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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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민주화운동 취재기입니다.

오랫동안 관광지로 유명했던 홍콩에 대해 가이드북을 만들어왔던 저자가 2016-2019년을 뒤흔들었던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르포를 썼습니다.

홍콩하면 딤섬과 완탕면이 생각나는 분들이라면 홍콩이 마주한 정치현실에 대해 이 책이 작은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홍콩이 지금의 홍콩이 된 것은 1842년에 일어난 아편전쟁때문이었고, 이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1997년까지 영국의 총독이 통치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유산인 것이죠.

1984년 덩샤오핑(鄧小平)이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기 위한 카드로 영국의 마거렛 대처 정부에게 주창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하나의 국가 안에 두개의 제도를 유지하자는 정치체제는 홍콩과 중국의 관계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체제로 지탱되었던 홍콩의 서구적 개인주의적 자유는중국이 통치를 시작한 이후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고 홍콩과중국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을그리고 있습니다.

베이징의 입장에서는 타이완이나 홍콩이나 모두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베이징의 관할 하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역사적으로 1949년 공산주의 중국 수립을 전후해서 공산 중국을 탈출한 사람들이 만든 사회인 타이완과 홍콩은 항상 중국 중앙정부와 마찰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습니다.

홍콩의 경우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통치권이 넘어가면서 정치적 격변을 맞게 됩니다.

이책에 대한 느낌이 개인적으로 남다른 것은 2019년 말 홍콩이공대학에서 공성전이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2020년 3월 홍콩에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시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아 홍콩의 MTR을 타고 어느 역을 가지 말아야 하는지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침 방문지역이 센트럴과 가까운 코즈웨이베이라 더 홍콩의 시위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홍콩에 있다 귀국했는데 이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2013년 홍콩의 침사추이를 방문하고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당시 홍콩인들이 왜 모두 거리에 쏟아져 나왔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르포를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홍콩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홍콩의 우산혁명(2016)과 2019년의 민주화시위릏 이해하려면 좀더 시간을 거슬러 1989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민주화 시위를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도 1949년 천인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었고, 더 시간을 거슬러 1919년 제1차세계대전의 종전을 고하며 그 이후 체제를 규정했던 베르사유조약에 대한 중국 청년들의 항의를 계기로 중국의 5.4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1919년,1949년 그리고 1989년 중국 현대사의 획을 그은 사건이 모두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겁니다.

1989년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는 중국 지도부를 경악에 빠뜨렸고 체제의 위기를 느낀 덩샤오핑을 비롯한 지도부는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서 홍콩이 영국의 손에서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자 영국의 자유주의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던 홍콩인들에 대해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로의 순응을 요구했고, 중국의 손에 홍콩이 넘어간 이후 많은 홍콩인들이 호주로 캐나다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떠났고 영연방 국가로 가지 못한 이들은 타이완으로 이주했습니다.

공산 중국을 떠나 만들어졌던 홍콩 사회에서는 비록 떠나지 못해도 공산주의 권위주의 통치체제에 대한 반감이 있어왔고, 영국의 식민통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자유롭게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이 중국 공산주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졌는데 어느 순간 중국인으로 살 수도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7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기 전까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는 고백을 합니다.

중국으로 홍콩이 넘어간 후 일국양제가 끝난 이후 홍콩을 떠나려 했던 홍콩 젊은이들이 홍콩을 지켜나가기 위한 자신들의 정체성 자각에 대한 증언이 보입니다.

한국이 민주화된 나라로 홍콩인들에게 소환되는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기도 합니다.

홍콩은 확실히 중국과 다릅니다. 공교롭게도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을 모두 가보았지만 상하이가 그 규모의 거대함과 화려함에 압도된다면 홍콩은 남국의 정서와 어우러진 묘한 영국풍이 인상적인 도시입니다. 단지 말이 중국 보통어와 광동어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또 상하이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이지만 홍콩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큰 차이입니다.

