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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한국 엄마에게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4월
평점 :
"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너는 내 사랑하는 소중한 아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한국의 여성들을 외면했을까? 346"
정확한 기억이 있다. 스무살 때 홍대에 갔다가 한국홀트아동복지회 건물을 보고 뭐하는데지? 하고 가벼운 의문을 가졌다가 일행이 입양기관이라고 알려준 말에 가벼운 충격과 같은 인상이 남았었다. 그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오는 부끄러움, 입양기관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감상 같은 것들이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인식 이후에는 의식이 따라왔다. 어쩌다 기관 이름이 보이는 기사나, 입양과 관련된 사건들이 크게 불거져 나올 때면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눈길이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는 유리된 감각으로 낯설게 보았고 입양에 따르는 돌봄/양육자의 부재와 구원/시혜적 대상으로의 인식 같은 전형적인 감상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대 활발히 진행된 해외 입양이 효자 수출 품목이나 다름없는 외화 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도 고아로 둔갑시켜 졸속으로 입양시켜 버리는 등의 문제가 고발*되면서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이고 고착적인 인식이 깨지는 일이 생겼다. 가난한 나라의 어려운 사연이 있는 아기들이 부유한 나라의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원하는 가정,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생물학적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순진한 믿음은 대체 누가 만들어냈을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양을 인도주의적 선행으로 여겼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부부와 노르웨이에서 더 나은 삶을 약속받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라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을 받아들인 가정들은 대체로 충분한 지원이나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운에 달린 일이었다. 246"
게다가 입양의 과정만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입양 이후의 생활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고발이 연이어졌다.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외국의 유명 감독인 우디 앨런이 입양한 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고발과 함께 마찬가지로 딸인 한국계 입양인 순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저 부유한 서구 가정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돌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학대 등의 위험에 놓여서도 아무런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입양아동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하지만 '입양 산업'에 얽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스캔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고 적었다.
" 수십 년이 흐른 뒤, 구매력을 지닌 서구의 부부들이 원하는 아기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선호하는 조건을 가진 여성을 대리모로 선택할 수 있었다. 미리 수정한 자신의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그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163"
입양이라는 수단을 버린 서구의 '아기를 원하는 개인과 가정'은 그보다 더 비인도적인 여성 착취를 거래로 삼기 시작했다. 이 징그러운 아기 쇼핑을 적당한 댓가를 주고 받은 거래 명목으로 전시하는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SNS***로 지켜보게 된 사람들은 '차라리 입양을 하라'며 비난한다. 책을 읽기 전 그 비난이 언뜻 대리출산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대안은 입양에 대한 맹목적이고 느슨한 믿음,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진보 성향의 잡지 <더 프로그레시브>든 1월호 표지에 '한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산다'라는 충격적인 문구를 실었다. 이 잡지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입양 사업을 통해 매년 1500만에서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비평가들은 입양 사업을 두고 민간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 외교'라고 불렀다. 100"
이 돈벌이 산업을 위해 여성들은 입양 기관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했고, 기관은 생물학적 부모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때로는 동의조차 없이 입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내질 곳과 예비 보호자에 대한 검증과 준비 교육은 물론, 입양 후의 관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가 한국의 입양 사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2011년 한국은 경제규모 17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외 입양 1위 자리에 올랐고, 2020년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순위에 꼽혔다. 2025년 여전히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체계적 관리****를 주장하는 등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과 한국 사회 안의 문제적 인식 개선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는 적었다.
물론 모두가 마치 쇼핑을 하듯 혹은 시혜적인 마음으로 과시하듯 해외의 아이를 구매한 것은 아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의 저자처럼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안내를 신뢰하고 입양을 결정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입양 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에 알게모르게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 입양 산업의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고도 망설였으며(237), k98-135 현이 겪을 인종 차별과 미시적 공격, 그리고 배제와 소외의 경험(188)에 무지했다. 그가 의지할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K-1112-유경/셀마를 입양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위화감이 드는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중학생 때 한국행을 권유하자 한국에 관심이 없다며 뉴욕에 가고 싶다고 했던(166) 현은 대학 진학 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석증을 앓고 난 뒤 자신의 유전적 질환을 찾아보다 마주한 기록없음 앞에서 "꼭 알아내고 싶어요."(220)라고 다짐한다. 그 후 연락이 닿은 생물학적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어느 4월 1일 토요일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광객 일행의 모습이었을 그들의 방문(331)을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사과 바구니 안의 바나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존재라 생각하던 사람이(209) 자연스럽게 바나나 상자 속에 있다는, 길을 묻고 자연스럽게 사과가 아닌 바나나를 향해 '우리'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감각이 어떠했을까.
책을 읽을수록 처음 느꼈던 건조한 문장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입양인들의 서사를 대리하거나 빼앗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음이 느껴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파고든 입양 산업과 생물학적 모친, 입양인, 입양 가정과 사회 문제를 내밀한 고백과 더불어 아울러 낸 책의 모든 이유가 그의 아이 현을 위해서였다는 것에 마음이 울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외면하지 않는 것, 볼 수 있으나 보지 않았던 세상을 보려하는 것, 본 것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로 인해 나의 세계를 넓히는 것을 경험토록 해주는 시간이었다.
" "제 서류에 동의서가 있나요?"
네가 물었다.
"아니, 없단다." 387"
* "전두환 정권, '아동 수출'로 한해 200억 벌었다"
[심층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2.입양의 정치경제학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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