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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데이터베이스에 가둔 남자 - 프라이버시를 빼앗은 ‘초감시사회’의 설계자
매켄지 펑크 지음, 이영래 옮김, 송길영 감수 / 다산초당 / 2025년 8월
평점 :
" 다시 말해 기계는 당신의 점수를 매기고 있다. 18"
처음, '프롤로그 1 데이터 시대의 서막' 시작부터 영화나 미드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으로 '행크 애셔'의 삶에 몰입하게 만든다.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은밀히 가족들과 만나 몸을 피하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 그의 맨 얼굴을 자식조차 몰랐을 정도로 비밀리에 움직인 남자는 정부를 상대로 그가 가진 가장 가치있는 카드인 '정보'를 거래하려 시도한다. 데이터 시대에 영향을 미친 인물에 대한 일대기를 풀어낸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단순한 예상, 그 이상의 도입이었다. 예상을 벗어났지만 관심사나 아는 분야가 아니라도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겠단 기대감이 차오르는 시작답게 '행크 애셔'의 삶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1993년 오토트랙을 통해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어린이 납치 사건을 해결한 내용을 다룬 부분(112)과 예측 치안을 통한 인종 프로파일링(294)에 대한 내용은 프로파일러와 기술분석가가 등장하는 미드에서 자주 보던 수사 방법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2001년에 일어난 911테러와 HTF(테러리즘 지수.178)의 개발 과정까지 이어지는 글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극적인 재미가 더해진다. 사이신트의 직원들이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고 누군가를 떠올렸다(194)고 하는데, 확실히 수사물 미드나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뛰어난 인물이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내용의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행크 애셔의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후반부에 이르면 책의 내용은 애셔 개인의 삶과 연관된 고리를 넘어 우리 삶에 좀 더 밀접한 영역으로 다가온다.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찍는 셀카와 습관처럼 사진과 글을 남기는 sns 사용이 어떤 식으로 저장되는지, 우리가 남기는 정보와 기록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따라가다보면 누군가 자신에대해 파헤치고자 한다면 이를 막을 수도 벗어날 수 없는 감시 체계-현대판 패놉티콘 안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때 cctv와 신체 정보 수집으로 개인을 감시한다는 폭로로 논란이 되었던 중국의 텐왕 시스템과 같은 정치적 배경과 공연성은 없지만, 자본의 논리와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영향 아래 정보의 그물에 둘러싸여 갇혀있다는 사실은 다름없이 여겨진다.
핸드폰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는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활동이 해결되는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편리함의 범위만큼 우리는 핸드폰, 컴퓨터 같은 기계와 인터넷의 연결 아래에 있다. 서류를 떼거나 은행 업무를 보려고 해도 회원가입 절차가 필요하고, 그 안에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가 들어가야 한다. 핸드폰 통신 회사에서 인증이 가능한 그 모든 정보를 유출 당했어도 당장 핸드폰 계약을 해지하고 나면 변변히 연락을 주고 받기도, 일상에 필요한 자잘한 일을 처리하기도 불편해진다. 핸드폰의 검색 기록 저장을 없애고, 위치를 지정하지 않고, 지나친 정보 공개를 줄이려고 해도 가끔 내가 하는 말이나 적은 글의 내용이 자동으로 수집되어 상품이나 영상등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에 반영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인터넷 쇼핑 추천 광고 목록에 대화 주제에 맞는 상품이 제안되거나, sns 추천 게시물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이어진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핸드폰을 가리키며 '얘가 다 듣고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글쎄 그게 정말 농담일까.
'세상을 데이터베이스에 가둔 남자'를 읽다보면 영화처럼 그려지는 인물의 삶과 함께 자신의 일상 속 어딘지 꺼림칙한 순간들을 되짚어보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모든 정보는 이미 세계의 공공재라고 할 만큼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빼내어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요즘, 하나의 데이터로 노출, 관리되고 있는 개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