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서울 - 공간·사람·정치로 빚어낸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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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인 나에게도 서울은 익숙하다. 살아온 시간의 절반 정도는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길 위에서 지내왔으니 나름대로 익숙하고 애착이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서울사람으로 규정짓는 사람들의 서울 사랑 앞에서는 묘한 느낌이 들곤 한다. 어디까지나 일부겠지만 서울사람이라는 것이 마치 자신을 드러내주는 고급 상표인양 드러내보이는 이들을 경험해보았다. 서울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모임 장소는 서울인 것이 당연하고, 편도 30분 이상의 거리는 너무 멀고, 이 경험은 서울부터 먼저 제공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비서울출신은 모를것이고, 하다못해 기프티콘을 선물할 때도 매장이 없을 수 있는 지방의 사정은 남의 나라처럼 멀게 말한다. 이런 은근한 태도가 서울출신만의 것인가 하면 또 개인마다 다른 부분인데, 이 쎄한 느낌을 주는 것은 또 서울출신이 도드라진다. 대체 서울이, 그리고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이 뭐길래 싶어진다. 물론 니가 서울 사람이 아니라 괜히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있어서 그렇다는 지적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지적에도 그 묘하고 은근하고 쎄한 것이 담겨있겠지만. 어쨌든 서울을 좋아하면서도 어딘지 그 안에 온전히 속하지는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 이 서울 찬가나 다름없는 책을 집어들었다. 역시나 싶은 느낌도 있고, 이렇게나 서울을 사랑한다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누군가 내게 경기도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저 그게 뭐 어떤건데 싶어서 뭔 소린가 싶을텐데 '서울을 보니 널 알겠다(7)'는 말에 자랑스러움과 기쁨을 섞어 곱게 담아두는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약간 '너 아이폰 쓰게 생겼어' 같은 말을 들은 느낌인건가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서울 사람 이미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서울 사람이란 말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291"며 '이토록 서울'안에도 드러나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서울 그리는 법(340/356/359)'에 대한 짧은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쉽고 유용했다. 한강을 느슨하게 그리고 주요한 산을 콕 찝어 위치를 잡는다. 사대문 안을 표시하는 성곽을 두르고 오래되고 주요한 길을 찾아 표시한다. 꼭 알아둬야 할 것은 아니지만 생활 반경 안에 서울이 있다면 언젠가 어디에서든 누군가에게 한번쯤은 아는 척 잘난 척 해볼 수 있을 팁이 될 것이다. 이 내용은 책에도 담겨 있는데 글로 보는 것보다 영상을 참고하는 편이 백배 이해가 쉽고 재밌다. '이토록 서울'에 대한 관심이 그 영상을 계기로 좀 더 높아질 정도로 흥미로웠다. 이렇게 그릴 수 있고, 그리는 방법을 쉽게 알려줄 정도라는 점에서 정말 서울을 아끼는구나 싶었다. 

책에는 애정을 담아 서울 곳곳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여럿 실려 있는데, 대부분 익숙하게 느껴지는 장소들이었다. 생활권 안에 서울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한눈에 알아볼만한 곳들일텐데, 문득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녔구나 싶어진다. '이토록 서울' 안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 중 하나는 광화문광장에 대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광화문 일대가 상당할 것이다. 광화문에서 종각으로 이어지는 일대에서 느껴지는 개방감과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 산과 천을 앞뒤로 두고 어쩐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나 역시 끌려한다. 강남이나 홍대, 이태원, 상수 일대가 유행처럼 들끓어도 그 거리 안에서 어딘지 섞여들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데 반해 똑같이 정신없고 사람 많은 서울이어도 광화문 일대는 불편함이 없다.  

" 용산은 마치 알록달록 조각보 같다. 색깔 다른 동네와 길들이 마치 조각보처럼 꿰매져 있다. 별로 크지도 않은데 어쩌면 찾아볼 데가 이렇게 많은지, 어떻게 이렇게 색깔이 다른 동네와 길이 이어지는지 신기할 정도다. 132" 

