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피해자 - 스토킹과 사법 정의에 대한 어느 기자의 기록
곽아람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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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피해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기 위해서, 이 사회가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범죄 피해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해서, 궁극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27" 

저자를 어떻게 먼저 알리는 것이 더 좋을까 잠깐 머뭇거렸다. 기자이자 스토킹 범죄 피해자라고 하고 싶었다. 저자에 대해 소개할 때 피해자가 다른 무엇보다 앞선 수식이 되게 하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가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어 보았기에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 위치에 서게 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부당하고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음을 읽을수록 절감하게 되면서 '피해자 되기'에 질려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모든 방향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었다. 가해자는 당연하고, 그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회사,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자의 위치에 서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범죄 피해자 곽아람'을 '피해자 위치에 있어야 하는 피해자'로 만들었다. 회사에서는 업무상 재해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며 법적 지원을 거부하려 들고, 경찰은 피해의 경중을 재듯이 따지며 수사를 몰아갔다. 변호사는 피해자의 입장보다는 본인의 경력에 더 집중하기 위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검사는 사건의 진행 상황조차 피해자와 공유하려 들지 않았다. 저자가 구형량을 알기 위해 검사실에 전화했던 일이 '사회적 예의'에 어긋나는 일(214)로 기자 갑질이라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판사는 고압적이고 거만한 시선으로 법을 휘둘렀다. 주변인들조차 피해자의 대응을 두고 괜히 일을 더 키우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냈으니 암담하다. 판사 뒤에는 님, 가해자에게는 피고 인, 피해자는 존칭과 사람의 표현이 다 떨어지고 '놈 자' 만 남는다는 표현에 웃음이 쓰게 나왔다. 

" 충격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른다. 갑자기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갑자기 범죄를 겪은 사람이 얼마나 경황이 없는지. 고소장 양식을 인터넷으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한다. 아니, 고소장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에 판사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를 간 큰 인물은 없다고 여겨서, 생각이 아예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196"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소송에 있어서는 국가와 피고인에게 당사자의 자리를 빼앗긴다. 피해자는 사건에 있어서 어떠한 자료와 진행 상황에도 좀처럼 접근할 수 없이 배제되기 일쑤였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가 피해자를 사건 밖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기자'라는 수식이 있었고, 이는 한국사회에서 마법의 문구로 여겨지는 "취재가 시작되자(268)"와 결합되자마자 다른 세상으로의 급격한 전환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사람이 이처럼 '자원이 많은 피해자'일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으며 느껴왔던 모든 답답함과 분노가 이 순간 함께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 피해자로서의 볼일을 마친 후 기자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홍보실은 바로 전화 연결이 되었다. 관등성명을 대는 경찰관에게 피해자 지위를 획득한 지난 5년간 검.경.법원에 전화를 걸어 갖은 박대를 당하면서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일궈온 나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단 한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인데요." 오후엔 전혀 다른 세상을 겪었다. 취재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268" 

