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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그다지 길지 않은 소설이다. 오죽했으면 이 문학전집에 이 한 편을 싣지 못하고 또다른 소설 "직소"가 실려 있겠는가.
140쪽 간신히 되는 소설이기에 빠르게 읽을 수가 있다. 서문과 후기 사이에 세 편의 수기가 실려 있어, 수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일종의 액자소설이라고 하지만, 서문과 후기는 소개하는 역할만 하고 있고, 서문에서 사진 세 장으로 이 소설의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어렸을 때 사진, 학창시절의 사진, 그리고 그 이후의 사진. 이렇게 세 장의 사진인데... 이 사진에서 느끼는 점을 서술자가 직접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소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후기에서는 이 세 편의 수기가 어떻게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니,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 편의 수기 내용인데, 한 편 한 편이 서문에서 제시한 사진과 연결이 된다. 즉, 사진에서 느껴졌던 점을 사진의 주인공이 쓴 수기를 통하여 왜 사진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음습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분위기가 칙칙하다. 단 한 번도 밝은 면을 보여주지 않고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계속 드러낸다.
순진무구하다는 어린시절조차도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씌울 정도로 남을 의식하는 주인공이라니... 결국 그의 삶은 시작부터 자신의 인생이 아닌 남이 기대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으려 일부러 하는 행동들, 익살들... 이런 가면을 그는 평생 쓰고 살아가게 되는데... 자신이 무시했던 친구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켰을 때의 낭패감.
그 친구는 가식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의 가식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어떤 예언처럼 그의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
그는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을 거라는, 다른 사람과 관계맺기를 못하는데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이것은 자신이 생활의 최전선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회피해 여인의 품으로 도망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는 힘들 때마다 여인의 품속으로 도피하고, 그런 그를 여인들은 받아주는데, 그 받아줌이 그를 다시 생활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으로만 들어가게 만든다.
여인들과 살면서도 결코 술에서 담배에서, 나중에는 약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실제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현실일 뿐이고, 실제 생활에 맞닥뜨렸을 때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도망가 버려야 할 실제일 뿐이다.
이런 그에게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사람을 자신의 판단 속에서 재단하고 그렇게 대할 뿐이다.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기에 사람들의 민낯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자신은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인간 실격이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그 스스로 자처한 일일 수밖에 없다.
남들에게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지 못하고, 늘 감추기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고, 죽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사회에서 격리되는 일밖에는 없다.
세 번째 수기에서 이런 일이 잘 서술되어 있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실제 그의 삶과 이 소설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너무도 많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그의 자서전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허구적인 장치를 했을테니) 소설인데 그의 생애가 비극적이듯이, 이 소설 역시 비극으로 끝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면 이는 형식적인 만남일 뿐이고, 만남 하나하나가 고통일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일본 소설가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소설이라는 점 정도... 그리고 뒤에 실린 "직소"애서 유다와 예수의 관계, 특히 유다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던 소설이다.