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inson Crusoe (Paperback, Penguin Classic) - Penguin Classics
Defoe, Daniel / Penguin Classics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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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스 크루소(Robinson Crusoe)는 흔히 아동문학으로 알려져 있었고, 저역시도 어린시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원문을 통해 본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험소설류는 아니었습니다.

영미문학권에서는 이 소설이 최초의 영문 소설 (one of the first novel in English)로 이해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치 주인공인 로빈스 크루소의 입을 통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로빈스 크루소 이전의 영어권의 문학이 어떤 형태였는지는 좀 더 공부해 보아야 할 부분이지만 아무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의를 가진 책이긴 한 것 같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7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이릅니다(참고로 이책은 1719년 영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주인공 로빈스 크루소는 부모님이 영국에 남아 중산층의 삶을 즐기라는 조언을 뿌리치고 헐(Hull) 항구를 떠나 외국으로 나갑니다.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로빈스 크루소는 사실 대단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낯선 곳으로의 항해와 여행과 모험을 통해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또한 신께 감사하는 생활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노예(slave)를 당연하게 여겼고, 영국인들도 다른 나라에서 노예가 되기가 일쑤였습니다. 로빈스 크루소 자신도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들의 주인(master)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이들도 그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프라이데이(Friday)가 전형적인 캐랙터로 소설에는 로빈슨 크루소를 섬기는 하인(servant)으로 묘사됩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영국을 떠나 브라질에 정착해 농장(Plantation)을 세워 부를 일굽니다. 그는 농장을 세우면서 다른이들과 지분을 합쳐 농장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 영국인들이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고 지분을 분배하는지 그리고 법적으로 어떤 계약을 맺는지가 상세하게 나옵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의 경제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유럽이 철저히 상업적으로 브라질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동업자들과 농장을 발전시켜오던 로빈슨 크루소는 수익성이 좋은 노예무역(slave trade)를 위해 브라질을 떠났다가 배가 난파되어 카리브 해 인근의 무인도에 도착합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모험을 위해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상당히 외향적인 사업가이기 때문이죠.

도착한 날부터 유럽의 도시 문명에서 벗어난 로빈슨 크루소는 미개한 야만인(savages)들이 자신을 잡아먹지 않을까 그리고 야생동물로부터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지 엄청한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난파선에서 총기류와 화약 그리고 비상식량을 챙겨와서 생존을 시작합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생존하기 위해 난파선에서 물건들을 자신의 거처로 가져오는 과정, 그가 도착한 날로부터 날짜를 기록하는 과정, 일기 (Journal)을 쓰는 과정, 그리고 섬 내부를 탐사하여 자신의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포도와 보리 그리고 쌀을 재배하는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주변에서 살고 있던 미개인(savages)들이 전투에서 진 포로들과 인질들을 잡아 인육을 먹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아주 자주 말이죠.
이후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거처를 더 튼튼하게 보수하고 위장막을 쳐서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요.

그의 동반자가 된 프라이데이도 사실 이 미개인들이 잡아온 포로 중 한명으로 목숨을 살려준 그를 주인(master)으로 자처합니다.

28년이상 무인도에서 살게 된 로빈슨 크루소는 선상반란(mutiny)이 일어나 그가 살던 무인도에 오게된 선장을 구해주고 그 배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서도 로빈슨 크루소는 선장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무료항해와 함께 선장이 그의 명령을 따를 것을 요구하죠. 그리고 선장은 그의 요구를 따릅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영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브라질 농장에 대한 수익을 정산해 사업을 청산하고 자신의 후견인이 되어 주었던 이들에게 자신의 돈을 나누어주고 자신은 다시 영국을 떠나 여행을 떠납니다.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몇가지가 있는데,


1. 소설은 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던 한 젊은이가 무인도에 표류하면서 신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신앙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며

