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한국 엄마에게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너는 내 사랑하는 소중한 아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한국의 여성들을 외면했을까? 346" 

정확한 기억이 있다. 스무살 때 홍대에 갔다가 한국홀트아동복지회 건물을 보고 뭐하는데지? 하고 가벼운 의문을 가졌다가 일행이 입양기관이라고 알려준 말에 가벼운 충격과 같은 인상이 남았었다. 그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오는 부끄러움, 입양기관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감상 같은 것들이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인식 이후에는 의식이 따라왔다. 어쩌다 기관 이름이 보이는 기사나, 입양과 관련된 사건들이 크게 불거져 나올 때면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눈길이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는 유리된 감각으로 낯설게 보았고 입양에 따르는 돌봄/양육자의 부재와 구원/시혜적 대상으로의 인식 같은 전형적인 감상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대 활발히 진행된 해외 입양이 효자 수출 품목이나 다름없는 외화 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도 고아로 둔갑시켜 졸속으로 입양시켜 버리는 등의 문제가 고발*되면서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이고 고착적인 인식이 깨지는 일이 생겼다. 가난한 나라의 어려운 사연이 있는 아기들이 부유한 나라의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원하는 가정,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생물학적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순진한 믿음은 대체 누가 만들어냈을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양을 인도주의적 선행으로 여겼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부부와 노르웨이에서 더 나은 삶을 약속받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라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을 받아들인 가정들은 대체로 충분한 지원이나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운에 달린 일이었다. 246" 

게다가 입양의 과정만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입양 이후의 생활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고발이 연이어졌다.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외국의 유명 감독인 우디 앨런이 입양한 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고발과 함께 마찬가지로 딸인 한국계 입양인 순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저 부유한 서구 가정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돌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학대 등의 위험에 놓여서도 아무런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입양아동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하지만 '입양 산업'에 얽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스캔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고 적었다. 

" 수십 년이 흐른 뒤, 구매력을 지닌 서구의 부부들이 원하는 아기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선호하는 조건을 가진 여성을 대리모로 선택할 수 있었다. 미리 수정한 자신의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그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163" 

입양이라는 수단을 버린 서구의 '아기를 원하는 개인과 가정'은 그보다 더 비인도적인 여성 착취를 거래로 삼기 시작했다. 이 징그러운 아기 쇼핑을 적당한 댓가를 주고 받은 거래 명목으로 전시하는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SNS***로 지켜보게 된 사람들은 '차라리 입양을 하라'며 비난한다. 책을 읽기 전 그 비난이 언뜻 대리출산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대안은 입양에 대한 맹목적이고 느슨한 믿음,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진보 성향의 잡지 <더 프로그레시브>든 1월호 표지에 '한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산다'라는 충격적인 문구를 실었다. 이 잡지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입양 사업을 통해 매년 1500만에서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비평가들은 입양 사업을 두고 민간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 외교'라고 불렀다. 100" 

이 돈벌이 산업을 위해 여성들은 입양 기관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했고, 기관은 생물학적 부모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때로는 동의조차 없이 입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내질 곳과 예비 보호자에 대한 검증과 준비 교육은 물론, 입양 후의 관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가 한국의 입양 사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2011년 한국은 경제규모 17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외 입양 1위 자리에 올랐고, 2020년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순위에 꼽혔다. 2025년 여전히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체계적 관리****를 주장하는 등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과 한국 사회 안의 문제적 인식 개선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는 적었다.  

물론 모두가 마치 쇼핑을 하듯 혹은 시혜적인 마음으로 과시하듯 해외의 아이를 구매한 것은 아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의 저자처럼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안내를 신뢰하고 입양을 결정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입양 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에 알게모르게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 입양 산업의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고도 망설였으며(237), k98-135 현이 겪을 인종 차별과 미시적 공격, 그리고 배제와 소외의 경험(188)에 무지했다. 그가 의지할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K-1112-유경/셀마를 입양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위화감이 드는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중학생 때 한국행을 권유하자 한국에 관심이 없다며 뉴욕에 가고 싶다고 했던(166) 현은 대학 진학 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석증을 앓고 난 뒤 자신의 유전적 질환을 찾아보다 마주한 기록없음 앞에서 "꼭 알아내고 싶어요."(220)라고 다짐한다. 그 후 연락이 닿은 생물학적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어느 4월 1일 토요일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광객 일행의 모습이었을 그들의 방문(331)을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사과 바구니 안의 바나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존재라 생각하던 사람이(209) 자연스럽게 바나나 상자 속에 있다는, 길을 묻고 자연스럽게 사과가 아닌 바나나를 향해 '우리'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감각이 어떠했을까. 

