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지구 - 다가오는 인구 감소의 충격
대럴 브리커.존 이빗슨 지음, 김병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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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30년 안에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대략 2750년에 한국인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p.126) "

 

 아이언맨이 3000만큼의 사랑을 남기고 간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 중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에 나온 빌런 타노스를 생각해보자. 타노스는 전 우주의 생명체를 반으로 줄이기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모은다. 일일이 행성들을 공격해 절반을 학살할 수도 있지만, 스톤을 모으면 그 힘으로 손가락을 한 번 튕기기만 하면 순식간에 랜덤으로 절반의 생명을 공정하게 없앨 수 있다. 청소와 정리를 위한 무차별 삭제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해결책이지만 그가 내세운 조절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영화처럼 우주까지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인구의 감소가 지구의 환경과 자원 확보 등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아닌 지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 원인이 인류에서 비롯되는 와중에, 인류가 겪는/겪을 인구 감소의 문제는 꼭 부정적인 것일까. 타노스의 선택이 잔혹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옳지 않았을까.

 

 '텅 빈 지구'에서 다루는 인구 감소의 문제에서 우리나라는 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도 독보적인 걸음으로 고령화시대/인구절벽에 접근하고 있다는 씁쓸함이 책에서 한국을 발견했다는 반가움과 한데 버무려진다. 우스운 일이었다. 사실 인구 감소의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2750년에 한국이 사라지는 일은 무감하게 받아들이면서 책 한 권 안에서 한국을 발견하면 비록 그것이 좋지 않은 케이스에 대한 내용일지라도 반가운 것이다. 공감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 이런 이중적인 심리도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인구 감소의 원인들과 얽혀있다. 외국인 저자가 썼지만 한국인 독자를 공감토록 만들만큼 '텅 빈 지구'는 한국의 현 상황을 매우 예리한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페미니즘과 유교문화에 관련된 내용도 나오기 때문에 ㅍ만 들어가도 거부감드는 사람은 불만스러울수도 있겠다.

 

 " 적어도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외국인 혐오증에 대해서 당혹해 한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연막이다. 한국인들은 오로지 한국 사람만이 한국인이라고 믿는다. 그게 전부다. (p.123) "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제인만큼 책에서 언급한 원인들은 우리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모두 건드린다. 한국은 지난 2018년 책에서 강조하는 인구대체율(2.1)의 반도 못 미치는 0.98의 초저출생률을 기록했다. 이 출생률 감소라는 결과값의 원인들 중 하나는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젊은세대가 건국이래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현실에 연애, 결혼, 취업, 출산, 주택마련 거기에 +a 의 포기라는 N포세대가 되면서 출생률 감소의 큰원인이 된다. 더불어 여성의 교육과 의식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이 부각되고 전통적인 여성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 여성들이 많아진 것도 한 영향을 준다. 거기에 난민/이민 등에 대한 개방적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여론 역시 좋지 않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의 소멸에 무감한 반응을 하는 이유가 위의 N포세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고, 한국에 대한 분석이 반가운 이유는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모든 원인들이 어떻든, 인구감소 전망은 확실시되어 있다. 인구 감소가 불러오는 변화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까. 문화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소비가 줄고, 고령화로 인해 젊은세대가 부담할 세금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를 빼면 자연환경이 좋아지고,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앞의 문제들은 2050년 즈음을 기점으로 예시되어 있고 뒤의 요인들은 현재 체감하고 있으니 현상황에서는 더욱 인구 감소가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미래엔 지금 인구감소를 걱정할 필요없이 영화에서 봐왔던 것처럼 인공자궁안에 인공수정된 아이들을 키워내 인구수를 조절할지도 모르겠다. 각 나라별로 올해의 인공출생 목표량을 정해 국민을 생산하고 공공으로 양육해내어 필요한 인구를 충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인구감소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존엄사의 허용이 있다면 인구과잉으로 인한 피크오일/피크밀에 대한 우려마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관심가는 내용이었던만큼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심도있는 문제제기와 다양한 현실접근에 비해 미래 전망에 대한 예측 비중은 적은듯해 아쉬웠다. 인구 감소가 불러일으킬 변화를 좀 더 깊이있고 세세하게 다뤘다면 인류에겐 디스토피아, 환경에겐 유토피아적 미래소설이 되었겠지만 읽기에는 좀 더 재밌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예측은 언제나 확언할 수 없고, 미래에 대비하며 살기에 현생이 너무나 현망진창인 시대에 서있으니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오늘의 나처럼 - 미래의 일은 미래의 우리에게 맡기고 현실을 살 수 밖에 없다. 인구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트렌디한 사회문제를 아우르고 있기도 해서 비혼 비출산, 다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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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있다 -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김응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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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의 맛이란 이런 것인가. 윤동주의 산문을 읽으며 의외의 세련됨에 몇번 놀라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고루한 부분이 있을것이란 예상을 깨고 한자표현이 어렵다는 점만 빼면 오히려 잘 읽히는 편이었다. 거기에 이어지는 김응교의 해설은 자칫 여백으로 남을 수 있는 시선의 배경을 채워준다. 생활과 시대가 녹아든 사진과 설명을 읽다보면 잘 만들어진 문학관의 시청각해설 코너에 들어가있는 느낌을 준다. 원문보다 몇배는 많은 해설이라니,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읽다보면 확실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지나치고 넘어갈 문제를 확장시켜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로 시각을 바꿔주기도 한다.

