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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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엄마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다면 안나 같은 엄마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안나 역시 자신을 보면서 소년 같은 아들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46"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을 읽기 전에 책을 소개하는 카드뉴스를 보고 강렬한 흥미를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읽기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 양가적인 생각은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을 읽는 내내 따라붙어 왔다. 제목부터 저주와 축복이 서로 다르게 그러나 나란히 적혀있었고, 누군가의 상황, 삶에 대해 어느 한 갈래만으로는 바라볼 수 없도록 미묘한 불편함, 긴장감을 주었다. 

 "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단죄할 권리는 없다. 58" 

 우식이 두번째 자가격리를 할 때 찾아본 첫 연애상대가 '결혼해서 여섯 살 된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28)', 조카를 이용해 인플루언서가 되려는 형네 부부와 싸운 일(52), '더 빨래'에서 디지털장례 서비스를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도와 과거를 지우는데 주력한 일(56),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마태공의 중학생 딸, 그런 딸을 위해 루머를 만들어낸 아버지(88), 전쟁을 핑계로 어린 소년을 가둔 안나와 스스로를 벽장 안 안가에 가둔 소년 기준의 이야기는 이편이 나쁘다, 저편이 맞다는 식으로 분명하게 갈라내기 어렵다.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 무엇이 맞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지 모를 불분명함은 '벙커 1983' 텔레비전의 퀴즈 쇼에서 극대화된다. 난파선 게임, 트롤리의 딜레마,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누군가를 제외하고, 희생시키고, 죽이고, 죽는 선택지들이 우식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매번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단죄할 권리는 없(58)'을 강조하는데 쓰인다. 

 당신의 선택이 옳은가, 당신의 선택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는가, 당신의 선택에 그만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두드림은 인터넷이라는 접근성과 파급력이 좋은 수단 덕분에 너무도 쉽게 일방적으로 고발되고 제기되는 사건들 속에서, 스스로에게 마땅히 그만한 권한이 주어졌다고 믿는 대중들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다 잊혀지고 번복되었다가 사그라드는 수많은 과정들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이 지른 단말마 같았다. 

 코로나 때 자가격리를 하며 쓴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래도록 집에 있으면서 처음엔 집에만 있으면 된다니 오히려 좋아 하다가, 몇 번이고 달고나커피 같은 것을 만들다 실패도 하고, 집에 있는게 이렇게 좀이 쑤시는 일이었나 의심하게 되면서 갇힌 사람과 가둔 사람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지도 몰라, 하고. 아포칼립스 세상 속 오직 두 사람만의 세계에 대한 쌉싸름함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전부터 세상과 사람의 다면성을 꿰뚫기 위해 준비된 이야기였다.  

 교차되는 우식과 기준의 이야기는 30년의 시간을 오가면서 가둬지고, 가두고, 머물고, 격리되는 사람들과 시간을 열람하도록 안내한다.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인 디테일이 살아있는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표지로 돌아가 제목과 그림을 마주했을때 비로소 '아!'하는 "소름 끼치는 순간"을 선사한다. 이 묘하고 낯선 이야기에서 사그라드는 계절의 음울하고 서늘한 기운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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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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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겠네,하는 생각을 의심의 여지없이 떠올리게 되는 소설집이다. 널리 알려진 작가의 이름도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섞인 기괴한 존재들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소개도 흥미롭다. 예전에 읽었던 만화 중에 이런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 있는데 그 시리즈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기대됐다. '뤼미에르 피플'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만화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강돌고래(10)와 코스타리카 황금두꺼비(12) 같은 것들 사이에 은근슬쩍 박쥐 인간을 끼워넣는다. 그럼 책을 읽다말고 검색창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찾아보게 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살펴가며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하는 동안 실소가 나온다. 당연히 박쥐 인간은 찾아보지 않았지만, 찾아봤자 배트맨이나 드라큘라 같은 것만 나오지 않을까, 이 자연스러운 침투력에 애꿎은 강돌고래와 코스타리카 황금두꺼비만 의심을 사는 것이 공교롭고 재밌다. 

