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설인가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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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돌아보느라 무엇도 쓰기 어려워지는 책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달수는 독방에 갇힌다. 그는 15년 동안 방 안에서 자신이 왜 갇혔는지, 누가 자신을 가뒀는지 알아내기 위해 짐작되는 과거를 적어내린다. 이른바 '악행의 자서전'. '이것은 소설인가'는 오달수를 가두었던 독방이라는 공간과 그가 적어내렸던 악행의 기록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천천히 계단을 올라 7.5층의 작은방으로 걸어들어가는 듯 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앞에는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종이가-앞으로 내가 채워 넣어야 할 빈 공간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았다. 

표제작인 첫 단편 <이것은 소설인가>부터 이어지는 <묻는 남자>까지 연달아 읽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내용이었다. "되찾아야 할 '윤리적 관계'"를 넘어 법으로도 걸릴만한 내용들 아닌가. 하지만 가장 먼저 내 마음에 맺힌 것은 빌려온 책에 대한 것이었다. 책장에 꽂힌 몇 권의 책이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것이 아니고, 또 앞으로도 내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동희가 자바를 데려와 몇 년을 키웠어도, 자바를 내가 데려온 윤오의 고양이라고 여기고 있듯이.
관철이 나미의 연락을 받은 것처럼, 동희가 윤오에게 연락했던 것처럼, 어쩌면 어떤 이야기는 십년만에 연락한 과거의 지인이 다짜고짜 책을 돌려주겠다며 일상에 끼어드는 내용으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소설이 아니겠지만. 고은규의 글들은 대체로 이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 블로그에 올렸다던 폭로글이 마치 동의없이 지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재삼은 소설들을 꼬집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소설에서처럼 너는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없어? 하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이 멈추게 된다. 이미 쌓아온 것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과거에서부터 되살아 올 사람을 남겨두고 싶지도 않고 떠오를 잘못을 쌓으며 살고 싶지도 않아 한동안 많은 것을 줄이고 지내왔는데도 그렇다. 그러는 너는 나한테 잘했느냐며 되묻는 사람 역시 되고 싶지 않은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이어지는 <너의 집이 좋아>, <긁지 마, 제인>, <어느 로프공>,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은 집이라는 공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대의 주거활동은 왜 이토록 많은 잡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집을 위해 치러지는 비용이 커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의 내밀함 때문에? 거주 불능의 상태가 주는 위협, 아무도 원하지 않아 떨어진 가치와 고립, 타인이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 소음와 불편을 마치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여기는 일이 많다.
초반 단편들처럼 나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게 만드는 강렬한 내용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집'과 얽힌 불편함들도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내 집이라는 공간마저 내가 짊어지고 통제해야 하는 달팽이(만약 집이 크다면 거북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껍질을 지고있는 동안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을 참을 수가 없어지는 불편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 그가 새 연인에게 묻는다.
"나 너희 집에 가도 돼?"
새 연인이 답한다.
"뭐가 어렵다고. 가자." 93 <너의 집이 좋아>" 

그 중 이 사소한 대화가 지난 달 읽은 김개미의 시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왜 집으로 온다는 거니>라는 제목인데 시집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중에 하나여서, 다른 시들과 함께 이 시를 알리고 싶어 시집을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집이란 공간과 타인과 나 사이에서 흐르는 여러 감각들을 깨우는 내용인데다 속으로만 담고 있던 것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었다.
집과 나 사이에 타인이 끼어드는 순간 집이라는 공간이 달라진다. 불편하고 어색한 외부가 된다. 이것은 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익명으로 머물다가는 카페같은 곳보다 더 조심스럽고 불편한 태도와 시선으로 집을 바라보게 된다. 저기는 원래 손을 대지 않는 곳인데 구경해도 괜찮아, 거기는 외출복차림으론 앉지 않지만 괜찮아, 여기는 정리를 안했지만 열어봐도 괜찮아, 우리집은 나 한 사람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하지만 네가 놀러 오겠다면 괜찮아, 하지만 사실은 모두 괜찮으면서 괜찮지 않다. 