피해자는 수치심(84)을 느껴야하고, 우울하고 무섭고 불안해해야 한다. 법정에서는 불쌍함을 어필해 최대한 울고불고 '피해자다움'을 극대화하라(350)는 조언을 듣는다. 피해자답게 가해자보다 낮고 가엾고 약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당신이 가해자보다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죗값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416)는 말을 조언처럼 듣는 입장의 저자도 분노와 슬픔,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을 전시(382)'하는 것으로 절망과 무력을 세상에 전달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정도로 힘들다. 그러니 법에 대해 더 무지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조차 부담이 되는, 어디에 대고 이런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피해자가 되어버리면 어떻겠는가. 그동안 뉴스로 접하게 되는 흉흉한 사건들을 보면서 막연히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기자 곽아람이 내놓은 길고 답답한 싸움이 고통스럽게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서 '사건'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피해와 압박이 더해지는 현실적 공포를 깨닫게 되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 씨(208)), 스토킹, 교제 살인, 일베 같은 사이트에 딥페이크 등 음란물을 올린 성범죄 등 각종 범죄 행위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사건을 접하게 될 때마다 제대로 된 대처와 보호, 처분도 없이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적인 조치들에 분노를 하곤 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법이 너무나 느리고 보수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여 범죄자의 악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거에 만들어놓은 피해자성을 기준으로 함부로 말을 얹어 평가하고, 사건을 흥미거리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았나 되짚어 보게 되었다. [탁월한 피해자]를 읽는 동안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깨닫고 깊이 공감하며 같이 분노할 수 있었다. 처음엔 저자의 수식에서 뒤로 미뤄두고 싶었지만, 함께 응원할 수 있도록 버티고 싸워준 '피해자 곽아람'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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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파랑의 궤도
네이선 밸링루드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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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아마, 언젠가 지구를 뒤로한 채 새로운 별로 떠나야만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운명적인 예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지구와 비슷한 색을 가진 다른 별이 발견될 때마다 인류는 새로운 지구를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해보곤 한다. 마치 지구에선 자신과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도플갱어 괴담을 지구 또한 피해갈 수 없다는 듯이, 너와 같은 별을 찾게 되면 낡은 지구는 버리고 새로운 지구로 떠나갈 것을 꿈꾼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바로 그 어둡고 위태로운 희망을 닮은 이야기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에서 새로운 지구로 선택된 무대는 화성이다. 애너벨의 가족은 애너벨이 다섯 살 때 화성으로 이주해왔다. 아직 화성과 지구간의 이동이 가능하던 때 엄마는 외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혼자 지구로 돌아간다. 엄마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않아 행성 간의 신호가 끊기고, 이 '침묵' 이 후 지구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주선의 왕복도 끊긴다. 화성에 이주해 온 사람들의 삶은 점점 황폐해지고, 아빠와 애너벨은 오래된 설거지 용 엔진 왓슨과 함께 '마더 어스 다이너'에서 엄마가 남겨둔 음성녹음에 의지하며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날,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지고 애너벨의 세계도 깨어진다. 

 사람들은 기적의 광물이라 여겨지는 스트레인지를 채굴해 지구로 보내기 위해 화성으로 이주해왔다. 스트레인지를 가공해 얻어지는 엔진 첨가물은 엔진에 인격/지능을 부여(50)한다. 스트레인지는 엔진 뿐 아니라 채굴을 하던 디그타운의 노동자들의 성향과 행동 마저 냉담하고 산만하며 거칠게 변화시켰는데, 스트레인지에 노출돼 오염된 사람들의 눈은 초록빛이 되었다. 화성 이주민들은 '침묵' 속에서 화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과 고갈되는 자원, 스트레인지와 디그타운의 사람들, 사막의 광신도 집단인 나방족의 다름과 불가해함을 두려워한다.

"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공포와 외로움을, 우리가 무서웠기에 저질렀던 부끄러운 일들을 말이다. 10"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를 읽으며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일들이 결국 공포와 외로움에서 비롯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 다른 사고와 입장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절은 공포와 외로움을 낳는다. 다름에 대한 구분과 배척은 결국 혐오와 폭력으로 번진다. 뉴 갤버스턴의 사람들이 초록빛 눈을 가진 디그타운 주민들과 나방족에게 품는 불안과 불편은 연령, 성별, 소득, 교육, 인종, 국적 등 우리 사회에서 타인과 자신을 구분지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경쟁과 갈등을 품고 있는 것과 닮아있다.

" 나는 조가 샐리와 맞서 싸워주기를 기다렸다. 제발 그렇게 해주기를 속으로 빌었다. 어른이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며 다시금 소심해졌다. 204"

 깨어져 새롭게 깨어난 세계 속의 애너벨은 혼란과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마더 어스 다이너'는 침략됐고 아빠는 공격 당했으며 엄마의 음성 녹음이 담긴 소중한 실린더는 빼앗긴다. 하지만 그동안 애너벨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은 애너벨에게 일어난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들에 정당한 분노와 대응을 해주지 않는다. 어린 소녀에 불과한 애너벨에게 어른들은 이기심과 냉정함을 보여준다. 세상의 민낯을 보게 된 애너벨은 그에게 남은 친구 왓슨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그 안으로 뛰어든다. 

 우울 속에 침잠하는 아빠를 다시 깨우기 위해, 아빠마저 잃고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너벨은 강도에게 빼앗긴 실린더를 되찾으려 사막으로 나선다.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은 애너벨은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굴복하는 대신 욕하고 저항한다. 때때로 애너벨이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예민하다고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과함조차 위악과 허세로 가시를 세워 자신의 미숙함과 나약함을 숨기려했음이 느껴지곤 했다.  