서울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읽는 내내 아끼는 마음을 담은 시선이 보이는데, 의외로 강남쯤가면 들끓던 애정이 조금 식은 느낌이 든다. 요즘 서울의 중심을 꼽으라면 광화문, 종로 일대를 두고 강남을 꼽는 사람들이 많아졌을만큼 비중이 커졌는데 강남 부분은 읽으면서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 산본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진 것도 책의 큰 흐름 안에서는 좀 튀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도시에 대한 내용이었겠지만 왜 산본이 이런 비중을 차지하는가, 생각해보면 일산, 부천, 분당, 평촌 같은 다른 도시들도 함께 엮었더라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유학 시절 서울에 대한 꿈을 자주 꿨다(364)고 하는데서 저자의 근본이라고 해야하나, 정신적 고향은 서울이구나 싶었다. 꿈의 배경이 어디인가에 대해 전부터 생각했던 점인데, 거주지를 옮긴지 10년이 넘었어도 항상 집에 대한 꿈을 꾸면 전에 살던 집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내 뿌리는 아직 그곳에 있구나 싶었는데, 저자 역시 산본 출생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유년 시절 자라온 동네나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 전부 서울이다보니 꿈의 배경이나 자신의 뿌리라 여길만한 곳이 서울일 수 밖에 없겠다 이해된다. 집에 대한 꿈을 꿀때면 항상 같은 공간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더 있다면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서울 사람에 대한 불평이 조금 곁들여지긴 했지만, 서울은 매력적이고 심지어 어떤 환상적인 과거의 이미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홀로 집에>를 보며 90년대의 미국에 대한 아네모이아**를 품던 것처럼 서울에 대한 비슷한 동경과 향수를 가지고 있다. 삐딱한 태도가 있긴 했지만 분명한 애정도 가지고 있단 뜻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워낙 상징적인 도시인만큼 '이토록 서울'이 두루 매력적으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자만큼 서울을 충만히 사랑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럽겠지만, 굳이 서울러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어볼만한 서울 찬가였다.  


* 창비블로그 [3분만에 서울 제대로 파악하기]
https://blog.naver.com/changbi_book/224126586837
또는 https://www.youtube.com/watch?v=iPBwkdY7oXg 12분 20초 

** 아네모이아(anemoia)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절의 분위기와 문화요소 등에 그리움을 느끼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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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
김찬호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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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교양 서적은 항상 책을 앞에 두고 긴장하게 만든다. 책장을 펼쳐봐야 아는 일이지만 짧은 생각으로 담긴 깊이를 재는 것이 벅찰 것이라는 부담이 있다. 다행이도 각 장마다 주제어가 달라지면서 교과 과목이 달라지는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으로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읽을 수 있었다. 한 권을 통으로 이어낸다는 부담을 덜고 쉬는 시간을 가져가며 읽은 탓에 감상도 매끄럽지 못하지만 쉬운 접근이 필요하다면 이렇게 나눠 읽듯이 다가가도 좋겠다. 

극우가 파생되는 것의 밑바탕에 현대인의 외로움과 소외감이 있다(64)고 짚어냈는데 반면 광장과 집회의 경험은 타인과의 유대,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참석만으로도 서로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남기는 체험(98)으로 새겨졌다고 보고 있다. 정확히 서로 반대되는 지점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대비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런 대비는 증오와 적개심을 매개로 선동하는 태극기의 광장과 나눔과 연대로 서로를 묶어내는 응원봉의 광장(105)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2.3 이후 나타난 응원봉과 촛불의 연대가 저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음이 잘 곳곳에 드러나 있지만 한편으로는 겨울밤을 지새우던 키세스와 최애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응원봉의 주체가 지워지고 혐오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 마음에 걸린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가장 탐탁지 않은 주제 안에 있었는데, 4 정치인의 내용 중 " 다른 분야에 있다가 정계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몇 해 활동하고 나면 얼굴이 확 바뀌는 사람들 120" 특히 포악스러운 인상으로 바뀌는 경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내용이다. 일견 웃음이 나는 얘기이지만 실제로 '저 사람 인상이 왜 좀 바뀐 것 같지?' 하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 재밌기도 하고, 근거라고는 관상도 과학이다라는 말밖에는 없을 것 같은 주제가 이렇게 보니 관상도 통계라는 주장이 맞는 것 같아 웃기기도 해서 열심히 읽었다. 내면이 외양에 드러나니 좋은 마음으로 늙어가라는 듯한 내용은 '현생의 외모를 전생까지 탓하게 만들어 불교가 제일 밉다'는 말을 남긴 신부님(홍창진 신부님 SBS 3인3색 종교인 대담)의 억울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사실 가장 접근이 어려웠던 것은 5 교육의 내용이었다. 이 전의 교육 환경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요즘의 교육 환경이 그보다 더 낫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른 누구도 아닌 교사에게서 나오고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온전한 만남을 이끌어내(156)'는 것은 교사들이 서로의 잠재력을 북돋고 상호작용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들은 세상의 유해함에 쉽게 노출될 수 있게 된 반면, 이에 대한 시비를 가리도록 훈육하기 위한 방편이나 필요성은 그보다 소극적으로 느리게 제시되고 있다. '두려움 시스템(197)'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존중과 내가 아닌 외부에 대한 경외가 기반된 배움이 기본되기 위한 바탕이 절실해보인다. 

