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길윤형 기자의 논픽션입니다. 우리말로 쓴 논픽션 중 이렇게 잘읽히는 책을 만난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일제 말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 직후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체제가 와해되는 과정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건국준비위원회와 송진우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한 우파세력(이들 중 일부는 매우 중대한 친일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독립운동세력인 김구의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사이의 권력다툼이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책은 1945년 8월15일을 전후해서 1945년 9월9일 마군이경성에 진주하기 전까지의 기간만을 다룹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 사실상 외세의 개입없이 일제와 마주했던 짦은 기간입니다.

이 책으로 알게 된 중요한 몇가지를 적어보면,

첫째, 소련의 스탈린은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만주와 연해주, 사할린, 쿠릴열도를 소련이 병합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습니다.

둘째, 소련은 만주땅으로 진격한 이후 조선의 동북지방인 청진, 원산, 흥남을 먼저 점령합니다. 이는 미국보다 매우 빠른 전개였습니다. 일본은 패전 당일 소련군이 경성에 진주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치안유지를 부탁합니다.

셋째, 미국은 1945년 당시 아직 공산화되지 않았던 중국을 공산주의 봉쇄(containment)의 교두보로 삼으려 하고 있었고, 따라서 소련의 이른 조선반도 진출이 달갑지 않아 급히 오키나와에 주둔해 있던 24군단을 파견해 일본의 항복을 받고 미군정을 38선 이남에서 실시하게 됩니다.

넷째, 일본과 제2차세계대전을 태평양에서 홀로 맞선 미국은 일본의 항복 후 일본에 배타적인(exclusive) 점령정책을 시행하려 했고 사할린과 홋카이도에 소련의 진주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군사적 군계선으로 38선으르 인식하던 소련은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에 반발해 이미 소련군이 진주한 한반도 북부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워 자신들의 영토방위를 위한 완충지대를 설정하려고 합니다. 즉 조선의 분단의 원인을 미국에서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일본을 점령했으면 일본이 분할되었으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넷째,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카이로 회담, 얄타회담, 모스크바 삼상회의 등에 조선은 주체로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해방은 철저히 제2차세계대전 승전국의 국가이해에 따라 결정된 것입니다. 특히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결렬되고 우파의 이승만은 ‘정읍발언 ‘을 통해 38선 이남만의 단독선거를 주장하고 북한은 북한대로 정권을 수립해 결국 분단이 고착화됩니다.

다섯째, 미군 제24사단의 경성진주 이후 체결된 미국과 조선총독부 간에 체결된 항복조인식에 조선은 대표를 참석시키지 못했습니다. 여운형이 추진한 건국준비위원회의 국가건국사업은 일본이 아직 정식 항복 전이라는 이유로 일본에 의해 무시되고, 미군정 실시 이후에는 미군정 권위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시되었습니다.

친일 이력이 있는 우파세력은 한국민주당(한민당)을 결성해 미군정의 ‘통역권력 ‘으로 거듭납니다.
미군정 책임자 하지중장은 애초 점령의 편의를 위해 기존 총독 조직과 관료들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다가 조선의 항의를 받은 이후 미국태평양지역 총사령관 맥아더의 지시로 총독이하 일본인 고위 관료들을 해임시키고 미군정청을 발족 시킵니다. 한국 정부수립이후 우파에서 국가재건계획을 어떻게 세웠는지 왜 우파들 중 평안도 출신이 많은지 보려면 김건우 교수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느티나무책방,2017)’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평안도 출신 우파 지식인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일부는 나중에 이남에서 근본주의 기독교 전통을 세우며 한국 극우 정치세력에 강력한 지지자가 됩니다. 이글 중에는 몰상식하게도 ‘목사세습’이라는 희안한 세습장치를 만들어서 교회의 부를 세습하기도 합니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데 근본이 없습니다.

여섯째, 건국준비위원회와 공산주의자들의 일제에 대한 독립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의도적으로 가려졌던 부분입니다. 심지어 1980년대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전 냉전기에는 국내에서 논의 자체가 금기시 되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고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2017년에 나온 최백순의 ‘조선공산당 평전(서해문집)’을 보면 가려졌던 역사의 일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1945년부터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한국현대사는 이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매우 다른 논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정치인 이승만의 경우는 주목할만 합니다.

