교적 가볍게 읽어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깊이 있게 읽었다. 끝에 가서는 마음이 미묘해졌는데, 방황하는 수우도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저자는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학부모를 함께 초청하곤 한다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깨닫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열매를 깰 용기를, 어른에게는 마땅히 아이들이 깼어야 할 열매를 귀애한다는 마음에 대신 깨려고 했던 게 아닐지, 자기 몫의 열매가 무엇일지 헤아려보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