지나치게 온건하고 포용적인 시선이 아닌가 싶은 지점은 교육 뿐 아니라 " 계엄을 찬성하고 탄핵에 반대한 사람들을 모두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공동체도 이룰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186"는 부분에 이르러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교육에서 약간의 생각이 다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존중할 수 있었는데, 계엄과 탄핵과 관련된 내용이야말로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179)'는 기조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172)'지만 한 계엄을 해결하기 위해서 온 국민이 필요했던 춥고 지난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자, 2016년, 2024년 왜 자꾸만 거리로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매번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하는가. 단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문제와 계엄과 탄핵은 구분되었으면 했다. 

" 행복에만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는 고통을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고통의 의미를 무시하게 된다.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욱 깊게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좁아진다. 고통은 각성, 창조, 저항의 원천이다. 예술, 철학, 혁명, 연대는 고통에서는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 경험이 제거된 세계에서는 현실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도 이뤄지지 않는다. 208" 

고통의 부재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젊은 세대는 너무나 많은 압박과 좌절을 통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 고통에 대한 예방, 학습이 없이 성장해온 탓에 자신이 받게 되는 고통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안으로 파고들어 단절을 선택하거나 고통의 원인을 외부로 돌려 타인과 세상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건이 생겨나고 있다. 미래 세대에게 태어나 겪게 될 고통, 경쟁과 결핍 등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사유가 저출생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낳음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마음의 병(209)마저 취약점이 될까 드러내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고통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회피는 마땅히 겪어가며 극복해나갈 성숙의 과정마저 제거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 정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것이 아닐까. 14" 하는 문장을 떠올린다. 인간사의 필수불가결한 고통을 의미있는 경험과 성장으로 이어 사회 안에서 순기능하도록 다스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방향성이라 본 것이 아닐까.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정치가 그 궁극적 목표에 닿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위해 '성인을 향해 정진(19)'하려한 시대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해왔다. 이 과정을 지켜본 저자의 솔직한, 그러나 세상을 향한 온기를 잃지 않은 시선이 담긴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지난 10여년 간의 세상을 정리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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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예술
이선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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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의도대로 감상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처음엔 내가 이렇게 많은 예술 작품들을 알고 있었다니, 새삼스럽게 놀랐지만 바로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걷다가 예술'의 의도였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 말 그대로 " 일상에서,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예술'이 되 "어 등장했다.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게 설치되어 있던 작품들이 배경과도 같은 풍경 속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야, 예술작품!' 

<해머링 맨(13)>에 대한 감상은 비슷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 의식하지 않으면 <해머링 맨>의 움직임조차 알아채지 못할 때가 있지만, 처음 근처 영화관을 찾으며 마주한 <해머링 맨>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사실은 다른 해머링 맨들 보다는 빠른 움직임일, 그 모습을 보려고 잠시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 첫 인상을 떠올리고 나니 잊고 있던 지나가버린 호기심과 열정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처음 시작이 <해머링 맨>인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면, '걷다가 예술'을 읽는 동안은 익숙함이 낯선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 가치와 의미를 다 전하지 못하고 있었을 다른 작품들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가 커졌다. 단순 재미로 굳이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왔던 <러버 덕(32)>, 전에는 솔직히 불평했던 빨강을 이제 멀리서도 저기가 여의도구나 하게 된 여의도의 <파크원(51)>, 카페 가려고 찾았던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건물(86), 지난 봄 김환기 전을 소개했던 솔올미술관(156)처럼 보고도 몰랐던 예술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특별했다. 소개된 장소들의 사진이 모두 실려있다면 바로 기억을 되살리며 읽기 더 좋았겠지만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아도 큰 어려움이 없다. 