책을 읽을수록 처음 느꼈던 건조한 문장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입양인들의 서사를 대리하거나 빼앗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음이 느껴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파고든 입양 산업과 생물학적 모친, 입양인, 입양 가정과 사회 문제를 내밀한 고백과 더불어 아울러 낸 책의 모든 이유가 그의 아이 현을 위해서였다는 것에 마음이 울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외면하지 않는 것, 볼 수 있으나 보지 않았던 세상을 보려하는 것, 본 것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로 인해 나의 세계를 넓히는 것을 경험토록 해주는 시간이었다. 

" "제 서류에 동의서가 있나요?"
네가 물었다.
"아니, 없단다." 387"


* "전두환 정권, '아동 수출'로 한해 200억 벌었다"
[심층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2.입양의 정치경제학 ②
20170912 프레시안 전홍기혜
** 우디앨런 근황에 순이 프레빈에 관심 UP “동거했던 배우 미아 패로우 양녀…치명적 스캔들” 20130830 아시아투데이
우디 앨런 “한국서 거리의 고아였던 순이, 나와 결혼 후 꽃 피워”
20160505 아시아투데이 
*** 대리모의 출산일에 '출산 연출'사진을 찍은 매건 트레이너
10명 동시 대리모 출산으로 논란을 일으킨 갈립 오즈터크
인도, 우크라이나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대리모 산업에 내몰려 공장과도 같이 대리 출산을 행하고 있는 현실 - KBS1 세계는 지금 20120602
“한국서 아이 입양해오던 미국, 이제는 전세계 대리모 출산 천국” 20140707 경향 
**** 美입양 한국아동 수, 17년만에 다시 부끄러운 세계 1위… 왜? 20111121 조선
세계 아동 수출국 3위 오명 벗을까…변화하는 '해외입양' 20230511 복음기도
국가·지자체가 입양 체계 관리…아동 수출국 오명 벗을까? KBS 9시뉴스 202507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일동맹이라는 거울 - 한미일 안보 체제의 한계와 가능성
지지와 야스아키 지음, 길윤형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전쟁은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180"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국제사회의 주된 흐름이었던 세계평화의 시대는 끝이났다. 약 70년간 이어진 세계평화의 시대 역시 허울뿐인 말일수도 있다. 어디선가 항상 전쟁은 벌어지고 있었다. 국제적인 분쟁이 아니더라도 내전이 일어나는 곳들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협력 기구, 조항 등을 만들어 전쟁을 피하려고 했던 최소한의 움직임도 지금 우경화 된 국제 정세 아래 끊겨버렸다. 더불어 이란 전쟁에 협력하지 않는 우방국들의 목록을 만들어 맹렬히 비난하는 미국 대통령의 SNS가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며 동맹이라는 개념조차 흔들리고 있는 때에 '미일동맹'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비전을 제시하려 하는지 궁금했다.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 상 휴전국인 한국과 근접국가인 일본에 미국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남북한의 긴장감과 중국과의 견제를 위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내 약 9만에 달하는 집중된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하지만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그동안 유지해왔던 골조에서 벗어나, 동맹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전가하고 미국의 입맛에 맞는 국제분쟁 개입을 요구하며 판을 흔들고 있다. '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은 미국의 또다른 동맹국가인 일본이 현 상황에 맞춰 어떤 식으로 시류를 읽고 미국과 협상해왔는지 파악하고 이를 통해 국내의 독자들에게 한미동맹의 흐름을 읽어나갈 수 있는 외부의 시선을 제시하고자 한다. 