이 괜찮지않음을 예사롭게 넘기려는 사람들에게 책은 시선을 맞추고 다짜고짜 묻는다. '혹시 이게 괜찮으신가요?'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런 책이어서 어려웠고, 힘든 지점이 있었다. 타인의 상처 앞에서 누가, 왜, 어떻게, 어떤 상처인지를 궁금해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을 소홀히했기 때문에. 소설의 경계에서 빠져나와 이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주는, '이것은 소설인가'.


* 올드보이 2003
*단편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자바
*단편 <묻는 남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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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과 결을 담은 우리말 - 풍부한 감정, 다양한 감각, 섬세한 표현의 매력
김경집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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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의외로 빠져들게 되었다. 저자의 단호함과 확신,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애정이 읽는 사람도 감화되게 만드는 면이 있었고, 풀어내는 단어들의 면면이 꽤 매력적이기도 했다. 이런 책들은 주제나 방향성이 있는 사전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겠지만 줄줄이 단어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책 중간중간 K-콘텐츠, K-스토리 파워 같은 것들을 두고 우리 문화가 세계로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엮어낸 글도 있어 환기가 된다. 이 단락의 시작은 두번이나 연속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시작해서 저자가 얼마나 그 흥행을 기쁘게 여겼는지 감도 안온다. 재미있게 보고 큰 흥행에 함께 기뻐하기는 했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만큼 시간이 지나서 다시 봐야하나 싶었다.
이밖에도 가수 BTS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도 자주 등장한다. 이 콘텐츠들이 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또 우리의 영화, 드라마 등의 작품이 왜 호평을 얻는가를 그 힘의 바탕에 언어가 있었음을 연결해 풀어낸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 이유도 다양한 맛이 담긴 우리말로 쓰인 대사들이 가진 미묘한 차이를 어려움 없이 이해해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자연적인 능력(36)이 있고, 이를 섬세하게 풀어낸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가끔은 좀 과한가 싶다가도, 아예 한글이 없이 영어나 일본어 표현이 남용되는 간판이나 멀쩡한 제 이름을 두고도 굳이 바꿔서 쓰는 탓에 불고기, 덮밥, 찹쌀떡 같은 말이 오히려 자리를 잃게 되는 걸 보면 이정도로 아끼고 내세워도 부족하단 생각도 든다. 

-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119)  
- 애운하다(182)
- 시식잖다(113)
- 자늑자늑하다(244)
- 드다르다(260)
- 반지빠르다(363) 