 " 내 발로 소외를 택했으면서도 비이성적으로 속이 상했다. 난 저들이 누구인지 알기에, 게다가 우리 아빠와 내게 저지른 일이 있기에 증오가 치밀었지만, 동시에 저들이 날 자기네 사이로 끌고 가서 저녁을 먹여주길 바랐다. 내가 바라보는 저 어둠 속에는 사실 아무런 공포도 없다고, 그 어떤 수수께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로지 사랑과 온기와 단단하고 누구나 알만한 땅이 있을 뿐이라고 안심시켜 주기를 바랐다. 256"

 자신과 아빠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사막으로 뛰어든 애너벨은 냉정한 세상와 사람들의 날선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두렵고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애너벨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주어졌던 어른의 보호가 이어지길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한 번 깨어진 알의 껍질 속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길 선택한 애너벨은 오기와 저항으로 부딪혀 버텨 나간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갓 부화한 작은 생명은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세상 안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 껍질을 깨고 나오려 몸부림친다. 껍질 밖 세상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겐 작은 균열일 뿐일 이 몸부림은 어린 생명에겐 더할 나위없이 최선을 다하는 저항이다. 애너벨 안의 약한 마음도 엇나가는 듯 보이는 거친 태도도 어느새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응원하게 만든다. 

 '침묵' 속에 놓여져 갈수록 궁핍해지는 화성의 환경, 스트레인지의 영향 아래 공격적이고 섬뜩하게 변해가진 엔진과 사람들에게서 열네 살 소녀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은 단지 엄마의 목소리가 녹음된 실린더, 오래된 설거지용 주방 엔진 왓슨, 그리고 아빠였다. 단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상처받은 어린아이였던 애너벨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소녀시절과 이별한다. 그 과정에서 이기적이고 냉정한 어른들의 민낯과 마주하고 거칠고 혹독한 세상의 현실에 눈을 뜬다.

 이제 막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애너벨은 과연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를 읽는 동안 화성이라는 미지의 공간 위에서 우리 삶과 닮은 공통점을 찾아 덧씌우기도 하고, 길을 떠나야만/떠남으로써 얻게 되는 성장을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애너벨과 함께 헤매고 싸우며 읽게 되는 치열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애너벨과 왓슨은 빼앗긴 실린더를 되찾아 아빠를 구해낼 수 있을까. 스트레인지의 영향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주의 '침묵'은 깨어질 수 있을까. 애너벨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 "야, 벨.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니까 기분 좋냐?"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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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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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함도 없고 뭐든지 깊이라고는 없는 탓에 좋아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할만한 분야가 없다. 하지만 영화와 음식, 이 두 가지는 나름 긴 시간동안 관심을 가지고 좋아해왔다. 둘 다 여가로 즐기기에 접근성도 좋고 순수히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이라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다는 취미가 주는 낮은 문턱, 보편성도 좋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영화 속 음식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한 단계 더 상향시켜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영화도 음식도 책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름 위의 만찬]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가운 마음과 즐거운 기대를 품고 만찬을 즐겨보았다.
미리 덧붙이자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의 감자튀김(89)이 첨가물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이 피해야하는 메뉴라는 것이었다. 감자튀김 정도는 채식의 범위에 거뜬히 들어갈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아니었다니, 나중에 감자튀김을 사게되면 밀, 계란, 우유 등 첨가주의 문구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우리가 만나보았던 영화 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음식을 떠올려보자. 요리와 음식이 주제가 되는 유명한 영화들도 있고, 한 장면 나왔을 뿐인데도 인상깊게 남는 음식도 있을 것이다. 가장 처음 나의 구미를 당긴 것은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환상의 음식이었다. 바로 애니메이션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음식들이다. 실제 음식들 못지 않게 가장 먹고 싶은, 대표적인 꼽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애니메이션 속의 음식들은 실제로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더 맛있을 것 같고 궁금해진다. 재밌게도 이 상상 때문에 애니메이션 속의 음식을 실제로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여백이 남아 동경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진짜라면 바로 식품위생과에 신고하게 될 쥐가 만드는 <라따뚜이>나, 그야말로 환상 속의 음식인 <월레스와 그로밋>의 달 치즈, 흐린 날씨에 때때로 미트볼이 내리는 세상 말세인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강아지들의 데이트 맛집인 <레이디와 트램프>의 미트볼 스파게티, 하울 정식으로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음식들은 실제로 먹는 것보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더 맛있어보인다는 치명적인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때문에 이들 영화를 비교적 어린 시절에 보게 된 영화팬들에게 이 음식들은 '단추 스프'처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노스텔지어의 접시로 새겨진다. 비슷하게 구현해보아도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그 맛과 추억은 따라잡을 수 없을테니. 