 '[동시성의 과학, 싱크](300)'는 있지만 '무영검 파천황(302)' 게임은 없었다. 그러다 책 안에서 만난 불확실해하는 모든 것을 검색해보는 것처럼 누군가는 '레드망고(321)'를 검색해볼지도 모른다 떠올리니 섭섭해져서 이 요상한 확인 작업을 그만두었다. 기왕 개정판으로 다시 나오는 김에 요아정이나 요거트월드로 돌아왔어도 모른척 했을텐데, 하지만 그것은 분명 존재했었다고 환상이 된 현실 중 하나였다고 입맛을 다시며 추억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딨어 싶다가도 이런 일도 있겠지 싶은 이야기도 있다. 

 " 여자아이는 이제 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지 이해했다.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다음 단계, 다음 목표가 필요하다. 어디든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 큰 틀에서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에는 다음 단계라는 것이 없었다. 77"
 환상적이고 묘한 이야기들 사이에 빡과 쩜,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룸살롱 아가씨의 이야기를 읽다 그럴수도 있구나,하고 세상의 한 면을 이해하게 되는 상황을 만난다. 이게 다 귓가를 울리는 모기소리 덕분이라니. 

 가장 읽기 괴로웠던 것은 '808호 쥐들의 지하 왕국'이었다. 사실 비급 감성이 담긴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쥐여서일까, 일단 혐오감이 드는데 내용 자체도 엽기적이라 읽는동안 불유쾌함이 컸다. 하지만 이 단편들이 영상화된다면 아마 808호의 이야기를 보고 싶을 것 같은 자극적인 면이 있다. 처음 '뤼미에르 피플'을 봤을때 기대했던 스타일의 내용과 가장 비슷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최근에 봤던 책의 내용 중 기억 남는 것을 꼽는다면 이 내용을 소개할 것 같다.  

 내용이 독특한 단편이 있다면 형식마저 독특한 단편도 있다.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있었던 802호도 재밌었고, 잡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804호도 독특했지만, 805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으로 나뉜 두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된다. 처음에는 오기로 한쪽씩 통으로 읽었다가 한 이야기를 쭉 이어서 읽어야겠다 싶어져 결국은 한 편을 세번 읽어야 했는데 이런 시도를 하도록 만드는 점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책에는 뤼미에르라고 되어 있지만 신촌에 있는 르메이에르 빌딩이 연상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광화문의 르메이에르를 떠올린다. 다 다른곳이지만 이 생각들이 '뤼미에르 피플'을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오가도록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뤼미에르 피플'은 그 자체가 재미와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좋지만 읽는 사람에게 '어쩌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면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심어준다는 점이 좋다.  

 개정판으로 다시 돌아온 장강명의 세계, 독특한 환상 소설의 세계로 비가 잦은 가을의 휴일을 시작해봐도 좋겠다. 
덧붙여 그믐의 김새섬 대표에 대한 기도를 함께 남긴다. 

*펫숍 오브 호러즈 / 아키노 마츠리 작 / 서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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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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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면 그 반대의 것이 온다는 것. 희망을 원하면 절망이 찾아오고 부를 원하면 가난이 닥쳐올지어다. 사랑을 갈구하면 할수록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마주하게 될 지어다. 아이들 앞에 선 아버지 선생님은 영적 의지의 시험대였다. 218" 

 '파사주'를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모르겠다,였다. 그 뒤를 가장 자주 쫓아나온 것은 만약 내가 종교가 있었다면,과 이 둘은 정말 길을 떠나고 있는 게 맞나,였다.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듬더듬 읽어나가다보니 최근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 읽은 책이 되었다. 사실 다 읽고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는 감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조금 말을 부풀려서 표현하자면 '파사주'만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는 이 책을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해지는 책은 또 없을 것이다. 