2. 따라서 수많은 성서의 구절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3. 한사람의 나약한 인간이 무인도의 주인(master)이 되고 더 나아가 무인도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영국인들이 낯선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통치해 나갔는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환경과 공간을 지배하는 식민주의 (colonialism)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4. 영국인들의 유럽중심적 세계관(Eurocentrism)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데, 로빈슨 크루소가 접했던 많은 비유럽인들을 대체로 미개인(savages)으로 묘사하고 있으면 은연 중 유럽만이 세계의 중심이고 문명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들 미개인들이 하인(servant)이 되거나 혹인 노예(slave)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영국인으로서 로빈슨 크루소는 스페인이 신대륙에서 행한 원주민 학살을 언급하며 그들의 잔인함을 비판적으로 말합니다.
아직은 영국이 제국주의 세력으로 아직 발전하지 않았고 아직 스페인의 신대륙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했던 시기여서 이런 문장을 소설에 넣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6세기에 이미 스페인은 남미의 아스텍과 잉카제국을 살육에 몰아넣어 그 문명을 말살시켰기 때문이죠.

이 책은 따라서 후에 발표되는 Heart of Darkness(1899)를 비롯한 제국주의 소설들의 시작을 알리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비록 영국 식민지 제국의 초창기에 쓰여진 책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읽은 이 펭귄판 로빈슨 크루소는 영어 문장 역시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18세기 당시의 영어로 쓰여져 있어 현대영어와는 스펠링도 의미도 약간은 다릅니다. 그리고 서술하는 방식도 다르고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읽기에는 무난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편집자가 자세한 주석을 책 말미에 달아놓았고, 특히 성경 구절에 대한 것도 상당부분 해설을 해놓았습니다. 다니엘 디포우가 소설을 쓴 당시의 원문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옛 영어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끝으로 이 책의 영향을 받았던 영화 중 최근의 것을 하나 소개합니다.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2000)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톰 행크스 주연의 이 미국 영화는 영화 제목도 그렇고, 그 이야기 자체가 상당부분 로빈스 크루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배경이 현대인지라 배 대신 비행기 추락으로 난파당하는 방식이 바뀌었어도, 도시 문명을 떠나온 주인공이 홀로 무인도에서 생활해 나가는 모습, 그리고 그리움을 잊기 위해 일하고 기록하는 모습들은 모두 그 원형(prototype)이 로빈슨 크루소의 내용을 아주 빼다 박았습니다.

 

쓰여진지 300년 가까이 된 소설이 아직도 영미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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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with a View (Paperback)
E. M. 포스터 지음 / Penguin Classics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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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본 이후 영화의 원작은 어떨까하는 호기심에서 읽었던 소설입니다.

2004년 경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85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는 제임스 아이보리 (James Ivory)감독 작품으로 독특한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온 팀 버튼 (Tim Burton)감독의 뮤즈 (Muse) 헬레나 본햄 카터 (Helena Bonham Carter)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1900년대 초 영국 젊은이들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시대의 영국의 관습과 사회상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것으로 알려진 소설이기도 합니다.

영국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읽었음에도 이전에 본 영화가 소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집안에서 정해준 남자와 약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 루시가 피렌체에서 만난 조지와의 감정이 사랑이었음를 깨닫게 되는 줄거리입니다.
현 시점의 로맨스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줄거리라고 생각이 들긴 하네요.

영어권의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은 사실 이 소설이후에도 많이 보입니다.

가장 최근의 작품으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2010)‘ 이 생각납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이 영화도 이혼한 젊은 미국 여인이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벗어버리고 이탈리아 음식을 흡입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죠.

다음은 고전영화인 ‘로마의 휴일 (1953)‘이 떠오릅니다.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을 스타덤에 올린 이 영화로 많은 이들이 로마라는 도시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죠.


아무튼 이 책은 포스터의 소설 중 읽기 상당히 편했던 소설로 기억되며 바로 읽기가 버겁다면 저처럼 영화를 보고 읽으시는 것도 좋은 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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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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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는 이병헌, 한효주 주연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를 본 것이 가장 최근의 기억입니다.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픽션(fiction)이 가미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실 광해군에 대한 역사는 이책으로 처음 본 것으로 이전에 TV강연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명지대 한명기 교수의 저작이라 관심이 갔던 책입니다.