2000년 이전에 홍콩을 다녀온 적이 없어 1990년대의 영국령 홍콩은 저에게 어렸을 때 본 왕가위 감독의 영화’중경삼림(重慶森林,1994)’의 이미지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온통 ‘유통기한’에 집착하던 주인공의 모습으로요.

하지만 영국령 홍콩이 이미 사라졌고, 홍콩이 중국 땅이 되면서 이전에 우리가 알던 홍콩영화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지기는 합니다.

얼마전 들은 이야기인데, 제도적으로 홍콩이 점점 중국의 정치체제에 흡수되어 가는 건 맞는 것 같으나 개인들 수준에서는 가령 홍콩 사람이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다면 아직도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전히 오랫동안 다른 체제 아래에서 살아온 이들의 이질감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표지를 보면 여행 에세이처럼 생겼지만 내용은 홍콩과 중국간의 정치와 정체성에 대한 글이고 불가피하게 영국과 중국의 관계가 언급됩니다.

300여쪽의 짧은 글이니 한번 정독해도 될 듯 합니다.
한 홍콩인 가족을 인터뷰하고 그일생을 같이 반추해보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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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은 제가 공부하고 있는 과정의 교재로 채택되어 읽게 된 책입니다.

2016년 출판된 책이고 이후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출간 다음해인 2017년 부키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한국어판을 보실 분들은 이 책을 보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제 경험상 번역본이 영어 원서에 비해 용어나 맥락( context)를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번역되어썩 경우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의 번역본은 읽지 않아서 노코멘트입니다.

MIT에서 플랫폼경제를 공부한 학자들과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컨설팅을 해온 저자들이 쓴 글입니다.

상당수의 내용이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Havard Business Review;HBR). 등에 논문으로 기재되었던 내용입니다.

크게 보면 경제활동에 인터넷이 개입하면서 그전에 디지털화되지 않았던 경제주체간의 거래가 변화되고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ries of information)이 완화되고, 거래의 투명성(Transparency)이 증대되고 효울성이 증가되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기존의 경제가 경제주체는 투자를 통해 유형자산 ( tangible assets)을 소유하고 이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해서 경제활동을 해 왔고 필연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면서 고정비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업었습니다.

디지털 플렛폼은 기존의 시장을 전복시키고(Disrupted),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경제주체들의 행위와 비지니즈를 만들어갑니다.

플랫폼은 생산자 혹은 공급자와 수요자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이 두 주체사이를 이어줍니다( mediate).

또한 기존에 이미 투자되어 다른 경제주체들이 가진 유무형의 자신들을 반드시 플랫폼이 소유해야 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우버 (Uber) 의 경우처럼 자동차를 소유하지도 택시면허를 소지하지 않아도 플랫폼 서비스만을 제공하면서 택시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언제올지 모르는 택시를 기다리거나 택시기사의 실수때문에 불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매우 혁신적으로 시장을 바꿔 넣은 셈입니다.

하지만 우버와 계약을 맺은 운전수는 우버의 정식 직원도 아니고, 자동차에 대한 부담과 고객 안전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우버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미국법원은 우버운전사의 이런 모순적 상황에 대해 계속 우버 운전사들이 우버의 직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기각하고 이들이 우버의 정식직원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아직 판결이 확정된 상황은 아니지만, 미국 등 서구에서 플랫폼에 고용된 프리랜서 노동자들 혹은 플랫폼에 고용된 독립적 사업자( independent contractors)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고, 디지털 플랫폼이 단시간에 자신에 대한 부담없이 규모가 커지고(scale up) 시장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직원들을 직원취급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고, 심각한 불평등의 원인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한국도 쿠팡을 비롯한 이 커머스 플랫폼에서 유사한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에 우버의 사례는 사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시스템이 노동을 대체하고 노동자의 숙련이 별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혁신( innovation)의 의미가 무엇인지 기업들이 왜 효율만 우선적으로 추구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 화려한 용어가 사용되는 플랫폼이지만 이는 단지 과거에는 없어서 쓰지 못했던 인터넷 기술을 고전적인 경제 거래에 적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플랫폼으로 누가 상품/용역의 공급자인지, 누가 수요자인지, 그리고 관련 당사자가 누가 있는지 더 편해졌습니다.

