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송복 명예교수가 쓴 임진왜란에 관한 책입니다.
전쟁당시 영의정이자 도제찰사였던 류성룡의 ‘징비록’과 그가 전쟁을 수행하면서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에게 보고했던 수많은 보고서를 인용해 임진왜란의 역사적 사실을 ‘현대의 국가조직’ 차원에서 살핍니다.
임진왜란은 어려서 배웠던 것처럼 조선이 ‘압도적’으로 일본을 이겼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30여년전 한국의 군사정권은 ‘성웅 이순신’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를 윤색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1. 이 전쟁은 명과 일본의 전쟁이며,
2. 일본의 조선 침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 침략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전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3. 또한 조선은 당시 전국시대의 거치며 군사력을 길러온 일본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문약한 나라였으며,
4. 따라서 체계적인 군사조직도 정치조직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였습니다.
5. 제대로된 군사조직이 없으니 명나라의 구원군이 없이는 전쟁도 치룰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6. 성리학을 통치철학으로 삼은 양반 사대부들은 성리학의 당위만를 강조하느라 실용적인 국가조직과 군사조직의 운영을 도외시 한체 양민들의 노동력만을 기반으로 이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7. 류성룡과 이순신 등 소수의 고위관료를 제외한 대다수 고위관료들과 선조는 명에 대한 사대를 절대적 가치로 여겨 백성의 삶을 도외시하고 심지어 적대시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의 국제정세 오판은 후에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며 약 300년 후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로 이어집니다.
8. 류성룡과 이순신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이 있었음에도 군주인 선조의 지나친 대명 사대의식과 변덕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하마터면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의 존립의 위기를 몰고 오기도 했습니다.
9. 요동의 안보를 위해 참전한 명은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과의 협상과정에서 일본과 조선반도의 분할을 논의하기도 했고 무능한 선조를 바꾸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런 협상이 원활하지 않자 조선을 속국으로 직할통치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10. 이 모든 명과 일본과의 협상에 섣불리 나서지 않으면서 조선의 존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영의정 류성룡이 목숨을 내놓고 명과의 외교에 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1. 조선이 국가조직과 군사조직이 엉망이어서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이 아니었고 그래서 명의 구원군애 의지할 수 밖에 없었지만 명나라 군대도 당시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거의 전패한 전쟁이 임진왜란이었으며 애당초 명의 재정상 이들은 적극적으로 참전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12. 결국 조선반도 내에서의 전쟁에서 명은 일본과의 전쟁보다 조선 양민에 대한 수탈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일본의 진로를 차단해 결정적으로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는 데 공헌한 이는 이순신 한사람 뿐이었던 것입니다.
13. 조선의 쇠퇴는 사실상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스스로 힘을 길러 나라를 지켜야 한다’ 주장하는 자강파 정치인은 류성룡,이순신 이후 조선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존명사대를 주장하는 숭명파가 정치권에 득세하면서 이후 병자호란을 자초하고 이후 19세기 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6세기 후반은 조선 조 성리학의 전성기로 명분과 의리를 주장하는 성리학자들이 정치권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들은 성리학 이데올로그로서 자기 정치를 주장하고 명분을 내세우며 논쟁을 일삼았지만 현실적이지 않고 국가경영을 등한시 했고 숭명 사대주의에 물들어 조선의 백성들의 민심보다 명 조정의 눈치를 더 많이 보았고 명은 이런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취급합니다.
왜란으로 조선 땅에서 전쟁을 치루고 백성들이 죽어감에도 나라의 자존을 지키지 못하고 군주가 명나라 장수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게 된 것은 이들 숭명파 사대부들이 자초한 불행입니다.
불행한 역사를 되돌아 보는 이유는 그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책의 단점을 몇가지 지적하고 끝맺으려 합니다.
첫째, 본문이외에 별도의 인용문헌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이라는 전문서를 한글세대에 맞게 펴낸 것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인용정보가 없는 것은 아쉽습니다.
둘째, 현대의 국가조직 측면에서 16세기 조선의 조정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현대의 공화정치의 모델로 성리학적 정치모델을 비판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어떤길을 가는지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 과 이덕일씨의 ‘송시열’에 관한 저작이 일부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