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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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감정이 너무나 커져있어 '국화와 칼'을 읽기 어려웠다. 책을 읽다가도 불쑥, 잠깐 접어두었다가 표지를 보다가 불쑥, 마음속에서 북한 아나운서처럼 '간악한 쪽바리들이...'하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 격렬한 반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이성적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혹은 정치적 선동에 휘둘려서? 백번 양보해 아, 이것이 내 내면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인가 싶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에 대해 일어나는 혐오는 외부에서부터 비롯된다. 대문 옆 명패에 일본 이름을 붙여놓은 한국 정치인을 볼 때 느끼는 불쾌감과 비슷하다.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면 내 그카나?

 

 바로 이런 때야말로 일본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 '국화와 칼'이 도움이 될 거라는 시선도 있겠지만 국화와 칼이 가리키는 이 이중성이라는 것이 정말 그들에게 혼재해있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이면이라 생각하는 어떤 모습들은 본성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p.25 "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문장이 그들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거짓말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그들 속담처럼 사실이 아닌 것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꾸며내려는 습성도 있을 것이다.

 

 영화 '반딧불이의 묘'나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찍은 '진주만에 흩어진 사람'이라는 우익 다큐 같은 것을 보면 일본인의 이해안가는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은 자신들이 일으켜놓고 오히려 본인들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것처럼 군다. 좀 감상적으로 전쟁 때문에 죽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게 마음 아플 수 있겠다. 그 정도로는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진짜 피해를 입은 다른 나라에 제대로 사과도 안하고 '전쟁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 어쩌고 하는 태도로 자기 자신의 불행이 대단한 상처인마냥 눈물 흘리는 역겨운 셀프 동정을 보면 여기서 정상인은 어리둥절해진다.

 

 특히 저 다큐에서 한 할머니가 미국인을 보면 얄밉다고 이죽거리며 퇴역군인인 미국인 할아버지에게 진주만 공습 때 무엇을 했냐며 당신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쏴서 살해했냐고 책임을 물을때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저 아득해지는 어이없음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일부' 일본인들의 저런 사고와 태도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추측하려 노력해본다.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돌려주면 안되는 기리문화에 어긋나는 반격을 했기 때문일까. 기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하는데 미국이 "피라미를 도미로 갚"아서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저 두 영상자료 모두 자신의 귀한 시간을 들여 혈압 올리는데에 낭비하지 않길 바라며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p.223 "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일본인을 제대로 이해한건가 싶어졌다. 실패는 개인적인 것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 비방과 배척으로 일본인이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 얼마나 흔한 일인지 그때는 이지메라는 말을 몰랐던건가 싶어진다. 그 바로 위에 원수에게 똥을 먹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오는데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원수에게 들키지 않도록 교묘하게 좋은 음식 속에 똥을 넣어 대접하고 상대가 알아차리는지 살폈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p223 " 는 부분에서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750만의 한국인 관광객이 먹어준다'고 발언한 일본 외무상의 발언이 떠올랐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손에 들고 지금이 읽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일까 하고도 생각했다. 때때로 반일정서가 끓어오르는 사건이 터지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불매운동이라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드물다. 나라가 망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시류가 반갑다. 이제 시작인데 불매운동은 아직 잘 진행되고 있을까, 장기적으로 참여해서 습관처럼 되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읽으면서 어떤 객관을 찾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들이 가진 음습함에 대해서는 한번 더 짚어보게 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분석이 필요치않다. 일본에 대해 몰랐던 서양인들이야 처음 일본이라는 적을 마주하고 이게 대체 뭘까 싶은 당황이 몰려왔겠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명백히 그들에 대해 경험으로 쌓아온 내력이 있으니.

 

 쓰고보니 객관적이지 못한 리뷰를 쓴 것 같아서 아쉽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애국심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진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태도가 좋지 못한 탓이 더 클수도 있지만, 나의 소견이 아니라 이순님 장군님의 피셜로도 "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 " 라고 하셨으니 대부분 팩트에 기초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더 차지게 비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객관성에 있어서는 덜 아쉬운 마음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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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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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을 들여 책을 천천히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음독도 불사하였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지만 어느 순간 '철학따윈 필요없어'하면서 도피해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뭣보다 중간중간 내 생각이 끼어드는 때마다 좁은 생각으로 말도 안되는 시비나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책은 책이지 경전이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꿋꿋하려고 애썼지만 잘 안됐다. 애초에 나는 목적을 위해 가치있는 것들을 도구화하는 셈에 익숙해있다. 책에서 말하는 10가지의 요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셈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래선 안된다고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왜 안되야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불만스러우면서도 절망스러웠다.

