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람과 장소에 대한 영상을 보는 걸 무척 좋아해서 집에 있는 동안엔 다큐여행 채널을 고정적으로 틀어 놓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때마다 관련 지역의 영상을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는데 일부러 찾지 않는데도 신기할 만큼 타이밍이 잘 들어맞고는 한다. 예를 들면,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을 읽을 땐 여정의 경유지였던 시베리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는데 거친 자연환경을 보며 체홉이 묘사했던 정경이나 그곳의 사람들, 마차를 타고 가며 겪었던 이런저런 고생담들을 좀 더 실감 나게 연상해 볼 수 있었다. 또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읽을 땐 책을 읽다가 눈을 들어 TV를 보면 거짓말처럼 터키 영상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산문을 읽을 땐 그런 행운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알제리와 관련된 영상을 찾을 수 없어 각종 지식백과나 블로그들을 검색하며 다소나마 갈증을 해소해야만 했다. 카뮈의 문장엔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장소에 대한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가기만 했고,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보다 관련된 장소의 자료들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도 같다. 카뮈가 본 곳을 보고, 그 꽃과 나무를 느끼며, 같은 태양과 바다를(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고서야 카뮈의 정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카뮈의 '태양'이 가장 궁금했는데 찾다 찾다 어느 블로그를 보니 사람의 정수리에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이방인」의 뫼르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태양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그렇게 카뮈에게 다가가는 길은 미지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유형의, 이를테면 작가에게로의 여정을 즐기는 독자에게 안성맞춤의 책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나에겐 읽는 운이 따른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하필이면 카뮈를 읽고 있는 동안, 마침 이런저런 것들을 궁금해하던 차에 이렇게 정리된 자료집이 출간된 것이니 말이다. 카뮈의 딸 카트린이 구성한 「나눔의 세계」는 알베르 카뮈의 정신적인 여정을 담은 책으로, 카뮈의 작품이나 그가 지향하는 바들을 시간적인 순서가 아닌 공간적인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카뮈의 '정오의 사상'이 태동한 지중해로부터 유럽을 거쳐 세계로 향하는 동안 그의 정신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수록된 사진이나 다양한 텍스트(카뮈의 작품, 원고, 서한, 신문기사, 호소문 등)를 통해 보여준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종종 따라 적기도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실물을 접하고 보니 생각보다 더 크고 묵직했으며(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보다 더 큰 판형이다), 수록되어 있는 자료들도 풍부했다. 카뮈의 글들을 읽으며 이미 찾아보았던 자료들도 있었지만 카뮈가 경험한 바로 그 시간들의 생생한 기록을 보다 보니, 이미 그의 작품을 통해 읽었던 문장들도 시각적인 자료들로 인해 더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았다.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카뮈의 사진들이었다. 드라마를 지니고 있는, 여운이 풍부한 그의 얼굴은 마치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몰입하여 연기하고 떠나간 배우처럼, 모습 자체로 작품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탈리아로 들어간다. 나의 영혼에 꼭 들어맞는 그 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볼 수 있다. 처음 마주치게 되는 비늘 같은 기와를 인 집들, 유화작용으로 인하여 푸르게 된 벽에 달라붙은 포도나무들이 그것이다. 마당에 널어놓은 첫 빨랫줄, 어수선하게 흩어진 물건들, 사람들의 마구잡이 옷차림 같은 것들이다. " - 「안과 겉」, 알베르 카뮈

 

 

 

누구에게나 자신의 영혼에 꼭 들어맞는 장소나 풍경, 사람, 글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스위스적인 정돈된 풍경보다는 조금은 왁자지껄한 이탈리아적 풍경을 좋아한다. 생활의 소음이 들리는, 풍부한 색소로 가득하며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마음속엔 만족스러운 고요함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겉은 다소 소란스럽지만 나의 마음 안쪽은 평화로운 정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풍경 한가운데에 있게 되면,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내 마음속에 그 정경과 소리, 향기들을 그려 넣고 싶어진다.

 

 

 

하지만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들은 그런 평화로움에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내적으로 충만해진 고요함에 금이 가도록 만드는, 외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무상으로 주어진 자연의 충만함 속에서, 이미 가득 부풀어 오른 고요를 마음껏 누린 사람으로서, 이젠 다시 삶으로 돌아오라고, 사람에게로 향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카뮈의 문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카뮈의 성장에 일조한, 그가 바라보았던 풍경들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미완성 작인 「최초의 인간」 도입부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연상될 만큼 현란한 이미지의 향연으로 시작되는데 섬세한 표현이 압권인 프루스트와는 달리, 카뮈에게선 자연의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다.

 

 

 

"나의 단 하나뿐인 재산이었던 아름다움의 장관 속에서 자랐던 나는 우선 충만함으로 시작했었다. " -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취기에 취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서의 도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카뮈의 전 작품과 그의 사회 참여와 삶 자체를 관통하는 정오의 사상이 형성된 곳은 바로 거기, "햇빛 때문에 캄캄해지는 들판 "이다. " - 「나눔의 세계」, 카트린 카뮈

 

 

 

카뮈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바로 그의 태양과 바다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침묵이라는 헐벗은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장시켜 주었던 것은 지나칠 정도로 충만한 자연이었고, 그 지나침을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절도를, 타인에게로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어느 쪽으로든 극단적인 것에 대한 경험은 균형을 추구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물론 카뮈의 시선에도 한 사람이 바라볼 수 있는 범위라는 게 있었을 것이고, 시대적인 상황 역시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오의 사상'이 태어나게 되기까지는 안과 겉, 긍정과 부정을 모두 직시하며 그 어느 것도 배제시키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 있었다.