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조선의 전쟁사관련 강연에 자주 나오셨던 분이었는데, 책일 읽다보니 이분이 '선조-인조대의 대명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더군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격변기에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등 끝이 없는 전란을 겪으며, 조선 건국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습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파죽지세의 진격으로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파천(播遷)하는 굴욕을 당합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왕세자로 책봉되어 쪼개진 조정 ,즉 분조(分朝)를 이끌게 됩니다.
왕세자로서 노숙도 불사하며 전국을 떠돌며 왜군들과의 싸움을 독려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광해군이 훗날 명과 후금사이에 줄타기를 하는 외교를 하게되는데 중요한 밑천이 됩니다.

선조는 말년에 나이 어린 후궁을 들이게 되고 이 여인은 후에 광해군의 정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인목대비가 바로 이 여인입니다,

광해군은 대북파와 손잡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동생인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군을 죽음으로 몰게 되고, 인목대비를 폐하라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인목대비는 왕세자가 될 수 있었던 영창군의 죽음을 계기로 광해군과 원수지간이 됩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전쟁 와중에 왕세자가 되었고, 왕위 계승이 쉽지 않았던 처지에서 권력을 잡은 광해군은 안으로는 왕권강화, 밖으로는 떠오르는 후금의 누루하치를 견제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와준 명과의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아슬아슬한 외교적 줄타기를 계속합니다.

명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은 재조지은(再造之恩), 즉 나라를 다시 세우게 해준 은혜를 갚으라는 명의 무리한 요구를 회피하면서, 누루하치의 후금과는 적대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이를 위해 정파와 관계없이 능력있는 정치가들을 등욯하고 최대한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펴나가지만, 명분과 의리가 중요한 유교(儒敎 )국가인 조선에서 이런 실리적 정책은 국내정치의 정적을 만들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여기에 임진왜란과 뒤이은 명의 원군요청에 응하면서 민심까지 이반이 된 상황이 되어 광해군은 결국 권좌에 오른지 16년만에 폐위당하는 불운을 맞습니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이라는 반정사건이 바로 이것이죠. 동생 영창군을 죽음으로 몰고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하는 것은 성리학 국가에서 용납되지 않는 것이라는 명분이 하나였고, 사대관계에 있는 명나라를 언제나 섬기지 않고 후금과 화친하는 것도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명목이었습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권좌에서 물러나고, 인조는 서인과 남인 사대부들을 등에 업고 친명정책을 펴게됩니다.
하지만 실리적 균형외교를 행하지 않고 명분에 집착한 명과의 외교에 몰두한 나머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결국 다시 겪게되는 불운을 맞습니다.

명청교체기라는 외교적 격동기에 명분과 의리에만 집착한 체 친명사대만을 고집하다가 화를 당한 것이지요.
물론 조선이 명백한 후금 배척정책을 취한 것은 아니지만 광해군대에 비해 외교정책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않은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인조는 병자호란의 패전으로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의 예를 갖추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합니다.

1590년대에 조선을 초토화시킨 임진왜란과 1630년대 항복의 굴욕을 남긴 병자호란은 조선의 역사를 전환시킨 중요한 변곡점임이 분명합니다.

한국의 외교상황이 4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열강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 한반도는 기존의 사대관계에 있던 명나라와 남쪽에서 대륙진출의 기회를 노리던 일본, 그리고 신흥 세력인 누루하치의 후금과의 관계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1세기 초인 현재는 양대 강국인 중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의 동태를 면밀하게 살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태평양의 세력으로 전선을 형성하고 있고, 중국은 한국이 미국편에 가담하여 자신들의 국익을 위협하지 않을지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방어용 사드미사일에 대해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가장 최근의 예인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전통적인 조선 성리학의 눈에서는 정통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임금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이 열강간의 균형외교를 하는데 있어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임금이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정조 당시의 조선 후기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조선 중기인 16-17세기에 대한 새로운 입문서 역할을 해준 책이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짧게 언급되었던 임진왜란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대해 좀 더 책을 찿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임진왜란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순신 장군이외에 임진왜란을 알기위해서는 수많은 인물들을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된 것이지요.
선조 통치하에 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아울러 한명기 교수님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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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김용옥 / 통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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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완독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한국 불교사책입니다. 이 책의 최초 출판년도가 1989년이니 벌써 28년 전에 출판된 책이고, 도올의 책 중에서도 초기작에 해당됩니다.