인공지능의 모든 것을 바꾸고 사람들의 노동력이 필요없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되지만, 디지털 경제의 총회 중 하나인 플랫폼에 따르면 여전히 사람은 노동자이자 수요자/ 시장으로 존재합니다.

플랫폼 뿐만 아니라 다른 전통적인 기업들이 생산을 하고 부품수급을 하고 재고관리를 하고, 운영자금의 수급을 고민하는 모든 이유는 결국 이런 공급을 통해 수요’/ 시장/노동자에게 판매하기 위험입니다.

회려한 듯 보여도 경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플랫폼이 시장의 주체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고 이들이 지속적인 가처분 소득을 가질 수 없게 한다면 플랫폼의 한 축인 시장을 스스로 좀 먹는 상황으로 소탐대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동자가 시장이라는 이 엄연한 팩트를 우리는 언론을 통해 접한 적이 없습니다.

거의 황색언론이 되다시피한 현재의 언론 지형에서 저는 노동자가 시장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건 모종의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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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읽기 시작했던 ‘춘추전국시대 이야기’시리즈의 3번째 책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2017년 개정된 책입니다.

중국의 고대사가 황하( 黄河)유역공간을 중심으로 한 중원의 역사였다면, 이책은 황하 남쪽의 장강(長江)혹은 양자강(揚子江)과 한수 (漢水)사이의 사천지역 중심의 역사입니다.

중국 한족 중심의 화이론 (華夷論) 입장에서 보면 남쪽의 오랑캐, 즉 남만 ( 南蠻)이라고 할 수 있지만, 초나라는 중국 춘추시대의 통해 북쪽의 강국인 진(晉), 진(秦) 그리고 동쪽의 제(齊)와 함께 춘추시대 중기까지 4대 강국을 이룬 나라입니다.

이책의 주인공인 초장왕 (楚莊王)은 북쪽의 진(晉)와 힘의 균형을 이룬 후 동방경략을 시작하여 산동반도 유역까지 진출한 춘추시대 가장 영토확장을 많이 한 왕으로 장강유역부터 회하 (淮河)부근에 이르는 중국의 동남부 지역 수많은 소수민족들을 초나라의 통치권 인으로 끌어들이고 무리없이 통치한 왕입니다.

저자는 초장왕의 동방경략과 통치로 인한 유산으로 중국 남부에서 태어나 춘추시대 당시 북부 중원 지역애서 오랑캐 취급을 받던 초나라가 중원문명의 일원으로 포함되고 오랑캐로 더이상 불리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초장왕은 호색한인데다가 화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지만 전쟁을 잘 수행하는 왕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승리만 중요시 하는 다른 왕들과 달리 전쟁을 되도록 피하되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기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이긴후 후미를 공격하고 포로를 무자비하게 잡고 물건취급했던 금당이 다른 왕들과는 다르게 승패가 결정된 이후 상대방 병사들을 살려주거나 포로를 돌려보내는 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武) 즉 병법이란 주살(弋)을 멈춘다(止)는 의미로 쓸데없는 살생을 막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초장왕은 병법의 의미를 따라 일단 목적을 달성하였으면 불필요한 살생을 자제하고 상대방에게도 무인으로서의 예를 갖춘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장왕이외에도 그의 참모인 손숙오 (孫叔敖)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초장왕이 전쟁터에서 적들에게 한 행동은 대부분 손숙오의 간언을 따른 것이고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전투를 행하는 방법이나 승전 후 포로와 패자들 다루는 방법등은 모두 손숙오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초장왕이 춘추시대 세번째 패자로 올라온 이유도 그가 손숙오라는 춘추시대 최고의 참모를 등용했기 때문이며 그가 단순한 호전적 군주가 아닌 이유도 그가 패자를 다루는 방식, 그리고 그가 정복한 다른 민족들을 통치하는 방법이 매우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리더는 사람을 잘쓰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데, 초장왕은 그 의미에 딱 맞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평으로 제3권도 그 이전 두권 못지않게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주요사료인 춘추좌전(春秋左傳), 국어(國語),사기(史記), 여씨춘추(呂氏春秋), 신서(新書) 등 각종 사서에서 인용을 통한 사실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대 중국 역사서에 대해서 각 기록의 신빙성(reliability)을 평가하는 부분은 특히 주목됩니다.