 

 

 

"유일한 행복은 지상에서의 행복이며, 유일한 삶은 속세에서의 삶이다. 알베르 카뮈를 생각할 때는 이 출발점을 꼭 상기하자.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글을 씀으로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작가들이 있다면 카뮈는 자신의 글처럼 살았던, 아니 오히려 자신이 사는 대로 글을 썼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방인'이자 '최초의 인간'이었던 그였기에, 태양이 주는 만족과 공허를 알았기에, 더더욱 살고자 했기에 말이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부조리를 직시하며, 그에 반항하고, 더불어 사랑하기를 외쳤던 카뮈의 정신은 '정오의 사상'이 태동한 그 출발점을 감각적으로 공유함으로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부터 어떻게 심화되어 나갔는지를, 그가 썼던 글이나 자취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준 「나눔의 세계」는 카뮈에 대한 훌륭한 자료집이었다. 궁금했던 카뮈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고, 그가 좋아했고 영향을 받았던 작가들에 대해서도, 또한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며 어떤 글을 썼고 행동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카뮈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묵직한 선물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1914년의 사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더 가까워졌다. 전쟁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절망이 어떤 극단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면 불쑥 무관심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와 더불어 숙명이라는 느낌과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 - '전쟁', 1939년 9월 17일, <르 수아르 레퓌블리캥>

 

 

 

"아마도 어느 세대나 저마다 이 세계를 개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세대는 세계를 개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대의 과업은 아마도 더욱 중대할 것입니다. 그 과업은 바로 이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저지하는 일입니다. " - 「스웨덴 강연」, 1957년 12월 10일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 : 길을 잃지 않기,

세계 속에 잠들어 있는 자기의 것을 잃지 않기. " - 「작가수첩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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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3-12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카뮈는 `이방인` 만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교과서로도 사용했었구요. 전집을 작년에 구해서 고이 모셔놓았는데, 읽을 틈이 나지 않습니다. 소설과 기본적인 고전문학을 좀더 읽고 전집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장소나 사람을 떠올리는 건 참 좋은 경험인데, 님처럼 TV로 그렇게 만나질 수도 있네요.

물고기자리 2016-03-12 10:35   좋아요 0 | URL
카뮈 전집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저도 한 권씩 모으고 있습니다.ㅎ

제가 집에 있을 땐 보든 안 보든 배경화면처럼 다큐여행 채널을 틀어 놓거든요. 예전에도 지리 과목을 무척 좋아했었고, 다양한 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궁금해했었는데 책도 그런 호기심을 바탕으로 읽게 되는 것 같아요.ㅎ

일부러 찾아 볼 때도 있지만 책을 읽을 때, 우연찮게 관련 장소의 영상을 보게 되면 신기하기도 하고 참 좋더라고요.^^
 

 

 

알베르 카뮈「최초의 인간」을 읽는 동안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1960년 카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당시 강한 충격으로 튕겨져나간 작은 검정 가방 안에서 '쓰다 만 초고'의 상태로 발견된 육필 원고를 편집한 이 소설은 아직 소설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상태였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느닷없이 바뀌기도 하고, 판독 불가능한 글자는 빈칸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쓰고 삭제해야 할 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부분도, 중복된 장도 있는가 하면, 원고 사이사이에 끼여 있던 낱장들은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카뮈의 맨 얼굴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이 소설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심 미안해하고 있었다. 다듬어지기 전의 이야기라서, 한 사람의 인생을, 그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경험이었지만 어쩐지 훔쳐 읽는 것 같은 수치스러운 마음 또한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개방하기 전의 비포장도로를 남몰래 달리듯, 덜컥거리는 생생한 감각으로 한 사람의 삶 속을 허락 없이 침범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바로 그 느낌 때문에, 미안한 마음과 감동이 어우러져 있는 이 복잡한 심경 덕분에 카뮈와 이 책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는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침묵 속에서 무엇이든 혼자 알아가야 할 '최초의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역사와 전통이 없는, 장애와 가난마저 짊어지고 있는 그의 가족에겐 그나마의 얄팍한 과거마저도 무의미해진다. 가난한 고아였던 자크의 아버지 역시 '최초의 인간'이었지만, 현재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사망한 후론 가족들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곱씹을만한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것은 없을뿐더러 오직 현재에 집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크에겐 아무리 가지고 누려도 모자람이 없는 태양이 있고, 미친 듯이 사랑하며, 전심전력으로 사랑받기를 열망하는 아름다운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떨리고 부드럽고 뜨거운 시선이 어찌나 깊은 뜻을 담고 그를 향하고 있었는지 아이는 뒷걸음치며 머뭇거리다가 그만 밖으로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고 있어, 나를 사랑한다니까> 하고 그는 층계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 (p102) 

 

 

 

어릴 때 병을 앓아 미미한 청력을 지닌 어머니는 문맹인 데다가 아주 적은 어휘로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말 없는 체념을 강요받아 혼자 격리된 채,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 없이, 모습은 아름답지만 거의 접근이 불가능한 채로, 항상 웃음 짓고 있기에, 그의 마음이 어머니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기에 더욱더 접근이 불가능한 채로, 어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쉬는 날도 없이 고달픈 노동을 반복하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아무런 원한도 없어져 버린, 남의 것이건 내 것이건 일체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듯 한 어머니의 무심한 시선은 늘 발코니 너머의 거리로 향해져 있다. 어머니의 주변엔 침범할 수 없는 침묵이 흐르고, 자크 역시 그 침묵 앞에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는 끔찍한 공허가, 가슴 아픈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어서..... " (p45)

