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nt Wrong?: The Clash Between Islam and Modernity in the Middle East (Paperback)
Lewis, Bernard / Perennial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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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1년 9/11이 일어난 지 얼마 안 있어 출간된 영어권 최고의 중동학 석학의 책입니다.
영국계 미국인(British American)으로 중동학 (Middle East Studies)의 최고 석학 중 한명으로 꼽히는 프린스턴 대학의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의 책입니다. 초판은 2002년 1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습니다.

서구의  보수(conservative) 입장에서 어떻게 이슬람을 바라보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저자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 글은 9/11이전에 발표되었던 글과 같이 묶여 9/11의 충격의 여파가 체 가시지 않았던 때 발간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끌기 충분했었습니다. 발간당시 이책은 미국에서 이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필독서처럼 취급이 되었지요.

책 제목이 '(이슬람사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입니다. 은연 중에 이슬람이 서구에 비해 '잘못된' 사회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한 짧지만 편견이 숨어있는 제목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1683년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왕국(Habsburg Monarchy) 및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국 (Polish- Lituanian Commonwealth )그리고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과 맞선 두번째 비엔나 함락의 실패 (the failure of the second Ottoman siege of Vienna)이후 서구의 힘에 이슬람이 압도되었고, 이후 이슬람은 서구세계가 걸어온 근대화(modernization)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해 서구세계에 비해 이슬람세계가 뒤쳐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서구의 역사가들이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Fall of Constantinople, 1453; 비잔틴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함락당하면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지요)을 서구세계가 이슬람에 굴복당한 첫 장면으로 묘사하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인 것 만큼이나 이 제2차 비엔나 함락 실패는 서구세력의 힘이 이슬람을 압도하는 역사적 전환점( turning point)로 대체로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근대화라는 서구적인 물질문명과 이슬람세계가 서로 상반되고 또한 갈등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달리 보면 이슬람세계가 서구화(Westernization)라는 전지구적 보편적 문화에 저항적이라는 의미이고, 이 갈등이 종식되기 위해서는 이슬람이 서구세계의 문화에 포섭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서구중심주의(Eurocentrism)적 접근법입니다.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이라는 말은 그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보수적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동명의 저서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버나드 루이스의 시각역시 이 보수적 학자의 견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버나드 루이스의 이책이 서구사회와 이슬람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구사회의 우월함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사무엘 헌팅턴의 책은 서구를 일반적인 것으로 규정하면 서구의 이상적인 세계지배에 도전하고 있는 이슬람국가들 및 경제적인 발전으로 서구에 위협이 되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항하여 서구가 어떻게 그 힘의 우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국제정치전략적인 측면에서 다룬 책일 뿐입니다.

두 책 모두 서구사회를 일반적인 사회, 혹은 정상적인 사회로 보고 그 외의 사회들은 이 일반적인 사회에 도전하는 덜 발전된 사회로 보는 명백한 이분법적 서구중심주의가 들어가 있습니다.

영어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 이들이 영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 한국적이지 않은 측면도 한국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영어권의 사람들도 모든 것을 영어적 사고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중동사회를 볼 때도, 아시아 사회를 볼 때도 이들은 항상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를 바탕으로 자신과 다른 세계의 지식을 체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비영어권에 대한 지시을 오로지 영어로 쓰여진 책에 의존해 이해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따라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언어를 쓰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할 텐데 일반적으로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할 필요를 그들은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볼 때 이런 영어권 사람들의 다른 세계에 대한 무심함은 떄로는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한국에 5년이상 주재해 있었으면서도 한국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도 많이 봤습니다.
이들이 오만하게 보이는 것이 과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미국은 9/11이후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이라크를 공격했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전리품을 챙겼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고 오사마 빈 라덴이 제거되었지만 중동지역의 정세불안까지 모두 해소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IS라는 새로운 테러조직이 발생하여 서구사회를 유협하고 점차 그 영향력을 아시아지역까지 넓혀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9/11의 보복을 다짐하고 이슬람국가를 자신의 입맛대로 보는 이들은 모두 네오콘 (Neo Conservative)라는 보수적 정치세력으로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여 전세계적인 양극화를 만들어내는데 공헌한 세력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사실 미국에서도 2008년 경제위기 (2008 credit crisis)를 겪으면서 사실상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시각(perspective)은 그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성격을 보입니다. 서구가 서구이외의 세계를 타자화하여 자신들 이외의 것은 덜 발전된 것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보는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은 단지 이슬람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한자문화권인 한국에서도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인 자신조차도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에서 현실과 역사를 바라봅니다. 이는 반드시 교정되어야 합니다.