이책을 보면 책말미 한민당 발족이후 미군정 수립후에야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이 어떻게 초대 대통령으로 오르게 된건지 궁금합니다. 현재 한국의 극우세력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인물이라 더 궁금합니다.

그는 여운형이 주도하던 건준이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등장한 이후 공산주의에 경도되었던 건준에서 국가주석으로 지명되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시는 우파가 아니라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공산주의자들도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승만은 구한말이래 외국생활을 오래한 당시로서는 희귀한 이력을 가진 정치인인데 소위 ‘검은머리 외국인’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미군정이후 첫 대통령이 미국에서 살던 이승만이고 퇴임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사실상 미국인이 첫대통령이 아니었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미군정기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하지만 간략히 몇가지 정리해 보면,

첫째 미 군정을 책임지던 미군 제24사단 사단장 존 하지는 조선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기존의 조선총독부 조직과 관료들을 그대로 이용하기를 선호했습니다. 마국이 일본에 대해서도 동일한 정책을 펼쳤지만 , 특히 조선에서는 식민통치 조직이외 다른 통치조직이 없었던 상태에서 하지의 정책은 친일파와 친일전력이 있는 영미 유학출신 지식인들애게 기회의 공간을 열어주었습니다. 일본의 패망이후 삶이 망가질 줄 알았던 이들에게 반전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둘째, 조선인 친일 전력자들은 해방 직후 자신들의 안위에 불안을 느꼈고 실제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제조일본인의 치안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대로 미군정이후 상황이 역전됩니다. 친일파들은 확실히 미군정 이후 출세의 기회를 보장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에 통합된 정치세력이 없었다는 건 뺘아픈 대목입니다.

셋째, 좀 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미국은 조선을 일본과 동등한 적국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맥아더는 일본을 점령(占領,occupation)하고 하지는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조선을 점령한 것입니다. 한국의 보수적 숭미주의자들은 화들짝 놀라겠지만 조선이 ‘점령’되었다는 건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미군은 조선을 해방하기 위해 38선 이남에 진주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항은 38도선 이북을 점령했던 소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소련은 연합국 소속으로 태평양지역의 적국인 일본과 대항해 싸웠습니다.

넷째, 미국의 38선 이남지역의 점령은 그 원인을 생각할 때 소련의 38선 이북지역 점령 그리고 미국의 일본점령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재2차세계대전의 태평양 지역(the Pacific Theater)의 종전과정 그리고 당시 미국과 소련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중국의 공산화(1949)이 미국의 한반도 전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국은 애초 중국에서 소련을 봉쇄할 생각이었으나 중국의 공산화로 한반도로 전선을 옮기지 않으면 안되었을겁니다.

아무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분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할 걸로 보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연구서가 있는지 찿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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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얼마전 작고한 영국의 전쟁사가 존 키건(John Keegan)의 제1차세계대전사입니다.

국내에 이미 번역서가 나온 제1차 세계대전의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1999년 Knopf 출판사에서 나온 초판본으로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해 구해 읽었습니다.

1999년 판 기준으로 후주와 첨고문헌을 제외하고 본문 427쪽으로 영미권 역사서 기준으로 볼때 적당한 길이의 책입니다. 본문만 800-1000쪽을 넘는 책들이 많아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나온지 20년이 넘은 책이지만 제1차세계대전에 관한 책으로 영미권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에 해당됩니다.

오히려 영미권에서 클래식 반열에 든 제1차세계대전에 관한 책으로는 AJP Taylor의 책을 꼽습니다. 가장 최근판으로 2009년 Penguin UK 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1차세계대전은 20세기의 나머지 시기를 규정한 중요한 사건이고 한국의 근현대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는 전쟁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가 그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이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전쟁이 역사의 모든 것을 바꾼다고 하는데 오히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보다 이 전쟁이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세계대전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고 저도 동의합니다.