 

 

 

옳고 그름을 알려줄 정신적인 유산도, 따라야 할 권위도 없다 보니 매일매일 새로운 태양처럼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러니 그 나날들은 첫날의 기쁨이자 채워지지 않는 공허였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전해 들은, 아버지가 목격했던 단두대에 대한 이미지는 그가 유일하게 물려받은 유산이자 고통이었다. 하지만 자크에겐, 아니 카뮈에겐 어머니의 침묵이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해주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공허를 이겨낼 수 있을만한, 무한한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어머니의 침묵은 오히려 그를 삶으로 치닫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 어머니의 저 탄복할 만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에 어울릴 수 있는 정의, 혹은 사랑을 찾으려는 한 사나이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더 그 작품의 중심으로 삼아보겠노라고..... " - 「안과 겉」에 부친 서문, 카뮈

 

 

 

사실 카뮈의 시선엔 어머니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에겐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불가결한 일일 것이다. 카뮈에게 그토록 예민한 시선을 만들어 준 것은, 삶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준 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순수한 침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그 침묵을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그래서 더 사랑했고, 그만큼 마음 아파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거리로 향해져 있는 어머니의 무심한 시선은 어디에서든 여전히 카뮈를 따라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카뮈에겐 태양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다. 세상이 주는 가장 호화로운 것을 무상으로 받아 온몸으로 누리는 놀이가 있었고, (그 한편으론 현실감각이 뛰어난 할머니의 무정한 채찍질도 있었지만) 내면의 굶주림을 채워 줄 학교와 책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엔 어린 카뮈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카뮈가 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했던 바로 그분, 알제의 옛 초등학교 스승이신 루이 제르맹이다. 이 소설에도 실명으로 등장하며 따뜻한 일화를 채워가는 그분의 이야기는 장 그르니에와의 연결점만 생각하게 했던 카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았던 카뮈의 어린 시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 전문은 「아버지의 여행가방」에 수록되어 있는데 카뮈는 그 연설을 루이 제르맹에게 바친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선생님이 그 당시 가난한 어린 학생이었던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고 손수 보여 주신 모범이 없었더라면 그런 모든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 카뮈의 편지, 1957년 11월 19일

 

 

 

「최초의 인간」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그분의 교실에서 어린 자크(어쩌면 카뮈)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배려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느낀다. 또한 가난과 무지로 인하여 삶이 안으로 닫혀 버린 것 같았던 그에게, 세상으로의 출구를 열어 준 것은 기분 좋은 잉크 냄새를 풍기는 수많은 책들이었다. 일상의 굶주림보다 더 강렬했던 내면의 굶주림을 책들이 채워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최초의 인간'이었기에 알고자 하는 열망은 더더욱 강렬했고,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진부함 역시 쉽게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려받은 정신이 없었기에 자유로운 정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오랑 지방의 이런 해변에서는 여름 아침이 날마다 세계의 첫 아침 같아 보인다. 황혼은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황혼인 양, 해질 무렵 온갖 빛깔을 짙게 물들이는 마지막 광선이 장엄한 임종을 알린다. (...) 이곳이야말로 때 묻지 않은 순수의 땅이다. " - 「결혼·여름」, 카뮈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다 보니 그동안 읽었던 그의 다른 책들 역시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다녀온 「이방인」의 뫼르소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거리의 풍경이, 그 장면의 묘사가 왜 그렇게 서글프게 느껴졌는지도 알 것 같았다. 카뮈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쓰지 않았고, 바꾸어 말하면 그가 알고 있는 것만을 꾸밈없이 정직하게 썼던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기에 공허와 침묵을 이해했고, 이 세상의 무심함을 깨달았으며, 그럼에도 매일 다시 태어나 임종을 맞이하는 오랑의 저 해변처럼 새로운 정신을 갈망하며 살아갈 수 있었음을 말이다.

 

 

 

어떤 면에선, 서른 살쯤 이후부터의 나 역시 '최초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전에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매일 새로운 정신으로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태양이자 바다이며, 나의 제르맹 선생님이었던 책들 덕분인 것 같다.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며 오늘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들 말이다.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정신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카뮈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살아있었다면 명작으로 남게 될 소설이었을 테지만 나는 이 미완의 소설이 고마웠다. 훔쳐 읽는 듯한 미안했던 마음은 이렇게라도 읽은 흔적을 남겨보는 것으로 조금은 덜어보고자 한다..

 

 

 

"자, 이제는 다음과 같은 카뮈의 금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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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1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2 18:25   좋아요 1 | URL
벌써 금요일이네요^^ 서니데이 님도 근사한 저녁 보내세요ㅎ

프레이야 2016-02-12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소중한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 2016-02-12 18: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늘 프레이야 님의 소중한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ㅎ

서니데이 2016-02-1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4 20: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초콜릿 같은 저녁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2-17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8 09:09   좋아요 1 | URL
저녁 인사를 받았는데 오전이 되었네요ㅎ 서니데이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2-1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좋은하루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9 13:28   좋아요 1 | URL
네, 낮에 만나니 더 반갑네요^^
 

 

 

