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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평점 :
제목은 도발적이고, 내용은 재밌다.
남자에게 친구가 없다고?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우정 아니었나? 여자들은 모르는 진정한 우정을 남자들은 나누고 있던 것 아니었나? 사람이 셋만 되어도 금방 뒷담하고 깨진다는 여자들의 우정은 가짜고 서로 농담-같은 막말-, 넓은 이해-라고 하는 지각, 돈 빌리고 안 갚기-를 바탕으로 한 변치 않는 우정은 남자들의 전유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없다고요? 생각해보니 엄마의 사교모임은 삼백육십오개가 넘어 일년 내내 뭔가가 있고도 부족한데, 아빠의 사교모임은 잘해야 계절이 변하나 싶고 어쩌면 연례행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년여성에게는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모임들이 생기지만 중년남성의 경우는 이와 같은 경우가 드물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는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사회에 나가서는 공적으로 만난 사람과 사적으로 친밀해지는 것이 어렵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사귀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점차 정리되고, 이 새로운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않으면 결국 친구라 부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모임이 줄어들게 된다. 강렬했던 책의 제목도 남자는 친구가 없다는 것은 아니고 점차 없어진다는 것에 가깝고 저자는 그 과도기에 문득 친구가 없어져가는 현실을 인식한 것이다. 무엇을 통해? 결혼식에 부를 신랑 들러리를 찾는 과정에서!
" 우정에는 리듬이 있는데 나는 그 리듬을 잃어버렸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게는 사교생활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는 멈췄고, 다이어리는 텅 비어 있다. 친구들과 만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내는 건 무척 쉬웠다. 항상 혼자서만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고,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친도 있었고, 여친의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여친 가족 행사에도 갔다. 바빴다고! 혼자 있었던 시간이 거의 없어서 고독의 시간이 필요했고,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홀로 시간을 보내기. 나만의 일을 하고, 책도 읽고, 여친이 싫어해서 평소에 못 보는 넷플릭스를 본 것도 어느 정도 건강한 일이니까. 나는 외롭지 않았고 그냥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p28 "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친구가 많지 않다.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한 내용에 관심을 가질만한 유형인 것이다. 그래서 이 내용에 많은 공감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많은 혼자만의 시간동안 무엇을 하냐고 물어오기도 하지만 그 혼자만의 시간은 늘 부족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금새 지나가버린다. 물론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부럽기는 한데 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쓰일 에너지를 조달할 여력이 안된다. 그래서 "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숨기 위해서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 p331 " 는 내용에 공감했다. 9장 인간관계 금단 증상 중에 '렌트어프렌드p331'와 비슷한 것이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찾을 수 있고, 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단절해도 상관없는 관계. 뭔가를 하기 위해 조율할 필요도 유지를 위해 감정을 더 써서 챙길 필요도 없는 친구관계를 소셜미디어에서 가볍게 만드는 편이 쉽게 느껴진다. 책에서는 " 하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세계의 관계로 되돌아온다. 코로나 봉쇄는 사람들이 실재하는 세계의 대면사교로부터 완전히 멀어지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대부분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기술의 도움으로 대면사교를 배제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p331 "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책의 대부분이 유쾌하고, 유쾌한 척하는 구린 농담도 있고, 어쨌든 재밌는데 연락 문제에 대해서는 실제로 경험한 적도 있는 것이라 인상적이었다. " 이런 감정의 철회에는 이차적 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권력이다. 남자들이 관계에서 권력을 쥐는 방법 중 하나는 침묵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무관심으로 가장하여 애정쟁취 과정에서 상대방이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만듦으로써,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나에 대한 요구사항을 만들고 활동을 계획하고 사람을 초대하고 일을 진행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맥켈리와 대화를 나누고 며칠 후, 나는 이 역학관계에 대해 철학자 빅터 J. 사이들러가 쓴 에세이를 읽는다. "우리는 내가 혼자서도 충분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유지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어떤 이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존재라고 해도, 우리는 이 점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행동한다." p127 "