음식, 요리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진심과 집요함을 오간다. 하울 정식의 달걀후라이(64)를 이야기하다 달걀깨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디 아워스>로 넘어가는 과정은 재밌지만 슬쩍 질린다. 늘 싱크대 모서리에 달걀을 깨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평평한 곳에서 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니 혼나는 것 같아 위축되면서 웃기다. 서양 식문화에서 달걀이 얼마나 중요한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는 방법 따위를 진지하게 강론하는 내용(246)을 읽다가 문득 최근에 본 <위 리브 인 타임(2026)>의 '달걀을 깨는 최고의 방법'이 떠올랐다. 한 접시에 달걀을 깨서 바로 담았다가 껍질이 섞이지 않은걸 확인하고 다른 한 그릇에 모아담는 그릇 두개 쓰기가 나온다. 그릇 하나만 사용하면 껍질이 들어갔을때 골라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달걀을 어떻게 깨는가 논하는 사소함이 가족의 유대를, 한 문화의 식생활을 보여주고, 어떨 땐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감정도 담아낸다. 

좋게 말하면 먹는 것에 진심이고 달리 말하면 과몰입한 저자가 가장 불쾌한 감정을 크게 드러낸 것 중 하나가 <황해>에서 하정우의 먹방을 이야기하며 '돌연 닭다리 100개 먹기'는 스턴트일 뿐, 먹방이 아니다(21)고 단언하는 부분이었다. 먹방에 대한 추구미가 처절하리만큼 단호해 당황스러웠는데 즐길 수 없을 만큼 과하게 지나치게 먹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도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면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휴게소 커피(204)를 통해 관계의 불행까지 예감한 <화차>다. 휴게소 음식들 대부분이 비슷비슷하고 또 맛있다고 이름 난 곳들도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휴게소를 들리면 꼭 커피 한 잔은 사는 편이라 휴게소 커피가 '맛없음의 새로운 심연을 활짝 열(206)' 정도란 말인가 놀라웠다. 이것도 생각해보니 커피는 종종 맛의 영역을 넘어선 그 무언가로 기능하도록 분류되지 않았나 참작되는 구석이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들 때문에 저자가 얼마나 음식에 진심인지 느껴질 때면 질리면서 재밌다.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없었던 음식도 있다. 바로, 짜장면. 한국 영화에 단골처럼 나오는 음식이라 <기생충>을 통해 유행했던 '채끝짜파구리'나 <김씨 표류기<2009)>같은 영화를 다루며 나올 법 하다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등장하지 못했다. <피그>를 이야기할 때 트러플오일을 넣은 짜파게티를 스치듯 언급하지만 '짜장'의 존재감에 비하면 빈약한 등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짜장면하면 <주유소 습격 사건(1999)>이 떠오른다. 김수로 배우가 맡은 배역 철가방은 짜장면을 배달하러 주유소에 갔다가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다. 영업 시간이 지났으니 주문을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했을 뿐인데 주인공들에게 두들겨 맞게 된 철가방을 통해 배달 업종 종사자의 고충이 드러나고, 이를 복수해주기 위해 모이는 동네 철가방 연합들의 '낭만의 90년대'스러운 의리가 한데 뭉쳐 사건을 키우는 역할을 코믹하게 수행한다. 무엇보다 짜장면도 맛있게 먹는다. 