알베르 카뮈「이방인」은 햇빛으로 가득한 한낮의 정적을 닮은 글이었다.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의 작은 소음들만으로 채워진, 배경음악이 없는 영화를 보는 것과도 비슷했다. 그 기묘한 정적감은 이 소설의 핵심 요소인 듯 여겨지는데 행간의 침묵 덕분에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화영은 '2015년 새 번역에 부치는 말'에서 오늘의 한국어가 허용하는 한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과 단어로 번역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한다. 가장 단순한 것이 항상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한 고전이므로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자의 가독성을 돕는 의역 역시 가능한 한 피했다 하니 겁이 덜컥 나기도 했지만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아무런 잡념 없이 글의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었다.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바닷가의 그 특별한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 (p97)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이 흐르던 글의 침묵에 어느덧 균열이 생기고 만다. 인공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즉흥적으로 이 일을 벌이고 마는데 소설 속 뫼르소의 감정은 태양을 묘사하는 문장들로 대변되고 있다. 이를테면 "대낮의 빛이 마치 내 따귀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거나 "머릿속에서 태양이 꽝꽝 울렸고", 또는 "쏟아붓는 불비를 맞으며", "빛의 칼날이 솟아날 때마다", "이마 위에서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 같은 표현들이다. 뫼르소는 오직 현재만을 감각하며 빛을 즐기지만 그날의 태양은 엄마의 장례식 날과 같은 태양이었다. 통증을 유발하는 그 뜨거움을 견딜 수 없어 대낮의 침묵을 깨뜨리고 마는 것이다.

 

 

 

지중해 지방의 사람들에게 태양이란 존재는 어떤 느낌일지 막연히 상상해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타국에서 경험했던 가장 강렬한 태양은 복잡한 생각을 털어버리게 만드는, 그저 살아 숨 쉬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생명의 빛이었다. 온몸 구석구석이 빛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나른한 포만감을 느꼈고, 주변의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마치 식물처럼 빛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감각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내 상황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인생이 반전될만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었다. 게다가 무척 겁을 먹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 내 피부에 닿는 빛의 감각이나 공기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다. 타국의 낯선 냄새들까지도 선명히 떠오른다.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이성적인 생각이 아닌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나의 온 존재를 비추어주던 태양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던 나의 마음에 일종의 균형을 만들어 주었던 것은 바로 그 태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을 느끼게 해주었던 강렬했던 빛은 지금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그 빛을 그리워한다. 카뮈가 고향의 빛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 - 「안과 겉」, 알베르 카뮈

 

 

 

카뮈는 그의 산문집 「안과 겉」에서 안정적인 균형이 아닌, '그 자체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통 물들어 있는 균형'을 언급한다. 그것은 몸짓 하나 잘못하기만 해도 금이 가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균형이다. 하지만 삶에 대한 그의 모든 사랑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손에서 빠져나가버리려고 하는 것에 대한 말 없는 정열, 불길 밑에 감추어진 쓰디쓴 맛'에 있다고 말이다. 우리의 질문들을 무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인간의 면전에서 문을 닫아버리는 세계는 허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 '허무'는 태양에 짓눌린 풍경 앞에서가 아니고는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타국의 태양 아래서 내가 느꼈던 그 감정 역시 허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고 싶게 만드는 찬란한 허무였다. 오직 빛을 따라가는 식물처럼, 꽃피우다 소멸되고 말지언정 한껏 피어오르고 싶은 허무였기 때문이다. 빛의 결핍으로, 오히려 자의식의 과잉 속에 살아가던 내게 태양이 가르쳐준 진실이란 오직 존재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태양의 과잉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이었기에 오직 빛을 감각하며 살아가다가 막다른 허무를 만난다.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없었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았던 뫼르소는 부조리를 경험하며 타인들의 유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은 사실주의도 아니고 환상적 장르도 아닙니다. 나로서는 오히려 육화된 신화, 그것도 삶의 살과 열기 속에 깊이 뿌리박은 신화라고 봅니다. " - 알베르 카뮈

 

 

 

정적이 흐르던 글의 침묵은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러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몇 페이지에선 드디어 폭발해 버린다. 소설 속의 정적이 심지가 되어 뜨거운 불비를 쏟아 버리는 것이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그즈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처음부터 그저 슬펐다. 아마도 글 속에 담긴 불편한 정적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허튼 몸짓 하나에도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한 침묵이었고, 삶의 무게에 입을 다물어버리게 만드는 불편한 침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뫼르소에게 벌어진 일들을 단순히 잘잘못을 가리는 이야기로만 읽다 보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곳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천천히 가면 일사병에 걸리기 쉽고 너무 빨리 가면 땀을 많이 흘려서 성당 안에 들어가선 오한이 나요." (p44)

 

 

 

"그때 나는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정말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 (p124)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맞이할 죽음도 이렇게 빠져나갈 방법이라곤 없는 것이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오랫동안 단두대로 가기 위해선 그것이 설치된 대 위로 올라가야 된다고, 계단을 올라가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며 사실인즉 그 기계는 그냥 땅바닥에 지극히 간단히 놓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두대는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이란 이렇게 우러르며 향하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희망 없는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린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 (p176)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오직 태양을 향하는 식물처럼, 그저 존재한다는 진실만으로 과묵하게 살아가던 뫼르소를 통해 이 세계의 무심함과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세 가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온통 태양과 죽음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삶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폭발시켜 행복을 이야기하는 뫼르소처럼 말이다. 카뮈가 「이방인」을 통해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삶의 찬미가 아닐까 싶다. 죽음의 신화를 벗기고, 삶에서 신화를 찾는 소설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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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01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01 19:40   좋아요 1 | URL
네, 덕분에 따뜻한 저녁시간이 됐어요^^

cyrus 2016-02-0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세상의 의지. 전집판, 전집판 양장본, 일러스트판. 이번에 또 나왔네요. ㅎㅎㅎ