서구열강이 19세기 말 이 땅에 들이닥치기 이전 한국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았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그래서 더더욱 있습니다.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폄하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세상을 보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잊혀져가는 수많은 한문전적들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텍스트 해석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이고 하나의 큰 주제이기 때문에 별도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에 앞서 자기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배움의 출발점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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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시여행 - 도시 골목골목, 우리 문화와 이야기를 따라 걷다 참여하는 공정여행 2
이병학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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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ESC팀 여행 레져 담당 이병학 기자가 한겨레 신문 지면에 연재한 기사를 책으로 묶어 2011년 출간한 책이 이 책입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당일치기 코스를 소개했습니다.
제가 일부 가본 코스는 인천 근대문화 여행 코스와 강화도 코스였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정작 서울성곽코스는 가보지 못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가보고 싶은 코스는 군산과 목포 근대문화유산 코스였습니다. 아마 요근래 다시 한국근대사와 일제시대에 대한 관심이 켜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각 꼭지의 글이 짧다보니 사실 많은 정보를 얻기는 어려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완하면 간단한 하루짜리 여행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볍게 쉬어가듯 읽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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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3
이나미 지음 / 책세상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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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소장 정치학자가 본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에 대한 책으로 서구에서 생각하는 자유주의(liberalism)과는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른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라는 사상이 어떻게 나타났으며 한국의 소위 '보수'세력들에 의해 어떻게 향유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데 사용되어 왔는지, 그리고 구한말 도입 이후 자유주의가 어떻게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과 결합해 제국주의(Imperialism) 를 합리화해 왔는지 그 원인을 살핍니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서구에서 발생 당시부터,  자본가 계급의 '재산과 교양'을 기반으로 하여 처음부터 빈곤계급을 포괄하지 않은 상태로 인간의 자유평등과 합리주의를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자유주의의 이중성이 나타나고 저자는 이에 주목합니다.

애초부터 자본가계급(capitalist class or boourgeoisis,資本家階級) 을 대상으로 발전된 자유주의를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자유'를 자신의 재산권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만 지킬 수있다면,  집권세력은 그 어떤 세력이어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한국에 자유주의가 도입되고 난 후 어떻게  군부독재세력이 집권을 할 수 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자신의 재산권만 지킬 수 있다면 누가 통치해도 상관없다는 이들의 '천박함'이 독재세력들이 집권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유주의에서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경제적 자유만을 강조하다보면 이것이 다수 민중의 복지를 추구하는 민주적 정치적 자유주의와는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강조하게 되고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또한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유주의(특히 경제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경쟁을 당연시하는 이유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Winner Takes All) 는 논리의 사회진화론, 그리고 더 나아가 힘센 문명국가가 힘이 약한 비문명 국가 또는 후진국가를 식민지로 포섭해 '문명화'를 시켜준다는 제국주의와의 공존을 그다지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승열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이런 시각은 또한 서구가 아시아보다 우월하다는 서구중심주의를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입니다.

이런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은 20세기의 수많은 비극을 잉태했습니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의 국제적 경쟁은 끝내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세계를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를 위한 정책으로 큰 영향을 끼친 케인즈주의 정책의 일시적 우위이후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행정부가 기본 기조로 삼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대를 풍미하기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따라서  21세기하고도 17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경쟁과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역시 위에서 설명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민주국가의 통치원리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을 함께 받아들여 경쟁과 개인의 이익을 절대시 하는 자유주의를 다수 국민 지배로 균형을 잡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지배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개인의 이익과 재산권의 절대화는 결국 사회를 극한의 양극화(polarization)로 몰고 갑니다.