수많은 사서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역사적 사실과 일화( episode)를 끌어모아 역사적 사실인지 확인하고 기록이 믿을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부분은 오래된 역사를 어떤 식으로 서술해야 하는지 그 실례를 보는 것이어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역사 서술은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재구성된다(reconstructed)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같은 중국 고대사 초심자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는 책으로 생각됩니다.

또 하나 고대사는 통치자에 대한 기록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정치사이자 외교사일수 밖에 없으며 또한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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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때 활약했던 청남(淸南)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인 윤휴에 대한 평전입니다.

2021년 개정 증보된 책으로 그 이전에는 ‘윤휴와 침묵의 제국(2011)’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윤휴가 60세가 다 되도록 출사를 안하다가 왜 늦은 나이에 출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중요시한 북벌 (北伐; 즉 청나라에 대한 정벌) 이유와 배경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장했던 조선의 신분제 문제와 같은 사회개혁적 주장이 소개됩니다.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17세기 조선의 왕이었던 숙종은 당시 사대부의 당인(黨人)들을 바꿔가며 정치를 했던 군주로 대중에게는 장희빈(張禧嬪)을 후궁으로 들인 임금으로 수많은 사극의 소재를 제공한 임금입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군주에게 고언(苦言)을 했던 윤휴가 단지 서인들의 공작정치의 희생양이 된 사실은 몹시 안타깝습니다.

여러인물들과 정치세력이 숙종대에 존재했지만, 윤휴의 대척점에서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송시열(宋時烈)을 평하지않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저자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2000/2016)’라는 책을 따로 집필해서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보시면 됩니다.

다만 송시열은 제가 아는 한 조선을 ‘ 주희 성리학’의 도그마만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내세워 정치적으로 매우 경직적인 대명사대주의(大明事大主義)만을 추종하는 나라로 만든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문인 사대부들의 원리주의적 성리학 우선주의와 사대부의 기득권 옹호를 위한 신분제 유지의 입장이 19세기 이후 조선의 민중반란의 원인이 되었고 외세를 끌어들이게 된 원인 중에 하나였습니다.

병역을 천시하고 평안도 함경도 등 특정지역에만 군사방비를 맡긴체 기호지방과 영남 지방 사대부들은 본인들의 치부외에 그 어떤 경제적 기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서인 노론을 대표하는 송시열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외척(外戚)인 안동 김씨(安東金氏)세력의 대를 이은 국정농단 (國政壟斷)도 조선의 몰락을 부추긴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에 서인 척신(戚臣)으로 등장하는 김석주가 바로 안동 김씨로 이미 17세기 중반 당시에 숙종의 외척으로 그가 남인에게서 정권을 빼앗기 위해 정치공작의 얼마나 전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시 송시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가 얼마나 지독한사대주의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중국의 명나라만 군주국으로 보고 조선의 왕은 중국의 제후로 보는 근본주의적 사대주의자로 숙종이전 효종당시 예송논쟁 ( 禮訟論爭)이 일어나자 조선의 왕가를 일반 사대부의 예와 같은 급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입니다.

사대부의 나라인 조선에서 조선 왕가의 정통성을 부인한 사건으로 정상적 전제군주국가라면 역모(逆謀)로 처벌받을 수 있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조 때 인조반정(仁祖反正)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임진왜란 (壬辰倭亂)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 나라를 멸망에서 구했으니 그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는 재조지은 (再造之恩)만을 주장하며 명청 교체기인 당시의 정세를 무시하고 떠오르는 강국 청은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한다는 몰상식한 주장을 지속합니다.