물고기자리 2016-02-01 20:10   좋아요 1 | URL
김화영 님에 의하면 원문에 가장 밀착되도록 노력했다고 하는데 2015년 새 번역이라 그런지 간결한 문체라 집중하기 좋았어요ㅎ

지금행복하자 2016-02-01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이라는 말에 혹~ 합니다. 벌써 두권이 있는데도 말이죠~

물고기자리 2016-02-01 21:13   좋아요 0 | URL
옛 번역을 가지고 있지 않아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오래된 소설을 읽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설명하는 투의 문장이 없어서 저는 좋더라고요ㅎ

비로그인 2016-02-01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뮈의 이방인은 부조리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인 것으로 압니다. 님은 소설을 꽤 심층적으로 읽는 것 같군요. 서평도 아주 잘 쓰시네요. ^^

물고기자리 2016-02-01 21:4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에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서평은 아니고요^^ 그저 느껴지는 대로 끄적여 놓은 평범한 감상문입니다ㅎ

짜라투스트라 2016-02-01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아~~ 글이 너무 좋아요^^

물고기자리 2016-02-01 21:15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02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ㅎ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머가 먼지 전혀 몰랐었는데 실존주의에 대해 조금 알고 나니 소설도 조금 알 것 같더군요ㅎ

물고기자리 2016-02-02 07:53   좋아요 1 | URL
저는 읽을 때 비평적인 어떤 이론보다는 태양을 비롯한, 뫼르소가 느끼는 여타의 감각들에 집중해서 읽었었어요ㅎ

주인공의 심리를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질 않으니까 오히려 소설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감상에 정답은 없으니 읽는 사람들마다 여러 다른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저는 뫼르소의 입장이 되어본 것만으로도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후련했어요^^

시간이 좀 흘러 다른 느낌으로 집중해보면 또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다시 읽고 싶어요ㅎ

고양이라디오 2016-02-02 08:0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주인공과 소설에 몰입하는게 가장 좋은 감상법인 것 같아요. 번역도 중요한 것 같고요.
저도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는 익숙해서 그런가 쓸데없는 생각을 안하게 되는데 말입니다ㅎ

저도 다시 읽어볼 땐 땡볕에 몸을 좀 드러내봐야겠네요^^

물고기자리 2016-02-02 08:26   좋아요 0 | URL
어떤 시각으로 읽느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저는 친절하지 않은 소설 속에서 헤매는 걸 참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판단하려 하기보단 관찰자이자 체험자가 되려고 하는 편이라 비평적 읽기와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아요ㅎ

땡볕^^, 저는 소설을 읽는 동안 강렬한 태양이 그리웠어요ㅎㅎ

서니데이 2016-02-02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오늘도 따뜻하고 좋은 저녁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02 19: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ㅎ

서니데이 2016-02-04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오늘도 편안한 저녁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04 18:48   좋아요 1 | URL
매번 서니데이 님의 안부 글로 저녁시간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ㅎ
 
뜨거운 감자가 식기 전에

 

 

우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당선작에 대한 기준에 별다른 의견이랄 게 없는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다 같이 고민해야 하는 분위기인 것 같긴 하지만 그저 저와 같은 입장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고나 할까요..

 

 

알라딘 서재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시며 애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는 달리 저는 작년 5월쯤 북플을 통해 유입된 유저입니다. 책과 관련된 어느 사이트에서도 활동한 경험이 없으며 심지어는 책에 대한 리뷰조차도 이곳에서 써본 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SNS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제겐 큰 기쁨이었죠. 사실 처음 얼마간은 제 아이디로 알라딘에 서재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활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제 글이 당선작이 되었다고요. 솔직히 저는 그 메일을 받기 전까진 알라딘에 당선작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몇 사람에게 주는지도 몰랐고, 그저 운이 좋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도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운이 좋았나 보다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실 부끄럽게도 저는 지금까지 일부러 짬을 내어 당선작들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북플보다 글을 입력하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오직 글을 쓸 때만 서재를 찾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제 뉴스피드에 올라온 글들도 다 읽질 못하는 형편이지만 애초에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저를 위한 기록과 소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궁금증은 들었습니다. 당선된 글이 왜 선정되었으며(다른 이의 글이 아닌 제 글에 관해서입니다) 하필이면 왜 그 글이었을까를 말이죠. 제 나름으로의 결론은 제가 감상을 썼던 그 책이 아마도 여타의 다른 책들 속에서 다양성을 채우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짐작을 해보았을 뿐, 더 깊은 생각을 해보진 않았습니다. 사실 당선작들에 어떤 기준이 있었다는 것도 cyrus 님의 글을 통해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죠. 왜 이토록 무심한 거냐 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당면한 현실의 주제가 다르듯 제 관심분야가 아닐 뿐이라고 할밖에요..

