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면 종말 - 안보윤 산문
안보윤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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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각각의 우주를 돌고 있는 외로운 행성처럼 멀리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는듯이,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누군가의 중력을 느끼곤 한다. 혼자 부유하던 마음을 땅에 내려붙여 쉬어가게 만드는 힘은, 이 넓은 세상에서 여전히 누군가가 제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무게감이다. 저마다 빛나는 우리 삶이 혼자이되 세상은 고독하지 않다는 이 신호는 언젠가 내 삶의 힘으로 누군가를 끌어당겨 주고 싶다는 의지가 되어 묵묵히 나만의 궤적을 돌게끔 만든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하루와, 아끼는 것들을 모아놓은 작은 주머니, 지금은 연락이 끊긴 인연들, 언젠가 비오는 날 낯선 사람에게 건네주었던 우산, 어제 꾸었던 꿈,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 같은 것들을 가만히 헤아렸다. 짧고 잔잔한 글을 읽는 시간들 사이사이 쌓아두기만 하고 돌보지 않았던 일상이 되살아났다. 여름의 치열함이, 한해의 뜨거움도 물러나 조금은 맥이 풀린 시기에 어쩐지 위로가 되어주는 소소함이 '외로우면 종말'에 있었다.  

 '외로우면 종말'이라니, 세상 종말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는 것일까 책의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이 종말은 예상 밖의 외로움에서 비롯되었고, 이 산문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언제 어느 책장을 펼쳐도 36.5도 즈음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부드러움과 다정함 속에서 작가는 '"내 밤을 왜 니가 가져?"(174)'라는 당당한 목소리와 주체성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지만, '외로우면 종말'을 읽던 9월의 어느 밤은 작가가 가져갔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니 밤을 왜 나를 줘?'하고 답해오려나. 

 책을 읽는 동안 몇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둔 부모님의 건강검진 사전질문지를 확인하고, 내시경 준비를 위한 약을 체크하고, 새벽같이 출발해 검진실로 들여보내 드리고 난 참이다. 그 날의 나와 언젠가의 작가가 같은 벽 앞에 서서 어른이 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겹쳐보일 때도 있었다. 가끔 사소한 것을 모르고 지내왔거나, 중요한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벽 앞에 서봤던 마음으로 그들에게 '얘'하고 말을 붙여 한걸음 등을 밀어주는 그런 사람이 나도 되어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안보윤의 첫 산문집을 읽는 동안 하릴없이 어수선하던 마음이 잠시 머무르며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칼럼을 제안 받던 식사 자리에서 스스로를 내려누르려다 타인에게마저 무례해졌던 지난 날을 내보이던 작가가, 처음으로 차려내준 '솥밥' 속 짧은 이야기들 틈마다 표고버섯향이 나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함수는 모를지라도 오히려 계산적이지 못한 대신 선의를 나누고 받을 줄 알아 다행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또 어떤 세상과 사람을 풀어내 줄 것인지 기대해본다. 그가 쓰고 우리가 읽는 동안 세상이 종말로부터 조금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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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박용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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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뉴스에 굵직히 보도되고 있는 현안 중 하나가 '검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소식이다. 지난 2025년 9월 18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검찰의 수사·기소 기능을 분리해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여당의 주도로 처리되었다. 검찰,하면 우리 생활에서 경찰보다는 멀지만 그만큼 익숙히 들어온 수사 기관이 아니던가, 과연 검찰이라는 조직은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이목이 집중되는 요즘이다. 