작품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  중에 신라호텔 로비에 있던 "박선기의 <조합체 130121>(111)"는 예쁘다는 이유로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어 아쉬웠다. 알고 볼 걸! 조용히 흔들리는 비즈의 반짝임이 시선을 사로잡아 갈 때마다 바라보곤 했지만 여느 샹들리에 장식물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겼는데, 이 또한 작품이라고 하니 갑자기 새삼스럽게 여겨졌다. 먼지라도 쌓이면 청소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나 했으면서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라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다음에 가면 괜히 아는 척 허세도 부리고 싶어지고. 

큰 건물들이 왜 외부나 로비에 조각이나 동상을 세우고 그림을 걸어두는지, 그것들이 길을 걷고,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잠시라도 우리의 시선이 머물고 어떤 짧은 인상을 남기는 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술과 문화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바쁘고 무심한 시간 속에서 작품을 알아보고 감상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배경처럼 놓여진 예술작품들이 부재했다면 우리의 도시는 더 삭막할 것은 분명하다. 길에서 마주하는 한국 사람들은 무표정한 굳은 얼굴로 서둘러 경쟁하듯 걷는다고들 하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여유로운 태도로 우리 주위의 예술에 한 번 더 시선을 두고 걷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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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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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다 보면 찾아오는 한순간이 있다. 아마도 운명적인, 피할 수 없는 순간.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음을 나는 몰랐다. 운명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를 인권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82" 

 솔직하자면 글적인 재미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인권의 길'이라는 다소 무거운 부제 앞에서 재미를 찾는 것도 좀 그렇다 싶지만, 어쨌든 내가 뭔가를 읽는다는 행위에서 기대하는 요소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학을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권 운동의 길로 들어선 아들을 만류해보고자 하는 아버지 앞에서 '래군이라는 제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냐며 무리와 어울려서 데모하면서 살라고 이름 지어준 아버지 뜻대로 사는 거(20)'라며 냅다 데모하던 실력을 살려 줄행랑을 놓아버리는 모습에 굳어있던 얼굴이 풀렸다. 무거운 이야기도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그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며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을 풀어내는 실력이, 글빨이 느껴졌다. 원래는 소설가가 되려고 했었다는 스무살 배추장사 청년이 아직 거기 있었다. 

 국에서 쥐꼬리가 나왔다는 소문, 두부조림으로 촉발된 대규모 투쟁(56)은 웃음이 다 나왔다. 부실한 급식에 대한 괴소문은 중학교 때도 비슷하게 있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렴 교도소와 비할 것은 아니지만 먹을 것으로 인심을 잃으니 양심수 뿐 아니라 모든 재소자가 투쟁에 합세하게 됐다는 것이 애나 어른이나 싶기도 하고 한국인다운 사유다 싶기도 했다. 더불어 3일 동안 잠 안 재우기 고문 정도는 비일비재했던 한국인의 입장에서 국제 인권 기준을 오히려 당혹스러워 했던 내용(133)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분위기는 2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달라진다. 이끌어가는 힘은 그대로지만 운동권의 길로 들어서는 젊은 청년의 거친 기세는 깊은 상실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의문사 유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웃음이 있던 자리를 눈물이 채운다. 고문 피해자들의 후유증을 볼 때면 실내의 따뜻한 훈기마저 소용없이 어디서든 추위가 느껴졌다. 인권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이 어째서 늘 도망치고 잡히고 맞고 갇혀야하는 것일까, 담을 타고 여장을 하며(302) 경찰을 피해다녔다는 기록을 볼 때면 왜라는 의문이 자꾸만 따라 붙었다. 

