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작가의 ‘서울선언’시리즈 세번째 권이 올해 8월 출간되었고 오늘 완독했습니다.

‘서울선언( 열린책들,2018)’에서 일제시기 처음 개발된 노량진과 영등포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대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도 않은 남성위주의 양반문화일 뿐인 조선을 되살리기 위해 근현대시기 이후 서울에 남아있던 일제시기 이후 초기 서울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을 했습니다.

지난 20세기와 19세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작가님의 이런 지적에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1925년 서울을 강타한 ‘을축년 대홍수’의 흔적이 서울의 곳곳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사진과 함께 기록으로 남긴 최초의 답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번째로 출간된 ‘갈등도시( 열린책들,2019)에서는 일제가 구상한 ‘경인 메트로폴리스’를 조망하면서 노량진에서 인천으로 상수도를 제공하던 ‘수도국산길’을 답사하면서 서울과 인천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된 공간인지를 살폈습니다.

아울러 부평평야에 남아 있는 일제시대 군관사의 흔적과 한국전쟁이후 한국에 들어온 미군기지터도 확인했습니다.

왜 한국은 여전히 중근세의 오래된 건축물이나 왕릉만 문화재로 생각하고 당장 우리 조부모님이 사셨을지도 모르는 일제식 가옥이나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단독 양옥주택 같은 건물은 왜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파트만이 생활공간의 전부이고 주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한국에 현재 주거문화가 존재하지 않다고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이라면서 뭐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책의 소개에 앞서 먼저 나온 두권에 대한 소개는 여기서 그칩니다.

이책은 제목에 나와 있눈대로 ‘길’에 주목한 책으로 책의 상당한 분량이 특히 ‘철도’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철도가 근대이후 한국사회에 경제적으로 끼친 영향이 상당하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이후 관심 밖이었던 철도가 KTX 등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난 뒤 다시 주목받게 된 사실에 주목합니다.
현재 한국의 철도망에 일제가 그려놓은 밑그림과 흔적이 남아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가능을 잃어버린 서울-의주 간의 경의선과 그 주위에서 발전과 퇴행을 오갔던 경기 북부의 접경도시들인 고양시와 파주시 그리고 분단으로 해운의 기능을 잃어버린 한강하구의 김포시 그리고 고양을 넘어 연천과 송추까지 이어지는 경기 북부 지역을 답사합니다.

대서울의 영향이 지금은 접경지역이 된 파주권역 넘어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 서울-원산간을 연결하던 경원선을 따라가면 서울 망우리를 지나 구리 남양주 양주 의정부 동듀천 등을 넘어 원주를 지나 춘천에 이릅니다.

경춘선이 전철화되고 춘천이 서울과 통학권이 되면서 강원도와 서울은 대서울 권역에 편입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용하던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사실 경원선의 구간이고 서울-의주의 철길도 서울 지하철 3호선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마지막 3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답사기는 이미 폐선이 되어 흔적이 얼마남지 않은 수원-여주간의 수려선과 폐선이 되었다가 다시 운행을 시작한 수원-인천간의 수인선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경기도의 곡창지대인 여주에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인천항까지 철도를 놓은 것이 수인선이고 그 수인선에 연결하기 위해 수원- 여주간 철도를 놓았다고 합니다.

수려선의 경우 가까운 강원도 원주까지 철도를 연결하려 했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공사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경기도 동남부 특히 여주 안성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덜 발전된 이유가 일제시대 계획되었던 철도계획이 전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도 있고 경부고속도로역시 이 지역을 비켜가서 여러모로 교통발달의 혜택을 별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일제시대부터 기획이 되었으나 연결되지 못했던 경기 동남부의 작은 철도 노선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경기선이나 경장선 (서울 동부- 장호원) 등의 이름도 생소한 군소철도노선애 대한 흔적도 살핍니다.