흔히 두 대전 사이의 기간을 interwar period(1918-1939)라고 하는데 이 시기 전세계를 덮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1929)이 나타나고 독일에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가 나타나고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나 정착되고 중국에 군벌이 할거하고 중일전쟁이 벌어지는 등 격변이 일어납니다.

이 interwar period 에 대해서는 역시 영국의 역사가인 E.H. Carr 의 ‘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Harper,1964)’가 대표적인 클래식입니다.

이시기는 왜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불리는 독일의 나치당과 히틀러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이 등장하게 되는지 분석하게 되는게 언제나처럼 서구의 입장입니다.

영국의 사관학교인 샌드허스트 (Sandhurst)에서 전쟁사를 가르치던 존 키건이 지은 이 책은 글 자체가 대단히 영국적이고 다분히 영국(제국)의 입장에서 씌여진 책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인 우리가 보기에 불편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외서를 읽는 목적이 우리와 다른 시각(perspective)을 보고 시야를 확장하는데 있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서구에서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서술은 프랑스와 벨기에에 걸쳐 이루어진 서부전선(The Western Front)에 치중되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이 맞붙은 동부전선(The Eastern Front)에 대한 서술은 무시되는 편이었는데 최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합스부르크 제국)의 입장에서 본 제1차세계대전사가 출간되는 등 새로운 해석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서구제국들이 출전했던 서부전선을 위주로 전쟁사를 보는 관점에서 당시 적국인 독일/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만제국입장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두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2014년 출간된 ‘Ring of Steel(Allen Lane)’이 대표적인 책입니다. 공교롭게도 제1차세계대전에 관련해 지금 소개하는 모든 책들을 다 영국 저자들이 지은 것들입니다 .

아무래도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에 1917년 이라는 늦은 시간에 마지못해 참전했고 전쟁 종반 독일/합스부르크 제국의 패배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인명피해를 봐 확실히 미국의 전쟁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가장 많은 전서자를 낸 국가들로 이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들만 수백만명에 이릅니다.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The Korean War)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듯, 서구 유럽인들에게는 제1차세계대전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17-21세 정도의 어린 남성들이 전쟁에 참전해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기념비들이 이들이 다녔던 학교나 교회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은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전사자를 기록한 전쟁으로 유럽(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전쟁당시 징집대상 (conscription)이었던 1899/1900년대 생의 청년층 남성의 약 35-37%가 전사하는 심각한 인구감소를 경험했습니다(p423).

그야말로 한세대의 젊은 남성이 사라진 대격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현대적 기갑전의 초기였던 당시 한 전투의 사망자가 많게는 사십만(400,000)에 이르고 하루 전투로 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사망하는 참혹한 전투였습니다.

무기가 아닌 전투사병들이 몸으로 전선에 나서는 마지막 전쟁으로 기록되는 이 전쟁이후 전쟁은 사람보다 무기에 의존하는 경제전쟁 양상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며 끝났고 이후 냉전(The Cold War)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점에서 과연 이후에 사회에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 맞는지는 회의적입니다. 반목이 끝나고 새로운 형태의 반목이 생겨난 면에서 그렇습니다.

끝으로 이책은 개론서의 성격이기 때문에 이책에 소개된 각 전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러 개별 연구서를 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구는 전쟁사와 군인 정치가들에 대한 평전 출간이 활발해 개별적인 자세한 내용을 더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서구제국이 근대 이래 수많은 전쟁을 주도했던게 아마 이런 전쟁관련 서적출간이 활발한 주요한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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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표당시 ‘귀태(鬼胎)’라는 표현으로 한국 정치권에서 논란이 있었던 책입니다.

저자 강상중 교수에 따르면 귀태란 ‘일본군국주의가 낳은 존재, 즉 만주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만주국과 인연이 있는 일본의 보수정치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대한민국의 군사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관계를 되짚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1960-70년대 박정희가 만든 독재적 통치와 국가주도의 계획경제구조는 그 원류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라는 점입니다.

정책 뿐만 아니라 만주국 출신 일본의 관료, 정치가와 한국의 군사쿠데타 세력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 책은 지적합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는 한석정교수께서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 모델이 만주국의 계획경제, 통제경제와 연장선 상에 있다는 점을 밝히는 저서를 내기도 하셨습니다( 만주모던, 문학과 지성사, 2016).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만주와 전후일본 그리고 한국 군사정부의 연관성을 1960년대 시작된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을 통해 보여줍니다.

