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뇌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힌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사는 방법
데일 브레드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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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의 책을 읽고 시작하는 말로는 민망하지만, 귓불에 주름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치매 발병 확률이 다르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부모님의 귀 모양을 때때로 훔쳐보곤 했다.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보니 주름이 있었다. 핸드폰에 새로운 어플을 깔거나, 안내 문자가 오면 '잘 모르겠다'며 핸드폰을 건네주시는 일이 점차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지면서, 같이 외출했을때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는 가게에서 슬쩍 뒤로 물러서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변화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 나는 "나이가 들면 원래 기억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불평을 정말 자주 듣는데, 이는 시대에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진단과 치료의 적기를 놓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생각이다. 25" 

그렇다면 뇌의 문제에 대해 장년층의 문제라며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있을까. '늙지 않는 뇌'를 읽는 것이 반드시 나중을 대비하기 위해서일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떠올리면 조기발병치매라는 병명이 나온다. 전에는 멀거니 주연 배우들의 외모를 바라보다가 스크린에서나 접할 낯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에서 조기발명치매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39)를 보게되니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뚱책인지 읽으려면 뇌가 늙을래야 늙을 새가 없을 것 같은 책 안에는 " 뇌가 평생 젊고, 건강하고,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7"에 대한 조언이 가득하다. 정말 진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수만 있다면 옥상에서 소리라도 지를 수 있다는 말처럼 저자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나누기 위해 열정적이다. 때로는 그건이 몇 쪽이나 계속되는 복잡하고 지루한 처방전(456~476)의 형태를 띄더라도.  

음식점 마다 재료의 효능, 효과를 붙여놓길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먹는 것에 대한 내용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강조대로 읽으면서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를 예상했던 바 작가는 식생활 개선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기 앞서 '이번 장은 부디 마음을 열고 읽기를 바란다. 203'고 강조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나태한 관용이 얼마나 크고 쉬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당에 대한 강조를 보자면 코카인, 애더럴과 나란히 설탕을 꼽기(24)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방만하게도 당을 좀 더 먹고 과학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길 바라는 건 어떨까 싶어진다. 

더불어 초가공식품이 뇌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경고(229)했는데, 과자를 끊는 것에 실패한 중년인은 더러 초조해지는 대목이었다. 당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반복적으로 주의를 주면서 채식에 대해서는 권장하지만 확언은 하지 않는 면이 있다. 어떤 식품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하지만 먹지 않는 것으로 체내 케톤을 형성하는 방법도 제시(235)한다. 아직도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이 그것인데 모든 것이 과잉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위협이 되고 있구나 싶었다. 

" 소란스러운 현대 사회는 코르티솔의 활성이 잦아진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소음이 심하다는 의미다. 인류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전부 사라지면 자연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커도 40데시벨을 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자연에서 나는 가장 큰 소리가 고작 20데시벨에 그친다. 인간 세상은 일반적인 음식점 내부의 소음도 80데시벨 정도이고, 록 콘서트장은 90~120데시벨이다. 식당에서 '딱 한 번' 식사하는 것만으로 인류의 조상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고, 따라서 대처 방안이 진화할 필요도 없었던 수준의 소음에 노출되는 셈이다. 게다가 음식점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에서 가장 시끄러운 축에 들지도 않는다. 스포츠 경기장, 공사장, 공항, 콘서트홀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노출되면 코르티솔 농도는 인류의 진화 역사를 통틀어 거의 전례가 없는 수준까지 치솟는다. 83" 