 일반 시민들은 보통 매체를 통해 검찰에 대해 접하게 된다. '형사법에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80)'이 되어 '인생이 절단' 날수도 있다는 일반인에게 있어 검찰의 기소, 수사는 실생활에서 뉴스로 볼 수 있는 수사 관련 보도가 주를 이루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게 다뤄지는 직업군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러나 상징적인 기관의 존폐 여부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올라와 있는 지금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은 대한민국 검찰의 세계를 톺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검찰이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뉴스를 종종 봐왔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잘 이용하는 방식의 표적/보복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영화 속에서 항상 주인공의 활약으로 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에야 경찰이 등장하는 것처럼, 검찰은 정재계의  어두운 면모와 결탁한 집단으로 그려지는 일이 적지 않다. 스토리적 과장이라 하겠지만 검찰 안에서 학벌과 각종 연, 위계로 알력 다툼이 일어나는 장면을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권력을 잡은 집단은 다 그렇지 뭐,하고 문제삼지 않았/못했다. 그리고 그 부작용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책은 검찰이라는 기관을 다양하게 돌아볼 수 있는 장치를 해두었다. 23개의 질문을 통해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 기관이 가진 문제를 드러내 개선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의 콘페이트 사건(66)과 유사한 폐해를 보이는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72)을 실례로 소개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상황과 외국의 사례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여 현재 직면한 구조적 문제점이 어떻게 쌓아올려진 것인지 뜯어보고 어떤 개선 방안이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일부 단락의 끝에는 '더 들여다보기'를 통해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을 덧붙이기도 하고, 궁금할 수 있는 부분을 짚어주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인상깊은 점은 지난 123 비상계엄과 탄핵, 그 이후의 처리 과정과 다시 치러진 대선을 중심으로 검찰과 사법부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국민 눈높이(214)를 배반한 전례 중 하나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165)과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167),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등을 절차를 빌미로 뭉개기를 시도한 오점, 야당 지도자 시절 이재명 대통령이 6차례 기소를 당한 정치적 표적 수사(170) 등을 다루며 국민들의 공분을 산 정치사와 함께 검찰의 그릇된 행보를 드러내고 있어 문제제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 수사.기소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말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믿어 달라고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닙니다. 권한의 오남용을 견제할 충분한 장치가 갖춰져 있어야 그 제도를 통과해 나온 결과를 신뢰한 근거가 생깁니다. 그런 제도 노력은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습니다. 76" 

 스스로를 견제하고 정화할 체계가 없는 집단은 고이고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지난 시간들을 통해 배웠다. 조직 권력의 정점에 선 한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한 집단은 특정 정치 세력과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48) 적법 절차에 따른 절차적 정의 마저 권력자 앞에서 기술적 도구가 되어 이용(162)되었다. 국민에 의해 부여된 힘에 취해 자정없이 치달아온 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파멸에 이르게 되는 그 흐름에 검찰이라는 집단이 속해있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법부의 문제점도 짚어내며 사법 개혁의 필요성(265)도 함께 강조하며 끝을 맺고 있다. 

 표지와 제목이 주는 인상이 다소 딱딱하고 법과 수사기관에 대한 바탕이 없다면 어렵게 느껴질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다르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좀 더 접근성이 좋은 표지였다면 123 이후 법과 정치, 우리 사회의 구조에 관심을 갖고 감시의 눈을 뜨기 시작한 독자들에게 어필이 될 수 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현학적이거나 고루한 내용이 아니고 세계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설명하고, 아직도 쟁점이 되는 우리 사회의 현안들을 끌어와 이해의 폭을 넓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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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데이터베이스에 가둔 남자 - 프라이버시를 빼앗은 ‘초감시사회’의 설계자
매켄지 펑크 지음, 이영래 옮김, 송길영 감수 / 다산초당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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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말해 기계는 당신의 점수를 매기고 있다. 18" 

 처음, '프롤로그 1 데이터 시대의 서막' 시작부터 영화나 미드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으로 '행크 애셔'의 삶에 몰입하게 만든다.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은밀히 가족들과 만나 몸을 피하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 그의 맨 얼굴을 자식조차 몰랐을 정도로 비밀리에 움직인 남자는 정부를 상대로 그가 가진 가장 가치있는 카드인 '정보'를 거래하려 시도한다. 데이터 시대에 영향을 미친 인물에 대한 일대기를 풀어낸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단순한 예상, 그 이상의 도입이었다. 예상을 벗어났지만 관심사나 아는 분야가 아니라도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겠단 기대감이 차오르는 시작답게 '행크 애셔'의 삶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1993년 오토트랙을 통해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어린이 납치 사건을 해결한 내용을 다룬 부분(112)과 예측 치안을 통한 인종 프로파일링(294)에 대한 내용은 프로파일러와 기술분석가가 등장하는 미드에서 자주 보던 수사 방법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2001년에 일어난 911테러와 HTF(테러리즘 지수.178)의 개발 과정까지 이어지는 글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극적인 재미가 더해진다. 사이신트의 직원들이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고 누군가를 떠올렸다(194)고 하는데, 확실히 수사물 미드나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뛰어난 인물이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내용의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행크 애셔의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후반부에 이르면 책의 내용은 애셔 개인의 삶과 연관된 고리를 넘어 우리 삶에 좀 더 밀접한 영역으로 다가온다.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찍는 셀카와 습관처럼 사진과 글을 남기는 sns 사용이 어떤 식으로 저장되는지, 우리가 남기는 정보와 기록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따라가다보면 누군가 자신에대해 파헤치고자 한다면 이를 막을 수도 벗어날 수 없는 감시 체계-현대판 패놉티콘 안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때 cctv와 신체 정보 수집으로 개인을 감시한다는 폭로로 논란이 되었던 중국의 텐왕 시스템과 같은 정치적 배경과 공연성은 없지만, 자본의 논리와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영향 아래 정보의 그물에 둘러싸여 갇혀있다는 사실은 다름없이 여겨진다. 