쇼와의 요괴로 알려진 정치가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는 얼마 전까지 일본 총리로 있었던 아베신조(安倍晋三 )의 외조부입니다. 대를 이어서 세습 정치가가 되는 현상은 지극히 일본적인데 규슈
야마구치(山口) 출신의 이 정치가 집안은 일본의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집안 중 하나입니다. 매이지 시대 이 지역이 정한론(征韓論)의 발상지인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통해 국군이 되기 전 1945년 이잔까지는 북경 근처 열하(熱河)근방에서 만주군 장교로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일본명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제일 유명한 박정희의 일본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오카모토 미노루 (岡本 實)라는 또 다른 일본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 책 해제에 따르면 조선출신 만주국 하급장교가 얼마나 대단한 친일파냐고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일본과 조선 모두 합쳐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조선사람은 총 89명 밖에 되지 않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출신은 87명. 이중 임관한 사람은 고작 63명 뿐입니다 (1911-1945). 박정희는 인간문화재급으로 희귀한 조선출신 일본제국의 군인이었고 철저한 친일행위를 한 것에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철저히 친일적 사고방식을 가진 제국군인 출신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후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만주의 통제경제, 계획경제 방식을 한국 경제발전에 이용하려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1960년대 마국의 점령에서 전후로 넘어온 일본 정치계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전범 출신 정치가들과 거리감이 없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일본의 자금과 협력이 필요한 박정희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집착하게 되고 미국이 닉슨 대통령이래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하는데 극렬한 반대를 하게됩니다.

박정희의 유신(維新)은 철저하게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따라한 것으로 흔히 군사독재라는 정치적 측면이 부각된 것에 비해 유신당시 한국의 ‘중공업 구조전환’에 대해서는 많이 주목되지 않았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유신경제는 박정희와 더불어 비서실장인 김정겸과 오원철 두 사람에 의해 진행되었고 독자적 무기개발을 전제로 국민들에게는 ‘중공업 산업 육성’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기업들에게 정책적 금전적 특혜가 집중되었고 여기에 일본재계의 자금과 정치자금 조달이 일어나 정경유착이 고착화되고 한일간 만주인맥을 중심으로 커넥션이 형성된 것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와 더불어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해 ‘청구권협상’을 하게 되는데 당시 박정희의 측근이던 김종필이 진행하던 협상은 문제적 문구를 합의에 포함합니다.

박정희는 일본의 자금이 급히 필요한 나머지 일본과의 청구권 협상에서 경제협력이라는 방식으로 “ 완전하고 또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이라는 문구를 삽입합니다.

한일청구권협상이후 이 문구로 일본은 한국이 요구한 한국ㅁ략애 대한 더이상의 배상청구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딸도 같은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위의 “완전하고 또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이라는 문구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과 위안부협상을 타결할 때 똑같이 사용되었습니다.

대를 이어 일본과의 관계를 꼬아바린 외교적 실책에 기막히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외교를 모르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처럼 어이없는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어서 솔직히 조마조마 합니다.

한미일관계로 말한다면 이제 한국이 일본에 종속되어 있다는 전제로 하는 굴욕외교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한국이 일본의 종속변수로 놓고 짰다고 해도 70여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한국의 위상이 일본과 비숫하거나 이미 뒤어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관계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가능합니다.

일본과 협의하지 말고 미국과 직접 이야기하는 부분은 해야합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왜 외교관계를 하면서 알아서 기고 먼저 상대국가에게 숙이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좋은 포지션을 스스로 포기하나요?
미스터리입니다.

한국의 극우 정치세력이 신처럼 받드는 대통령인 박정희가 사실 일본제국 군인으로 민주국에서 항일무장세력과 중국의 공산군을 토벌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한국 극우세력이 친일파와 연결되고 친일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그래서 조금도 과장이 아니고 자연스럽습니다.

현재 한국의 정경 유착의 뿌리도 박정희 군사정권까지 소급되며 당시 경제기획원이나 상공부 등 경제부처 수장 중 일제시기 일본에서 공부한 이들이 상당했습니다.