스트레스에 대한 내용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인데 갑자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생활 소음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생기는 것도 코르티솔 농도와 연관이 있을 것일까, 만약 과거의 인물이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로 오게 된다면 새로운 감염병 같은 것들보다 가장 먼저 청각으로 인해 고통받게 될까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스포츠 경기장, 콘서트홀같은 곳에서 큰 소리로 나오는 함성과 응원, 음악을 듣고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분이 드는 게 우리의 착각이었고 사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에 놓여진 것이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운동을 할 것, 유산소와 근력을 모두 할 수 있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7시간 이상 9시간 미만의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명상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할 것, 곰팡이, 중금속, 미세플라스틱 같은 독소에 주의할 것 등 뇌의 노화를 늦추고 위험 요인을 직접적으로 없애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뇌의 인지 기능이 저하되었더라도 노력을 통해 충분히 회복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몸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으니 좌절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도 우리를 더 오래도록 건강한 정신과 신체로 인도할 것이라 예고하는데, 한국인임을 예상할 수 있는 양재현이라는 이름을 소개하면서 몸 전체의 생물학적 노화 증상을 되돌릴 수 있(445)는 미래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책을 읽다 그 이름에 한번, 논문의 내용에 또 한번 반가웠다. 

책의 두께에 다소 놀랄 수 있겠지만 유행하는 음식이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 같은 것에서 자주 접했던 내용-저당식, 케톤식, 간헐적 단식, 인터벌 운동 등-과 만날 수 있어서 그리 생소하지 않고 생각보다 익숙한 내용을 뇌 건강의 관점으로 알아갈 수 있어서 흥미롭다. 30대 중반부터 '몬트리올 인지 평가'같은 전문적인 인지 검사를 5년 주기로 받을 것을 권하고 있으니 더이상 젊지만은 않은 청장년층의 뇌 건강도 건강검진처럼 함께 챙기게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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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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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들 속사정이야 어떻든 친구와 나는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을 둘러싼 전광판을 보며 '감다뒤'라고 수근거리며 혀를 차기 바쁘다. 특히 시즌을 맞은 이런 추운 계절이 오면 더욱 그렇다. 한때는 전광판이 설치되면 그 앞을 인산인해로 모여든 사람들 속에 끼어 반복되는 화려한 영상을 굳이 감상하러 찾아가곤 했는데 그 뒤로 가려진 본점의 고풍스런 외관을 다시 드러내지 않고 계속 광고판을 올려둔다는 결정을 접한 이후로는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가을의 돌담길을 보란듯이 한번 더 걸으며 낭만이 뭔지 모른다며 실망했다. 어떤 풍경은 그 자체의 의미로 존재하곤 한다. 서울의 낮과 밤을 이야기하며 시작한 도시 이야기는 독자를 그림과 풍경 사이로 인도한다. 마치 과거와 현재의 파리를 오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처럼 자연스러우면서 낯선 감각이다.  
 예술과 관련된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면 내가 소화해 낼 바탕이 있는지 없는지 셈하기도 전에 일단 들이받듯 읽어보고 싶어진다. 쩔쩔매며 읽다가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것들을 끌어왔다가 애를 먹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져도 자꾸만 손에 들고만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두 작가가 이어지는 지점을 이해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많았다. 어떤 부분들은 분절된 채로, 어떤 부분들은 내 방식대로 이어가며 읽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독특한 관람 경험이 된 듯 해 큰 숨이 들어찼다 빠져나가는 뻐근함이 남았다.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가장 먼저 나혜석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림 속 모던걸의 어두움이 저자의 편견을 뒤집었다(106)는 말에, 다시 바라본 그림 속 여성의 얼굴에서 웃지 않아도 괜찮은 여성을 발견했다. 여성의 웃지 않음, 돌려말하지 않음, 친절하지 않음이 그 안에 있었다. 여성이며 사람인 존재의 초상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강렬한 인상이 만족스러운 한편, 대부분 근대의 작품들에 더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이 작품과 함께 묶인 작가와의 연결점은 특히 더 그 고리가 약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아이돌>연작에 대한 이재헌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아도 어딘지 모호했다. 아이돌이 되고자하는 연습생들의 열망과 절제된 생활과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홈마의 존재 같은 것에 대한 이해가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자화상>이 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만큼 아쉬운 지점이었다. 
 반대로 현대의 미술에 더 시선을 빼앗긴 것은 이어진 서민정 작가의 <너와 나 01>의 소개(126)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함께 소개하며 오래도록 들여다 본 뒷모습은 과연, 땀에 절은 채 사막에 남겨진 야스민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기 자신의 성질을 감당해내야 하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작가 내면을 짐작해보게 만든다. 견뎌내야 하는 사막이 그 안에 있는 듯도 하고, 그 기질적인 예민과 불안을 눌러담은 뒷모습이 익숙한 듯 초연해보이기도 하다.  
 폭설주의보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 탓일까, 가장 오래도록 바라본 그림은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202)였다.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2024년 11월의 눈 내린 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2025년의 12월 눈 내린 날에 잘 어울렸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하얀 풍경은 그전까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프랑스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의 풍경과 점점 더 비슷해졌다. 눈이 온다는 설렘이 점차 쓸쓸히 덧대여지는 흰 풍경과 함께 흐려지던 긴 저녁이었다. 올해의 겨울을 떠올린다면 이 그림이 함께 생각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시간을 보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의 특별함은 작가와의 인터뷰에 있다. 보통은 작가보다 작품에 더 오래 시선을 두고, 또 자주 창작물에는 창작자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인터뷰 내용을 훑어보다 보면 때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작가의 인터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신껏 '핑계 대지 말자.(289)'는 답변을 내놓는 강단이나 규칙적인 일과(59)를 강조하는 답변처럼 그 자신이 드러나는 순간이 인상적이라 잠시나마 시선을 돌려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인터뷰의 존재가 매력적이다.
 결국 예술도 사람의 일이라 한동안 병증으로 어깨를 쓰기 어려웠다는 한 작가의 이야기(183)에 투병을 거듭하느라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된 좋아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병마와 공존하는 삶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환기 시켜주곤 하는 그믐의 대표분이 떠올랐다. 덩달아 모든 이들의 무사안녕을 조용히 바라게 되는 연말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독특한 이인삼각에 함께 발 맞춰 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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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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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2024년 3월부터 기고한 칼럼을 엮은 책이다. 온나라가 통째로 진통을 버텨낸 역사적 시간동안 칼럼을 게재하면서 저자는 고단했겠지만, 그 시간들을 엮어낸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다시 접해보니 사람은 너무나 쉽게 잊는구나 속이 켕기는 듯하고 내려앉는 듯도 했다.  

