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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ㅣ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평점 :
N22055
"당신은 언제까지나 침묵을 지키셨지만, 당신은 언제까지나 침묵하실 수는 없으실 것이다.
너무나 믿었었기에 실망과 절망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왜 신은 자신을 믿는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고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걸까?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포루투갈의 사제 "로드리고"가 포교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서 겪게되는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무교이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카톨릭에 대한 내용이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로드리고"의 고통을 함께했다. 마치 내가 낯선 땅에 홀로 서있는 "로드리고"가 된 느낌이었다.
어느날 로마 교황청에 포루투갈 예수회의에서 일본에 파견한 신앙이 깊었던 "페레이라" 신부가 고문에 굴하여 배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평소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의 성품을 알고 있었던 세명의 젋은 사제는 이 소식을 믿을 수 없었고, 일본의 꺼져가는 신앙의 빛을 다시 밝히기 위해 일본으로 도항을 결심하고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우리의 밀항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는 지금 사제를 잃고 길을 잃은 신도들이 한 무리의 어린 양들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그 신앙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해서라도 누군가가 가야만 합니다."] P.22
우연히 그들은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도모기 마을'로 처음 잠입하게 되고, "로드리고"와 "가르페" 사제는 마을사람들의 믿음을 계속 이어나가게 해준다. 하지만 카톨릭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숨겨야만 했고, 사제들에 대한 색출 역시 극에 달했기에 두명의 사제는 산 속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두명의 사제는 자신들의 존재가 마을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는 점을 뿌듯해 했고, 자신들은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마저 갖는다.
[인간이란 묘한 것이어서, 타인은 어쨌든 간에 자기만은 어떤 위험에서도 모면될 수 있다고 마음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 먼 곳을 바라보며 그곳에만은 희미한 태양이 비치고 있을 언덕을 상상할 때처럼.] P.56
하지만 '도모기 마을'에 사제가 잔입을 했고, 마을 사람들이 카톨릭을 믿는다는 사실이 세어나가게 되어 마을 사람들은 조사를 받게 된다. 그렇게 색출된 사람은 고문을 받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이른바 순교한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P.85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성인전에 쓰인 그런 순교를, 이를테면 그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때 공중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런 빛나고 화려한 순교를 지나치게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보고하고 있는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 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P.93
결국 두 명의 사제는 자신들의 존재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도모기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교라는 목표를 버릴 수 없었고, 함께 있기보단느 서로 헤어져서 각자 포교의 임무를 하기로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것들을 참아야 했던가. 이 낯설고 황폐한 동양의 땅까지 우리는 어떻게 도착했던가."] P.31
카톨릭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리고 사제라는 자신의 존재 때문에 많은 신도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 "로드리고" 사제는 이러한 비극에 침묵하는 하나님에 대한 존재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것은 무서운 상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무기둥에 묶여 파도에 씻긴 모키치나 이치소우의 인생은 얼마나 익살스러운 연극인가. 많은 바다를 건너 2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 나라에 다다른 선교사들은 또 얼마나 우스운 환영을 계속 뒤쫓은 것인가.] P.106
하지만 "로드리고" 사제는 얼마 안되어 잡히게 된다. 하지만 "로드리고" 사제는 바로 처형받지 않았다. 이미 많은 일본 서민들이 암암리에 카톨릭을 믿고 있었고, 이러한 믿음을 근절시키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제의 죽음이 아닌 사제의 배교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사제의 배교를 위해 일본의 관리들은 "로드리고" 가 보는 앞에서 카톨릭을 믿는 일본인 신자들을 하나 둘씩 죽인다. 일본의 관리들은 신자들에게 배교를 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배교를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죽는다. 순교한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수없이 바다를 횡단하여 이 작은 불모의 땅에 한 알의 씨를 가져온 자신의 반생은 얼마나 우스꽝스럽단 말인가. 그건 정녕 희극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매미가 울고 있는 한 낮, 목이 잘린 애꾸눈 사나이의 인생은 우스꽝스럽다. 헤엄치며 신도들의 작은 배를 쫓은 가르페의 일생도 우스꽝스럽다. 신부는 벽을 향하고 앉아 소리를 내어 웃었다.] P.215
하지만 많은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로드리고" 사제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일본인 신도들이 배교 대신 순교를 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 배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거짓 믿음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없다. 자신이 두 눈으로 본 농민들, 비참한 순교자들, 저 사람들이 만약 구원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어째서 안개비 내리는 바다속으로 돌덩이마냥 가라앉아 갈 수 있었을까?] P.239
하지만 자신의 스승이었지만 현재는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를 만나고, 그러한 스승 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 선교사들을 배교하게 만들었던 일본인 "이노우에"를 만나고 나서부터 신에 대한 믿음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신부, 당신 때문에 말이오, 당신이 이 나라에 당신 멋대로 자기 꿈을 억지로 실현시키려 해서, 그 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괴로움에 빠졌는지 생각해 봤소? 보시오, 피가 또 흘렀소. 아무것도 모르는 저 사람들의 피가 또 흘렀단 말이오."] P.210
["너는 그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너 때문에 저 사람들이 죽어 간단 말이야."] P.212
결국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던 상황과 동일한 조건에 처한 "로드리고" 사제 역시 자신 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신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배교할 수 밖에 없었고, 배교의 증거로 성화를 밟는다. 신도가 죽어감에도, 나의 고통과 기도에도 언제나 응답하지 않는, 침묵하는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배교한 것은 말야, 듣고 있나? 들어 주게나. 그 뒤, 여기 구덩이에 넣어진 뒤 들렸던 저 소리에, 하나님이 무엇 하나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P.261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쓸쓸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 갈등, 절망, 체념의 내적 갈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고통과 침묵 속에서도 결코 믿음을 저버릴 수 없는 로드리고의 마지막 모습에서, 한번 믿기 시작하면 이를 버지리 못하는 인간의 숭고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 안타까웠다.
Ps. 이 책이 주는 메세지와 무게감은 엄청나다. 또 하나의 인생책을 발견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