 

 왜 이제와서 윤동주인가. 거기에 잘 알려진 그의 시가 아니라 산문인 것일까? 사실 '나무가 있다'의 출간 소식을 듣고 떠올린 것은 언젠가 티비에서 본 적 있던 윤동주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꽤 오래 전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 못지 않게 일본에서도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내용이 인상깊게 남았었다. 그의 생애에 대해 떠올린다면 일본인들이 그의 시비를 세우고 교과서에 시를 싣는 일을 어쩐지 건조하게 바라보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름다운 문인에게 그만큼의 열정도 갖지 못한 자신이 작아보였다. 시를 몇 편 안다고는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했던 산문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반드시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 이것은 과단성 있는 동무의 주장이지만 전차에서 만난 사람은 원수요,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지기라는 것이다.(p.18 종시) " 는 부분에서는 한참을 웃었다. 과단성 있는 동무라는 저분 채소 지하철 1호선 3개월 이상 출퇴근 유경험자 아니신지. 너무나 옳은 말이다. 지하철/전차가 지옥철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보다. 거기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전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옮아가는 것도 평범했다. '다만 방년 된 아가씨들'의 모습을 '판단을 기다'린다며 이리저리 평가하는 부분은 요즘의 감수성에는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미 쓰여진 글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들에 대한 언급이 여성노동자 문제를 염두에 둔 까닭이라는 해석(p.68~)이 있어 이를 감안하고 읽었다.

 

 처음의 '종시'를 통해 윤동주의 산문이 이런 것이다는 감각을 쟀다면, 뒤로 이어지는 '달을 쏘다'에서는 좀 더 깊은 심정적 공감을 이뤄낸다. 특히 늦도록 책장이나 뒤적이다 불을 끄고 간신히 자리에 눕는 일이 잦은 탓에 초반의 고요함이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거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현생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다만 이편의 고민이 좀 더 가볍고 상스럽게 표현될 뿐이지. 게다가 누가 수업 과제 글로 이런 작품을 쓰나요, 재능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가요. 지나가는 문과는 이유없이 한 대 맞고 웁니다. 그런데 이 글을 써간 학생에게 70점을 준 교수는 또 뭔지. 친일을 해서 그런가, 점수가 짜다. 

 

 이어지는 '별똥 떨어진 데'를 읽으면 드디어 제목인 "나무가 있다"는 구절과 만나게 된다. 만나서 반갑기는 한데 생각보다 어렵다. 그냥 글도 쉽지 않을텐데 정지용의 동시 "별똥"에 대한 오마주가 담긴 내용이라 배경 설명이 없었다면 한동안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윤동주에 정지용이라니 너무나 그들만의 리그인 것. 그런데 나열된 두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은 흐뭇하다. 마지막으로 '화원에 꽃이 핀다'까지 만나면 비로소 이 "산문의 숲"의 한 가운데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 둘은 특히나 해설의 도움이 반가웠다. 곳곳에서 만나는 아들러, 니체, 맹자 등은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저자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흐름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윤동주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에 비해 즐겁게 읽었다. 그를 마주한 것이 온통 '공부해야 할' 책의 한 모퉁이였기 때문인가, 학업의 속박에서 벗어나 만난 윤동주는 재밌고, 세련되고, 매력적이었다. 무게니 속박이니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못했으면서 부담만 느꼈다고 생색이었던 듯하다. 거기에 시가 아닌 산문과의 만남이 새로운만큼 윤동주에 대해 가진 인상도 좀 새롭게 바뀔 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전한 가이드와 함께하니 믿고 읽어본다면 좋겠다. 기대 이상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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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 구글, 아마존, 애플, 테슬라가 그리는 10년 후 미래
W. 데이비드 스티븐슨 지음, 김정아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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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이 책을 지금 보다니 당신은 이미 늦었다, 지금이라도 봤으니 다행이다, 빨리 대비해라, 남들 다 하고? 난 뒤에는 늦는다'는 말들이 가득해서 나도 모르게 조급해졌다. 하도 몰아치는 바람에 내 생에 큰 변수가 없다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헤아려봤다. 의학기술이 발전하면서 IoT 덕분에 기대수명이 더 늘어난다면 50년은 족히 더 살리라. 남은 날이 이리 많은데 IoT 모르면 자연인이 돼야 하는가요, 두려웠다. 세상에 공인인증서 건너뛰는 삼성페이 쓰는 것도 신세계라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 IoT가 뭔가요 진짜. 중년을 바라보는 청년의 삶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위기감이 느껴졌다. 닥치고 공부!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처음 책 표지를 마주하고는 IoT가 무엇이었더라, 하고 생각했다.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말인데 확 떠오르질 않아서 불확실하게 사물인터넷?하고 짐작했다. 맞았다는 기쁨도 잠시 구체적인 설명이 되질 않는다. 확실히 나도 들어본 적 있는 말이라면 이쯤해서는 시대의 상식일텐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설명하긴 어려워도 우리는 사물인터넷이 반영된 세계를 오래 전부터 상상해왔다. 팀 버튼의 '가위손(1990)'에 나온 장면이다. 에드워드가 만들어진 성에 발명가가 설치해놓은 쿠키기계가 있다. 이 기계의 모습은 마크 와이저가 91년에 쓴 논문에서 "컴퓨터가 우리 일상에 완벽히 스며들어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될 어느 하루(p.70)" 를 그린 것과 같다. 좀 더 쉽게 다가가려나. 