한국의 변화무쌍한 특징과 다이나믹한 힘이 요새처럼 주목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이면에는 마치 과거에 대해 무슨 감정이 있는 것처럼 모든 걸 밀어버라는 과격한 ‘개발주의 ‘와 ‘배금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거가 과거의 흔적이 곧 그 자체로 미래를 위한 해결방안은 아니지만 도대체 ‘미화’라는 명목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밀어버리고 못산다는 이유로 대도시의 경계로 사람들을 언제까지 몰아낼 것인지 그 머릿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일제시대부터 토막민이라고 불리던 빈민들을 몰아내던 관행이 군부독재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도시화가 안되서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이유라도 댈 수 있었지만 그후 소위 ‘선진국’이 된 지금도 사람을 ‘개발’의 명목으로 밀어내는 야만적 행태가 지속되는 건 한국이 점점 소수의 지배기득권층을 위한 사실상의 ‘계급사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대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가 집단이 사상 처음 검찰총장 출신 정치인을 대선후보로 내놓았습니다. 사법체제를 독점해온 검찰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는 초유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토건세력이 MB를 내보내 이익을 가져온 걸 보고 학습한 검찰조직도 같은 논리로 정치에 도전한 겁니다.

저자는 사라져가는 근현대 건물들의 흔적과 함께 사라져가거나 강제이주 당할 수 밖에 없던 서민들에게 연민의 눈길을 보내고 안타까와 합니다.

과거의 모든 공간적 흔적을 남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흔적은 남겨 후세에게 그 시대를 단지 글만이 아닌 실물로 눈으로 보게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공간과 물건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결국 우리들이 보는 것처럼 유적이나 유물이 될 처지가 아닌가요?

시각을 바꿔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ina: The People's Middle Kingdom and the U.S.A. (Hardcover, Reprint 2013)
John K. Fairbank / Harvard University Press / 196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존 K. 페어뱅크 (John K. Fairbank)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 중국학(Sinology)를 확립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우스 다코다 주에서 태어난 이분은 위스콘신과 하버드 그리고 옥스포드에서 공부를 하셨습니다.
중국학은 옥스포드에서 처음 접했다고 하네요.
1936년부터 1977년까지 하버드에서 중국학을 가르쳤고 199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반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책은 이분이 저술한 ‘중국사(China:A New History,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1992)’ 입니다.


이 책은 1967년 출판된 책으로 저자의 잡지 기고문과 대학강연 그리고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기록 등을 모은 책입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1966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글 중 타이완의 ‘독립’과 ‘두개의 중국’을 주장하는 2부는 2021년 현재 미국과 중국사이에 타이완을 서이에 둔 긴장관계를 생각할 때 미국 외교당국이 타이완을 지닌 50여년산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그 단초를 찿을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반도체 와이퍼 가공 기술을 보유한 타이완은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에 매우 중요한 곳이고, 중국 봉쇄의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있는 지역입니다.
미국은 현재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에 결사반대하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책의 타이틀에 ‘Middle Kingdom’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중국사회가 서양의 중세때처럼 ‘후진적’이라고 본 페어뱅크 교수의 시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1966년 당시 미국이공산화된 중국을 얼마나 뒤떨어진 후진사회로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966년에는 중국혁명 ( The Chinese Revolution)을 성공시킨 마오쩌뚱(毛澤東,1893-1976)이 아직 생존해 있을 때였고, 미국과 중국과의 수교(1979)이 이루어지기 전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적대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공산주의를 봉쇄하면서 핵전쟁이 일어나게 하지 않는 방식을 찿는데 고심을 하던 시기입니다.

중국은 독자적 노선을 걸으며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다른 길을 추구했습니다.

페어뱅크 교수는 당시의 중국이 공산주의의 영향보다 수천년간 이어져온 유교적 전통과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관료들의 권력 독점의 전통, 화이론 (華夷論)에 입각한 중국우선주의와 광활한 영토와 자원에 기반한 중국의 내수경제 우선주의의 전통이 중국이 국제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중국사에 정통한 인물인 만큼 중국의 중세 근세와 혼란스러운 근대에 이루는 시기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합니다.

유교에 기반한 통치의 원리는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했던 13세기 몽골의 원나라 시기나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진 청나라 시기에도 변하지 않았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주의는 그 연원이 거슬러 중국의 고대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 때문에 매우 뿌리가 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중국에 문호개방을 요구할 때도 이 중화사상을 유지하고 서양세력들을 오랑캐로 여기고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초기에 이 요구에 순응했던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하지만 이후 군함을 동원하며 국제조약을 요구했고 중국은 이때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서양열강에 종속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비슷한 상황을 맞았던 일본은 서양열강과 초기에 맺은 불평등 조약을 평등한 관계로 개정했으나 중국은 그러지 못한 상태로 청왕조가 무너지고 군벌 시대를 거치고 일본의 침략을 받으며 대혼란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마국인으로서 페리 제독(Commodore Perry)이 일본의 개항을 요구한 이후 일본이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 서구화를 이루고 1966년 미국의 동아시아의 파트너가 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중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한 저개발국이라는 면을 비교합니다.