하나의말씀
 '신의 군대(61)'. 무려 일곱곳이나 된다는 벽돌집의 조직적인 체계와 사회 여러 계층의 비리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하나원의 모습은 단순한 사이비같은 종교시설을 넘어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종교시설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비밀스러운 공간들이 있고 거기서 사람들은 계약서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접대한다. 해수와 유림의 불분명한 시선과 대화로 그 안에서 벌어지던 불온이 언뜻 들춰지다 감춰진다. 그 둘의 존재마저도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순간 그들의 증언도 함께 점멸한다. 정말 뒤뜰을 지켜보다 보면 사라진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는지, 계단 아래에 있는 것은 연구소인지 수련당인지 혹은 감옥인지(230) 보고도 알 수 없고, 알아도 말할 수 없고, 알려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더욱더 생생해지는 것은 " 사람 하나 죽고 사는 게 말씀과 관련 있어, 없어? 사람 하나 다치고 상하는 게 말씀과 관련 있어, 없어? " 을러대던 소리였다. 

가인과 아벨(17)
 (81)*'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카인은 자신의 첫 수확 농작물을 아벨은 자신의 가축 중 가장 처음 난 새끼를 제물로 바쳤다. 자신의 것이 아닌 아벨의 제물만 반겨하자 이를 시기한 카인은 아벨을 불러내 잔인하게 살해하고, 이로인해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어 땅에서 버려져 유랑하며 살게 된다. [창세기 4:1-16]'
 가인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해서 명확한 비유와 설명이 나오는데도 해수가 당당히 스스로를 가인이라고 부르는 통에 카인으로 대표되는 '악, 폭력, 탐욕'같은 키워드들이 흐려졌다. 해수가 가인이라면 대체 아이들을 착취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때리며 학대하고, 비리와 향락에 취한 벽돌집 안의 사람들은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의미가 더 있을지도 몰라 의심하며 읽었다. 역할은 누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뒤바뀌는 것이었다. 가인의 불신과 유랑은 해수와 유림으로 인해 긍정으로 바뀐다. 

길을 떠나는 아이들
 어디선가 아이들은 끊임없이 흘러들고, 자라나던 아이들이 소리없이 사라진다. 사라지기 전에 소리를 내려고, 모두가 아벨인 그 공간 안에서 스스로 가인의 이름을 가져온 아이들은 유랑 길에 오른다. 길과 벽돌집이, 과거와 현재가 어지러이 뒤섞이는 동안 그 안에서 믿음도 합쳐지고(122), 생존자(166)는 착취자가 되었다. 아이들의 여정이 현실감없는 환상처럼 보여져 산 자의 탈출인지 이미 죽은 자의 황천길을 따르는 것인지 헷갈렸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방향도 불분명한 길 위에서 해수와 유림은 못마땅히 건네진 사과를 받아든다.(21) 아마 이들은 더이상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에 이 과실을 먹어보라는 유혹 없이 오히려 마땅치 않다는 듯한 태도로 건네진 것이 아니었을까. 

파사주
 게임(200)이자 통로 그리고 궁합. 파사주라는 단어를 두고 사실 대형 쇼핑몰 같은 공간을 먼저 떠올렸다. 가장 일상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때문에 '파사주'의 내용을 좀 더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배경일 것이라 잘못 짐작했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게임으로 풀어냈지만 나중에 읽어보니 사주팔자를 깨뜨린다는 뜻의 破四柱,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운명을 풀어보는 궁합의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인 유림과 물인 해수가 만나 함께 자신들의 운명에 저항해 생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관계성을 그대로 상징하는 제목이었다. 읽기 전보다 읽고 난 뒤에 훨씬 제목이 더 마음에 들어왔다. 