우리가 또 뽑았다. 솔직히 우리라고 하면 억울하지만, 선거는 어쩔 수 없이 결과로 우리를 낳는다. 한강과 종묘의 일이야 그런 면에 있어서는 서울 외의 국민들을 결백하게 만들어주지만, 어쨌든 또 뽑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함께 감내해야 했다. 우리만 이런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엔 안/못 뽑는 애들도 있고, 뽑는 척만 하는 애들도 있고, 뽑는게 뭔지 모르는 애들도 있고, 지들이 뽑아놓고 남탓하는 애들도 있다(47). 온 세계가 그렇다. 우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나라들에 특히 예민해서 더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수습을 했고, 해나가고 있다는 것과 다행 중 불행으로는 임기가 5년 뿐이라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 제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우니 아침 저녁 뉴스마다 위기가 없을리는 없었지만 일을 잘 하길래 야구도 보고, 책도 읽고, 낙엽도 거닐며 일상을 살았는데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관심이 생겨서 책을 펼쳤더니 시작부터 지난 겨울의 PTSD*가 몰려왔다. 날이 완전히 따뜻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긴 겨울이 끝났구나 싶었던 날들. 파도 파도 괴담같은 전말만 드러나는 어느 저녁의 충격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여파가 다시 생생이 떠올랐다. 게다가 반성과 청산없던 여당의 태도, 후보자 TV토론에서 생방송을 타고 여과없이 전해진 부적절한 발언을 내뱉는 후보까지. 이런 사람들이 대선 후보로 있는 것도, 지지기반이 있다는 것도 어지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 참담함을 책은 고스란히 되살려준다. 그저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궁금했을 뿐이데. 