한국전쟁이 휴전을 맺고 중단된지 13년 밖에 안된 시점이고 , 1964년 일본은 도쿄올림픽까지 치룬 상황이니 이런 판단이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봉쇄정책(containment)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자신들의 이익 방어선으로 삼았고 , 중국식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베트남 전쟁(1960-1975)을 치루는 와중이었습니다.

한번에 두곳에서 전쟁을 할 수 없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전쟁은 막고 최대한 중국과 대화를 이끌어내야 했으나 영미식 개인주의와 법치주의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집단주의와 아시아 전통인 인간관계주의와 가족을 기본으로 사회전체가 위계에 의해 움직이는 중국의 유교적 전체주의에 익숙한 중국인들과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미국이 중국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를 강조합니다.

1966년 당시 타이완의 장개석 총통(1887-1975)의 국민당 정부가 국제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중국을 대표해 자리하고 있었고, 중국은 이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전혀 못 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9년 미중수교 이후 타이완은 미국과 외교가 단절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1992년 중국과 정식수교관계가 수립된 이후 명동에 있었던 타이완 대사관이 중국대사관으로 바뀌고 타이완과 외교가 단절되는 동일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 자체에 대해 몇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으로 과거 육군사관학교 도서관에 있었던 책이고 그 이전에는 미군의 자산으로 등재되어 있던 책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들이 동아시아의 상황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미국의 지역학이 철저하게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66년 시점에 중국을 평생 연구한 학자답게 비록 미국인의 입장이지만 그래도 중국과 동아시아의 유교적 정치체제에 대해 나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만, 2021년 현재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이분과 같은 태도와 솔직함을 겸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특징은 외부세계에 대한 무관심(ignorance)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결코 이들이 서구사회애서 주류이거나 대다수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도 한국이 언급은 되고 있지만 매우 단편적이고 미국의 이익방어선 정도로만 이해가 되고 있고, 오히려 공산주의 중국과 일본이 자주 비교됩니다.

미국인으로서 일본이 선진국이 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미국이 페리제독의 개항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을 미국이 군사적 방패가 되어 일본의 발전되었다는 뚜렷한 시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제국주의(imperialism)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솔직히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은 분명 서구 유럽과는 다른 그들만의 제국주의를 추구했는데 말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한반도와 일본은 패전으로 미국에 점령(Occupied)되었으며 미국은 자신들의 제도를 일본과 한국에 이식했습니다. 한국에서 미 군부는 기존의 통치조직 위에서 군림했습니다.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과도한 ‘점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대륙의 러시아와 중국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오끼나와(沖縄)와 규슈의 사세보(佐世保)항에 군사기지를 설치했으며 한반도 38도선 아래에서는 서울 용산과 의정부, 평택항 등지에 미군 기지를 세워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의 제국주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보는 건 너무 동기를 순수하게 보는 무리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시대 왕조실록을 비롯한 고대 중근세 기록물에 보이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책 내용도 흥미롭지만 뒷쪽에 정리한 서지목록이 흥미롭습니다. 멀리는 고조선 고구려 신라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걸친 괴물이야기이고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판단으로만 평가할 이야기는 아닌 듯 합니다.

드라마 작가인 저자가 한국 고유의 괴물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의의가 있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호기(征虎記)라는 책제목은 그대로 ‘호랑이를 정복한 기록’, 내지는 ‘호랑이를 잡은 기록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책은 19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일본의 기업가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山本唯三郞,1878-1927)가 조선의 함경도와 전라도에서 한국 호랑이와 표범, 노루, 멧돼지, 기러기 등을 사냥한 기록입니다.

일제는 1917년 당시 해수구제(害獸驅除), 즉 ‘사람의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맹수를 퇴치한다’는 명목으로 행한 정책으로 이책의 저자들은 일제의 과도한 맹수사냥이 결국 한국 호랑이와 표범 등의 멸절을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함경도의 북청 (北靑)지역과 같은 오지 산골마늘애는 밤에 호랑이와 표범이 자주 나타났다고 하나 일제의 과도한 남획으로 이미 1917년 사냥을 한 기록에도 백두산 등지에서 호랑이를 더이상 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일제는 한국 호랑이와 표범 등 맹수들을 멸절시켰을 뿐 아니라 독도의 강치도 남획으로 멸절시켰습니다. 이는 해수구제의 명분보다 모피와 기름을 얻으려는 경제적 목적이 더 강했습니다.

