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지문 -하
그레이엄 핸콕 / 까치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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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 이어 하권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 가보지 않아도 참 많이도 듣고 보게 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니던가.

 

피라미드 하면 그냥 파라오(왕)의 무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긴 하지만 가장 거대하게 남아 있는 일명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군(세 개의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은 결코 무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속에서 왕의 시신부터 어떤 기록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이 아니라 천체를 지구에 옮겨 놓은 어떤 상징, 어떤 기록이라는 것이다.

 

무려 1만 년 전에 만들어졌을 거라고 추측하는데... 이 추측은 피라미드의 배열과 오리온자리의 가운데 세 별의 배열이 일치하는 년도를 중심으로 추측을 했다고 한다.

 

이 추측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이면 인류 문명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도로 발전된 문명 이후에 인간들이 다시 석기시대의 삶을 살았다니... 이것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피라미드군이 오래되었다는 증거를 저자는 다시 스핑크스에서 찾는다. 스핑크스는 사자라고 하고, 아마도 당시에는 사자의 머리였을 것인데... 후대 이집트 왕조에서 사람의 얼굴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왜 사자일까? 이것은 바로 황도와 관련이 있다. 춘분과 추분을 기점으로 한다면 춘분이 시작하는 별자라기 몇첫 년을 기점으로 바뀌어가는데... 1만 년 전이라면 이때 춘분점의 별자리는 사자자리라는 것이다.

 

이때의 년도와 피라미드의 건설 년도가 거의 일치하기에... 이런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었는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라진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 멸망에 즈음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남기려는 방편으로 이런 건축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고.

 

참 놀라운 주장이다. 책만 따라가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정설과는 다른 주장을 펼친 학자들의 주장을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 인류 멸망의 예언, 즉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건축물을 만든 이유는 몇만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이것을 해독할 현명한 후손들을 기다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마야의 달력이나 또 다른 예언서들을 종합하여 2000년대 초반이면 다시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하는데...

 

우선 마야 달력이 제시한 2012년은 지나갔고... 그렇지만, 책에서는 불로 멸망할 거라는.. 그런 불길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인류가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니... 참...

 

아마도 시간이 좀더 지나면 이 저자의 주장이 맞는지... 우리가 배운 진화론을 새롭게 바꿔야 할지도 모를 주장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대륙이동설이야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지만 지각변동설은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과 지진 등을 이것과 연결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의 논리를 따라가도 이해 못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토록 고도의 문명을 지닌 이들이 모두 실패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구도 후손에게 또는 다른 종족에게 자신들의 문명을 제대로 전수해주지 못했다는 것...

 

세계 모든 곳에서? 이게 가능할까? 어느 한 군데는 성공해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어야 하지 않나? 단지 우리가 이 지구에 살고 있었다라는 것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또 너희들도 위험하다, 지구는 예측가능하다고 한다면, 사람들을 교육시켰을 것이지 않나.

 

우리 인류의 먼 과거에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르게 살아왔고,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고 하지만, 지금과 거의 비슷한 천문지식, 수학능력, 그리고 어쩌면 더 뛰어난 건축술을 지닌 그들이 어떤 종족에게도 제대로 문명을 전수 못했다는 것은 좀더 해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류는 확실히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 어떻게든 우리는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

 

이 책에서 보여준 길을 걷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하게 됐다. 상권과 하권을 이어서 읽으면 사라진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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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69 2016-08-03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ㅡ읽어 보았는데 감회가 틀리네요.
다시 읽어 봐야 할 것 같네요

kinye91 2016-08-03 11:00   좋아요 0 | URL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은 것이 밝혀져 더욱 새로워질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든, 반대되는 사실이 나타나든 말이죠.
 
신의 지문 -상 신의 지문 1
그레이엄 핸콕 / 까치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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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라고 해야 하나,, 지질학이라고 해야 하나, 천문학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미래에 대한 예언서라고 해야 하나, 참 뭐라 규정하기 힘든 책이다.

 

그냥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니까 고대 문명에 관한 책이라고 하자. 고대 문명을 연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인간의 역사를 하나로 꿰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려는 목적과 미래를 예측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첫 부분부터 충격적이다. 남극의 지도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남극 하면 빙하로 덮여 있는 대륙 아닌가. 여기에 뭐가 더 필요한가? 그리고 남극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의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근대보다 더 오래 전 도무지 사람들이 남극을 탐험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에 남극을 그린 지도가 있었다? 그것도 지금 수준에서 봐도 떨어지지 않는 정밀도로.

 

여기에 남극에 산맥과 강이 있었다고 하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여기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남극이 그랬단 말야!