" 이런 일본의 내부 사정은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 앞에선 완전히 무력할 뿐 이었다. 그 앞에 어떤 파멸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이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국제정치의 현실과 '일본의 시점' 사이의 괴리를 파악하고, 이것이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 수업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18" 

역사 수업을 통해 배워야 하는 건 전범국가라는 것이고 반성과 사죄다. 순진하게도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과오로인해 파멸적인 결말을 얻은 비극적 과거가 아니라.  '일본이 엄청난 희생을 지불하며 얻은 교훈(18)'같은 문장이 나올 때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더이상 책을 읽기 어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을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말꼬리를 하나씩 잡고 싶지는 않지만 피해자성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가 불쾌하고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장에서는 미일동맹의 시작점과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극동 105년 체제'가 반복해서 언급되는데 들어간 적도 없는 체제 아래에 남의 나라를 갖다붙여놓는 것은 뭔가 싶었다. 일본은 관계 없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극동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긴밀한 협력을 요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시종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런 일본을 향해 적대적인 신호(85)를 보내고 대만 유사사태 등의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며 거시적인 관점이 부족하다는 관점(89)을 흘린다. 이 또한 불편한 지점이다. 2장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의 지휘권에 대한 변화와 분석이 주를 이루는데 장황한 설명을 표로 정리해놓은 부분들이 이해를 도와 1장보다 더 읽기 편하고 이해가 쉽게 되었다. 

3장에서는 분쟁 상황이 발생했을때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상정하고 있는데 "일국평화주의는 일본이 일본 이외의 외국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에 말려드는 것을 싫어한다. ...중략... 즉, '일본적 시점'에 서서 우리 나라는 "말려들지 않는다"는 논리를 아무리 예리하게 만든다고 해도, '제3자적 시점'에 서서 보면 애초에 상대가 이를 받아들여야 항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160" 그토록 강조하는 일국평화주의는 사실 타국의 이해관계에 얽혀 괜한 압박이나 피해를 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뜻과 같다. 하지만 그 앞에 평화를 붙여 원치 않는 분쟁에 말려들어가는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고 타국은 이런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약점으로 보고 이를 이용할 것이라는 논조로 일본의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웃긴다. 일본은 과오에 비추어보아 자위권을 두고 "행사해선 안 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행사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166" 는 사실을 일본적 시점이든 제3자적 시점이든 명확히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4장에서는 유사시 유리한 방향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야 할 것인가를 분석하고 하고 있는데, 시작부터 태평양전쟁 당시 실패했던 출구전략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간에 전쟁이 발생했을때의 상황이나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를 두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짜, 장래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과 현재의 희생을 회피하는 것에 대한 비교분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5장에서는 핵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직접 핵무장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의외였다. 다만 비핵 3원칙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핵으로 유린됐다는(273) 사실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음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가 결여된 피해자성 강조가 다시금 드러나고 있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잘 아는 분야가 아닌만큼 책을 읽는 동안 오랜 시간이 들었다. 하지만 점차 국제 정세와 한미일 더 나아가 중국과 대만 러시아 등의 극동 관계에 대해 점점 더 생각이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동맹 관계에 대한 맹렬한 비난과 의구심을 표현하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적인 행보와 불안정한 기운이 더해가는 초불확실성 시대에 끈은 더욱 약해지는 위기의 시점에 지난 관계에 대한 분석이 큰 영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이 극동 관계를 두고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조절해왔는지 그 흐름을 통해 속내를 파악하고 우리의 입장도 정리할 수 있는 도움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보기에 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생각에 자극을 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133쪽 마지막 줄 한미연군합사령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이라는 사치 - 가족을 이루는 삶이 특별해진 시대의 가족
진미정 지음 / 김영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결혼한 삶도, 결혼하지 않은 삶도 눈총받는 사회. 그게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8" 

티비 프로그램 시청 목록이 겹치는 바람에 가끔씩 재밌고 민망했다. 아이돌 서바이벌을 봤던 중년인이라 저자의 고백과도 같은 책의 시작을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게다가 아이돌 서바이벌을 보면서 떠올리는 것이 군부대 예능이라니 대체 얼마나 옛날 사람이고, 뜬금없지만 또 납득이 되는 연계인지. 생각해보니 한국사람에게 이 가족관계, 관계성은 꽤 큰 매력 요인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한 아이돌 서바이벌에서 가족과 전화통화를 할 때 오가는 대화가 얼마나 친근하고 재미있는지*에 따라 보는 이들의 호감도가 놀랍도록 달라진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시청률과 투표에 양심과 영혼을 팔아버린 제작진이 '가족서사' 요소를 넣은 이유가 있겠구나 의심하던 차에 책에서도 통계와 함께 합리적 근거를 내놓았다. 무서운 방송국놈들. 

