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 (p182)

 

 

 

알베르 카뮈「시지프 신화」를 읽는 내내 나는 카뮈를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부조리의 감성과 추론, 그에 따르는 결론을 생각하기보단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 말이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니 솔직하게 말하겠소. 당신은 이제 곧 죽게 됩니다. "라는 말을 1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접했던 카뮈는 이제 막 삶을 시작하려고 할 때 죽음을 대면해야 했다. 그에게 주어진 세상은 마치 그의 태양처럼 희고도 검은빛의 세상, 아름답지만 무심한 세계였으리라 짐작된다. 다소 비장한 어조로 부조리에 대해,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는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안의 번민들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엔 그동안 읽었던 카뮈의 글들이 웅웅 거리는 느낌이었다. 어느 페이지를 읽을 땐 부랴부랴 「이방인」을 펼쳐 보기도 했고, 어떤 문장은 「결혼·여름」으로 달려가게 했으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안과 겉」을 다시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카뮈는 늘 한결같은 말들을 했다. 그 아름답고 단단한 문장으로 서로를 조명해주며 말이다.

 

 

 

카뮈에게 '희망'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어떤 비약이나 도피, 체념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위의 무게에서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그에 반항하고, 자유를 획득하며, 열정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나 자유는 부조리에서 벗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엔 죽음이 존재하기에, 인생에 의미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훌륭히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한 사막은 자신의 목마름을 기만하지 않은 채 사막 속에서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사막이다. 그때서야, 오직 그때서야 비로소 사막에서는 서늘한 행복의 물이 여기저기 솟아나게 될 것이다. "결혼·여름 (p69)

 

 

 

카뮈가 다른 산문에서도 종종 언급하는 '사막'이란 단어는 어떤 정신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사유가 극한에 도달하는 물 한 모금 없이 황량한 장소를 뜻한다. 아마도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어진 운명을 직시하며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는 정신을 말하는 듯싶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회피하려 하면 할수록 더 무겁게 짓누르기 마련이다. 이 세계는 부조리하다는 것이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라면 그 부조리를 정면으로 인식함으로, 오히려 자유와 열정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시지프의 바위는 그의 것이기에, 산에서 내려오는 행복한 시지프를 그려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세상에는 자기의 운명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 - 「안과 겉」 (p63)

 

 

 

카뮈의 고향은 태양과 바다가 있는 곳, 자연의 사치와 정신의 사막이 공존하는 곳이다. 매일의 아침은 처음인 듯 다시 태어나며, 어둡고 광막한 밤은 가차없는 고독이다. 자신의 운명을 똑바로 마주 볼 수밖에 없는 곳, 그곳에서 삶에 대한 그의 사랑이 솟아난다. 물리적인 환경은 다르지만 어쩌면 내 정신의 고향 역시 카뮈와 같은 곳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카뮈를 읽을 땐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아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나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는, 아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은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뮈의 글은 그 단단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나를 울린다.

 

 

 

카뮈가 말하는 세계엔 내세가(종교적인)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직 우리가 몸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이 세계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세나 어떤 관념으로 도피하는 것을 그는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런 희망을 꿈꾼다. 다행히 아직은 체념하는 법은 모르지만, 어떤 두려움, 극단의 공포 앞에선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어떤 신을 향해서든 간절히 기도하게 되니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단 하나의 열망, 그것이 희망이든 도피이든 회피이든 무엇에든 매달려보고 싶은 그런 감정,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는 오히려 사랑을 배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 - 「안과 겉」 (p91)

 

 

 

지금껏 살아오면서 배운 단 하나의 진실은 사랑과 고통은 하나라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그 고통이 있는 곳에 나의 사랑이 있다. 이 부조리한 진실을 나는 이제야 명확히 쓰고 있다. 하지만 카뮈는 「안과 겉」을 쓰던 당시인 22살 무렵 이미 이 말을 하고 있다. 카뮈는 1958안과 겉을 재출간하며 다시 쓴 서문에서 "인생 자체에 관해서는 지금도 <안과 겉>에서 서툴게 말한 것보다 더 많이 알지는 못한다. "라고 말한다. 카뮈의 저작을 더러 읽고 난 후 다시 읽는 「안과 겉」의 서문은 이상할 만큼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자신이 판단하기엔 서툰 그 글들을 다시 읽으며 카뮈는 '그래, 바로 그거야'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가난하고 고독했지만 충만한 사랑, 쏟아지는 햇빛, 그 안에 이미 자신이 찾고 있던 진실이 있었다고 말이다.