수구 반공주의 정부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한국의 양극화 (polarization)가 극대화되고, 결혼율이 떨어지고 자살률이 올라간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찿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제 개인적이 사족(蛇足)을 붙입니다.
지난 대선 유승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바른정당'이 제대로된 한국의 '보수'를 표방하고 나섰습니다. 지지율이 미미해 찻잔 속의 폭풍으로 끝났지만, 결국 한국 보수의 미래는 바른정당이 표방하는 '보수'의 이념이 어떻게 한국에 자리를 잡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보수를 표방하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올바른 의미에서의 '보수'정당이 아닙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군사독재정권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당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까지 그 원류가 올라갑니다), 사실상 수구 반공을 표방하는 정당입니다.


보수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원칙에 대한 소신이라든가 법치주의에 대한 관념이 전무합니다. 지난 박근혜정부 시절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전제 왕조국가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할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으며, 모든 통치관계는 통수권자와의 친소관계를 통한 권위주의로 일관되었습니다. 당시 자유 한국당이 한 일이라고는 '거수기'역할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한국에 진짜 보수세력이 나타나야 하고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응원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집권민주당은 중도 보수에 속해 있지만, 한국에서 중도 보수가 아닌 보수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습니다. 정의당이 속한 진보도 그 외연을 넓혀야 겠지만 제대로 된 이념에 굳게 뿌리박은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이 이제는 자리를 잡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언제나 비이성적 결정을 해온 60-70대만이 지지하는 자유한국당은 그래서 앞으로 그들의 수구 반공주의의  스탠스를 바꾸지 않는 한 지지율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난 10년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공동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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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eautiful Mind: The Life of Mathematical Genius and Nobel Laureate John Nash (Mass Market Paperback, Export)
실비아 네이사 지음 / Simon & Schuster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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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 (Game Theory)의 창시자이자 천재 수학자였던 존 내쉬(John Nash)의 평전입니다.

이 책은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2001년 러셀 크로(Russell Crowe) 와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 주연의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고 싶어 구해 읽었습니다.

이 책은 한 천재 수학자가 겪어야 했던 불행했던 개인적 삶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 천재로 혼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존 내쉬는 그가 앓고 있던 정신분열증 (Schizophrenia)으로 개인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MIT의 수학 교수로 일하면서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 )과 게임이론(Game Theory) 을 확립시키며 경제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게임이론은 한사람의 행위가 다른 한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적, 전략적 상황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이론으로 내쉬에 의해 처음 확립되었지만 이후 군사학과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경제학 분야 중에서는 특히 과점시장 (場; 소수의 생산자가 시장을 장악하는 시장,한국의 무선통신시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을 분석하는데 아주 유용한 틀로서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내쉬균형은 게임이론의 한 개념으로서 상대방의 전략이 공개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자기 전략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 전략의 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 구성이 두 참여자에 의해 모두 예측되었을 때 이 게임은 내쉬 균형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독창적인 이론들을 확립할 당시의 그는 정신분열증으로 투병을 할 당시여서 노벨상 위원회는 그에게 수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병자에게 노벨상을 수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존 내쉬는 정신분열증을 완전히 극복한 이후 노년이 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 

 



그는 더구나 냉전(cold war)이라는 시대상황으로 인해  소련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그가 제대로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정신분열증은 이 시기에 더 악화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 실비아 네이사(Sylvia Nasar)는 내쉬가 게임이론에 대한 영감을 얻는 과정부터 그가 확립한 이론의 내용을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 쉽게 서술했으며, 내쉬가 앓던 정신분열증과 내쉬의 개인적 삶도 잘 어우러지게 서술해 놓았습니다.

