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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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인력있고 설득력있는 ‘국산’ 사회과학 서적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미국의 학계에서 활동하다 한국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돌아온 학자답게 주장에 거침이 없고 간명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이용가능한데이터( official and available data)를 이용해 현재 한국사회에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실증해냈습니다.

데이터를 이용한 글쓰기의 전범을 한국학자의 글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에 대한 인상은 이제 그만하고 내용을 잠시 살펴보려 합니다.

이글을 읽다보니 저의 경우 386 바로 뒷세대이고 저자도 저와 비슷한 세대로 추정되었습니다.

이책은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하에 한국을 한세대 만에 ‘압축적’으로 발전시켰고, 부동산 폭등을 통해 최초 자산 축적을 한 ‘산업화 세대’와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정치적 해게모니를 가져왔으며,1997-98년 IMF 금융 위기를 통해 경제적 해게모니까지 장악한 ‘386세대’가 현재 한국의 조직과 노동시장에 일반화된 ‘이중적 구조’와 이에 따른 극심한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사뭇 도발적인 주장을 합니다.

이론적으로 한국형 위계를 발전시킨 ‘네트워크 위계’에 의한 386세대의 과대 점거가 노동시장에서 세대간 불평등을 촉발시킨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정부에서 나온 공식통계 데이터를 통해 입증합니다.
따라서 이책은 동일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 세대 집단 뿐만 아니라 조직으로서 노조와 공장현장조직, 회사조직, 관료조직 등이 언급됩니다. 따라서 세대론이자 조직론이며 또 큰 의미에서 노동시장의 구조를 조망합니다.

따라서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논문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원임 중 하나로 386세대의 과다 권력점유를 지적히는 이 글의 입장은 386세대가 집권 중추세력인 현 집권여당에 대해서 이들의 과오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386세대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권위주의 세력에게서 획득했다고 아무 비판도 없이 ‘신화화’되어야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이후 30년이 넘게 지났고 이제 이 세대의 공과 과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제가 공감했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한국의 ‘386세대’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기업의 상층 의사결정층에 과다점유를 하고 있으며 1997년 이후로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사실상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상층부가 오랜세월 그대로 정체된 가운데 연공제에 기반한 인건비 상승분을 사실상 20대 청년층과 여성들에 기회를 주지 않은체 이들을 단기 계약직에 묶어두면서 유지해왔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외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평등한 세상을 주장하던 20대와는 다르게 사실상 ‘노동의 유연화’를 받아들여 현재의 이중적 노동시장구조를 만드는데 방조 내지 협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학생시절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이들이 신자유주의적 노동의 유연화를 사회안전망의 확충도 없이 진행했다는 사실은 ‘변절’로 불리기에 손색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386세대는 철저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유지해 여성들에게 동일하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하에 철저하게 과실을 향유하면서도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조차 같은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후배 여성들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았고, 한국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공부도 많이 한 주체적인 이 후배 여성들은 ‘출산파업 ‘과 ‘전투적 페미니즘 ’으로 대항하며 커리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임여성 출산율이 1명이 되지 않고 이에 따른 인구감소로 구조적인 경기침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386세대는 이 상황을 결정한 당사자로서 책임에서자유롭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학생때부터 ‘민족’이니’통일’아니 하는 큰 주제룰 위해 일상의 소소함을 우습게 보고 남존여비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학생투사들의 한계로 보입니다.

회사원으로서 츙격적이었던 부분은 한국 100대 기업의 수익성 관련 자료였습니다.

의사결정자인 회사 상층부가 1950-1969년 출생의 경우 자본 수익율이 마이너스에서 0에 이르러 사실상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상층부의 출생년도가 1970년대 이후일 경우 자본수익율이 반전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상 무능이 입증된 치욕스러운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는 이들의 의사결정이 지난 20여년간 변화한 외부 환경에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입니다.


386세대를 학창시절부터 지켜본 바와 이글의 데이터와 그 주장을 보면 공감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저자는 데이터에 근거해서 386세대가 처음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권에 입성하고 1997년 금융위기를 통해 경제계를 접수한 이후 이들이 ‘민주적이며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로 한 약속을 사실상 저버렸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주장에 수긍합니다.

