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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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되는 책이었다. 평소에 주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짧게나마 글을 써서 정리해놓는다. 생각해보면 책을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집이라는 내밀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두고 왜 굳이 카페를 찾아 책을 읽고 이런저런 볼일을 보는지 때로 마음이 찜찜했다. 무엇에 끌려 카페를 찾게 되는가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던 중 요즘 독서실이 좁고 칸이 막힌 개별적이고 고립된 과거의 공간에서 개방된 테이블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바뀌어가는 흐름에 대한 분석을 보고 나름의 답을 찾았다.*(SBS스페셜 내 아이 어디서 키울까 2부 공간의 힘)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의 답이 공간의 구성에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이 퍽 궁금했는데, 읽어보니 꽤 재밌고 괜찮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자를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었는데, 아주 인상적으로 접했던 것이 한국에 커피숍이 많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국에 커피숍이 많은 이유는 그곳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구실을 하기 때문(*유현준의 도시이야기 공원과 스타벅스의 차이)이란 내용이다. 그때 문득 과거에 비해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부족해졌다는 생각이 환기되었다.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도 카페의 테라스를 툇마루에 비유(220)해 놓았는데, 그 둘이 내외부 구분이 없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는 공통점을 통해 우리가 왜 커피를 많이 마시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가끔 인터넷에 올라온 고민글 중에 귀농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이사를 갔다가 인간관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곤란함을 겪은 사람들의 실패담을 본 적 있다. 공통된 어려움이 이웃들이 아무때고 집에 찾아와 가족들끼리의 시간을 방해받고 당연스레 소소한 간식거리 등을 요구하거나 문을 닫아놓은 방 등 사적인 공간을 함부로 들어와서 괴로웠다는 것이다. 한쪽의 입장으로 쓰여진 내용이기는 하지만 읽으면서 불편한 점이 있었겠구나 싶었는데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이 특별히 무례하고 텃세를 부리려는 악의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전반부에 걸쳐 설명된 벼농사 식의 인간관계를 맺기 때문이구나 하고 이해되었다. 다르다는 점은 분명 스트레스 요인이 되겠지만, 도시형 생활방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관계맺는 방식의 차이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되돌려 생각해보니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집 문이 잠겨있고 집 열쇠가 없으면 옆집을 찾아갔다. 자연스럽게 옆집에 가서 인사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간식도 먹고 끼니때가 되면 밥도 함께 먹으며 열쇠를 들고 외출한 가족을 기다렸다. 이때 주를 이뤘던 복도식 아파트들 마저 아파트가 이웃과의 교류 단절을 대표하는 주거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며 '복도를 골목처럼' 이웃끼리 교류하는 문화가 남아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성장한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의 도시는 좀 더 확고히 나의 공간과 외부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지금 익명이 된 이웃에게 그때처럼 나어린 자녀를 잠시간 위탁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면 불가능에 가깝다. 서로 그만큼의 신뢰도 없을 뿐더러 요즘은 그런 행동이 민폐로 생각될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최근들어 집에 게스트룸을 마련해두는 인테리어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툇마루와 사랑방 등이 없어지고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여 교류하는 일이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손님을 초대해 숙박까지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독특하다. 더불어 화장실도 집주인이 내밀하게 쓰는 개별 화장실과 좀 더 개방적인 용도로 쓸 수 있는 화장실을 집 안에서도 분리해놓는 점도 그렇다. 이럴때는 두 화장실의 인테리어와 소품 등에도 차이를 두어 확연한 용도 구분을 해두기도 한다. 책에서도 이점에 대해 얘기가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또 언젠가 이런 변화에 대해서도 쓴 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읽으면서 재밌었던 몇몇 부분을 꼽아보면 '드래곤 볼'이 갖는 의미도 인상깊었고, 돛(169)의 등장과 함께 동서양의 교류가 가능케 되는 부분에서 돛과 비행기 구조의 공통점에 대해 읽어도 바로 이해되지 않고 아리송하길래 순간 문과적 한계를 체감한 것이 스스로 어이가 없어 좀 웃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법칙인지 설명해줄 이과를 구합니다.. 건축과 철학의 융합에 대한 부분에서 해체주의가 극단적으로 반영된 부부침실(340)의 디자인도 재미있었다. " 부부는 항상 떨어져서 잠을 자야 한다 " 는 문구와 나뉘어진 두 침대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는데, 저 문구가 마치 논증을 거친 명제처럼, 또 약간은 산악회 유머처럼 보인다.

