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 작가의 책 ‘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 창,2018)’ 은 그동안 각종 매체의 소개를 통해, 그리고 이미 읽으신 독자들의 소감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던 책입니다.

한 사회에서 ‘노동’의 의미를 일깨우는 논픽션을 써오신 작가라서 과연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습니다.

읽고 난후 감상을 언급 안하는 편인데, 이 책은 ‘웃프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부에서 언급한 개농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충격을 받았던 ‘부화장(pp 40-94)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닭은 공장식 축산 농가에서 알을 낳는 ‘산란계’와 고기를 먹는 ‘비육계’로 나뉘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길러지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부화장은 산란계의 부화장으로 달걀을 낳을 수 있는 암컷 병아리만 상품으로 인정받고 부화한 수평아리들은 모두 ‘불량품’으로 폐기처분 됩니다. 알에서 깨어난 미약한 어린 생명체가 알을 낳지 못하는 ‘불량’으로 인식되어 그냥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산란계들은 비좁은 케이지에 최소 3마리씩 갇혀 지내고 평생 알만 낳다 도축되며 그 알에서 깬 병아리들도 수컷은 모두 폐기되고 암컷만 미래의 산란을 위해 올겨집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원칙은 ‘사료값 ‘이라는 농장운영의 최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육계들은 그나마 케이지에서 지내지 않아 산란계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기형이거나 다른 놈들에 비해 몸무게가 작게 나가거나 하는 경우 가차없이 ‘도태( 즉 죽임)’을 당합니다. 이유는 위와 마찬가지로 사료값 때문입니다.

미국등에서 들여온 수입 옥수수 가루 위주로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한 사료를 먹여 가축을 기를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축산업의 산업구조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사료값을 덜 쓰고 양질의 상품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 사료를 축내는 가축은 가차없이 도태되는 것입니다.

시장을 위해 가축들은 가장 싼 사료를 먹고 자라며 자연에서라면 당하지 않아도 되는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농장(Farm)아니라 사실 닭과 돼지를 ‘생산’하는 공장(Factory)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래서 상품 취급된 동물들은 효율성의 잣대 아래 평소 먹지 않는 사료를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이클 폴란 (Michael Pollan) 의 ‘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bore’s Dilemma, Penguin,2007)’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책은 MB정부 당시 ‘광우병( Madcow Disease)’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할 당시 미국소가 왜 광우병에 걸리는지 (알려져있다시피 초식동물인 소가 소의 부산물을 먹어야 하며), 미국산 잉여농산물인 옥수수가 어떻게 목초류만 먹어야 하는 소의 먹이가 되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옥수수에서 추출된 당과 기타 이름으로 구별할 수 없는 화합물들을 섭취하는지 밝힙니다.

이책과 ‘육식동물의 딜레마’ 모두 축산업계에 대한 심층 취재를 바탕으로 한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돼지에 관해서는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새끼 돼지를 낳아야 하는 어미돼지가 평생을 뒤로 돌아보지도 못하는 스툴 (Stool)에 갇혀 새끼를 낳고 출산 후 한달도 쉬지 못하고 다시 임신해야 한다는 사실에 몹시 경악했습니다.

1년에 40분 정도 새끼 낳으러 갈 때 움직이고 평생 고개도 못 돌린체 벽만 바라보며 앉았다 일어서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돼지가 원래 야생에서는 공격성도 있고 활동성도 있는 동물로 알고 있는데, 똥을 싸고 거기 뒹구는 건 알고 있었어도 평생을 좁디 좁은 스툴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건 충격이었습니다.


제목에 ‘한국적’이라는 말을 넣은 건 개농장을 표현하기 위해 서 였습니다.

동물복지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동물들을 저렇게 대해도 된다는 말인가?’하는 의구심이 생기고 충격을 받은 닭과 돼지의 사례도 개농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개농장은 상상한 모든 것을 뛰어넘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축산업에 들어와 있지 않은 ‘식용’개농장은 아예 사료를 먹이지 않습니다. 개들은 어미젖을 뗀후 소위 ‘짬’으로 불리는 음식쓰레기만을 먹고 자랍니다.
그리고 평생 좁은 케이지에 갖혀 땅을 밟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전기충격으로 죽거나 목을 매어 죽임을 당하고 도축됩니다.

사실상 개농장 주인은 사료값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개를 키웁니다.

‘개농장’편을 읽으면서는 단순히 충격이 아니라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를 일깨운 글이었습니다.

개농장 사장들도 모두 나름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가장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식용으로 정해진 개라지만 글 속의 여러 캐릭터들이 솓아내는 말들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찿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개장수가 비용이 별로 안들어 많이 남는다고 주장하고, 짬사업 하시는 분들은 개가 음식쓰레기인 짬을 먹어 없애기 때문에 사실상 불법으로 방치된 개농장들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개농장에 한국적인 이유는 축산의 일부로 이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아마도 중국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에서도 식용 개산업을 축산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농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최소 이미 도축된 개들의 위생관리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개농장을 관리해야 할 텐데 이 책에서 그런 흔적은 전혀 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지만 정말 정부가 음식쓰레기 처리용으로 개농장을 묵인하고 있는걸까요?? 확인이 필요한 지점 같습니다. 비용 투입없이 장사를 한다는 개농장의 사업구조 자체가 이들을 음지에 있게 만든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의 필요성입니다. 식용 개농장의 양성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세계10위 경제대국이 프랑스 여배우가 개 먹지 말라고 대꾸도 못하는 건 우스운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 프랑스 여배우가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해 무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환경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대로 살아갑니다. 그 여배우가 한국에 무관심하니 그런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외교당국자들이 외국의 이런 주장에 너무 주늑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무튼 제가 개농장 양성화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개농장의 지금 현상황을 그대로 놔두는 건 ‘죄악’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면 뭐든 다되는 천박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에 묘사된 개농장은 모든 것이 한도를 초과해 버렸습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끝으로 몇가지 덧붙입니다.

이글을 쓰는 저는 비건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육식주의자입이다. 적당한 속물이죠.
따라서 동물복지에 관해 별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사랑하는 소비자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로서 그래도 가축이 가축답게 자라는 최소한은 우리사회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농장들의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과연 현재의 방식이 맞는 방식인지는 계속 의문이 남습니다.

과연 산란계 농장의 부화장에서 태어난 수컷 병아리들이 알에서 깨자마자 죽어야만 하는 건가요??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왜 유독 산란계 농장에서 수컷이 ‘불량’낙인이 찍혀 죽어야만 하는지 저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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