거기다 '나는 솔로(103)'라는 프로그램이 언급되니 비슷한 세대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연애 프로그램들은 모르겠지만 '나솔'은 연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실험이나 다름 없어서 인기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연애를 관찰함으로써 설렘, 썸, 낭만, 오글거림을 대리 체험(108)"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 저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아니 저런 사람이 또 있다고? 저런 상황에? 저런 언행을 한다고? 를 대리 체험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연프를 보고 대리만족을 한다는 추측으로 "결혼, 출산을 물론 연애와 섹스까지도 거부하거나 피한다는 청년세대 담론은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115)"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했다. 오히려 내가 벗어난 리그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간군상을 관조하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희망을 찾는다는 것보다는. 

  "흔히 가족은 정서적 단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생산과 재생산의 단위다.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니 가족 전반의 기반이 흔들리고, 공고하다고 생각했던 핵가족 모델도 흔들리게 되었다. 60" 

흥미로웠던 사실 중 하나는 IMF 이후 늘어난 가족해체이다. 지금 유례없는 비혼과 저출생의 시대에 단군 이래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등장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이 영 우연만은 아닌가보다. 흔히 결혼을 하려는 이유 중 하나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를 꼽는데 요즘은 그 심리적 안정보다 개인의 생존이 더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니,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부터 챙기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소박하게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소망(87)"이라고 하면 전에는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요즘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평범함과 남들처럼 산다는 것의 기준이 보통 이상으로 조정된 듯 하다. 

통계의 허점을 들어 이혼율과 한부모가정, 1인 가구의 어마어마한 증가 지표로 사용되는 통계의 오류와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꽤나 이건 아니다 싶어 담아두고 있었던 주제였는지 어조가 강했다. 조목조목 예를 들어 잘못된 점을 짚어주는데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정말 이혼 많이들 하던데,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그동안 접했던 잘못된 통계의 해석이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81)"는 만큼 스스로의 사고도 굳어 있구나 깨달았다. 명확한 근거를 들어 설명해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할만 하다. 그동안 왜 이렇게 착각하기 쉬운 통계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를 논해도 방치되었던 것일까, 이를 본 사람들의 인식에 무의식적으로 동조 의식이나 부정적인 견해가 생기기 쉬운데 적극적으로 정확한 연령, 시기별 통계를 반영하지 않았나 궁금해졌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저자와 비슷한 세대라 생각도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닐까 예상했었는데 각자의 경험과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 크게 느껴진 것이 "'3대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유행이라는데, '드림 렌즈, 치아 교정, 성장 주사'(157)"라며 언급한 내용이었다. 듣고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기는한데 처음 듣는 유행어였다. 저자는 결혼하지 않은 삶은 결혼한 삶보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의구심이 들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비혼의 길로 접어든 사람은 남은 생애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결혼과 출산이 안정된 삶으로 등치되는 것은 생애과정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95)" 니, 오히려 결혼과 출산이야말로 '등골 브레이커'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칙적 요인들로 점철된 길이 아닌가. 혼자의 삶은 오직 자신의 문제만으로 삶을 끌어가면 되지만 타인과 함께하는 삶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가 내 삶에 함께 끼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기존의 생애과정 모델일 뿐 새로운 생애과정의 모델과 비교했을때 안정된 삶으로 등치되는 것이라 확언할 수 없다.  

