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존 K. 페어뱅크 (John K. Fairbank)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 중국학(Sinology)를 확립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우스 다코다 주에서 태어난 이분은 위스콘신과 하버드 그리고 옥스포드에서 공부를 하셨습니다.
중국학은 옥스포드에서 처음 접했다고 하네요.
1936년부터 1977년까지 하버드에서 중국학을 가르쳤고 199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반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책은 이분이 저술한 ‘중국사(China:A New History,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1992)’ 입니다.
이 책은 1967년 출판된 책으로 저자의 잡지 기고문과 대학강연 그리고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기록 등을 모은 책입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1966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글 중 타이완의 ‘독립’과 ‘두개의 중국’을 주장하는 2부는 2021년 현재 미국과 중국사이에 타이완을 서이에 둔 긴장관계를 생각할 때 미국 외교당국이 타이완을 지닌 50여년산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그 단초를 찿을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반도체 와이퍼 가공 기술을 보유한 타이완은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에 매우 중요한 곳이고, 중국 봉쇄의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있는 지역입니다.
미국은 현재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에 결사반대하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책의 타이틀에 ‘Middle Kingdom’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중국사회가 서양의 중세때처럼 ‘후진적’이라고 본 페어뱅크 교수의 시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1966년 당시 미국이공산화된 중국을 얼마나 뒤떨어진 후진사회로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966년에는 중국혁명 ( The Chinese Revolution)을 성공시킨 마오쩌뚱(毛澤東,1893-1976)이 아직 생존해 있을 때였고, 미국과 중국과의 수교(1979)이 이루어지기 전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적대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공산주의를 봉쇄하면서 핵전쟁이 일어나게 하지 않는 방식을 찿는데 고심을 하던 시기입니다.
중국은 독자적 노선을 걸으며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다른 길을 추구했습니다.
페어뱅크 교수는 당시의 중국이 공산주의의 영향보다 수천년간 이어져온 유교적 전통과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관료들의 권력 독점의 전통, 화이론 (華夷論)에 입각한 중국우선주의와 광활한 영토와 자원에 기반한 중국의 내수경제 우선주의의 전통이 중국이 국제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중국사에 정통한 인물인 만큼 중국의 중세 근세와 혼란스러운 근대에 이루는 시기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합니다.
유교에 기반한 통치의 원리는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했던 13세기 몽골의 원나라 시기나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진 청나라 시기에도 변하지 않았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주의는 그 연원이 거슬러 중국의 고대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 때문에 매우 뿌리가 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중국에 문호개방을 요구할 때도 이 중화사상을 유지하고 서양세력들을 오랑캐로 여기고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초기에 이 요구에 순응했던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하지만 이후 군함을 동원하며 국제조약을 요구했고 중국은 이때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서양열강에 종속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비슷한 상황을 맞았던 일본은 서양열강과 초기에 맺은 불평등 조약을 평등한 관계로 개정했으나 중국은 그러지 못한 상태로 청왕조가 무너지고 군벌 시대를 거치고 일본의 침략을 받으며 대혼란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마국인으로서 페리 제독(Commodore Perry)이 일본의 개항을 요구한 이후 일본이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 서구화를 이루고 1966년 미국의 동아시아의 파트너가 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중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한 저개발국이라는 면을 비교합니다.
한국전쟁이 휴전을 맺고 중단된지 13년 밖에 안된 시점이고 , 1964년 일본은 도쿄올림픽까지 치룬 상황이니 이런 판단이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봉쇄정책(containment)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자신들의 이익 방어선으로 삼았고 , 중국식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베트남 전쟁(1960-1975)을 치루는 와중이었습니다.
한번에 두곳에서 전쟁을 할 수 없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전쟁은 막고 최대한 중국과 대화를 이끌어내야 했으나 영미식 개인주의와 법치주의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집단주의와 아시아 전통인 인간관계주의와 가족을 기본으로 사회전체가 위계에 의해 움직이는 중국의 유교적 전체주의에 익숙한 중국인들과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미국이 중국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를 강조합니다.
1966년 당시 타이완의 장개석 총통(1887-1975)의 국민당 정부가 국제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중국을 대표해 자리하고 있었고, 중국은 이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전혀 못 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9년 미중수교 이후 타이완은 미국과 외교가 단절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1992년 중국과 정식수교관계가 수립된 이후 명동에 있었던 타이완 대사관이 중국대사관으로 바뀌고 타이완과 외교가 단절되는 동일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 자체에 대해 몇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으로 과거 육군사관학교 도서관에 있었던 책이고 그 이전에는 미군의 자산으로 등재되어 있던 책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들이 동아시아의 상황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미국의 지역학이 철저하게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66년 시점에 중국을 평생 연구한 학자답게 비록 미국인의 입장이지만 그래도 중국과 동아시아의 유교적 정치체제에 대해 나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만, 2021년 현재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이분과 같은 태도와 솔직함을 겸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특징은 외부세계에 대한 무관심(ignorance)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결코 이들이 서구사회애서 주류이거나 대다수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도 한국이 언급은 되고 있지만 매우 단편적이고 미국의 이익방어선 정도로만 이해가 되고 있고, 오히려 공산주의 중국과 일본이 자주 비교됩니다.
미국인으로서 일본이 선진국이 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미국이 페리제독의 개항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을 미국이 군사적 방패가 되어 일본의 발전되었다는 뚜렷한 시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제국주의(imperialism)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솔직히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은 분명 서구 유럽과는 다른 그들만의 제국주의를 추구했는데 말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한반도와 일본은 패전으로 미국에 점령(Occupied)되었으며 미국은 자신들의 제도를 일본과 한국에 이식했습니다. 한국에서 미 군부는 기존의 통치조직 위에서 군림했습니다.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과도한 ‘점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대륙의 러시아와 중국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오끼나와(沖縄)와 규슈의 사세보(佐世保)항에 군사기지를 설치했으며 한반도 38도선 아래에서는 서울 용산과 의정부, 평택항 등지에 미군 기지를 세워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의 제국주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보는 건 너무 동기를 순수하게 보는 무리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