 

 읽다보니 문득 걱정했던 것 과는 다르게, '그다음에 올 혁명(p.49)'을 일반 소비자/시민의 위치에 선 내가 선점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이 선점은 주로 자신들의 사업 체계에 IoT 기술을 도입하여 발전해나가야 할 기업들의 과제인 것이다. 소시민 입장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안다면 더 좋겠지만, 어찌보면 이 서비스를 이용해나갈 정도의 변화에 적응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고 좀 안일해졌다. 책 안에서도 각 장의 중간에 있는 자가 진단 코너를 보면 '당신의 기업'으로 시작되는 질문들이 주를 이룬다. 당신의 기업이라니, 위기감은 줄어들고 대신 거리감이 느껴진다.

 

 대신 일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기계와 사물인터넷의 조합이 얼마만큼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만 하면 된다. 이 기술의 발전이 직접적으로 노동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 보여주는 예는 -팀 버튼이 여러번 나오는데- 영화 '배트맨'과 '아이언맨'이다. 배트맨과 아이언맨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들의 가장 직접적인 조력자가 알프레드와 자비스로 대비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계, 사물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알프레드는 일자리를 잃게 되고 그 빈 공간을 자비스가 채운다. 업계 최상의 능력치를 지닌 알프레드도 이러할진데 각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인력이 떨어져나가게 될까. 사람들이 괜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말고는 개인정보에 관한 우려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개인정보는 이미 다 털릴만큼 털려 공공정보나 다름없으니 외려 덤덤하다. 처음에 발전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년을 맞이할까봐 걱정했던 일도 '스마트에이징(p.219)'같은 기술이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하니 잦아들었다. 이게 뭔지 모르겠어서 큰일이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치고는 재밌고 가벼운 마음으로 끝맺었다. 무엇보다 좀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좋았다. 보기와 달리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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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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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 우리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주면 오히려 그 거울을 깨버리는 사회, 그것이 바로 모로코 사회다. (p.87)"

 

 '섹스와 거짓말' 은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책의 주제도 그렇고 각 장에 담긴 내용들도 하나같이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닌데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모로코만큼은 아니겠지만, 페미니즘이란 말만 입에 올려도 공격과 비난의 시선이 날아드는 사회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경쓰인다. 심정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표현하기는 꺼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먼 곳에서도 발끝에 물이 닿을까 주저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호수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파문을 일으키려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에는 불쑥 솟아오르는 모로코와 이슬람 사회에 대한 비난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한명 한명의 증언이 더해질 때마다 더욱 스트레스가 올라가다 " 저 외국 딴따라들이 뭔데 내 나라까지 와서 우릴 가르치려 드는 거야? (p.96) " 하는 내용이 눈에 밟혀 무작정 화내지도 못했다. 우리 내부의 문화이자 문제로 고착된 것들도 외부의 지적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의 존중은 일의 옳고 그름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인지, 그 옳고 그름의 잣대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했다. 여성의 문제이니까 함께 연대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 괜찮은걸까.  