 

 

그러니 사실 저는 이 토론에 참여할만한 입장이 아닙니다. 토론에 참여하려면 우선 다른 분들의 글들을 성의껏 읽어야 하고 그에 대한 의견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가 이곳에서 그다지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당선작에 포함이 되었다는 불편함 때문입니다. 제 부끄러운 글이 다른 분들의 당선 기회를 앗아간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니 말입니다. 더 부끄러운 것은 저는 그것조차도 숙고해보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반복해서 읽고 있는 중인데 뫼르소의 무심함이 바로 이런 것이었고, 그런 뫼르소에게 타인들이 상당히 불쾌했을 법도 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ㅎ 저는 그냥 이렇게 책을 읽고 책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여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래야만 삶이 유지되는 것도 같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곳에서 글을 쓰는 분들 중엔 저처럼 타인에게 쓰는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제 자신에게 띄우는 글을 쓰는 분들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논리고, 객관이고 상관할 바도 없으며 글의 길이며 인용문의 수 같은 건 제겐 아무런 제약이 되질 않습니다. 다만 비슷한 감상이 있는 분들, 또는 다른 생각이 있는 분들과 소통으로까지 연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북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제 자신만으론 저를 알 수 없기에 책과 타인이 저의 거울 역할을 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선이 되었음에도 의견을 말할 수 없거나 의견이 없는 이유는 실제로 이렇게 글의 형식에 대한 제 의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웃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경우 역시 여러 가지 주관적인 이유에서 일 뿐 단 한 번도 글의 길이나 구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았던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북플을 이용하는 제 성향일 뿐입니다.

 

 

사실 저는 이곳에서 작품 같은 글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지만 제 관심분야는 '책 같은 글'보단 '책을 읽는 사람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선작이나 여타의 운영에 대한 기준은 최대한 많은 분들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알라딘 서재에 애정이 남다르신 분들껜 중요한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의견을 나누시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지극히 염치없지만 제 자신은 의견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의견 없는 의견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cyrus 님의 솔직한 글 덕분에 누군가는 제 글을(제가 쓴 목적이 아닌) 다양한 이유를 가진 시선으로 유심히 지켜봤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글의 형식이나 내용이 제가 의도하지 않은 채로 평가받는 장소에 오르긴 했지만 어느 공간이든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전 제가 이곳에 왔던 이유대로, 제 방식대로 계속 이곳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글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든 제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제가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글에(제 '좋아요'는 아무 의미도 없고 소용도 없겠지만) 제 주관적인 이유로 호응하고 싶습니다.

 

 

이런 의견 없는 글을 이렇게 진지하게 쓰는 이유는 제 글을 부지런히 읽어주시며 열심히 호응해주시는 cyrus 님께 대한 제 일종의 성의 표시이기도 합니다ㅎ 사실 저는 제 이웃분들 만큼 충분히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찾아와 주시고 다정히 인사해주시는 분들께 고마움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자 북플을 시작했지만 실상은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죠. 열심히 동조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제 솔직한 의견 없음을 말하는 것도 나름으로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저 뫼르소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ㅎ

 

 

* 처음 먼 댓글을 사용해 보는 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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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30 2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글 잘 읽었어요. 요즘 제 불편한 마음을 정말 그대로 대변해주셨네요. 저도 북플을 알고부터 제가 읽은 책 정리 좀 해보려고 시작을 한게 여기까지 왔거든요. 어떤식으로 서재가 운영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눈치도 없어서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책 읽는 이웃들을 만난 즐거움에 빠져 너무나 감상적으로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선작에 대한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저도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간 만났던, 꾸준히.. 알차게.. 서재활동을 해 오시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요. 여기에 글을 쓰는게 서평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제 감상을 올리는 것 자체가 당선작 선정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도 물고기자리님처럼 여러 이웃님들의 문제제기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데 물고기자리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너무 반갑습니다.
저도 이런 논의가 잘 진행이 되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갔으면 하고요~
무책임하게 한발 뒤로 물러나 있는것이 아니라 의견 없음의 의견이랄까... 나름 이번 기회를 통해 제 글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저 물고기자리님께 묻어서 이렇게 제 의견 보태봅니다^^

물고기자리 2016-01-30 20:42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의견 없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를 고민해보다가 그냥 솔직하게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제 이웃들의 고민인데도 무어라 의견을 제시할 게 없으니 한편 미안해서 말이지요..ㅎ

cyrus 2016-01-30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댓글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물고기자리님.

아주 민감하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제 의견을 신중하게 밝히더라도 잘못하면 오해와 갈등의 불씨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선작 선정의 공평성 문제에 대한 논쟁이 장기화되면 결국에는 당선작에 부합하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주제로 확대됩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글을 남기는 분들의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이분들의 글이 재미있어서 독자(알라디너)가 좋아할 수 있고, `이달의 당선작`에 뽑힐 수 있습니다. 선정의 공평성에 이의를 제기하면 가만히 있는 당선자들이 졸지에 `당선작에 선정되기에 부적합한 글`이라는 인식을 받게 됩니다. 이러면 감정 싸움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 주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고기자리님의 글을 읽으면서 반성했습니다. 당선작에 어울리지 않는 글을 추려내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제 생각이 경솔했던 것입니다. 글자 수를 늘려라, 인용문 수를 줄이자 식으로 기준을 내세우면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진 알리디너의 마음을 위축할 겁니다. 그러면 이분들도 불만이 생길거예요.

용기 있게 의견을 밝혀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했던 제 생각을 다시 돌아보고,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

물고기자리 2016-01-30 20:46   좋아요 2 | URL
아니요, 저는 좋은 글에 대해 고민하시는 cyrus 님의 태도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을 솔직히 드러내시는 모습 역시 훌륭하다 생각해요.

계속해서 긍정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지만 제게 이렇다 할 의견이 없다 보니 호응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침묵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토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세울만한 의견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거든요..^^

서니데이 2016-01-30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좋은밤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1-30 21:09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이 늘 이렇게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인사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ㅎ 편안한 밤 되세요^^

감은빛 2016-01-31 1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당선작의 선정 기준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습니다.
당선작이 된다면 책을 살 때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니까 기쁘기는 하지만,
제 글이 당선작이 되던 말던 그걸 염두에 두지는 않는 편입니다.
애초에 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데,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아마 여기 알라딘 서재의 많은 분들이 그러시리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저 책 이야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좋아서 글을 씁니다.

