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작가의 ‘서울선언’시리즈 세번째 권이 올해 8월 출간되었고 오늘 완독했습니다.
‘서울선언( 열린책들,2018)’에서 일제시기 처음 개발된 노량진과 영등포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대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도 않은 남성위주의 양반문화일 뿐인 조선을 되살리기 위해 근현대시기 이후 서울에 남아있던 일제시기 이후 초기 서울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을 했습니다.
지난 20세기와 19세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작가님의 이런 지적에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1925년 서울을 강타한 ‘을축년 대홍수’의 흔적이 서울의 곳곳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사진과 함께 기록으로 남긴 최초의 답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번째로 출간된 ‘갈등도시( 열린책들,2019)에서는 일제가 구상한 ‘경인 메트로폴리스’를 조망하면서 노량진에서 인천으로 상수도를 제공하던 ‘수도국산길’을 답사하면서 서울과 인천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된 공간인지를 살폈습니다.
아울러 부평평야에 남아 있는 일제시대 군관사의 흔적과 한국전쟁이후 한국에 들어온 미군기지터도 확인했습니다.
왜 한국은 여전히 중근세의 오래된 건축물이나 왕릉만 문화재로 생각하고 당장 우리 조부모님이 사셨을지도 모르는 일제식 가옥이나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단독 양옥주택 같은 건물은 왜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파트만이 생활공간의 전부이고 주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한국에 현재 주거문화가 존재하지 않다고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이라면서 뭐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책의 소개에 앞서 먼저 나온 두권에 대한 소개는 여기서 그칩니다.
이책은 제목에 나와 있눈대로 ‘길’에 주목한 책으로 책의 상당한 분량이 특히 ‘철도’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철도가 근대이후 한국사회에 경제적으로 끼친 영향이 상당하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이후 관심 밖이었던 철도가 KTX 등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난 뒤 다시 주목받게 된 사실에 주목합니다.
현재 한국의 철도망에 일제가 그려놓은 밑그림과 흔적이 남아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가능을 잃어버린 서울-의주 간의 경의선과 그 주위에서 발전과 퇴행을 오갔던 경기 북부의 접경도시들인 고양시와 파주시 그리고 분단으로 해운의 기능을 잃어버린 한강하구의 김포시 그리고 고양을 넘어 연천과 송추까지 이어지는 경기 북부 지역을 답사합니다.
대서울의 영향이 지금은 접경지역이 된 파주권역 넘어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 서울-원산간을 연결하던 경원선을 따라가면 서울 망우리를 지나 구리 남양주 양주 의정부 동듀천 등을 넘어 원주를 지나 춘천에 이릅니다.
경춘선이 전철화되고 춘천이 서울과 통학권이 되면서 강원도와 서울은 대서울 권역에 편입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용하던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사실 경원선의 구간이고 서울-의주의 철길도 서울 지하철 3호선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마지막 3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답사기는 이미 폐선이 되어 흔적이 얼마남지 않은 수원-여주간의 수려선과 폐선이 되었다가 다시 운행을 시작한 수원-인천간의 수인선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경기도의 곡창지대인 여주에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인천항까지 철도를 놓은 것이 수인선이고 그 수인선에 연결하기 위해 수원- 여주간 철도를 놓았다고 합니다.
수려선의 경우 가까운 강원도 원주까지 철도를 연결하려 했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공사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경기도 동남부 특히 여주 안성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덜 발전된 이유가 일제시대 계획되었던 철도계획이 전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도 있고 경부고속도로역시 이 지역을 비켜가서 여러모로 교통발달의 혜택을 별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일제시대부터 기획이 되었으나 연결되지 못했던 경기 동남부의 작은 철도 노선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경기선이나 경장선 (서울 동부- 장호원) 등의 이름도 생소한 군소철도노선애 대한 흔적도 살핍니다.
한국의 변화무쌍한 특징과 다이나믹한 힘이 요새처럼 주목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이면에는 마치 과거에 대해 무슨 감정이 있는 것처럼 모든 걸 밀어버라는 과격한 ‘개발주의 ‘와 ‘배금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거가 과거의 흔적이 곧 그 자체로 미래를 위한 해결방안은 아니지만 도대체 ‘미화’라는 명목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밀어버리고 못산다는 이유로 대도시의 경계로 사람들을 언제까지 몰아낼 것인지 그 머릿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일제시대부터 토막민이라고 불리던 빈민들을 몰아내던 관행이 군부독재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도시화가 안되서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이유라도 댈 수 있었지만 그후 소위 ‘선진국’이 된 지금도 사람을 ‘개발’의 명목으로 밀어내는 야만적 행태가 지속되는 건 한국이 점점 소수의 지배기득권층을 위한 사실상의 ‘계급사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대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가 집단이 사상 처음 검찰총장 출신 정치인을 대선후보로 내놓았습니다. 사법체제를 독점해온 검찰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는 초유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토건세력이 MB를 내보내 이익을 가져온 걸 보고 학습한 검찰조직도 같은 논리로 정치에 도전한 겁니다.
저자는 사라져가는 근현대 건물들의 흔적과 함께 사라져가거나 강제이주 당할 수 밖에 없던 서민들에게 연민의 눈길을 보내고 안타까와 합니다.
과거의 모든 공간적 흔적을 남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흔적은 남겨 후세에게 그 시대를 단지 글만이 아닌 실물로 눈으로 보게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공간과 물건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결국 우리들이 보는 것처럼 유적이나 유물이 될 처지가 아닌가요?
시각을 바꿔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