또 하나 "패드립이 반칙34"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대 구분을 해야하는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무너지면서 혹은 조롱과 저급한 문화가 빠르게 어린 세대에 흡수되면서 패드립을 더이상 선을 넘는 행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확장해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가 생겨난 것이다.** 딸과의 일화(47)를 통해 젊은 세대의 가족 구성 형태에 대한 민감도를 새롭게 인지했던 경험을 풀어낸 바 있지만, 저자가 이 또다른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의 존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삶의 어느 순간을 지나오면서 친구라는 관계를 경시하게 되기도 하는데, 생존에 아무 필요도 없는 이 관계가 생존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C.S. 루이스(191)***의 말을 인용하면서 친구의 중요함, 필요성을 다시 보게 만들고, 가족의 형태를 더 넓게, 다르게 본다는 것이 이렇게 확장될 수 있구나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한 관계로, 관계의 의미와 지속이 자발적 의지에 달려 있는 이 관계가 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중요해진다(190,191)"고 강조한다. 많이 공감가기도 하고 깨닫는 바도 있는 내용이었다. 

"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굳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깎아내릴 필요 없다. 11" 

어떤 내용엔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어떤 내용은 모로 기울인 채 이런저런 생각을 늘여보기도 하며 읽었다. 모두 다 같은 마음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재밌게 읽고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처음 마주하고 끝까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맨 앞에 적어두었던 문장인데,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굳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깎아내릴 필요 없다'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딪힘들을 완화시킬 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기준으로만 생각해서,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다름을 틀림으로 두려고 해서 필요치 않은 다툼과 문제들이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지 않은가. 세상과 사람들의 변화를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좋은 계기를 주는 책이었다.  

*나 하루 다섯 끼 먹잖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은
** [창간 기획-혐오를 넘어](1) ‘엄마’를 욕하며 노는 아이들…교실이 ‘혐오의 배양지’가 되었다. 경향신문. 20171010
'고인 능욕' '패드립' 넘치는 교실···언제까지 "어쩔 수 없다"고만 할 건가. 한국일보. 20250909
*** 우정은 생존에는 아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정은 생존에 가치를 부여한다. C.S.루이스 <네 가지 사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월이 되자마자 짐을 챙겨 며칠간 여행을 다녀왔다. 분명 짧은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돌아와보니 그 사이 성큼 봄이 와 있었다.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 곧 떨어져내리는 일만 남은 여린 분홍빛 꽃잎이 비처럼 날리는 것을 보며 내가 없이도 기어코 꽃이 피었구나 섭섭하기까지 했다. 그보다 먼저 온 산을 뒤덮을만큼 흐드러져 절경이었다던 진달래며 밤에 볼 때 유독 탐스럽고 하얀 목련이 피어나던 것을 다 반기지 않았으면서 며칠 사이에 놓쳐버린 것만 같은 봄을 괜히 아쉬워할때 '숲으로 출근합니다'를 만났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이렇게 해박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래도 식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항상 동경하듯 바라보게 된다. 어릴 때는 나무며 꽃들이 그리 궁금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초록의 이름이 궁금해지곤 했다. 이름을 아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해졌는지 잘 외워지지 않는 얼굴들에 스마트렌즈를 들이밀고 모야모*를 찾아보며 다음에 만나면 또 까먹을 이름을 몇번이고 되뇐다. 지난하긴 해도 싫어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중대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자목련과 자주목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목련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하얀 꽃이고, 자주목련은 꽃잎 밖이 붉은색, 안쪽이 흰색, 자목련은 안과 밖이 모두 붉다고(16)한다. 그동안 그저 붉은빛이 있으면 모두 자목련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충격은 아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같은 얄팍한 독자이자 식물구경꾼은 교과서를 펼쳐 시험범위를 공부하듯이 책을 읽게 되는데, 어설프게 알고 있다는 점은 때로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약점이 된다. 이를테면 모감주나무와 꽈리를 구분하지 못하게 될까봐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작년 대전의 어느 골목에서 빨갛게 물든 꽈리를 보고는 꽈리랑 비슷한데 이름이 뭘까 했던 전적이 있는터라 더욱 쫄았다. 물론 큐슈곤약처럼 생전 처음 보는 식물도 만나게 된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한 식물들이 등장해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언뜻 할미꽃인가 싶은 '야고'나 나팔꽃인가 싶은 '플록스'같은 낯선 식물들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이 낯선 식물들이 느슨해진 식물구경꾼의 기강을 잡긴 했지만, 소개되는 식물 대부분이 '다 한번씩 안면은 튼 초록이들이군' 싶은 친근한 식물들이다. 세세히 톺아보거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는 편이라 적당히 반갑게 적당히 귀동냥하듯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저자인 나무의사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인간이 멸종한다면 지구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58)"임을 밝혀 굉장히 솔직하다고 웃었는데, 이어지는 후박나무 껍질 도둑 사건(59)을 접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짜 후박나무 껍질을 벗겼는지 일본목련의 껍질을 벗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이 미안할 일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후박나무는 이 사건 말고도 나를 놀라게 만들었는데 울릉도 호박엿으로 잘못 알고 있는 그 엿의 진짜 재료와 이름이 후박나무의 껍질 진액으로 만든 후박엿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오인되다 못해 진짜 호박엿으로 변형되기까지 한 울릉도 호박엿과 과거의 울릉도 후박엿 중에 뭐가 더 맛있을까, 한번도 진짜 후박엿을 먹어본 적이 없는 듯해 후박나무 껍질 도둑이 벗겨간 그 껍질을 압수해서 어떻게 했을지 뒤늦게 궁금해졌다. 