상황논리에 말리고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이 세대의 특성상 1998년도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유연화’를 지지한 사실은 이 세대가 단체로 변절한 첫 케이스로 생각합니다. 언행일치를 알고 20대 학생시절 한 발언과 주장을 생각하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인데 386새대 정치인들의 ‘권력의지 ‘가 자신들의 가치와 반대되는 합의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봅니다.

잘 알파시피 지금도 정치권에 ‘극우’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중견이상 정치인들 중 학생 시절 지하에서 사회주의이론가였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단한 변신이죠.

따라서 386세대가 현재 이룬 승자독식 (winners take all)은 예상가능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소위 한강의 기적을 통한 성과의 과실을 최초 자본 축적을 경험한 산업화세대와 그 자녀인 386세대만 누리고 그 아래 세대들이 누리지 못하는 건 너무 덧없습니다.

40년간 밤새 일해 서구 국가들이 200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을 이루고 먹기 살만해 졌는데 그 과실이 다시 30여년만 특정 세대만 누리고 다른 후배 세대는 그 과실을 전혀향유하지 못한체 미래조차 유보하고 있는 상황은 너무 슬픕니다.

젊은 세대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자의반 타의반 출산 파업을 감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도 확대재정에 인색하고 학교는 학생을 내몰라라 합니다.
어르신들은 상황도 알지 못한체 젊은이들에게 결혼 안한다고 훈계 합니다.

어르신 세대인 산업화 세대와 현재 집권층인 386세대는 현재의 이런 불합리하고 슬픈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동서양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유교적 위계 조직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현재의 상층권력을 무시하면 상층부에 의해 제거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반편, 서구에서는 관행과 전통을 무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상층권력에 도전할 경우 상층권력을 해체하고 본인이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생긴다는 겁니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지식은 출세와 권력을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 그 지식의 질과 참신함을 ‘평가’하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색다른 지식에 대해 주장하고 권위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대신, 그 아이디어의 독창성(originality)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contribution)을 면밀히 따지는 ‘평가’시스템이 발전했습니다.

이책에서 경제불황에서 벗어나고 기업이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새로 젊은 인재들을 채용해 조직에 활력을 더하고 위의 서구식 앎의 체계를 도입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은 재가 평소에 생각하던 한국사회의 상황을 데이터로 확인해주는 역할을 해 반가웠습니다.

제 커리어 내내 불황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이러다 정말 한국이 구조적 불황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노인인구는 늘어나는데다 출생은 감소해 실제 인구감소가 현실화되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은 코로나 발발 이전의 상황을 다루었자만 ‘혁신’이라는 포장 아래 노동을 갈아넣어야 하는 택배 기사들의 상황을 추가하면 별반 달라진 것도 없어 보입니다.

끝으로, 눈만 뜨면 나오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주장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을 도와주는 구실을 할 뿐이지 대체를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기계는 단순반복 작업을 잘할 뿐 교육과 같이 의사소통의 하며 감정을 교감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는데 교육계가 인공지능을 도입해 원격수업을 하겠다는 황당하고 몽상적 주장을 해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존재이고 로봇과 대체가 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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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작가의 책 ‘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 창,2018)’ 은 그동안 각종 매체의 소개를 통해, 그리고 이미 읽으신 독자들의 소감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던 책입니다.

한 사회에서 ‘노동’의 의미를 일깨우는 논픽션을 써오신 작가라서 과연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습니다.

읽고 난후 감상을 언급 안하는 편인데, 이 책은 ‘웃프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부에서 언급한 개농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충격을 받았던 ‘부화장(pp 40-94)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닭은 공장식 축산 농가에서 알을 낳는 ‘산란계’와 고기를 먹는 ‘비육계’로 나뉘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길러지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부화장은 산란계의 부화장으로 달걀을 낳을 수 있는 암컷 병아리만 상품으로 인정받고 부화한 수평아리들은 모두 ‘불량품’으로 폐기처분 됩니다. 알에서 깨어난 미약한 어린 생명체가 알을 낳지 못하는 ‘불량’으로 인식되어 그냥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산란계들은 비좁은 케이지에 최소 3마리씩 갇혀 지내고 평생 알만 낳다 도축되며 그 알에서 깬 병아리들도 수컷은 모두 폐기되고 암컷만 미래의 산란을 위해 올겨집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원칙은 ‘사료값 ‘이라는 농장운영의 최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육계들은 그나마 케이지에서 지내지 않아 산란계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기형이거나 다른 놈들에 비해 몸무게가 작게 나가거나 하는 경우 가차없이 ‘도태( 즉 죽임)’을 당합니다. 이유는 위와 마찬가지로 사료값 때문입니다.