 

 '폼지'(342)에 대한 부분에서 거의 즉각적으로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가 떠올랐는데, 이런저런 논란이 있어도 심지어 흉물이라는 지적이 있어도, DDP가 상징적인 건물임에는 분명하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DDP를 디자인한 자하 하디드는 폼지가 아닌 '라이노'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351)했다고 한다. 아마 그 뒤를 잇는 논란의 건물이 롯데월드타워가 아닐까 싶은데, 무리한 건축허가나 지반의 불안정성, 주변과의 부조화 등의 문제가 따라붙어 있지만 어느새 서울시민들의 생활속 미세먼지 측정도구처럼 쓰이거나 불꽃놀이를 하면 각종 포털에 그 사진이 올라오는 명소가 되었다. '에펠탑 효과'같은 심리가 적용된 것일까?

 

 책을 읽기에 앞서 또 하나 기대했던 내용이 인터넷 공간에 대해서였다. 책에서도 이 '인류역사에 없던 공간'(368)의 등장을 다룬다. 물리적인 공간을 뛰어넘은,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이 공간-인터넷 플랫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궁금했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현실과 연결된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자아를 이용하는 뒤틀어짐 문제가 많았지만, 앞으로 가상현실이 더 발달하게 되어 실재적인 공간이 가상의 공간과 더 긴밀하게 연결/대체되는 변화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까 궁금해진다. 인터넷 플랫폼과 초연결 사회에 대한 내용이 다른 부분에 비해 덜 집중적인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분석보다 앞으로의 흐름이 더 기대될 내용이라 생각한다.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그만큼의 즐거움을 충족하는 책이었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내용이라 궁금한 점도 많았고 전문적인 내용이 어려우면 어떡하나 염려도 되었는데, 낯설지 않고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 막히는 부분이 없이 잘 읽힌다는게 정말 큰 장점이었다. 설계도나 건축물의 사진 자료도 직관적으로 내용이 이해될 수 있도록 첨부되어 있어서 책의 구성도 잘 설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반복적인 내용을 길게 끌고 가는가 싶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고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을만한 흐름을 유지하는 호흡이 좋았다. 벌써 여러권의 책을 낸 만큼 글도 참 잘쓰시는 듯. 어떤 사람에게 추천해줘도 큰 호불호 없이 읽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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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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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는 삶'이라는 말을 보고 떠올린 것은 오래된 기억이었다. 청소년기 정도였을까, 어떤 책에서 항상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체로 그런다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그렇구나 넘기는 편이어서 딱히 이건 왜 이런거냐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던터라 그 책을 읽고는 또, '아, 그럼 나는 성공하기는 어렵겠구나'하고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상처도 좀 받고,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앙심도 좀 품었다. 도무지 하늘이 왜 파란지 궁금하지도 않고,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늘은 예쁘고 닭도 계란도 맛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성공하지는 못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니 지금와서는 조금 분하기는 해도 저자 나름의 어떤 통찰이 있었나보구나 짐작해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세월의 때를 타고 보니 예전에는 없던 의문이 조금씩 생겼다. 일을 하면서는 저 사람은 왜 일을 저렇게 하는가 싶기도 하고, 회사의 업무 체계는 누가 뭐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서 일개미를 고문하는가 분노에 가까운 의문도 품었다. 뉴스로 인면수심의 범죄 소식을 들을 때면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귀신은 뭘하길래 바빠서 저런 사람은 안 잡아가나 궁금했다. 그러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나니 지금껏 그저 남들 하는만큼은 한다고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도 궁금해졌다. 이런 질문들은 사실 딱히 답은 없고 생각할수록 마음만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 생산적이지 않아 생각하다가도 금방 털어내고 만다. 좋은 질문은 뭘까. 나는 정말 질문을 못하는, 그래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럼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천년의 수업'을 통해 어떤 질문이 성공하는 좋은 질문일까 접해보고 싶었다.

