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람과 장소에 대한 영상을 보는 걸 무척 좋아해서 집에 있는 동안엔 다큐여행 채널을 고정적으로 틀어 놓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때마다 관련 지역의 영상을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는데 일부러 찾지 않는데도 신기할 만큼 타이밍이 잘 들어맞고는 한다. 예를 들면,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을 읽을 땐 여정의 경유지였던 시베리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는데 거친 자연환경을 보며 체홉이 묘사했던 정경이나 그곳의 사람들, 마차를 타고 가며 겪었던 이런저런 고생담들을 좀 더 실감 나게 연상해 볼 수 있었다. 또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읽을 땐 책을 읽다가 눈을 들어 TV를 보면 거짓말처럼 터키 영상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산문을 읽을 땐 그런 행운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알제리와 관련된 영상을 찾을 수 없어 각종 지식백과나 블로그들을 검색하며 다소나마 갈증을 해소해야만 했다. 카뮈의 문장엔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장소에 대한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가기만 했고,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보다 관련된 장소의 자료들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도 같다. 카뮈가 본 곳을 보고, 그 꽃과 나무를 느끼며, 같은 태양과 바다를(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고서야 카뮈의 정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카뮈의 '태양'이 가장 궁금했는데 찾다 찾다 어느 블로그를 보니 사람의 정수리에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이방인」의 뫼르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태양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그렇게 카뮈에게 다가가는 길은 미지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유형의, 이를테면 작가에게로의 여정을 즐기는 독자에게 안성맞춤의 책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나에겐 읽는 운이 따른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하필이면 카뮈를 읽고 있는 동안, 마침 이런저런 것들을 궁금해하던 차에 이렇게 정리된 자료집이 출간된 것이니 말이다. 카뮈의 딸 카트린이 구성한 「나눔의 세계」는 알베르 카뮈의 정신적인 여정을 담은 책으로, 카뮈의 작품이나 그가 지향하는 바들을 시간적인 순서가 아닌 공간적인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카뮈의 '정오의 사상'이 태동한 지중해로부터 유럽을 거쳐 세계로 향하는 동안 그의 정신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수록된 사진이나 다양한 텍스트(카뮈의 작품, 원고, 서한, 신문기사, 호소문 등)를 통해 보여준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종종 따라 적기도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실물을 접하고 보니 생각보다 더 크고 묵직했으며(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보다 더 큰 판형이다), 수록되어 있는 자료들도 풍부했다. 카뮈의 글들을 읽으며 이미 찾아보았던 자료들도 있었지만 카뮈가 경험한 바로 그 시간들의 생생한 기록을 보다 보니, 이미 그의 작품을 통해 읽었던 문장들도 시각적인 자료들로 인해 더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았다.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카뮈의 사진들이었다. 드라마를 지니고 있는, 여운이 풍부한 그의 얼굴은 마치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몰입하여 연기하고 떠나간 배우처럼, 모습 자체로 작품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탈리아로 들어간다. 나의 영혼에 꼭 들어맞는 그 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볼 수 있다. 처음 마주치게 되는 비늘 같은 기와를 인 집들, 유화작용으로 인하여 푸르게 된 벽에 달라붙은 포도나무들이 그것이다. 마당에 널어놓은 첫 빨랫줄, 어수선하게 흩어진 물건들, 사람들의 마구잡이 옷차림 같은 것들이다. " - 「안과 겉」, 알베르 카뮈

 

 

 

누구에게나 자신의 영혼에 꼭 들어맞는 장소나 풍경, 사람, 글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스위스적인 정돈된 풍경보다는 조금은 왁자지껄한 이탈리아적 풍경을 좋아한다. 생활의 소음이 들리는, 풍부한 색소로 가득하며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마음속엔 만족스러운 고요함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겉은 다소 소란스럽지만 나의 마음 안쪽은 평화로운 정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풍경 한가운데에 있게 되면,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내 마음속에 그 정경과 소리, 향기들을 그려 넣고 싶어진다.

 

 

 

하지만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들은 그런 평화로움에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내적으로 충만해진 고요함에 금이 가도록 만드는, 외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무상으로 주어진 자연의 충만함 속에서, 이미 가득 부풀어 오른 고요를 마음껏 누린 사람으로서, 이젠 다시 삶으로 돌아오라고, 사람에게로 향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카뮈의 문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카뮈의 성장에 일조한, 그가 바라보았던 풍경들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미완성 작인 「최초의 인간」 도입부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연상될 만큼 현란한 이미지의 향연으로 시작되는데 섬세한 표현이 압권인 프루스트와는 달리, 카뮈에게선 자연의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다.

