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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평점 :
홍콩의 민주화운동 취재기입니다.
오랫동안 관광지로 유명했던 홍콩에 대해 가이드북을 만들어왔던 저자가 2016-2019년을 뒤흔들었던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르포를 썼습니다.
홍콩하면 딤섬과 완탕면이 생각나는 분들이라면 홍콩이 마주한 정치현실에 대해 이 책이 작은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홍콩이 지금의 홍콩이 된 것은 1842년에 일어난 아편전쟁때문이었고, 이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1997년까지 영국의 총독이 통치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유산인 것이죠.
1984년 덩샤오핑(鄧小平)이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기 위한 카드로 영국의 마거렛 대처 정부에게 주창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하나의 국가 안에 두개의 제도를 유지하자는 정치체제는 홍콩과 중국의 관계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체제로 지탱되었던 홍콩의 서구적 개인주의적 자유는중국이 통치를 시작한 이후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고 홍콩과중국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을그리고 있습니다.
베이징의 입장에서는 타이완이나 홍콩이나 모두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베이징의 관할 하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역사적으로 1949년 공산주의 중국 수립을 전후해서 공산 중국을 탈출한 사람들이 만든 사회인 타이완과 홍콩은 항상 중국 중앙정부와 마찰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습니다.
홍콩의 경우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통치권이 넘어가면서 정치적 격변을 맞게 됩니다.
이책에 대한 느낌이 개인적으로 남다른 것은 2019년 말 홍콩이공대학에서 공성전이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2020년 3월 홍콩에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시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아 홍콩의 MTR을 타고 어느 역을 가지 말아야 하는지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침 방문지역이 센트럴과 가까운 코즈웨이베이라 더 홍콩의 시위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홍콩에 있다 귀국했는데 이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2013년 홍콩의 침사추이를 방문하고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당시 홍콩인들이 왜 모두 거리에 쏟아져 나왔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르포를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홍콩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홍콩의 우산혁명(2016)과 2019년의 민주화시위릏 이해하려면 좀더 시간을 거슬러 1989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민주화 시위를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도 1949년 천인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었고, 더 시간을 거슬러 1919년 제1차세계대전의 종전을 고하며 그 이후 체제를 규정했던 베르사유조약에 대한 중국 청년들의 항의를 계기로 중국의 5.4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1919년,1949년 그리고 1989년 중국 현대사의 획을 그은 사건이 모두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겁니다.
1989년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는 중국 지도부를 경악에 빠뜨렸고 체제의 위기를 느낀 덩샤오핑을 비롯한 지도부는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서 홍콩이 영국의 손에서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자 영국의 자유주의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던 홍콩인들에 대해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로의 순응을 요구했고, 중국의 손에 홍콩이 넘어간 이후 많은 홍콩인들이 호주로 캐나다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떠났고 영연방 국가로 가지 못한 이들은 타이완으로 이주했습니다.
공산 중국을 떠나 만들어졌던 홍콩 사회에서는 비록 떠나지 못해도 공산주의 권위주의 통치체제에 대한 반감이 있어왔고, 영국의 식민통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자유롭게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이 중국 공산주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졌는데 어느 순간 중국인으로 살 수도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7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기 전까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는 고백을 합니다.
중국으로 홍콩이 넘어간 후 일국양제가 끝난 이후 홍콩을 떠나려 했던 홍콩 젊은이들이 홍콩을 지켜나가기 위한 자신들의 정체성 자각에 대한 증언이 보입니다.
한국이 민주화된 나라로 홍콩인들에게 소환되는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기도 합니다.
홍콩은 확실히 중국과 다릅니다. 공교롭게도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을 모두 가보았지만 상하이가 그 규모의 거대함과 화려함에 압도된다면 홍콩은 남국의 정서와 어우러진 묘한 영국풍이 인상적인 도시입니다. 단지 말이 중국 보통어와 광동어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또 상하이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이지만 홍콩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큰 차이입니다.
2000년 이전에 홍콩을 다녀온 적이 없어 1990년대의 영국령 홍콩은 저에게 어렸을 때 본 왕가위 감독의 영화’중경삼림(重慶森林,1994)’의 이미지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온통 ‘유통기한’에 집착하던 주인공의 모습으로요.
하지만 영국령 홍콩이 이미 사라졌고, 홍콩이 중국 땅이 되면서 이전에 우리가 알던 홍콩영화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지기는 합니다.
얼마전 들은 이야기인데, 제도적으로 홍콩이 점점 중국의 정치체제에 흡수되어 가는 건 맞는 것 같으나 개인들 수준에서는 가령 홍콩 사람이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다면 아직도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전히 오랫동안 다른 체제 아래에서 살아온 이들의 이질감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표지를 보면 여행 에세이처럼 생겼지만 내용은 홍콩과 중국간의 정치와 정체성에 대한 글이고 불가피하게 영국과 중국의 관계가 언급됩니다.
300여쪽의 짧은 글이니 한번 정독해도 될 듯 합니다.
한 홍콩인 가족을 인터뷰하고 그일생을 같이 반추해보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