 " - 우리 지-지금 어디로 가?
유림이 물었지만 해수는 묵묵히 걷기만 했다. 뒤를 돌아봐도 앞쪽과 똑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고 불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림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건 이 길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이 보일 터널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 걷다 보면 환한 빛을 마주하리라는 작은 희망이 유림의 발걸음을 앞으로 이끌었다. 171" 

 어둡고 질척이는 통로를 헤매는 것 같은 소설이었지만 그 안에 희망이 있어 그 희미한 것을 붙들고 같이 헤매며 읽어 내려간 기분이었다. 이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독자라면 아마 좀 더 수월하게 읽고 많은 것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을 여는 소설로 사람 사이의 관계과 운명을, 세상의 굴레와 저항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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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컬트 TURN 7
전건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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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이...... 여기에 둥지를 틀고 알을 깔 거야. 62"

 턴 시리즈는 늘 반갑다. 지난 여섯번째 턴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이 늦봄의 라일락 같았다면, 일곱번째 작품인 '더 컬트'는 여름의 강렬한 더위를 담아낸 듯한 인상을 준다. 서점에서 '더 컬트'의 표지를 보고 화려함에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어두었다. 사람도 인물이 잘나면 얼굴값을 하는 것처럼, 책도 표지가 잘나면 표지값을 한다. 첫 시작부터 순식간에 나안동의 한복판으로 몰입하게 되는 흡입력이 있다. 전형적인 듯하면서도 정확한 흐름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이 속도감있는 서사가 된다. 

 첫 장 '파수꾼'이 끝나는 순간 도파민이 싸악 돌면서 그동안 정리해놓은 인물 관계를 지웠다. 원래 이런 정리를 잘 안하는데 시작부터 심상치않은 속도감으로 전개가 되길래 빨리 읽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적어두었던 것들이 오히려 전개를 따라가지 못해 지워졌다. 괜히 적었네,싶다가 너무 재밌는데?하고 즐거움이 차올랐다. 턴 시리즈는 장르가 주는 재미를 최우선으로, 읽는 즐거움이 보장되어 있다는 점이 언제나 만족스럽다. 

 " "인간이 원래 그래.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보고 믿고 싶은 걸 믿지. 그리고 한번 믿기 시작하면 그 믿음을 보상받기 위해 더욱더 믿음에 몰두하지. 그렇게 광신도가 되는 거야." 242"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어선 안되는 사람, 믿지 못 할 일들, 믿어선 안되는 것들을 직접 하나씩 읽으며 헤아려 나가야 한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에덴선교회와 얽힌 인물과 사건들에 가까워지는 과정이 매번 새롭고 놀라워서 단숨에 책을 읽게 된다.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 사이에서 눈 앞에 장면이 그려지듯 하기 때문에 문장 간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책은 뒷이야기가 궁금한만큼 더 빨리 읽어버리면 되니까, 최대 2배속 밖에 할 수 없는 영상물이 아닌게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는 확실히 보장될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남은 아쉬움은 종교에 대해 잘 몰라 '더 컬트'안에서 사용된 은유나 상징을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인데, 처음 봤을 때 매력적으로 느꼈던 표지에 그려진 그림들도 하나씩 의미하는 바가 있겠구나, 뒤늦게 다시 시선이 향했다. 이를 잘 파악해 나갈 수 있을만큼의 받침이 있는 독자들의 감상은 더 재미있을지 오히려 아쉬운 부분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은유와 상징을 잘 정리해둔 감상이나 작가와 함께하는 북토크 같은 콘텐츠가 기대된다.