이 단어들을 알고 있거나, 보면 뜻이 어느 정도 감이 올까? 나는 사실 전혀 감이 오지 않는 표현이라 따로 적어둔 것이다. 몇 해 전 청소년들의 어휘력 저하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적 있는데, '사흘, 글피, 기적 소리, 심심한 사과'같은 표현들의 의미를 모른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그때 청소년들이 제시된 단어를 보고 이런 뜻이 아닐까,하고 유추하던 것처럼 나 역시도 책을 보면서 이런 뜻일까 예상해보다 처참히 틀리곤 했다. 그래서 그때 요즘애들은 이런 단어를 정말 모르나 의아하게 여겼던 것을 반성했다. 모를 수 있고, 배워서 알면 되는거지. 책에서 소개될 단어들을 첫눈에 봤을때 의미가 대충이라도 느껴지는지 아닌지를 유심히 봤는데, 같은 묶음 안에 있어도 어떤 의미로 쓰일지 감이 오지 않는 단어들이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웬만한 단어들은 보면 대충 느낌이 오겠지, 싶어서 좀 만만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꼽꼽하다(211)'처럼 꿉꿉하다의 작은말이 있을거라 생각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비슷하게는 '반주그레하다(300)'의 큰말 번주그레하다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예 몰랐던 표현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책을 읽기 전부터 익히 기대했던 점인데, '차끈하다(256)'를 봤을때는 달리 와닿는 면이 있었다. '차끈하다'를 그냥 봐서는 느낌이 잘 안오는데 따끈하다와 연관지으면 반대로 차갑다는 뜻이겠구나 싶어진다. 최근 '식다'는 표현을 두고 뜨거운 음식의 온도가 내려가면 식었다고 하는데, 차가운 음식의 온도가 올라가도 식었다고 표현하게 될 때가 있어 혼자 궁금해하다 용법을 찾아본 적이 있다. 온도가 내려갈 때 쓰는 말이라 차가운 음식의 온도가 올라가면 데워졌다 따뜻해졌다고 사용해야 한다는 결과를 보았지만, 이는 미묘하게 어감이 다르게 여겨져 아직 속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했던 참이다. 마침 따/차"끈하다"를 같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다시 생각이 났는데, 다른 독자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또 다른 재밌었던 점은 잘못된 사용을 하고 있는 표현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재밌다기 보다는 부끄러운 점이기도 한데, '어중간하다(125)'가 한자에 우리말 접미사가 붙은 혼혈어이고 이를 '어줍다' 나 '어정뜨다' 같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중간하다는 말을 잘 써와서 다른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과,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익숙한 표현의 실체를 맞닥뜨리게 된 듯한 가벼운 놀람이 있었다. 어중간하다와 같이 묶여있는 '어지빠르다(엊빠르다)(122)'는 정도가 넘고 처져서 어느 한쪽에도 맞지 않다는 뜻이라는데, 엊빠르다를 무심결에 엇비슷하다와 비슷하게 생각했다가 전혀 다른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잘못 써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리기 같은 시합에서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엇빠르게/엇빨리 들어왔다는 표현을 구어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내가 착각했던 것처럼 잘못된 표현이었으나 듣는 이도 대충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었던 것이 우스우면서도 신기하다.
비슷한 실수로는 '암팡지다와 옴팡지다(162)'가 있다. 작지만 암팡져,라는 말을 어리거나 몸집이 작아도 태도 단단하고 기세가 좋다는 의미로 사용해왔던 것처럼 비슷하게 옴팡지다를 써왔는데, 옴팡지다는 '아주 심하거나 지독한 데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책에 들어준 예시처럼 옴팡지게 뒤집어썼다는 말을 보니 그 차이가 이해되었는데, 이렇게 확실히 구분해서 설명을 읽기 전까지는 옴팡지다 역시 암팡지다는 의미와 구분없이 잘못 써왔던 것을 깨닫게 됐다. '민틋하다(302)' 역시 맨틋/맨뜻/맨들로 대신해서 써왔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말을 정말 대충하고 다녔구나 부끄러움과 반성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나와 대화를 나눈 상대는 찰떡같이 뜻을 알아듣고 이어가주었으니, 저자가 왜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 섬세하게 구분하고 공감하는 미묘함이 있다는 것(36/37)을 감탄하였는지도 알 것 같다. 
인터넷에서 한글의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 표현에 대해 감탄하는 외국인 영상*을 본 적 있는데, 그때는 그저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하는 것과 그 미묘한 차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재밌고 신기해서 보고 좋아요를 눌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글의 가치와 글맛에 대해 그 사람이 더욱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겨졌다. 저자가 계속해서 의성어와 의태어의 가치에 대해 강조(189 의성어와 의태어라는 보물창고)하는 것을 보니, 당연한 것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귀하게 봐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 우리말의 풍부하고 다양한 부사와 형용사는 문화와 콘텐츠 영역에는 엄청난 축복이다. 그런데 언어의 경제성이 중요한 구어에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안 쓴다. 그래서 그런 낱말을 만나려면 부득이 문어, 즉 글자로 만나야 하는데 독서 인구가 갈수록 빠르게 줄고 있으니 이러한 언어들이 소멸된다. 그것이 얼마나 큰 문화적 손실인지는 잃고 난 뒤에야 뼈아프게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 몸에 필요한 비타민은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문화의 진짜 필수영양소인 낱말을 잃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84" 