책에서 소개된 많은 나무들 중에 어린시절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 중 하나인 무궁화(89)가 있었다. 그때만해도 무궁화는 꽤 흔한 꽃이었는데 학교나 공원같은 곳 화단의 한 자리는 무궁화 밭이 꼭 차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피었다지기를 오래도록 하던 그 꽃은 질 때 말려드는 독특한 꽃봉오리 뿐 아니라, 씨앗 마저도 보들한 털을 두른 독특한 모양이라 '우리나라 꽃'이라는 특수성이 아니고서도 인상적인 식물 중 하나였다. 요즘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 나갔을 때 히비스커스 친구들을 더 많이 마주쳐서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반대로 최근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은 것은 화살나무(182)다. 서울로 7017**를 걷다보면 커다란 화분에 독특한 줄기를 가진 나무가 심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뭘까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과연 생긴대로 이름이 화살나무였다. 하도 이름값을 하는 생김이라 그 뒤로 잊혀지지 않고 보는 족족 이름이 떠올라 마찬가지로 이게 뭘까 궁금해하는 주변인들에게 잘난 척 이름도 알려준 적이 몇번인 탓에 책에서 보니 반갑고 새로웠다. 

'숲으로 출근합니다'와 같이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들의 공통점은 읽을수록 겸손해지고 어딘지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만 하는데도 마치 숲을 산책한듯한 효과를 함께 얻는 듯 하다. 아마 인자요산***이라 했으니 식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은 그와 닮아서 저절로 피톤치드가 나오는 산림욕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내 뇌가 나를 속이는 걸지도 모르고. 책을 읽는 동안 삼색참죽나무 새순의 고아함 36, 포엽을 마치 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산딸나무의 영리함 44, 노루오줌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몽글히 피어난 청순함 82, 태산목 꽃의 거대함 109, 큐슈곤약 꽃과 열매의 기이하고도 개성적인 독특함 133, 목서 특유의 향긋함 166, 팜파스그래스의 풍성함 194, 낙우송 공기뿌리의 신비함 253 같은 다양한 매력들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마침 곧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 나무에 새순이 나기 시작하는 아주 잠깐의 시기(33)'가 온다.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문가에게 수목원이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꼽혔으니 '숲으로 출근합니다'를 들고 수목원으로, 숲과 공원으로 가보자. 책에서도 소개한 가로수들이 있는 거리도 좋다. 이 책과 함께라면 어디든 초록과 함께하는 봄을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 식물이름찾기/케어/커뮤니티/쇼핑을 할 수 있는 식물 관련 어플
** 기존의 서울역 고가 도로를 공중정원으로 바꾼 것으로, 2017년 5월 20일 첫 개장했다. 일자로 뻗은 길을 따라 50과 228종, 2만 4000여 개의 꽃과 나무가 심겨져 있다.
***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공자 『논어』 옹야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갈등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요즘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102030세대의 남성들이다. 30은 제외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데 이 젊은 남성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세대, 성별을 아울러 갈등의 한편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새로운 점은 같은 성별 안에서도 세대를 나눠 또렷이 자신들과 구분짓고 있다는 것인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영포티라는 밈/혐오 역시 그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까. 이들의 등장과 시대의 흐름에 대해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어떤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었다. 