물고기자리님 말씀처럼 이 토론에 좋다, 나쁘다, 재밌다, 재미없다 등의 입장을 떠나서
이 토론의 주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반가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물고기자리 2016-01-31 15:5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이렇게 책 읽는 분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없이 즐겁습니다ㅎ

그저 겸손히 읽고 즐겁게 소통하고 싶을 따름이라서요^^ 감은빛 님 덕분에 마음이 좀 더 편해지네요ㅎ

2017-02-18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단어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어떤 생각에 집중하려면 먼저 손가락이 움직여야 하는데 완성된 생각을 써 내려가기 위함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끄집어 내고, 그 모양들을 확인해보아야 비로소 생각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글자를 좋아하지만 어릴 때부터도 그림보단 활자들이 많은 책을 더 좋아했었다. 순정만화를 읽더라도 그림에 주목하는 순간보단 말풍선 속의 글에 집중하는 순간이 더 길었으며, 읽는 순간과 빨리 이별해야 하는 것이 아쉬워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이 전집류처럼 최대한 길게 이어나가길 바랐던 적도 있었다. 꿈속에서조차도 어느 순간의 이미지에서 급작스럽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클로징 멘트처럼, 독백 형식의 문장으로 꿈의 종결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새로운 형태의 문장들을 만나면 반가워진다. 단어들이 흩뿌려진 위치나 모양들을 살피다 보면 나의 생각들도 새로운 문장으로 재편성되며 의식이 풍부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섬세한 인간 관찰을 담은, 프루스트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만연체 역시 나에겐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게다가 어떤 문장 들은 아름다운 그림이나 음악에 대한 감동 못지않은 환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작가들이란 모호했던 감정이나 생각에 형태를 만들어 주는 조각가이고, 단어의 연주가이거나 화가이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예민한 정신을 지닌 종합 예술가였다.

 

 

 

"처음에 그는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의 물질적인 질감밖에 음미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느다랗고 끈질기고 조밀하며 곡을 끌어가는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 아래서, 갑자기 피아노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거리며 마치 달빛에 홀려 반음을 내린 연보랏빛 물결처럼, 다양한 형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잔잔하게  부딪치며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 (2권 p4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을 읽을 땐 생상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들었다. 음악이란 듣는 것 자체로도 큰 기쁨이지만 음악이 글로 표현되는 걸 읽는 건 또 다른 감동인 것 같다. 표현하는 사람의 단어들로 다시 한 번 연주되기 때문이다. 빛과 형태와 질감이 부여된 음악은 소리가 아닌 단어의 물결로도 나를 찰랑거리게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을 특별하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생각하는 방식에 있지 않을까 싶다. 스쳐 지나가는 상황들에 의미가 생기는 건 그 순간을 빚어내어 형태를 만들어준 '생각' 덕분이니 말이다.

 

 

 

"단순히 양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삶의 나날들은 다르다. 그 나날들을 횡단하기 위해 나같이 다소 신경 예민한 사람들은 자동차의 '기어'를 다양하게 조절한다. 올라가는 데 한없이 시간이 걸리는 험하고 힘겨운 나날도 있고, 노래를 부르면서 전속력으로 내려가는 비탈길 같은 날도 있다. " (2권 p34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스노비즘'(속물근성)이라고 1권의 각주에서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 2권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스완'의 사랑이나, 지문이 풍부한 연극의 대본 같기도 했던 인물들의 묘사 역시 소설의 주제에 근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의식의 흐름을 촘촘히 서술해가는 만연체의 글에선 특별히 무엇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주제를 인식하는데 집중하기보단 프루스트의 생각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모든 감각, 감정들을 채집하는 프루스트적 기억법에 말이다.

 

 

 

"삶에서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 보러 간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 (1권 p42)

 

 

 

우리는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착각하곤 하지만 사실은 나의 내면을 투사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방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황을 해석하고 있는 나에 대한 관찰인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판단하는 근거는 밖이 아닌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프루스트처럼 자신을 향한 예민한 관찰력을 지닌 글이 좋다. 어떤 주제에 닿고자 하기 위함이 아니라(인생이 하나의 주제로 정의될 수 있는 건 아니듯이) 모든 사소한 것들을 관찰함으로 나의 반응점들을 늘려가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문장, 새로운 단어들로 나라는 관점을 풍부하게 하고 싶다는 이유로 말이다.

 

 

 

"바이올린이 고음으로 올라가 마치 무엇을 기다리듯 머물러 있었다. 기다림은 오래 지속되었고, 바이올린은 자신이 기다리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이미 알아보고, 대상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흥분 속에서, 자기 곁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숨지기 전에 그 대상을 맞이하려는 듯, 또는 놓으면 금세 닫히는 문을 간신히 지탱하듯 마지막 힘을 다해 그 대상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잠시 길을 열어 주기 위한 절망적인 노력으로 고음을 이어 갔다. " (2권 p269)

 

 

 