 

더 흥미로운 것은 대륙이 이동했다는 것도 아니고 한 발 더 나아가 지각이 이동했다는 주장까지 한다. 남극이 온대지방에 있었다. 지각이 이동해서, 또는 대륙이 이동해서 약 3200킬로미터를 이동했다고 한다.

 

어떻게 믿냐고? 남극에서 발견되는 생물의 화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증거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대륙이동설이든, 지각변동설이든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래서 다른 증거를 찾아 나선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잉카, 마야 문명보다 더 앞선 문명, 그것도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명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고...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이러한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문명들... 현대 기술로도 건설하기 힘든 건축물들, 현대 과학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천문학 지식들...

 

이런 증거들을 하나하나 찾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역사는 과연 직선적으로 발전해 왔을까?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 어느 순간 멸망하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여러 신화들에서 이런 멸망의 신화가 공통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에서, 서로 교류가 안 된 문명에서 비슷한 신화가 나타나다니... 저자는 이것으로도 이전에 더 발전했던 문명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한다) 다시 지금의 문명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일어났을까? 책은 다음 하(下)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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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치명적 농담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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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불교는 우리 생활에서 많이 멀어졌다. 우선 마을에 있던 사찰이 탄압으로 인해 산 속으로 갔고, 산 속에 있음으로 해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산 속으로 간 불교는 산 속에서 자신들만의 언어로, 자신들만의 수행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럼으로 인해 더욱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되었다.

 

신비주의. 산 속에 있는 절을 생각해 보라.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에 자리잡았는지... 늘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큰 맘 먹어야 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산사(山寺)였고, 산사 속에서 스님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살아왔기에 감히 쉽게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런 불교는 특히 경전이 더 어렵다. 한글로 번역된 책들을 보아도 이게 뭔 말인지 싶고, 한문은 해석할 능력도 없으니 안 되고, 이 책에서는 영어가 지금 현대인들에게 더 친숙하다고 했는데, 그것도 영어 공부를 한 사람들 얘기지 영어와 거리가 먼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영어는 더욱 더 어렵고, 그렇다고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알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불경은 더욱 어렵다. 누군가 해설을 해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고, 해설을 해주어도 뭔 소리야 하기 쉽다.

 

이렇게 된 데에는 스님들의, 불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자신들의 세계에만 빠져 있지 않기 위해서는 스님들이, 불교학자들이 더 쉬운 언어로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 불교를 알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마치 불교 책 중 하나인 십우도를 보면 깨달음을 치열하게 추구하다가 깨닫고 난 뒤에는 다시 저잣거리로 나갔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남에게만 미룰 수는 없는 일. 불교에 관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할 일이다. 찾다보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수준에 맞는 책들을,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제목이 재미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 그래서 제목에 속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이 이러니 불교에 관한 우스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인가 싶어 손에 들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작은 제목은 무섭다.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다. 금경강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는 뜻일텐데... 농담과 별기라니.

 

어렵다고 생각하는 불교를 전혀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농담'이라는 말을 썼을 거라 생각하고, 금강경이라는 불경을 하나하나 주석해 가는 것이 아니라, 금강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냈기에 '별기'다.

 

그래서 이 책은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도 아니고, 불교의 일화에 대한 책도 아니다. 불교에 대해서 결코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해 주는 책인 것이다.

 

이런 저런 선지식들의 불교에 대한 해석을 멀리하고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게,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들려주고 있다.

 

경전에 매달리지 말고 불교 고승들의 말에 매달리지 말고, 불교학자들의 해석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지녀라.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불교는 결코 멀리 있는 진리를 찾으라고 하지 않는다. 진리는 이미 네 안에 있다. 네 안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다만, 그 깨달음 이후 그것을 실천하는 머나먼 길을 가면 된다.

 

그러니 시작하자. 자신을 돌아보는 일부터. 자신의 주변을 살피는 일부터. 하나하나 진심을 다해. 이것이 바로 불교의 기본이고 시작이다.

 

아마도 불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질 것이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써내려간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금강경의 내용을 풀이하는 책도 내겠다고 했으니, 그 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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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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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길지 않은 소설이다. 오죽했으면 이 문학전집에 이 한 편을 싣지 못하고 또다른 소설 "직소"가 실려 있겠는가.

