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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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질문을 받거나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인가 아닌가. 거창하지 않아도 학생일 때는 시험 한 달 전으로 돌아가면 시험 준비 열심히 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만약 돌아간다면 지금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되는지 먼저 궁금해진다.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현재의 시간은 다시 같은 시점이 될 때까지 멈추는 것일까? 함께 필름이 되감기는 것처럼 다시 돌아가게 되나? 아니면 나이지만 내가 아닌 내가 계속해서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꿈'은 그런 질문들을 품고 있던 독자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데, 오래 걸리는 책이었다. 책을 한번에 읽어나가지 않으면 흐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읽다 멈춘 시점에서 다시 시작이 아닌 처음에서 끝까지로 되돌아가야 시간들 속에서 연속되는 길을 찾게 된다. 책 안에는 시간에 대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각각의 이야기이지만 모두가 한가지를 말하고 있다. 몇가지 이야기들은 재밌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어렵다. 4월 26일의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흘러간다는 사실(37)'과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171)'는 반대로 되어 있어 처음에 잘못 이해했나 싶어 몇번을 다시 읽었다. 6월 2일(99)의 이야기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간다'가 떠올랐다. 문득 책 안의 날짜들을 보다가 실제로 일치하는 시간들일까 궁금해 달력을 찾아보니 맞았다. 시간의 어딘가에 이 날들이 멈춰있을 것만 같다. 

인상적인 내용들이 많았지만 " 사람들이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 보자. 이상하게도 도시마다 사람들은 두 가지 종족으로 갈라진다. 나중족과 지금족이다. 중략 나중족은 어느 가게에서든 어느 길거리에서든 알아볼 수 있다. 헐렁한 옷차림으로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다. p111" 목이 늘어난 오래된 반팔을 입고 이 문장을 읽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최근 알게 된 사람 중에 정말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지금족이라 할 수 있겠다. 생각과 행동 사이에 거의 공백이 없게 살아가는 모습을 정말 아주 조금,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경탄하는 한 편 나중족인 나에게는 상대방에게 전부를 보여주어도 내가 받은 흥미와 인상을 대갚아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저 이런 책을 읽고 있었는데 당신 생각이 났다,고 할 수 밖에. 이 책을 추천해줘야지. 

시간에 대한 이론에 흥미가 있는 인문계열 성향의 독자라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읽을만하다. 공식을 상상으로 풀어준 것 같고, 글을 그림으로 그려준 것 같다. 수학과 음악을 잇는 피타고라스의 음계처럼 '아인슈타인의 꿈'에도 과학과 문학 사이의 놀라운 변환이 담겨있다. 다시 돌아가 나는 왜 시간을 이해하고 싶을까 생각해본다. 무상과 공 사이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다. 길게 늘어진 시간들의 끈에서 틀림없이 존재하는 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2025년 4월 28일 저녁 책 한 권과 한 사람이 순간에 머물러 있다. 이 순간은 곧 '아인슈타인의 꿈'을 읽을, 읽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시간에 2025년 4월 28일의 저녁 한 순간으로 고정된다. 이 순간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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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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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책이다. '공자가 AI시대를 산다면' AI랑 토론을 벌였겠지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제목이다. 각각 인 의 예 지를 뜻하는 사람, 올바름, 관계, 배움이라는 네 가지 주제와 저자가 별도로 엮은 '그리고 삶'이라는 다섯번째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초반 '인'의 내용에서 AI시대에 대해 얼마나 몰입하여 다뤘는지 어딘가에는 공자를 지*리 그림체로 그려달라는 내용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삶 전반의 내용을 넓게 담아 균형을 잡았다. 

 책의 첫인상은 시대에 맞는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 둘이 잘 융합될 수 있는 주제일까 염려가 앞섰는데, 그럼에도 내용이 궁금했던 까닭은 예전에 공자와 현대사회에 대한 수업을 통해 고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전만이 줄 수 있는 깊이와 이해를 오래도록 기억해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현시대에 접목된 공자를 다시 만난다면 이번엔 어떤 기억을 남기게 될지 기대되었다. 

 '인'의 시작은 최근 생각했던 '미래'에 대한 주제와 엮여있었는데, 왜 미래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디스토피아인가, 왜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공지능과 로봇,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미래로 다루고 있을까 사람과 기계 장치, 안드로이드, 사이보그의 구분은 무엇으로 해야할까 같은 질문들을 떠올린 후여서 첫 시작부터 이를 공자의 '인' 사람다움과 접목시킨 관점이 흥미로웠다. 

