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istory of God: The 4,000-Year Quest of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Paperback) - 카렌 암스트롱『신의 역사』원서
Armstrong, Karen / Ballantine Books / 199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 500여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1994년 영국의 카톨릭 수녀출신 종교학자이자 방송인인 카렌 암스트롱 (Karen Amstrong)이 집필한 책입니다.
중동지역에 기반을 둔 서양의 세 일신교 (monotheism), 즉 하나만의 신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종교를 탐구합니다.
신앙인으로 살았던 저자가 종교의 철학적 이면을 파헤치는 책이기 때문에, 그리고 적지않은 두께의 책이기 때문에 읽기가 쉽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에서도 2001년 9월11일 발생한 9/11이후 상당히 주목을 받았던 책으로 저 역시도 2001년이후 이책을 읽었습니다.
물론 저자가 9/11을 염두에 두고 출판한 책이 아니었음에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왜 같은 종교적 뿌리를 가진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궁금증을 푸는데 일정 부분 기여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같은 뿌리를 가진 이 세 종교가 서로 반목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격화된 신 (a personal God)을 각각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사실 인격화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신학에서 이런 신의 존재에 대한 미스터리가 바로 신앙을 가지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동인으로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서양을 대표하는 이 세 유일신교는 자신들의 인격화된 신을 발전시킴으로서 상대방의 신을 멸시하고 무시함으로써, 그리고 자신들만의 신만이 옳고 근본적이다라고 생각함으로써 종교를 둘러싼 갈등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달리 표현해서 보면 이 책의 제목도 '신의 역사'라는 표현보다는 '인간이 상상해낸 신의 역사'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연유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 철학이 개입합니다. 철학적 견지에서 신과 종교를 설명하기 때문에 이책을 좀 더 꼼꼼하게 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요. 그리고 이책의 논의 자체만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다 설명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이 철학적 설명과 더불어 보완되어야 좀 더 완전한 논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희수 교수의 세계문화기행
이희수 지음 / 일빛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님은 한국에서 보기 드믄 이슬람 (특히 터키) 전문가입니다. 터키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터키,튀니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구를 하신 아주 드믄 분이십니다.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우는 대부분 영어권 학자들의 시각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서양중심주의(Eurocentrism)의 영향을 받은 설명을 듣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에서 드믄 이슬람전문가의 이슬람국가 여행기는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더구나 영어를 통해 중역되어 알려진 이슬람이 아닌 현지 언어를 직접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인의 해설이라서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소위 보수층 (정확하게는 수구 반공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미국등 서구와 똑같이 극렬 테러분자로만 이해하려 들고, 교화의 대상으로 보는 심각한 인식의 오류를 범합니다.
이분들이 기본적으로 상식적이지 않은 분들이기는 한데, 잘 알지도 못하는 이슬람국가 출신 외국인들마저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이슬람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만나본 이슬람 국가에서 온 친구들은 우리가 미디어에서 본 그런 극렬한 이들이 아니고 착하고 순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있을 당시 알게된 한 방글라데시 친구가 있었습니다. 좀 수다스럽기는 해도 착한 친구였고, 그 친구를 통해서 이슬람국가에서는 주식으로 엄청난 양의 토마토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이 친구도 그렇고 다른 이슬람권에서 온 친구들이 당시 터진 9/11으로 인해 미 이민국에 등록을 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목격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슬람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 미국에서 접한 9/11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이슬람에 관한 어떤 책이 있나 살펴보니 대부분 영어권의 책을 번역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 이책이지요.
기본적으로 여행기이기 때문에 이슬람 사회를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서구화(Westernization)가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어 서구의 문화가 선진적인 문화로서 잘못 이해되고 있는 현실에서 서구이외의 문화를 간략하게나마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약 20여년 전 영국 런던(London)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의 캄보디아실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영국이 식민지국가들로부터 약탈해온 수많은 문화재가 전시된 이 제국의 박물관에서 난생처음 캄보디아의 유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알던 캄보디아는 이렇게 아름다운 미술품을 만들 수 있는 나라라고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캄보디아라는 '후진국'의 유물을 본 후 영국과 프랑스의 근대유물을 보았는데, 그 조잡함에 더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영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자국 영국의 유물이 있는 전시실이 아니라 이집트 미이라가 전시된 이집트실입니다.
제국주의의 영광을 후대가 관광으로 연결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제국의 수도 런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슬람에 대해서도 한국인인 우리들이 제대로 모르는 만큼 열린마음으로 편견없이 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슬람과 역사적인 알력이 있는 서구의 시각에 편승해 사이좋게 지내도 될 이슬람국가들과 이슬람출신 외국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문화일수록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래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hat Went Wrong?: The Clash Between Islam and Modernity in the Middle East (Paperback)
Lewis, Bernard / Perennial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2001년 9/11이 일어난 지 얼마 안 있어 출간된 영어권 최고의 중동학 석학의 책입니다.
영국계 미국인(British American)으로 중동학 (Middle East Studies)의 최고 석학 중 한명으로 꼽히는 프린스턴 대학의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의 책입니다. 초판은 2002년 1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습니다.