문인 사대부국가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거의 멸망직전까지 갈 정도로 절단이 났으나 당시 이순신의 수군을 제외하고 육군은 거의 괴멸상태를 면치 못했습니다. 명군의 참전은 군사력 부족으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정상적 지배층이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집권 서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명과의 재조지은만 강조하다가 만주에서 일어난 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국방력 강화를 소홀히하다가 다시 청의 침략을 받은 것이 병자호란입니다.
하지만 청은 현재의 중국보다 더 큰 영토를 가진 강국이었고, 당시는 개국 초기라 중원까지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중원 진출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영화 남한산성(2017)에서 보았듯이 남한산성으로 몽진한 조선 조정에서 김상헌(金尙憲)으로 대표되는 서인( 그리고 안동 김씨)은 없는 군사력에도 오랑캐인 청과 대항해야 한다는 헛소리로 일관하며 항복할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합니다.
현실을 몰각하는 서인 선비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사대부들은 , 특히 서인 사대부들은 임진왜란으로 나라를 망쳤으면서도 기득권 수호를 위해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았고 재조지은에 집착해 청과의 현실적 외교관계를 망각해 병자호란을 자초했습니다.

서인 사대부들은 광해군이 선조의 계비이지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 (仁穆大妃)를 유폐시킨 것이 천하의 의리를 저버린 것이라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켜 결코 왕이 될 수 없었던인조를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적통을 가진 선조의 적통인 광해군을 폐위시켰습니다. 광해군은 국제정세에 밝고 임진왜란당시 전쟁경험을 가진 드문 군주였지만 서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폐위시켰고, 그후 서인들은 청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삼전도(三田渡)애서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굴욕을 당하는 사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명분에 집착하기에 왕이 당한 치욕도 백성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 컸던 것이죠.

숙종 당시는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효종과 현종대를 거친 이후인데도, 그리고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는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여전히 서인들은 양반 사대부인 자신들의 기득권 옹호만을 위하지 국방력 방비도,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한 북벌을 위한 군사력 강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황당한 건 세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던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서인 사대부들은 성리학 도그마에 갖혀 전혀 현실감각울 가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병자호란 이후애도 서인 사대부들은 청나라의 대욋사정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청은 만주땅과 몽골땅 말고 한족들이 장악하고 있던 중원(中原)을 아직 장악하지 못했고, 명이 멸망당시 투항했던 명나라 장수 출신 오삼계(吳三桂)등이 삼번(三藩)의 난을 일으키고 대만을 장악한 정성공(鄭成功)등이 반청 내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조선의 서인 사대부들은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재조지은을 갚을 기회가 왔는데도 청의 눈밖에 나는 걸 두려워하던 겁쟁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휴는 시대를 잘못 타고나 유학을 배운 지식인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다가 겁쟁이이지만 권력욕은 큰 명분론자들인 서인 세력들이 행한 정치공작으로 숙청당했다고 봅니다.

17세기 유학을 배운 사대부가 명을 위한 재조지은을 위해 내란에 빠진 신생국가 청나라에 정벌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옮기려 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눙한 행보입니다.

더구나 서인들은 청태종 홍타이지 (Hong Taiji[皇太極])에게 서인이 추대한 인조가 병자호란 패배이후 청에게 항복하고 무릎을 끓었는데도 치욕스러워만 할 뿐, 보복은 생각도 안하고 눈치만 봅니다. 겁쟁이라는 말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도 적합한 경우를 첫기 어렵습니다.

이와같이 서인 특히 서인 중 노론(老論)세력은 조선 중기 죽 병자호란 이후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기까지 약 300여년 동안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무슨일아든 했고 정조 사후인 19세기 내내 조선의 왕은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립니다.

좋게 말해야 사대부가 왕권과 균형을 맞춘것이지, 사실상 왕권이 외척과 서인 사대부들 수하에 들어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입니다.