 

 책의 초반에 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꿈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꿈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고, 또 나이들고서는 꿈이야 어릴 적 이야기지 싶은 마음에 나이듦을 이유로 꿈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고 여겼다. 사실 지금도 꿈이 뭐냐고 물어오면 변변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꿈을 직업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날 작문 주제로도, 중고등학교 진로조사용지의 빈칸을 채우면서도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 직업이 주는 이미지만 가져다가 심지어 제대로 된 방향성도 잡지 않고 그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꿈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책에 나오는 대기업에 취업한 여자분(50)의 이야기가 영 남일 같지 않은건 그 때문이다. 직업이 꿈이 되면, 여러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꿈도 같이 잃게 되는걸까? 그게 꿈이 맞을까?

 

 이때 나온 이야기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나 결핍과 욕망까지도 연결되는데 어쩐지 생각해보니 씁쓸했다. 꿈꾸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이고, 욕망은 결핍을 느낄 때 생기는 것(250)이라 하니, '(꿈은) 결핍에서 온다(47)'는 양면성이 보였다. 저자는 이런 결핍, 고통, 열악함 같은 것들이 인생을 더 흥미진진하고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 줄 것이라 위로한다. 완벽한 주인공이 역경 하나 없이 성공하는 이야기를 보면 '하나도 재미가 없(146)'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먼치킨 주인공이 나와서 다 쎄고 다 이겨버리는 고구마없는 내용의 판타지물도 굉장히 좋아한다. 이게 대리만족이라는 걸까. (...) 나는 내 인생의 주연(142)이고 획일화 된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자존감을 깎아가며 이번 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조연에 지나지 않음을 몇번이고 깨달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재밌기도 하지만 복잡했던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와 서양 철학이 접목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만화로 보는 고전' 시리즈 세대지 그리스로마 신화 세대가 아니라 아무래도 신화 흐름에 빠삭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서 이해하는데 더 오래걸렸구나 싶었던게 '인간다움(93)'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졌던 질문들이 '서양에서 말하는 '인간다움'과는 조금 다른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에 가까웠고 그 차이가 와닿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몇몇 실험을 통해 본 적 있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도 '남들하는만큼 하며 살아왔다'는 표현처럼 관계망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94)'로 여겨왔다는 점이 재밌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양 철학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복잡할 수 밖에 없었고.  

 

 솔직히 어떻게하면 만족스럽게 살까,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질문들 안에서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인지 공감을 많이 하지 못했다. 작은 목표와 희망에 기대를 걸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길어져서 그런지 책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이 터무니없이 크게 느껴졌다. 도리어 꼭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명성이나 후대의 평가(119)'를 실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을 살아내기도 벅찬 시대에 그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의 예시들은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 저는 후대에 뭘 남기지 않아도 그냥 소소하게 맛있는 것이나 먹고 좋은 경치나 좀 보고 그렇게 살면 족합니다,하고 움츠러든다. 순응하는 삶, 버티는 삶에 익숙해지다 못해 길들여진 것일까. 값싼 위로나 건네는 흔한 책들이 질린다고 해놓고 그 이상을 보라하면 자꾸만 '안될거야'하고 외면하게 된다.

 