서구의  보수(conservative) 입장에서 어떻게 이슬람을 바라보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저자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 글은 9/11이전에 발표되었던 글과 같이 묶여 9/11의 충격의 여파가 체 가시지 않았던 때 발간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끌기 충분했었습니다. 발간당시 이책은 미국에서 이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필독서처럼 취급이 되었지요.

책 제목이 '(이슬람사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입니다. 은연 중에 이슬람이 서구에 비해 '잘못된' 사회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한 짧지만 편견이 숨어있는 제목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1683년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왕국(Habsburg Monarchy) 및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국 (Polish- Lituanian Commonwealth )그리고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과 맞선 두번째 비엔나 함락의 실패 (the failure of the second Ottoman siege of Vienna)이후 서구의 힘에 이슬람이 압도되었고, 이후 이슬람은 서구세계가 걸어온 근대화(modernization)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해 서구세계에 비해 이슬람세계가 뒤쳐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서구의 역사가들이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Fall of Constantinople, 1453; 비잔틴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함락당하면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지요)을 서구세계가 이슬람에 굴복당한 첫 장면으로 묘사하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인 것 만큼이나 이 제2차 비엔나 함락 실패는 서구세력의 힘이 이슬람을 압도하는 역사적 전환점( turning point)로 대체로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근대화라는 서구적인 물질문명과 이슬람세계가 서로 상반되고 또한 갈등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달리 보면 이슬람세계가 서구화(Westernization)라는 전지구적 보편적 문화에 저항적이라는 의미이고, 이 갈등이 종식되기 위해서는 이슬람이 서구세계의 문화에 포섭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서구중심주의(Eurocentrism)적 접근법입니다.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이라는 말은 그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보수적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동명의 저서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버나드 루이스의 시각역시 이 보수적 학자의 견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버나드 루이스의 이책이 서구사회와 이슬람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구사회의 우월함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사무엘 헌팅턴의 책은 서구를 일반적인 것으로 규정하면 서구의 이상적인 세계지배에 도전하고 있는 이슬람국가들 및 경제적인 발전으로 서구에 위협이 되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항하여 서구가 어떻게 그 힘의 우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국제정치전략적인 측면에서 다룬 책일 뿐입니다.

두 책 모두 서구사회를 일반적인 사회, 혹은 정상적인 사회로 보고 그 외의 사회들은 이 일반적인 사회에 도전하는 덜 발전된 사회로 보는 명백한 이분법적 서구중심주의가 들어가 있습니다.

영어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 이들이 영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 한국적이지 않은 측면도 한국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영어권의 사람들도 모든 것을 영어적 사고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중동사회를 볼 때도, 아시아 사회를 볼 때도 이들은 항상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를 바탕으로 자신과 다른 세계의 지식을 체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비영어권에 대한 지시을 오로지 영어로 쓰여진 책에 의존해 이해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따라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언어를 쓰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할 텐데 일반적으로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할 필요를 그들은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볼 때 이런 영어권 사람들의 다른 세계에 대한 무심함은 떄로는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한국에 5년이상 주재해 있었으면서도 한국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도 많이 봤습니다.
이들이 오만하게 보이는 것이 과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미국은 9/11이후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이라크를 공격했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전리품을 챙겼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고 오사마 빈 라덴이 제거되었지만 중동지역의 정세불안까지 모두 해소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IS라는 새로운 테러조직이 발생하여 서구사회를 유협하고 점차 그 영향력을 아시아지역까지 넓혀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9/11의 보복을 다짐하고 이슬람국가를 자신의 입맛대로 보는 이들은 모두 네오콘 (Neo Conservative)라는 보수적 정치세력으로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여 전세계적인 양극화를 만들어내는데 공헌한 세력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사실 미국에서도 2008년 경제위기 (2008 credit crisis)를 겪으면서 사실상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시각(perspective)은 그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성격을 보입니다. 서구가 서구이외의 세계를 타자화하여 자신들 이외의 것은 덜 발전된 것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보는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은 단지 이슬람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한자문화권인 한국에서도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인 자신조차도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에서 현실과 역사를 바라봅니다. 이는 반드시 교정되어야 합니다.