 

 

 

카뮈의 원천은 안과 겉」에 묘사한 가난과 빛의 세계이고, 그곳엔 사랑하는 어머니의 침묵이 있다. 장애를 지니고 있어 생각도, 말도 서툰 그의 어머니는 그녀 앞에 놓인 세계의 무심함과 고독 앞에 그저 무거운 침묵을 드리울 뿐이다. 그리고 카뮈는 그 침묵에 어울릴 수 있는 정의, 사랑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그 결과물이 되었을 「최초의 인간」은 카뮈의 죽음으로 미완에 머물렀지만 다듬지 못한 진솔한 목소리가 묻어있어 더 빛이 난다. 단순히 완성을 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쓰다 만 초고일 뿐인데도 묵직한 감동이 있다.

 

 

 

"맞아요. 난 인생을 사랑했어요. 탐욕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동시에 인생이 끔찍스럽고 접근 불가능한 그 무엇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게 바로 내가 인생을 믿는 이유예요. 회의주의 때문에. 그래요, 나는 믿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항상. " - 「최초의 인간」 (p44)

 

 

 

카뮈의 반항, 자유, 열정은 '사랑'과도 일맥상통한다. 더 많이 살고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소진하는 것,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며, 동시에 함께 가자고 외치는 것이다. 그것만큼 더 강한 반항과 자유, 열정은 없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답도 오직 한 가지뿐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 남김없이 사랑하고, 부족한 만큼 더 넓은 가슴을 만들어 또 사랑할 것.. 이 부조리한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그것밖엔 없다고, 나는 행복한 시지프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행복이 구태여 낙관론과 불가분의 관계여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행복은 사랑과 관계있는 것일 뿐 ― " - 「결혼·여름」 (p65)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이토록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가 상상 가능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하며 이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 - 결혼·여름」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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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9-1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을 굴리고 터벅터벅 언덕을 내려오는 시시푸스를 상상행봅니다. 그의 입가에 걸린 웃음도요. 저는 시시푸스가 행복했다고 상상하긴 어렵지만 신들을 비웃는 시시푸스를 상상하면 왠지 통쾌해지더라구요.

`무의미를 강요한다고 무의미해지나`

반항에서 사랑으로 나아가시다니
감동적인 리뷰입니다. 저도 요즘 사랑에 관심이 많거든요^^

물고기자리 2016-09-12 13:47   좋아요 0 | URL
그런 장면이 영상처럼 보이네요. 비웃는 시시포스 멋집니다! 시이소오 님껜 그런 게 어울리죠 ㅎ 제가 그래서 시이소오 님의 글을 좋아하고요^^

`무의미를 강요한다고 무의미해지나`
곱씹어 볼수록 참 좋습니다.

시이소오 님이 사랑을 품고 계셔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ㅎ

AgalmA 2016-09-1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과 겉> 서문 저도 물고기자리님처럼 뭉클했어요. 지금 이 글도 그렇고요.
어떤 앎은 표현의 미숙은 있겠지만 성숙한 채 태어나죠. 까뮈는 그걸 보았고 말하고 있었죠.
˝진실은 거짓의 맨언굴˝이라고 한 이성복 시인의 표현이 사실을 담고 있지만, 물고기자리님 이 글을 읽으면 그 표현은 더 넓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언어의 폭이란 참....

물고기자리 2016-09-12 13:51   좋아요 0 | URL
이번에 다시 읽으며 <안과 겉>이 새삼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원석 같은 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인간 카뮈에 대한, 살아가는 것의 비슷비슷한 감정에 대한 슬픔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저는 요즘 A 님 글에 위로를 많이 받아요. 어딘지 모르게 광물적인 느낌인데 거기에 따뜻함이 느껴지거든요. 꼭 카뮈의 글처럼 말이죠 ㅎ (예전처럼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지만 잠은 좀 주무시는지 걱정도 됩니다^^)

AgalmA 2016-09-12 17:48   좋아요 1 | URL
따뜻한 광물ㅎㅎ; 재밌으면서 멋진데요~ 광물만큼 제가 단단한가 하면...그래서 따뜻한을 붙이신 걸테죠? 그래서 까뮈 글을 얘기하신 걸 테고.....까뮈에 빠져 계셔서 모두에게서 까뮈다운 것을 캐치해 내신 걸 수도ㅎ; 물고기자리님이 그리 보신 것이 터무니없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겠습니다;;;

제 일상사에 대해선 할 말이;;;

물고기자리님 글이 제게도 많은 위안이 됩니다. 강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물고기자리 2016-09-13 10:22   좋아요 0 | URL
제가 가끔 뜬금없이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제 맘대로 느낌을 표현하곤 하는데 A 님이 잘 받아주셔서 감사하죠 ㅎ

근데 정말로 따뜻한 광물질의 느낌이에요. 음악으로 치면 금속성의 음색을 내는 현악기가 의외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듯이요.