 

140쪽 간신히 되는 소설이기에 빠르게 읽을 수가 있다. 서문과 후기 사이에 세 편의 수기가 실려 있어, 수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일종의 액자소설이라고 하지만, 서문과 후기는 소개하는 역할만 하고 있고, 서문에서 사진 세 장으로 이 소설의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어렸을 때 사진, 학창시절의 사진, 그리고 그 이후의 사진. 이렇게 세 장의 사진인데... 이 사진에서 느끼는 점을 서술자가 직접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소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후기에서는 이 세 편의 수기가 어떻게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니,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 편의 수기 내용인데, 한 편 한 편이 서문에서 제시한 사진과 연결이 된다. 즉, 사진에서 느껴졌던 점을 사진의 주인공이 쓴 수기를 통하여 왜 사진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음습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분위기가 칙칙하다. 단 한 번도 밝은 면을 보여주지 않고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계속 드러낸다.

 

순진무구하다는 어린시절조차도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씌울 정도로 남을 의식하는 주인공이라니... 결국 그의 삶은 시작부터 자신의 인생이 아닌 남이 기대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으려 일부러 하는 행동들, 익살들... 이런 가면을 그는 평생 쓰고 살아가게 되는데... 자신이 무시했던 친구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켰을 때의 낭패감.

 

그 친구는 가식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의 가식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어떤 예언처럼 그의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

 

그는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을 거라는, 다른 사람과 관계맺기를 못하는데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이것은 자신이 생활의 최전선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회피해 여인의 품으로 도망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는 힘들 때마다 여인의 품속으로 도피하고, 그런 그를 여인들은 받아주는데, 그 받아줌이 그를 다시 생활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으로만 들어가게 만든다.

 

여인들과 살면서도 결코 술에서 담배에서, 나중에는 약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실제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현실일 뿐이고, 실제 생활에 맞닥뜨렸을 때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도망가 버려야 할 실제일 뿐이다.

 

이런 그에게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사람을 자신의 판단 속에서 재단하고 그렇게 대할 뿐이다.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기에 사람들의 민낯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자신은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인간 실격이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그 스스로 자처한 일일 수밖에 없다.

 

남들에게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지 못하고, 늘 감추기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고, 죽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사회에서 격리되는 일밖에는 없다.

 

세 번째 수기에서 이런 일이 잘 서술되어 있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실제 그의 삶과 이 소설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너무도 많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그의 자서전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허구적인 장치를 했을테니) 소설인데 그의 생애가 비극적이듯이, 이 소설 역시 비극으로 끝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면 이는 형식적인 만남일 뿐이고, 만남 하나하나가 고통일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일본 소설가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소설이라는 점 정도... 그리고 뒤에 실린 "직소"애서 유다와 예수의 관계, 특히 유다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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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문 - 노자, 아나키, 꼬뮌
신철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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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문. 이 제목만 가지고는 도무지 노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노자 하면 무위(無爲)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런 노자를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그 사랑이 퍼져 나가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 사상을 노자의 사상이라고 정리한 저자의 노자 읽기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의미라고 한다면, 그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치사상이라는 것에서 사랑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 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출현한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이고, 그 시대는 조화가 무너지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침범하는 시대 아니었던가.

 

이 시대를 이겨내는 사상들은 바로 사랑에 바탕을 둔 사상들이 아니었을까? 이 점에서 제자백가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상들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바탕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에 대한 사랑일까? 단순한 지식에 대한 사랑? 그것은 아니다. 지혜란 단지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아는 것 아니겠는가?

 

잘 살아간다는 것의 기본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이 어떻게 실현되느냐에 따라 각 사상가들이 달라지고 있는데...

 

노자는 기본적으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거대한 중앙집권적인 통치를 부정하고 자치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주장을 좀더 밀고 나가면 노자는 결코 춘추전국시대의 통일을 (노자가 살던 시대는 춘추시대니 주나라 중심의 통일을) 바라지는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중앙집권적인 거대 통치국을 바란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마을에서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작은 공동체를 바라고 있으니, 오히려 춘추시대에 서로의 영토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노자가 어떤 주장을 했느냐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시대에 노자의 주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또 어떻게 노자의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좋다는 쪽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노자 사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도덕경의 다른 해석본과 저자의 해석을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그런 해석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랑에 기반을 둔 작은 공동체들의 연합,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어 평화적으로 교류 되어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방자치가 지금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없는데, 그것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고, 이런 점에서 아나키와 코뮌을 노자의 사상과 연결지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또 플라톤을 비롯한 서양의 여러 사상가들의 사상, 그리고 우리나라 소설들에 나타난 상황들을 종합하여 노자의 사상을 적용하고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단지 노자의 사상을 먼 과거의 사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상, 그것도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노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지방자치제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가 노자의 사상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사랑의 파문'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 멀리멀리 퍼져 나가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면 우리 사회가 좀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저자 나름대로 소화해서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시킨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도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덧글

 

책을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노자의 도덕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법, 또 책을 자신에 맞게 소화시키는 법. 다양한 책들과 융합시키는 법을 보여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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