 핸드폰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는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활동이 해결되는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편리함의 범위만큼 우리는 핸드폰, 컴퓨터 같은 기계와 인터넷의 연결 아래에 있다. 서류를 떼거나 은행 업무를 보려고 해도 회원가입 절차가 필요하고, 그 안에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가 들어가야 한다. 핸드폰 통신 회사에서 인증이 가능한 그 모든 정보를 유출 당했어도 당장 핸드폰 계약을 해지하고 나면 변변히 연락을 주고 받기도, 일상에 필요한 자잘한 일을 처리하기도 불편해진다. 핸드폰의 검색 기록 저장을 없애고, 위치를 지정하지 않고, 지나친 정보 공개를 줄이려고 해도 가끔 내가 하는 말이나 적은 글의 내용이 자동으로 수집되어 상품이나 영상등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에 반영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인터넷 쇼핑 추천 광고 목록에 대화 주제에 맞는 상품이 제안되거나, sns 추천 게시물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이어진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핸드폰을 가리키며 '얘가 다 듣고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글쎄 그게 정말 농담일까.

 '세상을 데이터베이스에 가둔 남자'를 읽다보면 영화처럼 그려지는 인물의 삶과 함께 자신의 일상 속 어딘지 꺼림칙한 순간들을 되짚어보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모든 정보는 이미 세계의 공공재라고 할 만큼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빼내어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요즘, 하나의 데이터로 노출, 관리되고 있는 개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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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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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탕에 대해 듣다보니 사탕수수를 보다가도 설탕수수라고 말이 나오는 설탕사탕붕괴현상이 일어났다. 온통 설탕에 대한 이야기 뿐이지만 읽다보면 사람과 세상을 알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설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작은 차와 함께 한다. 차와 설탕의 관계가 뗄 수 없이 긴밀히 이어져 내려온 것을 찰스 2세와 카타리나 공주의 정략 결혼과 엮어내 읽기 쉽게 풀어내며 흥미를 잡았다. 포츠머스의 귀부인들이 카타리나 공주가 아름다운 찻잔에 담아 마신 음료의 정체를 궁금해 했던 것처럼 차 한 잔에 곁들일 설탕과 함께 책을 만나보자. 

 세계 제 1의 설탕 생산지로 도약한 브라질의 과거사를 읽다보면 브라질에서 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지 알게된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나온 '뽀르뚜까'라는 호칭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제제네 남매들의 피부색과 머리카락색에 대한 묘사 등이 포르투갈 이주민과 현지 원주민 사이의 혼혈 인구 구성(124)을 바탕으로 이해됐는데 역사라는 키워드가 아닌 설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뻗어나간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 좋았다. 

 설탕은 곧잘 금과 담배, 술로 연결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골드 러시에 대한 부분이나 미국의 목화밭, 쿠바에서 만난 캐나다 사업가와 함께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설탕에서 잠깐 주제를 벗어났나 싶다가도, 쿠바에서 피운 시가와 어울리는 술로 럼을 꼽으며 중심은 다시 단맛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벗어난 듯 느껴졌던 길에서 관타나모에 얽힌 미국, 스페인, 쿠바 간의 조약과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 두 편을 소개 받았으니 이런 흐름 또한 나쁘지 않았다. 