물은 무심히 흘러가지만 돌은 어떤 것을 지탱해주기도, 이리저리 차이기도, 햇볕에 뜨겁게 달궈지기도, 도르륵 굴러가기도, 그저 묵묵히 견디다가 보석이 되기도 하잖아요^^ 단단하게 표현하지만 여리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분이라 생각해요! ㅎ

지진이다 뭐다 세상이 어수선하네요.. 우리 모두 잘 견뎌봅시다^^

AgalmA 2016-09-14 01:07   좋아요 0 | URL
물고기자리님은 언어치료사 같아요ㅎ 돗자리 깔면 문전성시! 그래서 제가 계속 물고기자리님 언어 마술에 홀릭 상태지요ㅎㅎ

문득 현악기 같은 작가라면 키냐르가 아닐까 싶어요. 혀끝애서 맴도는 그것은 현! ㅎㅎ

물고기자리님에겐 어떤 지진의 울림이 스쳐갔을까 궁금해하며... 추석 연휴 맛난 거 먹으며 물고기자리님이ㅡ[-_-] 네모난 저를 떠올리셔도 되고ㅋㅡ싱긋 웃으실 일 있으면 좋겠다 바라며 총총...

cyrus 2016-09-1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

물고기자리 2016-09-13 21:51   좋아요 0 | URL
일부러 찾아와 인사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겁게 잘 보낼 것 같습니다 ㅎ
cyrus 님도 연휴 내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6-09-1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물고기자리 2016-09-13 21:53   좋아요 1 | URL
cyrus 님과 약속이라도 하신 듯 나란히 오셨네요 ㅎ

아무래도 제가 이웃 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초딩 2016-09-1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포스트 이메일로 보내뒀어요~ 나중에 꼭 읽게요~ ㅎㅎㅎ
추석 잘 보내세요~~~

물고기자리 2016-09-14 13:37   좋아요 1 | URL
나중에 읽으신다니 어쩐지 긴장됩니다!^^

좀 더 잘 생각하고 썼어야 했는데..ㅋ

늘 부족한 제게 다정한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딩 님도 명절 잘 보내세요 ㅎ

초딩 2016-09-1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천성은 그렇게 선했다˝
로 맺음합니다.
너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ㅜㅜ 그냥 뭉클하네요.
이 낮에 ㅎㅎㅎ

물고기자리 2016-09-14 16:27   좋아요 1 | URL
낮에 뭉클하셨다니 고맙기도, 어쩐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2016-10-14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1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2-0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물고기자리님 생각 많이 나서 보고 싶어 찾아 왔다가 이 글을 다시 읽고 물고기자리님도 지금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는 고뇌를 바라보며 휴지의 순간이실까 하며 문장마다 물고기자리님이 공감하며 님이 이입했을 생각과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해 받은 듯했습니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삶인 것을 인간은 왜이리 복잡하고 고통스럽게 살게 된 운명인 것일까요. 삶이 너무도 어지러워 무언갈 잡는다는 게 대개 사람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궁상맞은 이 댓글 안부인사에 물고기자리님은 상냥하고 부드럽게 인사를 전해 주실테죠. 물고기자리님과의 대화는 늘 그랬죠 :)
아프지 않게, 춥지 않게 잘 지내고 계신 거지요.

이 겨울 다 가기 전에 프루스트 또 꺼내 읽다가 물고기자리님 생각이 난 건지도 몰라요. 님도 프루스트 읽으실 때 제 생각하셔야 합니다. 빙긋.

물고기자리 2016-12-04 15:12   좋아요 2 | URL
저도 빙긋^^

요즘 읽기는 읽는데(아주 천천히요) 쓰는 건 잠시 멈춤 상태에 있어요. 어쩌면 생각도요 ㅎ

최근 어떤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생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었거든요. 그러다가 문득 제 의식이 가장 풍요롭던 시절은 오히려 생각을 내려놓고 삶 그 자체가 되었을 때란 걸 깨달았어요. (최근까지는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행복이었는데 말이죠 ㅎ)

지금까지 책을 거울삼아 제 자신을 밑 바닥까지 두루 파헤쳐 보는 작업을 했다면, 지금은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흘려보내는 중이에요.