 

 주로 반기를 들었던 부분 위주로 생각을 쓸 것이다. 시비걸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하고 한동안 어려워서 정신을 못차리다 존엄에 대한 부분에서 불쑥 반발심이 일었다. 셰익스피어의 전집과 운동화(80)에 대한 비교였다. 나같은 사람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위대한 작가의 전집과 운동화가 같은 가치로 매겨지는 일이 비교조차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운동화는 상품이기 때문에 그보다 못하다? 하지만 운동화-신발이 가지는 의미, 맨발로 거친 땅을 밟으며 살아야하는 이에게 있어 그 삶에 얼마나 중한 필요와 기쁨을 가져다주는지는, 그것도 존엄의 하나 아닌가 생각했다. 제 손으로 신 삼는 법을 몰라 오소리 영감의 종노릇을 해야 했던 원숭이가 원통해했던 것*(정휘찬 '원숭이꽃신')처럼. 어쨌거나 신발도 책만큼 중요하다.

 

 애초에 존엄에 대해 말하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노부부(73)를 예로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젊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들이 헤라처럼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257)로 그 순간을 삶의 완성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젊었더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존엄을 잃게 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오히려 갑판에서 음악을 연주한 연주자들이 보인 태도가 더 존엄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품위만이 아니라 타인의 위안까지 도모했다. 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지는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덜 존엄한 반응을 보인 것이냐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을 삶을 구하고자 하는 절실하고 불굴한 자세도 삶과 인간이 의지에 대한 존엄을 보인다. 그 끝이 비명과 공포에 물들었다 하더라도.

 

 가치있는 10가지 주제에 대해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진짜 사랑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172)음을 이야기하며 오래된 흔들의자를 예로 들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게 현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비우는 삶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은가. 미니멀, 심플, 심지어 비움의 미학 같은 것들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오래된 물건을 끌어안고 있지마라,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아까워하지마라' 같은 말들을 신조삼아 공간, 사람, 생각마저 비운다.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는 '팔걸이가 계속 떨어지는 오래된 흔들의자'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케아로 달려가 가볍고 심플한 디자인의 철제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는다.

 

 이는 이상형의 조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났을때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름 그럴듯한 변심의 변명이 되어준다. 사랑의 문제여서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일자리에 대한 문자로 생각하면 합리적 선택에 더 가깝게 보일 것이다. 과거엔 평생직장이란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번의 이직이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좀 더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는 길이다. 이건 지켜져야할 것으로 믿는 약속같은게 아니다. 하물며 사랑, 특히나 아무리 검은 머리가 세다 못해 대머리가 된다해도 굳을거라 맹세하는 결혼이라도 함께하는 것보다 더 나은 혼자를 위한 선택도 현명하다 보는 것이 현재이다. 신경과학같은 것으로 본다면 사랑 역시 호르몬작용이고 중요한 가치이지만 영원해야 할 의무는 없어야 한다.  

 

 또한 도구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을 인적자원(87)으로 보면 안된다는 내용에서 저출생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출생이라 부르기 전 저출산이라는 명칭이 있었고, 이는 가임기여성의 출산율을 통계화하는 수치로도 계산되었다. 이는 여성과 출산을 인류의 원활한 생존 유지를 위한 도구로써 본 것 아닌가. 국가적 세계적으로 말이다. 이밖에도 개의 행동에 도덕적으로 분노할 수 없다(114)는 내용에서는 요즘 빈번히 보도되는 개물림사고를 떠올렸다.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생기면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를 하고 안락사를 시키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이와 같은 대처는 개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아닌가, 이보다는 개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면 개주인이 벌금을 내고 실형을 살아야함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개를 도구화한 생각 아래서는 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개는 그대로 두고 개 때문에 사람만 처벌받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 부분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용서할 자격을 갖습니다'(191)는 용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용서 부분을 읽으면서 줄곧 영화 '밀양'을 떠올렸다. 때로 사람들이 갖는 용서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지를. 영화에서 범죄자는 종교를 가졌고 그로인해 자신이 저지를 죄를 용서받았다고 한다. 그를 목적을 통한 용서를 하기 위해 찾아간 주인공은 범죄자의 말에 분노한다. 종교를 통해 받은 죄사함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가진 '용서할 자격'을 빼앗은 것이다. 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함으로써 용서가 가능해진다는 어려운 내용을 강조하는데 이어서 '종교적 믿음은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일'임을 말하며 종교도 비슷한 예시로 든다. 종교가 침범한 용서의 영역에 종교가 예로 들어가 있어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책은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같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양심이라고도 한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순간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다. 순박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 안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떠올리다가도 불현듯 부정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책이 어렵지만 큰 틀에서 보면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것을 심화하여 담아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단순화했을지도 모르고, 오독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다만 어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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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9-09-0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공감도 가지 않고 이해도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다른 분들은 대체 어떻게 읽으셨을까 궁금해서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너무 공감가는 리뷰라 좋아요 눌러봅니다.