놀라운 점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는 심지어 19세기 말인 고종때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서강대 계승범 교수께서 2011년 쓰신 책 중 조선의 대명사대주의를 추적한 책이 있습니다. 보고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정지된 시간(서강대 출판부,2011)

개인적으로 훌륭한 학자적 자질을 가졌던 정조이후 국정을 컨트롤하기 힘든 고만고만한 왕들이 후계를 잇자, 사실상 조선의 정권은 외척과 서인 사대부 세력에게 넘어갔습니다.
조선의 통치체계가 조직에 의한 통치라기 보다 한 국왕의 능력여하에 따라 권력의 향배가 갈리는 성격으로 유교적 철인통치의 폐해를 정조와 정조 사후를 보면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왠만한 성리학자를 뛰어넘는 정조의 개인적 능력때문에 사대부들은 정조를 건드릴 수 없었으나 그사후 조선의 국왕들은 사대부들, 특히 서인 노론파 사대부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리고 이들 서인 사대부들의 영향력은 일제시대를 거쳐 현재 한국정치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서인의 거두 송시열의 고향이 충청도 회덕 (懷德)이고, 현재 대전 대덕구라고 합니다. 충청도의 보수성향은 선조들의 근본주의적 성리학 영향과 무관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경상북도 안동은 절 아시다시피 현재 한국 보수의 원류와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추측이긴 합니다만 외척이자 서인 당파의 주요세력이던 안동김씨를 비롯한 영남의 세력들이 아직까지도 한국 현대정치의 주요세력으로 한국의 기득권을 대표하고 있는 사실을 우연으 로 치부하기엔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고교 국사교과서에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세력들이 효종 당시 북벌을 주장했다고 하는데 명백한 오기라고 생각됩니다.
실제 북벌을 행하지 않았던 서인들이 북벌을 주장했다고 하면 읽는 즉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안했는데 왜 했다고 하지? 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사실을 복잡하게 이야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아무튼 어렸을 때도 유사한 내용을 배운 기억이 나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해가 안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의 서술이 문제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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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는 인간의 탄생 - 인종주의는 역사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나인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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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쓰여진 드문 ‘인종주의’ 담론에 관한 책입니다.

유럽 중에서도 서유럽 국가인 독일, 프랑스, 영국의 인종주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으며 책의 대부분은 독일의 인종주의 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지은이 나인호 대구대 교수가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이고,

두번째로 독일이 20세기 들어 타인종에 대한 혐오를 대규모 유태인 인종학살( Genocide)인 홀로코스트( The Holocaust)를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이론적 기반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관과 다르게 서구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인종인 백인종, 그중에서도 독일과 영국 등 지역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게르만 인종이 우수하고 문명적 인종이라는 ‘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려 100여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인데도, 게르만 인종이 다른 인종, 즉 가까이는 슬라브인, 라틴계 그리고 같은 백인 계통의
이슬람인 셈족 계통의 유태인을 ‘열등’인종이라고 폄하해 왔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이들의 주장이 일종의 ‘상상’으로 하얀피부에 금발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진 백인종의 지능이 흔히 말하는 비 백인들 , 즉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들보다 낫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같은 백인종끼리도 서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상대를 폄하하니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아시아의 중국인 일본인들은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에 건너가 미국횡단철도의 서부구간을 건설하는데 동원되었던 중국인들은 쿨리(Cooley)라고 불리며 짐승취급 받던일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박람회를 열어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시베리아 극지방의 에스키모를 전시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야만적인 일을 서슴없이 했던 사람들이 백인들입니다.


미국이 1960년대까지 흑인들을 차별해 화장실과 급수대 등을 흑인용을 따로 만들었던 나라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민주주의’종주국을 자처한다는 사실은 매우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위선적이죠.

그리고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출발한 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이 나라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점은 서구유럽과 미국에서 생각보다 슬라브인에 대해서도 인종적 편견이 심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구유럽과 미국 기준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이념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알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러시아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서구인들의 뿌리깊은 오만( arrogance)이 보이는 지점이죠.