기업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경제관료 생활을 하다 그 감독하던 기업애 취업하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고위관료 출신 명망가의 자서전을 찿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1960-70년대의 경제는 철저한 계획경제이고 이는 만주국의 영향을 받았고 만주국의 계획경제를 처음 입안했던 미야자키 마사요시(宮崎正義)는 러시아 혁명당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직접 관찰한 러시아통이었습니다.

요즘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극우 보수 세력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의 우상인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그 기원을 따지자면 소련의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 온 것이죠. 국가가 자원을 통제라고 자원배분에 경제기획관료가 관여한다는 면에서 분명히 시장은 보이는 손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취약국가’상태로 일제에서 해방된 한국은 이승만 정부당시 단독국가 수립 후 미 점령시기 미국의 원조없이 경제운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술과 자본이 없고 일제가 기반시설조차 식민지 통치를 위한 것을 제외하고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방직후 한국의 경제상황과 자원부족 등에 대해서는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미지북스 2020)’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0여년 후 일본은 만주국 출신 친일파 통치자가 도움을 요청하자 청구권 명목으로 투자금을 제공하면서 한국의 지도층과 유착합니다.

정말 일본에서 해방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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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마음의 정치학 1 맹자, 마음의 정치학 1
배병삼 지음 / 사계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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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다보면 필연적으로 정치와 만나게 되고 우리가 사회에서 먹고 사는 일의 모든것이 결국 정치(政治)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사회의 지도자가 (그가 왕이든, 황제이든,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관계없이) 한 결정에 따라 사회의 방향이 수없이 틀어지고 바뀝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經濟)문제는 정치를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결정권자가 모두 정치가인데 경제문제를 정치와 떼어놓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죠.

따라서 모든 경제는 정치경제(政治經濟)이며 흔히 알고있는 통계적 경제학(econometrics)를 비롯한 주류경제학에서 수학적 물리학적 설명방식을 택한 선택이 일반대중이 경제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된 주요인입니다.

기계론적 물리학적 설명방식을 택한 경제학의 방법론적인 모순이 대중의 경제 몰이해의 주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숫자를 포함하고 있어도 수학이 아니고 인간과 인간사회가 수치로서만 설명될 수는 없겠죠.

기본적으로 정치학과 경제학 모두 사회가 주된 관심대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맹자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단순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근세사를 보면 수없이 거론되는 정치철학이 바로 맹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근대이후 서양의 정치체제인 자유민주주의와 전제적 채제인 파시즘(Fascism) 그리고 공산주의(Communism)을 알기 위해서는 서양의 관련서를 읽을 수 밖에 없지만 동아시아 전근대의 정치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도정치 (王道政治)의 이론을 정립한 맹자(孟子)라는 유교경전을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제가 언급할 수있는 능력은 없고 다만 배병삼 교수께서 상세하게 원문해석과 해설을 맹자가 안용한 수많은 경전과 역사서를 인용해 설명해주시고 있어서 매우 유용합니다.

다만 상세하게 설명하시다가 보니 책이 본문만 500쪽을 넘어갑니다.

이 두꺼운 책 3권이 맹자라는 경전을 해설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유교적 정치철학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결국 지나가야 할 큰 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단 일독으로 시작했지만 경전은 그 특성상 일독으로 끝날 수 없는 성격의 책입니다. 철학보다 역사와 경제에 경도된 제 독서이력에서 보면 상세한 해설에서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닙니다.

맹자가 살았던 중국의 전국시대 (戰國時代)라는 역사환경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글의맥락(context)적 이해 자체가 불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책의 마지막인 등문공 (滕文公) 상편에 나온 몇가지만 정리하고 마칠까 생각합니다.