 '천년의 수업'을 읽기 전까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글을 몇 개 읽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어(210) 경제나 기술 전문가가 아닌 인문학자의 눈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짧지만 관심있게 읽었다. '인문학은 들어설 틈이 없어 보(210)'인다는 표현에 조금 웃었다. 바로 그 전까지 나도 앞으로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의 직업들은 제일 먼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벌어졌던 저자와의 거리가 다들 이런 생각을 하긴 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좀 줄어들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말을 하건, 앞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떤 교육을 통해 인간을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지에 대해서는 기술을 손에 쥔 쪽의 일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가장 기대하면 읽은 부분은 여덟번째 주제였다. 제목도 무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243)'라니,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내가 맞고 네가 틀린 세상에, 가끔은 나 자신도 이해가 안가는데 말이다. 혐오가 넘쳐 극혐이니 00충이니 하는 표현이 예사로 쓰이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스스로도 이건 과잉된 부정이 아닌가 싶어졌다. 쉽게 쓰이는 만큼 혐오에 길들여지는 느낌이라 의식적으로 덜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집단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혐오가 더 쉽고 빨리 그 자리를 차지한다. 크게는 사이비 종교, 범죄자 인권, 일부 정치인들에서 작게는 층간소음, 길거리 흡연 같은 것들 마저도.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때가 있겠지만 배려, 양보, 이해같은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정말 모르겠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 차례를 훑어봤을때 조금 고루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질문들의 목록을 만들어놓은 것 같아서 기대됐었다. 처음 지리하게 써놨던 나의 질문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같은 것도 결국은 '천년의 수업'의 9가지 질문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나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할까' 등의 주제 안에 녹아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받침이 되었다. 어떤 것들은 부드러운 어조 아래에서 다 채워지지 않는 의문을 남기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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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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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처럼 벽과 밀접한 나라가 또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때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그 유명한 분단선을 꼽는다. 원래는 하나였던 나라를 반으로 갈라놓은 38선. 국경을 나눠놓은 선이 어디에는 없겠냐 하겠지만 한 나라 안에서 갈라진 이념에 따라 이만큼 서로간의 왕래를 막아놓은 선은 없다. 미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쌓아놓은 국경조차도 이보다 철저하지 못할 것이다. 이 가로막힌 선은 곧 장벽이다. 땅의 가운데에 벽이 세워진 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절과 상실이 사회의 분열과 사람들의 냉담의 기저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립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라, 어느 순간 피로해졌다. 대립이 있기에 도리어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이웃국가에서 몸소 보여준 탓에, 대립이 사라진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립은 종종 혐오의 형태로 나타나 마음을 괴롭혔다.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성별의 갈등이 치열했다. 이는 범죄와 사회구조, 복지, 소비, 문화 등 범위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여혐, 남혐이라는 말이 생겼다. 맘충과 노키즈존, 틀딱, 김여사, 개저씨같은 혐오 표현이 세대를 갈랐다. 나와 생각이, 지위가, 성별이, 연령이, 심지어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지 찍어먹는지에 따라서도 편을 가른다. 나는 찍먹.

 

 그래서 '벽이 만든 세계사'를 봤을 때 이런 대립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만연한 것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느끼게 만드는 혐오의 심화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고대 기록물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은~' 하는 말이 써있는 것처럼 세상의 분열이 심각한 문제인 것만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변화해왔던 과정으로 봐도 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럼 대립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하여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대한 염증과 불안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서문에서 저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이유로 들어 책을 소개했기에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책내용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책을 펼치기 위해 책배를 보면 언뜻 사진을 여럿 실은 에세이가 아닐까 싶게 첨부된 이미지가 많이 보인다. 실제로 세계의 벽에 대한 내용이라 여행 관련 책이라 생각될만큼 각지의 벽에 관련된 사진 자료들이 많다. 세계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좀 어렵거나 역사적 내용이 많이 들어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염려됐었는데, 무거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저자의 역량이 튼튼해 읽기 좋았다. 만리장성은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라,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는 잘 몰랐던 이야기라, 토끼장벽은 인터넷에서 본 적 있어서 초반부터 쉼없이 읽혔다.

 

 '코뮌 장벽'에 대해서부터는 관심있던 주제들과 가까워져서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프랑스의 '코뮌 장벽' 부분을 읽으면서 농학농민혁명과 광주를 떠올렸다. '게토'는 일제강점기를, '베를린 장벽'은 38선을. 세계사는 우리의 역사와도 닮아있고, 우리의 역사도 세계사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벽이 가져다 준 장점 중 하나로 비무장지대가 훼손되지 않은 천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특이점까지. 책은 요즘 국제사회가 '세계를 하나로'라는 표어를 허울삼아 다국적 기업이 배불릴 시절을 지나 글로벌같은 것은 벗어던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요즘까지 큰 흐름을 다루고 있어 읽다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지금도 대립중인 지역과 난민 문제들 외에 대부분의 벽들이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결말을 보며 복잡한 마음은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대립을 통해 생겨난 벽들이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를 잃거나 교훈으로 남았듯이, 지금의 대립과 벽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는. 다만 그 과정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피로해지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인도주의적 태도를 잃지 않고 해결해야할 복잡한 문제일테니.