서구열강이 19세기 말 이 땅에 들이닥치기 이전 한국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았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그래서 더더욱 있습니다.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폄하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세상을 보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잊혀져가는 수많은 한문전적들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텍스트 해석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이고 하나의 큰 주제이기 때문에 별도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에 앞서 자기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배움의 출발점이기 때문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도시여행 - 도시 골목골목, 우리 문화와 이야기를 따라 걷다 참여하는 공정여행 2
이병학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한겨례 ESC팀 여행 레져 담당 이병학 기자가 한겨레 신문 지면에 연재한 기사를 책으로 묶어 2011년 출간한 책이 이 책입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당일치기 코스를 소개했습니다.
제가 일부 가본 코스는 인천 근대문화 여행 코스와 강화도 코스였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정작 서울성곽코스는 가보지 못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가보고 싶은 코스는 군산과 목포 근대문화유산 코스였습니다. 아마 요근래 다시 한국근대사와 일제시대에 대한 관심이 켜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각 꼭지의 글이 짧다보니 사실 많은 정보를 얻기는 어려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완하면 간단한 하루짜리 여행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볍게 쉬어가듯 읽기 좋은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3
이나미 지음 / 책세상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소장 정치학자가 본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에 대한 책으로 서구에서 생각하는 자유주의(liberalism)과는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른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라는 사상이 어떻게 나타났으며 한국의 소위 '보수'세력들에 의해 어떻게 향유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데 사용되어 왔는지, 그리고 구한말 도입 이후 자유주의가 어떻게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과 결합해 제국주의(Imperialism) 를 합리화해 왔는지 그 원인을 살핍니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서구에서 발생 당시부터,  자본가 계급의 '재산과 교양'을 기반으로 하여 처음부터 빈곤계급을 포괄하지 않은 상태로 인간의 자유평등과 합리주의를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자유주의의 이중성이 나타나고 저자는 이에 주목합니다.

애초부터 자본가계급(capitalist class or boourgeoisis,資本家階級) 을 대상으로 발전된 자유주의를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자유'를 자신의 재산권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만 지킬 수있다면,  집권세력은 그 어떤 세력이어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한국에 자유주의가 도입되고 난 후 어떻게  군부독재세력이 집권을 할 수 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자신의 재산권만 지킬 수 있다면 누가 통치해도 상관없다는 이들의 '천박함'이 독재세력들이 집권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유주의에서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경제적 자유만을 강조하다보면 이것이 다수 민중의 복지를 추구하는 민주적 정치적 자유주의와는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강조하게 되고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또한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유주의(특히 경제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경쟁을 당연시하는 이유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Winner Takes All) 는 논리의 사회진화론, 그리고 더 나아가 힘센 문명국가가 힘이 약한 비문명 국가 또는 후진국가를 식민지로 포섭해 '문명화'를 시켜준다는 제국주의와의 공존을 그다지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승열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이런 시각은 또한 서구가 아시아보다 우월하다는 서구중심주의를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입니다.

이런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은 20세기의 수많은 비극을 잉태했습니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의 국제적 경쟁은 끝내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세계를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를 위한 정책으로 큰 영향을 끼친 케인즈주의 정책의 일시적 우위이후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행정부가 기본 기조로 삼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대를 풍미하기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따라서  21세기하고도 17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경쟁과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역시 위에서 설명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민주국가의 통치원리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을 함께 받아들여 경쟁과 개인의 이익을 절대시 하는 자유주의를 다수 국민 지배로 균형을 잡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지배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개인의 이익과 재산권의 절대화는 결국 사회를 극한의 양극화(polarization)로 몰고 갑니다.

수구 반공주의 정부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한국의 양극화 (polarization)가 극대화되고, 결혼율이 떨어지고 자살률이 올라간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찿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제 개인적이 사족(蛇足)을 붙입니다.
지난 대선 유승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바른정당'이 제대로된 한국의 '보수'를 표방하고 나섰습니다. 지지율이 미미해 찻잔 속의 폭풍으로 끝났지만, 결국 한국 보수의 미래는 바른정당이 표방하는 '보수'의 이념이 어떻게 한국에 자리를 잡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보수를 표방하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올바른 의미에서의 '보수'정당이 아닙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군사독재정권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당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까지 그 원류가 올라갑니다), 사실상 수구 반공을 표방하는 정당입니다.


보수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원칙에 대한 소신이라든가 법치주의에 대한 관념이 전무합니다. 지난 박근혜정부 시절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전제 왕조국가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할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으며, 모든 통치관계는 통수권자와의 친소관계를 통한 권위주의로 일관되었습니다. 당시 자유 한국당이 한 일이라고는 '거수기'역할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한국에 진짜 보수세력이 나타나야 하고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응원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집권민주당은 중도 보수에 속해 있지만, 한국에서 중도 보수가 아닌 보수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습니다. 정의당이 속한 진보도 그 외연을 넓혀야 겠지만 제대로 된 이념에 굳게 뿌리박은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이 이제는 자리를 잡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언제나 비이성적 결정을 해온 60-70대만이 지지하는 자유한국당은 그래서 앞으로 그들의 수구 반공주의의  스탠스를 바꾸지 않는 한 지지율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난 10년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공동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