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책은 얼마전 작고한 영국의 전쟁사가 존 키건(John Keegan)의 제1차세계대전사입니다.
국내에 이미 번역서가 나온 제1차 세계대전의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1999년 Knopf 출판사에서 나온 초판본으로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해 구해 읽었습니다.
1999년 판 기준으로 후주와 첨고문헌을 제외하고 본문 427쪽으로 영미권 역사서 기준으로 볼때 적당한 길이의 책입니다. 본문만 800-1000쪽을 넘는 책들이 많아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나온지 20년이 넘은 책이지만 제1차세계대전에 관한 책으로 영미권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에 해당됩니다.
오히려 영미권에서 클래식 반열에 든 제1차세계대전에 관한 책으로는 AJP Taylor의 책을 꼽습니다. 가장 최근판으로 2009년 Penguin UK 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1차세계대전은 20세기의 나머지 시기를 규정한 중요한 사건이고 한국의 근현대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는 전쟁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가 그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이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전쟁이 역사의 모든 것을 바꾼다고 하는데 오히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보다 이 전쟁이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세계대전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고 저도 동의합니다.
흔히 두 대전 사이의 기간을 interwar period(1918-1939)라고 하는데 이 시기 전세계를 덮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1929)이 나타나고 독일에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가 나타나고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나 정착되고 중국에 군벌이 할거하고 중일전쟁이 벌어지는 등 격변이 일어납니다.
이 interwar period 에 대해서는 역시 영국의 역사가인 E.H. Carr 의 ‘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Harper,1964)’가 대표적인 클래식입니다.
이시기는 왜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불리는 독일의 나치당과 히틀러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이 등장하게 되는지 분석하게 되는게 언제나처럼 서구의 입장입니다.
영국의 사관학교인 샌드허스트 (Sandhurst)에서 전쟁사를 가르치던 존 키건이 지은 이 책은 글 자체가 대단히 영국적이고 다분히 영국(제국)의 입장에서 씌여진 책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인 우리가 보기에 불편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외서를 읽는 목적이 우리와 다른 시각(perspective)을 보고 시야를 확장하는데 있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서구에서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서술은 프랑스와 벨기에에 걸쳐 이루어진 서부전선(The Western Front)에 치중되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이 맞붙은 동부전선(The Eastern Front)에 대한 서술은 무시되는 편이었는데 최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합스부르크 제국)의 입장에서 본 제1차세계대전사가 출간되는 등 새로운 해석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서구제국들이 출전했던 서부전선을 위주로 전쟁사를 보는 관점에서 당시 적국인 독일/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만제국입장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두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2014년 출간된 ‘Ring of Steel(Allen Lane)’이 대표적인 책입니다. 공교롭게도 제1차세계대전에 관련해 지금 소개하는 모든 책들을 다 영국 저자들이 지은 것들입니다 .
아무래도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에 1917년 이라는 늦은 시간에 마지못해 참전했고 전쟁 종반 독일/합스부르크 제국의 패배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인명피해를 봐 확실히 미국의 전쟁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가장 많은 전서자를 낸 국가들로 이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들만 수백만명에 이릅니다.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The Korean War)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듯, 서구 유럽인들에게는 제1차세계대전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17-21세 정도의 어린 남성들이 전쟁에 참전해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기념비들이 이들이 다녔던 학교나 교회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은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전사자를 기록한 전쟁으로 유럽(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전쟁당시 징집대상 (conscription)이었던 1899/1900년대 생의 청년층 남성의 약 35-37%가 전사하는 심각한 인구감소를 경험했습니다(p423).
그야말로 한세대의 젊은 남성이 사라진 대격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현대적 기갑전의 초기였던 당시 한 전투의 사망자가 많게는 사십만(400,000)에 이르고 하루 전투로 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사망하는 참혹한 전투였습니다.
무기가 아닌 전투사병들이 몸으로 전선에 나서는 마지막 전쟁으로 기록되는 이 전쟁이후 전쟁은 사람보다 무기에 의존하는 경제전쟁 양상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며 끝났고 이후 냉전(The Cold War)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점에서 과연 이후에 사회에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 맞는지는 회의적입니다. 반목이 끝나고 새로운 형태의 반목이 생겨난 면에서 그렇습니다.
끝으로 이책은 개론서의 성격이기 때문에 이책에 소개된 각 전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러 개별 연구서를 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구는 전쟁사와 군인 정치가들에 대한 평전 출간이 활발해 개별적인 자세한 내용을 더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서구제국이 근대 이래 수많은 전쟁을 주도했던게 아마 이런 전쟁관련 서적출간이 활발한 주요한 이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