 '의'의 내용은 '멀리 내다보기(102)'나 '착한 거짓말은 없다(116)'같은 근본적인 마음가짐과 태도를 연결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주로 순수학문을 하는 학자들의 연구와 논문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룬 점은 아쉬웠다. 그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교육의 부재, 붕괴 현상과 더불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다뤄주었으면 더 좋았겠다. 

 '예' 단락으로 넘어가면서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초반에는 AI시대와 접목한 내용이 많았는데 부모님과의 일화(167,171) 등 좀 더 보편적인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오히려 딥페이크(130)와 함께 소개한 내용은 다소 낙관적인 마무리가 아쉬웠는데, 개인적 경험을 담은 부분들은 더욱 마음에 와닿는 면이 많아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다. 

 '지'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꼽혔나 살펴보았는데, "'위정' 편의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가 가장 먼저 나와서 반가웠다. 챗GPT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잠깐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 사람이 메타인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챗GPT에게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정직한 것이 진정한 앎이고 답이 된다는 것을 학습시켜 거짓 대답을 방지하는 것과 연결지었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마지막 단락인 '그리고 삶'에서는 다양한 주제가 나오는데 술과 남을 평가하는 것, 잘못된 정보에 대한 자세, 직장 생활 등 살아오면서 경험으로 정말 다루고 싶었던 내용을 채워넣었음이 엿보였다. 그 전까지는 기본기를 다뤘다면 여기선 실전을 준비한 느낌이다. 읽다보니 75가지나 되는 논어 구절을 언제 다 읽었나모르게 지났다. 고전을 지루하게 여기지 않도록 AI라는 소재를 끌어와 논어와 접목시킨 시도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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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 고전의세계 리커버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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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주의에 대한 맹렬한 확신으로 가득찬 내용은 익숙치 않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사회주의 지역을 두고 공산주의라는 호칭을 써왔고 그 탓에 나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구분 사이에서 헷갈려왔는데 비로소 어렴풋한 구분이 되는 듯 하다. 얼마 전 읽은 자유론보다 분량이 적길래 금방 읽겠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시간을 들였다. 책을 산책 시키듯이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다. 

 내가 무엇인가를 가졌다는 착각 탓에 공산주의의 분배와 균등이 막연한 상실로 여겨졌다. 하지만 "너희는 우리가 사적 소유를 청산하려 한다고 경악한다. 그러나 너희의 기존 사회에서 사적 소유는 구성원의 10분의 9에게는 이미 폐지되었다. 10분의 9에게는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사적 소유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희는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무소유를 필수 조건으로 전제하는 소유를 우리가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39)"는 내용을 읽다보니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지 느껴졌다. 이는 개인이 가진 것을 빼앗아 모두에게 평등한 분배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적 소유 구조를 벗어나서 노동자 스스로 분배와 균등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에 가까웠다. 

 읽다가 다른 내용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이 " 수공 노동이 숙련성과 힘의 과시를 덜 요구할수록, 다시말해 현대 산업이 발전할수록, 그만큼 더 남성의 노동은 여성의 노동에 밀려난다. 성별과 연령 차이는 노동 계급에게 어떤 사회적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나이와 성에 따라 드는 비용이 달라지는 노동 도구만이 있을 뿐이다. p26" 내용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노동 도구로써의 경쟁을 하게 되고, 나이와 성에 따라 드는 비용이 달라지는 노동 도구이기 때문에 현재의 갈등도 야기된다. 여전히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노동보다 적은 가치를 가지고, 아동의 노동력 또한 값싼 인력의 대체재로 취급(플로리다의 아동 노동법 완화 추진 ; 이민자 단속으로 인한 노동력 공백을 14세 이상 청소년 노동 확대로 메우려는 법안) 하는 현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되리란 예상을 하지 못한 채로 읽게 되어 준비가 부족했다. 여러모로 깊이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는데 책을 읽으면서 본 내용보다는 해제의 내용을 통해 생각이 정리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해제의 내용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으니 호기심에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면 해제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특히 '6. 공산당선언의 현대적 의미와 포스트모던 공생주의'의 내용이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하고 '왜 지금 공산당선언인가'는 질문에 답을 주는 마무리가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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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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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겠다! 읽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든 생각이다. 그리고 누가 드라마나 영화로 안 만들어주려나 하는 바람이 딸려왔다. 가급적이면 드라마로. 넷플릭*가 이 책 읽어봤으면 좋겠다. 영화로는 이래저래 덜어내는 분량이 생길 것 같아 아까우니까. 옴니버스 구성이라 얼마 전에 봤던 일본 영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이 떠올랐다. 유치할 것이라 예상하고 갔다가 생각보다 몰입도 잘되고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호랑골동품점'은 그보다 더 쌉싸름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 영상화 된다면 더 다양한 연령층에게 두루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다. 50만이라는 흥행을 거둔 '퇴마록'을 떠올려보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도 좋겠다. 