주강현 교수님의 ‘독도강치 멸종사(서해문집,2016)’을 보시면 일제가 얼마나 주도면밀하개 강치를 남획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시마네현(島根県)에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우기는 주장을 하는 역사적 이유도 일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40대 일본인 기업가는 조선의 유명한 호랑이 사냥꾼인 백운학과 강용근을 고용하고 사냥에 나섰습니다.

사냥부대에 합류한 일본인 사냥꾼 기쿠타니 리키조(菊谷力藏)는 함경남도 영흥에 살고 있는 일본인으로 1917년의 이 사냥 이전에 이미 1년에 호랑이를 다섯 마리, 표범을 두 마리씩 잡았다고 언급(p174) 된 것으로 보아 일본인들의 맹수 남획이 극도로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대 수의과 대학 이항 교수팀애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했는데, 이 책은 사실상 한국 호랑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근대적 사료라는 점에서 그 번역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사냥 기록의 번역과 기록 사진, 그리고 사료에 대한 해제(解題)가 앞부분에 붙어 있어 전반적인 자료 이해에 도움을 줍니다.

현재 이 때 잡은 한국 호랑이의 표본은 일본 쿄토의 도시샤( 同志社) 고등학교 표본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인 윤동주가 수학한 곳으로 유명한 이곳에 한국 호랑이의 표본이 있다니!

19세기 영국이 새계각국을 조사하고 해도를 작성하면서 자연생태를 관찰하고 표본을 수집했듯이 일본도 새로 식민지가 된 조선땅과 연해주, 만주 지방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찰스 다윈( Charles Darwin,1809-1882)이 1832년 비이글호 ( H.M.S. Beagle)를 타고 갈라파고스 섬을 탐험한 것이고, 미국도 비슷한 시기 남극 대륙 연안과 지금의 캘리포니아쪽 태평양 연안을 탐사하고 생물 표본을 만들고 해도를 만들었습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The Smithsonian Institution )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죠 (Nathaniel Philbrick, Sea of Glory,Penguin,2004)

일제는 서양이 행한 모든 것을 식민지인 조선에서 행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책의 주인공인 기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이 사냥이 끝나고 호기롭게 일본의 고관들을 초대해 경성의 조선호텔과 도쿄의 제국호텔에서 호랑이 고기 만찬회까지 열었습니다.

그리고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기가 내리막을 걷다가 대공황을 맞이하게 되자 그가 조선에서 벌이던 탄광사업과 선박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연회가 열린 후 10년만인 1927년 사망하게 됩니다.

오만해 보이기까지도 한 호랑이 고기 시식회나 그가 사냥에서 남긴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다소 어이없는 몰락입니다.

끝으로 이책에 실린 귀한 사진 몇 장 같이 올립니다.
한반도에 호랑이 살았었다는 귀중한 기록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어일문학을 배우고 응용언어학을 공부한 미국인 언어학자 로버트 파우저씨가 ‘한글’로 쓴 도시탐구기입니다.

서울출생으로 도시에서만 살아온 도시인으로서 도시의 여러 인문지리적 현상에 대해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책은 범주를 굳이 나눈다면 인문학자가 쓴 도시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학 ( Urban Studies)이나 건축 (Architecture)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평소 살아온 경험이나 인문학적 감성 그리고 이 저자가 보여주는 평소의 식견으로 충분히 훌륭한 도시론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유사한 범주의 책을 읽었는데 서울의 일반 서민들의 살아온 흔적을 답사한 김시덕 작가의 서울 답사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서지학과 전쟁사를 전공한 김작가는 ‘서지학적 방법론’을 도시답사에 적용해 서울과 그 위성도시들, 서울과 경인지역의 관계를 일제시대까지 소급해 살폈습니다 ( 서울선언, 2018 & 갈등 도시,2019)

이 책의 미덕은 이전에 문화재 위주로 조선시대 유적위주로 행해지던 도시답사를 근현대 시기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현재의 서울에 맞춰 현재 서울의 공간을 일반 서민들의 생활과 연관지어 바라본 것입니다.