또 하나 없어서 아쉬웠던 음식은 <아수라> 속의 육개장(138)을 읽으며 떠올린 미지의 음식, 미지의 문화 캐서롤이었다. 전부터 외국영화를 볼 때 상을 당한 집에 이웃들이 찾아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캐서롤을 주는 장면이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때로는 잔뜩 쌓인 캐서롤을 끔찍해하고, 때로는 아무렇게나 퍼먹다 슬픔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장면들에서 보이는 이 낯선 문화와 음식이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주와 조문객 사이의 주고 받는 입장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 동서양의 문화차이가 확연해보이기도 했다. 저자가 왜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내줄까, 하고 깊이 파고든 것처럼 왜 서양사람들은 캐서롤을 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릴까도 함께 이야기해줬다면 이 오래된 궁금증을 풀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읽기 전에 과연 저자가 꼽은 영화 속 음식과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영화 속 음식들이 얼마나 일치할지 궁금했다. 나라면 어떤 영화 속 음식들을 풀어내고 싶을까. <데몰리션맨(1993)> 주인공인 실베스타 스텔론이 2032년 냉동 감옥에서 깨어나 마주한 미래 세계의 하층민들이 쥐고기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2020년쯤엔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던 어린시절에 2030년쯤엔 쥐고기를 먹게 될지도 몰라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는 <설국열차(2013)> 속의 단백질 블록을 미래의 식량으로 그리고 있다. 원재료가 바퀴벌레라는 사실은 여전히 끔찍하지만 버거라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것이란 20세기와 그마저도 단백질 블록이라는 대용품을 만들어내는 21세기의 감성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이밖에도 <금옥만당(1995)>의 화려한 중식이나 <마틸다(1997)>의 달콤하고 진한 초콜릿 케익, <헬프(2011)>의 끔찍한 재료가 들어간 초콜릿 파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의 귀여운 하울 정식, <헬로우 고스트(2010)>의 눈물 젖은 미나리 김밥, <어벤저스(2012)>에서 영웅의 민낯을 보여주는 슈와마, <기생충(2019)>과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에서 상징적인 기능을 한 복숭아, <티파니에서의 아침을(1962)>을 더욱 시크하게 만들어준 커피와 크로와상, <사람과 고기(2025)>의 섪고 유쾌한 고기 한 상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꼽은 한 58개쯤 되는 음식 들 중에서 겹치는 것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61), 설국열차(114) 기생충(121)> 뿐이었다. 범위를 더 넓혔더라도 <올드보이>나 <라따뚜이> 정도만 더해졌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놓친 음식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특히나 최근의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수라는 진상하는 장면이 많았는데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스쳐보낸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음식이 단지 한 장면을 채우기 위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과 시대를 표현하는 은유와 상징으로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필름 위의 만찬]을 통해 다시 배운다. 읽는 동안 때로는 시시콜콜하고 때로는 집요했지만, 풍요롭고 즐거웠다. 영화, 음식, 책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맛있는 책 [필름 위의 만찬]을 오늘의 후식으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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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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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파라면 세상도 파래?" 
"나는 그대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어요." 
...
설날 널을 뛸 때, 단옷날 그네를 탈 때, 제 시선 아래 훤하게 트이던 세상을 계손향은 사랑했다. 그리하여 노월 또한 제가 사랑한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길 바랐다. 그대와 나는 같은 세상을 본다 하였으니. 88" 

책을 읽으면서 올해 초에 봤던 [광장]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광장]은 북한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 서기관으로 파견 온 보리와 교통보안원인 복주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냈다. 차가운 겨울의 평양 거리를 배경으로 둘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거리를 두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으로 산책을 대신하고, 같은 식당 안에서 다른 테이블에 각자 마주 앉아서 식사를 대신하고, 늦은 시간 혹은 다리 밑의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만 대화를 나눈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1883년 미국에서 온 사절단 노월과 조선 한양의 기생인 계손향 사이의 연애담이다. 파란 눈과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서양인이 낯선 시대, 노월과 계손향도 다른 외모를 가진 노월을 신기해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며 함께 거리를 걷는다. 친구인 영월마저 계손향이 노월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폄하하고 비난하는 시선을 보낼 것이 염려되어 항상 주의를 준다. 이런 편견과 평가의 시선이 아직도 일부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영월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세간의 이목을 피해 서로의 마음을 나눠야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닮은 모습을 그린다. [광장]의 두 사람은 결국 감시자들에게 관계가 발각되어 보리의 체류 기간 종료를 고지한다. 처음부터 정해진 이별을 안고 있었지만,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현실 앞에서 보리는 복주에게 함께 떠날 것을 청한다. 마찬가지로 [안녕, 미스터 타이거]의 노월 역시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이 고향에 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노월과 보내야하는 것을 아는 계손향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 월이의 목소리가 닿은 귓바퀴가 아직 간질간질한데, 월이의 손길이 닿은 손등이 아직 훈훈한데, 세상은 불 꺼진 듯 온통 적막하다. 사람이 난 자리가 이렇게 크다. 고작 한 사람 자리가 너무 크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온 세상이다. 229" 

시대과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은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이국의 남성과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조선/북한의 여성이 주인공인 것, 외모부터 사고방식, 서로의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배경과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는 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차가운 현실 앞에서 겪게되는 좌절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차별과 통제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곳이 되도록 왜 노력하고 꿈꾸어야 하는지 함께 느끼게 된다. 