 책에는 뉴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봤던 사건과 이름들, 이런 일이 있었나 싶게 무관심했던 사건과 이름들이 가득했다. 그 모든 흐름 안에 저자가 함께 해왔다는 것이 놀랍고, 차가운 무관심의 편에 자신이 서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모든 희생이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지만 5장에 들어서 마주한 세월호 이야기는 솔직히 더 읽고싶지 않을만큼 충격과 고통이 가라앉지 않아 괴로웠다. 멋모르던 시절 보아온 다른 사건들보다 나이가 찬 뒤에 너무나 어린 수많은 학생들의 참사를 무력히 보기만해야 했던 시간들은 지나치게 또렷하다. 처음 속보를 보았던 날마저 생생한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유가족을 향한 혐오와 매도(344)는 이런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 있다는 것이 진저리나게 만든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를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왜'라는 질문이었다. 결국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은 양쪽 모두에게 오가곤 했다. 그리고 매번 비겁하고 무력하나마 사람의 편에 함께 서는 사람이 되자고 바랐다. 나는 늘 항상 그런 사람이 좋았다. 할 수 있는데 누구나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 자신이 가볍고, 용기가 없으니 그런 사람은 항상 달리 보였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군대 내 기합과 구타를 없앤 박주재 병장(43)같은 사람이 그렇고, 비전향장기수들의 단정하고 말끔한 태도(61)도, 이소선 어머니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저자의 이름도 함께 기억될 것이다. 서로서로 무리를 이뤄 사람답게 살자는 群 안에 같은 길 위를 걷자는 앞선 걸음 뒤를 쫓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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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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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고 하니, 나만의 시상식 후보들을 꼽을 때가 되었다.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올해의 영화 중 추천해줄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최근 개봉한 작품들 사이에 비교적 연초에 보았던 '콘클라베'를 끼워넣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실제로 이 의식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현실과 영화 사이의 간극에 대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꽤나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유의 엄숙하고 아름다운 영상도 괜찮았고. 비종교인에게도 이례적으로 종교 안의 일에 큰 관심을 갖게 된 해였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른 추천 영화는 사람과 고기, 국보, 여행과 나날)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은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 뒤를 이은 레오 14세에 대해 설명하며 분열의 시대에 교회가 어떤 문제들을 끌어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알리고 있다. 가톨릭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곳이 전세계와 다름 없기 때문에 단순히 종교의 문제로 치부될 것은 아니지만 비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사실 그리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건너다 보듯 하는 거리감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더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이 역시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되는 요소들도 있었다. 예를들면 '콘클라베'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빠른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빵과 물 그리고 와인만을 제공했다(78)는 내용에서 그 와중에 와인을 챙긴 것이 양인들 답구나 싶어 재밌었다. 빨리빨리의 민족에게 1006일을 넘어서는 미결 상황이 생겼다면-생길리가 없겠지만- 밥과 물 그리고 간장만이 제공됐을 것이다. 

흥미를 느낀 부분은 동성애와 이혼, 여성의 사제 서품에 관한 변화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보수적인 면면이었다. 이 더딘 변화에 과감한 행보를 보인 것이 "제가 감히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Who am I to judge?)21"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답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는 변하지 않고 다만 더 열린 태도로 환영할 것(198)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 외부인의 시선으로도 정해진 미래처럼 보이는데 특히 LGBTQ과 관련된 입장이나 여성의 사제 서품 허용은 투표권 같은 문제처럼 결국은 풀려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절반을 구성하는 신도를 일부라도 잃을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 하기 때문일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사회가 변했고 과거처럼 문화를 통해 신앙이 전승되지 않으므로, 오늘날의 사회에 맞는 교회를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와 방식을 제공해야 한다고(53)' 이 지점에서 현대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를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어쩌면 이보다 더 심각한 절벽 앞에 불교가 놓여 있다. 절을 찾아야하는 거리적 부담, 가족의 핏줄로 이어지지도, 사회 공동체 안에서 어리고 새로운 신자를 얻기 위한 장치도 부족한 이 종교는 과거 세대의 믿음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의 틀을 깨고 근래의 '힙한 불교'에 대한 여유롭고 파격적인 마케팅이 젊은 세대에게 소비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게 불교가 선택한 '새로운 기회와 방식'으로 보인다. 비단 이것이 불교만의 위기가 아니라면 지금 시대에 있어 종교가 과거에 비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새 교황 레오 14세에 대한 이야기에 '미국'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크게 들어가 있는데 그 키워드의 강렬함을 지우려고 시도한 모든 사례들이 오히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크기를 키우는 듯 했다. 영어를 사용할 것인가(144) 같은 사사로운 것에 의미를 두는 것조차 만약 한국인 등 오히려 다른 출신이었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관심을 두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더 주의깊게 바라본 것이 아닐까. 이쪽의 입장에서 본다면 폴란드, 독일,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비이탈리아인(135) 교황이나 이탈리아, 미국 출신의 교황 모두 그쪽 판 위에서의 일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을 통해 가톨릭 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전혀 모르던 세계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해나 공감은 어려웠지만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소설과 영화로 '콘클라베'를 접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면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까지 이어지는 연결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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