책은 어느 정도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인간사를 포함하고 있었고, 또 그를 위해 그만큼 깊이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이란 부제에서 책을 읽기 전에는 뒷부분에 시선을 두었었는데 읽고 나니 앞부분에 더욱 큰 무게가 있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신, 제우스와 우라노스 관계에 관해서는 확실히 기존 세대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담겨있다. MZ세대를 두고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이 노력과 노동의 결과로 보이지 않을때, 상승 욕구가 좌절된 벽 앞에서 이들은 이미 부의 기틀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에 공격성을 드러낸다. "신화의 친부 살해가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36)"이라는 것처럼 그들의 규칙과 문화에 반대하고 저항한다. 

이 기존세대와의 갈등은 중년의 위기를 다룬 헤르메스의 내용과 이어지는데,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중년 세대가 '익숙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려(207)'다 무기력하고 서툰 실패의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세대에게 이는 경기가 좋았던 시기에 운 좋게 부를 축적한 세대의 무능이 드러나는 순간이며, 이들이 답습하려 한 익숙한 방법은 현재엔 통하지 않는 라떼의 유산일 뿐이다. 중년 세대가 완숙의 시기로 나아가야 함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세상의 재배열을 모색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강조할수록, 혹은 이 전환기를 앞두고 정신적 성숙의 길을 모색하지 않고 아직 젊고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힘을 가지고 있음을 피력할수록, 이들의 위기 극복은 요원하고 이들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은 커진다.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이야기가 왜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구세대의 남성들을 배척하는가에 대한 틀이 되었다면 이어지는 헤파이토스와 아폴론에 대한 관점은 여성과의 관계 맺기의 원형을 보여준다. 아폴론의 구애 좌절을 통해 젊은 여성들이 왜 비연애/비혼을 택하는지 떠올린다. 내면에 '여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과 배타성(162)'을 품은 아폴론의 구애는 위협과 공포가 된다.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구애를 하는 그의 내면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부재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여신들 헤스티아, 시빌라, 카산드라, 다프네는 이에 대한 거부와 반발로 영원히 처녀로 살 것을 맹세하거나, 구애를 피해 달아나고, 저주를 받는 길을 택한다. 현실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대와의 관계맺기를 거부한다. 

또다른 남녀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삼으려 하는 생각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의 단계를 밟으며 살면 그에 따른 이상적 삶이 보상으로 주어지리라 믿었는데, 자신이 준수해온 규칙과 가치와 상관없이 여성의 선택은 다른 남성이 차지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내치고 버린 세상에 대한 저항과 위협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게 된 헤파이토스의 결혼은 이들의 젊고 아름답고 온순한 여성-성녀-에 대한 선망 그 자체이자, 그녀가 잘생기고 건강한 아레스를 애인으로 두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까지 그들이 '퐁퐁'이라 이름붙인 두려움과 닮아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결합은 결국 헤파이토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부정을 덮쳐 다른 신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부정을 함께 욕하고 조롱해주기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공론화와 비슷하고, 그 시도가 오히려 아내의 부정을 막지 못한 무능한 남편을 조롱하거나 여성의 외모에 초점을 맞춰 관심이 옮겨가는 결과를 낳으며 뜻처럼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파국을 앞둔 관계에 있어 남성이 여성에게 "그동안 내가 네게 주었던 것들을 모두 돌려 달라는 이런 '물품 반환 의식'(111)"의 원형까지 보여준다는 점이 신화와 현실 사이의 격차를 더욱 없애준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왜 다른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는데, 가장 오래된 신화 속에서 이들의 모습을 겹칠 수 있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시대와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 남성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의식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달라진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것이 아닐까. 여전히 남성은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지만, 여성이 기꺼이 그들 기준의 성녀 자리에서 내려와 창녀-이들이 혐오하는 늙고 못생기고 공격적인 여성-가 되기를 개의치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여성이 달라지자 남성을 읽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여신들을 다룬 내용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음을 기대하며 감상을 마친다. 


*[장기불황시대를 사는 2030 리포트]`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 꼬리표 붙은 2030 젊은이들의 고군분투 삶 / 매일신문 / 20190506
한국인 60% 자식이 부모보다 못 살 것…역대 최대 / 한국경제 /202108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