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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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을 들여 책을 천천히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음독도 불사하였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지만 어느 순간 '철학따윈 필요없어'하면서 도피해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뭣보다 중간중간 내 생각이 끼어드는 때마다 좁은 생각으로 말도 안되는 시비나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책은 책이지 경전이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꿋꿋하려고 애썼지만 잘 안됐다. 애초에 나는 목적을 위해 가치있는 것들을 도구화하는 셈에 익숙해있다. 책에서 말하는 10가지의 요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셈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래선 안된다고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왜 안되야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불만스러우면서도 절망스러웠다.

 

 주로 반기를 들었던 부분 위주로 생각을 쓸 것이다. 시비걸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하고 한동안 어려워서 정신을 못차리다 존엄에 대한 부분에서 불쑥 반발심이 일었다. 셰익스피어의 전집과 운동화(80)에 대한 비교였다. 나같은 사람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위대한 작가의 전집과 운동화가 같은 가치로 매겨지는 일이 비교조차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운동화는 상품이기 때문에 그보다 못하다? 하지만 운동화-신발이 가지는 의미, 맨발로 거친 땅을 밟으며 살아야하는 이에게 있어 그 삶에 얼마나 중한 필요와 기쁨을 가져다주는지는, 그것도 존엄의 하나 아닌가 생각했다. 제 손으로 신 삼는 법을 몰라 오소리 영감의 종노릇을 해야 했던 원숭이가 원통해했던 것*(정휘찬 '원숭이꽃신')처럼. 어쨌거나 신발도 책만큼 중요하다.

 

 애초에 존엄에 대해 말하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노부부(73)를 예로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젊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들이 헤라처럼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257)로 그 순간을 삶의 완성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젊었더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존엄을 잃게 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오히려 갑판에서 음악을 연주한 연주자들이 보인 태도가 더 존엄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품위만이 아니라 타인의 위안까지 도모했다. 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지는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덜 존엄한 반응을 보인 것이냐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을 삶을 구하고자 하는 절실하고 불굴한 자세도 삶과 인간이 의지에 대한 존엄을 보인다. 그 끝이 비명과 공포에 물들었다 하더라도.

 

 가치있는 10가지 주제에 대해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진짜 사랑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172)음을 이야기하며 오래된 흔들의자를 예로 들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게 현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비우는 삶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은가. 미니멀, 심플, 심지어 비움의 미학 같은 것들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오래된 물건을 끌어안고 있지마라,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아까워하지마라' 같은 말들을 신조삼아 공간, 사람, 생각마저 비운다.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는 '팔걸이가 계속 떨어지는 오래된 흔들의자'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케아로 달려가 가볍고 심플한 디자인의 철제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는다.

 

 이는 이상형의 조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났을때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름 그럴듯한 변심의 변명이 되어준다. 사랑의 문제여서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일자리에 대한 문자로 생각하면 합리적 선택에 더 가깝게 보일 것이다. 과거엔 평생직장이란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번의 이직이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좀 더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는 길이다. 이건 지켜져야할 것으로 믿는 약속같은게 아니다. 하물며 사랑, 특히나 아무리 검은 머리가 세다 못해 대머리가 된다해도 굳을거라 맹세하는 결혼이라도 함께하는 것보다 더 나은 혼자를 위한 선택도 현명하다 보는 것이 현재이다. 신경과학같은 것으로 본다면 사랑 역시 호르몬작용이고 중요한 가치이지만 영원해야 할 의무는 없어야 한다.  

 

 또한 도구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을 인적자원(87)으로 보면 안된다는 내용에서 저출생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출생이라 부르기 전 저출산이라는 명칭이 있었고, 이는 가임기여성의 출산율을 통계화하는 수치로도 계산되었다. 이는 여성과 출산을 인류의 원활한 생존 유지를 위한 도구로써 본 것 아닌가. 국가적 세계적으로 말이다. 이밖에도 개의 행동에 도덕적으로 분노할 수 없다(114)는 내용에서는 요즘 빈번히 보도되는 개물림사고를 떠올렸다.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생기면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를 하고 안락사를 시키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이와 같은 대처는 개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아닌가, 이보다는 개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면 개주인이 벌금을 내고 실형을 살아야함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개를 도구화한 생각 아래서는 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개는 그대로 두고 개 때문에 사람만 처벌받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 부분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용서할 자격을 갖습니다'(191)는 용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용서 부분을 읽으면서 줄곧 영화 '밀양'을 떠올렸다. 때로 사람들이 갖는 용서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지를. 영화에서 범죄자는 종교를 가졌고 그로인해 자신이 저지를 죄를 용서받았다고 한다. 그를 목적을 통한 용서를 하기 위해 찾아간 주인공은 범죄자의 말에 분노한다. 종교를 통해 받은 죄사함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가진 '용서할 자격'을 빼앗은 것이다. 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함으로써 용서가 가능해진다는 어려운 내용을 강조하는데 이어서 '종교적 믿음은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일'임을 말하며 종교도 비슷한 예시로 든다. 종교가 침범한 용서의 영역에 종교가 예로 들어가 있어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책은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같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양심이라고도 한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순간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다. 순박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 안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떠올리다가도 불현듯 부정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책이 어렵지만 큰 틀에서 보면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것을 심화하여 담아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단순화했을지도 모르고, 오독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다만 어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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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9-09-0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공감도 가지 않고 이해도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다른 분들은 대체 어떻게 읽으셨을까 궁금해서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너무 공감가는 리뷰라 좋아요 눌러봅니다.

점잖게 말씀하셔서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앞뒤 꽉 막힌 사람이 본인의 주장만 내내 늘어놓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테일 2019-09-07 02:34   좋아요 0 | URL
공감하셨다니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저가 너무 꼬아보기만 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현실감이 덜하달까요..
리뷰 마지막에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썼는데, 그만큼 답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