저자는 3부에서 다루는 정치 팬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 정치 팬덤이 차이와 이견을 혐오하고 배제하면서 정당과 의회 등 정치를 짓누르는 현상, 또는 정치인이 팬덤을 만들고 이를 권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 양식이 팬덤 정치다(206)" 고 말하면서 특히 이 '팬덤'이 내 편이 아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해 혐오와 배제를 하는 증오와 미움의 배설 현상을 보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를 요즘식 표현과 적극적 참여로 관심을 표출하는 새로운 정치 지지층의 등장으로 '팬덤'이라 이름붙일 뿐 기존의 고관여 지지자들과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데 반해, 2030 남성의 극우화(74)에 대해서는 다소 나이브한 해석을 한 점은 아쉬웠다. 10대까지 범위를 넓혀도 무방할 것 같은 심각한 현상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하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미국 정부의 압박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나 최근 중일 관계의 악화 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다음을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위기에서 가까스로 수습하며 버텨내는 민족성을 실감한 탓인지 전보다 뉴스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이런 정치 교양 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난 정권과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조언이 균형잡힌 내용이라 초보의 어리숙한 시선으로도 즐겁게 읽을 수 있어 괜찮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충격적인 경험/외상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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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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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나라 안팍의 관심을 집중해서 받은 APEC의 뉴스를 보면서 결국 머리속에 남은 것은 '깐부치킨 그렇게 맛있나'하는 단순한 생각뿐인 것이 스스로도 안타까웠다. 세상에. 읽어볼까 말까 고민했던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읽다가 덮어둔 것도 한심스러운데 이정도면 정신차리고 다시 제대로 읽어야 되는게 맞지 싶어 책을 잡았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까,를 깐부치킨 맛있나 대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겨레출판의 신간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찾아보자. 

 트럼프의 재당선 이후 세상은 미국의 행보에 매번 놀라움을 경신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우경화되고 있는 정세도 불안과 긴장을 유도하고 있지만, 급작스럽게 때려지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국제 기구 협약 탈퇴 움직임은 당장 발등앞에 놓인 불길이 되었다. 와중에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기술, 경제 격차를 좁혀나가며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홍콩에 가해진 무력 진압의 충격이 생생한데 여전히 주변국(161)과 내부에 대한 압박마저 거세다. 그냥 상대하기도 난감한 '양 국가가 '상대편에 배팅하지 말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160)'는 와중에, 우리나라 내부마저 미국이 우리나라를 구해주리라 기도하며 중국이 우리나라를 망치고있다는 음모론에 휩싸여 시위를 하는 사람들로 어지럽다. 

 이 두 나라의 패권 경쟁 속에 끼여있는 한국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현상 진단과 생존 처방을 정치 외교 경제 기술 분야 전문가 4인의 대담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주제에 비해 읽기 편하다. 대담집을 접할 일이 많지 않은데 처음 읽고 결국 다 읽지 못한 '평행과 역설*'에 비하면 친절하기가 선녀와 다름없다. 그러니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포기하지 않고 흐름을 파악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독자라면 부담을 내려놓고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선택해도 좋겠다.    

 " 예전에는 그래도 선택의 여지를 줬다면, 이제는 '모 아니면 도'입니다. 우리가 구축한 생태계에 들어오든지 아니면 우리의 적이 되든지. 현재 미국의 동맹국인지 우방국인지, 지금까지 미국과 얼마나 친한 나라였는지는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4차 산업 혁명으로의 이행 단계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판단에 기초하느냐가 앞으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135" 

 이번 APEC 이후로 조금 변화를 보이는 양국과의 관계를 보면서 민감한 시기에 최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결과를 만들어낸 회담이 오간듯해 APEC 개최를 두고 AI 기본원칙, 데이터 접근성, 기후위기, 국가안보 등(202)의 주제로 기대하는 바를 제시했던 대담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해졌다. 번쩍이는 금관을 선물로 준 일을 두고 미국 내에서 꽤 큰 조롱과 비난의 소리가 있었다. 그 힐난이 지금 미국의 행보를 결정짓는 사람에게 또다시 권력을 손에 쥐어준 표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행보 앞에서 적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했는지 판별하는 자성의 소리보다 적다는 점이 씁쓸하다. 국가에 대해서는 오직 한가지 정답밖에 남지 않은 듯한 중국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 결국 인간의 욕망을 다룰 수 있는 산업이 바로 미래 산업 같아요. 성적인 욕망,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오래 살고 싶은 욕망,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 ...중략... 인간의 욕망과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기반으로 미래를 발견하려는 노력, 이것이 훗날 한국의 저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56" 