 

 책에서 모로코 여성은 9시 이후에 길에 나서면 안되고, 치마를 입거나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만으로도 창녀 취급을 받는다. 아버지 뻘의 남자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을 한다. 심지어 강간범은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다 문득 이 비슷한 일들이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것을 떠올린다. 미니스커트는 경범죄처벌을 받았고, 70년대 대구 고등법원에서 법정약혼, 90년대 서울 고등법원에서 양쪽부모 합의로 성폭행범과 피해자를 결혼시키려는 판결이 있었다. 담배 사례는 담배 피는 여자만 검색해도 아 싫어요 내가 싫어요 사회시선이 그래요 어쩌고 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저 시점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생각해본다. 충분히 멀어졌을까 아니면 멀어지려 애쓰고 있을까. '섹스와 거짓말'을 읽으며 이슬람 사회에 대한 비난을 하고 싶다가도 그 자체를 비난할 수 없는 비슷한 흔적을 우리 사회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내 옆의 빈자리를 남에게 내주는 일이 공연히 탐탁지 않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것임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정도는 다르더라도 모든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으로써 존재하기 위해, 원하는대로 행동하기 위해. 발끝이 적셔지는 일이 두렵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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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인원
나이절 섀드볼트.로저 햄프슨 지음, 김명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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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유인원' 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4차산업혁명을 떠올렸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이 차세대 산업혁명은 지금도 그렇지만 재빠르지 못한 나도 한동안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책들을 몇권 읽어보게 될 만큼 주목받는 주제였다. 4차산업혁명은 예정된 미래이자 현실이기 때문에 기술과 이론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는 소수에 비해 중간의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쥐어진 현대 기술 발전의 산물을 이용만 하는 다수에게 미래는 존재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뉘앙스를 보여준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봤을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좀 더 이해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책은 호미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존재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외부의 물건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지구 전체를 변모시키"고, "우리 자신이 살아가는 생활 환경 전체를 변화시켰(19)"음을 시작으로 왜 우리가 '디지털 유인원'으로 이름 붙여졌는지 설명한다.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나머지 네 손가락들과 마주보도록 진화한 인간의 엄지손가락을 통해 수만년전부터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음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다.(23) 인간이 사용해온 그 '도구'는 주변에서 얻어진 주먹도끼(117)에서 시작하여 엄지손가락 기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핸드폰까지 연결된다. 이를 통해 손안에 놓여진 도구의 종류만 다를 뿐 그 근본은 여전히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도시 혹은 시골의 환경, 그녀가 하는 일의 사회적 목적, 하루중의 이런저런 사건에서 그녀가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은 옛날과 매우 비슷하다. 디지털 기술은 새롭지만, 유인원은 옛날 그대로다(319)"

 

 초반의 몇장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사회의 시대적 흐름에서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서술하는 한편,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기술이 다시 어떤 식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주어 변화시켰는지를 말한다. 털이 적은 몸이 불을 사용하는데 어떤 이점을 주었는지, 추위를 막기 위해 어떤 식으로 군집했는지, 외부에서 소화 단계를 거치고 들어온 음식물이 위를 작게 만들고 에너지를 어디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었는지, 뇌의 크기가 어떤식으로 변화하였는지를 동원하여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동물들을 제치고 어떻게 가장 큰 발전을 할 수 있었는지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부분들이 어렵지만 꼭 필요한 통과 지점이었는데, 책을 찍어낸 종이에 수면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인쇄소에 확인을 해봐야되나 싶을만큼 읽기 더뎠던 부분이기도 했다.

 

 5장의 내용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에 관련된 주제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때문에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벌써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무인상점들을 비롯하여 노동의 상당부분을 인간 대신 로봇이 대체하게 될 근미래에 이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으로 언급된 '로봇세'와 이 노동경쟁에서 진 인간에게 어떻게 소득을 보장해 줄 것인지에 관해 어떤 의견을 보여줄까 궁금했었다. 이미 로봇에 인격을 부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유럽의 실제적 사례가 있기 때문에 탈노동 생존보장의 한 방안으로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로봇세는 비유적 표현(328)일뿐 제안이 될 수 없음을 짚어낸 부분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또 재미있었던 부분은 8장, 데이터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는데 "서양 세계 전역에서 범죄율이 떨어지고 있는 한 가지 이유(319)"가 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현 상황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부터 중국의 텐왕(AI를 이용한 폐쇄회로 감시시스템) 프로젝트에 대한 자료를 볼 때마다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우리의 생활도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시스템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더불어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 데이터들이 어떤식으로 관리되어야 할지 '거대한 짐승'들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는 개인들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 규제하고, 데이터로 인해 발생하는 이윤을 어떻게 분배하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 미래사회를 떠올릴 때 그 명암을 상상할 뿐이었다면 지금은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존재가 되었다. 로봇의 노동에 세금을 부과함과 동시에 인간다움의 규정을 넘어 인간 자체에 대한 규정을 내려야하고, 기차역의 전등을 켜고 끄는 일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새로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주어질까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새로운 디지털 통화로 언급된 비트코인(360)이나 무선 샤워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와이파이(454) 부분 같이, 지금 우리가 접하고 고민해왔던 익숙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룬 내용들이 많아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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