저자는 우리말의 장점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지 않아 점점 잊혀지고 사라지는 언어의 소멸에 대한 큰 우려를 표한다. 말이란 자꾸 써야 퍼지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53)며 쓰지 않으면 무용한 것에 지나지 않(34)으니 죽은 언어가 되지 않도록 잘 사용되지 않는, 그러나 소중한 우리말 표현을 가끔이라도 불러내(43) 볼 것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문화와 언어의 힘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이를 강력한 국가의 힘으로 보고 정책과 지원을 펼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272)도 함께 담아냈다. 당장 눈앞의 이익(경제/돈)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인 힘이 되어줄 문화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린 행보(282)를 짚어준다. 책안의 'k-데모크라시의 힘(139)' 내용은 요즘 개봉하여 주연 배우들과 관람객들마저 공격을 받고 있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평을 담고 있어 우려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맥락을 읽지 못하고 정치성향으로 피아를 구분하여 욕하고 비난하고 매도하며 검증이니, 사상, 매국이니 하는 잣대를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기승을 부리는 탓에 공감하며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 언어는 계속해서 생성, 변화, 소멸한다. 새로운 언어가 나오는 만큼 새로운 사고와 감각이 탄생한다. 언어는 모든 콘텐츠의 원천이다. 우리말에 널리 깔려 있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연구하며 그런 사유와 감각의 방식을 새로운 콘텐츠 영역에 이식하고 배양하는 것이 차별적이며 지속적인 한류의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만 바꿔도 세상이 바뀔 수 있다. 198"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는데 읽을수록 재밌다. 하나씩 단어와의 관계를 풀어가며 읽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 의미를 대충이라도 가늠할 수 있는지, 의미를 짐작하는 정도인지 알고 사용할 수 있는지, 확실히 설명이 되는지 구분해가며 마주했다. 이게 저자가 말한 "낱말 만지기(233)"와 비슷한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낱말 만지기'라는 개념을 지난 23년 [어른의 말.글 감각]이라는 책에서 선보였다고 하는데, 기호로서의 문자를 감각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알아보는 활동이라 한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경험이라는 것을 그대로 적용한 활동이 아닌가, [어른의 말.글 감각]의 내용도 궁금해졌다. 겉만 봐서는 학술적인 내용을 담은 딱딱한 어휘집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기대 이상의 깊이와 새로운 발견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책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 언어가 사라지면 그 말이 담고 있는 내용도 함께 사라진다. 안 쓰면 사라진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말은 "나의 언어가 곧 나의 삶이다"와 같은 값이고, "내 말과 삶에서 빚어낸 사유가 내 콘텐츠이다"와 이어진다. "말이 곧 얼이다"라는 말은 상투어가 아니라 속이 꽉 찬 말이다. 얼은 감각과 감정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거기에 사유가 담겨야 한다. 그래서 사유의 언어가 필요하다. 381" 


*2021년 3월 EBS '당신의 문해력'
*인스타그램 anssem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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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맘마의 원물 간식 레시피 - 건강한 재료로 입맛을 사로잡는 아이 간식 레시피 120
임혜나(유안맘마)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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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화력이 떨어져가는게 체감되길래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고 좀 더 깨끗하고 자연적인 식단으로 바꿔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채소와 과일을 잘 챙겨먹으려고 하는데 매번 채소는 샐러드나 쌈으로 먹거나 과일은 생으로 또는 졸여서 잼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늘 같은 메뉴만 먹는 것 같아 좀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마침 '유안맘마의 원물 간식 레시피'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원하는 요리법을 찾아보는게 흔해서 책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가지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놓은 책으로 요리법을 참고할 수 있으니 좋았다. 

인터넷으로 찾으면 그 재료의 내가 찾은 한 가지 요리법만 알게 되지만, 책으로 정리된 요리법을 참고하면 하나의 재료를 여러가지로 변주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알 수 있다.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요리법들 중 더 내 입맛에 잘 맞는 방식을 골라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예를들면 감자를 재료로 한 레시피만으로도 감자채소스콘(71), 3분 감자빵(92), 감자더블치즈빵(94), 감자양파스프(112), 감자식빵롤(122), 감자뚱크루아상(128), 브로콜리/치즈감자볼(148), 감자치즈호떡(172), 감자버터팝콘(194), 감자에그타르(246) 등이 있는데 생각지 못했던 요리법도 알 수 있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이 밖에도 고구마나 계란, 호박, 소고기, 두부, 당근, 양파, 바나나, 브로콜리, 치즈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간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좋다. 구하기 어렵거나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재료가 아니라 흔한 재료기 때문에 집에 있는 재료로도 충분히 따라해볼 수 있었다. 레시피 중에서는 마침 집에 사둔지 좀 지난 바나나가 있어서 '바나나파운드케이크259'를 따라서 만들어보았다. 오븐을 이용해서 익히는 시간을 감 잡는게 조금 어려워서 같은 재료를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도 익혀보았는데, 어떻게 만들던 은은한 단맛이 나는 순한 맛의 간식이 완성되어 좋았다. 