미국등에서 들여온 수입 옥수수 가루 위주로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한 사료를 먹여 가축을 기를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축산업의 산업구조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사료값을 덜 쓰고 양질의 상품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 사료를 축내는 가축은 가차없이 도태되는 것입니다.

시장을 위해 가축들은 가장 싼 사료를 먹고 자라며 자연에서라면 당하지 않아도 되는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농장(Farm)아니라 사실 닭과 돼지를 ‘생산’하는 공장(Factory)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래서 상품 취급된 동물들은 효율성의 잣대 아래 평소 먹지 않는 사료를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이클 폴란 (Michael Pollan) 의 ‘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bore’s Dilemma, Penguin,2007)’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책은 MB정부 당시 ‘광우병( Madcow Disease)’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할 당시 미국소가 왜 광우병에 걸리는지 (알려져있다시피 초식동물인 소가 소의 부산물을 먹어야 하며), 미국산 잉여농산물인 옥수수가 어떻게 목초류만 먹어야 하는 소의 먹이가 되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옥수수에서 추출된 당과 기타 이름으로 구별할 수 없는 화합물들을 섭취하는지 밝힙니다.

이책과 ‘육식동물의 딜레마’ 모두 축산업계에 대한 심층 취재를 바탕으로 한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돼지에 관해서는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새끼 돼지를 낳아야 하는 어미돼지가 평생을 뒤로 돌아보지도 못하는 스툴 (Stool)에 갇혀 새끼를 낳고 출산 후 한달도 쉬지 못하고 다시 임신해야 한다는 사실에 몹시 경악했습니다.

1년에 40분 정도 새끼 낳으러 갈 때 움직이고 평생 고개도 못 돌린체 벽만 바라보며 앉았다 일어서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돼지가 원래 야생에서는 공격성도 있고 활동성도 있는 동물로 알고 있는데, 똥을 싸고 거기 뒹구는 건 알고 있었어도 평생을 좁디 좁은 스툴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건 충격이었습니다.


제목에 ‘한국적’이라는 말을 넣은 건 개농장을 표현하기 위해 서 였습니다.

동물복지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동물들을 저렇게 대해도 된다는 말인가?’하는 의구심이 생기고 충격을 받은 닭과 돼지의 사례도 개농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개농장은 상상한 모든 것을 뛰어넘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축산업에 들어와 있지 않은 ‘식용’개농장은 아예 사료를 먹이지 않습니다. 개들은 어미젖을 뗀후 소위 ‘짬’으로 불리는 음식쓰레기만을 먹고 자랍니다.
그리고 평생 좁은 케이지에 갖혀 땅을 밟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전기충격으로 죽거나 목을 매어 죽임을 당하고 도축됩니다.

사실상 개농장 주인은 사료값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개를 키웁니다.

‘개농장’편을 읽으면서는 단순히 충격이 아니라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를 일깨운 글이었습니다.

개농장 사장들도 모두 나름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가장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식용으로 정해진 개라지만 글 속의 여러 캐릭터들이 솓아내는 말들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찿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개장수가 비용이 별로 안들어 많이 남는다고 주장하고, 짬사업 하시는 분들은 개가 음식쓰레기인 짬을 먹어 없애기 때문에 사실상 불법으로 방치된 개농장들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개농장에 한국적인 이유는 축산의 일부로 이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아마도 중국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에서도 식용 개산업을 축산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농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최소 이미 도축된 개들의 위생관리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개농장을 관리해야 할 텐데 이 책에서 그런 흔적은 전혀 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지만 정말 정부가 음식쓰레기 처리용으로 개농장을 묵인하고 있는걸까요?? 확인이 필요한 지점 같습니다. 비용 투입없이 장사를 한다는 개농장의 사업구조 자체가 이들을 음지에 있게 만든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의 필요성입니다. 식용 개농장의 양성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세계10위 경제대국이 프랑스 여배우가 개 먹지 말라고 대꾸도 못하는 건 우스운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 프랑스 여배우가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해 무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환경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대로 살아갑니다. 그 여배우가 한국에 무관심하니 그런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외교당국자들이 외국의 이런 주장에 너무 주늑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무튼 제가 개농장 양성화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개농장의 지금 현상황을 그대로 놔두는 건 ‘죄악’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면 뭐든 다되는 천박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에 묘사된 개농장은 모든 것이 한도를 초과해 버렸습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끝으로 몇가지 덧붙입니다.