 읽는 도중 문득 '이것은 하나의 과정이요, 떨어진 조각일뿐이니'란 문장이 떠올라 적어두었다. 각 장을 엮어, '더 컬트'를 관통하는 감상이 다 읽기도 전에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마치 큰 흐름의 중간 부분을 시작으로 접한 느낌이다. 언제고 작가가 '더 컬트'에서 뻗어나가는 삼부작을 완성시켜야 하지 않을까 바라게 된다. 이봉철에서 류백주가 그리고 전승미까지, 계명성회가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고 어디까지 왔는지, 그 끝에 끝까지 다달아야 하지 않을까. 숨차게 치달은 마지막에서 다시 고개를 들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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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고쇼 그라운드
마키메 마나부 지음, 김소연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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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2025 늦여름, 잔여경기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9월이었다. 표제를 따라 8월에 읽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아직 가을이 오기 전이라 우리팀의 시즌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8월의 고쇼 그라운드'를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을, 벌써 야구팬들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론 우리팀은 가을에도 야구를 한다. 할 것이다. 안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 가을이 어느 가을인지도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 '8월의 고쇼 그라운드' 소개를 읽다가 눈을 의심했다. "여름, 우리는 패자였고 그래서 더 빛났다." 무슨, 소리인지. 단체로 삭발이라도 하고 바로 훈련이라도 떠났나. 삭발. 패자라서 더 빛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우리팀일때 얘기고, 청춘들의 그라운드는 또 다른 방법으로 빛날지도 모른다. 비소식에 경기도, 순위 싸움도 잠시 소강된 지금 새로운 그라운드로 잠시 다녀왔다. 

 그라운드로 떠나기 전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한 이야기가 있었다. '역전'이라는 대회 이름은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설명을 보니 이어달리기나 다름 없었다. 한참 경기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사카토가 왼쪽이라고 하는 순간 탄식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못찾는다고? 정신차려, 임마. 개인전도 아니고 단체 경기를 그런 식으로 할거야? 그 한마디를 기억 못 할 거라면 장갑으로라도 표시를 할 것이지, 미스터리고 뭐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경기와는 별개로 사카토의 어리지만 순수한 마음과 사오리의 솔직한 마음이 교차되는 동안 귀엽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는데, 때마침 나타난 아라가키 선수가 너무 멋있어서 또 탄식이 나왔다. 
" "사과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하나야."
"네?" 
"내년에 다시, 여기에 오는 거야. 네가 달리고, 저 친구도 데려오는 거야. 그리고 미야코오지를 함께 달리는거지. 그게 전부야." 74" 160년 전의 신센구미의 흔적조차 떠오르지 않을만큼 멋있는데 고등학교 2학년이라니, 청춘판타지가 여기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표제작보다 더 좋았다. 

 갑자기 달리기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번갈아 이어지는 두개의 연작인가 싶었는데, 그 뒤로는 쭉 야구이야기다. 사실 야구를 하긴 하지만 야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중심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갑자기 대학 졸업반 정도로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반짝이는 청춘의 느낌보다 졸업을 앞둔 막 학년의 찌듦, 교수님의 야구 시합 아바타의 기운이 물씬 느껴져서 기대가 무너졌다. 대학-사회인 야구말고 고시엔 가는 반짝반짝 열정 청춘 야구물로 다시 끓여오시라. 거기에 샤오 씨의 등장과 에이짱의 영입으로 달아오른 승부마저 한순간 싸늘하게 가라앉을만한 '가설과 검증'이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이 문제 역시 이쪽 입장에선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야구 이야기를 더 기대하긴 했지만 마라톤 경기가 속도감이나 등장 인물들이 더 인상적인 면이 많아서 재밌었다. 

 '기묘하고 찬란한 청춘 판타지'라는 표현이 그대로 잘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을 다녀온 적 있는 독자라면 좀 더 현장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교토에 다녀온 적이 없어 지도를 보면서도, 지역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장소를 떠올릴 수 없어 아쉬웠다. 가벼운 스포츠와 미스터리를 곁들인 소설로 속도감있게 잘 읽히는 편이니 경기가 없는 날,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은 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여름이 지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계절과 함께 즐겨볼만한 시즌책이니 9월 한낮의 더위가 다 꺾이기 전에 '8월의 고쇼 그라운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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