우리의 한순간은 때로 이 음악처럼 간절하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 대상을 발견하려는 기다림으로, 알아차리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애틋함으로 말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의미는 과거의 시간들보단 현재 잃어가고 있는 이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에게 깨어있기만 한다면 드문드문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기어'로 완급을 조절하며, 음악처럼 연이어 흐르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감상을 남기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진정한 감상이란 읽고 싶은 부분들을 다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부분들을 몇 번씩 반복해 읽었는데 우리의 생각을 가장 닮아있는 만연체 글의 특징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흘러가는 생각들을 요약해 낼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이듯 프루스트의 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은 마음을 그린 풍경화이고, 섬세한 초상화이며, 영혼을 품은 음악이고, 온갖 색소로 아름답게 피어오른 감각의 꽃다발이었다. 그러니 좋은 그림이나 음악에 반응을 하듯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으며 우리의 삶에 무수한 반응점들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촘촘히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들은 당시엔 큰 의미를 찾기 어렵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으로, 음악으로 완성되어 간다. 우린 그 순간들에 깨어있고, 그 모든 감각들을 채집하며 우리의 삶을 주시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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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12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예뻐서...ㅎㅎㄹ

물고기자리 2016-01-12 14:35   좋아요 1 | URL
헐.. 오타가 없는지 확인하는 중에 벌써 댓글을^^ 책이 예뻐서 표지에 긁힘이 생길까 조심스럽더라고요ㅎ

[그장소] 2016-01-12 14:36   좋아요 1 | URL
양장에 그 커버를 하라는건지 ㅡ이게 껍질인지 뭔지 애매할때가 있죠.
ㅎㅎㅎ

초딩 2016-01-12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양은 동사에 서양은 단어에 집중한다고 들었어요 :-)
브레송이 사진은 `단어` 이고 잡지는 그것을 쓰는 `문장`이라고 한 말도 생각 나네요.
:-) 저도 완전 읽을 만반의 태세 중입니다. ㅎㅎㅎ

물고기자리 2016-01-12 15:27   좋아요 1 | URL
인용해 주신 부분들 멋져요!^^
프루스트가 신기한 게 2권을 읽다 보면 어느새 다시 1권을 또 읽고, 그러다 다시 2권을 읽고^^ 무한 루프인 것 같아요ㅎ

blanca 2016-01-12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갈한 글 잘 읽었어요. 저는 나올 때마다 읽으니 이게 자꾸 전체 연결이 안 되고 앞 내용, 지명, 사람 성격 묘사 같은 것들을 잊으니 일관성 있게 연결이 안 되네요. 그래서 어떤 분이 전부 다 번역되어 나오면 한꺼번에 읽어버리겠다, 하신 이야기가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어떤 흐름이 자꾸 끊기니까요. 물고기자리님처럼 반복해서 읽어야 할 텐데 또 그건 그렇게 안 되고. 그런데 정말 책이 너무 예뻐서 좋아요. 겉지 벗겨도 너무 예뻐요.

물고기자리 2016-01-12 16:05   좋아요 0 | URL
연달아 읽으니 좋기는 한데 에너지 소모가 참 커요. 평소보다 꿈도 많아지더라고요ㅎ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어떤 호흡으로 읽어야 하나 걱정도 되는데 아마 부분적으로 재독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ㅎ

저도 겉지 벗겨봤는데 예쁘더라고요^^

살리미 2016-01-12 1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끔 글을 읽다가 아! 너무 좋다! 했는데 옆에서 뭐가? 라고 물어요. 그럼 설명을 해 줘야 하는데 그렇게 요약하면 그 좋음이 사라져버려서 그냥 그런게 있어... 하고 말거든요. 그런 느낌일까요? 그림을 보듯 음악을 듣듯 반응하며 읽는 책이라니... 문학이란 이렇게 읽어야 하는구나 싶네요.
새해라고 이것 저것 나름 독서계획들을 세우고 집에 있는 책들 모조리 읽어버리겠다고 덤비고 있는데.... 아무래도 소설을 읽을때가 가장 즐겁네요. 좋아하는걸 읽으면 되지 무슨 강박을 갖고 그러나... 싶기도 하고 ㅋㅋ
그나저나 책은 또 왜이리 이쁜지.... 안읽을거라고 다짐하면서도 자꾸 사고 싶어져요^^

물고기자리 2016-01-12 17:28   좋아요 1 | URL
네^^ 개인적인 발견으로서의 즐거움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문학은 스스로 생각할 거릴 찾을 수 있게 해주어서 참 좋아요. 학교 다닐 땐 무엇을 생각할지, 감상해야 할지를 정답처럼 외워야 하는 게 별로였거든요..

오로라 님의 소설 읽기도 기대돼요ᄒ 책이야말로 읽고 싶은 걸 읽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또 본능적으로 필요한 걸 고르게도 되는 것 같고요. 이왕이면 책이 예쁜 것도 좋더라고요^^

cyrus 2016-01-12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권을 읽었을 때 쇼팽의 `녹턴`이랑 드뷔시의 `달빛`이 듣고 싶어지더라고요. ^^

물고기자리 2016-01-12 20:18   좋아요 0 | URL
오! 멋진 선택 같아요. 어쩐지 마르셀이 엄마를 기다릴 때의 마음 같기도 하고.. 저는 달빛이 더 좋아요^^

서니데이 2016-01-1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1-12 21:3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ㅎ 서니데이 님도 좋은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6-01-14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프로필사진 바꾸셨네요. 새 이미지도 예뻐요.^^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1-14 20:46   좋아요 1 | URL
넹~ 지루해서 슬쩍 바꿔봤어요^^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ㅎ

서니데이 2016-01-20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오늘 많이 추웠어요.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드세요.^^

물고기자리 2016-01-21 14:05   좋아요 1 | URL
헐..! 왜 이제야 댓글을 봤을까요ㅎ 늦었지만 어제 따뜻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서니데이님 덕분이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