 생각해보니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들이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엮은 것들이 좀 된다. 전천당이나 퇴마록도 얘기했지만 좀 더 비슷한 분위기로는 백귀야행(이마 이치코)이나 펫숍 오브 호러스(아키노 마츠리)같은 만화책이 떠오른다. 둘 다 재밌게 본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처음 '호랑골동품점'을 보고 한눈에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 이해된다. 이런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호랑골동품점'이 조금 더 괴담 분위기라 무섭다.  

 처음 책을 꺼내든 건 밤이었는데 신나게 책을 읽다가 금방 멈추고 앞으로는 낮에만 읽기로 마음 먹었다. 재밌어서 다음장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느리지 않은데도 읽다가 멈추게 되는 바람에 읽는데 조금 오래 걸렸다. 무서웠다. 특히 '3.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 그 전에도 뭐가 보이고 들리는 내용이 나와서 낮에 읽어야겠다, 했는데 이때부터는 핸드폰 전화오는 것도 신경쓰일 것 같아서 낮에 사람 많은 카페같은 곳에 가서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요즘은 다들 핸드폰 써서 공중전화 찾아보기 어렵긴하지만 길을 가다 공중전화를 보면 괜히 무서울 것 같다. 

 무섭긴한데 마냥 무섭기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자극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읽다보면 씁쓸한 하지만 아리고 그리운 맛이 남는다. 책을 읽다가 어느날은 그리운 사람이 그리워 앓았다. 속에 묻어두었던 세 번 부르고 싶은 이름을 떠올려본다. 묻고 싶은 것은 없어도 듣고 싶은 목소리는 있어서.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눈썹 대신 머리카락에라도 흰머리가 섞여있나 한 번 훑어보고는 오래된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지, 지금이 아닌 것들은 꺼내보지 말아야지 한다. 어쩔 수 없는 부재를 그러려니 하고 살다가도 가끔은 사무친다. 그런 것들이 '호랑골동품점'에 있었다. 

 책의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 치앙마이의 골동품점에서 언젠가 골동품점을 배경으로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낡은 것들을 보며 값이 아니라 이야기를 짐작하는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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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공격 주의보 - 출세보다 상처받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된 이유
남대희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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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나온지 10년이 되어가는 영화 검사외전(2016)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선배님, 저 휘문고 95기입니다."
"어 그래? 이거 직속이네? 담임 선생님이 누구?"
"독..사..?"
"아! 그 양반 아직?"
사기꾼인 강동원이 박성웅에게 접근하기 위해 학연을 이용하는 것이다. 독설로 유명한 한 방송인은 같은 지역 출신임을 밝히는 후배 연예인들에게는 유독 너그러운 반응을 해주기로 소문 나있다. '미세공격 주의보'는 그저 재미있는 일화에 지나지 않을 이 모습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낙인과 경계가 됨을 환기시키고 있다. 
" 오랫동안 단일민족의 신화와 민족주의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다양성이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담론은 그동안 불필요했고 따라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도 없었다. 한국인은 유독 같은 고향이나 학교 출신 간 유대감이 크다. 워낙 공동체 문화에 익숙하여 뭐 하나라도 공통점이 있으면 쉽게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p51"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크게 공감했던 것은 "회사가 직원을 우습게 안다(191)"의 내용이었다. 일하던 직장에서 선임이, 또 내가 후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굵직한 조언은 '너 아니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였었다. 업무 흐름에 익숙해지고 책임이 생길 때 쯤 이 일을 내가 꼭 처리해야할 것 같고, 나 아니면 수습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단 생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은 그 전에도 후에도 누군가가 어떻게든 진행되도록 굴려왔다. 나 아니면 안될 것 같아도 사실 다 되고 그런 의욕을 회사가 알아주지 않으니 적당히 하라는 조언이었다. 언뜻 노력하려는 다른 직원의 힘까지 빼버리는 방해같겠지만, 나중에 번아웃이 오고 상처받지 말라는 예방주사였다. " 회사가 직원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최악의 미세공격이다.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뭔가를 결정해 내놓을 때, 직원들이 당연히 알 권리가 있는 사안인데도 투명한 설명 없이 침묵할 때, 누가 봐도 경영 위기인데 경영진의 설명이나 비전 제시가 없을 때, 회사가 직원들에게 줬던 것을 뺏을 때, 조직이 직원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 직원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을 일언반구 없이 무시할 때, 회사가 수시로 주요 의사결정을 바꾸고 문제를 외면하며 고치려 들지 않을 때 직원들은 한없이 절망한다. p191"  