점잖게 말씀하셔서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앞뒤 꽉 막힌 사람이 본인의 주장만 내내 늘어놓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테일 2019-09-07 02:34   좋아요 0 | URL
공감하셨다니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저가 너무 꼬아보기만 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현실감이 덜하달까요..
리뷰 마지막에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썼는데, 그만큼 답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네요.
 
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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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를 알게 된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다. 사실 큰 관심도 없었고 좋은 일을 하는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하는 생각뿐이었다. 큰별쌤이라는 별명도 이름에서 따왔나 의미가 무겁지않을까 싶었다. '역사의 쓸모'를 읽으려고 할 때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안했다. 역사에 대한 내용일테니 학교 다닐 적에 배워 외웠다가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린 왕조에 대해 나오겠거니 했다. 사람들이 흥미로워 할 만한 내용들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으로 몇번이고 만들어져서 다시 본다면 좀 지루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찬찬히 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설명할 때 까지만 해도 어조가 매우 친절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건가 흐름이 좀 느린가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천천히 읽다가 문득 '아, 이 책 정말 괜찮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어쩌면 뻔한 구성이다. 역사의 일화를 가져와 현재의 삶에 빗대어 도움이 될만한 조언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이 과정이 자연스럽다. 역사 지식을 심각하게 뽐내면서 머리속으로 집어넣도록 압박하지 않는다.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쇠뇌'라는 무기를 만든 신라시대의 기술자 구진천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 한 사람의 선택이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미칩니다. (65)" 는 뜻을 전달한다. 사실 이전까지 책을 읽으며 내심 역사의 인물들하고 나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치 그 사실을 눈치채기라도 하듯 눈 앞에 던져진 문장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거리감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다만 인생을 야구경기와 비유한(91-92) 부분은 생각이 좀 달랐다. 한 이닝이 끝나면 다음회가 시작할지는 몰라도 안 될 팀은 안된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배우면서 공감하면서 읽었지만 정작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있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까(134)"의 내용은 조금 아쉬웠다. 자신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서라는 등의 이유로 태극기부대가 되었다니, 사람이 판단하는 기본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고려는 어찌된 것일까. 리모컨 작동법을 어려워하시거나, 여유와 돈 쓰는 일에 인색한 습관 등 초반의 나이 든 삶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공감했던 것도 너무 감성적인 접근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와 다른 입장을 이해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 머나먼 간극에서 최근 나온 난민 관련 책을 떠올렸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라고 하지만 내가 사는 삶을 당신도 살아야 한다면 싶었다. 보는 것과 사는 것. 이해와 공감은 어느 쪽에 서 있어야 하는지, 차이에서 그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익숙하게 들어온 대동법(180) 이야기가 나왔을 무렵엔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이 많아서 외울것도 많았던가'하고 학교 다닐 적 불평했던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재밌긴한데 확실히 많은 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이 나와서 좀 피로했던 탓이다. 그런데 그가 그의 삶을 대동법 확산을 위해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고나니 그럼 대동법 조금 외우는 것쯤은 충분히 해도 될만한 일처럼 여겨졌다. 삶을 던졌다는데, 이름을 기억하고 외울만하다. 이해는 이런 부분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그리고 "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164) " 라는 부분을 읽고서 이건 외국에 나가서 일본인을 만났을 때 이용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사와 이해 그리고 공감이 필요한 것은 또 이런 순간이 아닐까.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장점도 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어우동과 나혜석을 빌어 여성에 대한 내용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솔직히 있을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었고, 조금 더 깊이 다뤄도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역사의 쓸모'를 읽기 시작하며 별 기대가 없었던 것이 민망하게도 읽으면서 왜 수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존경하고 좋게 평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연령을 아울러 읽어볼만한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인문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옮긴다. 단지 꿈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주변에 휘둘리게 돼요.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원하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좋아 보이는 것만 따라가지요. 자기 길을 모르니까요. ...중략... 꿈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꾸는 것입니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 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든요.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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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지구 - 다가오는 인구 감소의 충격
대럴 브리커.존 이빗슨 지음, 김병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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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30년 안에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대략 2750년에 한국인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p.126) "