간식 레시피라고 하지만 채소큐브, 양파잼, 두부마요네즈, 라구소스를 만들어 식사 준비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소소한 팁도 포함되어 있다. 레시피들이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게 짧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안해본 요리도 도전할 수 있었다. 책에 '소고기소보로(44)'를 만드는 방법도 나오는데, 레시피를 따라 주먹밥도 만들어 보고 남은 소보로는 칼국수에 올리는 고명으로 김밥의 속재료로도 활용해 보았는데 맛있었다. 첫 도전이었지만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다. 요즘은 고구마와 단호박이 나오기 시작하니 이 재료를 활용한 레시피도 따라해 볼 생각이다. 

저자의 레시피북 기획 의도가 아이에게 원물로 직접 만든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이지만, 속이 편안해지는 간식을 찾아야 할 나이대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간소화한 조리법과 재료,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와 조리도구 이용, 부담되지 않는 맛과 성분이 큰 장점인 레시피북으로 건강한 간식, 식사대용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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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이야기 - 일과 삶의 주도권을 찾아줄 '완결'의 기술
김민경(앨리슨 김) 지음 / 푸른숲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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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일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끝내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뇌는 가급적 에너지를 아끼려는 본능이 있어서 '컵 하나 씻으려고 물 틀고 세제 묻히느니, 나중에 그릇이 많이 모였을 때 한 번에 씻는게 훨씬 효율적이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컵 하나를 바로 씻는 사람의 인생에는 '괴로운 대청소'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5초짜리 가벼운 정리만 반복하면서 쾌적한 마음만을 유지할 뿐이다. 99" 

외출 후 바로 씻는 사람,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 여행 다녀와서 바로 짐 정리하는 사람을 두고 3대 독한 사람 분류라는 말이 있다. 그 중 하나 바로 컵을 닦는 독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책을 보고 불신의 눈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안그래도 '1년을 3개월 단위로 나눠서 정리한다(29)'는 내용을 읽을 때도 일정표를 일요일부터 일주일 단위로 적었다는데에서 벽을 느꼈는데(주간계획은 월요일부터가 편하니까), 읽으면서 정말 나를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계속되었다. 픽사같은 곳에서 일하니까 가능한 것 아니야? 문화가 달라서 가능한 것 아니야? 딴지를 걸 마음이 가득했다. 쉬운 독자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 청킹의 작동 원리는 하나다. 끝이 보이는 단위로 문제를 쪼개면 뇌는 움직인다. 다만 누가 그 단위를 만드느냐가 차이일 뿐이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전문 설계자가 방문객을 위해 대신 해줬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청킹의 설계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만 한다. 33" 

처음엔 새해 결심이 3일만에 끝난다면 3일마다 새롭게 결심하세요!같은 조언처럼 신뢰가 덜 가고, 일상속에서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목표로 가는 과정을 쪼개놓는 것으로 청킹을 생각한다면 '5분만 더'도 청킹일까? 궁금해지면서 마음이 열렸다. 조금 더 넓게 적용한다면 아침에 알람을 맞춰놓고 5분만 더 자겠다며 일어나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 어둠의 청킹에 이미 익숙해있구나 깨달았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난다는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보상을 조금씩 끌어다쓰는 셈이니까. 고도로 발달한 게으름은 정교한 청킹과 다름없는 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공감이 되고 인정이 됐다. 