그동안 좀 시끄럽다, 소음이 많다고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게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제 내면의 소리더라고요 ㅎ

어쩌면 나를 알고자 했던 집요함은 나를 비우기 위한, 가볍고 투명해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나도 싶어요.

제가 글을 썼던 이유도 일정 기간 동안 마음의 둑 안에 쌓인 것들을 비우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수문을 열어둔 채 잠시 좀 흐르게 두려고요. 어쩌면 이것 역시 이런저런 것들을 견디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일 테죠..

삶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제가 본능적으로 택했던 것은 힘을 빼는 거였는데, 글을 쓰면 쓸수록 제 자신의 에고가 더 강화되는 것 같았어요. 아마도 흘러가는 순간을 투명하게 포착하고 싶어질 때 다시 쓰게 되겠죠.

이런 대화를 일상의 관계에서, 사회적인 언어로 한다면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곤욕스러울 텐데;;^^ 마음의 소리들을 대화로 나누던 A 님이라 편하게 할 수 있네요 ㅎ

프루스트가 아니어도 종종 떠오를 거예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글 친구가 있어서 참 좋아요. 지금 낮술을 몇 잔 한 채로 끄적이는 거라 너무 수다스러울지 몰라요;;^^

AgalmA 2016-12-04 22:04   좋아요 0 | URL
가장 아팠을 때 나는 가장 살아있는 상태 아니었던가 했던 역설과 비슷하네요.
물고기자리님이 불행한 상태는 아니구나 안심되는 말씀이셔서 한숨 놓입니다.
오랜만에 물고기자리님 뵈니 반가웠어요. 역시 물고기를 보려면 물가로 가야지 한다는ㅎ
연말 잘 보내시고 또 종종 찾아 뵐께요 :)
낮술이라니...저도 다음 주말엔 낮술 시도해봐야 겠어요^^

물고기자리 2016-12-05 10:56   좋아요 1 | URL
다음부턴 취중 댓글은 자중하겠습니다 ㅎ 무슨 말인지;; A 님의 댓글을 읽으며 제 글을 이해해봅니다 ㅎ

아마 적당한 말을 건져올리기가 어려웠나 봐요. 살면서 만나는 어떤 고통은 생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는 말, 결국 제가 찾은 답은 기꺼이 끌어안고 흘러가는 것이더란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면을 확장시키는 공사를 하는 것으로요^^ (쉽지 않아요;;)

연말이라는 말에 새삼 놀랐어요. 이번 가을은 하루하루가 참 길었는데 어느새 지나갔네요. 표지판도 걸지 않고 잠수를 하는 바람에 걱정을 끼쳤던 것 같아요 ㅎ 반가웠고, 따뜻했고, 덕분에 저를 돌아보게도 됐어요. 우리의 촛불도, 나라를 밝히는 촛불도 꺼지지 않게 잘 지켜야죠..

A 님도 연말 잘 보내세요!! ㅎ

한수철 2016-12-0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 님.

근황을 적어주셨구먼요.

왜 페이퍼를 안 올리시지? 의문했을 뿐 Agalma 님처럼 댓글을 달 생각은 전혀 못했네요. 바보네요.

건강하세요.


물고기자리 2016-12-05 11:01   좋아요 1 | URL
어이쿠 반가워요!^^

그러고 보니 위에 A 님부터 차례대로 잠수를 했던,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만났네요 ㅎ

‘바보네요‘

뭔가 한수철 님 식의 힘내라는 위로 같아서 묘하게 따뜻합니다^^

제가 수철 님 특유의 힘 빼게 만드는(어깨를 툭 떨어트리게 되는 ㅋ) 편안함을 좋아하거든요 ㅎ

시간 되는 대로 (몰래몰래) 친구들 글을 읽고 힘을 내서 잠수 생활도 잘 하겠습니다!! 수철 님도 건강하세요^^

2016-12-14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6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6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6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1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1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1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1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1-0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좋은 일 가득한 정유년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물고기자리 2017-01-01 20:03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잠깐 서친 님들 글을 읽고 있었는데 반갑네요 ㅎ

서니데이 님도 새해 복 아주아주 많이 받으세요!
늘 챙겨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서니데이 2017-01-2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