 

 아이언맨이 3000만큼의 사랑을 남기고 간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 중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에 나온 빌런 타노스를 생각해보자. 타노스는 전 우주의 생명체를 반으로 줄이기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모은다. 일일이 행성들을 공격해 절반을 학살할 수도 있지만, 스톤을 모으면 그 힘으로 손가락을 한 번 튕기기만 하면 순식간에 랜덤으로 절반의 생명을 공정하게 없앨 수 있다. 청소와 정리를 위한 무차별 삭제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해결책이지만 그가 내세운 조절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영화처럼 우주까지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인구의 감소가 지구의 환경과 자원 확보 등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아닌 지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 원인이 인류에서 비롯되는 와중에, 인류가 겪는/겪을 인구 감소의 문제는 꼭 부정적인 것일까. 타노스의 선택이 잔혹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옳지 않았을까.

 

 '텅 빈 지구'에서 다루는 인구 감소의 문제에서 우리나라는 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도 독보적인 걸음으로 고령화시대/인구절벽에 접근하고 있다는 씁쓸함이 책에서 한국을 발견했다는 반가움과 한데 버무려진다. 우스운 일이었다. 사실 인구 감소의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2750년에 한국이 사라지는 일은 무감하게 받아들이면서 책 한 권 안에서 한국을 발견하면 비록 그것이 좋지 않은 케이스에 대한 내용일지라도 반가운 것이다. 공감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 이런 이중적인 심리도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인구 감소의 원인들과 얽혀있다. 외국인 저자가 썼지만 한국인 독자를 공감토록 만들만큼 '텅 빈 지구'는 한국의 현 상황을 매우 예리한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페미니즘과 유교문화에 관련된 내용도 나오기 때문에 ㅍ만 들어가도 거부감드는 사람은 불만스러울수도 있겠다.

 

 " 적어도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외국인 혐오증에 대해서 당혹해 한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연막이다. 한국인들은 오로지 한국 사람만이 한국인이라고 믿는다. 그게 전부다. (p.123) "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제인만큼 책에서 언급한 원인들은 우리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모두 건드린다. 한국은 지난 2018년 책에서 강조하는 인구대체율(2.1)의 반도 못 미치는 0.98의 초저출생률을 기록했다. 이 출생률 감소라는 결과값의 원인들 중 하나는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젊은세대가 건국이래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현실에 연애, 결혼, 취업, 출산, 주택마련 거기에 +a 의 포기라는 N포세대가 되면서 출생률 감소의 큰원인이 된다. 더불어 여성의 교육과 의식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이 부각되고 전통적인 여성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 여성들이 많아진 것도 한 영향을 준다. 거기에 난민/이민 등에 대한 개방적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여론 역시 좋지 않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의 소멸에 무감한 반응을 하는 이유가 위의 N포세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고, 한국에 대한 분석이 반가운 이유는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모든 원인들이 어떻든, 인구감소 전망은 확실시되어 있다. 인구 감소가 불러오는 변화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까. 문화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소비가 줄고, 고령화로 인해 젊은세대가 부담할 세금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를 빼면 자연환경이 좋아지고,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앞의 문제들은 2050년 즈음을 기점으로 예시되어 있고 뒤의 요인들은 현재 체감하고 있으니 현상황에서는 더욱 인구 감소가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미래엔 지금 인구감소를 걱정할 필요없이 영화에서 봐왔던 것처럼 인공자궁안에 인공수정된 아이들을 키워내 인구수를 조절할지도 모르겠다. 각 나라별로 올해의 인공출생 목표량을 정해 국민을 생산하고 공공으로 양육해내어 필요한 인구를 충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인구감소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존엄사의 허용이 있다면 인구과잉으로 인한 피크오일/피크밀에 대한 우려마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관심가는 내용이었던만큼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심도있는 문제제기와 다양한 현실접근에 비해 미래 전망에 대한 예측 비중은 적은듯해 아쉬웠다. 인구 감소가 불러일으킬 변화를 좀 더 깊이있고 세세하게 다뤘다면 인류에겐 디스토피아, 환경에겐 유토피아적 미래소설이 되었겠지만 읽기에는 좀 더 재밌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예측은 언제나 확언할 수 없고, 미래에 대비하며 살기에 현생이 너무나 현망진창인 시대에 서있으니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오늘의 나처럼 - 미래의 일은 미래의 우리에게 맡기고 현실을 살 수 밖에 없다. 인구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트렌디한 사회문제를 아우르고 있기도 해서 비혼 비출산, 다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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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있다 -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김응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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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의 맛이란 이런 것인가. 윤동주의 산문을 읽으며 의외의 세련됨에 몇번 놀라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고루한 부분이 있을것이란 예상을 깨고 한자표현이 어렵다는 점만 빼면 오히려 잘 읽히는 편이었다. 거기에 이어지는 김응교의 해설은 자칫 여백으로 남을 수 있는 시선의 배경을 채워준다. 생활과 시대가 녹아든 사진과 설명을 읽다보면 잘 만들어진 문학관의 시청각해설 코너에 들어가있는 느낌을 준다. 원문보다 몇배는 많은 해설이라니,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읽다보면 확실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지나치고 넘어갈 문제를 확장시켜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로 시각을 바꿔주기도 한다.