 

 

 

"나의 단 하나뿐인 재산이었던 아름다움의 장관 속에서 자랐던 나는 우선 충만함으로 시작했었다. " -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취기에 취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서의 도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카뮈의 전 작품과 그의 사회 참여와 삶 자체를 관통하는 정오의 사상이 형성된 곳은 바로 거기, "햇빛 때문에 캄캄해지는 들판 "이다. " - 「나눔의 세계」, 카트린 카뮈

 

 

 

카뮈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바로 그의 태양과 바다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침묵이라는 헐벗은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장시켜 주었던 것은 지나칠 정도로 충만한 자연이었고, 그 지나침을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절도를, 타인에게로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어느 쪽으로든 극단적인 것에 대한 경험은 균형을 추구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물론 카뮈의 시선에도 한 사람이 바라볼 수 있는 범위라는 게 있었을 것이고, 시대적인 상황 역시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오의 사상'이 태어나게 되기까지는 안과 겉, 긍정과 부정을 모두 직시하며 그 어느 것도 배제시키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 있었다.

 

 

 

"유일한 행복은 지상에서의 행복이며, 유일한 삶은 속세에서의 삶이다. 알베르 카뮈를 생각할 때는 이 출발점을 꼭 상기하자.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글을 씀으로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작가들이 있다면 카뮈는 자신의 글처럼 살았던, 아니 오히려 자신이 사는 대로 글을 썼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방인'이자 '최초의 인간'이었던 그였기에, 태양이 주는 만족과 공허를 알았기에, 더더욱 살고자 했기에 말이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부조리를 직시하며, 그에 반항하고, 더불어 사랑하기를 외쳤던 카뮈의 정신은 '정오의 사상'이 태동한 그 출발점을 감각적으로 공유함으로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부터 어떻게 심화되어 나갔는지를, 그가 썼던 글이나 자취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준 「나눔의 세계」는 카뮈에 대한 훌륭한 자료집이었다. 궁금했던 카뮈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고, 그가 좋아했고 영향을 받았던 작가들에 대해서도, 또한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며 어떤 글을 썼고 행동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카뮈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묵직한 선물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1914년의 사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더 가까워졌다. 전쟁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절망이 어떤 극단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면 불쑥 무관심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와 더불어 숙명이라는 느낌과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 - '전쟁', 1939년 9월 17일, <르 수아르 레퓌블리캥>

 

 

 

"아마도 어느 세대나 저마다 이 세계를 개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세대는 세계를 개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대의 과업은 아마도 더욱 중대할 것입니다. 그 과업은 바로 이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저지하는 일입니다. " - 「스웨덴 강연」, 1957년 12월 10일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 : 길을 잃지 않기,

세계 속에 잠들어 있는 자기의 것을 잃지 않기. " - 「작가수첩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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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3-12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카뮈는 `이방인` 만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교과서로도 사용했었구요. 전집을 작년에 구해서 고이 모셔놓았는데, 읽을 틈이 나지 않습니다. 소설과 기본적인 고전문학을 좀더 읽고 전집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장소나 사람을 떠올리는 건 참 좋은 경험인데, 님처럼 TV로 그렇게 만나질 수도 있네요.

물고기자리 2016-03-12 10:35   좋아요 0 | URL
카뮈 전집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저도 한 권씩 모으고 있습니다.ㅎ

제가 집에 있을 땐 보든 안 보든 배경화면처럼 다큐여행 채널을 틀어 놓거든요. 예전에도 지리 과목을 무척 좋아했었고, 다양한 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궁금해했었는데 책도 그런 호기심을 바탕으로 읽게 되는 것 같아요.ㅎ

일부러 찾아 볼 때도 있지만 책을 읽을 때, 우연찮게 관련 장소의 영상을 보게 되면 신기하기도 하고 참 좋더라고요.^^
 
영혼의 자유 에니어그램
엘리 잭슨 베어 지음, 이순자 옮김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여러 권의 에니어그램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펼쳐보는 책이고, 쉽게 읽히는 책이다. 십여 년 전 에니어그램을 접하고 나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단 나를 먼저 되돌아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준다.


읽는 것 자체로는 알지 못한다. 수 없이 고민하고 부유물들을 가라앉혀야 한다. 에니어그램은 지식이 아닌 지혜가 되어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게 아닐까 싶다. 영혼의 자유까진 아니어도 더 많이 가벼워지기 위해 마음이 혼탁해질 때마다 찾아보는 책이다. 나 자신을 부정하기보다 긍정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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