 

 책을 읽는 도중에도 갑자기 발생한 코로나 전염병 문제로 한중일, 거기에 베트남까지 서로를 향한 비난과 혐오의 수위가 불안만큼 치솟고 있었다. 서양권에서는 동양에 대한 인종차별적 테러도 심심치않게 보였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조용히 심화되던 사이비 종교에 대한 문제가 터져나왔다. 이런 때에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타 가짜 뉴스를 내보내고 분열을 조장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전 정권의 마지막을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듯이 몇번이나 탄핵을 화두로 올리는 보수진영을 보며, 청원에 서명한 50만의 일부를 보며, 자유 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에 서명한 180만 일부를 떠올린다. 5천 1백만의 인구 중 2.8%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조ㄱㅌ 전 자한당 최고위원의 발언을 떠올린다.

 

 "쌓아 올릴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를 생각할만큼 이 첨예한 대립은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벽을 만드는 것은 저편과 이편으로 나누어 같음을 강조하고 다름을 배척하는 일이다. 요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들의 공통점도 그러하다. 나와 추구하는 것, 생각이 같은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등을 돌리다 못해 혐오하게 되는 현상을 과거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움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다른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조금은 깊이있게 생각하고 변화시켜 보고 싶다면, 최근 대두된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보고 싶다면 '벽이 만든 세계사'를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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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
요하네스 부체 지음, 이기흥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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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사리 '나무에서 갑자기 나무토막'으로 넘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쓰면 읽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책의 내용을 온전히 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읽었기 때문에 생각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도 적었다. 오히려 가끔 생각하길 멈추고 눈으로만 책을 읽어나가다 정신을 차리는 일이 있었다. 내 '영혼의 부동하는 핵심'을 찾아 '영혼의 평화'를 좀 향해가려는 마음이 오히려 '닦달당하는 영혼'을 채찍질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닦달당하고 있는가? "이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내가 좀더 강해져야 하는가? 나를 좀더 '분발시켜야' 하는가?" 세레누스의 질문(54)은 현대사회의 우리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시대의 젊은층을 소진시킨 자기계발과 노오력이다. 과도한 경쟁으로 스펙 쌓기에 매몰된 젊은층에게는 여가와 취미까지도 실용성과 의미가 있어야 가치가 인정된다. 실제로는 게임과 핸드폰, 인터넷 같은 것이 전부라도 스펙용 취미를 만들어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집중한다.

 

 우리는 이런 노력들이 자신을 뒤쳐지지 않는 제대로 된 길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쌓인 피로의 도피처로 '미니멀, 슬로우 라이프, 워라밸'같은 삶의 방식이 등장하지만 이것이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 피로, '닦달 문화'의 근본적인 해결 방인 되어줄 수 없음을 책은 꼬집는다. 그렇다면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 무려 '먹고사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생각 좀 해보'자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정신의학 명제를 꼽는다. 신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삶의 난관은 원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들이 네 가지 명제이다. 언뜻 쉽게 이해가지 않는 내용이지만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의미가 파악된다. 초반부터 2장의 내용까지 들어가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이어지는 3장 우정에 대한 내용과 4장의 완벽하지 않은, 그러려니 하는 삶에 대한 내용은 2장에 비하면 좀더 수월하게 읽힌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3장의 우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때로 상대가 나를 무척 실망시키는데도 왜 한 인간에게 쉼 없이 마음을 줘야 하는걸까? (160)" 하는 질문은 친구관계를 넘어 전반적인 사람사이의 관계,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는데, 왜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일까. 혹은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희망을 품고 사회를 구성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가 약간의 전환점 같은 내용이 인상적으로 들어왔다.