미국은 민주주의를 이식한다며 이라크를 침략했지만 특별히 얻은 것 없이 흐지브지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한번도 러시아의 통치를 받아본 적 없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이를 복속하려고 하자 전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군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내용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서구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에 대한 일부 인종적 설명이 나옵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흑해연안 그리고 모스크바 지역까지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지역이고 심지어 몽골의 칸국 (Khanate)이 세워졌던 지역으로 최소 18-19세기 서구 유럽인들은 슬라브인들이 몽골인들과의 혼혈로 더럽혀졌다고 인식한 겁니다.

몽골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이 이런 인식을 하게 된 동기라고도 생각됩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흑해 연안 국가들이 없었으면 서유럽 전체가 몽골기병의 습격으로 초토화되었을텐데 이걸 정반대로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유럽의 화약고인 흑해연안 지역과 발칸반도는 서구유럽 기독교권과 문화적 인종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발칸반도 지역은 상당한 기간동안 현재 터키인 오스만 투르크제국( The Ottoman Empire)의 지배를 받던 지역입니다.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나 기독교를 믿어왔던 사람들이 이슬람제국인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었으니 충돌의 불씨가 항상 있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황태자 암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도, 동유럽의 한 나라인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의 해체이후 갈라져 코소보 내전이 일어난 것도 이 지역에서 인종청소( ethnic cleansing)가 일어나게 된 이유도 같은 이유입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19세기 중반 벌어졌던 전쟁이 크리미아 전쟁( Crimean War,1853-1856)입니다. 흑해의 요충지이자 부동항인 세바스토폴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오스만 투르크 연합군이 러시아를 상대한 전쟁입니다.

영국군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지기 위해 참전했지만 같이 싸워야하는 오스만 군대를 인종적으로 폄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스만 군이 미개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어이없게도 말이죠.

올해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러시아는 그들이 전략적 요충이라고 여겼던 크리미아 반도를 이미 2014년 복속시켰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왜 나치 독일이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크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인종혐오의 뿌리를 찿는데 있지만 이 과정에서 서구의 계몽주의( the enlightenment)가 인종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영국의 찰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설를 비롯한 적자생존의 원리와 진화론 그리고 이어 나타난 사회적 다윈주의( Social Darwinism)과 독일의 관념적 역사철학들이 서구의 서구중심적(Eurocentric) 내지는 게르만 인종 우월적 인종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보여줍니다.

19세기 독일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니체와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가 인종주의에 끼친 영향도 주목할 만 합니다.

애초에 제국주의라는 서구 중심적 식민지확장 정책과 함께 발맞추어 발전되었던 인류학 ( anthropology) 역시 서구 인종주의의 발전과 함께 발달하게 됩니다.

19세기 서구에서 유럽인종의 우수성을 밝히기 위해 세계각국의 비서구인들의 머리를 측정하고 두개골의 용적을 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세기 말 조선을 찿는 서구 학자들과 일본인들이 머리를 측정하고 전신사진을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이비과학으로 취급받는 골상학 (Phrenology)이 바로 두개골 측정을 통해 인종간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학문 분파로 서구 제국주의 극성기인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된 분파였습니다.

각 인종간의 우열을 가리겠다는 이야기는 우열에 따른 인정간의 불평등을 그대로 용인하겠다는 주장에 다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짐승같은 사람이 있으면 후자는 짐승취급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인종간의 차별이 당연시 되면 짐승같은 인종에 대한 혐오도 당연시됩니다. 19세기이후 자행된 서구인들의 이슬람 차별, 중국인 멸시 , 흑인에 대한 테러가 자행된 이유는 이들이 100여년간 발전시켜온 백인우월주의의 이론과 생각이 이들의 무의식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와 그에 따른 갈라치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차별과 혐오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자를 만드는 굉장히 악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독일문헌이 인용되었고 이 자료의 출판시기도 18세기부터 20세기 초인 것이 대부분이라 가독성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480쪽 가까이 되는 본문도 쉽게 읽기 어려운 분량입니다. 하지만 국내 저자가 쓴 본격적 서유럽 인종주의 이론 개론서라 일독할 가치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는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가 적극적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과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포드를 상당히 존경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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