노월과 계손향이 15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보리와 복주같지 않았을까. 앞으로 시간이 더 많이 지나고 난 뒤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세상에서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는 차별도 금지도 통제와 편견도 없는 세상에서 마음 편히 사랑만 할 수 있을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 문장과 영상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표현을 만끽하며 조심스럽게 키워나가는 투명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니 꼭 함께 즐기고 비교도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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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 - 2026 뉴베리 아너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오브리 하트먼 지음, 마르친 미노르 그림, 황세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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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지 못한 영혼은 어디로 갈까?" 225"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의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말일까 다시 읽었다. 항상 같은 계절에 머무르는 숲, 생명이 살지 않은 숲에 죽었으나 영혼이 완전한 안식을 찾지 않은 여우가 살고 있다. 여우는 한쪽 눈을 잃고 귀도 상했으며 털도 고르게 남아있지 않아 사고가 났던 때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있는, 보기에 따라 무서운 혹은 혐오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여우의 이름은 클레어. 클레어는 죽은나무숲에 머무르며 길 잃은 영혼들이 가야할 곳을 안내해주는 길잡이다. 영혼들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나 있는 문들 중 자신에게 맞는 하나의 문을 찾아가야 한다. 금빛으로 빛나는 동쪽은 쾌락계, 즐거움을 추구하던 이들이 간다. 서쪽은 초록빛의 발전계로 노동과 봉사와 노력을 사랑한 이들이 간다. 북쪽, 평화계는 연푸른빛이다. 안식에서 기쁨을 찾는 이들이 간다. 그리고 진홍빛의 남쪽은, 고통계다.
클레어가 머무는 오두막에 길 잃은 영혼이 찾아오면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맞이해 영혼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살펴 더이상 길을 헤메지 않고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길을 잃은 영혼들은 지친 영혼을 달래줄 무언가를 갈구하며 특유의 갈증(22)으로 괴로워하는데, 길잡이인 클레어의 도움으로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문으로 가게 되면 다시 길을 잃고 헤매다 갈증에 시달리며 클레어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클레어는 이 일에 매우 전문가이다. 

" 클레어는 브릭베인의 쉰 목소리를 떠올렸다. 절대 죽은나무숲 밖으로 나서면 안 된다. 너한테는 여기가 제일 안전해. 94" 

상처입은 외모 때문에 다른 동물과 아이들에게 거부당하며 괴물이라 불리는 클레어는 늘 외롭다. 너무 괴로웠던 때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가족도 곁에 있어주지 않은 채 혼자였다는 것이 클레어를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상처받았다. 클레어는 버섯밭에서 키우는 각색의 버섯들과 특별한 '선장'에게 의지하며 길잡이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클레어가 너무나 싫어하는 오소리의 영혼이 오두막을 찾았다. 그리고 멈춰있던 클레어의 시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읽히지 않는 영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오소리의 영혼은 어느 방향으로 보내도 다시 돌아온다. 오소리의 영혼이 갈 곳 없이 헤매는 동안 클레어는 오소리의 이름이 생강촉새라는 것을, 그에게 항상 쓸모없다고 질책하는 아빠와 독특한 이름을 가진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레어는 교활하고 못된 오소리를 싫어했지만 생강촉새는 달랐다.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챙겨주었다. 생강촉새가 오소리답게 오지랖 넓게 군 질문과 행동들은 클레어의 마음을 두드렸다. 클레어의 멈춰진 세상은 생강촉새와의 만남으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쓸쓸하면서 따뜻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 우리가 눈 앞의 작은 것들에 매여 머물러있는 동안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괴로워하는 클레어를 보면서 제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는지,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기 전에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해보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상처가 남긴 흉터만 기억하다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하고 위로해주려고 했던 존재들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강촉새는 클레어를 두드린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얽매어있는 클레어에게 질문하고, 클레어가 아끼는 것들을 사랑하는 방식을 일깨워주고, 싫어했던 오소리와도 진짜 친구가 되도록 다가온다. 그리고 클레어가 미뤄왔던 길을 가도록 해준다.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를 읽고 아이들이 클레어에게 어울리는 문은 어떤 것인지, 어디에 도착했을지 생각해보고 나는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문으로 가고 싶은지 골라보는 독후활동을 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더불어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통로, 유도 울타리, 버드 세이버 활용 예시를 함께 찾아보고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내용이 적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성인까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하고 환상적인 동화였다. 마지막까지 감동과 놀라움을 놓치지 않고 독자를 사로잡는 죽은나무숲의 오두막에 기꺼이 방문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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