이글을 쓰는 저는 비건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육식주의자입이다. 적당한 속물이죠.
따라서 동물복지에 관해 별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사랑하는 소비자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로서 그래도 가축이 가축답게 자라는 최소한은 우리사회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농장들의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과연 현재의 방식이 맞는 방식인지는 계속 의문이 남습니다.

과연 산란계 농장의 부화장에서 태어난 수컷 병아리들이 알에서 깨자마자 죽어야만 하는 건가요??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왜 유독 산란계 농장에서 수컷이 ‘불량’낙인이 찍혀 죽어야만 하는지 저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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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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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 기간에 걸쳐 겨우 논어를 일독했습니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논어 구절을 몇가지 배운 후 처음 이 유교경전을 보았습니다.

다른 책과 달리 평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한번 읽고 이야기 할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책 이외에 다른 판본의 논어를 더 읽어 보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다만 몇가지 인상을 남깁니다.

첫째, 논어는 그 문장이 간결하고 각각의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가 상당히 어려운 밀도가 높은 책으로 기억됩니다. 짧지만 음미해서 봐야 될 곳이 많아 여러번 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입니다. 김원중 교수께서 상당히 많은 부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인용하셨는데 논어의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사기와 같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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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3-1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자키 이치사다 추천드립니다! 아니면 리링도요!

Dennis Kim 2021-03-14 10: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유학경전은 공부하다가 정말 어렵네요.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Paperback) - 『그릿 GRIT』원서
안젤라 덕워스 / Scribner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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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책을 잘 읽지 않지만 상당히 화제가 됐던 책이라서 일독했습나다.

특히 이 책에서 자녀 훈육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특히 관심이 간 책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심리학교수안 안젤라 덕워드의 첫 책이기도 합니다.

제목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책은 개인의 능력(Talent)보다 열정 (Passion)과 끈기(Perseverance)를 강조합니다.

열정과 끈기를 가진 사람은 자기가 하는 무엇이든 최소 1년이상 붙잡고 노력을 하는 사람으로 고난과 역경이 닥치고 실패를 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는 신중하고 의도적인 연습 (Deliberate Practice)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사람들이 전문가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하며 여기 잘 알려진 ‘10,000시간의 법칙’이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 초자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소 10년이상 10,000시간 이상 배우고 경험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교정하면 그래도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타고난 재능으로 천재라고 불리는 경우가 실제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런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투지(Grit)을 키울수 있는데 스스로 배우며 깨닫는 내적인 방식과 좋은 멘토와 훌륭한 조직 그리고 투지를 가진 부모로 부터 훈련을 받는 외적인 방식이 존재합니다.

부모입장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으로 워킹맘으로 두딸을 키우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이 부분에는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아이들을 ‘투지’있는 인간으로 양육하기 위해, 우선 무엇을 하든 일단 어려운 도전과제를 선택합니다. 즉 발레레슨을 받든 야구나 축구를 하든 실패를 해도 무조건 계약기간은 채워야 하며, 계약이 갱신될 때 아이들이 다른 선택을 하게 합니다. 적성을 찿기 위해서는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하지만 실패하거나 못 따라간다고 중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적성에 맞는 분야를 시작하면 스스로 의도적인 훈련을 하면서 약점을 보완해가며 무조건 1년이상 지속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이 이 어려운 과제는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부모는 간섭하지 않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부모는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만(supportive)한편으로 아이들에게 요구를 많이하는 (demanding) 부모로서 높은 수준의 능력에 대한 기대치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이런 부모들이 여러 유명인들을 키워냈는데 저자는 여러 스포츠 스타들과 그 부모를 인터뷰해 주장의 신빙성을 올려줍니다.

열정을 가지고 끈질기게 목표를 나아가는 주제의 특성상 이 책에는 여러 스포츠팀과 선수들 관련 인터뷰가 나오고 여러 연구 내용이 광범위하게 제시됩니다.

첫 인상은 일단 굉장히 미국적이라는 점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심리적 요인과 그 달성에 필요한 요소를 후천적인 노력과 끈기로 규정하고 관련 심리학 연구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면서 타고난 ‘천재’ 또는 ‘지능’에 대한 ‘신화’를 깨는데 주력합니다.