출판 당시 한국사회가 1987년 6월 항쟁의 영향권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았던 상황으로 저자는 최초로 이땅에 직선제 민주정치를 이룩한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시대를 마감했던 그 당시의 상황을 저 역시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촛불혁명으로 1987년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다시 재고(再考)하게 된 지금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담은 글을 보게 되는 것은 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또한 이 책은 제가 읽은 도올의 책 중 거의 여섯번 에 해당되는 책입니다.

아마 읽고서도 오래되어 빠진 책도  몇권 있겠지만 이런 책들은 추후 다시 읽게 되면 읽었는지 여부를 알수 있겠죠.

아무튼 책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저자 김용옥 선생에 대한 저의 인상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인정해야 할것이 이 분은 아마 동양고전을 포함한 한문 전적, 종교학, 기독교 신학 및 동서양철학에 대해 방대한 연구를 하신 분이란 점입니다. 아직까지 종교학이나 경전강해(經傳 講解)를 하면서 수많은 원전을 이분처럼 직접적으로 인용하신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과시적인 글쓰기 일수도 있으나 글의 출전을 정확히 밝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분의 원문해석에 대한 동의여부를 떠나 일단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이 분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부분인데, 저술자체에 필요없는 자화자찬을 많이 하시는 편이고, 직접적인 투의 구어체를 쓰시는 것이 특징이지요. 자화자찬은 제가 보기에도 과한 면이 있으나 쉽게 구어체로 설명하는 건 이분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문적 엄숙주의에 갇혀있지 않아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문을 상식의 엄밀화 차원에서 접근하시는 점도 다른 분들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 아닐런지요.



 셋째, 이분은 학문에서 저작이 씌여진 언어 (言語)와 그 해석(解釋) 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던 분이고, 또한 원전주의자답게 원전(原典) 의 올바른 한글 번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오셨던 분입니다. 이 분의 스타일과 문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분이 수많은 중국 유교 경전과 불교경전 그리고 성경의 복음서를 주해(註解)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경전 번역이 별로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분이 이런 경전해석에 대한 강연을 함으로써 일반 대중들에게 경전입문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온 것은 좋게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분 의 시각에 동의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있지만 경전주해에 대한 이분의 노력은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으로 보입니다. 


책은 한국의 불교가 한국사회와 격리된 체 산중불교 (山中佛敎)로 남아 지나치게 선(禪) 중심의 불교가 되어버렸으며, 사회와 괴리된 체 종파간 재산싸움이나 하는 종교집단으로 남은 이유를  구조적 이해 (structural understanding)의 입장에서 고찰한 한국의 불교전래 및 발달사에 대한 글입니다.  

이책은 하지만 한국불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특히 신라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당시 신라에 불교를 전해준 중국의 당(唐) 제국의 사회상에서부터 지금과는 다른 한반도의 고대 국가채제의 모습 그리고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고대사회에서의 종교의 모습도 고찰합니다.  신라가 자생적인 무속적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불교를 받아들였는지를 수많은 고전과 불경 그리고 서구의 종교 철학서를 인용하여 논의합니다.

물론 이런 모든 논의의 출발점은 1980년대 말에  일어난 불교 법란(佛敎 法亂)으로 시작되며 그원인과 역사적 출발점을 찿아나가면서 이루어집니다. 저자는 신문기사와 불교 출판물에서부터 삼국유사 (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비롯해 수만은 불경과 동양고전을 인용해 논의를 전개합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를 이야기하지만 고대사회와 고대정치 그리고 원시종교를 이야기하기도 하며 인간이 받아들이는 신에 대한 관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 현대사가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미제국주의의 대한 문화정책의 문제와 미국과 한국정치의 기득권 세력의 문제도 가감없이 건드립니다.