이직, 출산휴가 등으로 비워진 인력 공백을 충원없이 남은 인원들에게 떠넘기고, 직원 복지차원에서 배정되었던 비용을 삭감하고, 휴가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직원 면담을 핑계로 다른 직원에 대한 업무와 태도를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일들을 겪으며 살아남은 직원들의 생존전략이나 다름 없었다. 이 과정을 못 버티고 조용히 사라진 동료들의 빈자리를 채운 신입에게 우리는 지치면 교체해버리고 마는 부품이나 다름 없으니 의욕과 노력을 보이는 대신 천천히 지치라는 냉담한 조언은 미세공격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료 직원들끼리 미세공격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곤했다. 한참 의욕이 생기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입장에서 당신 아니어도 그 업무를 대체할 사람은 많다는 말은 상처나 다름없다. 이미 줄어든 혜택과 과중된 업무를 계약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선임자들이 빼앗겨 싸운 복지는 사내 분위기만 흐리는 불만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직원들간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기고 이는 더 많은 이탈자들을 만들었다. 공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땅히 남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처럼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리곤 사회 생활이 원래 이렇다는 말을 끌어다 핑계삼았다. 

흔한 갈등이다. 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배울 때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교류하며 역할을 갖는다. 개인은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면서 누군가의 가족이고, 취미 모임의 일원일 수도 있다. "차별과 미세공격은 입체적이고 다면적이기에(173)" 자신이 소속된 곳에서 부여되는 단체성이 수시로 우리를 피해자와 가해자 위치에 둔다. 누구도 무결할 수는 없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내가 받은 미세공격을 떠올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남에게 어떤 시선과 잣대를 내밀어 공격을 했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편견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발견해야 한다...중략...일반 버스나 콜택시를 타면서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220)"는 내용은 확실한 의식의 전환이 된다. 책에서는 '4부 미세공격을 대하는 자세'를 통해 조직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방향을 제시해주며 내용을 마무리 했는데, 책을 읽다보면 더 넓은 범위로 시선이 옮겨감을 느낀다. 

책을 다 읽은 날 곧 개봉을 앞둔 영화 '해피엔드(2024)'를 먼저 관람하게 되었다. AI 감시 카메라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내용도 문제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은 선명하게 그어진 차별의 장면들었다. 경찰의 검문을 받을 때마다 재일한국인인 고등학생 코우는 4대를 거쳐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집까지 임의동행하여 신분을 증명해야만 한다. 코우 뿐 아니라 일본인으로 규정되지 않은 다문화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련된 자위대 강연 시간에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교실에서 쫓겨나게 된다. 영화가 시작될 때 '이것은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는 자막이 나오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트럼프 정권 아래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휴스턴대학 한국인 조교수의 비자와 컬럼비아대 유학생들의 비자가 명확한 이유없이 연달아 취소되는 일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더불어 지난 4월 1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사회보장청이 불법 이민자 추방과 사회보장 혜택 박탈을 위해 6천명이 넘는 생존 이민자들의 이름과 사회보장번호를 연방정부의 사망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직장 내의 미세공격 주의보 넘어 국제 사회의 확연한 위협으로 파시즘이 끓어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나 자신은 정말 편견 없이 사는가?(221)" 질문해야 할 때다. "스스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루를 마칠 때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얼마나 존중하고 배려했는지를 돌아본다면 그만큼 편견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질 것이다." 처음엔 이런 자기 반성과 점검을 피곤하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엔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진 것들을 휘두르려고 했던 이기심을 느꼈다. 우리는 이미 '구역'을 만들었다. 아이들이나 노인같은 특정 나이대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는 구역을 만들어냈다. 거주지와 소득으로 타인을 멸칭하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피부색과 국적으로 선입견을 갖는 편견도 만들어냈다. 그것들은 학교, 상점, 회사, 동네, 지역 범위를 넓혀 국가간의 갈등으로 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뉴스를 볼 때면 그저 세상의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는데 '미세공격 주의보'를 읽으며 일부만의 문제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미세공격 주의보' 덕분에 우리 안의 차별과 특권의식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시민 의식과 문화를 구축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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