파우저씨의 책은 서울을 포함한 한국의 도시뿐만 아니라 저자가 살았거나 인연이 있어 자주 방문했던 영어권의 도시들과 일본의 도시를 대상으로 합니다.
제가 인상깊었던 도시를 꼽자면 일본의 가고시마와 아일랜드 더블린입니다. 두 도시는 공교롭게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도시들입니다. 일본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는 고립된 규수 남부 지방도시이지만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나온 특이한 지역으로 젊은이들이 지역에 남아 일원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블린은 저자가 언어학 박사학위를 공부한 곳으로 20세기 초 모더니즘 문학가 제임스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고향이자 아일랜드의 수도입니다. 영연방이지만 잉글랜드와 다른 독립국가이고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로 아일랜드어를 잃어버리고 영어를 쓰는 국가입니다.
영국이 아일랜드 지배를 위해 16세기에 더블린에 트리니티 컬리지 (Trinity College Dublin)를 세우고 영국에 협력할 수 있는 지배층을 양성했다는 사실은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의 지배층 양성을 위해 경성에 제국대학을 세운 일제의 모습과 겹칩니다. 일본이 영국의 정책을 모방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특히 각 도시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도시화와 재개발, 그리고 도시 재생의 문제를 상당한 전문가적 식견으로 설명합니다.
도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저자가 살아온 여러 도시에서의 삶과 저자가 느낀 점을 적은 에세이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사는 공간과 도시의 경관이 정치인들의 의지에 따라 일반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삶의 공간과 결부되어 기억되는 추억과 경험이 얼마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각 도시에 얼마나 괜찮은 헌책방이 존재하는지 이 책에 잘 나와있습니다.

사람들의 삶과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각 도시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이렇게 펼치기 여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자가 서울에 거주할 당시 한옥에 살면서 서촌의 한옥보전운동을 한 적이 있는데, 도시개발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영향을 주고 역사의 시간이 쌓인 공간을 배려하고 보존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반드시 경청해야 할 주장입니다.
부동산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토건세력들과 그에 결탁한 기득권층이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얻고 그 구조가 당연시되는 마당에 원주민의 기존의 삶을 보장하고 공동체의 편익을 위해 도시재생을 하고 재개발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외국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가능성을 입증시킵니다.

이익을 추구하려고 역사의 흔적을 망치는 우를 또 범해서야 될까요?

서울시장으로 두번째 당선되신 오세훈씨가 MB 시절 진행했던 종로 재개발은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개발 중 하나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건너편에서 시작되던 ‘피맛골’의 옛 흔적은 남김없이 사라지고 고층 ‘쇼핑센터’가 자리잡아 서울이 아니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던 독특한 피맛골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 이유는 역사보다 이익만을 우선하는 사고방식이외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토건 원류세력이 정권을 잡을 때 개발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지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이 개발로 청진동의 옛모습도 모두 사라졌죠.

조선시대 500년은 현재 서울 사람들과 아무 연관도 없는데도 보존한다고 난리면서, 왜 직접적인 연관이 있던 피맛골, 청진동의 흔적이 사라지는 건 괜찮은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한국이 20세기 초부터 경험한 일제시대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기억해야 할 그 시대 서민의 역사가 그 시대의 건축양식이 단지 ‘왜색 ( 倭色)’ 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헐리는 것은 반대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에라도 당시 흔적을 알리고 교육해야 하므로 보통사람들이 그 당시 어떻게 살았나 알기 위해서라도 일제시대에 지어진 일본식 주택이 보존되어야 합니다. 싫어도 눈에 보여야 잊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흔적을 없애려는 세력은 돈때문일 수도 있지만 일제에 부역한 적이 없는지도 의심해야 합니다.

범죄자가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저자 파우저씨는 애호가 수준을 넘어서는 수준의 사진가로 알려졌는데, 그의 도시공간에 대한 관찰은 그가 사진을 찍으며 평소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서 나온 결과로 보입니다.

사진가는 당연히 자신의 파인더로 보이는 풍경과 피사체에 애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장소는 무수히 방문하게 됩니다. 같은 장소도 아침과 저녁에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다르며 눈이 오거나 비가 온후와 그냥 활짝 개어 있을 때 다릅니다.

더구나 좋아하는 공간과 경관이 재개발이나 도시재생으로 바뀌게 된다면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육안으로 관찰하는 행위는 피상적일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매우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것으로 내공이 깊어지면 단순한 논리 이상을 꿰뚫는 힘을 가집니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관심은 남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공간의 특징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 매우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이 책에 포함된 사진 상당수가 저자가 오래전부터 직접 찍어 장소를 기록한 사진들이고 글과 함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과거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