따라서 최신 학계 동향을 담은 심리학 저서인데도 왠지 자기계발서의 냄새를 풍깁니다.

제 기준에는 그래서 실용서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면은 노력과 끈기를 강조하면서 보이지 않게 ‘장시간 노동 ‘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고액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들이야 일반적인 직장인들과 입장이 다르지만 교훈적인 측면을 너무 강조하거나 ‘본보기’로 예를 들면 정당한 대가와 관련없는 무보수 야근을 강요하는데 이 논리를 끌어드릴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책머리부터 미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훈련방식과 문화에 대한 예가 나오고, 올림픽팀을 연구한 스포츠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인용되는 등 여러 에피소드들이 ‘보수적인’시각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선택된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합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심리학자의 주장이고 광범위한 서베이와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있다면 더 그렇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구성을 알려드리고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미국에서 2016년 출판된 책으로 본문만 277쪽에 달합니다.
총13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투지를 기르는 방법을 내적인 경우와 외적인 경우 두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마지막 장에 소개된 ‘글쓰기’에 대한 시는 책의 주제와 관계없이 인용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Te-Nehisi Coates의 글입니다 (pp276-277)

사진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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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시기를 다룬 역사서입니다.

대중독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한국 일본 중국의 사료를 직접 인용한 서술이 돋보입니다.

전체 책의 구성으로 보아 ‘약간 깊이가 있는 동아시아 역사 개설서’ 정도로 보는 것으로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구성에 대해 언급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총 27장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내용을 포괄하는 책인데도 목차는 물론 원저자 내지 편자들의 서론도 빠져 있습니다. 상당한 내용의 역사서인데도 이런 황당한 역서의 구성체제가 책의 가치를 반감시켰다고 생각합니다 ( 이 의견은 제가 본 책에 한정된 것으로 제가 본 책이 파본이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출판 당시부터인지 아니면 소장 도서관에서 파본이 된 것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역자후기를 포함하면 400페이지 가량의 책인데 목차와 서문추가가 책의 분량에 부담이 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근세의 동아시아시대, 즉 16-17세기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말 청일전쟁이후의 시기를 다루며, 포괄하는 국가는 조선, 청, 일본을 포함해 러시아, 미국, 류큐, 타이완, 홋가이도까지 포함합니다.


전통적 동아시아 사회에서 중국중심의 화이론 (華夷論)적 세계관이 대외관계로 나타난 책봉 (冊封)과 조공 ( 朝貢)시스템이 서구세력의 등장으로 서양식 조약관계에 따른 국제관계가 정립되어 가는 이행기를 19세기에 맞이하게 됩니다.

중국은 조선, 일본과는 책봉과 조공관계를 유지하면서 유럽열강들과는 서양식 조약관계를 맺으며 국제법적 환경에 발을 들여놓지만 이원적 국제관계는 상당기간 지속됩니다.

중국의 이런 이원적 국제관계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한 이후 완전히 청산되어 이후 중국의 국제관계는 조약 중심으로 바뀝니다.

한국은 전통적인 중국으로의 사대주의가 근대시기 조선의 발목을 잡은 중요 원인이 됩니다.

조선의 사대부와 개항기 지식인들은 조선이 중국의 ‘책봉’을 받는 ‘제후국’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믿었고 이런 전통적 관계이외에 새로 생겨나는 국제법적 조약관계를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내정개혁’을 주장하며 조선의 ‘자주 독립’을 주장했는데 그 의도는 공식적인 청의 속국 조선에서 청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암묵적으로 알려져왔던 청과 조선의 종속관계는 19세기 말 일본의 대륙진출 야심이 구체화되면서 청이 명시적으로 종속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조선에 주재했던 청의 고위관리 위안스카이는 조선의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결과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이전 당시 독립왕국이자 중일 양국에 속해 있던 류큐(琉球)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하고 아이누인들이 독립적으로 살아온 에조치(蝦夷地)를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홋가이도와 쿠릴열도를 일본영토로 사할린을 러시아 영토로 확정시킵니다.