그리고 학문적 방법론에 있어 동일한 문자 (同一文字) 가 동일한 의미(同一意味) 가 아니며 그 의미가 그 시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함(즉 시대적 맥락에 따라 이해되어야 함) 에도 동일한 단어를 그 역사성을 망각한 채 현재의 의미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주장은 지금도 곱씹어 보아야할 주장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쓰는 언어도 시간이 지나고 또 그 말이 쓰여지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이 주장은 어찌보면 역사언어학에 있어서는 가장 보편적인 주장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원전의 주해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입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한문(漢文) 을 다시 한번 공부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모른 체 살아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미 절판되어 헌책방이 아니면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불교와 자주 비교되며 이책에서 언급되지만, 가장 인상적이며 중요한 언급은 기독교세력의 성장과 독재정권과의 관계를 서술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한국의 기독교 세력들은 미국의 국주의의 세력을 등에 업고 공산주의를 지원하며 수구세력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급성장해온 역사적 사실을 지적합니다. 불교세력이 사회와 괴리되어 집안싸움이나 하는 초라한 세력으로 남은 것과는 달리, 수구 반공주의의 주체세력으로 성장한 한국의 기독교 세력은 그 위세와 영향력으로 한국의 기득권을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현재 강남에 세를 늘린 수구 반공주의 기독교 세력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보면 30여년 전에 쓰여졌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1980년대 초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지식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1980년대 말의 사회상과 더불어 한국에 최초로 전래된 불교의 모습과 불교의 한국역사에서의 전개과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원전을 근거로 조목조목 논리를 전개합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논란이 있고 호불호가 갈리는 그런 책이 인문서로서 좀  더 가치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도올선생이 ' 교리편'을 저술하실 기회가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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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Magazine B) Vol.34 : 라이카 (Leica) - 국문판 2015.3
B Media Company 지음 / B Media Company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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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라는 독일 카메라는 비싸고, 불친절한 카메라입니다.
1960년대까지도 노출계도 달려있지 않은 카메라를 내놓은 고집불통같은 브렌드입니다. 여기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 Bresson)이라는 프랑스 사진가가 선도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 이후 많은 매그넘 (Magnum)사진가들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어느정도 신화화된 카메라이기도 합니다.
Canon의 전자동화된 DSLR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는 아직도 접근하지 못하는 그런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인 현장과 전장에서 많은 Leica가 사용되었음에도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돈많은 호사가들이 사용하는 값비싼 장난감' 이라는 이미지도 같이 남아 있습니다.

이 무크지는 Leica를 사용하는 프로사진가들의 인터뷰와 더불어 이들이 왜 Leica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카메라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정 브랜드에 대한 마케팅 잡지인 만큼 Leitz 라는 기업의 역사도 함께 소개합니다.

저도 Leica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어왔지만, 어쩐지 이 오래된 독일 카메라업체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첨단 기기 (cutting edge product)와는 궁합이 안맞아 보입니다.

Leica는 역시 필름으로 찍어야 제맛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중요한 것은 하지만 카메라보다 이 카메라가 담은 역사 속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 카메라를 사용해서 사진가들이 역사와 인생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찰라의 순간을 잡는 (capturing the moment) 도구로서의 독보적인 아우라는 아마도 다른 일본 카메라업체들이 아무리 첨단의 기술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훨씬 빠른 오토포커싱(auto focusing)기술을 탑재한 일제 카메라가 더 낮은 가격대에 포진해 있음에도 왜 프로 사진가들이 아직도 수동렌즈를 탑재한 더 고가인 구식 카메라를 사용하는지는 어쩌면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되뭍는 우회적인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Leica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으신 분들은 가볍게 일독하기 좋은 무크입니다. 좋은 입문서가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제가 사용해본 기계식 Leica에 대한 경험담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 카메라는 그 정밀함과 정확함으로 사용자를 매료시키기 충분한 기계입니다. 1950년대 말 만들어져 이미 세월이 6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이 기계는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처럼 정밀하게 돌아갑니다. 10년전 만들어진 전자식 카메라가 다시 사용할 때 어색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이 골동품 카메라는 조부모님대에 전성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용하는데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보다 기계를 더 사랑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큰 어찌보면 위험한 기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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