 

 책에서 '굉장한 절친'이라는 영화(220)에 대해 나오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설경구 조진웅의 '퍼펙트맨'이란 영화랑 비슷한 내용이라 눈길이 갔다. 검색해보니 '언터쳐블 1%의 우정'이란 영화를 '퍼펙트맨'이 리메이크 했다고 나오는데 책에서는 제목이 다르게 나와 있었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우연히 엮이며 뜻밖의 케미를 이루는데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인데, 양극단의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이 얽히는 '교차점'과 '순간'을 통해 인생이 주는 묘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퍼펙트맨 말고 언터처블이. 

 

 마음을 지키고 영혼의 평화를 얻으려고 책을 읽어봤는데, 읽다가 어려워서 정신을 잃었다. 철학은 아직까지도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이고, 두번째 읽고 있는 중이지만 한번 읽은 것으로는 전체적인 내용을 훑었을 뿐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크리스마스를 캐빈 대신 철학 학교와 함께하니 아주 기쁘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평소대로 먹고 마시고 캐빈과 보냈어야 하는가 싶지만,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를 읽으며 몸대신 마음이 살찌워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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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이야기 -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딘 버넷 지음, 임수미 옮김, 허규형 감수 / 미래의창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유행했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는 저 유행어는 멍 때리고 있는 순간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내장기관들의 노동마저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도 내 뇌는 뭔가를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아까 먹어치운 음식들을 소화시키고, 그리고 내가 채 눈치채지 못하는 일들까지도 번잡하게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이끌려 활동하고 있는 심장과 폐의 모습을 본 적 있는데, 그렇게 바쁘고 열심일수가 없었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상태이긴 한데, 사실 나는 그마저도 살아있기 위해 치열한 상태다. 때문에 한껏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외치는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으름과 부지런에는 뇌가 있다. 아주 대단한 성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는 내 뇌를 떠올려본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 최근에는 어떤 생각을 자주 했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던 일이 뭐였지, 아 기억이 안나 요즘 자꾸 잘 까먹네, 넷플릭스랑 왓챠보느라 요즘은 머리를 쓸 일이 없어, 저번에 천정 턱에 머리 부딪힌거는 괜찮나, 요새 왜 밤잠을 설치지, 가족력 중에 치매가 있었나, 호두를 먹으면 뇌에 좋은가 같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생각들에 대한 대부분의 답이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안에 들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에 내가 겪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줄줄이 나와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다 흥미롭게 읽었다.

 

 가장 먼저 나온 주제인 멀미부터 시작이었다. 그래, 내가 대체 왜, 장거리 버스를 타면 아무것도 못하고 나무토막처럼 늘어져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멀미를 하지 않기만을 기도해야 하는지 우리 백만 멀미인들은 너무나 궁금할 것이다. 책에서는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 이론으로 고유수용감각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가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할때 고유수용감각은 신체의 직접적인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이동에 대한 신호를 보내지 않지만, 전정계의 귓속 액체는 가속도로 인해 우리가 실제로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보낸단다. 두 기관의 이 상반된 신호가 멀미를 일으킨다고 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걸어다니는 것은 옳지 않으니 직접 해볼수는 없겠지만, 그럼 실제로 그 안에서 진행방향쪽으로 계속해서 걸으면 두 기관이 같은 신호를 보내게 될테니 멀미를 덜하게 될까? 책에서도 멀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교통수단을 타지 않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으니 아마 아닐 것 같다.

 

 2019년 목표로 다이어트를 세웠는데 실패하고 2020년 목표로 다이어트를 다시 잡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을만한 주제도 있었다. 다이어트를 실패하게 되는 이유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때문도, 먹을 것만 보면 입에 침이 고이기 때문도 아니라 뇌 때문이라고 한다. 내 몸을 이렇게 만든 것이 뇌라니, 뇌 이놈! ... 뇌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똑똑하여 다이어트를 하려고 내가 먹은 다이어트 식품들에 속지 않는다고 한다. 포만감을 주지만 칼로리는 낮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도 금방 배고픈 이유가 뇌에 있었다. 우리의 좋은 친구 위는 고칼로리 메뉴를 거절하고 싶어하더라도 말이다. 기나긴 역사의 다이어트 실패 이유를 뇌에게 따지고 싶은데 뇌마저 내것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다이어트 실패의 또다른 원인은 내 뇌에서 이상적 자기를 이루기 위한 의무적 자기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고 있어서 였다. 마침 책에서 "예를 들어, 저녁에 피자를 먹고 싶다면 어떻게 될까?(307)"란 문장이 나왔는데, 방금 저녁으로 피자를 먹은 사람이 읽기에 편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어서 "피자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피하는'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샐러드를 찾게 된다(307)"는 문장을 읽으며 내 성격이, 통제권이, 동기부여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뇌가 그랬다니까 내 탓인데 내 탓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내 뇌 안에서 동기부여는 " '저것 봐, 케이크야! 먹자!'와 같은 기본적인 반응과 관련된 시스템(308)"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노력, 고통에 대한 보상을 맛있는 음식으로 하고 있는 점도 체중조절에 방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팩트로 얻어맞으니 또 아프다. 2020년에는 꼭!

