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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평점 :
" 셰익스피어는 장미를 찔레꽃보다 높이 평가한다. 아름다운 것은 둘 다 마찬가지지만 장미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특별한 향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이 기본적인 기교와 감각의 차원을 뛰어넘어 불멸의 작품이 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작품의 유형적 및 무형적 표현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느냐는 모호함의 정도에 달려 있다.(124) "
철학도 음악도 잘 모르지만, 몰라서 읽었다. 알고 읽는다면 더 좋겠지만 모르니까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나. 그러니 이 책이 초면인 사람들은 뭐 어때, 하면서 그냥 읽어보길 권한다. 음악적 소양의 깊이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음악가의 블로그 글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전문적인 용어나 내용이 분명 들어가 있지만 그저 이 사람의 삶과 생각이 이렇구나 하는 정도로 읽을 수 있다. 게임, 가르침, 상관관계, 악보, 코다라는 다섯가지의 큰 분류로 글이 나뉘어져 있는데 그 안에서도 아주 여러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은 반쪽에서 그보다 적은 분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
"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려면 지능지수가 110 이하이거나 140 이상이어야 한다.(19) "
위의 문장은 저자 개인의 발언이므로 독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혀두고 싶은 면이 느껴진다. 예술가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약간 괴짜같은 면이 보이기도 하고 이후에 풀어나가는 뒷문장들을 보면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첫번째 게임 부분에서 손가락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재밌었다. " 궁극의 매체인 손가락 끝의 신성함과 온전함은 영원히 보호되어야 한다.(77) "고 말하는 피아니스트의 관점에서 손가락을 낱낱이 해부하여 평가한다면 이럴 수 있겠구나 싶은 내용이었다. 게임이 아니라 손이라고 이름을 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만큼 손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악보 부분은 가장 분량도 많고 각 꼭지의 길이도 길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부분에 비해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나와 그냥 일독을 할 때 훑듯이 읽고 넘어갔다. 재독하게 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읽어 넘긴다해도 완독에 큰 지장은 없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줄었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관관계 부분이다. 상관관계의 내용은 피아노에만 국한되지 않고 예술, 사회, 문화, 매체, 운동, 과학 등을 아울렀다. 처음 목차의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지 가장 감이 오질 않았는데, 읽다보니 왜 이런 제목을 달아놓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읽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은 오디오 북으로 듣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유려하다. 책을 듣다보면 ASMR같은 느낌을 줄 것 같고, 건반을 두들기는 듯 힘있고 명료한 낭독을 듣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나무에서는 오디오 북으로 제작할 생각이 없을지 궁금하다. 음악, 피아노 전공자가 읽는다면 더욱 만족스러울 책이겠지만 다른 우주의 보통의 독자도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겠지만 문장을 음미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