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수복지구’를 연구하셨던 한모니까 선생의
최신작입니다.

한국사람들이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서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줄 알고 있는 북한과 남한 사이의 비무장지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반도 정전체제 (armistice system)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한국전쟁이 북한과 중국 그리고 연합국(미국)사이의 1953년 휴정협정을 조인한 이후에도 법적으로 전쟁을 정지한 상태이지 종전(終戰)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임 문재인 정부 당시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종전체제로 바꾸려 시도를 했었지만 협상상대국의 비협조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주목할 사실은 한반도에 비무장지대 설치를 최초 주장한 국가는 영국으로 처칠( Winston Churchill)이 총리에서 퇴임한 이후 노동당의 애틀리(Clement Attlee)가 총리를 하고 있었고 비무장지대의 제안은 당시 영국 외무장관 베빈(Ernest Bevin)이 했습니다. 영국은 한국전쟁이전 이미 중동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전협정을 1948년 주도한 적이 있는데 (제1차 중동전쟁), 이 때 정전안에 비무장지대가 포함된 적이 있어 이 사례를 한반도에 적용하려 한 것입니다 (p52).

두번째는 한국이 정전협상의 당사자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정작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지만 이승만 정부는 ‘공허한’북진통일만 정치적으로 주장할 뿐, 군사력이 형편없었습니다. 미국이 참전해 도와주지 않으면 북한을 상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한국군 , 미군(유엔 연합군), 북한군. 중국군이 모두 전투에 참가했는데도, 유독 한국만 휴전협정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명백하게 이승만 정부의 ‘과오(過誤)‘입니다. 오판을 한 겁니다. 법적으로 협정의 조인당사자가 되지 못한 한국은 이후 비무장지대에 대한 모든 결정을 유엔군 특히 미국의 결정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뉴라이트 친일 세력이 ’국부‘라고 칭송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한반도의 운명을 한국인이 결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 오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긴 역사적 견지에서 봤을 때,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음에도 한국인들이 운명을 정할 수 없었던 경우는 한국전쟁만이 아닙니다. 멀게는 임진왜란부터 근대에 들어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까지.

전쟁이 일어나 고통을 받은 주체는 한국인이었는데 전쟁의 승패를 놓고 협상을 하는 당사자는 당시 조선이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의 경우 당시 왜국(倭國)과 명(明)이 종전협상의 주체였고, 청일전쟁의 경우 청(淸)과 일본이 종전협상의 주체였습니다. 러일전쟁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일본이 종전협상을 했지만 정작 전투는 조선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경우가 조선의 군사력이 약해서 생긴 일이고 이는 조선의 근본주의적 유교 통치이념과 서인 노론 지배양반층이 국방력을 소홀히 하면서 유교적 대의명분(大義名分)과 강상(綱常)의 윤리만을 받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는 국토가 피폐해져도 국민이 굶어죽어도, 전쟁의 결과와 득실에 대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던 기득권 지배층의 무능에 있었습니다.

유사한 일이 이승만 정권 당시 한국에서도 재발한 겁니다. 섣불리 북진통일을 주장하면서도, 미국의 군사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한국전쟁 당시 한국의 현실이었고, 결국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설정에 한국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 관련 내용은 아래의 책에 상세합니다.

한반도 분할의 역사, 이완범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2013)


세번째, 1970년대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남북간의 화해무드는 미중간의 데탕트의 영향이 큽니다. 1972년 당시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서 공산권과의 화해무드를 조성했고, 당시 군사독재정부인 박정희 정부는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었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북한에 비밀리에 평양에 파견하고 이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해 그전까지 적대적으로 대해왔던 북한을 어떻게 접촉하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겁니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떠밀려 북한과 접촉하게 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1970년대 이런 변화는 박정희 정부에 대해 긍정적인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독재시절 확립된 7.4남북공동성명은 현재까지도 남북교류와 협력의 지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군대미필자 투성이인 현 윤석열 정부와 대통령실이 근거없이 북한의 체제멸망을 거론하는 호전성에 비해 박정희 정부는 최소 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미국의 전략자산만을 믿고 북한을 적으로 돌리고 전쟁을 부채질하는 군미필자 검사출신 대통령은 오히려 무능한 독재자 이승만을 연상시킵니다.


정치를 모르고 적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대통령이 통치권을 행사하는 시대에 비무장지대와 정전체제를 이야기를 하고 종전을 이야기하는게 부질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북한과의 공존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소련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아시아태평양 전선에 더 빨리 참전했으면 전범국 일본이 분할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홋카이도 점령계획이 있었고, 미국은 일본 본토 침공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본 본토대신 한반도가 분단되는 비극이 일어난 겁니다.

지배계층의 오판과 무능이 분단을 초래했다면 최소 분단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분단으로 생기는 이익이 많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추정합니다.

한국의 소위 보수세력이 북한을 때리면서(bashing) 북한과 적대적 공존(敵對的共存)을 모색하는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의 격화와 함께 이스라엘의 가자 (Gaza) 전쟁과 레바논 침공을 둘러싼 서구와 비서구 지역간의 갈등이 신냉전 국면을 불러와 오히려 한국의 소위 보수세력들에게는 활동공간이 더 넓어진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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