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 사학(門中史學)이라는 말은 한 가문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책은 조선의 대표적인 세도가였던 안동김씨 가문에 대한 역사입니다.'문중'이라는 말의 어감 자체가 전근대적이고 고루한 냄새가 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한 집안의 가계를 설명하는 책인 '족보'가 생각나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담론은 결국 이런 각각의 문중의 역사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는 것 역시 올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이 책은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저자 김병기씨가 안동 김씨가 아닌 배천(白川)김씨이기 때문에 자신의 문중에 대한 역사를 후손으로서 저술했다는 편견을 없애고, 다른 가문의 역사를 그래도 제3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안동 김씨는 조선 중기 정조때 부터 조선말기까지 왕가의 외척(外戚)으로서 '세도'를 누리던 가문으로 지금도 안동에 가면 이 가문의 종가가 수백년의 세월을 품은 체 그대로 서 있습니다.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는 자신의 둘째 아들인 순조를 안동김씨인 김조순의 딸과 결혼시킴으로써 이 가문이 장차 조선 후기까지 세도를 떨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후 조선은 안동김씨 집안에서 23대 순조비인 순원왕후 (김조순의 딸), 24대 헌종비 효현왕후(김조근의 딸) 그리고 25대 철종비 철인왕후 (김문근의 딸)를 연속으로 맞이하고, 이 집안의 세도는 그 끝을 알수 없게 커져갑니다.조선은 왕조국가인 동시에 사대부 국가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선비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대했으나, 안동 김씨의 경우 세번 연속 왕후를 배출했기 때문에 심지어 이씨왕조의 실제 지배자는 김씨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습니다.하지만 안동 김씨는 세도정치만을 편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집안이었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도 이 집안에서 많이 나왔습니다.그런 면에서 좋든 싫든 안동김씨 가문의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정치사, 권력투쟁사와 동전의 양면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한번 쯤 들여다볼 필요는 있습니다.지금 한국은 성리학의 나라가 아니지만, 아직도 한국은 성리학의 사고방식과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작지만 재미있는 역사책입니다. 얇지만 내용은 상당히 탄탄하다고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