 책에서는 국제 정세의 현상 분석과 문제 제기 뿐 아니라 방안도 제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미국보다 중국의 발빠른 선점을 크게 주목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어떤 산업에 투자하고 육성해야할지 깊이있는 모색과 장기적인 연계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 불안정한 정권이 끼어 낭비된 시간이 아쉽기도 했다. 입이 바짝 마른다는 표현이 종종 나올 정도로 현 상황에 대해 큰 위기감을 가지고 토로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대처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공감하며 읽었다.  

 *평행과 역설 2003.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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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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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쓰는 몸으로 살기'는 독특한 의미로 다가와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다. 글쓰기 안내서라는 핵심어를 달고 마주했을때 과연, 글쓰기만큼 그 사람이 확고히 드러나는, 바꾸기 어려운 습관같은 이 행위를 교정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궁금했다. 읽을 때는 그렇구나 싶다가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늘 하던 습관을 버려나가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안에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 구태의연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는데 읽다보니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계기는 "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가요? 95" 하는 질문에서부터 였던 것 같다. 짧게 쓰기와 길게 쓰기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126), 고쳐쓰기(158)를 종종 생략했던 요즘 나중에 오탈자를 발견하고 황급히 고쳐야했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쓰는 몸으로 살기'의 매력에 마침에 눈을 떴다. 덧붙여 책에서 소개한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235)은 정말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 함께 추천한다. 

 책을 읽다 그동안 몰랐던 것을 한가지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 '쓰기 싫다'에서 출발하는 쓰기(148)" 단락에서 시작했는데, 무심결에 '쓰기가 싫은 적도 있었나' 생각해보니 한번도 '쓰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뭔가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써야할 게 너무 많다'거나 '쓰려던 걸 까먹었다'는 상황은 있었을지 몰라도 쓰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 '쓰기'가 싫었던 유일한 상황은 빽빽이 과제를 받아서 통으로 책 내용을 손으로 전부 옮겨 적어야 했을 때 뿐이었다. 쓰는 행위 자체만을 지나치게 많이 해야했을때 였는데 요즘은 필사에도 관심이 있으니 그조차도 싫지 않아졌다.
 책까지 낸 저자가 왜 '쓰기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용을 살펴보니 자신이 쓴 글에 그만큼의 무게가 지워지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글에 가치가 매겨지는 것에 대한 책임감 등이 압박이 되었던 것 같다. 반면 먹은 것, 소소하게 경험한 사건, 갑자기 떠오른 생각 같은 것들을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동안 혹은 과제나 일을 하는 동안에도 밑준비를 하는 과정이 버거웠던 적은 있어도 쓰는 것이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에는 그런 무거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쓰기 싫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었다는 의미에서도 좋았지만, 이 점이 글쓰기를 대할 때 내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겠구나 싶어서 의미있었다.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불분명한 표현을 쓰지 않도록 하고, 가급적 외래어를 섞어쓰지 않으려 하고, 짧게 쉬운, 그게 어렵다면 정돈된 문장을 쓰려고 한다. 대단한 사람도,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지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이를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은 그저 지나치게 어지럽거나 읽기 힘든 글을 쓰지 않도록 스스로 정한 선으로 여겼는데 '쓰는 몸으로 살기'를 읽으며 왜인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저 스스로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야 할 지점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 결국은 '쓰는 몸으로 살'고 싶어서 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나와 나의 글쓰기를 빈번히 떠올리면서 부족함과 낯선면을 발견하며 읽었는데 그게 부끄럽기만한 것이 아니라 새롭고 재밌기도 했다. 책에서 알려주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들은 쓰기의 기술적인 면이나 부담을 줄여주는 데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에 더 나아가 나와 나의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내용을 파고들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몰랐던 자신을 마주치는 지점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잘 쓰고 싶어서, 어떻게 써야할지 알고 싶어서 '쓰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한 다른 독자들도 쓰기에 대한 도움을 얻는 것은 물론 자신의 글쓰기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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