 

 

 이 밖에도 나이가 나이다보니 요즘은 짧게 뭔가를 기억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가끔 가는 인터넷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항상 잊어버리는 건 문제 삼지도 않는데, 비밀번호 재설정을 하려고 인증번호 6자리를 받아서 입력하려고 하면 문자 확인하고 다시 입력창을 켜는 동안 까먹고 만다. 1학년때 몇반이었는지 같은 과거의 일이 선명하게 기억났었는데 요새는 가물가물 해졌다. 얼마 전에는 외출해서 먹을 죽을 아침 내 만들어서 보온병에 담아 나갔는데 옆에 뒀던 숟가락을 빠트려, 맨손으로 죽을 앞에두고 잠시간 멀거니 바라본 적도 있었다. 숟가락이야 어디서든 구하면 되지만 고생해서 싸놓고 숟가락을 잊어버린 일이 어이가 없어 두뇌조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깜빡함이 전에는 아, 깜빡했네. 하고 넘어갈 일인데 요즘은 건망증인가 뭔가 스스로 의심해보게 되는 때가 된 것이다.

 

 네번째장의 제목은 참 재밌고 민망하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너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가 그 제목인데, 처음에 썼듯이 내 뇌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는 표현에 저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민망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자, 물론 내가 맞고 니가 틀리지만' 이란 말의 유행이 여기서 비롯된 것 같아 재밌었다. 다만 키 큰 사람이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는 내용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키 큰 기린과 키 작은 기린 종들 중 먹이를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키 큰 기린만이 살아남았다는 다윈식 진화론이 인간의 두뇌에도 적용되었다는 것인가. 진화론도 키와 아이큐의 상관관계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저자의 키가 클 것이 틀림없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키가 큰 사람들은 키가 크다는 것으로도 장점을 뽐내는데, 덕분에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고 하면 또 얼마나 키 작은 사람들의 마음이 뒤집어지겠는가. 키 작은 것도 서러운데, 아무래도 저자는 키가 큰게 틀림없다.

 

 얼마전에 한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가 우울을 앓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그때는 당황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위로가 될만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 그저 '병원은 잘 다니는지, 요즘은 다들 힘들어서 병원도 많이들 가고 감기처럼 아픈 일이라 병원다니는 일이 이상할 것도 없다더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네고만 말았다. 마침 책에도 우울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지인이 떠올라 주의깊게 읽었다. 그날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그에게 괜찮은 것이었는지 마음에 염려가 남았던 탓이다. 헤어지면서 어쩐지 염려되는 마음에 다음에 만날 약속을 또 잡았는데 그때는 좀 더 위로가 되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우울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혹시 우울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403)"하고 생각했지만, 요즘들어 생겨난 생각의 변화나 개인적인 일들이 마음에 걸린 탓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도 분명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분량이 적지 않은데도 지루한 마음 없이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고 겪었던 일들이 책에도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고만? 싶은 자신만만함, 안도감이 든다. 이제 어두운 길을 걷는 것도,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을 때 이상하게 숱이 많게 느껴지는 것만 같은 공포감도, 속으로 내가 아는 가장 밝고 경쾌한 아이돌 노래의 싸비를 반복적으로 부르지 않아도 좀 더 객관적으로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한 권으로 뇌의 세계를 전부 알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재밌는 부분은 충분히 얻어낸 것 같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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