책을 읽으면서 "완벽을 위해 애쓰지 말라. 113"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모든 일에 전부를 쏟아내려고 하기보다 중요한 일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완벽'에 대한 생각을 바꿔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달라진 것이 있는데, 책에서도 나온 외국어 학습(41)이다. 완벽한 문법을 사용해야지,하는 순간 공부는 끝난다. 발화도 문장도 사라지고 쏘리,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만 남는다. 그러나 그저 뜻을 전하기만 하겠다는 단순한 목표로 바꾸면 완벽하지 않은 문장이어도 괜찮고, 짧은 단어의 나열이어도 그게 불완전하지만 의미를 전달하는 말이 된다. 이 시도가 반복되면 가끔 운이 좋으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완전한 문장의 형태도 될 수 있다. '완벽한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의미 전달이라는 간단한 목표에 집중하기'를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고, 오히려 가진 것에 비해 더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탓에 책의 내용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 

이어서 아주 공감했던 내용이 게임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오랫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기록을 갱신해야 한다는 점, 타인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점, 원하는만큼 좋은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압박이 되어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었다. 게임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과제처럼, 일처럼 여겨지는게 싫었다. 경쟁과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혼자 뭔가를 키우거나 스도쿠처럼 풀어나가는 게임을 하게 되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번에 완벽하게 성공해야 한다는 신기루(116)를 쫓지않고 실패를 연습으로 털어내고 끝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니 게임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좋은 기록을 내고 높은 성적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어찌 그래도 다음 판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구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더니 여유가 생겼다. 

이런 변화가 도움이 된 것은 의외의 분야였는데, 그동안 살을 빼겠다는 목표를 수없이 많이 세웠고 또 그 이상으로 실패했다. 때로는 별 생각없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전보다 더 살이 쪄서 실패였다. 이번 도전(?)에서는 조금 방식을 바꿨는데 무엇을 먹을지, 얼마나 덜 먹을지, 얼마나 운동을 할지 목표치를 정해두기를 포기했다. 대신 오직 하나 게임하는 시간을 정하기로 했다. '무엇을(비전 54)' 위한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 운동하는 동안 게임(즉각적인 보상 60)을 할 수 있도록 했더니 게임하는 동안 운동하는 시간이 금새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꾸준히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점도 새롭게 바꿔 도전해보고 있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이 밖에도 '유용한 피드백은 정교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166' 는 내용을 읽으면서 AI를 이용하기 위한 프롬프트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온다는 요즘 '일 잘하는 사람'들의 조언이 떠올랐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피드백을 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단계별로 과정을 나눠 개선해나가며 완성해야 한다는 점 등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당연하겠지만, 결국 사람도 AI 프로그램과 똑같이 스스로에게 어떤 명령값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겠구나 싶었다. 후반부로 가면 더욱 픽사에서의 경험담에 집중된 내용을 만나게 되는 점이 몰랐던 세계, 픽사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채워주는 점은 좋았지만 보편의 경험으로 확장하기엔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 

어떤 말을 해주고싶은지 전부 공감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큰 변화, 놀라운 전환을 얻어가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기 전에 혼자 생각하고 도전해보던 것들에 대해 조금 더 확신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공감과 지지를 얻은 느낌을 받은 점이 좋았다. 다른 독자들도 자신의 상황과 목표에 맞게 책에서 얻어낸 생각과 방식을 적용해보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컵 하나 씻으려고 물 틀고 세제 묻히는 건 좀 낭비같다. 아무래도 설거지는 모아뒀다가 식기세척기에게 시키는게 내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더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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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 -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
은모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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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라니 아, 드디어 이 비서울인이 서울의 맛을 제대로 보겠구나 싶어 기대됐다. 어디 서울사람들만 알고 즐기는 서울의 멋을 좀 훔쳐내볼까 싶었다. 서울사람은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오가는 입장에서도 모든 계절에 서울이 있었다. 봄의 한강, 여름의 남산, 가을의 광화문, 겨울의 명동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서울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늘 가던 익숙한 곳만 알고 있는 것 같아 놓치고 있는 서울이 있는 것은 아닌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풍류를 아는 소설가의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동대문의 조지아 식당, 홍대의 콜롬비아 식당은 나중에 나도 꼭 찾아가봐야지 따로 적어두었다. 맛에서는 사실 '서울'이라는 특수성을 잘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부 멋과 3부 흥에서도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솔직히 가장 설레이는 마음으로 침을 흘리며 읽었던 것은 1부 맛의 내용이긴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멋과 흥에서 좀 더 서울을 느낄 수 있었달까.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어서일까, 그 안에서 걷고 움직이는 동안에야 비로소 서울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 면이 있었다. 