영화의 내용과 책 내용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이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뛰어난 머리와 함께 정신분열증을 앓아 어려운 삶을 산 존 내쉬를 보면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내쉬처럼 머리가 아주 뛰어나게 좋지만 상처 입기 쉬운 여린 마음으로 정신병을 앓는 친구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어 더더욱 공감이 가는 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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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과 변용 -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
박태균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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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태균 교수가 쓴 한국경제개발계획의 기원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기 이전 박교수가 한국전쟁에 대해 쓴 ‘한국전쟁(2005)‘를 먼저 읽었습니다만, 리뷰는 이책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책은 박태균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책으로 저자가 Harvard Yenching에 연구원으로 가서 집필한 것으로 미국 현지에서 1950-60년대 대한 정책을 담당하던 인사들의 인터뷰를 수록하기도 한 책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당시라고 기억하는데, 당시는 1980년대 초이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이나 ‘새마을 운동‘에 대한 영향이 남아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국정이었던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한국의 경제개발 계획에 대해 상당한 부분 설명을 해놓았고, 사회 선생님이 중요성을 강조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배웠던 내용이 한국이 경제개발계획을 실행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어떻게 이루어냈다에 대한 결과에 대한 것이 전부였고, 이 경제개발계획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박태균 교수의 이 책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경제개발 계획의 시작, 그리고 경제기획원을 비롯한 한국의 경제엘리트들이 어떻게 육성되었는지를 미국의 대한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게 해줍니다.

먼저 이책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한국경제가 미국의 원조물자에 어떻게 의존해왔는지 보여주고, 한국의 미국의존을 어떻게 타파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당시 엘리트들의 담론을 제시합니다.
민간기업이 자본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두 입장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입니다.

초기 한국의 경제엘리트들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에 미국으로의 출장과 유학, 연수를 통해 미국의 경제전문가들과 접촉하고 배우면서 향후 한국의 경제계획을 입안해 실행하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1950년대까지 ‘현상유지정책‘을 기본적인 대한정책으로 채택했던 미국은 1960년대 들어 한국을 ‘근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합니다.

1950년대까지 지속된 미국의 현상유지정책로 인해 한국은 일본제국주의의 영향력과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했고, 이들은 이후 친미 수구 반공세력으로 한국의 기득권 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국은 1945년 한국의 해방과 일본의 패전이후부터 줄곧 대륙세력(중국 및 러시아)의 태평양진출을 봉쇄하는 정책 (봉쇄정책, containment)을 유지해 왔고, 이 봉쇄정책을 유지하면서 달라진 한국의 경제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현상유지에서 ‘근대화‘로 정책을 바꿉니다.

자본주의의 우월함을 알리기 위해 ‘경제적 우월함‘을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한국에 대한 경제개발계획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 관료들이 이 계획을 집행할 실무진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1960년대 미국의 영향력있는 안보전략가이자 당시 MIT교수였던 로스토우(Rostow, W. W.)는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보다 더 강력한 경제원조를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경제원조의 일원으로 미국은 저개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며, 특히 그는 저개발국의 군인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1960-70년대 박정희라는 군인이 정권을 장악하고 경제개발을 추진한 데에는 이와 같은 미국의 정책변화라는 외부적 환경이 한몫을 하게 됩니다.

1960년대 초 한국이 한국전쟁의 피해복구가 어느정도 끝났다고 생각한 미국은 대한원조를 줄이고 한국의 성장우선정책을 지원합니다.

경제개발계획 초기 경제관료들과 엘리트들은 균형성장을 기조로 경제계획을 수립할 것인지, 아니면 자본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불균형 성장을 기조로 채택할 것인지 논쟁을 벌입니다.

또한 이책은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이 사실 군사정부의 작품이 아니라 미국의 대한정책의 일환이었음을 밝힙니다.

산업발전의 공을 박정희 대통령의 공으로 돌리는 일반의 인식과는 다르게 역사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에서는 이 모든 것이 미국의 영향과 일정부분 관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물론 미국의 지원과 그들의 조언이 모두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 그들의 영향력이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에 일정부분 작용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입안되고 실행되었는가를 따져본 책이기는 하지만 결국 이들이 왜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당시 관여한 인물들의 생각을 따라간 책이며, 경제정책이 단순히 국내정치적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졌음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논문을 보완한 책이라 내용이 결코 쉽지 않고 또한 어느정도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쉽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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