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표당시 ‘귀태(鬼胎)’라는 표현으로 한국 정치권에서 논란이 있었던 책입니다.

저자 강상중 교수에 따르면 귀태란 ‘일본군국주의가 낳은 존재, 즉 만주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만주국과 인연이 있는 일본의 보수정치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대한민국의 군사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관계를 되짚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1960-70년대 박정희가 만든 독재적 통치와 국가주도의 계획경제구조는 그 원류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라는 점입니다.

정책 뿐만 아니라 만주국 출신 일본의 관료, 정치가와 한국의 군사쿠데타 세력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 책은 지적합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는 한석정교수께서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 모델이 만주국의 계획경제, 통제경제와 연장선 상에 있다는 점을 밝히는 저서를 내기도 하셨습니다( 만주모던, 문학과 지성사, 2016).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만주와 전후일본 그리고 한국 군사정부의 연관성을 1960년대 시작된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을 통해 보여줍니다.

쇼와의 요괴로 알려진 정치가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는 얼마 전까지 일본 총리로 있었던 아베신조(安倍晋三 )의 외조부입니다. 대를 이어서 세습 정치가가 되는 현상은 지극히 일본적인데 규슈
야마구치(山口) 출신의 이 정치가 집안은 일본의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집안 중 하나입니다. 매이지 시대 이 지역이 정한론(征韓論)의 발상지인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통해 국군이 되기 전 1945년 이잔까지는 북경 근처 열하(熱河)근방에서 만주군 장교로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일본명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제일 유명한 박정희의 일본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오카모토 미노루 (岡本 實)라는 또 다른 일본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 책 해제에 따르면 조선출신 만주국 하급장교가 얼마나 대단한 친일파냐고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일본과 조선 모두 합쳐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조선사람은 총 89명 밖에 되지 않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출신은 87명. 이중 임관한 사람은 고작 63명 뿐입니다 (1911-1945). 박정희는 인간문화재급으로 희귀한 조선출신 일본제국의 군인이었고 철저한 친일행위를 한 것에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철저히 친일적 사고방식을 가진 제국군인 출신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후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만주의 통제경제, 계획경제 방식을 한국 경제발전에 이용하려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1960년대 마국의 점령에서 전후로 넘어온 일본 정치계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전범 출신 정치가들과 거리감이 없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일본의 자금과 협력이 필요한 박정희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집착하게 되고 미국이 닉슨 대통령이래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하는데 극렬한 반대를 하게됩니다.

박정희의 유신(維新)은 철저하게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따라한 것으로 흔히 군사독재라는 정치적 측면이 부각된 것에 비해 유신당시 한국의 ‘중공업 구조전환’에 대해서는 많이 주목되지 않았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유신경제는 박정희와 더불어 비서실장인 김정겸과 오원철 두 사람에 의해 진행되었고 독자적 무기개발을 전제로 국민들에게는 ‘중공업 산업 육성’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기업들에게 정책적 금전적 특혜가 집중되었고 여기에 일본재계의 자금과 정치자금 조달이 일어나 정경유착이 고착화되고 한일간 만주인맥을 중심으로 커넥션이 형성된 것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와 더불어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해 ‘청구권협상’을 하게 되는데 당시 박정희의 측근이던 김종필이 진행하던 협상은 문제적 문구를 합의에 포함합니다.

박정희는 일본의 자금이 급히 필요한 나머지 일본과의 청구권 협상에서 경제협력이라는 방식으로 “ 완전하고 또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이라는 문구를 삽입합니다.

한일청구권협상이후 이 문구로 일본은 한국이 요구한 한국ㅁ략애 대한 더이상의 배상청구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딸도 같은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위의 “완전하고 또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이라는 문구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과 위안부협상을 타결할 때 똑같이 사용되었습니다.

대를 이어 일본과의 관계를 꼬아바린 외교적 실책에 기막히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외교를 모르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처럼 어이없는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어서 솔직히 조마조마 합니다.

한미일관계로 말한다면 이제 한국이 일본에 종속되어 있다는 전제로 하는 굴욕외교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한국이 일본의 종속변수로 놓고 짰다고 해도 70여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한국의 위상이 일본과 비숫하거나 이미 뒤어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관계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가능합니다.

일본과 협의하지 말고 미국과 직접 이야기하는 부분은 해야합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왜 외교관계를 하면서 알아서 기고 먼저 상대국가에게 숙이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좋은 포지션을 스스로 포기하나요?
미스터리입니다.

한국의 극우 정치세력이 신처럼 받드는 대통령인 박정희가 사실 일본제국 군인으로 민주국에서 항일무장세력과 중국의 공산군을 토벌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한국 극우세력이 친일파와 연결되고 친일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그래서 조금도 과장이 아니고 자연스럽습니다.

현재 한국의 정경 유착의 뿌리도 박정희 군사정권까지 소급되며 당시 경제기획원이나 상공부 등 경제부처 수장 중 일제시기 일본에서 공부한 이들이 상당했습니다.

기업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경제관료 생활을 하다 그 감독하던 기업애 취업하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고위관료 출신 명망가의 자서전을 찿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1960-70년대의 경제는 철저한 계획경제이고 이는 만주국의 영향을 받았고 만주국의 계획경제를 처음 입안했던 미야자키 마사요시(宮崎正義)는 러시아 혁명당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직접 관찰한 러시아통이었습니다.

요즘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극우 보수 세력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의 우상인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그 기원을 따지자면 소련의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 온 것이죠. 국가가 자원을 통제라고 자원배분에 경제기획관료가 관여한다는 면에서 분명히 시장은 보이는 손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취약국가’상태로 일제에서 해방된 한국은 이승만 정부당시 단독국가 수립 후 미 점령시기 미국의 원조없이 경제운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술과 자본이 없고 일제가 기반시설조차 식민지 통치를 위한 것을 제외하고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방직후 한국의 경제상황과 자원부족 등에 대해서는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미지북스 2020)’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0여년 후 일본은 만주국 출신 친일파 통치자가 도움을 요청하자 청구권 명목으로 투자금을 제공하면서 한국의 지도층과 유착합니다.

정말 일본에서 해방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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