 1부 맛의 내용 중 재밌는 점 하나는 "매운맛에 대한 애호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얼마나 깊숙이 배어 있는 것일까? 60"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이어지는 '굴(70)' 에피소드와 함께 한국인에게는 매운맛 뿐 아니라 나물과 제철음식이 발현되는 때가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패스트푸드나 치킨, 피자, 마라 같은 외국계 음식을 좋아하고 자주 먹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한식을 찾게 되는 때가 온다. 속이 편하고, 든든하고. 전에는 그 맛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왜 찾게 되는지 알게 되는 그런 때가, 시기만 조금 다를 뿐 결국은 발현되고 마는 것이다. 

 " 나무와 돌과 바다와 산과 새, 그리고 달. 인간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몇 가지의 응답이 거기에 있었다. 질곡의 현대사를 거쳐오며 더없이 열렬한 응답을 건네준 그들 또한 내게 질문을 건네는 듯했다. 무엇을 바라보고 벗하며 빚어내고 있느냐고. 119"

 서교동에서 열리는 농부시장(121)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꽃망울이 진 매화 가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서울은 항상 어딜가나 사람이 많지만 이렇게 꽃을 즐길 수 있는 계절에 한강이나 꽃이 피는 명소로 알려진 곳들은 특히나 더 붐비는 장소가 된다. 꽃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경하러 온건지 불평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렇게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도 모두가 어쩐지 들떠있는 그 분위기가 좋을때도 있다. 보통의 서울 안에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징글징글하게 여길 때가 더 많은데, 봄과 꽃이 사람들의 얼굴을 웃게 만드는 그 부드러운 분위기가 있다. 그 느낌을 맛보기 위해 다시 봄이 오면 또 돗자리를 하나 둘러메고 한강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잡으며, 다소 비싼 꼬치구이 같은 것을 기꺼이 한입 베어물고.

 "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점점 더 촘촘해지는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이 내려본 적 있는 역이 고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내려보지 않은 역에 내리는 일은 마치 커다란 모험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222"

 서울 토박이(262)가 아니어서일까? 천천히 헤아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역들을 알고 있었다. 책에서 '대모험'을 하는 동안 16킬로미터를 걷게 되었다고 하는데, 동대문에서 광화문과 명동 일대만 잠깐 돌아다녀도 열개의 역 정도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청계천을 따라 '조금' 걷기만해도 만보는 우습게 채우게 된다. 이렇게 서울은 넓고도 좁아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느라 시작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 닿아 가게 된 곳들도 많고, 여기서 일하고 저기서 놀며 곳곳을 누비며 시간을 보내왔다는 증거마냥 꽤나 촘촘히 역들을 다녔다. 그 안에서 충분히 모든 공간을 즐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어보니 제법 서울 방문자다운 행보를 갖췄구나 싶다. 하지만 포트럭파티를 겸한 신년회(260)를 할 수 있는 차 모임을 가진 사람의 풍류에는 여지없이 부러움이 인다.

 서울을 더 알고싶다는 외부의 시선에서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내가 이만큼이나 가깝게 있었나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몰랐던 곳, 특별한 곳을 찾으면 꼭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서울 풍류'를 통해 새로움을 발굴하는 것보다 아는 것을 더 잘 즐기는 방향을 잡게 된 것이 의외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앞으로 다가올 계절 안의 서울을 더 기다려지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일상적인 생활인의 익숙함으로 서울을 보는 것 같아 즐기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었다. "지금 내가 있는 시간과 장소를,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이다 작가님의 평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좋구나, 다시 이 도시를 잘 감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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