거기에 청일전쟁을 통해 타이완을 할양받아 역시 식민지를 만듭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이전에 이미 류큐, 에조치, 타이완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청과 일본은 19세기 이후 러시아의 동진과 영국의 동아시아 세력 확장 그리고 미국의 북태평양 진출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연해주 지역을 비롯한 극동 지역에 진출하였고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고 만주지역의 철도 부설권을 획득해서 중국 북부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태평양 연안과 남극 등지에 이미 1840년대에 탐험선을 보내기 시작했고 1820년대 당시 태평양에서 고래잡이 원양어업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1850년대 미국의 페리제독이 일본에 개항을 요청하는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또 다른 열강인 영국은 이미 식민화된 인도 대륙을 발판 삼아 동북아시아의 거점 지역인 말라카 반도에 진출해 교역로를 장악하고 중국과 아편 무역을 해 큰 이득을 챙겼습니다.

이미 동남아시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싱가포르 등 거점을 확보한 영국은 청과 아편전쟁을 통해 홍콩섬에 거점을 만들고 중국 동남해안의 상하이, 광저우 등 항구에 조계를 설치하며 자신들의 이권을 챙깁니다.

서양의 제도를 받아들여 근대화와 공업화를 시작한 청나라와 메이지 일본에게 영국과 러시아는 경계해야 할 서구열강이었고 특히 메이지 일본은 청이 아편전쟁에서 지고 체제가 와해되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이 두 유럽 제국의 향방에 촉각을 기울입니다.

특히 일본은 러시아를 조선과의 관계에서 특히 경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에조치(蝦夷地)에 속하던 사할린 땅을 러시아에게 방기(放棄)한 점이라든지, 조선의 명성황후가 친러정책을 펴서 일본의 영향력을 없애려 할 때 그녀를 살해한 점이라든지, 고종이 을미사변(乙未事變)이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播遷)을 하자 일본 조야가 충격에 빠지는 등 러시아를 극도로 경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이지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청의 영향력을 조선에서 제거하고 이후 러일전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조선에서 제거하면서 최종적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합니다).

조선이 20세기 초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 원인은 결국 사상적인 측면에서 조선의 ‘소중화(小中華)’사상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서인세력은 조선 중기에도 맹목적 대명 사대주의 (大明 事大主義)를 고수하고 당시 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정조이후 19세기 내내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안동김씨, 풍양조씨 가문으로 대표되는 왕의 외척 세력들은 조선후기 서인의 일파인 노론(老論) 벽파(僻派)를 대표하던 세력으로서 이들은 조선후기 국가 통치 시스템을 붕괴시켰습니다. 그리고 세계정세에 몹시 둔감했습니다.

정조 당시 이미 천주교 포교가 시작되었고 연행사를 통해 서양의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조선은 청과의 책봉관계에 얽매어 국제정세를 배우는데 소홀히 하고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청이 19세기 말에 조선이 청의’조공국’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사실은 이미 조선후기부터 조선이 청을 대해왔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격동기에 조선이 국제관계를 대처하는데 결정적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청이 서양 제국의 이권침탈과 개방 압력으로 불평등 조약을 맺으며 서양과 국제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황제권이 약화되고 지방 번벌세력들이 할거하면서 전통적 통치 체제가 무너져가는 동시에 ‘변법자강 (變法自彊)’ 운동과 같은 근대화 개혁이 시작되고 있을 때 조선은 매우 ‘피동적(被動的)’으로 근대화 개혁에 임하지 않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도정치와 관련해서 ‘정조사후 63년 (창비,2011)’을 읽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세도정치의 시작부터 종말까 특히 조선후기 ‘성학론’과 ‘성왕론’을 둘러싼 왕과 사대부간 권력투쟁과 보수적 학자군주 정조 사후 그의 개인적 자질에 의해 유지되던 조선의 유교정치가 어떻게 외척에 의해 휘둘리게 되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구한말 고종시대 명성황후때까지 니어졌던 외척세력들의 정치 장악은 조선후기 마지막 100년과 그 이후 근대시기까지 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책봉과 조공관계는 중국이 주변국을 고대로부터 어떻게 인식했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딱딱하기는 해도 ‘중국과 주변 (혜안,2009)’이라는 저작이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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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2-2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소유하고 있는데, 제 책에는 미타니 히로시 나미키 요리히사 쓰키아시 다쓰히코가 쓴 머리말과 목차가 다 포함되어 있는데, 이상하군요

Dennis Kim 2021-02-26 15:45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빌려 책을 보았는데 서문 부분이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Redman 2021-02-26 16:28   좋아요 0 | URL
아이고 ㅠㅠ 누군가가 책을 훼손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