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09. 6. 7. 일 

장소 : 통영시 

같이 간 사람: 최 승재, 강 선오, 표 진성, 어머니, 아버지

고성에서의 2박 3일을 통영 시티투어로 끝냈다. 통영 시티투어란 버스를 타고서 통영의 유명한 문물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다. 특히 통영에서는 충무공 이순신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충무사와 한산도, 케이블카와 유람선 등을 잔뜩 관람하고 왔다. 



 

<한산도 제승당> 

제일 먼저 유람선을 탑승했다. 이름은 신태양호. 물론 약간 낡아서 그리 멋진 호화 여객선은 결코 상상할 수 없으나, 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나아가서 도착한 한산도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그 깊은 뜻과 영웅정신의 기를 받을 수 있었다. 한산도의 만은 잘 보면 하트 모양이다. 해설자가 설명하길 이는 조국과 임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효율성을 위해 이렇게 만들었을 뿐, 실제로 그런 뜻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후 몇 백년된 정자에 앉아서 해설자에게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통영이 이순신의 도시이므로 가기 전에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었다. 이 책 속에서 이순신이 얼마나 훌륭한 위인이었는가를 설명해 준다. 이순신은 뛰어난 병법가임과 동시에 수완 좋은 정치가였으며 쉽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학자였다. 그런 만능인인 이순신이 백성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씨까지 가졌으니 과연 대단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또 이순신의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에 속한다고 한다. B.C 480년경 테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 해전때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에서 그리스라는 한 국가의 패망이 걸려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열심히 싸운 덕택에 기동성이 약한 페르시아의 거대한 배들은 스스로 무너져 엄청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또 영국의 칼레 해전에서 드레이크 제독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령 아래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둔다. 또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이 있는데, 넬슨 제독은 이순신과 비슷한 점이 많은 장군이다. 전략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또 이순신과 같이 선상에서 저격을 당해 해전이 모두 끝난 후 '나는 20세의 약속을 지켜 행복하게 죽는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선상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이다. 이 대첩에서 일본군이 자기 군의 피해를 문서로 8600명 넘는 사망자를 보고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실을 두려워하여 적게 보고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추측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상대적으로 조선 수군 사망자는 최소 1000명은 되어야 한다. 그럼 실제로 몇명일까? 사망자는 19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배 한척 깨지지 않고서 상대방을 전멸시킨 이순신은 전세계적으로 해군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나 또한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존경하며 닮고 싶다.  

<전혁림 미술관>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돌아와 통영을 빛낸 예술인인 전혁림 할아버지의 예술관을 둘러보았다. 현재도 살아계시는데, 올해 나이가 95살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장수하시는 예술인이니, 아주 오래 오래 살아계셔서 좋은 작품을 하시면 좋겠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거친 붓결에서 예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모두 만나고서, 바닷가의 식당에서 먹는 아구찜을 먹었다. 아구양이 매우 적었기에 거의 콩나물 무침이라 생각하면서 밥과 반찬만 먹었다.   

<미륵산 케이블카>

그 후 케이블카를 타고서 산의 전경을 둘러 보았다. 높은 곳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니 참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좋은 구경을 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 후, 버스를 타고 충무사로 향했다.   

<해저터널>  

입구와 그 내부 모습 - 바다 밑으로 이런 터널을 냈으니 그 때 일했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마음이 아팠다.

<착량묘,거북선> 

충무사는 400년도 넘은 것인데, 어떻게 일제 시대에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었냐 하면 일본이 경외하는 조선의 장군이 바로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세종로에서 나쁜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설치한 동상의 주인공도 이순신인 이유가 이것이다. 충무사에서 영웅 이순신에게 참배를 한 후, 바로 앞에 위치한 거북선을 둘러보았다. 몇 번 온 곳이긴 하지만, 다시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거북선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겼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이 웅장한 배에게 감사해했다. 

<세병관, 향토역사관> 

마지막으로 세병관을 들렀다. 원래 이 세병관은 통제지의 중심인데, 그 주변이 일제 시대에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세병관이 컸기 때문에 서당으로 쓰여서 겨우 보존될 수 있었다. 얼마나 잘 만들었던지 400년 전에 건물 상층벽에 새겨진 선녀의 눈썹조차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람의 손이 다 닿을 수 있는 곳은 문양이 거의 지워져 좀 안타깝게 여겨졌다. 

 

통영 곳곳에서 사람들의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바다의 도시이자 충무공의 도시인 통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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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2009-06-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 소중한 체험의 시간이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최상철 2009-06-09 11: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 내용 꼼꼼하게 써주신 <한려수도 이순신이 싸운 바다>
배송되면 잘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