 

 왜 이제와서 윤동주인가. 거기에 잘 알려진 그의 시가 아니라 산문인 것일까? 사실 '나무가 있다'의 출간 소식을 듣고 떠올린 것은 언젠가 티비에서 본 적 있던 윤동주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꽤 오래 전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 못지 않게 일본에서도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내용이 인상깊게 남았었다. 그의 생애에 대해 떠올린다면 일본인들이 그의 시비를 세우고 교과서에 시를 싣는 일을 어쩐지 건조하게 바라보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름다운 문인에게 그만큼의 열정도 갖지 못한 자신이 작아보였다. 시를 몇 편 안다고는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했던 산문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반드시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 이것은 과단성 있는 동무의 주장이지만 전차에서 만난 사람은 원수요,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지기라는 것이다.(p.18 종시) " 는 부분에서는 한참을 웃었다. 과단성 있는 동무라는 저분 채소 지하철 1호선 3개월 이상 출퇴근 유경험자 아니신지. 너무나 옳은 말이다. 지하철/전차가 지옥철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보다. 거기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전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옮아가는 것도 평범했다. '다만 방년 된 아가씨들'의 모습을 '판단을 기다'린다며 이리저리 평가하는 부분은 요즘의 감수성에는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미 쓰여진 글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들에 대한 언급이 여성노동자 문제를 염두에 둔 까닭이라는 해석(p.68~)이 있어 이를 감안하고 읽었다.

 

 처음의 '종시'를 통해 윤동주의 산문이 이런 것이다는 감각을 쟀다면, 뒤로 이어지는 '달을 쏘다'에서는 좀 더 깊은 심정적 공감을 이뤄낸다. 특히 늦도록 책장이나 뒤적이다 불을 끄고 간신히 자리에 눕는 일이 잦은 탓에 초반의 고요함이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거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현생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다만 이편의 고민이 좀 더 가볍고 상스럽게 표현될 뿐이지. 게다가 누가 수업 과제 글로 이런 작품을 쓰나요, 재능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가요. 지나가는 문과는 이유없이 한 대 맞고 웁니다. 그런데 이 글을 써간 학생에게 70점을 준 교수는 또 뭔지. 친일을 해서 그런가, 점수가 짜다. 

 

 이어지는 '별똥 떨어진 데'를 읽으면 드디어 제목인 "나무가 있다"는 구절과 만나게 된다. 만나서 반갑기는 한데 생각보다 어렵다. 그냥 글도 쉽지 않을텐데 정지용의 동시 "별똥"에 대한 오마주가 담긴 내용이라 배경 설명이 없었다면 한동안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윤동주에 정지용이라니 너무나 그들만의 리그인 것. 그런데 나열된 두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은 흐뭇하다. 마지막으로 '화원에 꽃이 핀다'까지 만나면 비로소 이 "산문의 숲"의 한 가운데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 둘은 특히나 해설의 도움이 반가웠다. 곳곳에서 만나는 아들러, 니체, 맹자 등은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저자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흐름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윤동주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에 비해 즐겁게 읽었다. 그를 마주한 것이 온통 '공부해야 할' 책의 한 모퉁이였기 때문인가, 학업의 속박에서 벗어나 만난 윤동주는 재밌고, 세련되고, 매력적이었다. 무게니 속박이니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못했으면서 부담만 느꼈다고 생색이었던 듯하다. 거기에 시가 아닌 산문과의 만남이 새로운만큼 윤동주에 대해 가진 인상도 좀 새롭게 바뀔 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전한 가이드와 함께하니 믿고 읽어본다면 좋겠다. 기대 이상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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