맹자는 고대농업사회인 중국에서 직업정치가 (professional politician)가 농부로부터 분화되어 나오는 것을 역사발전의 필연으로 보았습니다. 즉 정치가는 농사를 위해 물길을 대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정신노동’을 해야하는 자들이고(勞心者), 농부들은 왕을 비롯한 국가의 모든 이들을 위해 ‘육체노동’을 하는 이(努力者)로 농부들이 왕을 먹여살린다고 했습니다.
정신노동을 통한 의사결정에 시간을 쓰고 또 스트레스도 받는지라 지도자는 이상적인 ‘같이 농사짓기’를 할 여유도 없고 그래서 그래서 농부들이 지도자를 먹여살리는 주장을 했습니다.

둘째로 농경뿐만 아니라 시장(市場)의 존재도 인정해 같은 쓰임새의 물건이라도 품질에 따라 가격차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중요시해야 할 또다른 언급은 항산(恒産), 즉 살아갈 기반이 되는 물질적 생계수단이 있어야, 항심(恒心), 즉 일관된 마음이 생긴다는 주장입니다. 즉 국가는 국민들의 생계에 걱정없게 해 주는 것이 통치의 첫번째 덕목이라는 점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정치의 영역에서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 다시 한번 지적한 대목입니다.

생계수단을 마련해주는 수단이 시대에 따라 다를지라도 국가 통치의 기본적 역할 자체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국가가 방관하는 건 보수주의 유학자인 맹자의 관점에서 봐도 직무의 방기(放棄)에 가까운 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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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국가 3부작인 걸 모르고 읽은 책입니다. 책 뒷날개에 이어서 읽을 후속작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후속작들도 읽을 예정입니다.

이책이 번역출판된 해는 2017년이지만 중국어판이 출판된 해는 2010년으로 7년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더구나 저는 2022년에야 이 책을 읽었으니 책의 내용과 현재 상황의 괴리를 감안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이 출간된 2017년은 아직 코로나 팬데믹을 겪기 전이고 한국과 중국간에 현재와 같은 신냉전 구도가 시작되기 전입니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블록의 붕괴이후 덩샤오핑 (鄧小平)이래 개혁 개방을 추진한 중국에게 2002년 중국의 WTO가입을 승인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상호공존하면서 세계화된 국제경제체제를 유지하던 시기가 2008년 전후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중국배제 정책이 시행되고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미국편에 가담하면서 이 책이 쓰여진 2010년의 세계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1976년 생으로 베이징대학 졸업한 젊은 지식인인 저자는 하지만 대학에 적을 두는 아카데미아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시각으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합니다.

청조(淸朝)의 몰락에서부터 군벌시대, 중일전쟁, 장제스(蔣介石), 중국 공산당 창당, 마오쩌뚱 (毛澤東), 그리고 덩샤오핑 (鄧小平)의 개혁개방까지를 일별하고 이후 공산주의의 정체(政體)와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가진 중국 사회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서양의 중국전문가들이 바라본 중국의 사회를 인용한 부분이 상당하고, 내부에서 중국인들이 보는 중국의 역사 사회도 같이 있어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이 쓴 책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중국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시각과 논평을 보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용합니다.

에세이 형식이라 본문에서 인용된 수많은 책들은 ‘중국근현대사 강의(한울아카데미,2021)’ 각 장 말미에 붙은 참고도서와 상당수 중복됩니다.
지금 미국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 미국이 중국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실 수 있는데 그 반대가 맞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하버드의 페어뱅크 교수가 바라본 중국읽기는 현재까지도 서구와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에 공산주의 봉쇄를 위해 장제스를 서구가 지원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꼭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다른 분들도 언급하셨듯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미성숙한 나라’라는 언명이 어찌 중국에만 해당될 수 있겠습니까?

성숙한 나라가 반드시 서구의 자유주의 국가일 필요는 없지만 한국이 1948년 건국이후 70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같이사는’ 사회가 되지 못한 건 한국의 엘리트 기득권층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나라나?’ 고 질문하던 박근혜 정부 당시의 한국의 사회 정치 상황이 또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입니다.

복합재난상황에 직면한 한국의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정부는 난데없이 균형재정과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경제정책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증거가 주류 경제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데도 현재 한국 정부는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자본가와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부를 독점했다(p326)

는 지적은 현재의 상황을 마치 눈앞이 본 것처럼 보여줍니다.

중국사회와 그 이전 100여년 간의 과거사를 보며 한국사회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이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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