 사탕수수, 사탕무 같은 작물과 설탕은 우리 땅에서 재배하고 생산했던 작물이 아니라 그 역사가 멀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설탕과 전쟁, 노예, 식민의 역사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흑인 노예를 대신할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이주민을 받았는데, 지난 광복절 때 티비 프로그램 강연에 나온 적 있는 첫 이민 세대인 이들이 독립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 힘을 보탠 일화가 여기서도 소개 되고 있다. 
 책의 중반 쿠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멕시코를 통해서 이주해 온 한인 여성의 후손인 소녀들과 만난 이야기(157)는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과 소설 [검은꽃]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 인신 매매, 취업 사기나 다름없는 이주 노동의 역사는 마찬가지로 '9장 하와이, 설탕, 그리고 우리'의 내용과 이어진다. 하와이 사진 신부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란 소설이 이 배경을 다루고 있으니 읽어봐도 좋겠다.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핫초콜렛 가루가 너무 달길래 덜 달게 마시고 싶어 카카오 가루를 샀을 때 깨달았다. 카카오 가루는 달지 않았다. 초콜렛 특유의 향과 색이 진한 카카오 가루는 그만큼 쓴 맛이 났고 거기에 설탕을 넣었을 때 비로소 알던 초콜렛 맛이 났다. 초콜렛은 원래 달다고 생각했지만 단맛을 내는 설탕이 들어가서야 아는 맛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설탕을 넣었는지 혹은 생각보다 많은 양의 설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먹는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단맛에 단맛을 더하는 자극적인 음식들이 유행하는 지금, 설탕은 더 많은 수요를 낳고 그만큼 많은 배척을 당하고 있다. 과거의 설탕이 제국주의와 식민지, 노예 무역을 둘러싼 전쟁 속에서 파이를 키워나갔다면, 현재의 설탕은 사람들의 입맛과 건강 사이에서 여전히 그 나름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설탕 전쟁'은 설탕이 얼마나 유능한 싸움꾼으로 우리 생활 속에 자리를 잡아왔는지 그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마냥 달지만은 않은 설탕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설탕 전쟁'과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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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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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읽은 책에서 폴 오스터의 [겨울 일기]에 대한 글을 보고 몇번이나 곱씹었다. [겨울 일기]에서 폴 오스터는 과거의 자신을 '당신'이라 칭하며 거리를 둔다. 반면 집이라는 공간은 세세하게 담아내며 전에 살던 곳의 주소까지 기록했는데, 그 차이는 공간이 과거나 미래의 자신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기억과 경험을 되살려주기 때문이었을까 싶었다. '관내 여행자 - 되기'도 사건과 사유를 공통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통로로 공간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어 읽어보고 싶었다. 

 연초에 친구와 짧게 하루를 보내며 그때는 제법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앞으로 우리가 서로 만나 시간을 보내는 날이 일년에도 몇번 되지 않을테니 만나고 나면 그날의 기록을 해두어야 겠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실천은 다짐보다 늦어 그날의 기록조차 아직이고 그 뒤로 날이 더우면 덥고, 비가 오면 와서 만남마저 늦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관내 여행자 - 되기'에는 바로 그런 기록이 담겨 있어 의미와 자극이 남달랐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의정부'편이었는데, 의정부 고산동이라는 지명과 뺏벌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충격이 있었다. 언젠가 가보리라 마음 먹고 찾아보니 25년까지 도시새뜰마을사업으로 생활 여건을 개조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라 하니 책에서 본 것과는 다른 느낌의 마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레방 이전 같은 '역사 지우기' 움직임이 동두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니지모리 스튜디오 같은 곳을 운영하고 일본의 유곽마저 재현하는 시에서 옛 성병 관리소 같은 역사는 지우려는 것이 안타깝다.  

 다른 부분을 꼽자면 일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퇴근길의 택시나, 회사 화장실, 점심시간의 산책 같은 소소하고 현실적인 공간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점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다 공감되는 내용이라는 점이 또 안타깝기도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사회성을 발휘해야 했던 시간, 화장실 칸마다 문을 열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내쉬어야 했던 한숨, 도시를 가로지르던 천을 따라 끼니 대신 걷던 걸음 같은 것들이 선명했다. 

' 관내 여행자 - 되기'는 나와 짧은 여행길을 함께 떠났다. 간만에 떠나는 여행은 빈 곳이 많았고, 캐리어의 남는 공간에 책을 한 권 넣으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여행을 떠나서도 책을 읽을까, 여행에 여행자 되기를 끼워넣으면 너무 보란듯한 선택이 아닌가. 여행지의 뜬 시간 속마다 책을 펼치며 책 안의 가볍지 않은 걸음을 따라 가다보니 어쩌면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여행에 어울리지만 여행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무게가 있었다. 

 두 작가가 서로 주고받는 공간과 경험을 바라보며 연초에 했던 다짐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둘이서' 불현듯 함께 길을 떠날 수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이 특별함을 경험해보고 나니 이번에야 말로 우리가 걷고 보낸 시간들을 기록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명상으로 빼벌마을
**[두레방도 성병관리소도…여성 착취 현장 ‘역사 지우기’ 시도] 한겨례 이준희 기자 20240828
https://v.daum.net/v/20240828164509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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