이건 비단 남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관계에서의 연락 문제에 관해서 소탈하며 초월하고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굳이 연락에 신경쓰지 않고, 먼저 연락하지 않는 타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들은 시시콜콜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게 피곤하고 불필요하니 상대방이 자신에게 똑같이 행동한다 해도 연락 주고 받음에 있어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어서 먼저 안부를 묻고 만나자는 연락을 하는 입장에서 이들과의 관계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을텐데 굳이 계속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더불어 이들이 연락이라는 것을 매개로 관계에서의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태도나 다름없다고 여겨진다. 물론 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왜냐하면 그들 역시 누군가와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싶거나 혹은 더 깊이 발전시키고 싶을 땐 연락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사회생활이었다면? 그들은 마땅히 연락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친밀한 감정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사회생활로 유지하는 관계보다 덜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의 소식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중받고 있는 것이 맞을까? 그들의 이런 태도가 개인의 성향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관계'에서 " 감정노동은 사랑에 관한 거야.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깜냥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국 감정노동은... 관심을 기울여주는 거라고. p144 "라고 했던 나오미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관계의 단절에 대해 단순히 친구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고립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로 더 들어가게 되면 고독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 한 인간이 자신의 썩은 악취로만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수준으로 고립되는 이유는 다면적이고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미 익숙한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일부 인구집단이 도드라진다. (이 사건은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으로부터 25년여 전에 벌어졌지만, 내겐 너무나 가깝게 느껴진다.) 클라이넨버그가 사망 통계를 분석한 결과,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 중 73퍼센트가 65세 이상이었고, 연령표준화사망률은 남성이 여성의 두배 이상 높았다. p164 "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하게 인지되고 있는 문제인데 중년 이상의 고립된 사람들 중 특히 남성들의 고독사 비율이 높은 이유가 자신의 생활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혼자 밥을 해먹지 못하는 독거노인들 특히 남성은 가져다주는 반찬과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썩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층의 고립된 사람들 문제는 다르다. 이른바 쓰레기집이라 불리는 어려움을 안고 고립된 젊은층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전혀 닮은점이 없어보이는 중년 이상의 남성들과 젊은 여성들의 고립과 외로움에는 사회생활에서 느낀 압박과 실패가 주변과의 단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처음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남자가 친구가 없다고? 그런데 읽을수록 현대인은 친구가 없다는 것에 가깝다.-남자가 생각하는 범위의 한계가 그렇지 뭐- 세상이 험난해지면서 궁금해졌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심화되는 갈등은 왜 생기는가. 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가. 여성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남성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남성은 오직 남성만을 지적인 사고가 가능한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감정적이고, 논리적 대화가 안되고, 무리로 있을때 성가시고, 우월한-특히 성적 매력이- 동성을 질투해 폄하하는데, 자기들끼리는 확증편향에 갇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를 종종 본다. 물론 남자들 무리는 정확히 이에 반대된다고 주장하면서.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 "역사의 거의 모든 시대에서 친밀한 우정은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나와 만난 딕슨 교수는 본인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적어도 우정에 대해 기록을 남긴 남자들에 따르면 그렇지요."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남성은 우정의 달인으로 여겨졌다. 그때까지 여성은 그럴 만한 두뇌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설사 우정을 맺는다고 해도 최고 수준의 우정으로 승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은 멍한 얼굴로 수다를 떨거나, 구름을 보면서 킥킥 웃거나, 손님 대접하기 좋은 케이크를 구울 수 있을 만큼의 축복을 받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여성이 남성의 소울메이트가 되는 건 가능하다고 여겼을까? 바랄 것을 바라라! 우정은 남성의 것으로 젠더화되었다. p92 "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똘똘 뭉친 남성들의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고독해진다고 한다니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 의아했다. 남성의 것으로 젠더화 된 우정을 인간의 것으로 본다면 결국 우정 문제는 '인간은 왜 친구가 없을까'로 읽힌다.
이 정도 분량이 되는 책을 읽고나면 늘 하는 말이지만 '분량에 비해' 부담없이 잘 읽혔다. 특히 특유의 유머가 인상적이었는데 덕분에 웃기기도 했지만, 웃기려고 드는 부분도 없지 않다. 책을 읽고 드는 감상으로 좀 드문데,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웃기는 남자'라는 역할을 자랑스럽게 수행하려고 하는 남자와 맥주 한 잔을 하며 뜻밖의 주제로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의외로 대화가 통하고 재미있었는데 다시 또 만나고 싶지는 않은 남자. 위대하고? 야심찬! 제목과 다르게 어쩐지 결말은 사랑에 빠진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새신랑의 자랑글같기도 하고,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결혼식 하객이 부족해서 알바를 쓰려고 하는데 갑자기 인생에 회의가 듭니다. 하는 인터넷 고민 썰을 본 느낌도 든다. 친구가 없다고 여겨지거나, 인간관계에 염증이 느껴지거나, 그냥 제목이 맘에 안들거나, 눈에 띄거나 하면 읽어보자. 재미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